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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
2014.09.28 18:44
실존인물 희대의 살인마 엘리자베스 바토리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조회 수 10553
음악 찾다가 가입했는데 여기 정말 좋네요^^
저도 열심히 참여해서 등업하고 무제한 MP3받고싶습니다
영화도 많고 최신영화 몇편보다가
저도 예전에 봤던 영화 한편 소개할까해요
(엘리자베스 바토리)영화 바토리라는 영화인데
http://naver3.com/379202
네이버3에도 있더라고요
그런데 왜 이영화를 소개하냐면
이영화 주인공이 실존인물
그것도 아름다운 미녀이지만 희대의 살인마를 영화화해서 그래요
밑의 이야기 보심 궁금하기도 하고 누구인지 알고싶으실것같기도하고요
밑에 영화도 있스니 관심있스시면 밑의 영화 보시고 즐거운 주말 저녁되셨슴합니다
http://naver3.com/379202
그리고운영자님 좋은 사이트 앞으로 나날히 발전하시길 바랍니다^^
엘리자베스 바토리 (Elizabeth Bathory)
Elizabeth Bathory는 4살이나 5살 때 경 극히 심한 발작을 일으켰었다고 한다. 일종의 간질 발작이거나 기타 다른 신경 계통 질환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훗날 그녀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 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 바토리 가는 막대한 재산과 영지를 잃지 않기 위해 근친 결혼을 많이 했는데 때문에 집안에 유명인을 배출한 만큼 미친 사람이나 정신이상자가 많았다. 어쩌면 이 여인도 운명에 진 불행한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15살 때 Bathory는 Ferenc Nadasdy 백작과 결혼을 하는데, 백작은 당시 26살이었고, 남편이 아내의 성을 따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부부는 Csejthe (체터) 성에 살았으며, 백작이 워낙 전쟁을 좋아했던 관계로 거의 떨어져 지냈다. 그랬기 때문인지 남편 Ferenc 백작은 헝가리의 검은 영웅 (Black Hero of Hungary)이란 별명을 얻었다. 어쨋거나, 남편이 전쟁터에 나가있는 동안 바토리는 백모가 가르쳐준 채찍 다루는 기술을 연마하고 Thorko라는 하인이 Bathory에게 신비주의, 악마숭배 등등의 것을 전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군의 아내로 엄격하게 처신하라는 시어머니의 강압과 압제로 감옥이나 다름없는 규제속에서 그녀는 점차 말이 없고, 냉담하고, 음습한 여인으로 변모했다. 여기에 더하여 "바토리家"의 유전병인 간질(로 추정되는 발작 증세)도 그녀를 정신적으로 돌아버리게 하는데 크게 일조하는데 바토리家는 근친상간에 의한 유전병으로 유명해 숙부는 간질로 죽었고, 숙모는 황음에 빠져 남편 세명을 먼저 보낸 가문이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바토리가 살았던 체이테 성
Bathory는 언젠가 낯선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했다가 한참 후에나 성으로 돌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남편인 백작은 금방 이를 용서했다고 한다. 거의 남편과 같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도 갖지 못 했고, 결혼한지 10년이 지난 1585년에 딸 Anna를 낳았고, 다음 9년 동안엔 딸 Ursala와 Katherina를, 그리고 1598년에야 비로소 외아들 Paul을 낳았는데 바로 이 기나긴 기간 동안 Bathory는 유모인 Ilona Joo, 집사 Janos Ujvary, 하인 Thorko, 숲에 사는 마녀 Darvula와 또 다른 마녀 Dorottya Szentes 등과 함께 수시로 젊은 하녀들을 고문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것이 진짜 끔찍한 행위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남편의 죽음이었던 것 같다.
남편 Ferenc 백작은 1604년 51세의 나이로 전장에서 전사했고, 이것이 큰 충격이었던지 Bathory 는 끔찍한 괴물로 돌변해 버린다.
