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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GHaaa

내 경찰아저씬데요?1화 - 딸기우유 경위님과의 첫 만남.

송이

 “끄윽..하아 취한다아~”

오랜만에 만나는 동기들과 가지는 술자리 모임에서 기분이 좋아 주는 술을 다 받아먹다 보니 어느새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해 버렸다.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는 송이의 모습이 꽤 위태로워 보였다.

송이

 “아 딸기 우유….”

술 마시고 나면 꼭 딸기 우유를 먹는 습관 때문에 아무리 취한 상태여도 꼭 편의점을 찾는 송이는 마침 환하게 빛을 내며 자신을 부르는 듯한 편의점 간판에 홀린 듯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섰다.

남

 “어..큼..어서오세요.”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 올리며 인사를 하는 알바생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하곤 곧바로 딸기우유를 찾았다.

송이

 “어..딸기우유..!”

반가운 마음에 손을 쭉 뻗어 딸기우유를 집으려는 순간 뒤에서 커다란 손 하나가 쑥 하고 나와 하나 남은 딸기우유를 빼앗아갔다.

송이

 “어?”

당황한 송이가 그 손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멀끔한 남자 한 명이 하나 남은 딸기우유를 벌써 계산대에 올려놓고 있었다.

송이

 “어..저!그거!”

송이가 뭐라 하기도 전에 남자는 이미 계산을 마치고 저만치 걸어갔다.

송이

 “저기요!”

멀어져 가는 딸기우유를 도저히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던 송이는 무슨 용기가 났는지 그 높은 굽을 신고 달려가 남자의 팔을 붙들었다.

제영

 “뭡니까?”

송이

 “그..그거요..”

제영

 “네?”

송이

 “딸기우유..”

무작정 붙들고는 딸기 우유 타령을 하는 여자의 모습에 제영은 어이가 없었다.

제영

 “딸기우유요?”

송이

 “그 딸기우유 저 주시면 안 돼요?”

제영

 “뭐라고요?”

다짜고짜 딸기우유를 달라니, 제영은 이 여자가 술 취해서 헛소리를 하나 싶어 잡힌 팔을 뺐다.

송이

 “저..그거 꼭 먹어야 하는데..”

제영

 “허..”

송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제영을 바라보았다.

송이

 “아저씨...그거 저 주세요 네?”

반짝거리는 눈으로 자신이 들고 있는 딸기우유를 향해 손을 뻗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헛웃음이 나왔다.

제영

 “나도 딸기 우유 좋아하는데, 그리고 나 아저씨 아닙니다.”

자꾸만 딸기우유를 향해 손을 뻗는 송이를 피해 제영은 딸기우유를 들고 있는 손을 하늘을 향해 쭉 뻗었다.

 

송이

 “흐잉 딸기우유 줘요~!네?”

제영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그저 하늘 높이 올라가 있는 딸기우유만 애처롭게 바라보며 손을 뻗어대는 송이의 모습에 결국 제영은 팔을 내려 딸기우유를 송이의 손에 쥐여주었다.

제영

 “자 여기 됐습니까?”

송이

 “와아 감사합니다!!”

손에 들려진 딸기우유에 아이처럼 박수까지 치며 기뻐하는 송이를 보며 제영은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아니 무슨 딸기우유 하나에 저렇게 좋아하지..’

송이

 “감사합니다아!”

허리까지 90도로 숙여가며 감사 인사를 하고는 뒤돌아서 총총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려던 송이는 다시 뒤돌아서서 저만치 걸어가는 제영의 손목을 붙들었다.

제영

 “뭡니까 또?”

송이

 “이렇게 그냥 뺏어가면 제가 너무 마음이 안좋아서요오.”

제영

 “그럼 다시 돌려 줄 겁니까?”

송이

 “아니!! 그건 안되고!”

딸기우유를 향해 손을 뻗는 제영을 피해 얼른 뒤로 한발 짝 물러나는 송이다.

송이

 “다음에 꼬옥!! 사드릴게요!”

제영

 “됐습니다.”

송이

 “명함 같은 거 있으면 주세요!!”

제영

 “괜찮으니까 그냥 가세요.”

송이는 뒤돌아서는 제영의 앞으로 다가가 턱 하고 막아섰다.

송이

 “명함 안 주면 안 갈래요.”

제영

 “하아..”

뜬금없는 명함 타령에 어이가 없어진 제영은 주머니를 뒤적거려 명함 한 장을 송이의 손에 쥐여주었다.

제영

 “됐죠. 이제.”

송이

 “내일 꼬옥~연락할게요!”

*** 

송이

 “으아..무울..”

쓰린 속을 부여잡으며 잠에서 깬 송이는 눈 뜨자마자 냉장고 앞으로 달려가 벌컥 물을 들이켰다.

송이

 “흐아 죽겠다.”

물 한 통을 거의 다 비우고 나서도 타는 듯한 갈증과 숙취가 해결되지 않자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송이는 해장국이라도 먹으러 나가야겠다 싶은 마음에 급하게 옷을 갈아입었다.

송이

 “어?”

지갑과 휴대폰을 챙겨서 나가려던 송이는 지갑 사이에 껴있는 명함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송이

 “이게 뭐지?”

‘하제영 경위’

송이

 “경위면...경찰 아닌가? 그 그 박해영 경위님처럼? 이런 게 왜 내 지갑에….”

일단 쓰린 속 좀 달래고 나서 생각해야지 하고 집을 나서려던 송이는 문득 주방에 얌전히 놓여 있는 딸기우유를 보고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송이

 “아...딸기우유!!”

모든 것이 기억 난 송이는 나가려다 말고 명함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한참을 고민했다.

송이

 “전화해야겠지..? 아..어떡하지..”

명함에 손때가 타도록 만지작거리던 송이는 결심한 듯 휴대폰을 들어 꾹꾹 명함에 찍혀있는 번호를 눌렀다.

제영

 [하제영 경위입니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들린 제영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송이는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송이

 “저..어제 딸기우유..”

제영

 [꼭 연락한다더니 약속 잘 지키네요.]

송이

 “제가 어제는 술을 좀 많이 마셔서..실수를..했어요 죄송합니다.”

제영

 [괜찮습니다.]

송이

 “저..괜찮으시면 오늘 만날 수 있을까요?”

제영

 [..그러죠.]

*** 

송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약속 장소인 카페에 도착한 송이는 쓰린 속을 쓰디쓴 아메리카노로 달래며 제영을 기다렸다.

똑똑//

아메리카노 얼음까지 와작 씹어 먹으며 숙취 해소에 열중하던 송이는 똑똑하고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얼른 컵을 내려놓았다.

송이

 “어어..!”

제영

 “오늘은 딸기우유 안 마시나 봐요?”

송이

 “아...”

하얀 터틀넥에 청바지 차림을 한 제영의 모습에 송이는 물음표를 가득 단 표정으로 제영을 바라봤다.

제영

 “나 경찰 맞습니다.”

그러자 제영은 안주머니에서 ‘경위 하제영’ 자신의 사진이 뚜렷하게 박힌 경찰증을 꺼내 보여주었다.

송이

 “아..”

제영

 “이제 앉아도 됩니까?”

송이

 “아..네네!”

그제야 경계심을 풀고 살포시 미소를 짓는 송이다.

제영

 “어제 딸기 우유 맛있었어요?”

송이

 “아..네..죄송해요 제가 어제 술에 취해서...아니 제가 미쳤었나 봐요. 제가 경찰아저씨 우유를 뺏어 먹다니..그래서 제가 이거 사 왔거든요….”

송이는 잔뜩 시무룩한 얼굴로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단지 모양 딸기우유 하나랑 바나나 우유 하나를 꺼내 제영에게 내밀었다.

송이

 “이거..드세요.”

제영

 “바나나 우유는 뭡니까?”

송이

 “아..이거 원 플러스 원하는데 딸기우유가 하나밖에 안 남았더라구요 그래서 바나나 우유로 가져왔는데..아 빨대 여기..”

제영은 딸기 우유에 빨대를 콕 찍어 송이 쪽으로 밀었다.

제영

  “먹어요.”

송이

 “네?”

제영

 “경찰이 들고 있던 우유를 겁도 없이 빼앗아 가고 그러는 거 보면 나보다 더 딸기우유에 대한 열정이 큰 거 같아서.”

송이

 “아니..전 괜찮아요..아저씨 드세요..전 그럼 이만..”

자신을 비웃는 듯한 제영의 말투에 기분이 상한 송이는 딸기우유를 다시 제영 쪽으로 밀어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영

 “딸기우유는 그쪽이 다 먹고 해장이나 하러 갑시다.”

송이

 “네?”

*** 

제영

 “이모 여기 콩나물 해장국 둘이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제영과 마주 앉은 송이는 어색함에 앞에 놓인 물만 벌컥 들이켰다.

제영

  “물 더 줄까요?”

송이

  “아..아뇨.”

제영

  “얼른 먹어요, 해장이 많이 필요해 보이는 얼굴인데.”

송이

  “아..네.”

아니 경찰이라며, 이렇게 노닥거리고 있어도 되는 건가?

제영

 “경찰도 밥 먹을 시간은 있습니다.”

송이

 “네?”

자신의 속마음을 그대로 들킨 것 같은 기분에 화들짝 놀라 제영을 바라보자 제영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앞에 놓인 깍두기를 입안에 쏙 넣었다.

제영

 “먹어요.”

송이

 “아..네.”

해장국이 앞에 놓이자 뭔가를 아는지 고요하던 뱃속이 요동을 쳤다.

송이는 체면이고 뭐고 얼른 숟가락을 들어 뜨끈한 국물 한 숟갈 퍼먹었다.

송이

 “으어..”

국물이 들어가자 자신도 모르게 나온 소리에 헙 하고 입을 막은 송이다.

제영

 “크흡..”

들었구나..들었어...제영의 웃음소리에 송이의 얼굴은 불타는 고구마가 되어버렸다.

제영

 “크큼..먹어요.”

송이

 “아..네.”

식사를 마친 제영과 송이는 사이좋게 박하사탕 하나씩 입에 물고 나왔다.

송이

 “그럼 전 이만..”

제영

 “이름이 뭡니까?”

송이

 “아..송송이요.”

제영

 “송송이..?”

송이

 “네..성이 송 이름이 송이..”

제영

 “아..이름 특이하네. 뭐 그럼 가요. 우유는 뭐 잘 먹을게.”

송이

 “아..네.”

그렇게 딸기우유 경위님과의 인연은 거기가 끝인 줄 알았다.

*** 

은애

 “그래서 경찰 아저씨한테 완전히 찍혔다고?”

송이

 “어..내 이름도 알아..”

은애

 “그래서 그 경찰 아저씨 잘생겼어?”

송이

 “어..?어...”

송이는 어제 본 제영의 생김새를 떠올렸다.

송이

 “키도 꽤 컸고, 되게 어리게 생겼던데..순둥순둥 하게 코도 되게 높았던 거 같고..아무튼 경찰 같진 않게 생겼어.”

은애

  “야..잘 생겼네! 나 그 경위님 번호 좀 알려줘.”

송이

  “뭐?”

은애

 “잘 생겼다며..”

송이

 “야..그게 문제냐 지금?! 나 잡혀가는 거 아냐? 막 절도죄..이런걸로.”

은애

 “무슨 딸기우유 하나 가지고...절도죄까지...아마..될 수도 있겠다.”

송이

 “뭐?”

은애

 “어쨌든 빼앗은 거 아냐.”

심각해진 은애의 얼굴에 송이는 울상이 되어버렸다.

민석

 “송이 누나!”

수업이 끝났는지 해사한 얼굴로 뛰어와 송이의 손을 붙드는 민석의 손을 은애는 찰싹하고 내리쳤다.

민석

 “아!아파요 선배.”

은애

 “송이는 누나고 난 왜 선배야?”

민석

 “아 그야 송이 누나가 더 좋으니까..”

은애

 “그 입 다물어라 강민석.”

민석

 “헤헤 누나 밥 먹었어요?”

은애의 따가운 눈총에도 민석은 헤헤 웃으며 송이의 끼니를 챙겼다.

송이

 “어?아니..아직.”

민석

 “그럼 우리 밥 먹으러 가요!”

송이

 “아..나 바로 수업 들어가야 해서..미안.”

민석

 “아 그럼 누나 잠깐만요!”

민석은 뒤로 메고 있던 백 팩을 앞으로 메더니 가방을 열어 뭔가를 찾는지 뒤적거렸다.

민석

 “아 찾았다!”

송이

 “어?”

민석

 “누나 이거 먹어요!”

민석의 손엔 핑크빛 딸기 우유가 들려져 있었다.

송이

 “어..딸기우유..”

민석

 “누나 이거 딸기우유 좋아하잖아요~”

송이

 “어..어 고마워..”

민석

 “헤헤. 누나 혼자 먹어요. 은애 선배 주지 말고.”

송이

 “그래..”

그 모습을 본 은애는 깔깔거리며 송이의 손에 들려 있던 딸기우유를 빼앗아 들었다.

은애

 “야 강민석 너 틀렸다 송이 이제 딸기 우유 안 좋아할걸?”

민석

 “네?누나 딸기우유 싫어해요?”

송이

 “아..아냐 고마워 민석아 얼른 가봐~”

민석

 “네~누나 그럼 다음에 봐요.”

손까지 팔랑팔랑 흔들며 인사를 하는 민석의 모습에 송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은애

 “좋냐?”

송이

 “어?”

은애

 “연하가 누나누나 그러니까 좋냐고.”

송이

 “아 민석인 그냥 동생이지.”

은애

 “강민석한테는 너 여자일걸?”

송이

  “에이 아냐~그냥 내가 잘해주니까 잘 따르는 거지.”

은애

 “조만간 강민석이 송송이한테 사귀자고 한다는 것에 내가 지금 입은 이 신상 원피스를 걸지.”

송이

 “김칫국 드링킹 하지 마시죠 오은애양.”

*** 

지루한 수업이 끝나자마자 은애의 손에 이끌려 후배들과의 술자리에 참석하게 된 송이의 얼굴은 울상이었다.

송이

 “아니 저번에는 동기 모임이고 오늘은 후배들과의 모임이라니 무슨 매일 술자리가 대기하고 있어..”

은애

 “자자!!우리 송송이 양이 우울한가 보다 얘들아 잔 채워~”

은애를 필두로 맥주잔 가득히 소주와 맥주의 콜라보레이션이 시작되었다.

송이

 “끄으..”

보기만 해도 아까 먹었던 학식이 올라올 거 같은 기분에 고개를 젓자 그걸 본 은애가 아주 친절하게 송이의 손에 소맥 콜라보레이션이 가득 찬 아름다운 잔을 꼭 쥐어주었다.

송이

 “나 먹으라고?”

은애

 “자자 우리 선배님 원샷 하신덴다~”

사람들

 호우~!!송선배!송선배!

아 저것들은 이럴 때만 선배 찾지..반짝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후배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송이는 코까지 손으로 꼭 막고 꿀꺽 그 잔을 비워냈다.

은애

 “자자 우리 후배님들도 얼른 원 샷?”

부어라 마셔라 하는 분위기에 휩쓸려 한 잔 두 잔 잔을 비우던 송이는 후배들 앞에서 추한 모습을 보일 수 없기에 딱 정신 잃기 바로 직전 술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송이

 “후아..”

버스를 타려던 송이는 찬바람을 맞으면 술이 좀 깰까 싶어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송이는 비틀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한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걸었다.

송이

 “어? 땅이 자꾸 앞으로 와..어?자꾸 인사하네..안뇨옹~”

풀썩//

송이

 “어 어?!!”

땅이 자꾸 인사한다며 비틀거리던 송이가 바닥과 입맞춤하기 전에 누군가 송이의 허리를 확 감싸 안았다.


내 경찰아저씬데요?2화 - 또 만났네요 딸기우유 경위님?

송이

 “으엉?민서기다..”

자꾸만 초점이 엇나가는 두 눈을 부릅뜨고 민석을 확인한 송이는 환하게 웃었다.

민석

 “누나 술 많이 마셨네요.”

송이

 “어?어~조금~많이.”

민석

 “데려다줄게요. 업혀요. 누나.”

송이

 “아니 나 혼자 갈 수 있는 데에~”

민석에게 기대어 있던 송이는 벌떡 일어나 아슬아슬하게 한 발짝 뗐다.

송이

 “이거봐아~”

민석

 “어..어! 누나!”

결국, 그렇게 인사하던 땅바닥과 입맞춤을 한 송이다.

민석

 “괜찮아요 누나?”

술기운 때문인지 꽤 세게 부딪혔는데도 송이는 그저 헤헤하고 웃어넘겼다.

민석

 “안 되겠다. 누나 업혀요.”

송이

 “아니이 나 걸어 갈거야아~”

결국, 죽어도 업히지 않겠다는 송이는 민석에게 거의 안기다시피 해서 걸었다.

송이

 “우리 민서기 남자네에~이렇게 힘도 쎄고오~”

민석

 “나 남자 맞거든요.”

송이

 “그럼 민석이 후배님 남자 맞아요~”

민석

 “아니 그런 남자 말고..”

송이

 “응?”

잔뜩 풀린 두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송이의 모습에 민석은 그만 입을 다물었다.

송이

 “어어!딸기우유!”

민석

 “아..네..누나 여기 잠깐 앉아서 기다려요.”

편의점이 가까워져 오자 귀신같이 알아채고 딸기우유를 찾는 송이를 의자에 잠시 앉혀두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혼자 남은 송이는 발장난을 하며 민석을 기다렸다.

제영

 “송송이?”

송이

 “어?누구지이?”

제영

 “하 참..여자애가 겁도 없이.”

얼마 전 서울청 주변에서 터진 여대생 연쇄 성폭행 사건으로 하루종일 밤샘을 하고 집으로 들어가던 제영은 편의점 앞 익숙한 인영에 성큼 다가갔다.

송이

 “어?아 딸기우유 경위님!”

잔뜩 취한 그 와중에도 자신을 알아봤는지 반가운 표정을 하는 송이의 모습에 기가 차는 제영이다.

송이

 “우와 또 만났네요~ 딸기우유 경위님!”

제영

 “술 많이 마셨습니까?”

송이

 “술 쪼금 마셨는데에~”

민석

 “누구세요?”

때마침 양손 가득 딸기우유를 사 온 민석이 편의점에서 나와 송이에게 다가섰다.

제영

 “아..일행인가?”

민석

 “송이누나 아세요?”

제영

 “아..뭐 아는 사이라면 아는 사이지..”

민석

 “누나 저 아저씨 알아요?”

송이

 “응? 잘알지이~~우리 딸기우유 경위님인데에~”

민석

 “네?”

송이

 “어? 딸기우유~”

민석이 심각하든 말든 송이는 민석의 손에 들린 딸기우유를 빼앗았다.

민석

 “아 누나 잠깐만요.”

민석은 빨대를 뜯어 송이가 들고 있는 딸기우유에 꽂아주었다.

송이

 “헤헤 고마워~”

제영

 “남자친굽니까?”

민석

 “후뱁니다 아직은.”

제영

 “아직은?”

민석

 “사생활 물을 정도로 우리 친해요?”

제영

 “아..저 아가씨 그쪽이 데려다줄 겁니까?”

민석

 “네.”

제영

 “위험한데..”

민석

 “네?”

제영

 “저 아가씨 내가 데려다줄 테니 이만 가봐요. 아, 집 주소만 좀 알려주고.”

민석

 “제가 아저씨를 어떻게 믿고 송이 누나를 맡겨요?”

잔뜩 가시가 돋친 민석의 말에 제영은 자연스럽게 안 주머니에서 경찰증을 꺼내 보여주었다.

제영

 “자 됐습니까?”

민석

 “경찰도 남잡니다.”

제영

 “하..참..”

제영

 “정 못 미더우시면 옆에서 같이 부축 좀 해주시죠.”

결국, 송이는 두 남자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향했다.

송이

 “어? 아즈씨는 왜 여깄어여?”

제영

 “조용히 하지. 술 냄새 엄청나게 독한데.”

송이

 “헤헤 아즈씨 나 체포할 거예요?”

제영

 “내가 아가씨를 왜 체포합니까.”

송이

 “아즈씨 나 아즈씨꺼 딸기우유 뺏어갔다고 체포하면 안되여어..”

두 눈에 눈물을 잔뜩 매달고는 제영의 팔을 잡고 매달리는 송이의 모습에 민석도 당황스러웠다.

민석

 “누..누나.”

송이

 “흐엉~ 나 콩밥 먹기 싫어~!아저씨 나 콩밥 진짜 시러해여어~!”

 

그 말을 끝으로 송이의 기억도 끝이 났다.

*** 

은애

 “어제 혼자 잘도 튀셨겠다?”

송이

 “흐엉..그나마 그때 안 나갔으면 나..살아 돌아오지 못 했을거야..”

송이는 자신을 배신했다며 투덜거리는 은애의 팔을 붙들고 눈꼬리를 잔뜩 늘어뜨리며 불쌍함을 어필했다.

은애

 “뭐 정 미안하면 해장국이나 한 그릇 사던가.”

송이

 “정문 앞에 순댓국 콜?”

은애

 “특으로 쏴라.”

송이

 “보통 먹으면 안 돼?”

은애

 “어.”

송이

 “그래..특으로다가 사줄게.”

민석

 “송이 누나!”

은애의 손을 꼭 붙들고 정문으로 향하는 송이를 발견한 민석은 환하게 웃으며 달려왔다.

은애

 “이게 또 나는 안 보이지?”

민석

 “어? 은애 선.배.님.도 계셨네요?”

은애

 “선배님에 악센트 주지 않아도 내가 선밴거 다 알거든?”

민석

 “네?”

은애

 “못 알아듣는 척하지 또.”

민석

 “헤헤.”

능청스럽게 웃으며 은애와 송이의 가운데를 꿰찬 민석이 은애도 그리 밉진 않은 지 순순히 자리를 내어 주었다.

민석

 “근데 어디 가요?”

은애

 “송송이가 해장국 쏜대서 가는 길이다. 너도 갈래?”

민석

 “우와 저도 가도 돼요? 누나?”

아니, 그렇게 두 눈을 반짝이며 물으면 내가 거절을 또 못하잖니..

송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민석은 빨리 가자며 송이의 손을 잡고 재촉했다.

은애

 “어어 그 손 놓지?”

그 모습을 놓칠 리 없는 은애의 잔소리에도 민석은 헤헤 웃으며 송이의 손을 꼭 잡고 해장국 집으로 향했다.

*** 

송이

  “이모 여기 순댓국 특으로다가 세 그릇!~국물 많이많이~”

어른여

 “어제 또 술 마셨구만?”

송이

  “허허 우리 이모 점쟁이네~”

어른여

 “술 좀 작작 마시고 다녀 잉?”

송이

 “넵!” 

뜨끈한 순댓국이 앞에 놓이자마자 숟가락을 들고 국물 먼저 얼른 떠먹는 송이다.

송이

 “흐아~”

은애

  “살 거 같아?”

송이

 “어..나 어제 진짜 죽을 뻔했거든..딸기 우유 먹은 것도 다 게워냈어….”

은애

 “으어 송송이 더럽게...”

송이

 “미안..쏘리.”

건더기는 쳐다도 보지 않고 국물만 떠먹는 송이에게 민석은 공깃밥을 내밀었다.

민석

 “밥도 먹어야 해장 된데요 누나.”

송이

 “아 고마워.”

민석

 “아 근데 누나 어제요...”

송이

 “어제..?혹시 나 어제 실수했니?”

민석의 입에서 어제 이야기가 나오자 송이는 슬그머니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민석

 “아니..어제 그 딸기우유 경위님..”

송이

 “헉..너가 경위님을 어떻게 알아?”

민석

 “어제 저랑 같이 누나 데려다줬는데..”

송이

 “지..진짜? 그 아저씨가?”

민석

 “네..누나 기억 하나도 안 나는구나.”

송이

 “나..어제 뭐 실수했어?”

민석

 “아니..실수라기보다...”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연 민석은 어제 일을 모두 하나도 빼놓지 않고 송이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송이

 “끄악!!!”

민석

 “아니 뭐 큰 실수는 아니고..”

은애

 “송송이!대박!저 콩밥 싫어해여어~”

은애는 깔깔거리며 송이의 행동을 재연했고, 송이는 심각한 얼굴로 물만 들이켰다.

송이

 “나 어떡하지..?”

은애

 “뭘 어떡해 딸기우유 사 들고 사과하러 가야지.”

송이

 “하아..”

***

수업시간 내내 송이는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 안절부절못했다.

송이

 “나 연락해야겠지?”

은애

 “그냥 전화해서 경찰 아저씨 저 어제 일 사과하고 싶어서 그런데 잠시만 나와주실래요? 라고 하면 되지 뭐 그렇게 망설여.”

송이

 “그게 말처럼 쉬우면 내가 왜 이러고 있겠니.”

은애

 “하긴 벌써 두 번째니까.”

송이

 “그치..?안되겠지?”

시무룩한 얼굴로 집으로 향하던 송이는 결심한 듯, 주머니 속에서 꼬깃꼬깃한 명함을 꺼내 들었다.

그래, 경찰이 뭐 사람을 때리기를 하겠어? 일단 내 맘부터 편하고 봐야지. 그래 송송이 그냥 누르면 돼...

송이는 떨리는 손으로 하제영 경위라고 쓰여있는 글씨 밑에 진하게 새겨진 11자리 번호를 눌렀다.

제영

 [하제영 경위입니다.]

송이

 “저..경위님..”

제영

 [누구십니까?]

송이

 “저..그 딸기우유를 좋아하고 콩밥을 싫어하는 그 아이입니다.”

제영

 [자기소개는 안 해도 알고, 무슨 일로 전화했습니까?]

송이

 “아니..민석이한테 들어보니까 제가 어제 또 실수했다고 그래서..”

제영

 [그래서?]

송이

 “사과드리고 싶어서요..혹시 시간 되시면 저번에 그 카페로 좀 나와 주실 수 있으세요?”

제영

 [사과?뭐 사과할 필요까진 없는 일인데..]

송이

 “아니...제가 마음이 너무 불편해서..어제 너무 실례를 해서..”

제영

 [그럼 내가 나갈 시간은 없고, 나 일하는 데 올 수 있나?]

송이

 “네네! 제가 갈게요!”

그렇게 해서 송이는 큰마음 먹고 산 딸기우유 10개를 들고 제영이 일하고 있는 서울청으로 향했다.

송이

 “후아..”

왜 경찰서 앞에만 서면 잘못한 게 없어도 작아지는 기분이 드는 것인지..

아...나는 잘못한 게 있구나..

송이는 결심한 듯,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동료1

 “어떻게 오셨습니까?”

송이

 “어...저기 하..제영 경위님..”

동료1

 “하경위님 뵈러 오셨습니까?”

송이

 “아..네..”

동료1

 “저쪽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송이

 “아..감사합니다.”

송이는 쭈뼛쭈뼛 경찰 아저씨, 아니 경찰 친구가 안내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송이

 “저기..”

제영

 “아 왔습니까?”

멀뚱하게 서 있는 송이를 발견한 제영은 하던 일을 멈추고 송이를 안내했다.

제영

 “차 마실래요?”

송이

 “아..괜찮아요.”

제영

 “자, 이제 사과 해봐요.”

송이

 “네?”

제영

 “사과하러 온 거 아닙니까?”

송이

 “아..네네!”

송이는 허둥지둥 손에 들고 있던 딸기우유가 가득 담긴 봉투를 제영에게 안겨주었다.

제영

 “이게 뭡니까?”

송이

 “딸기우유요!”

제영

 “이거 다 제 겁니까?”

송이

 “네 이거 다 경위님껍니다!”

제영

 “푸흡..”

뿌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송이의 태도에 제영은 웃음이 터졌다.

송이

 “왜..왜 웃으세요?”

제영

 “아..아닙니다. 잘 먹을게요.”

송이

 “정식으로 사과드려야 할 거 같아서요..어제랑 저번에는 제가 정말 죄송했습니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아저씨, 아니 경위님한테 실수한 거 같아서요...앞으로는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아 뭐 다시 볼일도 없겠지만요..”

제영

 “다시 볼 일 없겠지만요?”

송이

 “네?”

제영

 “뭐..다시 볼 일이 있을지 없을지는 두고 볼 일이지 않나.”

송이

 “네?”

제영

 “뭐 아닙니다. 사과 잘 받겠습니다.”

송이

 “그럼..전 이만.”

사과를 마친 송이는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제영

 “아 잠깐!”

송이

 “네?”

제영

 “이거 먹어요.”

제영이 내민 건 빨대가 꽂힌 딸기 우유였다.

송이

 “아..그거 아저씨 아니 경위님 드시라고..”

제영

 “먹으면서 가요.”

송이

 “아..네..”

뭐지..안 받으면 당장이라도 수갑을 채울 거 같은 눈빛은...

송이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송이의 뒤로 나지막한 제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영

 “다음엔 맨정신으로 봅시다.”

*** 

은애

 “그래서 딸기우유 잔뜩 드리고 왔다고?”

송이

 “어..”

은애

 “풉..송송이 답다.”

송이

 “내가 뭐어~”

은애

 “아니 귀엽다고.”

송이

 “아 몰라.”

은애는 송이의 볼을 쭉 잡아당겼다.

송이

 “아 무아 왜으애.”(아 뭐야 왜그래.)

은애

 “귀여워서.”

송이

 “하이아.”(하지마.) 

은애

 “아 맞다, 송아.”

한참 장난을 치던 은애는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송이를 불렀다.

송이

 “어?”

은애

 “아...저기..”

잠시 망설이던 은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은애

 “그..진태선배 있잖아..”

송이

 “..어?”

은애

 “진태 선배 귀국했데.”

은애의 입에서 나온 익숙한 이름에 송이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돌렸다.

송이

 “아...벌써 그렇게 됐나..”

은애

 “나한테 연락 와서 너 연락처 물어보더라고..”

송이

 “......”

은애

 “그래서 모른다고 하긴 했는데..이번 학기에 복학했데..진태선배.”

송이

 “...복학?”

내내 차분하던 송이는 복학이라는 소리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은애

 “어 그 선배 마지막 학기 남았잖아.”

송이

 “아..”

진태의 귀국 소식과 더불어 복학이라니..머리가 복잡해진 송이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밥 먹자는 은애를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송이

 “복학..하면 마주칠 수도 있겠지?”

*** 

싱숭생숭해진 마음으로 집 앞 편의점을 지나던 송이는 익숙한 뒷모습에 우뚝 걸음을 멈췄다.

진태

 “송이..?혹시나 하고 와 봤는데 아직 이 동네 사는구나.”


내 경찰아저씬데요?3화 - 왜 자꾸 생각이 나지?

반가운 표정으로 송이에게 다가선 진태는 환하게 웃으며 자연스럽게 송이를 안으려 했다.

송이

 “아..네.”

송이는 진태가 다가오자 한 발 뒤로 주춤 물러섰다.

진태

 “아..미안.”

송이

 “어쩐 일이세요..?”

진태

 “나..귀국했어.”

송이

 “네 들었어요 복학 하셨다면서요.”

진태

 “..보고싶었어.”

송이

 “......”

진태는 성큼 다가와 송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다.

송이

 “왜 찾아오셨어요?”

송이가 다시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자 진태는 머쓱한 표정으로 손을 거두었다.

진태

  “송아..”

송이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진태

 “우리...다시 시작하면 안돼?”

송이

 “저 싫다고 먼저 버린 사람은 선밴데..잊었어요?”

진태

 “......”

송이

 “조심히 가세요, 저 먼저 들어가 볼게요.”

진태는 차가운 표정으로 뒤돌아서 가려는 송이의 손목을 붙잡았다.

송이

 “이거 놔요!”

진태

 “송이야..”

송이

 “이거 놓으라니까요!!”

잡힌 손목을 풀기 위해 힘을 주는 송이를 진태는 확 끌어당겨 품에 안아 버렸다.

송이

 “뭐하는 짓이에요!”

진태

 “우리 다시 시작하자.”

송이

 “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결국 송이의 가슴 깊숙이 곪고 곪은, 참고 참았던 응어리가 터져 버리고 말았다.

진태

 “송이야..”

송이

 “그렇게 부르지도 마요! 혼자 착한 척, 피해자인 척하지 말라고!! 나쁜 새끼야!!”

진태

 “송송이!”

송이

 “이거 놔 줘요.나 더 이상 선배랑 이렇게 감정소비 하면서 싸우고 싶지 않아요.”

송이는 진태를 밀어내고, 뒤돌아서서 한 발짝 발걸음을 뗐다.

그런 송이의 모습에 진태는 표정을 굳혔다.

진태

 “남자 생겼냐 너?”

송이

 “......”

진태

 “강민석 걔야? 파릇파릇한 연하 만나니까 뭐 나 같은 건 눈에도 안 찬다 이건가?”

한껏 비아냥거리는 진태의 말을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기던 송이는 민석의 이름이 나오자 멈칫 발걸음을 멈췄다.

진태

 “맞나 보네, 강민석이랑도 잤냐? 나한테 하는 것처럼 내숭 떨고 그랬어?”

점점 수위를 넘어서는 진태를 그냥 두고 볼 수 없던 송이는 가던 길을 되돌아와 진태의 앞에 섰다.

