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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에서 가장 번화한 곳은 이즈하라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대마도는 한자를 한국식 그대로 읽었을 경우이고, 일본에서는 쓰시마시(Tsushima-shi)라고 부른다. 쓰시마는 섬 전체가 시(市)이기 때문에 이즈하라는 읍인데 그냥 작은 마을이라고 보면 된다.
이미 첫날 대마도 구석구석을 살펴보면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조용한 동네라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에 이즈하라 자체에 대한 호기심은 없었다. 아무리 대마도에서 큰 마을이라고 해도 일본의 어느 도심지를 상상하기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즈하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7층인데 그게 우리가 묵게 될 대마호텔이라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이즈하라에 도착한 후 곧장 호텔로 들어가 체크인을 했다. 이즈하라에서 가장 높은 7층짜리 건물이지만 그 규모는 아담한 편이었다. 대마도에서 아주 세련된 호텔은 기대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일본에서 묵은 비즈니스급 호텔과 아주 큰 차이를 느끼진 않았다.
저녁을 먹기 전, 잠깐의 시간을 이용해 이즈하라 골목길 탐방에 나섰다. 몇 분만에 한 바퀴를 돌아볼 정도로 아주 작은 동네였지만 운하를 따라 길이 형성되어 있어 제법 운치가 있었다. 사실상 이곳이 이즈하라의 중심이자 대마도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확실히 대마호텔 앞이 번화한 골목길이라는고 말하는 것처럼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편의점도 보였다.
도시 위주로 여행했던 사람이라면 이런 소박한 거리를 보고 막막한 생각이 가장 먼저 들 것이다. 그래도 중심지인데 상점도 몇 개 보이지 않고, 거리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다. 한적함, 조용함, 시골스러움, 소박함, 이런 모든 것을 다 품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나라도 혼자 여행을 왔다면 너무 심심해서 고독함을 씹다 단물이 빠져 지칠지도 모를 곳이었다.
그렇다고 대마도가 실망스럽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제 막 이즈하라에 도착한 내가 평가를 한다는 것은 여행의 편견을 심어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난 시골스러움이 싫다고 한 적은 없다. 나름 천성이 배낭여행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먹고, 보는 여행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그냥 새로운 장소를 온몸으로 느끼고 싶을 뿐이다.
대마도의 여행자 대부분은 한국 사람이라고 한다. 일본 본토에서 찾아오기는 너무 멀기도 하고, 이런 작은 동네까지 여행을 오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하긴 대마도가 속해 있는 나가사키현보다 부산이 더 가까우니 이는 당연해 보인다. 이즈하라에 있는 대부분의 상점에는 이렇게 한글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이곳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낮이라서 그런가 싶었지만 밤이되도 닫혀 있는 것을 보면 아예 운영을 하지 않는 이자카야인가 보다. 얼핏 많지도 않은 대마도의 술집이나 식당이 손님이 없어 닫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가 기억났다.
어렸을 때 누비던 동네 골목이 떠오를 만큼 소박해 보이는 길이 나왔다. 내가 여행을 했던 일본의 작은 마을과 비교해 볼 때 에쁜 골목이라고 보기엔 어렵지만 그냥 가볍게 산책하는 기분으로 돌아다니면 무척 좋을 것 같다. 사실 이때는 잘 몰랐는데 이즈하라 골목이나 항구쪽을 걸어보면 생각보다 괜찮은 장소가 많았다.
대마호텔을 중심으로 한 바퀴를 걷다가 중심부의 큰 도로로 나오니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지나다니는 차량이 별로 없는 이곳에서 버스는 하루에 몇 대도 지나다니지 않을 것 같았다.