자기에게 너무나 강압적이었던 시어머니를 성에서 쫓아내면서 부터, 본격적으로 악마숭배에 빠져들어 처음엔 말이나 기타 동물들을 제물로 사용했지만, 나중엔 인간 제물을 바쳤다고 하는데,끔찍한 고문과 살인의 진정한 목적은 젊음을 되찾는 것이었다. 마흔이 넘으면서 곱고 아름다운 얼굴과 피부가 삭아들어가고 있음을 개탄한 Bathory는 젊은 처녀의 피로 목욕을 하여 예전의 미모를 되찾으려 했다.
어느날 머리를 빗겨주던 하녀가 실수를 하여 머리가 심하게 땡겨지자, Bathory는 하녀의 따귀를 때렸고, 좀 심하게 때렸는지 하녀의 뺨이 손톱에 긁혀서 피가 났다. 그런데 그 피가 Bathoty의 손 에 떨어졌고, Bathoty는 순간적으로 손의 피부가 탱탱하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젊은 처녀의 피가 젊음을 되찾을 수 있는 "비밀"이라 생각한 그녀는 그 이후 수시로 처녀를 잡아다 죽여서, 그 피로 목욕을 했다.
발목을 밧줄로 묶어서 거꾸로 매단 다음 목을 따서 그 피를 받아 목욕을 했으며, 가끔 진짜 예쁜 처녀 아이가 잡혀오면 "특별메뉴로 "로 피를 마시기도 했는데, 처음엔 잔에 받아마셨지만, 마지막엔 직접 목을 물어뜯어 생피를 그냥 받아마셨다고도 전한다.
그녀의 잔혹한 성품을 말해주는 것 중에 배나무 사건이 있었다. 그녀의 영지에 사는 농부의 딸 하나가 배가 고픈 나머지 배를 하나 훔쳐먹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토리에게 아첨을 하는 하인들이 이 소녀를 밀고했다.바토리는 소녀를 잡아다가 고문하기로 했다. 그러나 소녀는 고문을 하기도 전에 배를 따먹은 일을 자백하고 말았다.
바토리는 소녀를 용서하기가 싫었다. 그러나 많은 농부들이 지켜보고 있어서 관대한 처분을 내린다면서 배나무에 하룻동안 묶어놓게 했다. 그 대신 그녀는 하녀에게 시켜 이 소녀의 전신에 꿀을 발라놓도록 했다.꿀 냄새를 맡은 벌들이 사방에서 날아오기 시작했다. 소녀는 처절한 비명을 질렀으나 소용이 없었다.
수천, 수만 마리의 벌들에게 쏘인 소녀는 온몸이 퉁퉁 부어서 죽었다. 그래도 벌들은 그치지 않고 날아와 그녀의 몸에 달라붙은 꿀을 먹으려고 아우성이었다. 그녀가 죽자 이번에는 개미와 구더기가 달려들어 그녀의 시체를 파먹었다.농부들은 에르체베트 바토리의 잔인한 처서에 진저리를 쳤다. 그러나 그녀는 권력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농부들은 감히 불평을 말할 수도 없었다.
바토리가 즐겨 사용한 고문 도구는
철의 처녀
독일의 유명한 기술자에게 특별 주문 제작한 것으로 실제 사람처럼 아주 정교하게 만든 철제 인형.
등신대의 벌거벗은 인형으로 피부는 사람과 똑같은 색이고, 기계장치로 눈과 입도 열리고 머리카락도 있었다. 여자를 벌거벗겨 인형 앞에 놓으면 톱니바퀴가 움직여 인형은 두 팔을 올려 여자를 감싸안는다. 다음에 인형의 가슴이 열리는데 그 안은 비어있다.
좌우로 펼처진 문에 다섯 개의 칼날이 있다. 인형의 몸안에 갇힌 여자는 필사적이지만 칼로 전신을 찔려 뼈가 부서지고 처녀의 온몸을 사정없이 찌르면서 피를 뽑아낸다.
그 피는 인형안의 홈을 따라 흘러 바토리의 욕조로 쏟아지게 되어있다.