송이

 “야. 박진태.”

진태

 “뭐?이게 선배한테.”

송이

 “하! 선배? 선배에? 야 나이를 먹었으면 나잇값 좀 하세요. 선.배.님. 선배행세 하고 싶으면 선배답게 행동을 하던가. 어디서 구질구질하게 피해자 코스프레 하면서 다시 시작하재, 네가 싫다고 나 버렸잖아! 근데 뭐? 다시 시작하자고? 웃기고 앉았네! 진짜. 야 박진태 너 뭔가 대단한 착각을 하는 거 같은데 너 그렇게 대단한 놈 아니거든? 그리고 내가 민석이랑 사귄다고 누가 그래? 아니지 내가 민석이랑 사귀면 뭐? 뭐 어쩔껀데 네가? 야 어떤 남자든지 대낮부터 모텔 찾아 헤매는 너보다는 낫거든? 그니까 더 이상 그만 상처 들쑤시고 꺼져.”

진태

 “야 송송이! 너 보자보자 하니까 내가 너 가만둘 줄 알아?”

송이

 “가만두지 않으면 어쩔껀데 뭐 때리기라도 하려고? 그나마 첫사랑이라 좀 아름다운 기억 좀 남겨보려고 했는데 첫사랑의 마무리가 진단서가 되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 때려봐 이 쓰레기야.”

진태

 “이 기지배가 진짜!”

화가 난 진태가 위협하듯, 손을 번쩍 들자 송이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제영

 “요새도 여자 패는 놈들이 있네.”

눈을 질끈 감은 송이는 익숙한 목소리에 실눈을 떴다.

진태

 “당신 뭐야?”

제영

 “나? 경찰.”

한 손으로 진태의 팔목을 잡아 제압한 제영은 나머지 한 손으로 주머니를 뒤적여 경찰증을 꺼내 진태의 눈앞에 들이댔다.

 

진태

 “경찰이 뭐! 나 얘 안 팼는데?”

제영

 “내가 조금 늦었으면 그 손이 그대로 저 아가씨 뺨으로 향했을 거 아닌가?”

진태

 “...다..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제영

 “경찰이 약자를 괴롭히는 현장에서 그냥 돌아설 수가 없어서 말이야.”

진태

 “이건 쟤랑 내 문제니까 그냥 가시던 길 가라 고오!”

제영

 “아, 내가 저 아가씨랑 아는 사이라고 하면 상관해도 되는 건가?”

진태

 “뭐라고? 야 송송이 너 저 남자 알아? 나 없는 새에 아주 이 남자 저 남자 다 찌르고 다녔냐?”

송이

 “하...”

어떻게 하는 말마다 저렇게 저급하고 저질스러운지, 송이의 두 눈엔 어느새 눈물이 가득 고였지만 진태의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아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제영

 “오케이. 거기까지.”

제영은 자신의 뒤로 송이를 숨기듯, 송이의 앞을 가리고 섰다.

그리곤 뒷주머니를 뒤적여 찰랑거리는 수갑을 꺼내 진태에게 보여주었다.

제영

 “거기서 한마디만 더 하면 엮을 수 있는 모든 죄 엮어서 한 일 년 콩밥 먹게 해줄 수 있고.”

진태

 “뭐..뭐?”

제영

 “이래 보여도 나 꽤 직급이 높아서 권력 남용 할 수 있거든.”

진태

 “궈..권력 남용?”

제영

 “어떡할까 지금 여기서 무전 한 번이면 경찰서 구경 실컷 하게 해줄 수 있는데. 죄목은 뭐가 좋을까? 폭행? 아니면 공갈,협박?”

수갑을 보고 멈칫하던 진태는 수갑을 들고 점점 다가오는 제영을 보고는 얼른 뒤돌아서서 골목을 빠져나갔다.

제영

 “갔어요.괜찮아요?”

진태가 시야에서 벗어나는 것을 확인한 제영은 뒤돌아서서 송이를 보고 물었다.

송이

 “..네..”

긴장이 풀리자, 송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송이

 “어..어!”

놀란 제영이 얼른 송이를 부축해 편의점 앞 의자에 앉혔다.

제영

 “잠깐 기다려요.”

송이를 앉혀 놓고 급하게 편의점에 갔다 온 제영은 송이에게 얼른 물을 건넸다.

제영

 “마셔요.”

송이

 “감사합니다.”

송이가 안정을 찾는 동안 제영은 가만히 옆에 서서 기다려주었다.

제영

 “이제 좀 괜찮습니까?”

송이

 “..네 오늘도 경위님이 저 도와주셨네요.”

제영

 “일어나요~ 집까지 데려다줄게.”

송이

 “아녜요 혼자 갈 수 있어요.”

혼자 갈 수 있다며 의자에서 일어서던 송이가 비틀거리자 얼른 제영의 송이의 팔을 붙들었다.

제영

 “정말 혼자 갈 수 있습니까?”

결국, 송이는 제영의 품에 안기다시피 해서 집으로 향했다.

제영

 “남자 친굽니까?”

조심스럽게 묻는 제영의 질문에 송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제영

 “그럼 구 남친입니까?”

송이

 “..풉..경위님 그런 말도 알아요?”

제영

 “..나..그렇게 나이 많지 않습니다.”

송이

 “맞아요 구 남친이예요.”

제영

 “잘 헤어진 거 같네요.”

송이

 “..그쵸..?”

제영의 말에 송이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제영

 “아, 이거 먹어요.”

제영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송이에게 막대사탕 한 주먹을 내밀었다.

송이

 “어? 감사합니다.”

송이는 딸기 맛 막대사탕을 까서 입 안에 넣었다.

송이

 “경위님도 하나 드릴까요?”

제영

 “전 단 거 안 좋아합니다.”

송이

 “딸기 맛인데요?”

제영

 “딸기 우유만 좋아합니다.” 

송이

 “오늘도 감사했습니다. 경위님.”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한 송이는 제영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뒤돌아섰다.

제영

 “사탕 껍질 있습니까?”

송이

 “네?”

뜬금없는 제영의 물음에 송이는 다시 돌아서서 제영을 바라보았다.

제영

 “아까 먹은 사탕 껍질 말입니다.”

송이

 “아...여기.”

송이는 주머니를 뒤적여 껍질을 제영에게 내밀었다.

제영은 껍질을 받아 들어 눈에 보이는 쓰레기봉투에 쏙 집어넣었다.

제영

 “이거 봤습니까?”

송이

 “네?네.”

조금은 의아한 제영의 태도에 송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제영

 “가지고 있던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면 기분이 시원하지 않습니까?”

송이

 “네. 시원하죠.”

제영

 “그겁니다.”

송이

 “네?”

제영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면 시원해야 합니다.”

송이

 “.......”

제영의 말을 잠시 후에 이해한 송이는 제영의 말처럼 정말 속이 시원해진 기분이 들었다.

송이

 “고마워요 하 경위님.”

*** 

진태와의 사건 이후, 송이는 학교에서 최대한 진태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피해 다녔다.

은애

 “왜 네가 피해! 그 새..아니 그 자식이 잘못했는데!”

송이

 “그냥..마주치기 싫어서.”

진태가 송이에게 한 짓을 다 들은 은애는 길길이 날뛰었다.

은애

 “내가 그 자식 만나기만 하면 아주!!”

민석

 “송이누나!!”

학식으로 나온 생선의 눈을 젓가락으로 쿡 찌르며, 분노하는 은애의 옆에 민석이 쪼르르 다가와 앉았다.

은애

 “야 강민석 너 나는 안보이지?”

민석

 “보이는 데요?”

은애

 “이게 진짜 선배한테!”

민석

 “누나! 밥 먹고 이거 먹어요! 아! 누나 혼자 먹어요!”

은애

 “야 강민석!”

민석은 주머니를 뒤적거려 딸기 맛 사탕 한 주먹을 송이의 손에 쥐여 주고는 후다닥 강의실로 향했다.

송이는 손에 쥐어진 핑크색 딸기 맛 사탕을 보며 누군가가 생각나 살풋 미소 지었다.

은애

 “어이고 좋단다 연하가 좋아한다니까 좋냐?”

송이

 “풉..어? 아냐 그냥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

은애

 “너 혹시...”

송이

 “어? 아니! 아냐~!”

은애

 “내가 뭐라 그럴 줄 알고?”

송이

 “어?뭐라 그러던 아냐 네가 생각하는 거~”

송이는 손에 쥐고 있던 사탕 껍질을 까서 입안에 쏙 넣었다.

딸기 향이 입안 가득 퍼지자 송이의 입가엔 달콤한 미소가 번졌다.

***

수업이 모두 끝난 송이는 교양 수업 하나가 남았다며 징징거리는 은애를 뒤로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봄기운이 가득한 거리를 보며 오랜만에 집까지 걷던 송이는 귀에 꽂은 이어폰의 볼륨을 조금 더 키웠다.

달달한 봄 노래가 귓가에 흘러나오고 기분이 좋아진 송이는 내친김에 동네 한 바퀴를 삥 돌았다.

송이

 “어?서울청..”

하염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서울청 앞에 발길이 멈춘 송이다.

송이

 “경위님...계시려나?”

송이는 문득 떠오르는 제영의 생각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송이

 “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제영

 “딸기우유 아가씨?”

서울청 안으로 향하려는 발걸음을 서둘러 집 쪽으로 돌리던 송이는 바로 뒤에서 들리는 제영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제영

 “여긴 어쩐 일입니까?”

송이

 “..하..하 경위님 안녕하세요~”

제영

 “나 보러 온 건가?”

송이

 “아..하하 아니 날씨가 너무 좋아서 걷고 또 걷다 보니..아저씨 생각이 나서..아니 내가 뭐라고 하는 거지..아니 그게 아니구요..”

제영

 “나 보러 온거면 같이 들어가요.”

송이

 “네..네?아..아니 저는 그냥..”

버벅거리던 송이는 같이 들어가자는 제영의 말에 뒷걸음질 치다 결국 뒤돌아서 제영을 피해 도망쳤다.

제영

 “송송이!아가씨!”

제영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송이는 멈출 수 없었다.

손으로 톡 하고 건드리면 펑하고 터져 버릴 것 같은 빨간 얼굴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지이잉//

서울청이 시야에서 어느 정도 멀어지자 가쁜 숨을 내쉬며 잠시 숨을 고르던 송이는 짧게 올리는 진동에 휴대폰을 확인했다.

-나 보러 온 거 아닙니까? 왜 도망갑니까? 하제영 경위-

문자를 확인한 송이의 심장이 터질 듯 뛰기 시작했다.

‘나..설마 경위님을..?아..아닐거야..’

*** 

동네 단골 치킨집에 은애와 마주 앉아 맥주를 홀짝이던 송이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송이

 “은애야 나..”

은애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송이

 “헐..”

무심한 듯 툭 하고 내뱉는 은애의 말에 송이는 입안에 머금고 있던 맥주를 뿜을 뻔했다.

은애

 “너 진짜야?”

은애는 먹던 닭 다리를 내려놓고 물었다.

송이

 “어..아니 자꾸 생각이나.”

은애

 “누구? 민석이!?”

송이

 “아니...민석인 후배라니까..”

은애

 “그럼 누구? 너 설마 진태선배..아니지?”

송이

 “내가 미쳤냐?”

은애

 “그럼..또 누구...야!너 설마!!”

송이

 “어..”

은애

 “하 경위님 맞아!?”

놀란 듯 소리를 높이는 은애의 입에 얼른 닭 다리를 물리는 송이다.

송이

 “맞으니까 동네방네 소문 안 내도 되거든…?”

은애

 “야 너!”

송이

 “아..나도 모르겠어..자꾸 생각나고..보고 싶은 거 같기도 하고..”

은애

 “하 참..”

답답한 마음에 앞에 놓인 맥주를 벌컥 들이켜는 송이의 모습에 기겁하는 은애다.

은애

 “야..야! 너 취하면 버리고 갈 거야!”

은애의 협박 아닌 협박에도 계속 맥주를 들이켜던 송이는 결국 취했다. 아주 얼큰하게..

송이

 “은애야아~~”

은애

 “조용히 해라..확 진짜 버리고 가기 전에.”

송이

 “나 버릴꺼야아~?”

은애

 “입 다물어, 어디서 되지도 않는 애교야.”

끙끙거리며 송이를 끌고 가던 은애는 결국 중간에 눈에 띄는 벤치에 송이를 앉혀 놓고 포기를 선언했다.

은애

 “아 송송이 너 술만 깨면 진짜 가만 안 둬.”

송이

 “웅..가만 안 둘 거야...”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잠꼬대까지 하는 송이의 가방을 뒤져 휴대폰을 꺼내 든 은애는 통화목록에 들어가 제일 최근에 있는 번호를 꾹 눌렀다.

제영

 [하제영 경위입니다.]

뜻밖의 목소리에 놀란 은애는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은애

 “아..안녕하세요 저..송송이 친군데요..”

제영

 [송송이?아..딸기우유..근데 어쩐 일입니까?]

은애

 “저..송이가 너무 많이 취했는데..제가 혼자서 데려다줄 수가 없어서요..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데...경위님 번호가 제일 최근 통화목록에 있어가지고..그냥 걸었는데..저 좀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제영

 [아..어딥니까?]

은애

 “저..여기 행복공원 앞 벤치요.”

제영

 [금방 가겠습니다.]


내 경찰아저씬데요?4화 - 열 살차이.

은애

 “하제영 경위님?”

송이를 벤치에 눕혀 놓고 그 옆에서 잠시 숨을 돌리던 은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제영의 모습을 보고 조그맣게 제영의 이름을 불렀다.

제영

 “송송이 씨 친굽니까?”

은애

 “아..네 오은애라고 합니다.”

제영

 “일단 같이 좀 일으키죠.”

은애

 “네..네!”

은애는 제영을 도와 송이를 제영의 등에 업혀 주었다.

은애

 “정말 죄송해요..그리고 감사합니다.”

제영

 “아닙니다. 송이 씨 집이 어딥니까?”

은애

 “아..근처 행복 빌라요 201호예요.”

제영

 “가깝네요. 혼자 들어갈 수 있어요?”

은애

 “네! 저는 많이 안 마셔서요. 정말 감사합니다.”

제영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은애는 인사를 꾸벅하고는 택시를 잡아탔다.

제영은 은애가 택시 타는 것을 보고 번호판까지 외운 뒤 자리를 떴다.

송이

 “음냐..은애야아..나..자꾸 생각나..”

제영의 등이 꽤 편한지 곤히 잠든 송이는 잠꼬대했다.

제영

 “나 은애 아닙니다.”

그런 송이의 모습이 꽤 귀여웠던 제영은 조그만 목소리로 맞장구를 쳐주었다.

송이

 “나…. 자꾸 생각나아..”

제영

 “누가 자꾸 생각납니까.”

송이

 “..딸기우유..”

잠꼬대에서도 딸기우유가 등장하는지 연신 딸기우유를 웅얼거리는 송이를 보며 제영은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제영

 “딸기우유가 그렇게 좋습니까?”

송이

 “..아니이..딸기우유 경위님이 자꾸 생각나..”

송이의 말에 제영은 우뚝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제영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송이

 “딸기우유 경위님이 자꾸 생각난다고오..자꾸..보고싶어..”

*** 

숙취에 허덕이던 송이는 결국 자체 휴강을 선택했다.

미친 듯이 울리는 알람을 끄고 다시 잠을 청하던 송이는 짧게 울리는 진동에 더듬더듬 손을 뻗어 휴대폰을 확인했다.

은애

 -어제 잘 들어갔냐? 하 경위님한테 감사 인사는 꼭 해라.-

송이

 “하경위님?”

은애의 문자에 비몽사몽 하던 송이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송이

 “어제!!!”

멍하니 앉아 어제의 기억조각을 끼워 맞추던 송이는 모든 기억이 떠올라버렸다.

송이

 “딸기우유 경위님이 자꾸 생각난다고오..자꾸..보고싶어..”

송이

 “끄앙!내가 미쳤지!!!!”

이불을 팡팡 차던 송이는 휴대폰을 들고 제영의 번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송이

 “전화..해야겠지?”

한참을 망설이던 송이는 두 눈을 꾹 감고 제영의 번호를 눌렀다.

제영

 [네. 하제영입니다.]

송이

 “저..저예요.”

제영

 [무슨 일입니까?]

송이

 “어..어제 감사했습니다.”

제영

 [..아닙니다.]

송이

 “그리고 어제...”

제영

 [어제 아무것도 실수한 거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송이

 “아..네.”

뭐지, 고백도 안 했는데 차인 기분은..

어쩐지 전보다 조금 더 멀어진 느낌에 송이의 기분은 푹 꺼졌다.

제영

 [그리고..]

송이

 “네?”

제영

 [동경입니다. 그거.]

툭//

동경입니다...하루종일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제영의 말에 송이는 술병과 상사병에 결국, 앓아누워버렸다.

*** 

송이의 고백 아닌 고백에 제영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송이

 “딸기우유 경위님이 자꾸 생각난다고오..자꾸..보고싶어..”

자꾸만 떠오르는 송이의 목소리에 제영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출근을 했다.

동료1

 “하 경위님?”

제영

 “어..네.”

동료1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제영

 “저 박 형사님.”

동료1

 “네?”

제영

 “스물셋이면 몇 년생이죠?”

동료1

 “어..스물셋이면 94년생 아닙니까?”

제영

 “94년생이요?”

94년도면 자신이 초등학생이었을 때, 송이가 태어났다는 거다.

새삼 느껴지는 나이 차이에 제영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동료1

 “근데 그건 왜 묻습니까?”

제영

 “아 아닙니다.”

열 살 차이...제영은 호기심 호감으로 변하기 전에 서둘러 송이에게 거리를 두기로 했다.

더 가까워지면 나중에는 더 힘들 테니까….

*** 

저절로 앓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아픈 건 올해 들어 처음이었다.

이래서 혼자 사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하는구나…. 라는 걸 또 느끼는 송이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서랍마다 몸살약을 찾아봤지만 그 흔한 쌍화탕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송이는 어쩔 수 없이 눈에 보이는 잠바를 입고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동네 약국으로 향했다. 

딸랑//

약사

 “어서 오세요.”

송이

 “아..몸살약 좀 주세요.”

약사

 “머리도 아파요?”

송이

 “네, 머리도 아프고 춥고 그냥 온몸이 다 아파요.”

약사

 “이 캡슐은 하루에 두 번 나눠두시고, 이 물약은 하루 식후 세 번 드세요. 5,800원입니다.”

송이

 “아..지금 먹어도 되나요?”

약사

 “식사하셨어요?”

송이

 “아..빈속인데..”

약사

 “빈속에 먹기엔 좀 독한데...잠시 만요.”

약사님은 조제실 쪽으로 들어가더니 우유 하나를 들고나와 송이에게 건넸다.

약사

 “이거라도 먹고 약 먹어요.”

송이

 “아..감사합니다.”

딸랑//

송이가 우유를 반쯤 먹었을 때, 약국 문이 열리고 익숙한 사람이 들어왔다.

제영

 “소독약이랑 붕대 좀 주세요.”

약사

 “3,000원입니다.”

소독약과 붕대를 받아 든 제영은 한쪽에 앉아 있던 송이와 눈이 마주쳤다.

제영과 눈이 마주친 송이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다 제영의 옆구리 쪽이 빨갛게 물든 것을 보고 벌떡 일어나 다가갔다.

송이

 “이게 뭐예요?”

제영

 “어..?어..”

당황한 제영이 버벅거리자 송이는 제영의 옷을 훌렁 걷었다.

제영

 “뭐하는 겁니까?”

제영은 서둘러 옷을 끌어 내렸다.

송이

 “가요.”

송이는 제영의 손을 이끌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송이

 “여기 앉아요.”

제영은 주춤주춤 송이가 가리키는 곳에 앉았다.

송이

  “옷..걷어봐요.”

제영

  “아 난 괜찮은데.”

송이

 “나 아파서 두 번 말 못해요. 빨리 옷 걷어요. 소독만 해줄게요.”

제영

 “아픕니까?”

왠지 평소보다 힘이 없는 송이의 목소리에 제영은 고개를 들어 송이를 바라보았다.

송이

 “누구한테 차여서 아픈가 봐요.”

덤덤한 목소리로 상처 부위를 소독하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의 마음 한쪽이 아려왔다.

송이

 “이거..칼에 찔린 거 맞죠….”

제영

 “스친 겁니다.”

송이

 “아무튼 칼 맞은 거잖아요.”

제영

 “.......”

송이는 상처 부위에 꼼꼼하게 연고를 바르고, 붕대까지 채워주었다.

 

제영

 “고마워요.”

송이

 “제가 오지랖이 넓어서요...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그런 거니까 괜히 부담스러워하지 마세요….”

제영

 “......”

치료를 끝낸 송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다가 하늘이 핑하고 도는 기분에 얼른 옆에 탁자를 손으로 짚었다.

제영

  “괜찮아요?”

놀란 제영이 송이를 부축하자 송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영을 밀어내었다.

송이

 “괜찮아요..”

제영

 “침대에 누울래요?”

송이

 “..혼자 할 수 있어요. 바쁘실 텐데 가보세요.”

송이는 비틀비틀 침대로 걸어가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제영

 “그럼..가볼게요.”

까무룩 잠이 든 송이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을 때 겨우 눈을 떴다.

송이

 “몇 시야..”

손으로 더듬거려 휴대폰을 찾아 시계를 보던 송이는 제영에게서 온 문자를 보고 벌떡 일어났다.

제영

 -문고리에 죽 걸어놨으니까 일어나면 먹어요.-

송이는 문을 열고 나가 문고리를 확인했다. 쇼핑백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집으로 들어와 죽 그릇의 뚜껑을 열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노란 호박죽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뚜껑엔 노란 포스트잇에 꾹꾹 눌러쓴 제영의 메모가 붙여져 있었다.

(이거 꼭 챙겨 먹고 약도 꼭 먹어요. 그리고 아프지 말아요. 하제영)

송이는 휴대폰을 들고 잠시 망설이다 제영의 번호를 꾹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피곤한 듯 꽉 잠긴 제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영

 [여보세요.]

송이

 “저예요.”

제영

 [아..죽 먹었습니까?]

송이

 “네..감사합니다.”

제영

 [약..꼭 챙겨 먹어요.]

송이

 “...경위님.”

제영

 [네.]

송이

 “경위님...이거 그냥 아는 사람한테 베푸는 친절 같은 거죠..?”

제영

 [......]

송이

 “그렇게 받아들이면 되죠?”

제영

 [..상처 치료해 준 거에 대한 보답입니다.]

송이

 “..네 끊을게요….”

보답...송이는 갑자기 힘이 쭉 빠지는 기분에 침대에 누워 눈을 붙였다.

*** 

민석

 “누나 몸 좀 괜찮아요?”

송이

 “응 괜찮아..”

민석은 이틀 만에 보는 송이의 얼굴을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민석

 “살 빠졌어요 누나.”

송이

 “아..입맛이 없어서..”

민석

 “누나 우리 고기 먹으러 가요 내가 살게요.”

송이

 “아냐..괜찮아.”

민석

 “이렇게 힘도 없고 어? 살도 빠지고..내가 걱정돼서 그래요. 선배를 생각하는 후배의 마음! 거절하지 말아주십시오 선배님?”

결국, 송이는 민석의 손에 이끌려 고깃집으로 향했다.

민석

 “이모 여기 소갈비 2인분이요~”

송이

 “민석아..돼지 갈비 먹으러 가자..여기 되게 비싸..”

민석

 “저 어제 알바비 받았어요~누나한테 이 정도 사줄 수 있거든요?”

송이

 “아니 그래도...너 고생해서 벌은 알바비를 이렇게 쓰면..”

민석

 “충분히 가치 있어요. 누나 얼른 먹어요 고기 타요!”

송이

 “어?어..”

고기를 앞에 두고도 깨작거리는 송이를 본 민석은 고기를 굽던 집게를 내려놓고 상추 쌈을 싸서 송이에게 내밀었다.

민석

 “아 해요.”

송이

 “어?아니 내가 먹..”

송이가 뭐라 하기도 전에 입안에 상추 쌈을 넣어버리는 민석이다.

민석

 “많이 먹고 힘 좀 내요 누나.”

민석이 덕에 소고기로 몸보신을 한 송이는 미안한 마음에 커피라도 사야겠다며 카페로 향했다.

송이

 “다음엔 내가 꼭 밥 살게,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

민석

 “괜찮아요~ 내가 누나 몸보신 시켜주고 싶어서 간 건데요 뭐~”

송이

 “그래도 너무 비싼 거 얻어먹었어.”

민석

“그럼 다음에 저 영화 보여주세요. 누나.”

송이

 “영화?”

민석

 “네. 누나랑 저랑 둘이 보러 가요.”

송이

 “그래..영화 보러 가자.”

*** 

은애

 “쏭!!!”

자신을 보자마자 반갑게 달려오는 은애를 보며 송이는 한껏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은애

 “너 무슨 일 있어?”

송이

 “어? 아..아니~ 내가 무슨 일이 있어..그냥 몸이 아직 덜 나았나 보지..”

송이는 애써 은애의 시선을 피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수업준비를 했다.

멍하니 수업을 듣는 송이를 가만히 바라보던 은애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송이의 손목을 잡고 학교 근처 카페로 향했다.

은애

 “너 무슨 일 있지?”

송이

 “없다니까..”

은애

 “근데 왜 하루 종일 멍해.”

송이

 “.......”

은애

 “송송이 나 너 친구 맞지?”

송이

 “..미안 은애야..”

은애

 “내가 다 도와줄 순 없지만 너 힘들 때 옆에서 들어 줄 순 있잖아.”

송이

 “사실은..”

잠시 망설이던 송이는 은애의 채근에 제영과의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은애

 “제대로 고백도 안 해 놓고선 벌써 차인 사람처럼 그러냐.”

송이

 “아니 경위님은 나 여자로 안 본다니까.”

은애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송이

 “그냥..그럴 거 같아.”

은애

 “미리 겁먹지 말고 제대로 표현을 하고 고백을 해.”

송이

 “......”

은애

 “좋아한다고 말이라도 하고, 좋아한다는 표현이라도 해.”

송이

 “......”

은애

 “아무것도 안 하고 포기하고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은애의 말에 송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뻔뻔한 척 얼굴에 철판을 깔고 경찰청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제영

 “여긴 무슨 일입니까?”

송이

 “경위님 보고 싶어서요.”

당돌한 송이의 태도에 제영은 당황스러웠다.

제영

 “여기 송송이씨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그런 곳 아닙니다.”

송이

 “알아요.”

거의 매일은 출근 도장 찍듯 경찰청 앞을 드나드는 송이를 제영은 피해 다녔다.

*

송이

 “경위님!!”

자신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다른 형사들이 보이지도 않는지 제영은 해맑게 웃으며 달려오는 송이의 손목을 붙잡고 근처 카페로 향했다.

제영

 “송송이씨.”

송이

 “네?”

제영

 “내 말이 우스워요?”

처음 보는 제영의 무서운 표정에 송이는 어깨를 잔뜩 움츠렸다.

송이

 “아뇨..”

제영

 “근데 왜 자꾸 찾아옵니까?”

송이

 “저는 그냥..”

제영

 “저번에 말했듯이 송송이씨가 가지고 있는 감정, 동경입니다.”

못을 박듯, 단호하게 말하는 제영이다.

송이

 “그러니까 이게 동경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려구요.”

제영

 “뭐라구요?”

한마디도 지지 않고 대꾸하는 송이의 태도에 제영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송이

 “그러니까..밀어내지 말아요...경위님 귀찮게 하지 않을게요.”

제영

 “......”

송이

 “그냥...후회하지 않을 만큼 해볼 거 다 해보고..안되면 그때 미련 없이 마음 접을게요.”

송이를 보내고, 서로 돌아온 제영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남

 “하 경위님!”

제영

 “무슨 일입니까?”

남

 “또 터졌답니다.”

제영

 “이번엔 어딥니까?”

남

 “서울청 근처 행복 빌라 골목이랍니다.”

제영

 “행복 빌라요?”

남

 “네 행복 빌라에 혼자 사는 여대생들이 많이 삽니다.”

익숙한 이름에 제영은 문득 저번에 술에 취한 송이를 데려다줄 때 걸었던 그 거리를 생각했다.

워낙 구석져 있고, 가로등까지 없어 초저녁에도 으스스한 분위기가 흐르는 그런 거리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곳에 많은 여대생이 혼자 산단다.

제영

 “범인은 잡았습니까?”

남

 “그 짧은 시간 새에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답니다.”

제영

 “뭐라구요? 지금 그게 말이라고 합니까?”

남

 “죄송합니다.”

제영

 “그래서 지금 이렇게 손 놓고 있습니까? 인력 더 보강하고 수사 더 강화합니다.”

남

 “네 알겠습니다.”

계속해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제영은 불안한 마음에 송이의 휴대폰 번호를 눌렀다.

평소면 한두 번 신호음이 가고 바로 송이의 목소리가 들렸을 텐데 길고 긴 신호음이 다 가고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안내가 나와도 송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제영

 “설마...”

제영은 재킷을 챙겨 들고 급하게 행복 빌라로 향했다.


내 경찰아저씬데요?5화 - 동경이 아닌가봐요.

송이의 빌라 앞에 도착한 제영은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맑은 초인종 소리가 복도를 메우고, 제영은 긴장한 듯 땀이 배어나는 손바닥을 바지춤에 문질러 닦았다.

한참이 지나도 안쪽에선 반응이 없었다.

제영은 불안한 마음에 다시 한 번 송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희미하게 집 안에서 들리는 벨 소리에 제영의 마음은 더욱더 불안해졌다.

급한 마음에 박 형사에게 무전을 하며 계단을 내려가던 제영은 까만 봉지를 달랑달랑 흔들며 계단을 오르던 송이와 딱 마주쳤다.

송이

 “경위님?”

제영

 “..송송이씨?”

박형사

 [이번 피해자 이름은 송송이가 아니고 김지선이라는 직장인 여성..]

때맞춰 피해자의 신상을 줄줄이 읊는 박 형사의 무전이 조용한 빌라 복도를 울렸다.

제영

 [아..감사합니다 박 형사님.]

제영은 크게 당황하며 얼른 무전기를 껐다.

송이

 “저 보러 온 거예요?”

물음표를 가득 단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헛기침하며 눈길을 피했다.

제영

 “거..밤 늦게.. 어디를 다녀옵니까?”

송이

 “아...라면이 다 떨어져서 근데 경위님 여기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제영

 “웬만하면 밤늦게 다니지 마요. 요새 흉흉합니다. 이 동네.”

송이

 “아..그 발바리요?”

제영

 “그걸 송송이씨가 어떻게 압니까?”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송이의 모습에 놀란 제영이 물었다.

송이

 “저도 뉴스 봐요.”

제영

 “아..근데 그걸 알면서도 지금 이 밤중에 밖에 나갔다 온 겁니까?”

송이

 “라면이 너무 먹고 싶어서.”

해맑게 웃으며 라면이 든 봉지를 흔드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짐짓 무서운 표정으로 송이의 팔목을 잡았다.

제영

 “요새 세상 진짜 위험합니다. 그러니까 절대 밤늦게 나가지 말아요. 알겠습니까?”

송이

 “경위님 지금 저 걱정하는 거예요?”

제영

 “송송이씨.”

송이

 “네 경위님?”

제영

 “제 직업이 뭡니까?”

송이

 “경찰이요!”

제영

 “그럼 경찰이 하는 일이 뭔지 압니까?”

송이

 “무서운 사람들 혼내주고 또..”

제영

 “대한민국 국민 지켜주는 겁니다.”

송이

 “....?”

제영

 “송송이씨도 대한민국 국민 중에 한사람입니다.”

송이

 “..아..”

제영

 “문단속 잘하고 창문단속도 하고 자요.”

제영은 송이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 뒤돌아섰다.

삐릭//

계단을 한 걸음 내려가던 제영은 다시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올려 송이의 집을 쳐다보았다.

송이

 “경위님!”

제영

 “뭡니까?”

송이

 “라면 먹고 갈래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라면 봉지를 흔드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씁하고 혀를 찼다.

제영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닙니다.”

송이

 “경위님이니까 이런 말 함부로 하는 건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내려가는 제영의 뒷모습에 혀를 빼꼼 내보이고는 문을 쾅하고 닫아버리는 송이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서울청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배회를 하던 송이는 저 멀리서 걸어오는 제영의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벽 뒤로 숨어버렸다.

100m..50m...10m.. 점점 다가오는 제영이 혹시라도 자신을 발견할까 봐 송이는 훕하고 숨까지 참았다.

제영

 “여기서 뭐 합니까?”

자신을 못 보고 지나쳤구나 싶어 잠시 방심하던 송이는 바로 뒤에서 들리는 제영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버렸다.

송이

 “어?어..어머 겨..경위님..하하..”

제영

 “왜 숨어요?”

송이

 “제가요? 어우 저 숨은 거 아닌데, 그냥..어..”

제영

 “그렇게 할 일이 없습니까?”

송이

 “경위님 보러 오는 것도 제가 할 많은 일 중 하난데요?”

제영

 “하아...”

