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697
물긷는 사람/이기철 (낭송 남기선)
새벽에 물 긷는 사람은
오늘 하루 빛나는 삶을 예비하는 사람이다
내를 건너는 바람소리 포플러 잎에 시릴 때
아미까지 내려온 머리카락 손으로 걷어 올리며
새벽에 물 긷는 사람은
땅의 더운 피를 길어 제 삶의 정수리에
퍼붓는 사람이다
풀잎들의 귀가 아직 우레를 예감하지 못할 때
산의 더운 혈맥에서 솟아나는
새벽에 물 긷는 사람은
흰 살이 눈부신 아침 쟁반에 제 하루를 담아
저녁의 편안함을 마련하는 사람이다
나무들도 아직 이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이른 새벽에
옷섶이 터질 듯 부푼 가슴을 여미며
새벽에 물 긷는 사람은
목화송이 같은 아이들과 들판 같은 남편의
하루를 예비하는 사람이다
물 긷는 사람이여,그대 영혼에 물을 길어
마른 나뭇잎처럼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은
나의 가슴에 부어 다오
나는 소낙비를 맞고
가시 끝에 꽃을 다는 아카시아처럼
그대 영혼에 물을 받고 피어나는
한 송이 꽃이 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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