철의 처녀
철의 새장
철창으로 만든 새장 같은 곳에 처녀를 가둬 놓고 도르래로 천정까지 들어 올린 뒤 버튼을 누르면 철장안에서 날이 선 칼날들이 튀어 나와 처녀의 몸을 꽉 조이며 난자한다. 새장 아래에 있던 "바토리"는 그 쏟아지는 피를 맞으며 샤워를 했다는 바토리의 잔혹한 성품을 말해주는 예로는,
금화를 훔치다 들키면 ----불에 달군 금화를 손바닥에 올려놓는다.
"바토리"의 옷을 잘못 다리면----시뻘건 인두로 얼굴을 지져 놓는다.
어쩌다 수다라도 떨면----굵은 바늘로 입을 꿰매 놓는다.
과일 훔치다 들키면----온몸에 꿀 발라 불개미에게 뜯어 먹게 한다.(배나무 사건..)
심심하면----처녀 알몸을 꽁꽁 묶은 뒤 얼음 위에 굴린다
1600년 부터 1610년 까지 Bathory는 연속적으로 젊은 처녀를 살해하여 모종의 악마적 종교 의식을 거친 후 그들의 피로 목욕을 했다고 하는데, 죽은 이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는지, 시체를 근처 교회로 보내 신부로 하여금 장례를 치르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원인모를 죽음"을 당한 처녀의 수가 너무나 많아지자 그 신부는 더 이상 장례를 치뤄주지 않았고, 소문이 날까 두려운 나머지 Bathory는 신부를 불러다가 누구에게도 비밀을 발설하지 못 하도록 친히 협박을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처녀의 피는 처음 만큼 효과가 없는 것 처럼 보였다. 이에 측근들은 천한 농촌 처녀가 아니라 귀족 처녀의 피라야 더 효과가 있다고 부추기고 이에 바토리는 성내에 귀족적 소양을 가르치는 "귀족 여학교"를 설립해 한번에 25명 씩 학생을 받았다. 물론 이들도 농촌 처녀들 처럼 끔찍하게 살해당하고 피를 빨렸는데 이때쯤부터 바토리는 조심성을 잃었던 것 같다. 시체는 들판이나 헛간, 성 바로 옆 창가, 근처 채소밭 등에 아무렇게나 묻고 시체 네 구를 성벽 밑으로 그냥 떨어뜨린 적도 있다하니 당연히 꼬리를 잡히기 시작해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고 그러다 희생자 하나가 극적으로 탈출해 정부 당국에 신고했기 때문에, Matya 왕은 Bathory의 사촌이며 그 지방 영주인 Gyorgy Thurzo 백작 에게 명하여 진상을 조사하라고 명령했다.
1610년 12월 30일 성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간 조사팀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온몸에 피가 모두 빠져버린 젊은 여자 시체가 있었고, 꼬챙이에 찔린 채 아직 살아있는 여자도 몇 명 있었으며, 지하실에 내려가보니 온갖 종류의 고문으로 만친창이가 된 젊은 처녀들이 수두룩했다. 곳곳에서 피가 말라붙은 칼, 송곳 등의 고문 도구들이 발견되고 게다가 성 주변을 파보니 여자 시체가 50여구나 나왔다.
철창으로 만든 새장 같은 곳에 처녀를 가둬 놓고 도르래로 천정까지 들어 올린 뒤 버튼을 누르면 철장안에서 날이 선 칼날들이 튀어 나와 처녀의 몸을 꽉 조이며 난자한다. 새장 아래에 있던 "바토리"는 그 쏟아지는 피를 맞으며 샤워를 했다는 바토리의 잔혹한 성품을 말해주는 예로는,
금화를 훔치다 들키면 ----불에 달군 금화를 손바닥에 올려놓는다.
"바토리"의 옷을 잘못 다리면----시뻘건 인두로 얼굴을 지져 놓는다.
어쩌다 수다라도 떨면----굵은 바늘로 입을 꿰매 놓는다.