이즈하라를 포함해서 대마도에서 가장 큰 쇼핑몰 티아라가 보였다. 티아라 1층에는 레드 캐비지라는 큰 슈퍼마켓과 모스버거가 있고, 2층에는 100엔샵이 있어 구경하기 딱 좋다. 단체로 온 관광객에게는 아마 이곳보다 더 재미있는 장소는 없을 것이다. 적당히 쇼핑도 즐기고, 모스버거에서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어 우리들이 가장 즐겨 찾던 곳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사람들이 왜 다들 모스버거에 열광하나 싶어 가까이 가봤는데 그새를 못 참고 벌써 햄버거를 드시는 분들을 발견했다. 아직까지 사람들과 친해지지 않았지만 감자칩이라도 좀 뺏어먹을 생각으로 들어갔다. 저녁을 먹기 전인데도 배고프다며 햄버거를 먹는 사람도 있었고,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역시 여행을 하는 도중에는 이렇게 느긋해야 좋은 법이다. 우리는 과자를 깔아 놓고 수다를 떨다 보니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우리가 저녁 먹으러 찾아간 곳은 뷰호텔 미즈키였다. 여기는 택시를 타고 갔는데 여기서 특이했던 점은 대마도에는 전부 콜택시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대중교통이 전무하다시피 한 대마도에서 현지인들은 차가 없으면 움직이기 불가능하고, 여행자들도 패키지이거나 렌터카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한가지 반가운 사실은 대마도 택시는 요금이 저렴한 편인데 뷰호텔 미즈키까지 500엔이었다. 비록 미터기를 켜지 않고, 5분정도 달리긴 했지만 말이다.
뷰호텔 한켠에는 큰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저녁을 먹었다. 처음에는 우리만 있었지만 나중에 다른 한국인 단체 여행객들도 보여서 일본같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주변 환경만 봐도 그런데 심지어 저녁 메뉴가 삼겹살이었다. 이럴수가!
일반적인 삽겹살이라고 보기엔 메뉴가 조금 더 풍성했다. 버섯, 조개, 새우, 만두, 오징어 등과 같이 구워먹는 식이었다.
음식 사진을 찍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진을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면 한국 어디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그래도 한국이나 일본이나 다를 게 없네 했지만 다들 배고팠는지 정신없이 먹어댔다. 일본에 왔으니 기념이라도 하는 것처럼 데워진 사케를 마시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가 굽고 있는 테이블은 고기가 별로 맛이 없어 보이는데 옆에는 왜 이렇게 풍성해 보이고, 색깔도 예쁜지 모르겠다. 우리는 배불리 저녁을 먹고, 소화도 시킬겸 호텔이 있는 곳까지 천천히 내려갔다. 뷰호텔이 언덕에 있었기 때문에 돌아갈 때는 산책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내려갈 수 있었다.
아직 쌀쌀한 바람이 불었지만 다시 이즈하라 골목길을 탐방하는 기분으로 걸을 수 있어 무척 좋았다. 오래된 가택이 보이는가 하면 아주 오래된 돌담길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돌담길을 보자 큐슈지역을 여행했을 때 잠시 들렀던 마을, 시마바라가 떠올랐다. 생각치도 못하게 마음에 드는 길을 발견했다.
이즈하라의 밤이 찾아왔다고 해서 낮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군데군데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처럼 불이 켜졌을 뿐 거리는 여전히 조용했다. 이 조용한 동네에서 무얼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할까? 재미있었던 사실은 생각보다 심심할 틈이 없었다는 점이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칠지도 모르지만 대마도에서만큼은 다르다. 특히 이즈하라의 작은 마을 규모를 생각할 때 티아라는 가장 큰 볼거리이자 쇼핑 장소인 최대 관광지라고 볼 수 있었다. 티아라는 1층에 모스 버거라는 패스트푸드점과 꼬치를 파는 이자카야가 있고, 대마도에서 가장 큰 슈퍼마켓 레드 캐비지가 있다.