따박따박 말대답을 하는 송이를 보며 제영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송이

 “그럼 경위님 봤으니까 전 이만 갈게요. 아 그리고 이거!”

송이는 조금은 뻔뻔스러운 얼굴로 제영에게 딸기우유 하나를 손에 쥐여 주고 저만치 가버렸다.

*

송이

 “아..비 오네..”

아침엔 말짱하던 날씨가 오후부터 꾸물거리더니 결국 비를 쏟아냈다.

평소처럼 경찰청 주변을 걸어가던 송이는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하려고 경찰청 건물 현관으로 뛰어 들어왔다.

가만히 서서 비 오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송이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가디건을 꺼내 들어 머리에 썼다.

송이

 “하나..둘..”

셋! 하면 빗속으로 뛰어나가려던 송이의 팔목을 누군가가 확 하고 잡아챘다.

송이

 “어?”

제영

 “뭐합니까?”

송이

 “경위님!”

제영

 “크..큼.”

송이가 반갑게 아는 척을 하자 제영은 잡고 있던 손목을 얼른 놓았다.

제영

 “이 비를 맞고 가려고 했습니까?”

송이

 “네? 아..집이 바로 앞이니까..”

제영

 “이거 쓰고 가요.”

제영은 손에 들려 있던 하얀 우산을 송이에게 내밀었다.

송이

 “아..고맙습니다.잘 쓰고 갔다 드릴게요.”

제영

 “안 줘도 됩니다.”

송이에게 우산을 건네주자마자 제영은 뒤돌아서서 경찰청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점점 자신에게 거리를 두는 제영의 모습에 송이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우산을 폈다.

송이

 “아...경위님 보고 싶다..”

은애

 “저기요 송송이 양 낼모레부터 중간고사 시험입니다만?”

송이

 “그러니까 지금 내가 3일째 경위님 얼굴을 못 보고 있잖아.”

은애

 “앞으로 3일은 더 못 볼 예정이고.”

송이

 “끄앙!!”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펴놓고 씨름을 하던 송이는 휴대폰을 꺼내 들어 제영의 번호를 뚫어져라. 바라만 보았다.

은애

 “그럴 거면 전화를 하던가.”

송이

 “그렇지 않아도 나한테 거리를 두고 있는데 귀찮게 하면 더 나 밀어내면 어떡해.”

송이는 시무룩한 얼굴로 휴대폰의 전원을 껐다. 

*

박형사

 “하 경위님 요새는 그 아가씨 안 보입니다?”

경찰청과는 어울리지 않는 여대생이 요 며칠간 매일 같이 눈에 띄었으니 경찰청에서도 송이는 이미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제영

 “바쁜가 보네요.”

박 형사의 물음에 제영은 짐짓 아무렇지 않게 대답은 했지만 요 며칠 보이지 않는 송이의 모습이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박형사

 “그 아가씨가 하 경위님 좋아하는 거 아닙니까?”

제영

 “..아닙니다.”

자꾸만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잡는 제영이다.

*

길고 긴 중간고사도 끝났겠다 제영이 좋아하는 딸기우유도 챙기고, 하제영 이라고 짙게 새겨진 우산도 챙겨 편한 마음으로 서울청으로 향했다.

송이

 “어?경위..!”

가까이 다가오는 제영의 모습에 반갑게 인사를 하려던 송이는 제영의 옆에 낯선 여자를 보고 멈칫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송이

 “어?어..”

어느새 자신의 앞에 선 제영과 낯선 여자를 보고 당황한 송이가 시선을 둘 곳을 찾았다.

제영

 “무슨 일입니까?”

송이

 “네?어..”

소희

 “너 아는 사람이야?”

제영이 송이에게 아는 체를 하자 옆에 있던 여자가 제영에게 물었다.

제영

 “아 그냥...저번에 한번 도와준 학생.”

송이

 “......”

너무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자신을 저번에 도와준 학생이라며 지칭하는 제영의 모습에 송이는 맥이 탁 풀려버렸다.

소희

 “아 그렇구나~오 하제영 꽤 멋진 경찰인가보다 감사하다고 따로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

노란 원피스를 입은 여자의 모습은 어느 누가 봐도 성숙해 보이고 예뻐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영과 너무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거기에 비하면 자신은 초라한 모습 인 것 같아 어깨가 절로 움츠러든 송이다.

‘아..옷이라도 갈아입고 올걸...’

시험이 끝나 들뜬 마음에 편안한 후드티에 청바지 차림으로 달려온 자신의 모습이 그 순간만큼은 너무 창피했다.

제영

 “무슨 일입니까?”

송이

 “아..네..이거 저번에 빌려주셨던 우산이요..돌려드리려구요..”

제영

 “안 돌려줘도 되는데, 고마워요.”

마치 자신을 그냥 그런 학생쯤으로 대하는 제영의 모습에 송이는 울컥 눈물이 올라오는 것 같아 입술을 꾹 깨물었다.

송이

 “그럼 전 이만...”

우는 모습을 제영에게 들킬까 송이는 얼른 등을 돌렸다.

제영

 “고마워요 학생.”

끝까지 자신을 학생이라고 선을 그어버리는 제영의 모습에 결국 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온 송이는 한참을 울기만 했다.

그래도 조금은 가까워진 줄 알았는데...아니 조금은 가까워 질 줄 알았는데..혼자만의 착각이라고 생각하니 서러움이 몰려왔다.

송이

 “하제영 나쁜 놈!!!”

송이는 그 날 이후부터 제영을 찾아가지 않았다. 

은애

 “송송이.”

송이

 “어?어!”

은애

 “내 말 듣고 있어?”

은애는 멍하니 앉아 있는 송이의 어깨를 흔들었다.

송이

 “어..듣고 있어.”

은애

 “그럼 내가 지금 뭐라 그랬어?”

송이

 “어?미안..”

은애

 “소개팅하라고 너.”

송이

 “소개팅?”

은애

 “하경위 같은 노..아니 사람 잊어버리고 너 좋다는 사람 만나보라고.”

송이

 “어?”

은애

 “저번에 내가 말했지? 우리 오빠 친구가 우리 학교 왔다가 너 보고 마음에 들어 한다고….”

송이

 “아...어..”

은애

 “그 오빠 한번 만나봐.”

송이

 “은애야 지금은..”

은애

 “내일 세시 서울청 앞에 그 카페에서 보는 거로.”

송이

 “하필이면 서울청 앞이냐..”

은애

 “일부러 서울청 앞으로 잡았는데?”

송이

 “어?”

은애

 “혹시 알아? 하경위가 그 모습 보고 질투라도 할지?”

송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은애의 성화에 제영과 처음 만났던 그 카페에 소개팅을 나온 송이다.

수혁

 “아 안녕, 말 놔도 되지? 나 은애 오빠 친군데..”

송이

 “네?아..네...”

다짜고짜 친한 척 말을 놓는 남자의 모습에 송이는 기분이 나빴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

 “이름 송송이 맞지?”

송이

 “네?아..네.”

수혁

 “내 이름은 박수혁.”

송이

 “아..네.”

앞에서 열 번을 토해가며 자기 자랑만 해대는 수혁을 보며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며 맞장구를 쳐주던 송이는 문득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그 목소리의 주인을 쳐다보았다.

제영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까만 제복을 챙겨 입고 커피를 주문하는 제영의 모습에 내내 조용하던 송이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송이

 “하경위님..”

송이는 제영에게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나마 제영을 불러보았다.

제영

 “.....?”

마치 그 목소리를 들은 것처럼 고개를 돌린 제영은 송이와 두 눈이 딱 마주쳤다.

제영은 조금은 놀란 표정으로 송이와 수혁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곧 시선을 거뒀다.

수혁

 “아는 사람이야?”

수혁이 궁금한 듯 물어보자 송이는 그저 고개만 푹 숙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갔겠지 싶어 고개를 들자 제영은 주문한 커피를 들고 카페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송이

 “아...”

질투는 무슨...오은애 너 틀렸다.

수혁

 “우리 밥 먹으러 갈까?”

송이

 “네? 아..저 몸이 좀 안 좋아서요..집에 좀 들어가 봐야 할 거 같은데..”

수혁

 “어 그래? 데려다줄까?”

송이

 “아뇨 가까워요..”

굳이 데려다주겠다는 수혁과 헤어지고 집으로 걸어가던 송이는 서울청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아까처럼 조용히 제영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송이

 “하제영..”

제영

 “오랜만입니다.”

내 경찰아저씬데요?6화 - 괜한 기대 하게 하지 마세요

갑작스럽게 들리는 제영의 목소리에 놀란 송이가 잔뜩 굳은 표정으로, 뒤돌아섰다.

송이

 “하…. 경위님?”

조금 아까 본 그 까만 제복 차림의 제영이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당황한 송이는 도망가지도 못하고, 그저 멍하니 제영만 바라보았다.

제영

 “나 보러 온 겁니까?”

송이

 “네? 아…. 아뇨.”

제영의 목소리에 그제야 정신이 든 송이는 얼른 제영을 등지고 뒤돌아서 도망칠 준비를 했다.

제영

 “잠깐만.”

제영은 뒤돌아선 송이의 손목을 붙잡아 세웠다.

송이

 “…….”

제영

 “얘기 좀 해요.”

그렇게 제영의 손에 이끌려 좀 아까 수혁과 앉아 있던 그 카페에서 제영과 앉아 있는 송이다.

송이

 “말씀하세요….”

30분이다. 30분째 앞에 놓인 음료 빨대만 이로 씹어 괴롭힐 뿐 당최 입을 열지 않는 제영 때문에 답답한 송이가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제영

 “남자…. 친구 생겼습니까?”

송이

 “네??”

뜬금없는 물음에 송이는 자신이 잘 못 들은 건가 싶어 다시 물었다.

제영

 “크큼…. 아까 건너편에 앉았던 그 남자….”

송이

 “그걸 하 경위님이 왜 묻는 거예요?”

송이의 되물음에 당황한 건 오히려 제영 쪽이었다.

제영

 “그게….”

송이

 “그냥 아는 학생의 연애 문제까지 왜 하 경위님이 신경을 쓰시는 거예요?”

제영

 “…….”

송이의 물음에 제영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또다시 이어지는 침묵에 답답해진 송이는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송이

 “할 말…. 없으시면 저 먼저 가볼게요.”

제영

 “…. 송송이 씨.”

송이

 “네.”

제영

 “왜 요새 안 옵니까?”

송이

 “…. 지금 그 말이요.”

제영

 “…….”

송이

 “그거 상대방이 괜한 기대 하게 만드는 아주 안 좋은 말 이예요.”

제영

 “…….”

송이

 “괜한 기대심 갖게 하지 마요. 제 감정 책임질 수 있는 거 아니면.”

송이는 처음으로 제영에게 먼저 등을 보였다.

제영

 “괜한 기대심….”

송이가 자리를 뜬 후에도 제영은 한참이나 그 자리를 뜨지 못했다.

*

은애

 “쏭! 너 어제 아파서 그냥 집에 들어갔다며!”

송이

 “어? 어….”

은애

 “수혁 오빠가 엄청나게 서운해하더라.”

송이

 “아….”

은애

 “다음 주에 시간 되면 한 번 더….”

송이

 “저 은애야 나 당분간 소개팅 같은 거 안 하려고….”

은애

 “어?”

송이

 “그냥….”

은애

 “…. 그래…. 수혁 오빠한텐 내가 잘 말할게.”

은애는 송이의 눈치를 한번 보고는 더는 묻지 않았다.

은애

 “가자! 수업 들으러! 오늘 쏭이 좋아하는 심리학 강의 있는 날이지?”

송이

 “응.”

송이는 복잡해져 오는 머릿속을 뒤로 하고 은애와 함께 강의실로 들어섰다.

심리학이 교양수업이긴 하지만 평소에 관심이 있던 과목이라 항상 앞자리에 앉는 송이었다.

은애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송이는 강단에 성큼 들어서는 익숙한 제복 차림의 경찰을 보고 말문이 막혀버렸다.

은애

 “저…. 저 사람 하 경위님 아냐…?”

은애의 말에 송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두 눈을 크게 뜨고 강단에 들어선 사람이 제영이 맞는지 계속 해서 확인을 했다.

 

제영

 “안녕하세요, 서울청 광수대 소속 하제영 경위입니다. 심리학 박성호 교수님께서 2주 동안 외국에 가시게 되어 제가 교수님의 부탁으로 잠시 심리학 강의를 맡게 되었습니다. 아, 저는 심리학의 일종인 프로파일링에 관해서 수업하게 될 겁니다.”

그런 송이에게 확신이라도 심어 주려는 듯, 마이크를 타고 흐르는 제영의 자기소개에 송이의 머릿속은 멍해졌다.

제영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주 동안 잘 부탁합니다.”

제영의 소개에 학생들은 박수를 쳤고, 박수 소리에 정신이 든 송이는 혹시라도 제영과 눈이 마주칠까 봐 고개를 푹 숙였다.

곧이어, 강의가 시작되고 송이는 아까운 수업 시간을 놓치기 싫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제영

 “그래서 범인들의 심리는…”

하필이면 그때, 제영과 두 눈이 딱 마주쳐버렸다.

송이는 얼른 시선을 피하고 책에 시선을 고정했다.

수업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른 채 그저 책만 뚫어지게 보던 송이는 수업이 끝났다는 제영의 말에 후다닥 가방을 챙겨 강의실을 벗어났다. 

자신을 바라보는 제영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송이는 애써 못 본 척하였다.

은애

 “진짜 대박. 어떻게 하 경위님이 박 교수님 대신에…”

송이

 “심리학이 일주일에 몇 번 있지?”

은애

 “세 번.”

송이

 “2주면 여섯 번. 2주 동안 수업을 안 나가면….”

은애

 “에프.”

송이

 “어…”

졸업반인데, 에프를 받는다면…. 그 결과는 너무도 처참했기에 송이는 울며 겨자 먹기로 수업을 나갈 수밖에 없었다.

제영

 “송송이 씨.”

바로 뒤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송이는 못 들은 척 발걸음을 더욱더 빨리했다.

제영

 “송송이 씨.”

결국, 얼마 가지 않아 제영에게 손목을 붙잡힌 송이다.

제영

 “내가 부르는 소리 못 들었습니까?”

송이

 “…. 아 부르셨어요.”

송이는 잡힌 손목을 비틀어 빼고는 제영에게 한 걸음 떨어져서 섰다.

달라진 송이의 태도에 제영은 덜컥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송이

 “하실 말씀 있으신 거 아녜요? 저희 바쁜데.”

제영

 “부탁할 게 있는데….”

송이

 “하세요.”

제영

 “박 교수님 조교도 같이 외국에 나가서…제 수업 조교 좀 부탁해도 됩니까? 아 조교라기보단 그냥 수업 준비하는 것 좀 도와주면 되는 건데…”

은애

 “하 참….”

제영의 말에 코웃음을 친 건 송이가 아닌 옆에 서 있던 은애였다.

은애

 “하 경위님 되게 웃기시네요.”

송이

 “…….”

은애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 아니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행동 아닌가?”

송이

 “은애야 그만해.”

은애

 “뭘 그만해.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하제영 경위님 송이가 하 경위님 좋아하는 거 알면서도 지금 이런 부탁을 하는 거예요?”

제영

 “…. 난 그냥….”

은애

 “하 경위님이 송이 싫다면서요.”

제영

 “싫다고는 안 했습니다.”

제영의 말에 은애는 어이가 없다는 듯 신경질적인 손길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송이

 “조교 필요하시면 제가 할게요.”

송이의 말에 놀란 은애는 송이의 팔을 찰싹 때렸다.

은애

 “너 미쳤어?”

송이

 “아니 안 미쳤어. 강의 시간 문자로 보내주세요. 그럼 저흰 이만 가보겠습니다.”

송이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한 후 은애의 팔을 이끌고 근처 카페로 향했다.

아르바이트생

 “음료 두 잔 나왔습니다.”

커피가 나오자마자 은애는 벌컥벌컥 들이켰다.

은애

 “하아….”

송이

 “안 차가워?”

은애

 “어, 이제 좀 가라앉는다 속이.”

송이

 “오은애 씨 진정하세요.”

장난스러운 송이의 말투에도 은애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은애

 “송송이 너 괜찮아?”

송이

 “응 괜찮아.”

은애

 “진짜?”

송이

 “진짜! 괜찮아.”

송이는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려 미소를 지었다.

은애

 “조교 하면 거의 매일 하 경위님하고 얼굴 마주 볼 텐데 진짜 괜찮겠어?”

송이

 “어쩌면 이게 더 마음 정리 하기 편할지 몰라.”

은애

 “매일 보는 게?”

송이

 “그 사람이 나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매일 두 눈으로 보고 느끼면 더 빨리 마음을 접을 수 있지 않을까? 안 보면 왠지 좀 기대감이 생기잖아. 한 번이라도 날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한 번쯤 찾아가면 반겨주지 않을까 하는…. 그런 쓸데없는 기대감.”

은애

 “…….”

은애는 송이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해줄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송이는 씻지도 않은 채 그대로 침대에 누워버렸다.

‘싫다고는 안 했습니다.’

싫다고는 안 했습니다…. 라는 말에 의미가 대체 무엇일까…. 아니 또 나 혼자 괜한 의미부여를 하고 있나….

온종일 복잡한 머릿속에 송이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지갑을 챙겼다.

송이

 “나갔다 올까?”

밤늦은 시간에 나가도 무서운 걸 몰랐던 송이는 요 며칠 주변에서 일어나는 흉흉한 범죄에 잠시 망설였다.

송이

 “잠깐은 괜찮겠지.”

집 앞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사서 입에 문 채 동네를 걷던 송이는 멈칫 걸음을 멈췄다.

송이

 “하…. 경위님?”

제복이 아닌 사복 차림의 제영이 그때 봤던 그 노란 원피스를 입었던 여자와 다정하게 걷고 있었다.

송이는 자신도 모르게 얼른 옆 골목으로 몸을 숨겼다.

처음 보는 제영의 환한 미소와 제영에게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하는 여자의 모습은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연인의 모습이었다.

제영과 그 여자가 저 멀리 갈 때까지도 송이는 골목에서 나오지 못했다.

송이

 “어….”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이 진득하게 녹아내리고 나서야 정신이 든 송이는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을 쓰레기통에 쑤셔 박아 버리고는 골목을 빠져나 왔다.

*** 

다음 날, 송이는 복잡한 마음을 채 정리 하지 못하고 제영의 교수실을 찾았다.

똑똑-

제영

 “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바쁘게 자료를 정리하고 있는 제영이 고개를 들고 송이에게 눈인사를 했다.

송이

 “안녕하세요.”

송이도 꾸벅 인사를 하고는 들고 있던 가방을 한쪽에 내려놓았다.

송이

 “저는 뭘 도우면 될까요?”

송이의 물음에 제영은 자료정리를 하다 말고 냉장고에서 딸기우유 하나를 꺼내 송이에게 내밀었다.

제영

 “이거 먼저 먹으면서 좀 기다려요. 자료 정리 다 하면 송이 씨는 추려주기만 하면 되니까.”

송이

 “그럼 자료 정리 다 하면 전화 주세요. 저는 나가서….”

제영이 내민 딸기우유를 무시하고, 가방을 챙겨 일어서는 송이를 제영은 불러 세우고 송이의 손에 딸기우유를 쥐여주었다.

제영

 “먹으면서 기다려요.”

송이

 “저 딸기우유 안 좋아해요.”

송이는 제영이 쥐여 준 딸기우유를 책상에 내려놓고 교수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

민석

 “누나!!”

학교 캠퍼스 벤치에 앉아있던 송이는 저 멀리서 자신을 부르며 달려오는 민석을 보고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송이

 “어 민석아.”

민석

 “오늘 수업 없는 날 아녜요? 여기서 뭐 해요?”

송이

 “아 나 심리학 임시 조교 하게 돼서.”

민석

 “심리학이면 박 교수님 수업 아녜요? 박 교수님 조교는 진호 형이잖아요.”

송이

 “아…. 이번에 박 교수님이 외국 나가셨거든 진호 선배도 같이. 그래서 그 수업을 대신 할 사람이 현직 경찰이야. 아 민석이 너도 알지? 그때 본 경위님.”

민석

 “아…네 알아요.”

송이

 “그분이 나한테 조교 일을 부탁하셔서….”

민석

 “아…누나! 나도 도울까요?”

송이

 “뭐를?”

민석

 “조교 일이요!”

송이

 “아냐 별거 없던데 뭐~너 수업 시간 다 된 거 아냐? 친구들 기다린다. 얼른 가봐.”

송이의 말에 민석은 아쉬운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친구들에게 달려갔다.

지이잉-

-하 경위님-

송이

 “네.”

제영

 "자료 정리 다 했습니다."

송이

 “네.”

전화를 끊은 송이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겼다.

똑똑-

제영

 “네.”

송이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책상 앞에 앉아있던 제영이 일어나 소파에 앉았다.

제영

 “앉아요.”

송이

 “네.”

송이가 소파에 앉아 제영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송이에게 내밀었다.

제영

 “이거는 마시죠?”

제영의 물음에 송이는 가만히 제영을 바라보았다.

제영

 “왜요?”

송이의 올곧은 시선에 제영은 물음표를 가득 달고 송이에게 물었다.

송이

 “…. 아니에요. 잘 마실게요. 경위님.”

송이는 괜히 또 혼자 의미부여를 하나 싶은 마음에 아메리카노를 벌컥 들이켰다.

송이

 “혹시 시럽 넣으셨어요?”

씁쓸한 맛 뒤에 약간의 달콤함이 입안에 퍼지자 송이는 놀란 표정으로 제영에게 물었다.

제영

 “네. 저번에 보니까 시럽…. 넣는 것 같아서….”

송이

 “…….”

이러면 자꾸 기대하게 되잖아요….

송이는 목 끝까지 차오르는 말을 겨우 눌러 삼키고 커피만 들이켰다.

제영

 “2주 동안 잘 부탁해요. 송송이 씨.”

앞으로 쑥 내밀어 진 커다란 손에 잠시 망설이던 송이는 조심스럽게 제영의 손을 마주 잡았다.

송이

 “네…. 저도….”

따뜻한 제영의 온기에 송이의 마음 한쪽이 또다시 뭉근해졌다.


내 경찰아저씬데요?7화 - 무슨 사이

박형사

 “강의는 할 만해요?”

제영

 “네.”

박형사

 “아니 인터뷰하는 것도 싫어하시는 분께서 대학강의를 하신다고 해서 좀 놀랐습니다.”

제영

 “아 부탁하신 분이 저희 아버지랑 각별하신 사이라….”

평소에 뉴스 인터뷰조차도 거절하는 제영인데 누군가의 부탁으로 선뜻 대학 강의를 하겠다고 해서 박 형사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 모두 놀랐었다.

박형사

 “아 그럼 그 여기 자주 오던 아가씨도 봅니까?”

박 형사의 물음에 제영은 흠칫 놀라며, 들고 있던 펜을 떨어뜨렸다.

눈에 띄게 놀라는 제영의 모습에 박 형사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 밀어 넣었다.

제영

 “네? 어…. 봅니다.”

제영은 자신의 특강 조교가 송이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박형사

 “하 경위님.”

제영

 “네?”

박형사

 “요새는 10살 차이 괜찮습니다.”

제영

 “….네?”

박형사

 “파이팅.”

박 형사는 제영의 어깨를 한번 툭툭 두드렸다.

소희

 “하제영!”

제영

 “어 왔어?”

트레이닝복 차림의 소희는 자연스럽게 제영의 옆에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소희

 “그 아가씨는 잘 지내고?”

제영

 “어…”

제영은 주변 눈치를 살피곤 목소리를 낮췄다.

제영

 “일어나.”

소희

 “왜 여기도 좋은데.”

제영

 “여기 놀이터 아니야 얼른 일어나.”

소희

 “아 그냥 여기서 얘기해.”

제영

 “내 연애 사업 동네방네 소문낼 거 아니면 얼른 일어나.”

소희

 “이미 박 형사님은 알고 계시는 거 같던데?”

제영

 “뭐?”

소희

 “너만 모르는 거야.”

제영

 “아 일단 일어나. 밥 먹으러 가게.”

근처 식당에 도착한 제영은 자리에 앉자마자 속사포로 질문 공세를 퍼부어대는 소희의 입을 반찬으로 나온 깍두기로 틀어막았다.

제영

 “아 몰라 그만 물어봐.”

소희

 “이제 1주일 정도밖에 남았는데 그 꼬마 아가씨 돌아선 마음 다시 되돌려야 할 거 아냐.”

제영

 “…이제 나 싫어하는 거 같은데.”

소희

 “그러니까 왜 그렇게 매정하게 구냐 나 같아도 정떨어지겠다.”

소희는 샐쭉한 표정으로 국밥을 퍼먹었다.

제영

 “야 넌 여자애가 진짜….”

제영은 소희의 입가에 묻은 밥풀을 떼어주며 잔소리를 했다.

소희

 “내가 너한테 여자야? 가족 같은 친구지 평생 붙어 지낸.”

제영

 “생물학적으론 여자 맞잖아. 너.”

소희

 “이게 진짜 아까부터.”

숟가락을 들어 올리는 소희의 손을 가볍게 툭 쳐내곤 국밥 먹는 데 집중하는 제영이다.

소희

 “그러게 애초에 그렇게 매정하게 굴지 않았으면….”

제영

 “서영이가…올해 스물셋이야.”

제영의 말에 소희는 잠시 숟가락질을 멈췄다.

제영

 “잘 지내 서영이. 그니까 얼른 밥 먹어. 국밥 식겠다.”

소희

 “응….”

***

교수님의 건강상 문제로 오전 수업은 공강이라는 문자를 받은 송이는 오랜만에 늦게까지 잠을 자고 제영의 강의를 가기 전에 은애와 함께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학교 주변을 둘러 보았다.

은애

 “저기 하 경위님 아냐?”

은애가 가리키는 곳을 돌아보자 제영이 그때 봤던 노란 원피스 입은 여자에게 깍두기를 먹여주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은애

 “설마 여자친구?”

송이

 “어? 어…. 그런 가보지 우리 뭐 먹을래?”

송이는 애써 모르는 척, 발길을 옮겼다.

*

송이

 “아…. 가기 싫다.”

점심을 먹고, 커피 까지 마신 송이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제영의 교수실로 향했다.

똑똑-

제영

 “네.”

교수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제영이 커피를 마시며 자료 정리를 하고 있었다.

제영

 “왔습니까?”

송이

 “네.”

제영

 “커피 마실래요?”

송이

 “마셨어요.”

어쩐지 저번보다 더 차가워진 것만 같은 송이의 태도에 제영은 당황스러웠다.

둘 사이에 흐르는 무거운 적막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건 제영이었다.

제영

 “혹시 강의 끝나고…. 약속 있습니까?”

송이

 “왜요?”

제영

 “약속 없으면 저녁 먹읍시다. 같이.”

송이

 “약속 있어요.”

수업이 마치자마자 송이는 제영과 마주치기 전에 가방을 챙겨 들고 학교를 재빨리 빠져나왔다.

은애

 “쏭!”

학교 정문을 나설 때쯤, 수업이 끝난 은애가 송이를 발견하곤 뛰어와 팔짱을 끼었다.

송이

 “수업 끝났어?”

은애

 “응, 저녁 먹으러 갈 건데 쏭 너도 가자.”

송이

 “아냐 나 오늘은 먼저 들어갈게.”

은애

 “무슨 일 있어?”

송이

 “아니 그냥 좀 피곤해서.”

은애

 “어디 아픈 거 아니지?”

송이

 “응 그냥 좀 피곤해서 그래 집에 가서 좀 자면 괜찮을 거야.”

은애

 “그래 가서 푹 자. 이따 전화할게.”

송이

 “응 내일 봐.”

*** 

집에 도착한 송이는 침대에 멍하니 누워있었다.

달라진 제영의 태도에 송이의 마음은 더욱더 복잡해졌다.

지이이잉-

-하 경위님-

액정에 뜬 제영의 이름에 송이는 휴대폰을 뒤집었다.

진동은 그 후로 두 번 정도 울리곤 조용해졌다.

휴대폰 전원을 끄려던 송이는 아까 전화한다던 은애의 말을 떠올리곤 그냥 무음 모드로 바꿔버렸다.

그리곤 그냥 두 눈을 꼭 감고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송이

 “몇 시야….”

잠깐 눈을 붙인 송이는 손을 더듬거려 휴대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덧, 9시를 향해 가는 시곗바늘을 본 송이는 부스스 일어나 물 한 컵을 먹고는 냉장고를 뒤적였다.

송이

 “배고프다….”

하지만 한참 장을 보지 않은 냉장고 안엔 고작 달걀 몇 알만이 덩그러니 냉장고를 채우고 있었다.

송이는 귀찮은 몸을 이끌고 장을 보러 마트로 향했다.

필요한 것만 대충 산 송이는 아이스크림 하나를 입에 물고, 봉지를 달랑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진태

 “송송이?”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던 송이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휙 돌아보았다.

진태

 “맞네! 송송이.”

화려한 차림의 여자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는 진태는 송이와 눈이 마주치자 한쪽 입꼬리를 밀어 올렸다.

진태여자친구

 “누구야 오빠?”

진태의 팔짱을 끼고 있는 여자는 송이를 위아래로 훑어본 후 진태에게 애교스럽게 물었다.

진태

 “어, 구여친.”

진태여자친구

 “어머, 오빠 저런 여자랑 사귀었어? 우리 오빠 눈 되게 낮았었네.”

뜬금없이 당한 의문의 1패에 벙찐 송이는 너무 어이가 없는 나머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진태

 “지금은 좀 나아진 거야 저게.”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자신을 깎아내리는 진태의 말에 송이는 속에서 울컥 서러움이 올라왔다.

진태

 “이 밤중에 왜 혼자 다니냐? 연하남은 어디다 두고? 아…. 또 경찰 부를래?”

송이

 “하아…”

한껏 비아냥거리는 말투에 송이는 한숨을 깊게 한번 쉬고는 최대한 침착하게,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송이

 “참 구질구질하네.”

진태

 “뭐?”

송이는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막대기로 진태를 콕 가리킨 후, 노란 머리 여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송이

 “저기요, 이 남자 진짜 쓰레기거든요? 뭐 지금은 한창 좋을 때라 제 말이 들리지 않겠지만 조심하세요. 언제 뒤통수 칠지 몰라요.”

송이는 한껏 비웃으며 아이스크림 막대기를 보란 듯 쓰레기통에 쑤셔 넣었다.

송이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아, 쓰레기는 분리수거라도 되지…”

진태여자친구

 “야! 구여친 주제에 어디서 충고 질이야!”

송이의 태도에 발끈한 여자는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악을 써댔다.

송이

 “나도 저 남자랑 지금 그쪽이 했던 거 다 해봤거든요. 몇 달, 아니 어쩌면 며칠 후엔 당신이 또 다른 구여친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송이는 제법 호기로운 표정으로 노란 머리에게 경고를 하고는 미련 없이 뒤돌아섰다.

진태

 “야 송송이!”

진태는 뒤돌아서 가려는 송이의 팔목을 붙들었다.

송이

 “이거 놔.”

진태

 “너 뭘 믿고 이렇게 나대냐?”

제영

 “나 믿고 그러는 건데.”

송이의 팔목을 집은 진태의 손을 누군가가 탁하고 쳐냈다.

송이

 “하 경위님?”

놀란 송이가 돌아보자 제영이 잔뜩 굳은 표정으로 진태를 쳐다보고 있었다.

진태

 “허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진짜네.”

제영

 “아직도 괴롭히나 이 여자?”

진태

 “괴롭히는 게 아니라 제가 오히려 이 여자한테 까이는 중이었습니다. 경찰 아저씨.”

진태는 손가락으로 송이를 콕 가리키며 말했다.

제영

 “난폭한 줄만 알았더니 찌질하기까지 하네.”

제영은 피식 웃으며 송이를 자신의 쪽을 끌어당겨 뒤로 숨겼다.

제영

 “옆에는 새로운 여자친구 같은데 그냥 갈 길 가지 왜 애먼 사람을 잡으시나 그것도 둘이서 한 명을.”

진태

 “그쪽이나 가실 길 가세요 보아하니 송송이랑 별 사이도 아닌 거 같은데.”

진태는 보란 듯 노랑머리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제영

 “별 사이 맞는데.”

진태

 “……?”

제영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송이의 옆으로 다가갔다.

제영

 “이런 사이.”

그리곤 보란 듯 송이의 어깨에 팔을 둘러 자신의 품으로 가까이 끌어당겼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송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영을 올려다보았다.

 

제영

 “그쪽이랑은 좀 질적으로 다른 그런 사이지. 뭐랄까 좀 더 진실하고 깊은 사이?”

제영이 빙긋 웃으며 송이의 어깨를 더 끌어당기자, 진태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그 앞엔 노랑머리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잔뜩 화난 표정으로 서 있는 진태.

제영은 그런 진태의 곁으로 다가가 귓가에 속삭였다.

제영

 “우리 사이는 설명됐고…. 아 혹시 돈 많나? 저번에 말 안 했나? 내가 권력 남용해서 갖다 붙일 수 있는 죄랑 없는 죄들까지 싹 다 끌어모아서 생돈 한 몇백만 원 경찰서에 기부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고. 아, 그게 싫으면 규칙적인 생활 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 줄 수도 있는데. 뭐 둘 다 싫으면 저 아가씨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게 정답이겠지?”