과일 훔치다 들키면----온몸에 꿀 발라 불개미에게 뜯어 먹게 한다.(배나무 사건..)
심심하면----처녀 알몸을 꽁꽁 묶은 뒤 얼음 위에 굴린다
1600년 부터 1610년 까지 Bathory는 연속적으로 젊은 처녀를 살해하여 모종의 악마적 종교 의식을 거친 후 그들의 피로 목욕을 했다고 하는데, 죽은 이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는지, 시체를 근처 교회로 보내 신부로 하여금 장례를 치르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원인모를 죽음"을 당한 처녀의 수가 너무나 많아지자 그 신부는 더 이상 장례를 치뤄주지 않았고, 소문이 날까 두려운 나머지 Bathory는 신부를 불러다가 누구에게도 비밀을 발설하지 못 하도록 친히 협박을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처녀의 피는 처음 만큼 효과가 없는 것 처럼 보였다. 이에 측근들은 천한 농촌 처녀가 아니라 귀족 처녀의 피라야 더 효과가 있다고 부추기고 이에 바토리는 성내에 귀족적 소양을 가르치는 "귀족 여학교"를 설립해 한번에 25명 씩 학생을 받았다. 물론 이들도 농촌 처녀들 처럼 끔찍하게 살해당하고 피를 빨렸는데 이때쯤부터 바토리는 조심성을 잃었던 것 같다. 시체는 들판이나 헛간, 성 바로 옆 창가, 근처 채소밭 등에 아무렇게나 묻고 시체 네 구를 성벽 밑으로 그냥 떨어뜨린 적도 있다하니 당연히 꼬리를 잡히기 시작해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고 그러다 희생자 하나가 극적으로 탈출해 정부 당국에 신고했기 때문에, Matya 왕은 Bathory의 사촌이며 그 지방 영주인 Gyorgy Thurzo 백작 에게 명하여 진상을 조사하라고 명령했다.
1610년 12월 30일 성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간 조사팀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온몸에 피가 모두 빠져버린 젊은 여자 시체가 있었고, 꼬챙이에 찔린 채 아직 살아있는 여자도 몇 명 있었으며, 지하실에 내려가보니 온갖 종류의 고문으로 만친창이가 된 젊은 처녀들이 수두룩했다. 곳곳에서 피가 말라붙은 칼, 송곳 등의 고문 도구들이 발견되고 게다가 성 주변을 파보니 여자 시체가 50여구나 나왔다.
바토리 저택
재판은 1611년에 열렸지만, 정작 Bathory는 재판에 참석하지도 않았으며, 유무죄에 관해서도 일체 언급을 하지 않았다. 재판에서 집사인 Ujvary는 처녀 37명을 살해했으며, 그중 여섯은 일자리를 찾아 성에 들어왔던 여자였다고 자백했는데, 대개는 몇주일 심지어는 몇 달 동안이나 고문을 당하다가 죽었다고 한다.
자백은 그러했지만, 실은 총 612명을 죽였다고 한다. Bathory는 모든 것을 일기에 써서 기록에 남겼고, 숫자는 이를 근거로 한 것이다.
허공에 매달아놓은 철창에 처녀를 집어넣고 쇠꼬챙이로 찔러 피를 흘리게 하면, Bathory가 그 찰창 밑에 서서 밑으로 흐르는 피로 "샤워"를 했다. 고문은 대개 수하들이 담당했지만, 가끔은 백작 부인이 직접 처녀들을 고문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 끔찍한 사건에 연루된 사람은 모두 목이 잘린 후 화형을 당했고, 수뇌급 두명은 손가락을 잘린 후 산채로 불에 타죽었지만, Bathory만은 오로지 귀족이라는 이유 하나로 목숨을 건졌다. (법적으로도 귀족은 처형할 수 없다고 한다)
Bathory는 그대신 높은 탑 꼭대기에 감금되었는데, 음식을 넣어주는 작은 구멍 이외에는 창문 하나 없는 어두운 방이었다고 한다.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로 연명하면서도 그녀는 참회의 말 한 마디 없었다.감금 4년만인 1614년 8월 말, 54세의 나이로 Elizabeth Bathory는 어두운 감방에서 세상을 떠난다. 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그녀의 시신은 그곳에 묻힐 수 없게 되었고, 그녀가 Ecsed 혈통의 마지막인 것을 감안하여 헝가리 동북부 지역의 Ecsed에 묻혔다. Bathory에 관한 이야기는 영화화 되기도 했는데, Peter Sasdy가 감독했고, 소위 B급 영화의 스타라고 정평을 받고있는 Ingrid Pitt이 주연했는데, 제목은 Countess Dracula (드라큘라 백작부인)이며, 우리나라엔 소개된 바 없다.
