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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스트레스가 또한 어떻게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스트레스인자가 시상하부를 자극하게되면 시상하부는 CRF라는 호르몬을 분비시킨다.

이 CRF는 2가지 경로로 메시지를 유리하는데
첫번째는 뇌와 척수의 신경세포에 시그널을 보내고 이 결과 부신이 자극된다.
부신의 자극으로 인해 심박동률이 증가하고, 긴장성호흡을 촉발하고 근육의 긴장도를 높인다.

2번째 경로는 뇌하수체를 자극하여 분비되는 호르몬에 의해 부신으로 부터 cortisol을 혈류로의 방출은 야기시킨다. 이 코티솔에 의해 인체의 신진대사 반응을 증가시키게 된다.
이러한 경로는 feedback system에 의해 자동 조절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스트레스를 지나치게 받게되면
즉 스트레스로 부터 반복적으로 overload되면 인체의 건강과 심적 안정의 공격을 받게되고 결국은 죽음으로 이르게 된다.
만성스트레스는 코티솔의 혈중농도를 높이고 그 결과 식욕이 증가하게 되면, 지방의 축적을 가져온다.
이러한 결과 복부의 비만도가 증가하게 된다.
체중의 증가와 함께 만성피로, 만성 두통, 불면증, 고혈압, 위장장애, 짜증도의 증가등의 문제가 야기된다.

우선 이러한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을 없애기 위해 심호흡을 천천히 반복적으로 실시해 본다.
반복적인 심호흡은 근육의 긴장도를 낮추고, 심박동율을 어느정도 낮추어 준다.

이러한 호흡요법이 도움이 안되면, 영양적 보조요법이 도움이 된다.
일반적으로 항스트레스 바이타민인 바이타민 B복합제를 복용하게 되면 신경시스템의 기능에 많은 도움이 된다. 또한 바이타민 C가 도움이 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Vitamin C가 부신의 스트레스 호르몬의 조절에 도움을 주며
 혈압과 스트레스를 느끼는 정도를 많이 줄여준다.
 또한 생활요법으로 차를 끓여 먹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차를 끓이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로 부터 벗어나게 된다. 캐모밀티는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과 위장장애에 효과가 있고, 인삼차는 이러한 스트레스에 대항하는 인체의 면역시스템의 기능을 높여준다.

St. John's wort는 세로토닌의 제흡수를 방해함으로 인해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과 신경통증에 많은 도움이 되며, Wild oats는 신경의 균형을 조절해 준다.

Magnolia Bark는 에너지레벨을 낮쳐주고 스트레스성 위장장애를 치료해준다. 또한 녹차의 성분중 theanine이라는 아미노산은 인체의 긴장도를 자연스럽게 낮추어준다. 
타이로신이라는 아미노산은 스트레스로 인한 인체에 대한 전반적인 효과를 낮추어주고, 육체적 정신적 만성피로를 줄여준다

 

 

■ 나와 너의 경계를 분명히 하자


우리나라 사람들은 툭하면 남의 일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며 참견하길 좋아한다. 일본인들이 가급적 상대방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는 것과 대조적이다. 아마도 이런 태도는 전통적인 생활습관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찌개를 한 그릇에 담아 온 가족이 함께 떠먹는다. 또 한 방에서 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데도 매우 익숙한 편이다. 언어습관을 보아도 '나'라는 말 대신 '우리'라는 말을 즐겨 쓴다. 심지어는 자기 아내마저 '우리 집사람'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그만큼 우리 민족의 나와 남의 경계를 가르지 않고 '나'를 '우리' 속에 포함시키면서 살아왔다는 얘기다.