할 말을 마친 제영은 진태의 어깨를 두어 번 툭툭 털어 주곤 송이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제영

 “가죠.”

송이

 “네? 네.”

송이는 얼떨결에 제영의 손에 이끌려 그 자리를 벗어났다.

*

제영

 “조심히 들어가요.”

굳이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는 제영 때문에 제영과 나란히 집 앞까지 온 송이다.

송이

 “네….”

제영

 “내일 봐요.”

송이

 “매번 구해주셔서…감사합니다.”

제영

 “그럼 나 부탁 하나 해도 됩니까?”

송이

 “네?”

제영

 “오늘 못 먹은 밥, 내일 먹읍시다.”

송이

 “네?”

제영

 “문단속 잘하고 자요.”

송이가 뭐라 대답도 하기 전에 제영은 저만큼 멀어져 버렸다.

송이

 “하아….”

전과는 다른 제영의 태도에 다잡았던 송이의 마음이 흔들렸다.

송이

 “아니지! 정신 차려 송송이.”

자꾸만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감정에 송이는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짝 소리 나게 때렸다.

***

똑똑-

제영

 “네 들어와요.”

송이가 교수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제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에 앉았다.

제영

 “커피 마셔요.”

그리곤 탁자 위에 놓여 있는 두 잔의 커피 중 한 잔을 송이에게 내밀었다.

송이

 “아…. 네 감사합니다.”

송이는 꾸벅 인사를 한 후 커피 한 모금을 쭉 들이켰다.

송이

 “어?”

씁쓸한 맛이 아닌 단맛이 입안에 퍼지자 송이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설마 했는데 이번에도 송이의 입맛에 딱 맞게 시럽을 타온 제영이었다.

송이

 “저기…. 하 경위님.”

제영

 “네?”

송이

 “제가 아메리카노에 시럽 넣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제영

 “처음 카페에서 만났을 때, 시럽 넣는 거 봤습니다.”

송이

 “그때 저 커피 거의 다 먹었을 때 오시지 않았어요?”

제영

 “그냥 그때 봤습니다. 어! 수업 시간 다 돼갑니다.”

제영은 서둘러 수업자료를 챙겨 강의실로 향했다.

제영

 “후유…”

처음 카페에서 만난 날, 일찍 도착했어도 송이의 행동이 귀여워서 뒤에서 조금 지켜봤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는 제영이다.

제영

 “오늘 강의는 여기서 마칩니다.”

제영의 강의가 끝나고 송이는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다.

제영

 “밥 먹으러 갑시다.”

언제 돌아왔는지 바로 뒤에서 들리는 제영의 목소리에 송이는 화들짝 놀랐다.

제영

 “뭘 그렇게 놀라요?”

송이

 “아…. 아뇨.”

제영

 “얼른 나와요.”

송이

 “네….”

결국, 제영과 함께 제영의 차가 있는 주차장으로 향하는 송이다.

제영

 “타요.”

송이

 “네….”

쭈뼛쭈뼛 차에 올라타자 담배 냄새가 아닌 달달한 복숭아 향이 송이의 코끝을 스쳤다.

평소에 담배를 엄청나게 피우는 제영인데 차에선 담배 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았다.

송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차 내부를 둘러보았다.

새 차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깨끗하게 정돈 된 차를 보고 송이는 자신도 모르게 우와 라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제영

 “왜요?”

송이

 “아…아니에요…. 어?”

자신의 쪽으로 몸을 확 숙이는 제영 때문에 놀란 송이가 두 눈을 꾹 감았다.

코끝에서 퍼지는 제영의 따뜻한 향에 훕 하고 숨까지 참는 송이다.

달칵-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송이가 눈을 뜨자, 이미 운전석에 앉아 있는 제영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제영

 “벨트.”

송이

 “하…. 하….”

자신의 몸에 채워져 있는 벨트를 본 송이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제영

 “출발할까요?”

송이

 “네? 네….”

부드럽게 핸들을 꺾어 학교를 빠져나간 제영의 차는 어느새 학교에서 한참을 벗어나 한적한 도로를 달려 작은 정원이 있는 한 레스토랑에 차를 세웠다.

제영

 “내려요.”

송이

 “네? 네….”

제영을 따라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서자,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의 레스토랑 안엔 열 테이블 정도밖에 없었다.

제영

 “하제영이요.”

직원

 “아, 이쪽으로 오세요.”

직원은 제영과 송이를 창가 쪽 자리로 안내했다.

직원

 “여깁니다.”

제영

 “감사합니다.”

창밖엔 노을 지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송이는 넋을 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제영

 “배 안 고픕니까?”

송이

 “네? 아…. 네.”

제영의 목소리에 놀란 송이가 그제야 메뉴판을 받아 들었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송이는 제일 가격이 싼 파스타를 골랐다.

송이

 “전 그냥…. 미트 스파게티….”

제영

 “여기는 립아이 스테이크가 맛있어요. 그거 먹어요.”

송이

 “네? 아니 저는…”

제영

 “밥 먹자고 한 사람이 낼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송이

 “네? 아….”

주문을 마치고, 송이는 그제야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테이블은 만석이었고, 손님들은 거의 연인들이었다.

그 중, 눈에 띄는 연인의 모습에 송이의 시선이 고정되었다.

연인(남)

 “으이구, 줘 내가 해줄게.”

연인(여)

 “아냐 오빠 내가 해볼래! 맨날 오빠가 해줄 순 없잖아~”

연인(남)

 “내가 평생 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줘.”

칼질을 잘 못 하는 여자의 스테이크 접시를 자연스럽게 남자가 가져가 고기를 다 썰어주었다.

사랑스러운 연인들의 모습에 지켜보는 송이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직원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차례차례 나왔고 송이의 앞에도 스테이크가 놓였다.

송이는 자신의 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서투른 솜씨로 썰기 시작했다.

제영

 “잠깐만요.”

그때, 제영이 송이의 접시를 가져가고 고기가 예쁘게 썰린 자신의 접시를 송이의 앞에 놓아주었다.

제영

 “먹어요.”

조금 아까 본 그 커플의 모습과도 참 닮아 보여, 송이는 그저 멍하니 앞에 놓인 고기만 바라보았다.

제영

 “안 먹습니까?”

송이

 “어…. 먹어요.”

그렇게 정신없는 상태로 식사를 마친 송이는 그 비싼 립아이 스테이크의 맛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집으로 향하는 적막한 차 안엔 라디오에서 선곡해준 간질간질한 사랑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내 경찰아저씬데요?8화 - 고백

평소와 다름없이 지루하디지루한 전공수업이 끝나고, 송이는 은애와 함께 학생식당으로 향했다.

은애

 “아 오늘도 김치 덮밥이다.”

송이

 “오늘은 참치도 들어가 있네! 나름.”

참치가 들어 있음에 애써 위안으로 삼으며, 송이는 빈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은애

 “쏭, 저기 하 경위님 아냐?”

송이

 “어?”

은애가 가리킨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제복이 아닌 사복 차림의 제영이 식판을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송이

 “설마…. 날 찾는 건 아니겠지?”

은애

 “너 찾는 거 같다.”

은애의 말에 고개를 들자, 제영이 반가운 표정을 하고 송이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제영

 “여기 앉아도 되죠?”

이미 앉으셨으면서 뭘 물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송이는 대답도 없이 그저 식판에 시선을 고정했다.

제영

 “오랜만에 먹으니까 맛있네요. 학식.”

송이

 “…. 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하던 송이는 결국 밥을 채 다 먹지 못하고 식판을 들고 일어섰다.

송이

 “저는 먼저 일어나 볼게요.”

제영

 “다 먹었습니까?”

식판에 그대로 남은 음식들을 보고 제영이 묻자, 송이는 고개 한번 끄덕이곤 얼른 자리를 피했다.

은애

 “그럼 저도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은애도 서둘러 송이를 따라나섰다.

한 걸음 다가가면 한 걸음, 아니 몇 걸음씩 뒷걸음질을 치는 송이를 보며 제영의 마음은 착잡했다.

결국, 제영도 밥을 먹다 말고 학교 뒤편으로 나와 담배를 찾아 입에 물었다.

제영

 “후우….”

매번 피우는 담배지만 오늘은 왠지 입안이 더 쓴 것 같아, 채 다 피우지 못하고 발로 비벼 꺼버리는 제영이다. 

은애

 “너 괜찮아?”

학생 식당에서 나온 송이는 은애와 학교 근처 카페로 향했다.

주문한 커피가 나와도 그저 멍하니 창밖만 응시하는 송이의 모습을 보고 은애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송이

 “어? 어….”

은애

 “정말 괜찮아?”

송이

 “어….”

은애

 “진짜?”

송이

 “어…. 우리 수업 들어가 봐야겠다.”

송이는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애

 “하 경위님 수업 조교 못 할 것 같으면 내가 대신할까?”

걱정스러운 은애의 말에 송이는 그저 고개를 흔들었다.

송이

 “나 괜찮아 은애야.”

똑똑//

제영

 “네.”

교수실로 들어서자 송이보다 한 학번 아래인 세희가 제영에게 갖은 아양을 부리고 있었다.

제영

 “그러니까 범죄자들은….”

제영이 설명을 하는 것은 들리지도 않는지 시선은 온통 제영에게 향해 있는 세희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제영은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제영

 “이제 이해하겠습니까?”

제영이 고개를 들자 세희는 표정을 싹 바꾸며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세희

 “네? 아…. 네!! 정말 완전히 이해했어요, 감사합니다. 경위님~ 저 다음에 또 와도 되죠?”

제영

 “네 모르는 거 있으면 또 물어봐도 됩니다.”

세희

 “네! 딸기우유 잘 마셨습니다~”

세희는 잔뜩 늘어뜨린 눈꼬리를 하고 제영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뒤돌아서 나가려다 송이와 눈이 마주치자 못 본 척, 그대로 교수실 밖으로 나갔다.

제영

 “앉아요.”

송이

 “네.”

송이는 그제야 소파에 앉았고, 탁자 위엔 깨끗하게 비워진 딸기우유 팩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빈 딸기우유 팩에 송이의 시선이 닿자 그걸 본 제영이 허둥지둥 우유 팩을 치웠다.

제영

 “아…. 딸기우유가 마침 남았길래….”

송이

 “……”

제영

 “커피 마실래요?”

송이

 “아뇨.”

송이는 왠지 모르게 사탕 빼앗긴 어린아이의 기분이 들어, 더 불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영

 “수업 끝나고 시간…. 있습니까?”

송이

 “…왜요?”

제영

 “할 말이…. 있어요.”

송이

 “…하 경위님.”

제영

 “네.”

송이

 “저한테 갑자기 왜 이러세요?”

제영

 “……”

송이

 “저 이제 경위님 안 좋아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에요. 그래서 조교도 한다고 했어요, 일부러 경위님이 저 싫어하는 모습 제 눈으로 보면 그나마 마음이 좀 빨리 정리되지 않을까 싶어서…. 근데 왜 자꾸 사람 마음 가지고 장난하세요? 밥 사준다. 그러고 시간 내달라 그러고…. 그런 건 관심 있는 이성한테 하는 행동이잖아요.”

송이는 그동안 참고 참았던 말들을 숨도 쉬지 않고 내뱉었다. 

제영

 “송송이 씨.”

송이

 “경위님이 저 싫어하니까…그러니까 제가….”

말간 눈물이 한가득 고인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송이

 “저 조교 안 할래요, 남은 기간은 다른 친구한테 부탁해볼게요. 죄송합니다.”

송이는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영

 “잠깐, 잠깐만요.”

제영은 뒤돌아서 가려는 송이의 손목을 붙잡아 세웠다.

송이

 “이거 놔요….”

제영

 “나 송송이 씨 안 싫어하는데.”

송이

 “싫어하진 않지만 좋아하지도 않잖아요.”

제영

 “누가 그래요? 안 좋아한다고.”

송이

 “그야 경위님이…. 네?”

제영

 “일단 수업 갑시다.”

제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는 송이의 손목을 붙잡고 강의실로 향했다.

강의실 앞에 도착하자마자 송이는 제영의 손목을 뿌리쳤다.

송이

 “아파요….”

제영

 “아…. 미안해요. 수업 끝나고 기다려요.”

제영의 말에 송이는 대답도 않고 강의실 문을 열었다.

가장 뒤에 자리를 잡고 앉은 은애가 송이를 보자 손을 흔들었다.

은애

 “쏭! 여기!”

송이

 “어? 어~”

평소와 다름없는 수업이 시작되고, 제영이 하는 수업이 송이의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저 아무 초점 없는 눈으로 칠판만 바라보던 송이는 제영과 눈이 마주쳤다.

당황한 송이가 얼른 눈을 피했지만 제영의 시선은 끝까지 송이를 쫓아갔다.

결국, 송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제영

 “오늘 수업은 여기서 마칩니다.”

평소보다 좀 빠르게 수업을 끝낸 제영에 학생들은 환호하며 강의실을 우르르 빠져나갔다.

은애

 “쏭! 오랜만에 쏭 집에 가서 고기 구워 먹자.”

송이

 “어? 아…. 나 교수실 가봐야 해.”

은애

 “수업 끝났는데?”

송이

 “아…. 뭐 좀 도와달라고 하셔서….”

은애

 “오래 걸려?”

송이

 “아마…”

은애

 “어쩔 수 없지 뭐 그럼 나 먼저 갈게~!”

송이

 “응 조심히 가.”

은애를 먼저 보낸 송이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교수실 앞에 도착했다. 

똑똑//

평소 같았으면 바로 ‘들어와요’라는 제영의 목소리가 들렸을 텐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몇 번 문을 더 두드리던 송이는 문을 살짝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분명 수업이 끝나고 자료를 챙겨서 먼저 나간 제영을 봤는데, 교수실 안엔 아무도 없었다.

송이

 “어디 가셨지….”

송이는 가방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아 제영을 기다렸다.

똑딱거리는 시계 초침 소리가 익숙해 질 때쯤이 돼도 제영이 오지 않자, 송이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송이

 “아…. 배터리.”

아침에 급하게 나오느라 충전을 하지 못해 간당간당하던 휴대폰은 이미 꺼져 있었다.

가방을 챙겨 일어서려던 송이는 멈칫했다.

‘누가 그래요? 안 좋아한다고.’

어쩌면 오늘이라면 제영의 진심을 알 기회인 것 같아 송이는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제영

 “모방 범죄예요, 매듭 묶는 방식은 거의 똑같았는데 지문도 덕지덕지 묻어 있고, 무엇보다 피해자 여성이 단발머리였어요. 밤손님 이놈은 머리 긴 여자들만 표적으로 삼았고 피해 여성들 머리끈을 표식처럼 가지고 갔잖아요. 지문도 하나 안 남겼고.”

제영

 “하아….”

수업을 마치고, 교수실로 내려오던 제영은 그렇게 찾아 헤매던 밤손님이 다시 나타난 것 같다는 전화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모방 범죄라는 사실에 한순간 온몸의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제영

 “구속 영장 신청하고 처넣어버려요.”

동료1

 “네.”

터덜터덜 서울청을 빠져나오던 제영은 퍼뜩 떠오르는 송이의 생각에 서둘러 송이의 번호를 눌렀다.

‘전원이 꺼져 있어 소리 샘으로….’

불안해진 제영은 서둘러 송이의 집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계단을 뛰어 올라가 문을 두드렸지만 고요한 집 안에선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제영

 “송송이!”

몇 번 더 문을 두드리던 제영은 설마 하는 생각에 서둘러 학교 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멍하니 앉아 시계 초침 소리를 들으며 제영을 기다리던 송이는 무거워져 오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깜빡 잠이 들어버렸다.

송이

 “어 몇 시지…”

문득 몸을 스치는 찬 기운에 부르르 떨며 일어난 송이는 어두컴컴해진 주변을 둘러보고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벽에 걸려 있는 시곗바늘은 이미 10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송이

 “기다리라더니……”

송이는 씁쓸하게 웃으며, 가방을 챙겼다.

늘 밝고 활기찼던 학교가 밤이 되자 왠지 으스스해 보였다.

괜히 오소소 소름이 돋아 잔뜩 몸을 움츠리며 걷는 송이다.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교문을 벗어나던 송이는 누군가가 쫓아오는 것 같은 기분에 배터리도 없는 휴대폰만 꼭 쥐었다.

탁//

송이

 “살려주세요!!”

갑자기 자신의 어깨를 잡는 손길에 놀란 송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무조건 빌었다.

송이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영

 “송송이 씨.”

두 눈을 질끈 감고 빌던 송이는 익숙한 목소리와 따뜻한 향에 스르르 눈을 떴다.

송이

 “하 경위님…?”

제영

 “늦어서 미안합니다.”

송이

 “놀랐잖아요!!”

긴장이 풀린 송이는 결국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아냈다.

제영

 “소…. 송송이 씨.”

송이

 “나는…. 나쁜 사람…. 인 줄 알고오…흐엉!”

느닷없는 송이의 눈물에 당황한 제영은 안절부절못하며 송이를 달래기 바빴다.

제영

 “미안해요. 내가 잘못했습니다…울지 마요.”

송이

 “내가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데에! 이제 와서 놀래 키기나 하고오~”

제영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송이

 “흐엉~~”

어깨까지 들썩이며 서럽게 우는 송이를 제영은 망설이다 조심히 품에 안아 달랬다. 

한참을 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송이를 겨우 달래서 차에 태운 제영은 아직 울음 끝이 남아 끅끅거리는 송이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물었다.

제영

 “…. 이제 좀 괜찮아졌습니까?”

송이

 “…. 네.”

뒤늦게 민망함이 밀려온 송이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제영

 “갑자기 사건이 터져서…어쩔 수가 없었어요…. 미안합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송이

 “……”

제영은 눈도 맞추지 않은 채 발끝만 바라보고 있는 송이를 조용히 불렀다.

제영

 “송송이 씨.”

송이

 “네.”

제영

 “이제…. 나 싫어합니까?”

송이

 “…싫다고 한 적은 없는데.”

제영

 “그럼 좋아…. 합니까?”

송이

 “…좋아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에요.”

제영

 “그럼 그 노력 하지 마요.”

놀란 송이가 그제야 퍼뜩 고개를 들어 제영과 눈을 맞췄다.

송이

 “네…?”

제영은 송이의 두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영

 “좋아합니다. 송송이 씨.”

송이

 “…네?”

제영

 “처음부터…송송이 씨한테 호감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다시피…내 직업이 많이 위험합니다. 그리고…송송이 씨랑 저 10살이나 차이가 나고…그래서 송송이 씨에 대한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어요…. 나 송송이 씨 좋아합니다. 그런데 나 때문에 송송이 씨 위험해 질 것 같아 겁이 덜컥 나서…. 그래서 나한테 다가오는 송송이 씨 밀어냈습니다. 나랑 사귀면…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연애 못 할 수도 있어요…. 전화 통화도 자주 못 하고, 자주 얼굴 못 볼 수도 있고…. 다칠 수도 있고…. 물론 절대 다치지 않게 노력은 할 겁니다…다른 남자친구들처럼 집에…. 못 데려다줄 수 있어요…아직…. 나에 대한 마음이 유효하다면 나…. 송송이 씨한테 고백해도 됩니까?”

송이

 “이럴 거면서…”

제영

 “송이 씨?”

제영의 진심 어린 고백을 들은 송이의 두 눈엔 다시 눈물이 가득 고였다.

제영

 “왜…. 왜 또 울어요.”

송이

 “왜…그랬어요! 이럴 거면서 왜 나한테 그렇게…나쁘게 굴었어요!!”

송이는 제영의 어깨를 주먹으로 마구 때렸다.

송이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나 싫다면서요!! 근데 왜 이제 와서…!! 그리고 경위님 여자친구도 있잖아요!!!”

제영은 결국 또 눈물을 쏟아내는 송이를 끌어안았다.

제영

 “싫다고 한 적 없다니까. 그리고…. 그 때 본 그 노란 원피스 입었던 여자는 제 친굽니다. 절대 걱정할 일 없는 사이예요.”

그리곤 어린아이 달래듯, 등을 토닥여 주었다.

제영

 “좋아합니다. 송송이 씨.”

제영은 뒷자리에서 박스 하나를 꺼내 송이에게 건넸다.

송이

 “이게…. 뭐예요?”

제영

 “열어 봐요.”

송이는 조심스럽게 박스를 열었다.

송이

 “이게 다…. 뭐예요?”

박스 안엔 전자 호루라기, 호신봉, 스프레이까지 온갖 호신용품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제영

 “송이 씨 옆을 내가 항상 지켜줄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송이

 “……”

제영

 “내가 송이 씨 옆을 지키지 못할 때…나 대신 지켜줄 애들입니다.”

송이

 “……”

제영

 “이런 거 챙겨줘야 할 정도로 남자친구로서 많이 부족하지만…나 열과 성을 다해서 송송이 씨 사랑해줄 자신 있습니다…. 그리고….”

제영은 또다시 차 뒤쪽을 뒤적거리더니 딸기우유가 가득 담긴 봉투 하나를 꺼냈다.

제영

 “딸기우유 매일 사줄 자신도 있는데….”

봉투에서 딸기우유 하나를 꺼낸 제영은 빨대를 꽂아 송이에게 내밀었다.

제영

 “그러니까 나랑 합시다. 연애.”

제영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던 송이는 제영이 내민 딸기우유를 받아들었다.

송이

 “나…생각보다 그렇게 어리지 않구요…연락 자주 하는 거 귀찮아해요…. 아 그리고 경위님 모르는데 저 호신술 할 줄 알아요…그리고…나도 경위님 많이 좋아해요…그래서 저런 호신용품을 써야 하는 날이 오더라도 경위님 미워하지 않을 자신 있어요…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나 마음고생 시킨 만큼 나 많이 좋아해 주세요.”

송이는 제영의 커다란 손을 야무지게 꼭 붙잡았다.

송이

 “연애해요. 우리.”

내 경찰아저씬데요?9화 - 질투

똑똑-

제영

 “들어와요.”

송이는 교수실 문 앞에서 숨을 크게 한번 쉬고 문고리를 돌렸다.

컴퓨터에 시선을 두었던 제영은 문을 열고 들어선 송이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제영

 “아…. 앉아요~”

송이

 “네.”

제영

 “흐…. 흠”

송이는 오랜만에 입은 치마가 어색해 괜히 말려 올라간 치맛단만 만지작거렸다. 마주 보고 앉은 둘 사이엔 전과는 다른 어색함이 흘렀다.

치마를 만지작거리는 송이를 가만히 바라보던 제영은 입고 있던 재킷을 벗었다.

그리고 자신의 재킷을 송이의 다리 위에 덮어주었다.

제영

 “불편해 보여서….”

송이

 “오랜만에 치마 입었는데…”

제영

 “네?”

송이

 “경위님한테 잘 보이려고 치마 입었다구요.”

뾰로통한 표정으로 다리에 놓인 재킷을 확 걷고 다리를 훤히 보이자 당황한 제영이 안절부절못하며 다시 다리 위에 재킷을 올려 꼭꼭 싸맸다.

제영

 “아…. 그…. 예뻐요…. 그래도 너무 짧은 건…입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영은 아직 잡히지 않은 발바리 때문에 사소한 것 하나에도 신경이 쓰였다.

송이

 “치…. 경위님 우리 할아버지 같아요.”

제영

 “정 입고 싶으면 내 앞에서만 입어요.”

예전과 비슷했지만, 예전과는 확실하게 다른 대화 주제였다.

어느덧 둘 사이엔 달콤한 공기가 흘렀다.

송이

 “어? 우리 수업 들어가야 해요.”

제영

 “갑시다.”

*

제영

 “범인들의 심리는 보통….”

수업하는 내내 제영의 시선이 따라다니는 바람에 송이는 제대로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송이

 “(그만 쳐다봐요.)”

송이는 얼굴 만지는 척 제영만 볼 수 있게 입을 가리고 입 모양으로 이야기했다.

그러자 제영은 입꼬리를 씰룩였다.

송이

 “(웃지 마세요.)”

제영

 “그래서…. 크…큼!!”

결국, 웃음이 터진 제영은 사레가 걸린 척 물을 마셨다.

제영

 “아…. 미안해요, 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고 과제는 나가면서 송송이 조교님한테 주시면 됩니다.”

사람들

 “수고하셨습니다~”

학생들이 우르르 송이에게 과제를 내밀었다. 마지막 자신의 과제까지 정리한 송이는 천천히 가방을 챙겨 강의실을 나왔다.

민석

 “누나!!”

송이

 “어? 민석아.”

바로 옆 강의실에서 나온 민석은 송이를 발견하고 얼른 뛰어와 송이의 손에 들려 있던 종이 뭉치를 들어주었다.

송이

 “고마워~”

민석

 “수업 다 끝났어요?”

송이

 “응 방금.”

민석

 “그럼 누나 오늘 우리 영화 보러 가요!”

송이

 “영화?”

민석

 “이번에 그 영웅들 나오는 영화 개봉했다는데 그거 보러 가요!”

송이

 “아….”

민석

 “저번에 누나가 영화 보러 가자고 해놓고서는….”

망설이는 송이를 보고 민석은 금세 시무룩해졌다.

송이

 “아 맞다…. 어 그럼 여기서 조금 기다려. 나 잠깐 교수실 좀 다녀올게.”

민석

 “네!”

송이는 서둘러 교수실로 향했다.

똑똑-

제영

 “들어 와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제영이 재킷을 입으며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영

 “어디 갔다 왔어요?”

송이

 “아.. 저 경위님 민석이 알죠?”

제영

 “저번에 술 취한 송송이 씨 같이 데려다줬던 그 남학생 말입니까?”

송이

 “네! 아…사실 저번에 민석이랑 영화를 보기로 했는데.”

제영

 “단둘이요?”

송이

 “아…. 그게 저번에 민석이가 아르바이트비로 고기를 사줬었거든요. 그래서 그 보답으로….”

제영

 “일단 갑시다.”

송이

 “네?”

제영

 “영화 보러 가자구요.”

송이

 “경위님도요?”

제영

 “아 나도 그 영화 보고 싶었습니다.”

송이

 “무슨 영화라곤 말 안 했는데….”

제영

 “아무튼 그 영화 꼭 보고 싶으니까 그 남.자. 후배랑 주차장으로 와요.”

*

제영은 운전석에, 송이는 옆 조수석, 민석은 뒷자리에 앉았다.

바깥은 완연한 봄이 다가오고 있는데 차 안 공기는 한 겨울처럼 차갑고 시렸다.

송이

 “경위님 우…. 우리 라디오 틀까요?”

참다못한 송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영

 “그냥 가죠. 금방 도착하는데.”

송이

 “아…. 넵.”

송이는 라디오로 향하던 손을 얼른 제자리에 놓았다.

민석

 “근데 경위님께서는 안 바쁘신가 봐요.”

뒤에서 못마땅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민석이 날 선 말투로 물었다.

제영

 “바빠도 영화 볼 시간은 있습니다.”

평소와는 다른 두 남자의 태도에 송이는 어쩔 줄 몰랐다.

민석

 “그럼 범인은 언제 잡아요?”

제영

 “아직 우리나라 살 만합니다. 내가 속한 광수대가 나설 만큼 큰 사건이 매일 터지진 않거든요.”

왠지 모를 두 남자의 기 싸움에 조마조마하며 안전벨트 끈만 꾹 붙잡고 있는 송이다.

영화관에 도착한 제영은 바로 표를 끊기 위해 매표소를 찾았다.

송이

 “경위님 어디 가세요?”

제영

 “표 끊어야 하지 않습니까?”

송이

 “이쪽에서 끊으면 돼요~”

송이가 줄줄이 늘어선 기계로 가 이것저것 누르니 영수증같이 생긴 종이가 쭉 나왔다.

송이

 “여기 표 끊었어요!”

제영

 “이게 영화 푭니까?”

송이

 “네! 경위님 팝콘 먹을래요?”

제영

 “아…. 네 팝콘 먹죠.”

송이

 “무슨 맛 좋아해요?”

제영

 “네? 팝콘 맛이…. 종류가 있습니까?”

사실 거의 5년 만에 영화관에 처음 온 제영은 자신이 왔을 때랑은 확연하게 다른 영화관 분위기에 어리둥절했다.

송이

 “경위님 영화관 엄청나게 오랜만이죠?”

제영

 “사실…. 언제 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송이

 “아…. 우리 이제 자주….”

민석

 “누나! 우리 콤보로 먹어요!”

송이

 “어? 어! 경위님 제가 알아서 사올게요. 여기서 기다려요!”

무슨 말을 하려던 송이는 민석의 부름에 하얀 치마를 팔랑거리며 민석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민석의 옆에서 열심히 메뉴를 고르는 송이의 모습과 그 옆에서 송이를 바라보고 있는 민석의 모습은 누가 봐도 참 잘 어울리는 커플 같았다.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뭔지 모를 기분 나쁜 울렁임에 제영은 그저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송이

 “경위님 이거 받아요!”

송이가 내민 건 달콤한 향이 솔솔 풍겨오는 팝콘이었다.

송이

 “경위님이랑 저랑 나눠 먹어요!”

송이의 손엔 빨대 두 개가 꽂혀 있는 콜라가 들려져 있었다.

나란히 꽂혀 있는 빨대에 괜스레 마음이 간질간질해진 제영의 입가엔 어느새 미소가 걸렸다.

송이

 “어? 영화 시작하겠다. 민석아 경위님! 우리 빨리 들어가요!”

뒤따라오는 민석의 손엔 싱글 사이즈의 팝콘과 빨대 한 개가 꽂혀있는 콜라가 들려져 있었다.

어쩌다 보니 송이를 가운데 두고 두 남자가 양 사이드에 앉게 되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제영은 자연스럽게 재킷을 벗어 옆에서 치마를 끌어 내리고 있는 송이의 다리를 덮어주었다.

송이

 “고마워요.”

제영이 민석 쪽을 흘끔 보자 민석이 주섬주섬 재킷을 도로 입고 있었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시작되는 화려한 액션에 송이는 넋을 놓고 영화에 빠져들었다.

제영 역시 오랜만에 보는 영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제영

 “어….”

한참을 집중해서 영화를 보던 제영은 팝콘 쪽으로 손을 뻗다가 송이의 손끝이 살짝 스치자 흠칫 놀랐다.

하지만 송이는 별 느낌도 없는지 여전히 스크린에 시선을 집중한 채 아무렇지 않게 팝콘을 먹었다.

제영

 “크…큼.”

괜히 목이 타는 듯한 느낌에 송이 쪽 팔걸이에 있는 콜라를 집어 든 제영이다.

그리곤 시원하게 쭉 들이키려던 제영은 갑자기 옆에서 쑥 하고 들어오는 송이의 얼굴에 깜짝 놀라 훕 하고 숨을 참았다.

사레가 들릴 뻔한 걸 겨우 참고 옆을 보자 송이는 여전히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제영의 빨간 빨대 옆에 꽂힌 또 다른 빨대로 콜라를 쭉 들이켜고 있었다.

괜히 얼굴이 붉어진 것 같은 기분에 손 부채질을 하는 제영을 송이가 흘끔 쳐다보았다.

송이

 “경위님 더워요?”

제영

 “어? 어 아닙니다.”

송이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제영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송이

 “열은 없는데….”

갑작스러운 송이의 손길에 제영이 흠칫 놀라 얼굴을 뒤로 뺐다. 

제영

 “크…큼, 괜찮아요.”

괜찮다는 제영의 말에 송이는 다시 스크린으로 시선을 옮겼다.

지이이잉-

겨우 다시 영화를 집중해서 보던 제영은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진동에 발신자를 확인하고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났다.

송이가 제영을 슬쩍 쳐다보자 제영이 자신의 손에 들린 휴대폰을 가리키며 상영관 밖으로 나갔다.

영화가 어느새 엔딩을 향해 가는데 제영의 자리는 계속 비어 있었다.

제영의 빈자리가 계속 신경이 쓰이는 송이는 영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잉-

스크린 속 악당들을 영웅들이 모두 물리칠 때쯤 송이의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제영

 "사건이 터져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끝까지 같이 못 봐서 미안해요. 끝나고 연락할게요." 

*

민석

 “하 경위님은 먼저 가셨어요?”

송이

 “어…. 어, 사건 터지셨대….”

결국, 민석과 둘이 영화관에서 나온 송이는 걱정되는 마음에 휴대폰만 바라보았다.

민석

 “누나!”

송이

 “어? 어….”

민석

 “우리 저녁 먹고 가요!”

송이

 “어 그럴까?”

민석과 영화관 근처 파스타 집에 마주 앉아 있어도 송이의 시선은 계속 테이블에 놓인 휴대폰으로 향해 있었다.

민석

 “누나, 전화 기다려요?”

송이

 “어? 어 아니~ 바…. 밥 먹자~”

민석의 말에 송이는 애써 시선을 파스타 쪽으로 옮겼다.

민석

 “누나.”

송이

 “어?”

민석

 “하제영 경위님이랑 친해요?”

송이

 “어? 어…. 그냥…. 뭐…”

송이는 민석의 물음에 그냥 얼버무리고 말았다.