생각해 보니 나도 일본의 슈퍼마켓을 제대로 구경한 적이 없어서 그런지 무척 재미있게 돌아다녔던 것 같다. 심지어 평소에는 쇼핑도 즐겨 하지 않는데 여기에서는 주섬주섬 담기도 했다. 비록 가방이 작았기 때문에 많이 살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곧장 슈퍼마켓 탐방에 나섰다. 한국 사람이 많이 오는 대마도라서 그런지 입구에서부터 ‘어서 오십시오’라는 한글이 보였다. 이 정도면 대마도 내에서 한국인이 돌아다니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내부는 우리의 어느 마트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여기에도 군데군데 한글로 써있는 안내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게 좀 놀랐다.
일본의 라면은 한국에 비해 대부분 싱거운 맛이기는 한데 그래도 어떤 맛일지 궁금해 작은 것 4개 골라봤다. 나중에 한국에 와서 먹어보니 하나는 새우탕맛이 났고, 하나는 된장맛이라 내 선택이 탁월했던 것 같다.
그 옆에는 가격이 저렴한 게 딱 봐도 일본의 불량식품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제일 궁금했던 것이 바로 이 맥주맛 가루였다. 사실 맛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건 순전히 호기심에 몇 개 구입했다.
일본 사람에게 인기가 있다는 한국산 김도 보였다. 설마 한국 사람이 여행을 와서 한국산 김을 살 리는 없겠지?
사람들이 가장 많이 구입한 것은 역시 과자 종류나 술이었다. 그 중에서 귀여운 병에 담긴 사케를 몇 개 샀는데 정말 잘 산 것 같다.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기에도 딱 좋고, 부피가 작아 가지고 돌아가기에도 좋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었다.
사케 말고도 과실주도 있었고, 작은 캔에 담긴 맥주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일본은 이런 아기자기한 제품을 참 잘 만드는 것 같다.
레드 캐비지를 한참 둘러보다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군데군데 공룡들이 머리를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레드 캐비지를 관광지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재미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게다가 육류를 파는 코너에서는 귀여운 노래가 흘러 나왔다. 다코야끼, 규동, 야키니꾸 등 이렇게 단순하게 음식 이름을 나열하는 노래인데 이게 은근 중독성이 있어서 조금만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따라 하게 된다.
아무튼 여태까지 슈퍼마켓 구경을 하면서 어느 유명한 관광지를 찾은 느낌이 들었던 적은 또 처음이었다. 아마 대마도를 여행하는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크게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즈하라에 밤이 찾아왔다 해도 낮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어두운 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마저 없으니 더 한적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대마도의 최대 번화가라는 말이 머쓱해 질만큼 조용했다. 그래도 여행인데 조용히 하루를 마감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우리는 호텔로 돌아갔는데 그전에 편의점에 들러 또 먹을 것도 사고, 얼음도 몇 개 샀다. 나중에야 느끼게 되었지만 가까운 곳에 편의점이 있다는 게 무척 했다. 대마도는 주로 주말에 찾는 여행자들이 많은 까닭에 일요일에는 투숙객이 많지 않다. 밤새 놀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우리에게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늦은 새벽까지 술을 마시긴 했지만 무릇 여행자라면 아침은 꼭 먹어야 한다. 왜 평소에는 이불에서 나오지도 않을 정도로 게으름을 피우다가 여행만 하면 아침까지 꼬박꼬박 챙겨먹을 정도로 부지런해지는지 나도 의문이다. 물론 피곤함에 지쳐 일어나는데 무척 힘들긴 했지만 꽤 이른 시각에 씻고, 아침을 먹으러 2층으로 내려갔다.
대마호텔은 7시부터 9시까지 2층으로 내려가면 일본식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반찬이 몇 개가 있고, 식당에 내려가면 밥과 국을 줬다. 작은 두부, 김치, 계란 하나, 생선 한 토막, 그리고 밥과 일본식 된장국인 미소시루였는데 대충 반찬의 가지 수만 봐도 간단한 구성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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