물론 이것이 우리 특유의 끈끈한 가족애나 민족애의 바탕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인의 프라이버시나 인권이 무엇보다 중시되고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 자칫 무분별한 '우리' 의식은 경우에 따라서는 심각한 스트레스 요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우리는 자식을 자신의 일부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서, 후에 자식이 장성해서 부모의 품을 벗어나려고 할 때 갈등이 일어날 소지가 많다.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는 부모들의 과잉보호나 치맛바람도 따지고 보면 자녀와 부모 사이의 경계가 희미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다가 자녀들이 조금만 서운하게 하거나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 하면 대뜸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하며 흥분하기 일쑤다. 이런 태도는 자녀들이 결혼한 후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어떤 부모는 자녀들이 안부전화를 하루만 빼먹어도 "결혼하고 나서 너무 달라졌다"면서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곤 한다.



20대 후반의 한 여성 환자는 시어머니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녀는 신혼 초부터 시어머니가 자신들의 방을 시도때도 없이 벌컥 열고 들어오더니, 손자를 보고 나서는 아예 한밤중에도 방문을 잠그지 못하게 했다. 아이가 깨서 우는데 돌봐주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는 한참 자고 있는 이른 새벽에 불쑥 들어와서는 "애가 오줌을 쌌는데 잠만 자고 있느냐?"고 질책을 하고선 아예 방에서 나갈 생각을 안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부부의 사생활은 존재할 수가 없다. 이것은 자식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우리 사회가 대가족 중심에서 핵가족 중심으로 바뀐 지도 꽤 오래 되었다. 더욱이 우리는 천천히 걸어가는 농경시대가 아니라, 바쁘게 뛰어야만 뒤쳐지지 않는 정보화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세상에 살면서 아직도 나와 너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고 지낸다면 서로가 피곤해짐은 물론 갈등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나와 너의 경계를 분명히 하자. 개인은 물론 사회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그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 세상의 온갖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지키는 법 中에서 -



■ 감정이 앞서는 우리의 병폐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법대로 하다가는 손해를 본다"든 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생각을 많이들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먼저 큰소리 치고, 먼저 주먹을 쓰는 게 이기는 길인 줄 알고 덤벼든다. 결국 법보다 주먹이 앞서게 된다. 조그만 자동차 접촉사고만 나도 길 한복판에 서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언성을 높이는 사람들을 심심지 않게 볼 수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의 감독을 맡았던 한 러시아인은, 우리 선수들이 너무 감정적이어서 감독노릇하기가 정말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특히 선수들이 시합에서 제외되거나 경기 도중 교체되면 쉽게 자제력을 잃고 행동하는 경우가 많아 소신껏 전술을 구사하기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경기를 하다 보면 전략상 선수들의 특기나 체력을 고려해서 적기에 교체해야만 하는데 선수들이 워낙 감정적이다 보니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는 얘기다.



얼마 전엔 감기를 앓던 사람이 약국에서 약을 지어다 먹은 뒤 갑자기 죽었는데, 다음 날 죽은 사람의 가족들이 약사의 집으로 우르르 몰려가 안방에 드러누워서는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내라면서 난리를 친 사건이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정확한 사인규명을 의뢰해 놓고 그 결과를 살핀 다음에 잘잘못을 따져도 될 텐데 그 때까지 참아 내지를 못한다. 어떤 남자는 안과에서 눈 수술을 받은 후에 "눈이 부시다"며 매일 병원을 찾아가 "내 눈 살려내!"라고 소리를 지르더니 급기야는 의사에게 손찌검까지 했다고 한다.