제영이 잠시라도 학교에 있는 동안은 왠지 둘 사이가 알려져 봐야 좋을 것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석과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제영에게선 연락이 없었다.

송이는 걱정되는 마음에 괜히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자꾸 감기려는 두 눈을 부릅뜨며 침대 위에 앉아 제영의 연락을 기다리던 송이는 결국 스르르 잠이 들었다.

*** 

박형사

 “하 경위님, 발바리 떴습니다. 이번에도 행복 빌라 근처 골목길입니다.”

오랜만에 즐기는 문화생활에 집중하던 제영은 또다시 서울청 발바리가 떴다는 박 형사의 소식에 뒤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차를 몰았다.

제영

 “어떻게 된 겁니까?”

박형사

 “여기 이 순경이 이 주변 순찰하다가 발바리로 보이는 남자가 어떤 여대생을 계속 따라가는 것 같아서 얼른 뒤쫓아가서 검문 좀 하자니까 막 뛰더랍니다. 그리고는 행복 빌라 안으로 쑥 들어갔답니다. 아마 금방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제영

 “이 근처 어디 다른 데로 통하는 통로는 없어요?”

박형사

 “네, 이번엔 확실하게 다 차단했습니다.”

제영

 “거기 안 서!!!”

잠시 후, 발바리가 행복 빌라 밖으로 뛰어나왔다.

제영이 재빠르게 발바리의 팔을 낚아챘지만 곧이어 이어지는 알싸한 고통에 팔을 놓치고 말았다.

팔에 깊게 그어진 상처엔 피가 흘렀지만, 제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발바리를 뒤쫓았다.

다행히, 주변에 잠복하고 있던 형사 중 한 명이 발바리에게 발을 걸어 자빠뜨렸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제영이 발바리의 손목을 꺾어 수갑을 채웠다.

제영

 “김중호 씨 당신을 여대생 연쇄 성폭행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넌 묵비권 행사 하기만 해봐 내가 어떻게 해서든 그 입 열게 할 거니까 당신이 하는 말은 당신에게 불리한 증거가 될 수 있으며 당신 같은 쓰레기도 변호사 선임할 수 있는 권리 있다고 하는데 너 같은 쓰레기를 맡아 줄 변호사가 있을진 모르겠다.”

김중호

 “아 이거 놓으라고!!!”

범인이 격하게 반항하자 제영은 수갑을 채운 손목을 확 꺾었다.

김중호

 “으아악!!”

제영

 “가만히 있지? 경찰 상해죄까지 추가할까? 박 형사님 연행해요.”

*

지이이잉-

한참 단잠에 푹 빠져 있던 송이는 침대맡에서 울리는 진동소리에 퍼뜩 일어나 발신자도 확인하지 않고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송이

 “네!”

제영

 "안 잤습니까?"

송이

 “네 사건 해결됐어요?”

제영

 "네 그 발바리 잡았습니다."

송이

 “정말요?”

제영

 "이제 안 무서워해도 됩니다."

송이

 “어디…. 다치신 데는 없죠?”

송이의 물음에 멈칫한 제영은 하얀 반창고를 붙인 자신의 팔을 잠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제영

 "안 다쳤습니다. 아주 멀쩡해요."

송이

 “다행이다…. 걱정…. 했어요….”

제영

 "……."

걱정했다는 송이의 말에 제영은 왠지 모르게 울컥하는 기분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송이

 “경위님?”

다시 한 번 자신을 부르는 송이의 목소리에 그제야 정신이 든 제영은 아무렇지 않은 듯 대화를 이어나갔다.

제영

 "영화 잘 봤습니까?"

송이

 “네….”

제영

 "저녁은요?"

송이

 “먹었어요. 민석이랑….”

제영

 "……."

송이

 “경위님?”

제영

 "네."

송이

 “피곤하시겠다…. 아직 서에 계세요?”

제영

 "아뇨 집입니다."

송이

 “얼른 쉬세요….”

송이는 확 가라앉은 제영의 목소리가 걱정되는 마음에 얼른 전화를 끊으려 했다.

제영

 "송송이 씨."

송이

 “네?”

제영

 "나…할 말 있는데…."

송이

 “뭔데요?”

잠시 뜸을 들이던 제영은 결심한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영

 "강민석 씨랑 좀 덜 친하면 안 됩니까?"

송이

 “네?”

송이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제영

 "나랑 더 친하게 지내요."

송이

 “경위님 지금 설마….”

제영

 "질투하는 거 맞습니다."

제영의 말에 송이는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이 시점에서 왠지 웃으면 안 될 것 같아 입술을 꾹 깨물어 겨우 웃음을 참고 말했다.

송이

 “경위님 걱정하느라 영화가 무슨 내용이었는지 하나도 기억도 안 나요, 우리 둘이 다시 보러 가요.”

제영

 "…. 네?"

송이

 “민석이랑 밥 먹으면서도 저 계속 휴대폰만 보고 있었던 거 알아요? 파스타도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도 안 나요. 민석이가 엄청나게 맛있는 집이라고 해서 갔는데….”

제영

 "그럼 그 파스타도 우리 둘이 다시 먹으러 갑시다."

송이

 “푸핫…. 그래요. 경위님 우리 둘이 영화 보고 파스타 먹으러 가요.”

제영

 "그럽시다. 얼른 자요. 우린 내일 봅시다."

송이

 “네 경위님도 얼른 주무세요 내일 봐요.”

우리라는 단어가 이렇게 간지러운 단어인지 몰랐다. 송이는 제영과 전화를 끊자마자 간질거리는 기분에 이불 속에서 발길질하다가 잠이 들었다.

제영

 “우리…우리….”

전화를 끊은 제영 역시 오랜만에 불어오는 마음속 봄바람에 마음이 간질거렸다.

내 경찰아저씬데요?10화 - 설렘, 떨림, 그리고 우리…

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을 느끼며, 집에서 나온 송이는 빌라 현관에 세워진 낯익은 차를 보며 반갑게 창문을 두드렸다.

송이

 “경위님!”

제영

 “어 왔어요? 타요.”

제영의 차에 올라탄 송이는 평소와 다름없이 차 안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달콤한 향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제영은 그런 송이를 가만히 바라보다 송이 쪽으로 몸을 확 기울였다.

달칵-

소리가 들리고 운전석으로 돌아와 핸들을 잡은 제영은 잔뜩 당황했을 송이의 표정을 기대하며 고개를 돌렸다.

송이

 “헤헤, 경위님 향수 뿌렸어요?”

크게 당황하던 처음과는 달리 두 눈을 반달 모양으로 접으며 웃고 있던 송이는 오히려 제영에게 향수를 뿌렸냐고 물어 왔다.

제영

 “네? 아니….”

송이

 “경위님한테 좋은 향기 나요. 따뜻한 향.”

송이의 물음에 역으로 당황한 제영은 그저 헛기침만 하며 핸들을 꺾었다.

사람들

 “안녕하세요. 경위님!”

제영

 “아…. 네 안녕하세요.”

학교에 들어서자, 많은 학생들이 제영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물론 그 많은 학생들의 대부분은 눈웃음을 흘리며 다가오는 여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게 함정이었지만…

송이는 괜스레 삐죽 나오는 입을 집어넣으며 쫄래쫄래 제영을 따라갔고, 제영은 학생들의 인사를 일일이 받아주며, 교수실로 향했다.

세희

 “하 경위님!”

제영이 교수실 안으로 들어서려고 하자, 내내 교수실 앞에서 기다리던 세희가 얼른 제영을 불러 세웠다.

제영

 “네.”

세희

 “저…이거 모르겠어서….”

긴 머리를 귀에 꽂으며, 애교 섞인 표정으로 제영에게 전공 책을 내미는 세희를 송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제영

 “아 들어와요.”

교수실 안으로 들어온 제영은 재킷도 벗지 못한 채 세희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제영

 “자, 이 부분은 강력 범죄자들의 불안한 심리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건데….”

오늘도 역시 세희의 시선은 제영의 볼펜 끝이 아닌 얼굴로 고정되어 있었다.

송이는 과제를 정리하는 척하며 잔뜩 못마땅한 표정으로 세희와 제영을 흘끗 훔쳐 보았다.

제영

 “그래서 프로파일링으로 범죄자들의 심리를 파악해서…. 세희 학생?”

세희

 “네? 네…!”

제영이 갑자기 고개를 확 들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난 표정으로 얼른 시선을 내리는 세희다.

제영

 “내가 한 말 다 이해했습니까?”

세희

 “네? 어…. 네!”

제영

 “그럼 이 밑줄 친부분 설명해볼래요?”

세희

 “…. 네? 어…”

당황한 세희가 안절부절못하자, 제영이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책을 덮었다.

제영

 “세희 학생.”

세희

 “네…. 네.”

제영

 “이 부분 내가 첫 수업 때도 설명해 주었고, 저번에도 설명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세희

 “……”

제영

 “내 수업이 그렇게 형편없습니까?”

갑작스럽게 변한 제영의 태도에 놀란 건 세희뿐만 아니라 송이도 마찬가지였다.

송이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제영과 세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세희

 “네? 아…. 아뇨 절대! 그럴 리가요!”

제영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이 설명. 나 말고 이 책 쳐다봐요. 정말 궁금해서 온 거면….”

처음 보는 제영의 적대적인 태도에 당황한 세희는 제영에게 시선을 거두고 펜 끝만 바라보았다.

제영

 “이제 다 이해했습니까?”

세희

 “네? 네…감사합니다.”

세희는 들어 올 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으로 교수실을 나섰다.

제영

 “송송이 씨 여기 앉아요.”

세희가 나가자 잔뜩 굳었던 표정을 풀고 송이를 바라보는 제영이다.

아직 긴장이 덜 풀린 송이가 엉거주춤 소파에 앉자 제영은 차에서부터 들고 온 쇼핑백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송이

 “이게 뭐예요?”

제영

 “아침 안 먹었을 것 같아서…”

제영이 쇼핑백에서 샌드위치 전문점 로고가 박힌 봉투를 꺼내자, 그제야 긴장이 풀린 송이가 얼굴에 웃음꽃을 잔뜩 피웠다.

송이

 “어? 여기 샌드위치 맛있어요!”

제영

 “다행이다.”

제영은 샌드위치를 감싼 껍질을 까서 송이에게 내밀었다.

제영

 “먹어요.”

송이

 “감사합니다~”

송이는 샌드위치를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제영

 “맛있어요?”

자신의 물음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송이를 보며 제영은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송이

 “경위님은 안 드세요?”

사실 아침밥을 잘 먹지 않는 제영이지만 자신을 위해 일부러 사 왔다고 하면 또 저 해맑은 얼굴에 미안한 표정이 역력해질 거라는 걸 알기에 얼른 앞에 놓인 샌드위치 껍질을 까서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제영

 “맛있네요.”

송이

 “여기 샌드위치가 제일 맛있어요.”

입가에 소스가 묻은 것도 모르는 채 먹는 송이를 가만히 보던 제영은 손을 뻗어 송이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갑작스러운 제영의 손길에 흠칫 놀란 송이가 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제영

 “수업 끝나고 저녁에는 더 맛있는 거 먹으러 갑시다.”

그런 송이를 본 제영이 피식 웃으며 송이의 손에 우유를 쥐여주었다.

송이

 “경위님 청에 가봐야 하지 않아요?”

그제야 정신이 든 송이가 샌드위치를 다시 먹기 시작했다.

제영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경찰도 밥 먹을 시간은 있습니다.”

각각 딸기 우유 하나와 그리고 각자의 몫인 샌드위치까지 먹어 치운 제영과 송이는 포만감에 가득한 기분으로 수업에 들어갔다.

*

제영

 “아 그리고 이제 내일모레면 박성호 교수님이 돌아오신다고 합니다. 내일이 제가 여러분을 가르치는 마지막 날이 될 것 같네요. 마지막 날까지 열심히 가르칠 테니 여러분들도 마지막까지 열심히 배워주세요.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사람들

 “수고하셨습니다~”

학생들이 우르르 빠져나가고 은애는 송이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했다.

은애

 “쏭! 저녁 먹고 들어가자!”

송이

 “어? 어….”

은애

 “쏭 너 어디 아파?”

은애는 식은땀으로 범벅된 송이의 얼굴을 보고 화들짝 놀라 송이의 안색을 살폈다.

송이

 “어…. 배가….”

사실 아침밥을 챙겨 먹고 온 송이지만 제영의 성의를 거절할 수 없어 배부른 상태에서 샌드위치 하나를 꾸역꾸역 다 먹었고 그게 탈이 난 것 같았다.

수업이 시작할 때부터 살살 아파오던 배는 점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아파지기 시작했다.

은애

 “쏭 괜찮아?”

송이

 “어…나 일단 하 경위님…”

송이의 말에 은애는 송이를 부축해 제영의 교수실로 향했다.

똑똑-

제영

 “들어와요.”

송이

 “저…. 경위님….”

제영

 “어? 송송이 씨!!”

송이가 오면 바로 예약해 둔 식당으로 가려던 제영은 송이가 은애의 품에 거의 안기다시피 부축받아 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얼른 송이를 부축해 소파에 눕혔다.

제영

 “이게 무슨 일이에요?”

은애

 “송이가 많이 아픈 거 같아요….”

제영

 “네?”

송이는 소파에 누워 배를 움켜쥐고 끙끙거렸다.

제영

 “은애 씨, 나 좀 잠깐 도와줄래요?”

은애

 “네?”

제영

 “송이 씨를 나한테 업혀주세요. 병원 가야 할 거 같아요.”

은애

 “네!”

은애는 송이를 일으켜 소파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뒤를 돌아앉아 있는 제영에게 업혀 주었다.

제영

 “송이 씨는 내가 병원에 데리고 갈 테니까 은애 씨는 걱정하지 말고 집에 가요.”

은애

 “네? 그래도….”

제영

 “괜찮아요. 나 송이 씨 남자친구예요.”

은애

 “네?”

갑작스러운 폭탄 발언에 놀란 은애를 뒤로하고 제영은 일단 송이를 엎고 자신의 차로 달려갔다.

송이를 뒷좌석에 앉힌 제영은 벨트까지 꼼꼼히 매주고 운전석에 앉았다.

그리고 바로 액셀을 밟으려던 제영은 혹시나 송이가 놀랄까 싶어 조심스럽게 운전을 해 병원으로 향했다.

***

의사

 “급체하셨네요.”

제영

 “급체요?”

의사

 “음식을 급하게 드셨거나 과식을 하셨던 거 같아요, 이 링거 다 맞으시고 가시면 됩니다.”

의사의 진단에 조금은 마음이 놓인 제영은 작은 손에 꽂힌 두꺼운 주삿바늘이 안쓰럽게 느껴져 곤히 잠든 송이의 손을 살살 쓰다듬었다.

송이

 “으음…”

제영

 “깼어요?”

송이

 “…. 경위님?”

잠에서 깬 송이는 눈앞에 보이는 제영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려다 손에 꽂힌 주삿바늘을 보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송이

 “여기 병원이에요?”

제영

 “네. 급체래요.”

송이

 “아….”

제영

 “샌드위치 급하게 먹었어요?”

송이

 “네? 아…. 아뇨.”

제영

 “근데 왜….”

송이

 “어…. 아 생각해보니까 급하게 먹은 거 같아요.”

제영

 “혹시 송이 씨 아침밥…먹고 왔어요?”

조심스러운 제영의 물음에 송이는 잠시 망설이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영

 “미안해요…. 물어보고 사올걸….”

송이

 “어 아니에요! 저 원래 좀 잘 먹어요. 아침 먹고 와도 학교 와서 빵 사 먹고 하는데 오늘 제가 좀 급하게 먹었나 봐요.”

제영은 송이가 아픈 게 마치 제 탓 같아 더 미안해졌다.

제영

 “많이 아팠죠.”

송이

 “아뇨? 하나도 안 아팠는데~진짜 저 엄청나게 튼튼해요! 오늘은 어…. 그러니까….”

제영이 미안해할까 봐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핑계를 대는 송이를 제영은 꼭 끌어안았다.

송이

 “어…?”

갑작스럽게 코끝을 채우는 따뜻한 향에 놀란 송이가 흠칫 놀라 꿈틀거리자 제영은 그런 송이의 등을 살살 토닥여주며 송이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제영

 “앞으론 좀 더 관심 가져야겠다. 우리 송송이 씨한테.”

링거를 다 맞은 송이는 병원에서 나와 제영의 차에 올라타자마자 휙 하고 벨트를 먼저 맸다.

그런 송이의 모습을 보고 제영은 풉 하고 웃음이 터졌다.

송이

 “왜…. 왜요?”

제영

 “아닙니다.”

모르는 척 핸들을 꺾으려던 제영은 핸들에서 손을 떼고 송이에게 몸을 기울였다.

갑자기 다가온 제영의 얼굴에 놀란 송이는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몸이 굳어 버렸다.

달칵-

제영

 “잘못 맸어요.”

송이

 “아…”

빨개진 얼굴로 어색하게 웃으며 벨트만 만지작거리는 송이의 모습이 귀엽게만 느껴지는 제영이다.

제영

 “들어가서 약 먹고 푹 자요.”

송이

 “네. 고마워요. 경위님.”

제영

 “내일은 못 데리러 올 거 같아요.”

송이

 “괜찮아요! 버스 타고 가면 돼요.”

제영

 “아 그리고 내일 시간 좀 내줘요.”

송이

 “네?”

제영

 “데이트합시다. 우리”

***

약 기운 탓인지 오랜만에 푹 자고 개운하게 평소보다 일찍 아침을 맞은 송이는 눈 뜨자마자 옷장 앞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송이

 “이 원피스 입을까? 아니다. 이게 나으려나?”

거울 앞에 서서 이 옷 저 옷 대보던 송이는 결국 제일 처음에 입어 봤던 하얀 원피스를 골랐다.

오랜만에 화장대에 앉아 화장까지 마친 송이는 잘 신지 않는 구두까지 챙겨 신고 들뜬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민석

 “누나!”

오랜만에 버스를 타고 학교 정문에서 내린 송이를 발견한 민석이 반갑게 불렀다.

송이

 “어 민석아~”

민석

 “누나 오늘 되게 예뻐요!”

화사하게 웃으며 엄지를 척 내미는 민석을 보며 송이는 옅은 미소를 띠었다.

송이

 “고마워.”

민석

 “오늘 어디 가요?”

송이

 “어? 어…. 그냥 뭐~”

민석과 나란히 걷다 보니 어느새 제영의 교수실 앞에 다다른 송이는 민석에게 손을 흔들고 교수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제영

 “들어와요.”

문을 열고 들어서는 평소와는 다른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눈에 띄게 놀란 표정으로 송이를 바라보았다.

송이

 “이상…. 해요?”

송이의 물음에 그제야 정신이 든 제영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흔들었다.

제영

 “네? 아뇨 아니 예…. 예쁩니다.”

송이

 “다행이다…”

송이가 수줍게 미소를 짓자 제영의 얼굴은 눈에 띄게 붉어졌다.

제영

 “어? 수업! 수업 들어가야겠다.”

제영은 허둥지둥 수업 자료를 챙겨 교수실을 나섰다.

제영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네요, 오늘은 수업 조금 짧게 하고 우리 맛있는 거 먹읍시다.”

사람들

 “와아~!!”

제영은 그래도 2주 동안 얼굴을 맞대고 수업을 한 학생들에게 아쉬운 마음이 들어 햄버거를 나눠주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제영

 “은애 씨는 왜 안 왔어요?”

송이

 “그렇지 않아도 계속 전화해봤는데 전화를 안 받아요.”

제영의 물음에 송이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은애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오는 건 낯선 여자의 안내뿐 이였다.

제영

 “송이 씨는 이거 먹어요.”

제영은 학생들 몰래 송이에게 따뜻한 차를 내밀었다.

송이

 “나도 햄버거 먹을래요….”

제영

 “아직 자극적인 음식 먹으면 안 돼요.”

제영은 단호한 표정으로 송이의 손에 들려 있던 햄버거를 뺏고 따뜻한 차가 담긴 컵을 쥐여주었다.

2주 동안 제영과 편한 사이가 된 학생들은 자신들 틈에 섞여 햄버거를 먹는 제영에게 질문 세례를 퍼붓기 시작했다.

학생1

 “경위님 막 흉악범들 제압 할 땐 좀 무섭지 않아요?”

제영

 “뭐…. 나도 사람이라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인데…그래도 무서워하는 티를 내진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학생2

 “경위님 그럼 혹시 막 칼도 맞고 그래요?”

한 여학생의 물음에 제영의 옆에 앉은 송이도 고개를 돌려 제영의 대답에 집중했다.

제영은 자신에게 집중된 송이를 흘끗 보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제영

 “어…. 칼도 맞긴 맞습니다…. 근데….”

사람들

 “……?”

제영

 “나는 워낙 운동을 잘해서 잘 피합니다.”

제영의 농담 아닌 농담에 학생들은 깔깔거리고 웃었지만, 송이는 마음 편히 웃을 수 없었다.

학생2

 “경위님! 혹시 여자친구 있으세요?”

제영

 “어? 여자친구….”

학생들은 호기심 어린 눈을 하고 제영을 바라보았다.

제영은 옆에 앉은 송이를 가만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영

 “있죠.”

학생1

 “오오~예뻐요?”

장난스러운 물음에 제영은 여전히 송이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영

 “예쁩니다. 엄청나게.”

학생1

 “여배우들보다요?”

앞에 앉은 여학생의 짓궂은 질문에 제영은 슬쩍 한 손을 책상 아래로 내려 보이지 않게 송이의 손을 꼭 잡았다.

제영

 “여배우들 못지않게 예쁩니다. 내 눈엔.”


내 경찰아저씬데요?11화 - 첫 데이트, 첫 뽀뽀.

은애

 “야 쏭!!!”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 강의실 불을 끄고 나가려던 송이의 팔을 은애가 확 붙잡았다.

송이

 “어? 은애야 너 오늘 수업 왜….”

송이가 말도 채 끝마치기 전에 은애는 송이의 손목을 붙잡고 학교 카페로 향했다.

카페직원

 “커피 나왔습니다.”

얼음이 가득한 아이스커피가 나오자마자 은애는 벌컥벌컥 들이켰다.

은애

 “하아….”

송이

 “안 차가워?”

은애

 “차가워 근데 너!”

송이

 “어….”

은애

 “나한테 할 말 없어?”

송이

 “어? 어….”

괜히 제 발 저린 송이는 은애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허공을 응시했다.

그런 송이의 모습에 은애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은애

 “하제영 경위님하고 사귄다며!”

은애의 커다란 목소리에 놀란 송이가 얼른 주위를 둘러보며 은애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송이

 “일단 조금만 볼륨 좀 낮춰줘 어?”

은애를 겨우 진정시킨 송이가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송이

 “너한테는 먼저 말했었어야 하는데…그게 상황이 좀…”

은애

 “응큼한 지지배.”

송이

 “미안….”

은애

 “얼마나 됐어?”

송이

 “얼마…. 안됐어…”

송이의 말에 잠시 망설이던 은애는 잔뜩 심각한 얼굴로 조용히 물었다.

은애

 “근데 송이야 너…. 괜찮겠어?”

송이

 “뭐가?”

은애

 “경위면 직급도 높은 사람이고…게다가 광수대라며…확실히는 몰라도 위험한 일도 많을 거고…무튼 힘든 연애…잖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은애를 보며 송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송이

 “응, 괜찮아.”

은애

 “……”

송이

 “나 경위님 많이 좋아해.”

송이의 확고한 진심에 그제야 은애도 진심이 가득 담긴 축하를 할 수 있었다.

은애

 “축하해.”

*** 

벚꽃이 만발한 여의도 공원에 도착한 송이는 제영이 주차하러 간 사이 바로 옆에 주차된 차 백미러를 보며 화장을 고쳤다.

제영

 “아는 찹니까?”

백미러를 거울삼아 립스틱을 고쳐 바르던 송이는 바로 뒤에서 들리는 제영의 목소리에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고, 그런 송이 보다 더 놀란 제영이 얼른 송이를 받쳐 안았다.

제영

 “괜찮아요?”

바로 앞에서 느껴지는 제영의 숨결에 당황한 송이는 후다닥 일어났다.

송이

 “어…. 네! 네 괜찮아요! 아하하…. 어…. 얼른 벚꽃 보러 가요.

빨개진 얼굴이 들킬까 봐 구두를 신은 것도 잊은 채 총총걸음으로 저만치 앞서 가는 송이다. 

송이

 “와아~진짜 예뻐요~! 눈 오는 거 같지 않아요? 봄에 내리는 함박눈!”

따뜻해진 날씨 덕에 벚꽃은 어느새 만개해서 하얀 꽃잎들이 눈발처럼 날렸다.

제영

 “예쁘네요.”

송이

 “그쵸!”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하얀 벚꽃 사이를 걷는 송이의 모습은 참 예뻤고 벚꽃과 참 잘 어울렸다. 그런 송이의 모습을 보며 제영의 입가엔 어느새 환한 미소가 걸렸다.

송이

 “학교 다닐 때 벚꽃 잡으면 사랑 이뤄진다고 해서 엄청 뛰어다녔는데.”

송이는 해사하게 웃으며 흩날리는 벚꽃 잎들 사이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하얀 벚꽃 잎들은 얄궂게도 송이의 손을 피해 흩날렸다.

송이

 “에이…. 역시 안 잡히네….”

실망한 송이는 손을 탁탁 털며 아쉬운 듯 흩날리는 꽃잎들을 바라보았다.

제영

 “자, 이거.”

제영은 송이를 향해 손바닥을 펼쳐보았다.

송이

 “우와!”

제영의 손바닥엔 하얀 벚꽃 잎 한 장이 얌전히 놓여 있었다.

송이

 “이거 어떻게 잡았어요? 난 아무리 해도 안 잡히던데.”

화려한 꽃 한 다발도 아니고 겨우 벚꽃잎 한 장에 뛸 듯 기뻐하는 송이다.

제영

 “더 잡아 줄까요?”

송이

 “아뇨 이거면 충분해요~”

송이는 그 벚꽃잎 한 장을 지갑 안에 소중하게 보관했다.

많은 사람 틈에서 제영과 나란히 걷던 송이는 높은 구두 탓에 자꾸만 뒤처지는 것 같아 제영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놀란 제영이 뒤돌아보자 송이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송이

 “경…. 아니 제영 씨 손잡아도 돼요?”

제영

 “네?”

송이가 부른 낯선 호칭에 제영은 놀란 표정으로 송이를 바라보았다.

송이

 “아 이상하죠! 밖에선 그래도 왠지 경위님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또 아저씨는 싫어하실 거 같고…. 그냥 경위님이라고 부를까요? 아니면 아저씨?”

제영

 “좋습니다.”

송이

 “네?”

제영

 “제영 씨 좋다고요 송이 씨.”

제영은 커다란 손으로 활짝 웃는 송이의 작은 손을 살짝 붙잡았다.

따뜻한 봄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감쌌다.

정훈

 “누나아….”

제영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걷던 송이는 자신의 치맛자락을 살짝 쥐고 흔드는 한 꼬마를 보고 아이의 눈높이를 맞춰 허리를 굽혀주었다.

송이

 “엄마 잃어버렸어?”

정훈

 “아니이 누나 이거 먹을래?”

송이의 말에 고개를 흔든 아이는 자신의 손에 들려 있던 솜사탕을 송이에게 내밀었다.

송이

 “이거 나 먹으라고?”

정훈

 “응! 누나 예뻐…. 그래서 이거 주고 싶어어….”

송이는 방긋 웃으며 커다란 눈망울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에게 허리를 숙여 눈을 맞췄다.

송이

 “꼬마야 이름이 뭐야?”

정훈

 “정훈이..”

송이

 “우와 이름 멋있다~어 그러니까…. 정훈아~누나는 어른이라서 이거 안 먹어도 돼~”

정훈

 “어른이라서?”

송이

 “응 어른은 이런 거 안 먹어도 되는 거야 그러니까 이건 우리 정훈이가 다 먹어~”

정훈

 “나도 엉안데!”

송이

 “정훈이가 여기 이 아저씨만큼 커야 누나만큼 어른이 되는 거야~”

송이가 옆에 서 있던 제영을 가리키며 설명을 하자 금세 풀이 죽은 정훈이 입을 삐죽였다.

정훈

 “치…. 나도 엉안데..”

송이

 “정훈이도 멋진 엉아 맞아~”

정훈

 “그럼 누나 나도 밥 많이 먹어서 저 아저씨처럼 어른 되면 나랑 결혼해요!”

뜬금없는 꼬맹이의 결혼 고백에 당황한 송이가 어색하게 웃자, 옆에 서 있던 제영도 허리를 굽혀 정훈과 눈을 맞췄다.

제영

 “여기 이 누나는 아저씨랑 결혼할 건데?”

정훈

 “아니야!!”

제영의 말에 소리를 빽 지른 정훈은 반짝거리는 눈망울로 송이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정훈

 “누나 아니지요?”

송이

 “어? 어…. 그게….”

정훈엄마

 “한정훈!”

당황한 송이가 버벅거릴 때, 아이의 엄마가 정훈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왔다.

정훈

 “엄마!”

정훈엄마

 “너 엄마가 얼마나 찾았는데!”

아이의 엄마는 울먹이며 정훈을 꼭 껴안았다.

정훈

 “엄마! 나 저 누나랑 결혼할 거야!”

정훈의 말에 아이의 엄마는 깜짝 놀라며 송이와 제영을 번갈아 바라보다 뒤늦게 상황파악을 하고 얼른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정훈엄마

 “아…. 정훈이 잘 데리고 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송이

 “네? 아…. 아니에요~”

정훈엄마

 “정말 감사합니다…. 얘가 워낙 천방지축이라…. 한정훈 너도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해야지.”

엄마의 말에 정훈은 허리까지 숙이며 인사를 했다.

정훈

 “감샤합니다.”

정훈엄마

 “앞으로는 엄마 손 꼭 잡고 다녀~”

정훈엄마

 “그럼 저흰 이만 가볼게요.”

아이의 엄마는 정훈의 손을 꼭 잡으며 인사를 했다.

송이

 “아…. 네 안녕히 가세요~”

정훈

 “예쁜 누나 안녕!”

제영은 작은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멀어져 가는 정훈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보란 듯이 옆에 서 있는 송이의 손을 더욱 꼭 붙잡았다.

송이

 “제영 씨! 우리도 솜사탕 먹어요!”

제영

 “어른은 이런 거 안 먹는다고 하지 않았어요?”

송이

 “제가 언제요?”

능청스러운 송이의 태도에 제영은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제영

 “여기서 기다려요. 솜사탕 사 올게.”

송이

 “네!”

송이는 한적한 벤치에 앉아, 신고 있던 구두를 잠시 벗었다.

송이

 “아아….”

잘 안 신던 구두를 신어서 그런지 두 발이 퉁퉁 부어 걸을 때마다 아파왔다.

송이

 “으으….”

송이는 제영이 없는 틈에 잠시 발을 쉬게 하며 주물러 주었다.

제영

 “자 받아요.”

송이

 “네? 아 네!!”

제영이 솜사탕을 들고 나타나자 송이는 얼른 아무렇지 않은 척 구두에 발을 꿰어 넣었다.

그리곤 솜사탕을 크게 뜯어 제영에게 내밀었다.

송이

 “제영 씨도 먹어봐요~”

제영

 “아…. 나는 단 거 별로….”

송이

 “딸기우유보다 더 맛있어요.”

송이의 성화에 제영은 어쩔 수 없이 솜사탕을 받아먹었다.

제영의 입안 가득 달콤함이 퍼졌다.

송이

 “맛있죠?”

제영

 "달아요.“

송이

 “사실 이거 제 로망이었어요! 좋아하는 사람하고 벚꽃 보면서 같이 솜사탕 먹는 거.”

제영

 “다른 로망은 또 뭡니까?”

송이

 “음…. 너무 많아서 기억은 안 나는데…. 아! 삼청동길 같은 예쁜 길 같은데 하루 종일 손 잡고 같이 걷는 거랑 또 동물원 가는 거요! 그리고 또…”

제영

 “합시다. 그거 다.”

제영의 말에 아이처럼 좋아하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도 흐뭇했다.

제영

 “여기서 잠깐 기다려요, 나 화장실 다녀올게요.”

송이

 “네!”

제영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송이는 다시 구두를 벗었다.

송이

 “으아…. 밴드가 있나….”

부은 발로 인해 구두가 꽉 꼈는지, 뒤꿈치는 이미 다 까져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송이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방을 뒤졌지만, 항상 챙겨다녔던 밴드가 오늘따라 보이지 않았다.

송이

 “밴드를 사와야 하나….”

송이를 벤치에 앉혀 놓고 잠시 공원 밖으로 나온 제영은 급하게 눈에 보이는 약국 문을 열고 들어섰다.

제영

 “소독약이랑 연고 주세요. 아 밴드도요.”

약이랑 밴드를 챙긴 제영은 주변에 신발가게를 찾기 시작했다.

신발직원

 “어서 오세요~”

다행히 노란 간판의 신발 가게를 찾은 제영은 여자 운동화 코너로 향했다.

신발직원

 “남자 신발은 이쪽에 있습니다~”

제영

 “네? 어…. 제가 신을 건 아닌데….”