자백은 그러했지만, 실은 총 612명을 죽였다고 한다. Bathory는 모든 것을 일기에 써서 기록에 남겼고, 숫자는 이를 근거로 한 것이다.
허공에 매달아놓은 철창에 처녀를 집어넣고 쇠꼬챙이로 찔러 피를 흘리게 하면, Bathory가 그 찰창 밑에 서서 밑으로 흐르는 피로 "샤워"를 했다. 고문은 대개 수하들이 담당했지만, 가끔은 백작 부인이 직접 처녀들을 고문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 끔찍한 사건에 연루된 사람은 모두 목이 잘린 후 화형을 당했고, 수뇌급 두명은 손가락을 잘린 후 산채로 불에 타죽었지만, Bathory만은 오로지 귀족이라는 이유 하나로 목숨을 건졌다. (법적으로도 귀족은 처형할 수 없다고 한다)
Bathory는 그대신 높은 탑 꼭대기에 감금되었는데, 음식을 넣어주는 작은 구멍 이외에는 창문 하나 없는 어두운 방이었다고 한다.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로 연명하면서도 그녀는 참회의 말 한 마디 없었다.감금 4년만인 1614년 8월 말, 54세의 나이로 Elizabeth Bathory는 어두운 감방에서 세상을 떠난다. 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그녀의 시신은 그곳에 묻힐 수 없게 되었고, 그녀가 Ecsed 혈통의 마지막인 것을 감안하여 헝가리 동북부 지역의 Ecsed에 묻혔다. Bathory에 관한 이야기는 영화화 되기도 했는데, Peter Sasdy가 감독했고, 소위 B급 영화의 스타라고 정평을 받고있는 Ingrid Pitt이 주연했는데, 제목은 Countess Dracula (드라큘라 백작부인)이며, 우리나라엔 소개된 바 없다.
그런데 Bathory에 관한 재미있는 사실은...
첫째, Elizabeth Bathory는 엄청나게 미인이었으며, 천사처럼 선해보이는 용모였고, 특히 피부가 거의 환상에 가까울 정도로 우유빛이었다고 전한다.
들째, Bathory는 제대로 교육을 받은 여자였을 뿐 아니라 남자를 능가할 정도로 엄청나게 똑똑했다고 하는데, 당시의 군주들이 거의 글을 읽지 못했던 반면, Bathory는 헝가리어는 물론 라틴어, 로마어에도 능통했으며 지적 수준이 상당한 경지에 올라있었다고 전한다.
셋째, 그녀가 죽은 후에도 100년 이상 Bathory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이 금지되어있었을 만큼, 악명이 하늘을 찔렀다.
넷째, Bram Stoker의 "드라큘라"는 루마니아 군주 Vlad Dracula를 모델로 한 것이 아니라, 실은 바로 이 여자 Elizabeth Bathory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여럿 있다.
다섯째, Elizabeth Bathory 백작 부인의 재판 기록은 아직도 헝가리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여섯째, 그 사건이 일어났던 지역에서는 아직도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금기시 되어있으며, 주로 슬로바키아 출신 하녀들을 죽였기 때문에 이름 대신 "The Hungarian Whore"라는 별명으로 불린다고 하는데 이 지역의 인종 분포가 주로 헝가리 인과 슬라브 적이어서 직역하자면 "헝가리 갈보년"쯤 된다고 한다.