이같이 감정적인 우리들에 비해 서양인들은 대개 이성적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때로는 너무 냉정하고 차갑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이것이 더 현명한 대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의 사례를 보자. 한 미국 여인이 복통을 호소하는 어린 아들을 병원 응급실로 데려왔다. 그런데 그만 간호사의 실수로 엉뚱한 주사를 맞고 아들이 숨져 버렸다. 그러자 여인은 아직 주사액이 남아 있는 주사기를 가방에 넣고는 말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후 이 문제는 법적인 절차에 의해 처리되었다. 한참 지난 뒤 그 여인이 정신과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어찌 그 미국 여인인들 어머니로서 아들의 죽음에 초연할 수 있었으랴마는 그 대응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우리와 하늘과 땅만큼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물론, 무조건 소란부터 피우고 보자는 우리와 법적으로 차분히 대응하려는 서양인의 차이의 밑바탕에는 민족성 이외에도 법의 집행과 같은 사회제도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선진 외국에서는 어떤 상황이라 하더라도 남의 집에 무단침입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경찰까지 피해자 쪽을 약자로 단정해 놓고, 그 상대방의 안전이 위협을 받는 상황은 별로 안중에 두려고 하지 않는다. 이렇게 법의 집행마저 감정적으로 이루어질 때 우리 국민의 안전은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에 놓인다. 결국 우리 국민이 감정주의로부터 탈출하려면 무엇보다도 정확한 법의 적용과 실천이 선행되어야만 할 것이다.



- 세상의 온갖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지키는 법 中에서 -



■ 조급증에서 벗어나라


같은 상황이라도 개인의 성격에 따라 스트레스를 더 받기도 하고, 덜 받기도 한다. 또 국민성에 따라서도 스트레스의 강도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남미에서는 이웃 나라끼리 축구경기를 하다가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고, 몇 해 전 월드컵 축구경기에서는 한 선수가 경기중 자살골을 넣었다가 귀국해서 총에 맞아 죽은 일도 있었다. 이런 경우 쉽게 열 받고 흥분하기 잘하는 민족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외국 사람들이 지적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공통적인 기질은 '조급증'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차분히 순서를 기다리는 일을 잘 못한다. 기다리다가는 손해를 볼 것이라는 피해의식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서일까? 사람들이 미처 내리기도 전에 전철이나 엘리베이터에 비집고 올라타는 것은 예삿일이다. 또 한때 무슨 올림픽 금메달이라도 되는 양 앞다투어 공기 단축을 자랑하던 건물들은 지금 어떠한가? 나중에야 어찌됐든 무조건 빨리 끝내고 보자는 조급증 때문에 성수대교가 침몰했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고속도로는 몇 년이 멀다 하고 포장공사를 다시 하느라 애꿎은 국민들만 골탕을 먹는다. 제 6공화국 때인가는 대통령 재임기간 중 '주택 200만호 건설'이라는 공약을 이행한답시고 서두르다가 자재가 딸리자 불량자재를 마구잡이로 쓰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빨리'라는 말이 입에 붙어 있다. 언젠가 택시를 타면서 급한 일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빨리 갑시다"라는 말이 나와 스스로 놀란 적이 있었다. 택시가 출발하고 나서는 '내 말 때문에 차를 빨리 몰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함께 '빨리란 말을 쉽게 쓰는 데엔 나 역시 예외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어이없는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인들은 우리와 대조적이다. 한 한국인 건축사업자가 미군부대의 담장 보수공사를 맡았는데 열심히 일해 하루 목표량보다 많은 벽돌을 쌓아 올렸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안 미국인 감독자가 칭찬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루에 쌓아올리도록 할당된 것만 남기고는 모두 치우라고 해서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 좀 늦더라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그들과, 안전보다는 눈앞의 실적에 급급하는 우리의 차이다. 미국 사람들이 멀리 보며 살고 있다면 우리는 한치 앞만 보며 살고 있는 셈이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요란법석을 떨며 조급하게 서두른다 고해서 민주주의가 성큼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으로, 기초질서부터 잘 지켜나가는 작은 실천이 바로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이제부터는 다소 늦게 가더라도 기초를 튼튼히 다져서 건강한 나라를 후손에게 물려주자. 우리는 초석을 세우는데에 힘을 쏟고, 이 이상은 다음 세대의 몫으로 남겨 놓자. 너무 서둘러 가려고 욕심을 부리다가는, 민주주의 역시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처럼 무너져 버릴지도 모른다. 영어 속담에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란 말이 있다. '느려도 꾸준히 하면 경주에서 이긴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에게 이보다 더 절실한 말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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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 없는 사람만 물먹는다