신발직원

 “아 여자친구 분 꺼 고르시는 거예요?”

제영

 “네? 어…. 네…. 여자친구….”

직원의 입에서 나온 여자친구라는 단어에 괜히 귀 끝이 빨개지는 것 같은 제영이다.

신발직원

 “아 그럼 이 운동화는 어떠세요?”

직원이 내민 건 아무런 꾸밈 없는 하얀 운동화였다.

제영

 “이걸로 주세요.”

신발직원

 “혹시 사이즈는 아세요?”

사이즈를 묻는 직원의 말에 제영이 잠시 당황하다 자신의 손바닥을 펼쳤다.

제영

 “제 손바닥 반…. 정도?”

직원의 도움으로 신발을 산 제영은 서둘러 송이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주변에 혹시 편의점이 있을까 싶어 둘러보던 송이는 멀리서 제영이 뛰어오는 것을 보고는 얼른 구두를 신었다.

송이

 “왜 이렇게 뛰어왔어요?”

제영

 “잠깐 신발 좀 벗어봐요.”

숨을 채 고르지도 않고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제영은 송이의 구두를 벗겼다.

송이

 “어? 어! 아니 경위님!”

구두가 벗겨지자 빨갛게 생채기 난 뒤꿈치가 드러났다.

제영

 “이 발로 지금 계속 걸어 다닌 겁니까?”

생각보다 심한 상처에 놀란 제영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송이

 “아….”

당황한 송이가 다급하게 구두를 다시 신으려 하자 제영은 구두를 빼앗았다.

송이

 “아니 저기…. 그게….”

제영

 “잠깐 있어봐요.”

제영은 주머니를 뒤적여 연고와 밴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곤 심각한 얼굴로 빨갛게 피가 배어 나오는 상처에 호호 입으로 바람을 불어가며 연고를 바르고, 밴드까지 야무지게 붙여주었다.

제영

 “이거 신어요.”

치료를 마친 제영은 들고 있던 쇼핑백에서 하얀 운동화를 꺼내 송이의 발밑에 내려놓았다.

송이

 “이거…. 사러 다녀온 거예요?”

제영

 “크…. 큼…. 발 사이즈를 몰라서 어림짐작으로 사 왔는데 신어봐요.”

빨개진 귀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자신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제영의 모습에 송이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꾹 눌러 참았다.

송이

 “와 딱 맞아요!”

신기하게도 발에 꼭 맞는 운동화에 송이는 벌떡 일어나서 콩콩 발을 굴러보았다.

송이

 “고마워요. 경위님!”

제영

 “다음부턴 구두 신고 나오지 말아요.”

송이

 “네! 명심하겠습니다!”

손을 머리 위로 올리며 충성을 외치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제영이 사준 운동화 덕분에 송이는 편하게 오래 제영과 함께 걸어 다닐 수 있었다.

*

제영

 “피곤할 텐데 얼른 들어가서 쉬어요.”

송이는 제영과 종일 함께 있었는데도 떨어지기가 아쉬워 손을 놓지 못했다.

송이

 “전화할게요.”

송이는 집 안으로 들어가려다 멈칫하고는 다시 제영의 앞으로 다가왔다.

송이

 “경위님! 잠깐만 고개 좀 숙여봐요!”

제영

 “왜….”

제영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자 송이는 제영의 볼에 쪽 하고 입을 맞추고는 후다닥 집으로 들어가버렸다.

제영

 “하….”

제영은 코끝에 맴도는 송이의 달콤한 립글로스 향에 괜스레 기분이 간질거렸다.

내 경찰아저씬데요?12화 - 사랑의 도시락.

은애

 “좋아?”

송이

 “어? 뭐가?”

은애는 아침부터 실실 웃는 송이를 보며 쿡 찔렀다.

은애

 “아주 얼굴이 활짝 폈네.”

송이

 “흐흐흐.”

제영과의 데이트 이후, 송이의 얼굴엔 ‘나 사랑하고 있어요.’라고 쓰여 있는 것 같았다.

은애

 “끝나고 저녁 먹자.”

송이

 “아…. 나 경위님이랑….”

은애

 “아 말을 말자 내가 왜 물어봤지?”

송이

 “미안~”

은애

 “얼른 너의 그 경위님한테 달려가세요.”

학교에서 제영을 보지 못하는 송이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제영이 있는 서울청으로 달려가는 게 일상이 되었다.

송이

 “안녕하세요~”

주변 형사님들에게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며 제영이 있는 곳으로 들어온 송이는 뭐가 그렇게 바쁜지 자신이 온 줄도 모르고 일을 하는 제영에게 살금살금 다가갔다.

송이

 “경위님!”

제영

 “어!! 어 송이 씨.”

워! 하고 놀래키는 송이에 놀란 제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다보았다.

송이

 “많이 바빠요?”

제영

 “아…. 괜찮아요.”

송이

 “점심은 드셨어요?”

제영

 “아…네…. 뭐….”

시원찮은 대답에 송이는 제영의 자리에 있는 휴지통을 슬쩍 쳐다보았다.

휴지통 안엔 샌드위치 껍질이 잔뜩 쌓여 있었다.

송이의 시선을 느낀 제영은 후다닥 발로 휴지통을 옆으로 툭 쳐버렸다.

그런 제영을 보며 송이는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

송이

 “이모! 여기 곱창 2인분이요~”

배고프다며 송이가 제영을 데리고 온 곳은 다름 아닌 은애와 자주 오던 단골 곱창집이었다.

어른여

 “오랜만에 왔네? 옆엔 남자친구여?”

제영

 “안녕하세요.”

살갑게 물어 오는 주인아주머니를 보며 제영은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했다.

어른여

 “어이구 잘생겼구먼~”

제영

 “감사합니다.”

곱창이 나오고 송이는 능숙하게 불판 위에 곱창을 올려 굽기 시작했다.

송이

 “맛있겠다~”

지글지글 구워지는 곱창을 보며 송이는 입맛을 다셨다.

송이

 “이거 익었다!”

곱창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지자마자 송이는 얼른 제영의 접시에 놓아주었다.

송이

 “먹어봐요.”

제영

 “아…. 아닙니다. 송이 씨 먼저 먹어요.”

제영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접시에 놓인 곱창을 송이의 접시에 옮겨 놓았다.

송이

 “경위님 혹시…곱창 못 드세요?”

송이의 물음에 제영은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송이

 “어 미안해요. 경위님…어떡하지? 다른 데 갈까요?”

제영

 “아…. 한 번도 안 먹어 본 거예요. 이제부터 먹어보면 됩니다.

제영은 송이가 보는 앞에서 눈을 꾹 감고 잘 익은 곱창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 안에 넣었다.

몇 번 오물오물 씹던 제영은 곱창의 향이 입안에 퍼지기 전에 꿀떡 삼켰다.

송이

 “괜…. 찮아요?”

제영

 “마…맛있네요.”

송이

 “정말 괜찮아요?”

제영

 “괜찮아요. 그러니까 송이 씨도 얼른 먹어요~”

제영은 보란 듯이 몇 개를 더 집어 먹었다.

***

송이

 “진짜 맛있었어요!”

제영의 차에 탄 송이는 정말 행복한 표정으로 배를 두드렸다.

제영

 “나도 맛있게 먹었어요.”

송이

 “히힛 다행이다~”

사실 제영의 메슥거리는 속을 애써 감추며 마주 보고 웃었다.

송이

 “다음에 또 먹으러 와요!”

제영

 “네? 어…. 네네 그래요.”

아무래도 혼자 와서 곱창의 맛을 알아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제영이다.

제영

 “조심히 들어가요 들어가면 문자하고.”

송이

 “네 경위님은 청으로 들어가요?”

제영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송이

 “피곤해서 어떡해요….”

송이는 안쓰러운 눈으로 제영을 바라보았다.

제영

 “충전했습니다. 송송이 씨 보고.”

제영의 말에 송이는 방긋 웃으며 제영의 손을 꼭 잡았다.

송이

 “충전!!”

송이의 응원에 제영은 정말 없던 힘도 불끈 나는 것 같았다.

송이

 “이제 진짜 들어가 볼게요. 아무리 힘들어도….”

제영

 “커피 많이 마시지 않고 밥은 꼭 챙겨 먹겠습니다.”

송이의 말을 자연스럽게 이어 하는 제영을 보며 송이는 찌릿 눈을 흘겼다.

송이

 “잔소리 듣기 싫으면 꼭 약속 지켜요!”

제영

 “알겠습니다~”

제영에게 손을 팔랑팔랑 흔들고 뒤돌아서던 송이는 다시 휙 뒤돌아 제영에게 뛰어왔다.

송이

 “잠깐만요.”

송이는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하제영’이라고 쓰여진 약 봉투를 제영에게 내밀었다.

송이

 “이거요.”

제영

 “이게 뭡니까?”

송이

 “소화제요. 이 물약이랑 알약 같이 먹어야 한데요.”

사실, 곱창을 먹을 때부터 안색이 안 좋아진 제영을 본 송이는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는 핑계로 식당 옆에 있는 약국으로 뛰어가 약을 챙겨 놓았다.

제영

 “…네?”

제영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송이를 바라보자 송이는 물약의 뚜껑을 열며 말했다.

송이

 “경위님 속 안 좋잖아요.”

제영

 “어…. 떻게 알았어요?”

송이

 “얼굴에 다 쓰여 있어요.”

송이는 뚜껑을 딴 물약을 제영의 손에 쥐여주었다.

송이

 “얼른 먹어요. 체기 오래 두면 더 힘들어요.”

알약까지 까서 내미는 송이를 보며 제영은 얼른 물약과 함께 약을 넘겼다.

송이

 “다음엔 경위님이 좋아하는 음식 먹으러 가요.”

제영

 “송이 씨가 좋아하는 음식이 제가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송이

 “어우 닭살~우리 경위님 언제부터 이렇게 오글거렸나?”

송이는 장난스럽게 팔을 문지르며 말했다.

송이

 “이제 진짜 들어가 볼게요. 자리 오래 비웠다고 높으신 분한테 혼나겠다. 우리 경위님.”

제영

 “조심히 들어가요. 연락할게요.”

송이

 “네! 먼저 들어 볼게요~!”

제영의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송이는 가방을 뒤적여 자신의 몫인 소화제를 찾았다.

송이

 “하아….”

한약 가루약까지 탈탈 털어 넣은 송이는 울렁거리는 속을 참지 못하고 변기에 가서 먹은 것을 모두 게워냈다.

자신의 앞에서 억지로 곱창을 집어 먹는 제영을 보며 송이는 슬쩍 곱창을 자기 쪽으로 다 밀어 놓고 제영에겐 서비스로 나온 감자와 돼지 껍데기를 밀어주었었다.

하지만 송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억지로 곱창을 계속 집어 먹는 제영을 보며 말리고 싶었지만 제영의 자존심이 상할까 모르는 척 젓가락질을 더 빨리해서 곱창을 자신이 다 먹어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

다음날,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린 탓에 한숨도 자지 못한 송이는 다크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온 상태로 학교에 도착했다.

은애

 “야 쏭 너….”

송이

 “이상한 생각하지 마! 배탈 난 거니까.”

음흉한 눈으로 자신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은애를 향해 미리 그런 생각을 차단해 버리는 송이다.

은애

 “뭘 먹고 배탈이 났어. 또.”

송이

 “곱창.”

은애

 “곱창? 너가 그렇게 좋아하는 곱창을 먹고 배탈을 났다고? 혼자 3인분씩 먹어도 끄떡없는 애가?”

송이

 “어…”

병든 닭처럼 수업 내내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송이는 다행히 오전 수업만 있는 날이라 강의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 숙면을 취했다.

***

지이이잉//

정신없이 잠에 취해 있던 송이는 베게 밑에서 울리는 진동 소리에 기계적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송이

 “네….”

제영

 [송송이 씨?]

송이

 “네…므어..”

잠이 덜 깬 송이는 귓가에 휴대폰만 댄 채 웅얼거렸다.

제영

 [많이 피곤했나 보네….]

송이

 “어으웅….”

웅얼거리는 송이의 잠꼬대에 제영은 피식 웃고는 얼른 전화를 끊었다.

매일 출근 도장을 찍듯 학교 끝나면 서울청으로 오는 송이인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아 걱정된 제영이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계속해서 전화를 건 제영은 잠꼬대를 하며 전화를 받은 송이의 목소리에 마음을 놓고 오늘 하루는 송이를 보고 싶은 마음을 꾹 밀어 넣었다.

***

온종일 푹 숙면을 취한 송이는 가뿐한 몸으로 잠에서 깼다.

송이

 “으음….”

손을 더듬거려 휴대폰을 켜 시간을 본 송이는 기겁하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송이

 “지각!!!!”

당황한 송이는 머리도 감지 못하고 대충 꾹 묶은 다음 모자를 쓰고, 가방만 챙겨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갔다.

민석

 “누나!”

송이

 “어? 어 민석아 미안 나 지각….”

민석

 “누나 오늘 공강아니예요?”

급하게 뛰어가던 송이는 민석의 말에 발을 멈추고 휴대폰을 꺼내 시간표를 찾아보았다.

송이

 “오늘…수요일이니?”

민석

 “네 누나 오늘 공강이예요.”

순간 송이는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민석

 “어차피 나온 거 저랑 같이 수업 들어요~”

송이

 “아하하…갑자기 잠이 더 쏟아지는 것 같네…민석아 파이팅!”

송이는 민석을 보며 파이팅을 외친 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송이

 “아…. 꼭 학교 안 가는 날 일찍 눈이 떠지지….”

침대에 누워 뒹굴 거리던 송이는 문득 어제 제영과의 통화가 생각 나서 얼른 휴대폰을 꺼내 제영의 번호를 꾹 눌렀다.

제영

 [일어났어요?]

송이

 “네? 네…. 어제 우리 통화했어요?”

제영

 [뭐…. 일방적인 통화도 통화니까…. 어제 송이 씨 잠꼬대 잘 들었어요.]

송이

 “흐헉…”

제영

 [크하하 잠결에 통화 버튼 눌렀나 봐요. 아무 소리도 안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요.]

송이

 “아…. 놀랬잖아요! 경위님은 당연히 지금 집은 아니겠죠?”

제영

 [지금 막 출근했어요.]

송이

 “아침은요?”

제영

 [대충…. 아니 먹었습니다.]

송이

 “조금 이따가 가도 돼요?”

제영

 [음…. 네 와도 됩니다.]

송이

 “그럼 이따 봐요! 아! 점심 저랑 같이 먹어요~”

제영

 [네 기다릴게요.]

송이

 “네!”

뚝//

전화를 끊자마자 송이는 가만히 생각하더니 휴대폰 검색 창에 도시락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항상 제영의 자리에 가보면 커피를 마신 컵과 샌드위치나 컵라면 같은 것들을 먹은 흔적들이 가득했다.

그런 것들을 보며 언젠가는 꼭 한번 제영에게 도시락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 송이는 오늘 그 생각을 실천하기로 했다.

송이는 일단 휴대폰으로 도시락을 검색한 뒤 메뉴를 정했다.

송이

 “음…. 샌드위치는 자주 먹으니까…김밥! 김밥이 좋겠다.”

김밥으로 메뉴를 정한 송이는 냉장고를 뒤적여 김밥 거리를 찾았지만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결국, 지갑을 들고 마트로 향하는 송이다.

*

송이

 “김밥 김…단무지…”

마트에 도착한 송이는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보며 차근차근 재료를 카트에 담았다.

송이

 “햄…. 아! 치즈도 넣을까?”

이것저것 담다 보니 어느새 또 한 짐이 된 송이는 끙끙거리며 집까지 짐을 끌고 왔다.

집에 돌아온 송이는 장 봐 온 것들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김밥을 쌀 준비를 마쳤다.

송이는 머리까지 질끈 올려 묶고 블로그를 보며 차근차근 김을 깔고 재료를 하나씩 올려 김밥을 말기 시작했다.

툭//

송이

 “으억! 또 터졌어!”

하지만 뭐가 문제 인지 블로그에서처럼 예쁜 김밥은 안 나오고 김밥 옆구리가 자꾸 터져 김밥의 형체가 나오지 않았다.

송이는 잔뜩 울상을 짓고는 결국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송이엄마

 [어 딸 웬일이야?]

송이

 “저기 엄마, 김밥이 자꾸 터져.”

송이엄마

 [어? 너 김밥 만들어?]

송이

 “어…근데 왜 자꾸 터지지?”

송이엄마

 [김밥은 왜? 먹고 싶으면 집에 오지.]

송이

 “어? 어…. 아니 그…. 그냥 이거 어떻게 해야 안 터져?”

송이엄마

 [밥이랑 재료는 적당히 넣고 꾹꾹 눌러 가면서 말아야지 그리고 김 끝에 밥풀을 좀 묻혀서 말면 잘 붙어.]

송이

 “아 알겠어! 엄마 고마워~”

송이엄마

 [너 집에는 언제 올 거야?]

송이

 “어? 어 조만간 갈게 끊어 엄마 나 바빠~”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되기 전에 후딱 전화를 끊은 송이는 엄마의 말대로 재료를 조금 적게 넣고 꾹꾹 눌러 말기 시작했다.

송이

 “어? 됐다!!!!”

블로그에서 나온 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김밥의 형태가 나게 말아진 걸 보고 뛸 듯이 기뻐하는 송이다.

***

어느덧,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가고, 송이는 삼단 찬합에 가득 김밥과 과일을 싸서 들뜬 마음으로 제영이 있는 서울청으로 향했다.

박형사

 “경위님 저희 짜장면 먹을 건데 경위님은 뭐 드실래요?”

제영

 “아…. 저는 짜….”

습관적으로 짜장면을 외치려던 제영은 문득 아까 송이가 함께 점심을 먹자는 말을 기억하고는 손을 흔들어 거절했다.

제영

 “아 저는 됐습니다. 약속이 있어서….”

박형사

 “그 점심 약속 같이하실 분 저기 오셨는데요?”

박 형사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송이가 해사하게 웃으며 도시락통을 들어 보였다.

송이

 “점심 왔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먹기엔 너무 창피하다는 송이의 말을 따라 옥상으로 올라온 제영과 송이다.

송이

 “너무 기대는 하지 말아요.”

송이는 떨리는 마음으로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제영

 “우와~이거 다 송이 씨가 만든 거예요?”

송이

 “네…좀 볼품없죠.”

제영

 “아니 진짜 잘 만들었는데요?”

송이

 “맛없으면 삼키지 말고 뱉어요. 알겠죠?”

제영은 오동통한 김밥 하나를 입안 가득 넣었다.

그런 제영을 보며 송이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침만 꼴딱 삼켰다.

송이

 “어…어때요?”

제영

 “…. 음…”

심각해지는 제영의 얼굴에 송이는 안절부절못하고 과일 칸을 열었다.

송이

 “마…. 맛없으면 이거….”

제영

 “진짜 맛있어요.”

송이

 “네?”

제영은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올렸다.

제영

 “내가 먹어 본 김밥 중에 제일 맛있어요.”

송이

 “진짜요?”

제영

 “진짜요.”

송이는 떨리는 마음으로 김밥 하나를 집어 먹었다.

송이

 “어?”

생각보다 괜찮은 맛에 송이도 놀랬다.

송이

 “김밥 맛이 나요!”

송이와 제영은 그렇게 삼단 찬합에 가득한 김밥에 과일까지 싹 비웠다.

제영

 “데려다줄게요.”

송이

 “아직 날도 밝은데요 뭐~ 자꾸 이렇게 자리 비우면 같이 일하시는 분들이 저 미워해요~”

제영

 “잠깐은 괜찮습니다.”

송이

 “저도 이 정도 거리는 괜찮습니다아~?”

송이는 제영이 더 붙잡기 전에 얼른 손을 흔들며 뛰어갔다.

***

집으로 돌아온 송이는 아침부터 동동거린 탓에 온몸에 기운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설거지도 그대로 둔 채 침대에 멍하니 누워 있던 송이는 짧게 올리는 진동에 문자를 확인했다.

제영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김밥이었습니다. 고마워요♡]

제영의 진심 가득한 문자에 송이는 푸스스 웃으며 허공에 발길질했다.

송이

 “끼야악!! 하트 붙였어!”

잠시 후 진정을 한 송이는 고민 고민하다가 짧게 문자 한 줄을 보냈다.

송이

 [맛있게 먹어줘서 제가 더 고마워요♡]


내 경찰아저씬데요?13화 - 아무 사이.

은애 없이 혼자 듣는 지루한 교양 수업이 끝난 송이는 너무도 좋은 날씨에 그냥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민석

 “누나!”

송이

 “어? 민석아!”

언제 자신을 봤는지 정문에서 뛰어오는 민석을 보며 송이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민석

 “누나 수업 끝났죠?”

송이

 “어? 어 왜?”

민석

 “누나 오늘 시간 있어요?”

송이

 “오늘? 왜?”

민석은 주머니에서 웬 표 두 장을 꺼내 흔들었다.

민석

 “누나! 우리 이거 보러 가요.”

송이

 “어? 이거 익쏘 콘서트 아냐?”

민석

 “우리 형이 공연 기획사 쪽에서 일하거든요. 이번에 익쏘 콘서트 맡았다 그래서 제가 두 장 구해다 달랬어요!”

송이

 “우와! 근데 은애는?”

민석

 “두 장밖에 못 구해서…은애 선배한테는 비밀이에요. 보러 갈 거죠?”

송이

 “어? 그게….”

민석

 “누나 때문에 구했는데 못 가면…. 뭐 그냥 다른 사람 줘야죠…”

송이

 “아니…. 저….”

자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이지만 한편으론 제영이 마음에 걸리는 송이다.

지이잉//

때마침 제영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송이는 민석에게서 떨어져서 전화를 받았다.

송이

 “네 경위님.”

제영

 [수업 끝났어요?]

송이

 “네? 아…. 네!”

제영

 [그럼 오늘 영화 볼래요? 그때 우리 같이 못 봤던 그 영화.]

송이

 “네? 어…그게….”

제영

 [무슨 일 있어요?]

잠시 망설이던 송이는 결국 익쏘 콘서트를 선택했다.

미안해요, 경위님…. 하지만 우린 언제든 또 볼 수 있으니까요….

송이

 “아…. 오늘 과제 때문에 친구들이랑 약속이 있어서….”

제영

 [아….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죠. 너무 늦으면 전화해요. 데리러 갈게요.]

송이

 “아…아녜요! 집 근처에서 해서….”

제영

 [그래도 전화해요. 밤엔 가까운 거리도 위험하니까….]

송이

 “네…. 전화할게요.”

제영

 [그래요. 끊을게요.]

송이

 “네.”

전화를 끊은 송이는 불편한 마음을 잠시 뒤로 하고 민석과 콘서트장으로 향했다.

*** 

송이

 “완전 가까워!”

생각보다 무대와 더 가까운 자리에 송이는 방방 뛰며 좋아했다.

송이

 “고마워 민석아!”

민석

 “공짜 아녜요 저녁은 누나가 사요~”

송이

 “그럼! 고기 먹자 고기!”

아이처럼 좋아하는 송이를 보며 민석의 얼굴에도 미소가 걸렸다.

*** 

샌드위치 말고 밥을 챙겨 먹으라는 송이의 말대로 오랜만에 밖에서 식사다운 식사를 하고 청으로 들어가던 제영은 우연히 은애와 마주쳤다.

은애

 “어? 하 경위님?”

제영

 “아 은애 씨.”

은애

 “오늘은 송이 안 왔어요?”

제영

 “오늘 과제 있다고 못 온다고 하던데.”

은애

 “아 그래요? 이상하네…교양 과제가 있나?”

제영

 “네?”

은애

 “아…. 아녜요~ 저는 그럼 약속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

제영

 “아 네 조심히 가요.”

은애

 “네~”

은애와 헤어지고 청으로 돌아온 제영은 조금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떨쳐냈다. 

***

송이

 “꺄아!!!오빠!!!!”

콘서트가 시작되고 화려한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익쏘 멤버들을 보며 송이는 잠깐 정신 줄을 놓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송이

 “오빠아!!!”

이런 시끄러운 무대는 딱 질색인 민석이지만 옆에서 방방 뛰며 좋아하는 송이를 보며 애써 꾹 참았다.

사람들

 “여러분 사랑해요~”

자신이 앉아 있는 쪽을 보며 하트를 날리는 멤버들을 보고 송이는 함께 하트를 날리며 답했다.

송이

 “나도 사랑해요~완전 사랑해요!!!”

민석

 “하…. 이게 뭐라고 질투가 나냐.”

송이

 “응 뭐라고?”

민석

 “아…. 아녜요 누나 재밌게 보라구요.”

영영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콘서트가 끝나고, 송이는 무대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로 콘서트장을 빠져나왔다.

민석

 “그렇게 좋아요?”

송이

 “어? 어!! 고마워 민석아 진짜 내 죽기 전에 익쏘를 보다니….”

아직도 감격에 젖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송이의 모습이 민석은 그저 귀엽게만 느껴졌다.

민석

 “배 안 고파요?”

송이

 “아! 맞다 우리 얼른 밥 먹으러 가자.”

*** 

송이

 “여기 삼겹살 2인분이랑 소주 한 병 주세요~”

아르바이트생

 “네~”

삼겹살이 나오고 민석은 자연스럽게 고기와 집게를 가지고 가 고기를 구웠다.

송이

 “내가 구울게. 너는 먹기나 해~”

민석

 “누나는 본인이 고기 잘 못 굽는 거 모르죠?”

송이

 “아…. 그래?”

단호한 민석의 말에 송이는 고기로 향하던 손을 거뒀다.

삼겹살이 적당하게 익자마자 민석은 송이의 접시에 고기를 놓아주었다.

민석

 “이거 익었어요~”

송이

 “너도 얼른 먹어~”

고기를 굽느라 정작 본인은 한 입도 못 먹는 민석을 보며 송이는 쌈을 크게 싸서 민석의 입가에 댔다.

송이

 “아 해.”

잠시 머뭇거리던 민석은 입을 벌리고 쌈을 받아먹었다.

고기와 함께 한잔 두잔 소주잔을 기울이던 송이는 결국 얼큰하게 취해버렸다.

비틀거리는 송이를 부축해, 택시를 탄 민석은 아까부터 송이의 가방에서 울리는 진동소리에 망설이다 휴대폰을 꺼냈다.

[하 경위님♡]

액정에서 깜빡이는 익숙한 이름에 민석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제영

 [송이 씨? 왜 전화를…]

민석

 “안녕하세요. 저 강민석입니다.”

제영

 [그쪽이 왜 송이 씨 전화를 받습니까?]

민석

 “아…. 송이 선배랑 같이 식사하다가 선배가 좀 취해서 집에 데려다주려고….”

제영

 [거기 어딥니까?]

민석

 “아 여기…. 택신데….”

뚝//

뚝 하고 끊긴 전화에 민석은 약간 기분이 상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밤늦은 시간까지 연락이 없는 송이가 걱정돼 전화를 건 제영은 송이가 아닌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순간 울컥 뭔가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집으로 향하던 제영은 급하게 송이의 빌라 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 

민석

 “누나! 집에 다 왔어요!”

송이

 “어? 어~민석아아~”

민석은 비틀거리며 택시에서 내리는 송이를 얼른 부축했다.

송이

 “나 딸기우유 먹어야 되는 데에~”

민석

 “일단 누나 집에 들어가는 게….”

송이

 “딸기우유 먹어야 되에~”

민석

 “아니 누나….”

제영

 “송송이 씨.”

술김에도 제영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송이는 제영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송이

 “어? 우리 경위님이다아~!”

제영

 “어떻게 된 겁니까?

제영이 날 선 시선으로 민석을 보며 물었다.

민석

 “좀 전에 통화한 그대로예요. 같이 저녁을 먹었는데 누나가 술을 좀 많이 마셔서 제가 누나 집에 데려다준 건데요.”

민석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제영을 보며 말했다.

제영은 얼른 송이에게 다가가 민석의 팔을 탁 치워내고 자신이 송이를 부축했다.

제영

 “이제 가보세요. 송이 씨는 내가 데려다주면 되니까.”

제영이 송이를 데리고 뒤돌아서자 민석이 그 앞을 막아섰다.

민석

 “내가 그쪽을 어떻게 믿고 누나를 맡겨요?”

민석의 말에 제영은 피식 웃으며 송이의 어깨를 더 꽉 끌어안았다.

제영

 “오늘은 경찰이 아니라 송송이 씨 남자친굽니다. 이제 됐습니까?”

제영의 말에 민석은 할 말을 잃고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민석

 “설마 했는데…진짜네….”

민석은 좀 아까 택시에서 본 제영의 이름 앞에 붙은 하트에 별 의미가 없길 기도했지만 결국, 둘은 아무 사이가 아닌 게 아니라는 사실에 힘이 빠졌다.

민석

 “아직…고백도 못 했는데…”

*** 

송이

 “경위님!! 나 딸기우유 사줘야지요~”

제영

 “송송이 씨 술 깨면 좀 봅시다.”

송이

 “네? 지금 봐여~왜 이따 봐요. 네?”

자신의 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게 웃으며 딸기우유를 외치는 송이를 보는 제영은 한숨만 푹 내쉬었다.

제영

 “송송이 씨 집 비밀번호 뭐예요?”

송이

 “에? 그런 건 왜 물어봐요. 저 막 그런 거 쉽게 알려주는 여자 아니거든요?”

제영

 “하아…그런 여자 아닌 거 아니까 빨리 비밀번호 알려줘요.”

송이

 “한번 맞춰봐여어~”

술에 취했어도 절대 본인 집 비밀번호를 말하지 않는 송이 때문에 현관 앞에서 실랑이하던 제영은 결국 송이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제영은 일단 송이를 자신의 침대에 눕혔다.

송이

 “우음..”

잠결에 송이의 치마가 말려 올라가는 걸 본 제영은 괜히 헛기침하곤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 주었다.

제영

 “크큼….”

아무것도 모르게 새근새근 자고 있는 송이를 가만히 바라보던 제영은 송이의 흐트러진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자신은 거실로 나왔다.

제영

 “아…. 맞다.”

제영은 지갑을 챙겨 들고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아르바이트생

 “2,300원입니다.”

편의점에서 딸기 우유를 사 온 제영은 냉장고에 고이 모셔 두었다.

그리곤 자신은 소파에 누워 잠을 청했다.

*** 

송이

 “아 목말라아….”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며 잠에서 깬 송이는 두 눈을 비비며 부스스 침대에서 내려왔다.

문을 열고 자연스럽게 거실로 나가려던 순간, 송이는 소파에 길게 누워 있는 제영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송이

 “꺄악!!!!!”

송이의 비명에 놀란 제영이 벌떡 일어나자 송이는 두 눈을 벅벅 비비며 다시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이 제영인가를 확인했다.

제영

 “깼어요?”

송이

 “여…여기 왜….”

제영

 “우리 집이니까요.”

송이

 “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송이가 주변을 둘러봤다.

연한 하늘빛 벽지와 제복이 걸려 있는 옷걸이 그리고 무엇보다 제영이 받은 듯한 상장들이 즐비하게 진열된 걸 보고는 자신의 집이 아니란 걸 인지한 송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송이

 “제…. 제가 왜….”

평소보다 어두운 표정의 제영을 보고 송이는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제영

 “일단 이거 마셔요.”

제영은 어제 사다 놓은 딸기우유를 건넸다.

송이

 “네? 네….”

목이 탄 송이는 딸기우유를 그 자리에서 금방 비웠다.

송이

 “캬하…. 헙….”

자기도 모르고 낸 소리에 놀란 송이는 얼른 양손으로 입을 막았다.

제영

 “크..큼.”

그런 송이의 모습에 웃음이 터질 뻔한 제영은 오늘은 송이에게 단단히 주의를 시켜야 할 것 같아 입술을 꾹 깨물고 애써 화난 표정을 유지했다.

제영

 “여기 앉아 봐요.”

송이는 쭈뼛쭈뼛 제영의 건너편 식탁 의자에 앉았다.

제영

 “어제 뭐 했어요?”

송이

 “네…?”

제영

 “어제 과제 한 거 맞아요?”

송이

 “아…. 그게….”

제영

 “거짓말할 생각 말아요. 나 경찰인 거 알죠?”

송이

 “네…. 사실은….”

이미 속을 다 꿰뚫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제영 때문에 송이는 더듬더듬 사실대로 어제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제영

 “그러니까 나한테 과제가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강민석 씨랑 단둘이 콘서트장을 갔다가 같이 저녁을 먹었다. 그거죠? 단. 둘. 이?”

송이

 “…. 네….”

이미 다 밝혀진 이상 송이는 입이 열 개여도 제영에게 할 말 이 없었다.

제영

 “하아…게다가 남자 아이돌 콘서트를….”

송이

 “…아니 익쏘는….”

제영

 “더 할 말 있어요?”

송이

 “네? 아니요…. 그래도 그게….”

왠지 취조를 당하는 듯한 분위기에 송이는 입을 다물었다.

제영

 “됐습니다.”

굳은 표정으로 자신이 하는 말을 뚝 끊은 제영을 본 송이는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송이

 “정말 미안해요. 경위님…제가 익쏘에 미쳐서…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잘못했어요.”