이어서 퍼온글이빈다
Erzsebet Bathory(1560~1614)
루마니아 명문가 출신의 Erzsebet Bathory는 우리 나라에선 '엘리자베스 바토리'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에르제베트 바토리 or 에르체베트 바토리'라고 발음해야 되지 않나 싶다. 유럽 쪽에는 '비교적 인지도가 높은 영어, 독어, 불어' 외에도 별의 별 언어들이 다 있다. 이 '에르제베트 바토리' 이름도 헝가리어 'Báthory Erzsébet' 외에 여러 언어로 표기 가능한데, 발음이 다 다른 것 같다.
어쨌든 한국에서 '엘리자베스 바토리'로 알려진 이 여인네는 루마니아(트란실바니아)나 폴란드의 왕을 많이 배출한 명문가 출신의 '실존 인물'로, 각종 문화 컨텐츠에 나오는 '흡혈귀 or 드라큘라' 이야기의 모티브가 된 여성이다. 희대의 잔혹한 마녀였던 그녀에 대해 짧게 요약하자면, 그걸 마시면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엉뚱한 믿음으로 '수백 명의 처녀들을 죽인 뒤 그 피를 마신 엽기적인 행각을 벌인 인물'이다.(실제로 그랬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알려져 있다.)
엘리자베스 바토리(Erzsebet Bathory)는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합스부르크 왕가'와 맞먹을 정도로 유서 깊은 '루마니아 바토리가' 태생의 왕녀였는데, 1602년 남편을 잃고 미망인이 된 그녀는 이후 자신의 소유로 되어 있는 슬로바키아(헝가리, 체코, 오스트리아, 폴란드 인접 지역)의 체이테 성으로 거처를 옮겨 지냈다. 엘제벳 바토리는 '미모와 젊음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수시로 젊은 처자들을 납치해 잔인하게 고문하거나 죽인 후, 그 피로 목욕을 했다고 한다.
'젊은 처녀의 피'로 목욕을 하면 자신도 젊어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바토리는 농가의 처녀들을 성의 하녀로 사들였고, 한 번 체이테 성으로 들어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흉흉한 소문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자들은 돈을 받고 자신의 딸을 그 성 안으로 들여보내기도 했다.
'엘리자베스(에르제베트) 바토리'가 살았던 성
엘리자베스 바토리는 체이테 성 지하에 갇힌 젊은 처녀들을 자신이 직접 칼로 베거나 그녀들이 (입에 담기 힘든) 각종 잔인한 '고문 기구'로 끔찍한 고통을 감당하다가 죽게 만든 뒤, 그 피로 맛사지 or 목욕을 즐긴 걸로 알려져 있다. 처음엔 젊음을 유지하겠다는 목적으로 그리 한 것이지만, 점점 '붉은 피를 흘리며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다가 죽어가는 여성'을 바라보는 것에서 희열을 느꼈다 한다. 나중엔 피가 부족해서 귀족 딸들에게까지 손을 뻗치다가 꼬투리가 잡히는 바람에 뽀록났다는 설이 있다.
그 일로 재판을 받은 엘리자베스(에르제베트) 바토리는 신분이 높다는 이유로 사형 대신 '종신 금고형'을 선고 받았고, 그녀의 하인들은 참혹하게 고문을 당하다가 화형에 처해졌다. '창문도 없는 컴컴한 탑 꼭대기'에 갇혀서 조그마한 구멍으로 전해지는 소량의 물과 음식만을 먹고 지내던 그녀는 3년 뒤 미모도 사라지고 삐쩍 마른 흉한 몰골로 55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바토리가 즐겨 사용했다고 하는 고문 기구
이 엘리자베스 바토리(Erzsebet Bathory)가 나이 어린 처녀들을 상대로 저질렀다고 하는 갖가지 '잔혹하고 엽기적인 행각'들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것이 실제로 그녀가 저지른 일이라기 보다는 특정 세력에 의한 '모함'이라는 설도 있어서 아주 흥미롭다.