우리는 좀 아는 사람을 만나면 더없이 살갑게 대한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에게는 뻣뻣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길을 가다가 낯선 사람과 어깨를 부딪치기라도 하면 얼굴부터 찡그린다. 신호등을 무시하고 마구 달리는 운전자들, 담배에 불을 붙여 들고 좁은 인도를 활보하는 사람들의 화난 듯 굳어 있는 얼굴들, 외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 아닌 동방무례지국의 모습이다. 이들에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내 편이 아니면 무조건 적으로 여기는 배타성이 강한 민족으로 인식된다. 아마도 농업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끼리끼리 뭉쳐야만 했던 습성이 산업사회를 거치고, 정보화사회에 들어서서도 여전히 남아 있는 탓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예전의 집안 어른들은 먼 친척이라도 자주 만나 미리 얼굴을 익혀 놓으라고 신신당부하시곤 했다. 자칫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인 줄 알고 친지간에 싸우는 불미스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만큼 우리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다르다는 이야기다.



병원에 오는 환자나 보호자들 중엔 어떤 줄을 잡아서라도 아는 사람의 이름을 대고 치료를 받으려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괜히 손해를 볼 것 같은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도 잊을 수 없는 일이 있다. 아들녀석이 다리를 다쳐 내가 일하는 병원의 자매병원 응급실을 찾은 적이 있었다. 아주 심한 부상은 아니어서 굳이 내 이름을 밝히지 않고 그냥 진료해 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도통 거들 떠도 보지 않는 것이었다. 게다가 간호사는 내가 알 바 아니라는 듯 그야말로 요지부동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하면서도 이왕 기다린 것 조금 더 기다려보자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남자 환자 하나가 배가 아프다고 소리지르며 몸을 데굴데굴 구르며 들어왔다. 그러자 그 간호사는 전혀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아들녀석을 번쩍 들어 멀찌감치 있는 다른 쪽 침대로 옮겨 의자에 앉혀 놓았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한참 지난 후 마침 내가 아는 수간호사가 다른 간호사들과 회진을 하다가 나를 보고는"어머, 웬일이세요?"하며 아는 척을 해왔다. 그러자 아까 그 간호사가 흠칫 놀라며 머쓱한 표정을 짓더니 얼른 환자기록부를 가지고 와서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우리가 응급실에 와서 1시간은 족히 지났을 때였다. 설상가상으로 그때 갑자기 아들과 내 얼굴 쪽으로 파란 섬광이 번쩍 덮치는데 깜짝 놀라 앞을 보니 방사선기사가 문을 열어 놓고 다른 환자의 엑스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고도 몇 번인가를 수없이 찍어대는 엑스선에 우리는 무방비상태로 놓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들 녀석은 발을 다쳐 움직이지도 못하고, 나 자신도 기다리다 지쳐 정신이 멍한 상태라 우리는 그만 엑스선의 위험을 감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날의 경험은 벌써 수년이 지난 일인데도 아직도 악몽처럼 생생하게 뇌리에 남아 있다. 이때 나는 '아는 사람을 내세우지 않았다가는 이렇게 무자비하게 당할 수도 있구나'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한편에서는 세계화를 부르짖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배타주의에 젖어있는 우리. 이렇게 너와 나를 가르면서 우리편이 아니면 거들떠보지 않으려는 태도는, 개인의 건강을 좀먹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민주화와 세계화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 세상의 온갖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지키는 법 中에서 -