눈꼬리를 잔뜩 늘어뜨린 채 미안함을 호소하는 송이를 보며 이미 제영은 마음이 다 풀렸지만 애써 화가 덜 풀린 척 송이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송이

 “경위님….”

제영

 “약속 하나 해요 나랑.”

송이

 “네? 네!! 약속해요!”

제영

 “앞으로 남자랑 단둘이 술 마시는 거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송이

 “네? 네….”

제영

 “그리고…거짓말은 절대 안 돼요.”

송이

 “네!! 절대 안 해요!”

제영

 “이리 와요.”

제영이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치자 송이는 쪼르르 달려가 제영의 옆에 풀썩 앉았다.

제영

 “나도 송이 씨랑 한 약속 꼭 지킬 테니까 송이 씨도 꼭 지켜요.”

송이

 “네!!!”

우렁차게 대답하는 송이를 보며 결국 푸스스 웃음을 터뜨리는 제영이다.

송이

 “이제 다 풀린 거죠?”

제영

 “크큼….”

송이

 “네? 네?”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애교를 부리는 송이를 보며 제영은 결국 크게 웃어버렸다.

제영

 “우와 다 풀렸다~!”

송이는 제영의 품에 폭 안겨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송이

 “민석인 그냥 후배예요.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닌데?”

제영

 “남자는 다 늑대예요.”

송이

 “어? 그럼 경위님도?”

제영

 “나 빼고다….”

송이

 “치….”

송이는 제영을 가만히 바라보다 볼에 뽀뽀를 쪽 했다. 당황한 제영이 아무 말도 못 하고 자신을 바라보자 송이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저만치 도망갔다. 

 

송이

 “경위님하고 저는 이런 사이니까 뽀뽀도 하는 건데!”

송이의 귀여운 고백에 제영은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렸다.

제영

 “내가 졌네요.”


내 경찰아저씬데요?14화 - 입술 도장 꾹.

오랜만에 맞는 여유로운 주말에 송이는 느지막이 일어나 냉장고에서 우유 하나를 꺼내 먹고 침대에 다시 늘어지듯 누웠다.

송이

 “하암~”

침대에 누워 리모컨 채널만 만지작거리던 송이는 더듬더듬 손을 뻗어 휴대폰을 찾았다.

익숙하게 제영의 번호를 꾹 누르자 곧 송이의 이름을 부르는 제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영

 [네 송이 씨.]

송이

 “경위님~”

제영

 [네~]

송이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제영

 [송송이 씨 목소리 들으니까 힘 나는 것 같네요.]

송이

 “우와 나 경위님 비타민인가?”

제영

 [그걸 이제 알았습니까?]

송이

 “헤헤 오늘도 다치지 말고 밥 꼭 챙겨 먹고 알았죠?”

제영

 [네 명심하겠습니다.]

송이와의 통화를 마친 제영은 손에 들린 김밥 하나를 입에 쏙 넣었다.

샌드위치 좀 그만 먹으라는 송이의 말을 들어 그나마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게 김밥 같은 것들이라 소고기 김밥, 치즈 김밥 등 김밥을 종류대로 섭렵하고 있는 제영이다.

제영

 “아무리 그래도 송송이 씨 김밥만 못하네.”

제영은 마지막 남은 김밥 끄트머리를 보고 송이의 다 터진 김밥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요즘 들어 연달아 터지는 밤손님 모방 사건에 제영은 잔뜩 예민해져 있었다.

삭막한 공기와 냉기만이 흐르는 청 안에서 종일 사건 기록과 수사 자료를 뒤적이고 있을 때 가끔 하는 송이와의 통화가 제영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하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박형사

 “경위님 여기 블랙박스 자료 나왔습니다.”

제영

 “얼굴 찍힌 거 있어요?”

박형사

 “다행히도 차마다 블랙박스가 다 설치되어 있어서 범인의 동선은 어느 정도 파악이 됐습니다.”

제영

 “용의자 집 주소는?”

박형사

 “파악했습니다.”

제영

 “오늘부터 나랑 박 형사 용의자 집 앞에서 잠복 들어갑니다.”

박형사

 “네 알겠습니다.”

제영

 “강력 범죄 용의자입니다. 준비 단단히 하고 움직이세요.”

박형사

 “네!”

제영

 “절대 다치지 않도록 합니다.”

제영은 마치 자신에게 주문을 걸듯, 평소보다 더 든든하게 준비를 마치고 현장으로 향했다.

***

오전 내내 침대에서 뒹굴던 송이는 배에서 울리는 천둥소리에 벌떡 일어나 냉장고를 뒤적였다.

지이잉//

라면이나 끓여 먹을까 싶어 물을 올려놓은 송이는 침대에서 울리는 진동소리에 후다닥 뛰어가 전화를 받았다.

은애

 [쏭! 뭐해?]

송이

 “나? 라면 먹으려고 물 올려놨는데?”

은애

 [그럼 물 버리고 나와.]

송이

 “왜?”

은애

 [이 언니 오늘 아르바이트비 받았다! 감자탕 쏠게.]

송이

 “곧 갈게.”

은애

 [지지배 거절은 안 해요.]

송이

 “금방 나간다!”

은애

 [이따 봐~]

송이는 전화를 끊자마자 라면을 올려놨던 가스 불을 끄고 대충 옷을 걸쳐 입고 은애를 만나러 갔다.

*

은애

 “쏭!”

송이

 “어~~”

은애

 “가자 이 언니가 오늘은 확실하게 쏜다!”

은애

 “감자탕 소자 주세요.”

송이

 “아니 중자 주세요 중자!”

소자를 주문하는 은애의 입을 탁 막으며 중자를 외치는 송이다.

은애

 “누구 또 와?”

송이

 “아니 내가 두 사람 몫은 할 거 같아.”

진지한 표정으로 물을 벌컥 들이켜는 송이의 모습에 은애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은애

 “못 먹기만 해봐.”

송이

 “못 먹으면 포장해가지 뭐.”

감자탕이 나오고 송이는 부지런히 고기를 뜯기 시작했다.

은애

 “오늘은 경위님 안 만나?”

송이

 “요즘 바빠서 자주 못 만나.”

은애

 “아 요새 그 밤손님 사건인가? 그거 모방 범죄 많이 일어난다고 하던데.”

송이

 “그거 때문에 요즘 매일 청에서 살아. 나쁜 놈들!”

송이는 앞에 있는 고기를 그 범인들이라고 생각하며 찰지게 뜯어 먹었다. 

송이

 “커피는 내가 살게 가자!”

감자탕을 거하게 얻어먹은 송이는 은애와 카페로 향했다.

*

송이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이요.”

카페직원

 “5,000원입니다.”

커피를 주문하고 송이와 은애는 햇살이 제일 잘 드는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은애

 “날씨 엄청 좋다.”

송이

 “그러게 이런 날씨에 데이트 가야 하는데.”

은애와 송이는 나란히 앉아 턱을 괴고 바깥사람들 구경을 했다.

은애

 “아! 맞다 쏭!”

송이

 “어?”

은애

 “너 아르바이트 안 할래?”

송이

 “아르바이트? 어떤 거?”

은애

 “서울청 앞에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구하던데?”

송이

 “카페?”

은애

 “거기 경위님 단골 아냐? 돈도 벌고 경위님도 보고.”

송이

 “오 좋은데?”

그렇지 않아도 전에 하던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용돈이 부족했던 송이는 은애의 말에 솔깃했다.

은애

 “내일까지라더라 얼른 가봐.”

은애의 말에 송이는 당장 카페로 달려갔다.

송이

 “저…. 아르바이트생 구하신다고 해서 왔는데요.”

아르바이트생

 “아 잠시만요 점장님!”

아르바이트생이 쪼르르 안쪽으로 들어가며 점장을 부르자 곧이어 안쪽에서 젊은 남자가 손에 물기를 털며 나왔다.

점장

 “아 아르바이트 면접 보러 오셨어요?”

송이

 “아…. 네.”

생각보다 너무 젊은 점장을 보며 송이는 조금 놀랐다.

점장

 “뭐 마실래요?”

송이

 “아…아뇨 괜찮아요.”

송이를 유심히 바라보던 점장은 그제야 뭔가 생각난 듯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점장

 “아 그러고 보니 여기 자주 오지 않았어요?”

송이

 “네? 아…. 네 저 단골이에요.”

점장

 “이름이 뭐예요?”

송이

 “아…. 저 송송이요 성이 송 씨고 이름이 송이.”

점장

 “송송이..이름 예쁘네요.”

조그맣게 이름을 불러 보던 점장은 송이를 보며 싱긋 웃었다.

송이

 “아…. 감사합니다.”

점장

 “카페 일은 해본 적 있어요?”

송이

 “네 한 1년 정도 해본 적 있어요.”

점장

 “오 그럼 웬만한 메뉴는 다 만들 줄 알겠네요?”

송이

 “네…. 뭐 어느 정도는….”

점장

 “시간은 토, 일 낮 2시부터 저녁 9시까지 괜찮아요?”

송이

 “네 주말에 괜찮아요.”

점장

 “오케이 그럼 다음 주 주말부터 출근하세요.”

송이

 “네? 저 합격이에요?”

점장

 “네 합격이에요.”

송이

 “감사합니다!”

송이는 벌떡 일어나 꾸벅 인사를 했다.

점장

 “내 이름은 이지웅이에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점장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송이

 “아…. 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송이는 활짝 웃으며 지웅의 손을 마주 잡았다.

***

제영

 “지금 몇 십니까?”

박형사

 “다섯 시요, 슬슬 움직일 때가 됐는데요.”

벌써 6시간째 잠복 중인 제영과 박 형사는 좁은 차 안에서 창문도 열지 못한 채 용의자가 나올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박형사

 “저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제영

 “다녀오세요.”

박 형사가 잠시 자리를 비우고 제영은 더 예리한 시선으로 주변을 훑었다.

그때/

범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제영의 차를 스쳐 지나갔고, 제영은 재빠르게 차에서 내려 뒤에서 남자를 쫓았다.

범인

 “뭐…. 뭐야!”

당황한 남자가 품 안에서 흉기를 꺼내 들었다.

제영

 “칼 내려놔.”

범인

 “너…. 너 뭐야!”

제영

 “칼 내려놔, 두 번 경고했어.”

위협을 느낀 남자는 미친 듯이 흉기를 휘두르기 시작했고, 제영은 물러서지 않았다.

제영

 “칼 내려놔. 마지막 경고야.” 

***

송이

 “아! 여기 있다!”

밀린 청소를 끝낸 송이는 소파에 누워 그동안 미루고 미뤘던 영화 DVD를 틀었다.

‘번지점프를 하다’ 송이가 어릴 적 개봉한 영화지만 우연히 티비 채널을 돌리다 보게 되었고 깊은 감동을 받은 송이는 그 날로 DVD를 구입했다.

영화가 시작되고 송이는 냉장고에서 시원한 맥주 한 캔을 꺼내왔다.

한 손엔 맥주를 들고 또 다른 손엔 리모컨을 들고 영화 볼 만반의 준비를 마친 송이는 서서히 영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영화의 명대사가 흐르고 송이는 수십 번 본 장면, 대사에도 처음 본 것처럼 눈물을 흘렸다.

송이

 “흐엉…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사랑한대….”

탁자엔 어느새 휴지가 가득 쌓이고 송이의 두 눈은 퉁퉁 부었다.

그래도 영화는 끝까지 다 본 송이는 문득 제영이 너무 보고 싶어 무작정 제영의 번호를 꾹 눌렀다.

아무리 바빠도 몇 번 신호음이 가면 바로 전화를 받는 제영이었는데 몇 통을 해도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여자의 목소리만 흘러나왔다.

송이

 “많이 바쁜가….”

불쑥 떠오르는 걱정스러움에 송이는 고개를 흔들어 애써 그 걱정을 떨치고 침대에 누웠다.

내일이면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전화할 제영을 생각하며….

***

박형사

 “하 경위님!!!!!”

제영의 무전에 달려온 박 형사는 옆구리를 틀어막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제영을 보며 서둘러 자신의 옷을 벗어 제영의 상처 부위를 꾹 눌렀다.

제영

 “나 괜찮으니까 빨리 저 새끼부터….”

박형사

 “김 형사랑 다른 사람들, 이 주변에 다 배치해놨습니다. 일단 병원부터 가요.”

제영

 “으윽….”

그 때 박 형사가 차고 있는 무전기가 울렸다.

동료1

 -박 형사님! 박 형사님!’

박형사

 “무슨 일이야?”

동료1

 -잡았습니다!!

박형사

 “잡았어? 경위님 잡았답니다.”

제영

 “하아…. 다행입니다 당장 연행하고…. 구속…”

범인을 잡았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겨우 정신을 붙잡고 있던 제영은 그대로 정신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박형사

 “경위님!!”

***

다음 날, 송이는 눈뜨자마자 휴대폰을 확인했다.

하지만 여전히 휴대폰엔 부재중 전화는커녕 문자도 와 있지 않았다.

또다시 몰려오는 불안함에 송이는 다시 제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달칵//

박형사

 [하제영 경위님 휴대폰입니다.]

송이는 제영의 목소리가 아닌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놀라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채 휴대폰만 꾹 쥐고 있었다.

박형사

 [송이 씨 맞죠?]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남자에 송이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송이

 “네…. 맞는데 누구…. 세요?”

박형사

 [저 박 형삽니다.]

송이

 “아…. 박 형사님 경위님은….”

박형사

 [아…저기….]

송이

 “혹시…. 다치셨어요?”

송이는 제발 자신의 직감이 틀리길 바라며 숨도 쉬지 못한 채 대답만 기다렸다.

박형사

 [여기 해송병원입니다.]

송이

 “하…”

듣기 싫은, 아니 들으면 안 되는 말에 송이는 그저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박형사

 [송이 씨?]

송이

 “아…. 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그제야 정신이 든 송이는 얼른 전화를 끊고, 뛰어 내려와 택시부터 잡았다.

송이

 “기사님 해송병원이요 빨리요!”

*

송이

 “여…. 여기 하…. 제영 경위님 보려면 어디로 가면 돼요? 네?”

송이는 무작정 아무 간호사나 붙잡고 어디로 가면 되냐고 물었다.

간호사1

 “환자 확인은 저쪽에서 하시면 됩니다.”

간호사가 가리키는 곳으로 달려간 송이는 다급하게 제영의 이름만 불렀다.

송이

 “하 제영이요. 하 제영….”

간호사2

 “10층 1012호로 가시면 됩니다.”

제영의 병실 앞에 도착한 송이는 바로 문을 열지 못했다.

송이

 “하아…. 제발….”

한참을 밖에서 망설이던 송이는 조심스럽게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기분 나쁜 병원 냄새와 함께 조용한 병실 안엔 삑삑 기계 소리만 가득 메우고 있었다.

송이는 한 걸음 한 걸음 제영이 누워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송이

 “경위님….”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상한 기계들을 붙이고 두 눈을 꾹 감고 있는 제영을 본 송이는 왈칵 눈물이 터졌다.

송이

 “흐엉~경위님!!”

송이는 제영의 팔을 붙잡고 엉엉 울기만 했다.

제영

 “아아….”

한참을 제영을 붙잡고 울던 송이는 귓가에 들리는 제영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송이

 “경위님!?”

제영

 “여긴…어떻게 왔습니까?”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제영을 보며 송이는 더욱더 크게 울었다.

송이

 “흐엉~~”

제영

 “송…. 송이 씨….”

대성통곡을 하는 송이를 보며 당황한 제영이 허리를 세워 앉았다.

제영

 “송송이 씨 나 괜찮아요.”

송이

 “…. 진짜 괜찮아요?”

송이는 잔뜩 부은 눈으로 제영을 바라보았다.

제영

 “진짜 괜찮아요. 안 죽어요 나.”

아직도 울음 끝이 남아 흐느끼는 송이를 제영은 자신의 품에 안아 토닥여 주었다.

제영

 “많이 놀랐어요?”

송이

 “경위님 죽는 줄 알고….”

제영은 송이를 자신의 품에서 떼어 놓고 송이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제영

 “걱정시켜서 미안해요.”

송이

 “다치지 말랬잖아요….”

제영

 “하나도 안 아파요, 괜찮아요.”

송이는 제영의 옆구리에 감긴 붕대를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손으로 쓸어내렸다.

송이

 “…많이 아팠겠다. 우리 경위님….”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제영은 송이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싼 채 퉁퉁 부은 송이의 두 눈을 살살 쓰다듬었다.

제영

 “많이 속상했겠다. 우리 송송이 씨…. 내가 저번에 한 말 기억해요?”

송이

 “무슨 말이요?”

제영

 “그때 어떤 학생이 나한테 질문했잖아요? 범인 잡다 보면 칼도 맞냐고.”

송이

 “아….”

제영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해요?”

송이

 “….운동신경이 좋아서 잘 피한다고….”

제영

 “그거 농담 아녜요, 나 운동 잘해서 칼 진짜 잘 피합니다.”

송이

 “자랑이에요?”

제영

 “자랑이에요.”

장난스러운 제영의 말에 송이는 웃지 못했다.

송이

 “경위님.”

송이는 링거가 꽂힌 제영의 손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송이

 “위험한 일이 직업인 사람한테 위험한 일 하지 말라고 하면 안 되는 거죠…?”

제영

 “……”

송이의 물음에 제영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송이

 “괜한 소리 했다…. 그냥 잊어버려요.”

말갛게 고인 눈물을 얼른 손으로 지워 버리고는 슬픈 표정을 들키기 싫어 고개를 돌리는 송이의 손을 제영은 다시 붙잡았다.

제영

 “송송이 씨.”

송이

 “…. 네.”

제영

 “내가 원래 약속 같은 거 잘 안 하는 사람인데 약속 하나 할게요.”

송이

 “……”

제영

 “꼭 지킬 약속이기도 하고…. 어쩌면 지키지 못할 수도 있는 약속이기도 해요.”

송이

 “그게 뭐예요.”

제영

 “근데 죽어도 이 약속은 꼭 지킬 겁니다. 약속해요.”

제영은 단호한 눈빛으로 송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영

 “절대 내가 먼저 송송이 씨 떠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송송이 씨가 나 싫다고 밀어내지 않는 한 그 어떤 이유에서도 내가 먼저 송송이 씨 곁을 떠나진 않을게요 약속합니다.”

제영은 송이의 새끼손가락에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송이의 고개를 들어 눈을 맞췄다.

제영은 여기저기 눈물길이 나 있는 송이의 얼굴을 손으로 쓱 닦아주었다.

그리곤 천천히 다가가 송이의 입술에 꾹 입을 맞췄다.

제영

 “이건 도장.”


내 경찰아저씬데요?15화 - 동감.

제영은 상처가 아물 때까지는 입원해야 했기 때문에 송이는 학교가 끝나면 제영이 입원한 병원으로 달려왔다.

송이

 “경위님!”

제영

 “왔어요?”

송이

 “점심은 드셨어요?”

제영

 “네, 다 먹었습니다.”

송이는 보호자 간이침대에 풀썩 앉아 가방에서 과제 할 자료들을 꺼내 늘어놓았다.

제영

 “이리 올라와서 해요.”

송이

 “환자 침대 뺏으면 간호사 언니한테 혼나요.”

제영은 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학교가 끝나면 달려와 자신의 옆에 있어 주는 송이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과제에 집중한 송이는 제영 쪽으론 시선도 주지 않은 채, 하나씩 과제를 끝마쳤다.

그런 송이를 가만히 바라보다 까무룩 잠이 든 제영은 부스스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니 간이침대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송이가 보였다.

제영

 “송이 씨?”

정신 없이 졸던 송이는 문득 들린 제영의 목소리에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송이

 “경위님…. 일어났어여?”

제영

 “네 졸리면 누워서 자면 되지 왜 졸아요.”

제영은 삐죽삐죽 솟아오른 송이의 잔머리를 귀에 꽂아 주며 말했다.

송이

 “하암…. 저도 모르게 잠들었어요.”

아직도 무거운 눈꺼풀에 계속해서 꾸벅거리며 조는 송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제영이다.

***

자꾸 쏟아지는 졸음을 쫓기 위해 제영과 송이는 커피 한 잔씩 손에 들고 병원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았다.

송이

 “아 좋다~”

따뜻한 공기와 선선한 바람까지 살랑 부는 날씨에 송이는 두 팔을 쭉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제영

 “안 피곤해요?”

송이

 “하나도 안 피곤해요~”

제영

 “눈 밑에 그 거뭇거뭇 한 건 뭐예요?”

제영이 송이의 눈가를 가리키며 묻자 송이는 후다닥 양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런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푸흡 하고 웃음이 터졌다.

송이

 “왜…. 왜요!”

제영

 “좋아서요.”

갑작스러운 제영의 고백에 송이의 얼굴은 또다시 불타는 고구마가 되어버렸다.

송이

 “아…. 더…. 덥다.”

송이는 애써 태연한 얼굴로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손부채 질로 식혔다. 

송이

 “저 이제 가볼게요. 내일은 오전 수업이니까 일찍 올게요.”

제영

 “조심히 가요. 택시 타면 번호 찍어서 문자하고 아니다 전화해요. 전화.”

송이

 “알겠습니다~내일 봐요.”

송이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병원을 나섰다.

***

민석

 “누나.”

제영이 좋아하는 커피를 사 들고 병원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송이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송이

 “어? 어 민석아 너 어디 아파?”

어쩐 지 평소보다 힘없는 민석을 보며 송이는 걱정스레 물었다.

민석

 “아뇨 그냥…”

송이

 “얼굴이 까칠한데….”

민석

 “누나 어디 가요?”

송이

 “어…. 어.”

왠지 모르게 둘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분위기에 송이는 괜히 큼큼하고 헛기침만 했다.

민석

 “누나.”

송이

 “어?”

민석

 “누나 하제영 씨랑 사귀어요?”

단도직입적인 민석의 질문에 송이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송이

 “어…. 그걸 너가 어떻게 알아?”

민석

 “진짜 사귀어요?”

단호한 말투로 한 번 더 물어오는 민석에 송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송이의 대답에 민석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앞만 보고 서 있었다.

송이

 “민석아?”

민석

 “누나.”

송이

 “어?”

민석

 “나 누나….”

지이잉/

송이

 “어? 잠깐만 민석아.”

송이는 잠시 민석에게서 등을 돌려 전화를 받았다.

송이

 “네 경위님! 지금 가고 있어요. 쪼끔만 기다려요~”

어디냐고 묻는 제영의 전화에 송이는 금방 간다고 하고 전화를 끊고는 다시 민석에게 다가가 물었다.

송이

 “어 민석아 미안, 할 말이 뭐야?”

민석

 “…. 아녜요 저 먼저 갈게요.”

민석은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고 뒤돌아섰다.

그런 민석의 모습에 송이는 의아한 듯 고개를 한번 갸웃하고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듯 제영에게 향했다. 

*** 

송이

 “경위님!”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제영을 부르며 쪼르르 달려가 제영의 옆에 앉는 송이다.

제영

 “왔어요?”

송이

 “네! 경위님 이거 마셔요!”

송이는 제영이 늘 가는 청 앞에 있는 카페에서 사 온 커피를 내밀었다.

제영

 “어? 이거 청 앞에 있는 그 카페 커피 아녜요?”

송이

 “맞아요! 경위님 여기 커피 좋아하잖아요~”

제영

 “병원 밑에 카페 커피 마셔도 되는데…. 송이 씨 번거롭잖아요.”

송이

 “하나도 안 번거로워요~아! 경위님 저 이제 주말부터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해요.”

제영

 “카페에서요?”

송이

 “네! 이번 주말부터 이제 주말엔 제가 경위님 커피 만들어 줄 수 있어요!”

제영

 “학교 다니면서 힘들지 않겠어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 제영을 보고 송이는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송이

 “아! 경위님 하루종일 심심했죠!”

제영

 “네 심심했죠.”

송이

 “우리 영화 봐요!”

제영

 “영화요? 지금 못 나가는데…?”

송이

 “아니~ 여기서!”

송이는 가방에서 노트북과 DVD를 꺼냈다.

송이

 “짠!”

제영

 “이걸 챙겨온 거예요?”

송이

 “네! 오늘 과제 발표 때문에 노트북 가져왔거든요. 그래서 겸사겸사 DVD도 챙겨온 거예요.”

송이는 능숙하게 노트북을 켜고 DVD를 틀었다.

제영

 “이쪽으로 올라와요~”

제영은 자신의 옆을 툭툭 치며 말했다.

송이

 “경위님 안 불편하겠어요?”

제영

 “여기다 이렇게 올려놓고 보면 되겠다.”

제영은 병원 침대 테이블을 펴고 그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았다.

송이와 제영은 나란히 앉아 영화에 집중했다.

‘내가 니 기억이고 니 마음이야.’

영화 속 주인공의 대사에 송이는 어느새 두 눈에 눈물이 말갛게 고였다.

제영

 “울어요?”

워낙 감수성이 풍부해 조금만 감성을 건드리는 영화만 봐도 눈물을 뚝뚝 흘리는 송이였기에 역시 오늘도 있는 눈물 없는 눈물 다 쏟아내었다.

제영

 “그렇게 슬퍼요?”

송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마저 잊어버리면…. 너무 슬플 거 같아요….”

또다시 감정이 벅차오른 송이의 눈엔 다시 눈물이 넘쳤다. 

 

제영

 “울지 마요….”

송이

 “흐엉….”

결국, 또다시 울음을 터뜨리는 송이다. 

영화가 다 끝나고 나니 어느덧 밖은 해가 져 어둠이 내려앉았다.

송이

 “혼자 갈 수 있다니까요~”

제영

 “내가 마음이 편치 않아서 그래요.”

괜찮다는 송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영은 기어이 병원 로비까지 나와 송이를 배웅해 주었다.

제영

 “택시 타면 전화하고.”

송이

 “네 알겠어요. 얼른 들어가요. 감기 걸리면 안 돼.”

제영은 송이가 택시를 타는 것까지 본 후 병실로 올라갔다. 

송이

 “기사님 행복 빌라요.”

병원 앞에서 택시를 탄 송이는 잠시 후 휴대폰을 꺼내 제영의 번호를 꾹 눌렀다.

제영

 [네 택시 탔어요?]

송이

 “네. 경위님은 병실이죠?”

제영

 [네 지금 막 들어왔어요.]

송이

 “오늘 저 때문에 많이 피곤했죠….”

제영

 [송이 씨가 와서 하나도 안 피곤해요.]

송이

 “치…. 그게 뭐예요.”

제영

 [저번에도 말했잖아요. 송이 씨가 내 충전기라고.]

송이

 “히힛….”

제영

 [송이 씨는 안 피곤해요?]

송이

 “저도 경위님 봐서 하나도 안 피곤해요~”

그렇게 소소한 이야기를 하며 통화를 하다 보니 송이의 빌라가 눈앞에 보였다.

송이

 “어? 도착했다. 경위님 이제 다 왔어요.”

제영

 [조심히 들어가요. 푹 자고.]

송이

 “경위님도 푹 쉬세요~내일 봐요.”

제영

 [송이 씨!]

송이

 “네?”

제영

 […나도 송이 씨의 기억이 되고 마음이 됐으면 좋겠어요.]

함께 본 영화의 대사로 자신의 마음을 한 번 더 고백하는 제영에 송이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송이

 “…. 사…랑해요.” 

*** 

은애

 “경위님 몸은 좀 괜찮으셔?”

송이

 “응 많이 호전돼서 내일이나 모레 퇴원해도 될 거 같데.”

은애

 “다행이네~”

수업을 마치고 송이는 은애와 나란히 학식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다.

송이

 “오늘은 제육 덮밥이다.”

식판을 들고 주변을 둘러 보던 은애는 안쪽에 민석이 앉아 있는 걸 보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은애

 “강민석!”

민석

 “아 선배….”

은애

 “여기 앉아도 되지?”

민석

 “네….”

어쩐지 어두운 표정의 민석을 보고 은애는 민석의 얼굴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은애

 “너 어디 아파?”

민석

 “아뇨…. 아녜요.”

그때 식판을 든 송이가 자신을 찾는 듯 이리저리 살펴보자 은애가 손을 번쩍 들었다.

송이

“아 어!”

은애를 발견한 송이가 다가오자 민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석

 “저 먼저 가볼게요.”

송이

 “어? 민석아.”

민석

 “…….”

민석을 발견한 송이가 반갑게 아는 척을 했지만, 민석은 아는 척도 않은 채 뒤돌아섰다.

송이

 “어? 나 못 봤나?”

은애

 “강민석 쟤 왜 저래.”

송이

 “몰라….”

은애

 “쟤 혹시…. 너랑 경위님이랑 사귀는 거 알아?”

송이

 “응 저번에 물어보길래 그렇다고 했는데….”

은애

 “그래서 저러나 보다.”

송이

 “어?”

은애

 “송송이 너 진짜 몰랐던 거야 아니면 애써 모른 척한 거야?”

은애는 숟가락질을 멈추고 진지한 표정으로 송이에게 물었다.

송이

 “뭐를?”

은애

 “민석이 말야.”

송이

 “응?”

정말로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송이를 보며 은애는 주변을 둘러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은애

 “민석이가 너 좋아한 거 진짜 몰랐냐고.”

송이

 “아 장난하지 마….”

은애가 늘 하던 장난 같은 말에 송이는 별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은애

 “장난 아니거든? 강민석이 너 진짜로 좋아한다고. 선배로서 아니라 여자로서. 하 경위님이 널 생각하는 그런 거처럼.”

송이

 “뭐?”

평소와는 다른 진지한 은애의 말투와 표정에 송이는 고기를 집던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은애

 “진짜 몰랐구나….”

은애의 말에 화들짝 놀라는 송이를 보며 은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은애

 “너 진짜 둔팅이냐? 민석이가 너랑 나랑 대하는 태도만 봐도 지나가는 멍멍이도 알겠다.”

송이

 “나는 그냥 내가 편해서 그런 줄 알았지.”

은애

 “너 강민석이랑 단둘이 콘서트도 다녀왔다며.”

송이

 “그건…. 표를 두 장밖에 못 구했다던데….”

은애

 “그래서 그 콘서트 다녀와서 경위님이 뭐라고 안 해?”

송이

 “그렇지 않아도 혼났는데….”

은애

 “그거 봐, 너 저번엔 민석이가 고기도 사줬다며.”

송이

 “응…. 그건 우연히 만나서….”

은애

 “강민석이 나한테 고기 사주고 영화 보자고 하고 그러디?”

은애의 물음에 가만히 생각하던 송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은애

 “봐, 이 맹추야.”

송이

 “나 어떡해야 해…?”

은애

 “뭘 어떡해야 해, 강민석이 마음을 확실히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지.”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에 송이의 머릿속은 또 복잡해졌다. 

***  

복잡한 머릿속을 애써 비우며 평소와 다름없이 노크 없이 문을 활짝 열고 병실로 들어선 송이는 제영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는 낯선 여자를 보고 당황해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송이

 “제가 노크도 없이…. 죄송합니다.”

제영

 “송이 씨 들어와도 돼요.”

그러다 정신이 든 송이가 문을 닫고 나가려 하자 제영이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송이가 쭈뼛쭈뼛 제영에게 다가서자, 제영의 곁에 서 있던 여자가 송이를 슬쩍 쳐다보았다.

여자의 시선을 느낀 송이가 꾸벅 인사를 하자, 여자는 싱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수련

 “안녕하세요, 차수련이예요. 제영이 선배예요.”

송이

 “아…. 안녕하세요! 송송이입니다.”

송이는 얼른 수련의 손을 마주 잡았다.

어쩐지 자신을 훑어 보는 듯한 수련의 눈빛에 송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수련의 손을 놓았다.

수련

 “제영이랑은 무슨 사이예요?”

수련의 입에서 나온 제영이라는 단어에 송이는 왠지 모를 질투심이 생겼다.

송이

 “여자친구요.”

그래서 일부러 여자친구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이야기 하는 송이다.

수련

 “아 그렇구나~ 되게 어려 보이는데?”

송이

 “생각보다 그렇게 어리지도 않은데요.”

수련

 “되게 귀엽다 송이 씨~”

불퉁한 목소리로 대꾸하는 송이를 보며 수련은 어린아이를 대하듯 송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수련

 “그럼 나는 이만 갈게, 연락할게~”

제영

 “조심히 가요 선배.”

수련

 “꼬마 아가씨도 안녕~”

송이

 “아…. 네.”

수련이 병실에서 나가고 송이는 가방 속에서 책들을 꺼내며 중얼거렸다.

송이

 “치…. 내가 왜 꼬마야…. 나이 어린 게 뭐 어때서….”

제영

 “네?”

제영이 묻자, 송이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제영 쪽으로 시선도 주지 않았다.

제영

 “송이 씨~”

제영이 다시 한 번 불러 보았지만, 송이는 아예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그런 송이의 태도에 제영은 안절부절못한 채 계속해서 송이의 주변을 맴돌았다.

송이

 “왜요 왜.”

그제야 이어폰을 빼고 제영을 쳐다보는 송이다.

제영

 “화…. 났어요?”

송이

 “아뇨.”

제영

 “…혹시 차 선배 때문에….”

