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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GHaaa

시치미떼다



생성시기
고려, 1231년(고종 18년)

유래
몽골의 지배를 받던 고려시대 때 매사냥이 성행했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사냥매를 사육하는 응방이란 직소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 당시 궁궐에서부터 시작된 매사냥은 귀족사회로까지 번져나가 많은 이들이 매사냥을 즐겼다. 이렇게 매사냥 인구가 늘어나다 보니 길들인 사냥매를 도둑맞는 일이 잦아졌다. 이 때문에 서로 자기 매에게 특별한 꼬리표를 달아 표시했는데 그것을 ‘시치미’라고 했다. 이처럼 누구의 소유임을 알려주는 시치미를 떼면 누구의 매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는 데서 ‘시치미를 뗀다’는 말이 나왔다.

따라서 몽골어가 들어온 최초 시기는 앞서 나온 설명대로 1231년(고종 18년)으로 잡는다.

쾌지나 칭칭 나네

생성시기
조선, 1597년경(선조 30년)

유래
우리 민요의 후렴구로 널리 알려져 있는 “쾌지나 칭칭 나네”는 임진왜란이 끝나던 1597년경에 나온 노랫말로서 “쾌재라, 가등청정이 쫓겨 나가네”가 줄어든 말이다. 쾌재라(-)는 ‘좋구나’, ‘시원하구나’란 뜻을 가진 옛말 감탄사이다. 가등청정()이라 불리는 가토 기요마사(1562∼1611년)가 쫓겨 달아나는 모양을 노래에 붙인 것인데, 운율을 맞추자니 자연히 부르기 편하게 줄어든 것이다.



금실이 좋다

- ]


금실이 좋다 [琴瑟-] 


생성시기
중국 주나라, 서기전 479년

유래
금()은 거문고다. 거문고는 원래 중국의 7줄 악기를 고구려의 왕산악이 6줄로 변형해 만든 것이다. 슬() 역시 거문고의 뜻이나, 왕산악의 거문고보다 크기가 크다. 15, 19, 25, 27줄로 된 것 등 여러 종류가 있다. 그러므로 금슬()은 거문고와 큰 거문고 혹은 비파가 조화를 이루어 좋은 소리를 낸다는 뜻이다.

이 어휘는 『시경()』〔서기전 1000∼600년경의 시가를 결집한 중국 최고()의 시가집〕의 「소아()」에 나온다. 바로 두 악기의 조화로운 음률처럼 화합하는 부부 관계를 금슬상화(), 금실지락()이라고 한 것이다. 거문고와 비파를 말할 때는 금슬로 써야 하지만 부부간의 사랑을 말할 때는 금실로 쓴다.

이 어휘는 『시경』 편찬 연도를 알 수 없어 편찬자 공자의 사망 연대인 서기전 479년으로 잡는다.


화냥년

생성시기
조선, 1637년(인조 15년)

유래
병자호란 때 오랑캐에게 끌려갔던 여인들이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을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이라는 뜻의 환향녀()라고 부르던 데서 유래했다. 청나라에 포로로 끌려간 인원은 약 60만 명 정도인데, 이중 50만 명이 여성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이 귀국하자 엄청난 사회 문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적지에서 고생한 이들을 따뜻하게 위로해주기는커녕 그들이 오랑캐들의 성() 노리개 노릇을 하다 왔다고 하여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았을 뿐더러 몸을 더럽힌 계집이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병자호란 이전 임진·정유 양난에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던 여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환향녀들은 가까스로 귀국한 뒤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요구받았는데, 선조와 인조는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특히 인조는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 대신 첩을 두는 것을 허용하여 문제를 해결해보려 했다.

이 무렵 영의정 장유의 며느리도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돌아와 시부모로부터 이혼 청구를 당했다. 처음에는 인조의 허락을 받지 못했지만, 장유가 죽은 후 시부모에게 불손하다는 다른 이유를 내걸어 결국 이혼시켰다고 한다.

환향녀들이 이렇게 사회 문제가 되자 인조는 청나라에서 돌아오는 여성들에게 “홍제원의 냇물(오늘날의 연신내)에서 목욕을 하고 서울로 들어오면 그 죄를 묻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환향녀들의 정조를 거론하는 자는 엄벌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핍박은 그치지 않았다. 특히 환향녀의 남편들은 이혼은 왕명 때문에 하지 않더라도 다른 첩을 두고 죽을 때까지 돌아보지 않는다거나 갖은 핑계를 대서 스스로 나가도록 유도했고, 시집을 가지 않은 처녀들의 경우에도 스스로 자결하거나 문중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쫓겨나는 등, 수많은 환향녀들이 죽을 때까지 수모를 받았다.

화냥년 또한 ‘호로’와 마찬가지로 신계영이 속환사로 청나라에 들어가 포로 6백여 명을 데리고 돌아온 1637년을 생성 시기로 잡는다. 이후로도 많은 포로들이 도망치거나 속전을 내고 귀국했다.



호로새끼

- ]


호로새끼 [胡虜-]


생성시기
조선, 1637년(인조 15년)

유래
호로()는 오랑캐 혹은 오랑캐의 포로라는 뜻이다.

여진족은 중국에 청나라를 세웠는데, 그들은 조선에 침입하여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이때 조선은 청나라에 공녀를 바쳤는데, 이들이 돌아오자 사람들은 환향녀()라고 불렀다. 이 환향녀들 중에서 아이를 낳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렇게 태어난 사람들을 ‘호로새끼’, ‘호로자식’이라고 불렀다 한다.

또한 이 무렵 청나라에 아첨하여 벼슬을 얻은 사람들을 낮추어 ‘호로새끼’ 혹은 ‘호로자식’이라고 했다고도 한다. 전쟁 포로들이 겪은 고통을 나누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학대한 것이다.

종사관 신계영()은 인조 2년 1624년에 일본에서 포로 146명을 귀환시키고, 동부승지가 된 1637년에는 속환사(使)로 청나라에 들어가 포로 6백여 명을 데리고 돌아왔다. 따라서 이해를 생성 시기로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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