■ 혈연과 학연으로부터 벗어나라


외국의 우수 대학을 졸업한 인재들이 국내 기업에서 일하다 보면, 소위 국내 유명대학 출신들이 너무 자기 학교 선후배를 따지는 바람에 일하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팔은 안으로 굽게 마련이라고, 상사들은 같은 대학 출신의 직원을 더 챙겨준다. 선배는 후배를 끌어들여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고, 후배는 선배 덕을 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다른 대학 출신들은 그런 상황을 보면서 위화감을 느끼고, 소외감을 맛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연줄이 없는 외국 대학 출신들은 더 이상 일할 마음이 나지 않아 다시 외국으로 돌아가거나 외국계 직장으로 옮길 수밖에 없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우리나라 대학의 교수진은 거의가 자기 대학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신교와 다른 대학에 교수로 비집고 들어가기란 정말이지 쉽지가 않다. 일본의 경우만 해도 우선 다른 대학에서 업적을 쌓아 놓아야, 모교에 자리가 날 때 발탁될 기회를 갖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업적이나, 능력보다는 어떻게 줄을 잘 서느냐가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하면 인맥이나 학연에 따라 출세가도를 달릴 수도, 도중하차가 불가피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다. 핏줄에게 끌리는 정은 어찌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래서인지 우리 사회는 남이 낳은 아이를 데려다 키우는 일이 외국에서처럼 흔치 않다. 또한 아이가 없어서 양자를 들이는 경우에도 그 사실을 쉬쉬하곤 한다. 어느 여자아이가 자식이 없는 가정에 양녀로 들어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양모가 아들을 낳았다. 그 때부터 그 아이는 그야말로 찬밥신세가 되었다. 결국 자신을 키운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된 여자아이는, 후일 자기를 낳은 부모를 찾으려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녔다는 것이다.



또 미국인 남자와 결혼한 한 한국인 여자는 자기가 낳은 애가 있는데도 남편의 희망에 따라 양자를 맞아들였다. 그런데 그녀는 자기 자식에게만 온갖 정성을 쏟고 양자를 홀대하는 바람에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혈연과 학연을 중시하는 행태에서 벗어나려면 국가적으로 그리고 범시민적으로 획기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대학에서 교직원을 채용할 때 타대학 출신들이 일정비율 이상을 차지하게끔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이 외에도 앞으로 혈연과 학연에 의한 차별을 불식하는 계기가 마련된다면, 이것이 개인이나 사회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됨은 물론 우리나라의 민주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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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는 정을 끊는 게 건강에 좋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인정이 많다. 옛날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도 결혼이나 어른의 생일 같은 큰일을 치를 때면, 이웃에서 자기 일처럼 도와주고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이런 정이 이웃을 하나의 가족처럼 묶어 놓는 역할을 해왔다.



이처럼 '정'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만의 미덕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들의 끈끈한 정이 반드시 바람직한 역할을 하는 것만은 아닌 거 같다.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사건들을 보면 "그 놈의 정 때문에" 빚어진 사건들이 많다. 치정사건은 말할 것도 없고 각종 비리나 부패의 이면에도 사실상 '정'이라는 함수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즉, 뇌물을 주고받는 것도 어찌 보면 정(情)이 개입해서 일어나는 부정(不正)행위라고 할 수 있다. 한쪽으로 떡값이라는 이름으로 정을 듬뿍 주면, 받는 사람은 그 쪽에서 요구하는 것을 안 들어주고는 못 배기게 되어 있는 것이 정(情)과 부정(不正)의 역학적 관계다. 몇 년 전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한보사건도 따지고 보면, 한 기업가와 권력자들의 뇌물을 매개로 얽힌 정이 화근이 됐다고 볼 수 있다. 귀순자 이한영씨가 피습을 당한 사건 역시, 기밀로 분류되는 귀순자의 주소를 경찰관이 심부름센터에 제공해 준 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것은 사사로운 정이 공적인 일에까지 개입되다 보면 결국 사람의 생사를 좌우하는 엄청난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40대 초반의 한 남자는 아내 몰래 딴 여자를 만나면서, '자기 아니면 그녀를 돌봐 줄 사람이 없다'며 인연을 끊을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나중에 아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되어 부부싸움까지 벌이게 됐지만, 그는 이미 깊어진 정 때문에 관계를 청산하지 못하겠다고 버티었다. 결국 정을 뿌리치지 못해서 가정의 불행을 자초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도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않고 결단을 내린 결과, 역사에 우뚝 선 인물로 남은 사람들도 있다. 그 유명한 '김유신 장군의 말' 이야기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청년시절 한 기생에 빠져 공부를 게을리 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호된 꾸지람을 듣고 나서는 공부에만 전념하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런데 어느 날 깜박 졸다 깨보니 자신의 애마가 여태껏의 습관대로 자신을 그 기생 집 앞에 데려다 놓은 게 아닌가. 그는 단칼에 말의 목을 베었다.