에르제베트 바토리는 선해 보이는 인상에, 피부가 환상적으로 뽀얀 우윳빛깔 미녀였다. 게다가, 당시의 군주들을 뛰어넘을 정도로 엄청난 지식과 외국어 능력을 갖춘 여성이었다고 한다.
'종교 개혁'이 일어나는 등 전반적인 면에서 혼란기였던 16세기 유럽은 '마녀 사냥'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는데, 당시의 권력자들은 대중의 관심을 돌릴 대상이 필요했다.
마침 헝가리 왕도 위협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던 미망인 '에르제베트 바토리'가 예쁘고 똑똑하기까지 하여, 그 영향력이 커질까 두려워 하던 남성 권력자들이 그녀에게 누명을 씌워서 제거하고 그 막대한 재산을 차지했다는.. 엘리자베트(에르제베트) 바토리에 관련한 '음모론'이 있다.
실제로.. 당시의 재판 과정이 좀 허술했고, 진짜 증인이 되어줄 만한 그 성 안의 하인들도 죄다 사형 당하는 등 이런 저런 의혹이 있었다 한다. 그녀가 엽기적인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로 제시된 '지하실에 갇히거나 땅에 묻힌 처녀들 시체'도 조작된 증거로, 교회와 군주 & 남성 귀족들이 에르제베트의 엄청난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그녀를 모함했다는 것이다.
진짜 엘리자베스(에르제베트) 바토리가 수백 명 처녀를 죽여서 말도 안되는 '피의 목욕'을 했는지, 아님 '마녀 사냥'이 유행하던 당시에 그녀의 권력이 커질까 두려워하던 숙적들이 자기들 이익을 위해 바토리를 '천하의 악녀'로 만든 것인지.. 거짓 없는 '진실'은 저 너머에 있는 게 아닐까 한다..
width="700" height="500" 은 점. 풍만한 가슴을 그대로 관통한듯 등에까지 뚫린 점은 쓰러진 모든 시녀들의 공통점이었다. "오오, 형님께서 펜텀패스를 벌써 7클래스까지 익히셨다니 이거 나도 분발해야겠군." "꺄악-!"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또 다른 시녀. 그리고 좌우로 머리를 흔들며 혀를 차는 아이의 모습은 여전히 같은 얼굴이었으나 느껴지는 분위기는 음울하였다. 그것을 눈치챘는지 급격히 몸을 떠는 시녀를 향해 조용히 말하는 아이. "쯧쯧, 뭐하러 시간에 딱딱맞춰서 오니.. 한 10분만 늦지." 그것과 함께 중풍걸린듯한 경련을 뒤로한채 쓰러진 모든이들과 함께 자신의 몸을 뉘이는 시녀. 이 모든것은 겨우 5분은 흘렀을까할 아차한 시간에 일어난 일. 궁극적으로 말하자면 무수한 피가 난무해도 이상하지 않는 이 어마어마한 숫자의 시체들의 피는 모조리 증발하였다. "눈물을 삼키지 마라. 언젠가 나올 눈물이니라." "눈물이 마를때까지 흘리지 마라. 언젠가 흘릴 눈물이니라." "눈물을 흘리지 마라. 언젠가 보일 눈물이니라." "레뷰트 폰 세룬." 레뷰트 폰 세룬. 현대륙의 3강인 인간들중에서도 손꼽히는 제국인 세룬제국의 2황자이자, 소면대공(笑面大功)(smile erzherzog)이라 통칭한다. 나이를 먹지 않으면서도 다른이들이 볼때 언제나 웃고 있는다 하여서 붙여진 칭호이자 직위이다. 그리고 한가지 특이사항이 있다면 그는 언제나 자신의 자작시를 읊는다고 한다. 그래서 붙여지는 또다른 칭호가 눈물의 시인 (poet of t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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