물론 너무 비정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만약 그가 이렇게 해서라도 사사로운 정을 끊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역사는 다르게 기술되었을 것이다. 나 역시 주위에서 아는 사람을 통해 사실과 다른 내용의 진단서를 끊어달라는 부탁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단호하게 거절한다. 자칫 정에 연연해서 거절하지 못하고 허위진단서를 끊어주었다가는 철창 신세지기 딱 알맞기 때문이다.



때로는 다소 비정하다 생각되더라고 끊어야 할 정은 끊는 것이 당사자와 사회 양쪽으로 다 도움이 된다. 정은 사람들에게 사는 맛을 느끼게 해주고, 대인관계에서 윤활유의 역할을 하는 등의 순기능이 있는 것도 사실이나, 요즘처럼 이해가 복잡한 시대에는 오히려 역효과 쪽이 클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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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중심리에 휩쓸리지 말라


여러 해 전, 재미의사인 이상구 박사가 채식이 건강에 좋다고 열변을 토하자 갑자기 고기가 안 팔려서 전국의 정육점 주인들이 울상을 짓고 아우성치는 모습이 연출된 적이 있었다. 또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자궁암에 걸린 한 중년 여인의 시한부 인생을 다룬 '겨울안개'라는 TV드라마가 방영되었는데 당시 자궁암 검사를 받으러 온 중년 여인들로 산부인과가 만원사례를 이루었다는 기사가 실렸었다. 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 생긴 일들인데 고국에서 들리는 이러한 황당한(?)소식에 다소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이 해외여행을 하면'나도 한번' 하고 따라나서고, 옆집에서 과외를 시킨다고 하면 "우리라고 못할쏘냐" 하고 과외를 시킨다. 자신의 처지에 맞는지, 정말 자신에게 필요한 것인지 따져 보지도 않고 그저 대세에 휩쓸려 다니는 것이다. 동남아나 유럽 등지에서는 한국인 고객이 소위 '봉' 이다. 한국인들은 한번 지나갔다 하면 물건을 싹 쓸고 다닌다는 것이다. 이태리에서는 한때 유명 의류나 가방가게의 가장 큰 고객이 한국인이었다고 하고, 프랑스에서는 붉은 포도주가 심장에 좋다고 하니까 한국인들이 앞다투어 사가는 바람에 불황에 허덕이던 프랑스 주류업자들의 숨통을 틔어주었다고도 한다. 그뿐인가. 태국에서는 웅담이나 뱀을 파는 음식점 앞이 한국인 여행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중국의 한약방에 줄지어 찾아가는 한약재들을 동네고 오는 것도 한국인들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군인들이 미국에 체류하며 교육을 받는 동안에 있었던 일이다. 한국 군인들이 식사시간이 되어 미군 영내 식당을 찾았는데, 인솔하는 장교가 어떤 음식을 시키니까 수십 명의 군인들이 일제히 그와 똑같은 걸 주문하는 바람에 미처 준비를 못한 주방 당번병들이 아주 혼줄이 났다. 그 다음 날에 '어제와 똑같은 것을 먹겠지'라 생각하고는 전날과 같은 것으로 준비해 놓았는데, 장교가 이번에는 다른 음식을 주문했고, 또 모두들 따라서 그것만 준비하는 바람에 주방 당번병이 놀라 자빠졌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우리 국민성의 단면을 보는 느낌이다.



이렇게 우리 국민은 군중심리에 휩쓸려 웃지 못할 촌극을 연출하면서도 한편으론 언제 그랬냐는 듯 흐지부지 잊어버리기도 잘한다. 나는 이상구 박사 때문에 정육업자들이 완전히 망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산부인과 앞이 계속 문전성시라는 얘기도 듣지 못했다. 또 우리는 스캔들을 일으킨 정치인에 대해 열을 내고 욕을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래서인지 국민의 지탄을 받던 인물이 몇 달, 길어야 몇 해 뒤의 국회위원선거에 버젓이 당선되어 활개를 치는 예를 적잖게 본다.



우리는 너무 쉽게 뜨거워졌다 너무 쉽게 식어 버린다. 이러한 양극단의 성향이 마음 한 곳에 크게 자리잡고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다 보니, 합리주의가 자랄 틈이 없다. 쉽게 휩쓸리고 잘 잊어버리는 민족성,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이것을 무조건 부정하려 하지는 말자. 우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반성하면서, 앞날을 밝힐 새로운 지표를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 세상의 온갖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지키는 법 中에서 -



■ 눈치문화에서 탈피하라


오랫동안 남의 눈치를 보면서 사는 데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은, 남의 생각을 직접 묻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궁금한 것이 있어도 상대방이 귀찮아할까 봐, 무능한 사람으로 찍힐까 봐 묻는 일을 주저하게 된다. 반면에 눈치 빠른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는다. 이것은 아마도 조선시대부터 젊은 사람들이 어른 앞에서, 여자가 남자 앞에서, 며느리가 시어머니 앞에서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것은 금기시하고, 알아서 눈치껏 처신해 온 관습 때문이 아닌가 한다. 솔직하게 묻고 대답하는 대신 자기를 드러내지 않아야 예의 바르고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때로 그것은 생존방식이기도 했다.



이렇게 어림짐작으로 적당히 남의 생각을 때려 맞추는 일은, 지금도 비일비재하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시키는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일 처리를 잘 해주길 바라고, 일을 하는 쪽에서는 적당히 눈치를 봐서 일을 진행하고 매듭짓는다. 그러다 보면 서로의 뜻이 엉뚱하게 전달되어 오해도 사게 되고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일도 적잖게 생긴다.



한번은 내 사무실의 형광등이 나가서 그것을 갈아달라고 전기실에 부탁한 적이 있었다. 얼마 후 올라온 전기실 직원 두 사람이 옆 사무실의 형광등을 갈아 끼우고 있길래, '저 일이 끝나면 내 방 형광등도 갈아주겠지'하고 생각하며 기다렸다. 그러나 그 방의 형광등을 갈고서는 그냥 가버려 황당해했던 경험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실은 내 연락을 받고 올라온 것인데 확인해 보지도 않고 어림짐작으로 '이거겠지' 하고는 엉뚱한 일을 한 것이다.



우리 집에서도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겪은 비슷한 일이 있다. 컴퓨터를 설치하러 집에 사람이 왔었는데, 아내는 그 사람이 '저녁을 안 먹었겠지'라고 생각하고는 물어보지도 않고 식사를 내왔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이미 먹고 왔다며 끝내 사양하는 것이었다. 또 얼마 전에는 정수기를 설치하느라 사람이 와서는 일을 마친 후에 "물을 한 번만 빼고 먹어라"는 말을 하고 돌아갔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빼라는 건지 자세하게 듣지 못해서, 대충 어림짐작으로 물을 빼고는 정수기를 사용했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 본 결과 우리가 한 방법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았다. 제대로 걸러지지 않은 물을 먹었다고 생각하니 찝찔한 기분을 영 떨칠 수가 없었다.



몇 년 전 미국에 머물렀을 때의 일이다. 그 곳에 살면서 아파트를 계약했는데, 그 계약서에는 2년으로 되어 있었다. 그 때는 1년 후에 딴 곳으로 이사 가거나, 귀국을 하게 되더라고 '별 문제 없겠지' 생각하고는 그냥 계약서에 서명을 하였다. 그러던 중 1년이 지나 귀국하게 되어서 집주인을 찾았더니, 주인은 기한 전에 나가니 한 달치 월세를 빼고 주겠다고 했다.



과거에 고위직에 있던 어떤 사람은 참모가 건의하는 말을 그저 듣기만 하고 확실한 대답을 피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일이 끝났을 때 결과가 좋으면 자신의 공으로 돌리고, 잘못되면 부하 탓으로 돌린다는 얘기를 듣고는 웃음이 나왔다. 따지고 보면 공무원들의 복지부동도, 성수대교의 붕괴사고도 눈치로 대충 때려잡은 적당주의가 빚어낸 작품이다. 만약 의사가 눈치로 적당히 처방을 내리고 치료를 하려 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우리는 이처럼 적당히, 그리고 눈치껏 일을 하는 데에 길들여져 있다. 그런데 직접 들어보지 않고 눈치로 일을 처리하려다 보면, 선의로 한 일이 남에게는 물론 자신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 이제는 남의 의도를 눈치로 평가하는 눈치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앞으로는 분명히 말하는 습관을 가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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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분보다는 전체를 보라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려고 덤비다 보면 더 중요한 다른 것을 잃어버리기 쉽다. 일찍이 누군가는, '우리는 살면서 때로는 모든 것의 부분을, 때로는 어떤 것의 전체를 알아야 할 때가 있다'고 갈파했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부분의 합이 전체이다'라는 등식이 반드시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각도에서 접근을 하면 전체적인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을 때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문제가 발생한 부분만 살피고 해결한다고 해서 전체적인 개선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일부에 문제가 있더라도 전체적인 시스템의 변화가 요구된다. 기업에서 경영혁신을 이야기할 때 흔히 언급하는 기업의 구조재조정(restructuring)은 개인과 국가의 경영에도 유용한 것이다.



전체를 보지 않고 부분에만 집착하면, 시간과 돈의 낭비만 초래할 뿐 실질적인 수확을 기대할 여지가 별로 없다. 다시 말해 임기응변이 잦아지면 잔재주는 늘지 모르지만, 근본적인 변화가 없기 때문에 전체적인 발전을 이루기 어렵다. 우리가 연례행사처럼 치르고 있는 홍수나 대형사고들은, 우리 사회가 어떤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 전체적인 틀을 잡아 근본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순간순간의 임기응변에 치중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다.



초보 운전시절을 떠올려 보면 시야가 좁은 것이 얼마나 위험한 태도인가를 알 수 있다. 그 때는 바로 눈앞만 신경 쓰면서 운전하느라 멀리 보지 못해서 잦은 접촉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우리는 대체로 눈에 보이는 부분이 전체인 양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을 평가할 때도 부분밖에 보지 못하고선, 마치 그 사람의 전체를 아는 것처럼 행동하다 낭패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40대 후반의 한 여자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동생들에게는 설거지 한 번 시키는 일이 없으면서 나한테만 일을 떠맡긴다', '동생은 맨날 늦어도 아무 말 않으면서 어쩌다 늦게 들어온 나만 야단친다'면서 어머니를 원망하곤 했었다. 어머니가 계모가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해 보고, 너무 심한 차별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이 결혼을 하고 나니 어머니의 마음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큰딸인 자신이 동생들에게 본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엄하게 키운 어머니의 깊은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모든 것을 단정해 버리려는 습성은 위험하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흠을 실제보다 크게 생각해 비관에 빠지기 쉽고, 자신의 장점에 과대포장하기도 쉽다. 그러다 보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배타성이 강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조언을 달가워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안에서 볼 수 있는 스스로의 모습은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편견에 사로잡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밖에서 우리를 보는 시각이 오히려 객관적이고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IMF 위기도 나라 밖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감지하고 있었다지 않은가? 다시 한번 바깥 세계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처신할 필요성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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