송이

 “아 맞아요 나 질투해요! 왜 때문에 하 경위님 얼굴을 막 쓰다듬고 어? 내가 경위님 여자친구라는데 왜! 뭐! 어린애 취급은 왜 하는데! 나이만 많으면 다야?”

새빨개진 얼굴로 속마음을 다다다 쏘아붙이는 송이다.

그런 송이의 모습을 제영은 벙 찐 얼굴로 바라만 보았다.

송이

 “경위님도 어? 얼굴을 쓰다듬는 데 왜 가만히 있어요?”

제영

 “…. 네? 아….”

자신에게 돌아온 화살에 당황한 제영이 대답을 못 하자 송이는 콧방귀를 뀌곤 병실 밖으로 휙 나가버렸다.

제영

 “송이 씨!”

제영이 얼른 쫓아 나갔지만, 송이는 이미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 버린 후였다.

쫓아 내려가려던 제영은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소리에 얼른 휴대폰을 확인했다.

송이

 [잠깐 바람 쐬고 올게요. 따라 나오지 말아요. 창피하니까….]

송이의 문자에 엘리베이터로 향하려던 제영의 발걸음은 다시 병실로 향했다. 

*** 

병원 밖에 위치한 공원 벤치에 앉아 열을 식히던 송이는 그제야 창피함이 몰려왔다.

송이

 “아…. 내가 미쳤나 봐…경위님이 내가 질투에 눈먼 여자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벤치에 앉아 찬 바람을 쐬며 마음을 가라앉힌 송이는 잠시 후, 터덜터덜 제영의 병실로 향했다.

제영은 잠이 들었는지 병실 안은 깜깜했다. 병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선 송이는 혹시나 제영이 깰까 조용히 짐을 챙겼다.

짐을 다 챙기고 나서 송이는 제영에게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송이

 “화내서 미안해요…. 경위님이 너무 좋아서 질투한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줘요.”

자신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는 송이의 목소리에 잠이 깬 제영은 뒤돌아서 가려는 송이의 손목을 붙잡았다.

송이

 “깨…. 깼어요?”

당황한 송이가 손목을 빼내려 하자, 제영은 손목을 잡아끌어 품에 안아 버렸다.

제영

 “…. 미안해요. 질투하게 해서….”

송이

 “경위님….”

제영은 송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제영

 “나는 송송이 씨 겁니다. 그러니까 질투하지 말아요.”

송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영은 송이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제영

 “사랑해 송송이.”

내 경찰아저씬데요?16화 - 어긋난 마음.

회복속도가 워낙 빠른 제영은 금세 퇴원을 했다. 청에선 좀 더 쉬다 나오라고 했기 때문에 제영에겐 며칠 간의 자유시간이 생겼다.

오랜만에 숙면을 취한 제영은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 거리다. 저녁쯤 가벼운 몸으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말끔하게 면도까지 마친 제영은 옷장에서 청바지와 맨투맨 티셔츠를 꺼내 입고, 거울 앞에 섰다.

제영

 “어려…. 보이나?”

그리곤 왁스를 꺼내 들어 머리를 올렸다 내렸다 반복하다 결국 머리를 다시 감았다.

제영

 “이게 제일 낫다.”

***

송이

 “어서 오세요~”

남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송이

 “네 2,500원입니다.”

어제부터 주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송이는 카페에서 일 한 경험이 있어 능숙하게 주문을 받고 커피를 만들었다.

점차 몰려오는 손님들에 잠깐 앉아 있을 시간 없이 커피를 만들던 송이는 손님이 거의 다 빠지고 퇴근 시간이 다 돼서야 잠깐 앉아서 쉴 수 있었다.

점장

 “송이 씨 힘들지 않아요?”

안에서 설거지하던 지웅이 송이의 옆에 의자를 끌고 와 앉으며 물었다.

송이

 “아뇨 괜찮아요~”

점장

 “뭐 마실래요?”

송이

 “아 제가 만들어 먹을게요~”

점장

 “앉아 있어요. 내가 만들어 줄게요.”

지웅은 벌떡 일어나려는 송이의 어깨를 살짝 눌러 앉히곤 음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지웅은 머그컵 가득 달콤한 향이 풍기는 커피를 송이에게 내밀었다.

점장

 “먹어 봐요.”

휘핑크림이 잔뜩 올려진 커피를 한 모금 살짝 맛본 송이는 엄지를 치켜들며 감탄했다.

송이

 “우와 진짜 맛있어요! 이거 뭐예요?”

점장

 “여기 메뉴엔 없는 건데 제가 자주 만들어 먹는 거예요. 그냥 이것저것 듬뿍 넣어서.”

송이

 “와 이거 메뉴로 넣어도 되겠어요!”

점장

 “이거 메뉴에 넣으면 한 잔에 만 원은 받아야 할걸요?”

지웅의 말에 송이는 웃음을 터뜨렸다.

딸랑/

지웅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쉬던 송이는 손님이 들어오는 소리에 얼른 일어나 인사를 했다.

송이

 “어서 오세요. 주문 도와 드리겠습니다.”

민석

 “아이스 카페모카 한 잔이요.”

송이

 “4,000원입니다.”

민석

 “여기.”

익숙하게 카드를 받아 들고 계산을 하던 송이는 카드에 적힌 눈에 익은 이름을 보고 고개를 들어 카드의 주인을 쳐다보았다.

송이

 “민석아!”

민석

 “누나.”

민석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송이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송이

 “어쩐 일이야?”

민석

 “누나 퇴근 언제 해요?”

송이

 “퇴근? 이제 곧 할 거야. 왜?”

민석

 “퇴근하고 시간 좀 내줘요.”

송이

 “어? 어…. 그래.”

뒷정리는 자신이 하겠다는 지웅 덕에 송이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할 수 있었다.

민석과 나란히 거리를 걷던 송이는 고요한 적막 속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송이

 “아…. 민석아 우리 어디로 갈까?”

민석

 “누나…. 우리 술 한잔 할래요?”

송이

 “어? 어…술…?”

민석의 제안에 송이는 제영과 한 약속이 떠올라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민석

 “마지막으로 한 번만…. 나한테 시간 좀 내줘요. 누나.”

쓸쓸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는 민석을 보며 송이는 마지막이라고 합리화시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

송이가 일하는 카페 앞에 도착한 제영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쇼윈도에 옷차림을 비춰 보고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고 들어섰다.

‘딸랑’하는 맑은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제영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송이를 찾았다.

점장

 “아 손님 저희가 지금 가게 문을 닫을 시간인데….”

사람이 들어 오는 기척에 안쪽에서 정리하던 지웅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나오자 제영이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제영

 “아…저…. 혹시 여기 송송이 씨라고….”

점장

 “송이 씨요? 어떤 남자분이랑 좀 전에 먼저 퇴근했는데….”

제영

 “네?”

지웅의 말에 제영은 다시 한 번 되물었다.

제영

 “남자요?”

점장

 “네…. 후배라는 거 같은데….”

제영

 “아…. 네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

제영은 문득 떠오르는 인물에 급하게 지웅에게 인사를 하고 카페에서 나왔다. 그리곤 바로 휴대폰을 꺼내 송이의 번호를 꾹 눌렀다. 하지만 무거운 신호음만 갈 뿐 송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

민석

 “누나…오늘은 내가 취할 거니까 누나는 마시지 말아요.”

송이

 “어? 어…. 그래.”

민석은 아무 말 없이 술잔만 계속해서 비웠다. 그러다 마지막 남은 술잔을 탁 털어 넣고 송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민석

 “누나.“

송이

 “응.”

민석

 “행복해요?”

송이

 “……”

민석

 “행복하냐구요..”

송이

 “어? 어…. 행복하지….”

민석

 “그럼 됐어요….”

민석은 소주를 한 병 더 시키더니 또다시 연거푸 술잔을 비웠다.

송이

 “그만 마셔….”

송이는 민석의 잔을 뺏어 자신이 잔을 비웠다.

민석

 “누나….”

송이

 “응?”

민석

 “누나….”

송이

 “어~”

민석

 “누나 되게 나빴어요….”

송이

 “……”

민석의 말에 송이는 아무런 대꾸를 할 수 없었다.

민석

 “나…. 술 엄청 취한 거예요. 그래서 지금부터 하는 소리 다 술김에 하는 헛소리니까…. 그렇게 알고 들어줘요.”

송이

 “……”

민석

 “나 누나 좋아해요. 그것도 엄청 많이…. 그냥 좋았어요. 누나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그냥 다…그래서 누나 좋아하는 티 엄청 냈는데…. 누나는 진짜 몰랐나 봐요…”

송이

 “미안해…. 민석아 나는 정말….”

민석

 “알아요…. 누나 정말 몰랐다는 거…. 내가 아는 누나는 그렇게 모진 사람은 아니니까… 그냥…. 이렇게라도 누나한테 내 마음 표현해야…내가 나중에 후회 안 할 거 같아서…”

민석은 술잔 가득 술을 채우고 그대로 입에 털어 넣었다.

민석

 “근데요 누나…나 누나 계속 좋아하면 안 돼요? 당분간은…한번에 이 마음 정리해버리면…나 많이 힘들 거 같은데…진짜 좋아하던 인형도 갑자기 버리면…. 한동안은 너무 힘들잖아요…인형도 그런데 하물며 사람은…어떻겠어요…나…. 누나 많이 좋아했는데…정말 많이….”

흐트러지지 않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민석을 보며 송이는 아무 대꾸도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민석

 “누나 그거 알아요? 나 콘서트 티켓 그거 엄청 힘들게 구했는데…누나랑 둘이 콘서트 갔을 때 누나가 막 그 가수들 보고 사랑한다고…. 근데 그것도 엄청 질투 났는데…그리고…. 누나가 하제영 경위님한테 웃어주는 거…. 그것도 엄청…. 질투 났어요…그리고 엄청…. 마음 아팠어요…. 그 상대가 나였으면…. 하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도 해보고…그리고…. 누나가 하제영 경위님 엄청 많이 좋아하는 거 같아서…. 더…슬펐어요….”

송이

 “미안해….”

민석의 고백에 송이는 그저 미안하단 말밖에 해 줄 수 없었다.

민석

 “미안해하지 말아요…그럼 내가 더…우스워지잖아…. 나는 누나 좋아한 거 후회하지 않아요…아직도…. 많이…. 좋아해요….”

송이

 “……”

민석

 “…. 아 나 많이 취했나 보다…. 누나 나 화장실 좀…”

말과는 달리 꼿꼿하게 일어나 화장실로 향하는 민석을 보며 송이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지이이잉//

혼자 앉아 술잔을 비우던 송이는 테이블 위에 놓여져 있는 민석의 휴대폰이 울리는 걸 보곤 받을까 말까 망설였다.

지이이잉//

하지만 끊길 줄을 모르고 울리는 진동에 결국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누르는 송이다.

송이

 “네…. 강민석 씨 핸드폰입니다.”

제영

 [하아…. 맞네…. 송이 씨.]

송이

 “누구…. 경위님!?”

송이는 얼른 휴대폰을 얼굴에서 떼고 번호를 확인했다.

액정에 찍힌 11자리 번호는 송이가 매일 보는 그 번호가 맞았다.

송이

 “경위님이 왜….”

제영

 [전화 왜 안 받습니까.]

제영의 말에 송이는 얼른 가방을 뒤적여 휴대폰을 확인했다.

아침에 휴대폰 충전을 안 하고 나와 그사이에 휴대폰 전원이 나간 모양 인지 휴대폰은 까맣게 죽어있었다.

송이

 “아침에…. 충전을 깜빡해서…휴대폰이 꺼졌나 봐요….”

제영

 [어딥니까 지금….]

송이

 “…저기…. 그게….”

제영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평소보다 낮게 가라앉은 제영의 목소리에 송이는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송이

 “…여기 학교 앞에 그…. 호프집…꼬꼬댁….”

제영

 [어디 가지 말고 기다려요.]

뚝/

민석

 “누나 뭐해요?”

끊긴 전화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송이의 어깨를 툭 하고 두드리는 민석이다.

송이

 “어? 어….”

그제야 정신이 든 송이는 휴대폰을 민석에게 건네주었다.

민석

 “전화 왔었어요?”

송이

 “어? 어…. 아냐.” 

은애를 통해 민석의 전화번호를 알아낸 제영은 주저할 거 없이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를 걸자마자 들리는 목소리가 민석이 아니라 송이의 목소리였다. 제영은 속에서 무언가가 확 치밀어 올랐지만 애써 꾹 눌러 담아 통화를 마치고 송이가 있다는 곳으로 핸들을 꺾었다.

-꼬꼬댁-

생각보다 쉽게 호프집을 찾은 제영은 서둘러 문을 열고 들어가 송이를 찾기 시작했다.

민석

 “누나….”

그때 저쪽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제영은 서둘러 그 목소리를 따라갔다.

송이

 “저…. 민석아?”

민석

 “누나~나 누나 엄청 좋아하는 거 알죠?”

제영의 발걸음이 멈춘 곳엔 송이를 보며 헤실헤실 웃고 있는 민석과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송이가 보였다.

제영

 “…. 송송이.”

송이

 “…. 겨…. 경위님….”

제영

 “지금 이게 뭐하는 겁니까.”

좀 전의 전화 통화 했을 때보다 더 가라앉은 목소리로 자신을 바라보는 제영에 송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손톱만 잘근잘근 씹어댔다.

민석

 “…누나한테 뭐라고 하지 말아요.”

그때 취한 줄만 알았던 민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민석

 “제가…. 술 한잔 하자고 했어요. 누나한테 할 말이 있어서….”

민석의 두 눈은 풀려 있었지만, 발음은 확실했다.

제영

 “저번에도 말하지 않았나? 송이 불러서 술 마시지 말라고.”

민석

 “후배가 선배한테 술 한잔 마시자고 한 게 그렇게 잘못한 건가….”

제영

 “후배? 선배? 내가 진짜 등신인 줄 아나…. 강민석 씨가 송이를 대하는 게 정말 선배를 대하는 태도로 보인다고 생각해?”

민석

 “…좋아하면 안 됩니까?”

제영

 “뭐?”

민석

 “나도 송이누나 좋아하면 안 되는 거냐고요.”

순식간에 얼어붙은 분위기에 송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제영의 팔을 붙들었다.

송이

 “경위님…. 죄송해요…. 우리 일단 나가서 얘기해요…. 민석아 조심히 가.”

제영은 순순히 송이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

제영

 “여기서 기다려요. 차 가지고 올게.”

***

잠시 후, 제영의 차가 송이의 앞에 멈췄고 송이는 차에 올라탔다.

제영

 “벨트.”

제영의 말에 송이는 얼른 벨트를 찾아 맸다.

그러자 평소보다 거칠게 차를 출발시키는 제영이다.

차 안은 차가운 적막만이 흘렀다.

한참을 달리던 제영은 송이의 집 앞에 차를 세웠다.

송이

 “경위님….”

송이가 조심스럽게 제영을 부르자 제영은 송이 쪽으론 시선을 두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제영

 “들어가요.”

송이

 “경위님….”

제영

 “…. 나중에 얘기해요. 오늘은 나 송이 씨한테 화낼 거 같아서 그래. 내려요.”

송이

 “제영 씨….”

자신의 부름에도 입을 꾹 다물고 고집스럽게 앞만 바라보고 있는 제영에 송이는 잔뜩 풀이 죽은 얼굴로 차에서 내렸다.

송이가 탁하고 문을 닫자마자 제영의 차는 출발해 버렸다.

터덜터덜 집 안으로 들어온 송이는 오자마자 휴대폰 충전기를 연결했다.

곧 휴대폰이 전원이 들어오자마자 부재중 전화와 문자 메시지가 쏟아졌다.

-부재중 전화 15통

제영

 [오늘 카페로 갈게요 아홉 시에 퇴근 맞죠?]

제영

 [카페에 송이 씨가 없는데…어딥니까?]

제영

 [걱정됩니다…. 전화는 왜 안 받아요?]

제영

 [무슨 일 있습니까?]

제영

 [송송이 씨 제발 전화 좀 받아요.]

제영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죠?]

제영

 [걱정되니까 전화 좀 받아….]

송이는 서둘러 제영의 번호를 꾹 눌렀다.

하지만 통화음은커녕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여자의 기계적인 목소리만 송이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불편한 마음으로 밤을 꼴딱 새운 송이는 잔뜩 피곤함을 묻힌 채 학교로 향했다.

***

은애

 “야 송송이 너 얼굴이….”

그런 송이의 얼굴을 보고 은애가 놀리듯 물었다. 그러자 송이는 쓰고 있는 모자를 더 깊게 눌러 쓰며 말했다.

송이

 “알아, 내 얼굴이 어떤지.”

평소와는 다른 송이의 분위기에 은애도 더 이상 아무 말 않고 수업에 집중했다.

수업이 끝난 후 잔뜩 지친 얼굴로 집으로 향하는 송이를 은애가 붙잡았다.

은애

 “야 너 무슨 일인데.”

송이

 “…그게 사실은….”

송이는 푸념하듯 어제 일을 모두 은애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은애

 “…. 너가 잘못했네.”

송이

 “…. 그치….”

촌철살인과 같은 은애의 말에 송이는 더욱더 고개를 푹 숙였다.

은애

 “…. 송이야.”

송이

 “어…?”

은애

 “너가 의도를 했건 안 했건 그 상황은 충분히 경위님이 화가 나는 상황이었고, 너는 민석이한테 확실하게 너의 마음을 이야기를 했었어야 했어, 같이 술을 마시고 그 이야기를 다 들어 줄 게 아니라….”

송이

 “…그렇지….”

은애

 “때론 착한 게 독이 될 때도 있는 거야….”

은애와 헤어지고 집으로 향하던 송이는 문득 무언가에 홀린 듯 발걸음을 돌렸다.


내 경찰아저씬데요?17화 - 위로, 그리고 다짐.

무작정 달리고 달려 도착한 제영의 집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 송이는 떨리는 손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하지만 안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송이는 다시 한 번 초인종을 꾹 눌렀다.

딩동 하는 맑은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지만, 제영은 문을 열지 않았다.

송이는 계속해서 제영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간결한 여자의 목소리만 반복해서 들릴 뿐이었다.

송이를 그렇게 집에 보내고 제영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밤에 남자와 단둘이 있는 것도 위험한데 술까지 마시고, 

게다가 그 상대는 송이에게 자신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남자다.

그 상황에선 당연히 제영의 머리에 적색 경보가 울릴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제영은 무작정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들기 위해 노력했다.

***

다음 날, 느지막이 일어난 제영은 밤새 꺼 놓았던 휴대폰 전원을 켰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휴대폰이 울렸고 제영은 송이인가 싶어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제영

 “네. 접니다.”

박형사

 [하 경위님 저 박 형삽니다. 혹시 지금 좀 나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제영

 “…. 지금 가겠습니다.”

제영은 대충 얼굴을 씻고 차 키를 챙겨 청으로 향했다.

***

제영

 “무슨 일입니까?”

박형사

 “아 그게…저 샊…아니 박순형이 입을 열지 않습니다.”

제영

 “묵비권 행사하는 겁니까?”

박형사

 “네 며칠 동안 별짓을 다 해봐도 입을 꾹 쳐 다물고 열지 않아요.”

제영

 “하아….”

취조실 한쪽에 굳게 입을 닫은 채 고개만 숙이고 있는 박순형이 보였다.

제영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취조실 문을 열었다.

그러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박순형이 고개를 들어 제영을 쳐다보곤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제영

 “뭡니까 지금.”

범인

 “반가워서요.”

자신을 보며 반가움을 표하는 순형을 보며 제영은 얼굴을 후려치고 싶은 걸 일단 눌러 참았다.

제영

 “나도 참 반갑네요. 우리 그만 힘 뺍시다.”

제영은 순형의 건너편에 앉으며 수사 자료를 탁하고 내려놓았다.

제영

 “한서연 씨 왜 죽였어요.”

제영의 물음에 순형이 빙긋 웃기만 할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제영

 “다시 한 번 물을게요. 한서연 씨 왜 죽였습니까.”

범인

 “……”

제영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물을게요 한서연 왜 죽였어.”

화를 꾹꾹 눌러 참으며 묻는 제영을 보며 순형은 다시 한 번 소름 끼치는 미소로 답했다.

그 미소에 제영의 이성은 뚝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제영

 “내가 아까 그랬지 마지막이라고.”

제영은 파일로 순형의 머리를 계속해서 내려쳤다.

제영

 “너 같은 새끼들한테 인권은 사친데 어디서 지금 묵비권을 행사해 어? 대한민국 경찰이 우습지? 아주. 그래 오늘 한번 끝까지 가보자.”

제영은 파일을 던져 놓고 소매 끝을 돌돌 말아 접었다.

제영

 “내가 다시 한 번 물을 게 죄 없는 여대생 왜 죽였어.”

범인

 “…….”

제영

 “박순형 내가 딱 한 번만 말한다. 이제부터 묵비권 행사하면 너 판사 앞에 가기 전에 내가 먼저 너 죽여.”

제영의 으름장에 순형은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제영

 “못할 것 같아? 그럼 어디 끝까지 한번 해봐. 어차피 죄 다 인정하고 판사 앞에 가서 사형 선고받아 봤자 교도소에서 평생 썩을 테니까 너 같은 새끼들한텐 그런 것도 사치거든 국민의 피 같은 세금으로 짐승만도 못한 새끼 밥 먹이는 꼴을 어떻게 봐. 내 손으로 먼저 네 숨통 끊어 놓는 게 빠를 거야. 아니다. 피해자 부모님 앞에 네놈을 데려다 놓을까. 너가 피해자 죽인 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갈기갈기 찢어 죽이게.”

순식간에 살기로 번뜩이는 제영의 눈빛에 순간 순형의 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났다.

제영

 “그러니까 이제 그만 입 열어. 왜 죽였어.”

범인

 “…그냥.”

제영

 “뭐?”

제영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고 다시 한 번 되물었다.

범인

 “그냥…여자들이 싫어서…. 여자여서 죽였습니다. 그 여자가 재수 없게 걸려서….”

그 한마디에 제영은 벌떡 일어나 순형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제영

 “넌 지금부터 소리 내면 죽을 줄 알아.”

제영은 취조실 안에 있는 감시 카메라를 재킷으로 가리고 시계를 풀었다. 그리고 순형에게 다가가 미친 듯이 주먹질을 퍼부었다.

갑자기 까매진 화면에 밖에서 지켜보던 박 형사와 김 형사가 뛰어들어와 제영의 팔을 붙들었다.

박형사

 “경위님! 경위님!!”

제영

 “놔! 이거 내가 죽여!! 뭐? 그냥 죽여? 여자라서 죽여!? 그걸 말이라고 지껄여!! 놔!”

제영은 쓰러진 순형의 얼굴을 발로 걷어찼다.

제영

 “이 개새끼!! 짐승만도 못한 새끼!!! 너 같은 건 재판 같은 거 받을 필요도 없어 사형으로 편하게 죽어서도 안 돼!!”

동료1

 “경위님!! 참으십시오!”

제영

 “참아? 놔!!! 저건 내 손으로 죽여!! 여자가 싫어서 아무 죄 없는 여대생을!!! 아직 제대로 펴보지도 못한 꽃을 그렇게…처참하게…!!! 놔!!! 저건 죽어도 싸!”

이미 피로 떡칠 된 얼굴을 하고도 아무 표정도 미동도 없는 순형의 모습에 김 형사는 혀를 내둘렀다.

동료1

 “독한 새끼.”

***

송이는 코끝에 침을 묻혀 가며 쥐를 쫓아냈다.

송이

 “으어…”

언젠가는 제영이 오겠지 싶은 마음에 기다린 지도 어느덧 두 시간이 흘러있었다.

어느새 깜깜해진 주변에 슬쩍 무서운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 이 순간 송이에게 더 중요한 건 제영을 만나는 것이었기에 스트레칭 한 번 하고 다시 쭈그리고 앉아 오매불망 제영을 기다리는 송이다.

송이

 “쪼끔 무서운데…빨리 와줬으면 좋겠다…. 우리 경위님….”

***

제영

 “정신감정 철저하게 받고, 뭐 정신 질환자라니 뭐니 쓸데없는 거 붙여서 형 감량 시키지 말고 체포하다가 경찰 상해 입힌 거까지 추가하고 붙일 거 다 붙여서 처넣어버려요.”

박형사

 “네.”

결국, 박순형의 입을 열게 한 제영은 더 이상 얼굴을 마주 보고 있다간 정말 가만두지 못할 거 같아서 박 형사에게 넘겼다.

제영

 “저는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박형사

 “네 들어가십쇼.”

진이 쭉 빠진 제영은 이 더러운 기분을 좀 털어내야겠다는 생각에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동네 술집으로 향했다.

제영

 “여기 소주 한 병이요.”

소주가 나오자마자 제영은 안주도 없이 바로 한 잔을 들이켰다.

제영

 “하아…”

꽤나 오랜 시간 동안 경찰을 하면서 여러 살인 사건들의 피해자를 봐왔지만, 제영이 제일 힘들어하는 사건은 다름 아닌 힘이 약한 여자들을 상대로 하는 묻지 마 살인이었다.

그 상대가 10대든 60대든 여자라는 이유로 처참하게 당한 피해자들을 보면 제영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철저하게 조사를 하고 또 이번처럼 두들겨 패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 꽉 막힌 기억은 더욱더 진해졌다.

제영

 “미안해…. 서영아…이 오빠가 지켜주지 못해서….”

이렇게라도 해야 오늘 밤은 좀 덜 힘들 것 같아 정신을 놓고 연거푸 술잔을 비우는 제영이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오히려 정신이 더 말짱해졌다. 제영은 소주잔을 내려놓고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딸기우유를 하나 계산했다.

아르바이트생

 “2,000원입니다.”

제영은 딸기우유 하나를 손에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제영이 지나갈 때마다 불이 켜졌다. 1001호 1002호 1003호…그리고 1004호 자신의 집 앞에서 불이 탁 켜지고 비밀번호 키를 누르려던 제영은 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익숙한 인영에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제영

 “송…. 이 씨?”

송이

 “…. 우음…어? 경위님….”

제영

 “여기서 뭐 해요?”

꾸벅꾸벅 졸던 송이는 제영을 보고 벌떡 일어나려다 저릿저릿한 다리에 다시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송이

 “으으….”

제영은 얼른 송이의 팔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제영

 “괜찮아요?”

송이

 “네…. 어 경위님 술 드셨어요?”

제영

 “네 술 마셨습니다.”

송이

 “……”

제영

 “일단 들어갑시다.”

제영은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제영

 “들어와요.”

송이

 “네…. 네.”

송이는 쭈뼛쭈뼛 제영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섰다.

제영

 “앉아요.”

송이

 “…. 네.”

송이가 식탁에 앉자 제영이 냉장고를 뒤적이며 마실 것을 찾았다.

제영

 “뭐 마실래요?”

송이

 “아…. 저 이거….”

마침 식탁 위에 놓여 있는 딸기우유를 본 송이가 그걸 집어 들자 제영이 순간적으로 그 딸기우유를 빼앗았다.

송이

 “…. 경위님.”

제영

 “아…. 미안해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송이가 토끼 눈을 하고 제영을 바라보자 제영이 딸기우유를 냉장고에 넣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제영

 “이거 마셔요.”

그리곤 냉장고에서 비타민 음료를 꺼내 송이에게 내미는 제영이다.

송이

 “아….”

둘 사이엔 째깍거리는 시계 초침 소리만 가득 채워졌다.

제영

 “…할 말 있어서 온 거 아닙니까?”

제영의 물음에 송이는 잠시 망설이다 조용히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송이

 “아…. 오늘은 말고…. 내일 이야기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경위님 술도 드셨고 또…. 피곤하실 거 같으니까….”

제영은 뒤돌아서 가는 송이의 손목을 붙잡았다.

제영

 “오늘 해요.”

송이

 “…사과하고 싶어서 왔어요.”

송이는 조용히 읊조리듯 이야기했다.

송이

 “경위님이 화가 많이 나신 거 같아서…사과하고 싶어서…. 그래서 기다렸어요. 아까 낮부터….”

그러고 보니 송이의 몸에 찬 기운이 돌았다. 제영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일단 송이의 이마부터 짚어보았다.

송이는 그런 제영의 손을 잡아 내려놓았다.

송이

 “어제 집에 들어가자마자 휴대폰 전원 켜 보니까 경위님한테 연락이 많이 와있더라고요…. 그리고 나서 많이 느꼈어요…아…. 내가 정말 잘못한 거구나…경위님이 얼마나 많이 걱정했을까…나는 그냥 민석이를 후배로 생각해도…. 경위님 입장에선 그게 아니었을 텐데…그것도 모르고 민석이랑 둘이 술 마시러 다니고 연락도 안 되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는 송이의 두 눈엔 어느새 말갛게 눈물이 차올랐다.

송이

 “경위님한테 꼭 사과하고 싶었는데 근데…. 연락도 안 되고…. 집에도 없고…무작정 기다렸는데…”

제영

 “……”

송이

 “오늘은 경위님 많이 힘들어 보여요…. 내일 이야기 해요 우리….”

송이는 제영에게 잡힌 손목을 비틀어 빼고 뒤돌아섰다.

제영은 그런 송이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성큼성큼 다가가 뒤에서 송이를 안았다.

갑작스러운 제영의 포옹에 송이는 발걸음을 멈췄다.

제영

 “…그냥 잠깐만 이러고 있어 줘요.”

밭은 숨을 쉬며 송이의 어깨에 고개를 묻는 제영을 보며 송이는 그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제영의 품에 안겨 있었다.

제영

 “…오늘…출근했었어요. 잠깐….”

송이

 “……”

제영

 “나 다치게 한 그 용의자가 입을 열지 않아서 내가 갔었어요…. 그래서 입을 열게 했는데…그 여대생 죽인 이유가…. 그냥 여자라서…. 여자라서 죽였대요…”

송이

 “……”

제영

 “나는요 송이 씨…이런 사건 터질 때마다 너무 안타까워요…국민을 못 지킨 한심한 경찰이 된 거 같아서…. 너무 힘들어요….”

자신의 어깨에 고개를 묻은 채, 흐느끼는 제영을 보며 송이는 뒤돌아서 제영의 어깨를 꽉 끌어안았다.

송이

 “경위님 잘못 아니에요…. 괜찮아요….”

한참 후 제영과 송이는 마주 앉아 아무 말 없이 서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제영

 “…송이 씨.”

제영이 물 한 모금을 마신 후 입을 열었다.

송이

 “네….”

제영

 “미안해요…그리고 고마워요….”

송이

 “……”

제영

 “강민석 씨와 친한 것을 질투한 것도 맞아요…. 그런데…. 질투보다 걱정됐어요…. 시간이 늦었는데 연락도 되지 않고…또 술을 마시고 있다는 소리에 더…그래서 화를 내버렸어요…걱정되는 마음에…. 그걸 화로 표현을 했어요…. 미안해요….”

송이는 그 순간 울컥했다. 잘못한 건 송이 자신인데…. 오히려 화를 내서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는 제영의 모습에 송이는 컵을 만지작거리는 제영의 손을 꼭 잡았다.

송이

 “왜…경위님이 미안해요…. 잘못은 내가 했는데…. 잘못을 하면 당연히 화를 내야죠…. 내가 미안해요…. 연락도 안 되고…또 조심하지 못해서….”

손끝으로 전해져 오는 따듯한 송이의 온기에 술을 퍼부어도 그렇게 옅어지지 않는 기억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조금 옅어진 기분이 들었다. 제영은 자신의 손을 꼭 잡고 미소를 짓는 송이를 올곧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제영

 “내가…. 지켜 줄게요.”


내 경찰아저씬데요?18화 - 오빠라고 부를까요?

송이

 [경위님..ㅠㅠ시험 기간에는 못 볼 거 같아요..ㅠㅠ우리]

제영에게 문자를 보낸 후 송이는 그대로 도서관 책상에 엎드렸다. 

송이

 “아…. 중간고사 같은 건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냐…”

송이는 옆에 있는 커피를 벌컥 들이켜고 겨우 정신을 차려 전공 책을 펼쳤다.

정신없이 필기하고, 외우던 송이는 쏟아지는 졸음을 쫓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송이

 “으어~~”

몇 시간을 의자에 앉아 있었더니 온몸이 쑤시는 기분에 송이는 온몸을 쭉 펴며 기지개를 켰다.

잠깐 바람을 쐬고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다시 도서관으로 들어온 송이는 제법 상쾌해진 기분으로 남은 과목을 외우기 시작했다.

송이

 “아…. 10분만 잘까….”

어느새 주변엔 송이와 몇몇 학생들만 남아있었고, 시곗바늘은 어느덧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송이는 휴대폰 알람을 진동으로 해놓고 잠시 눈을 붙였다.

*** 

제영은 요 며칠 동안 송이의 목소리조차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중간고사 기간이라며 종일 학교 도서관에서 살아서 송이의 소식은 가끔 오는 문자로 들을 수 있었다.

제영

 “아 중간고사 언제 끝나….”

제영 역시 길고 긴 중간고사가 끝나길 바라는 사람 중 한 명이 되어버렸다.

지잉/

종일 연락이 없다가 오늘도 역시 밤이나 돼서야 송이에게서 오늘도 못 볼 거 같다는 문자를 받은 제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재킷을 챙겼다.

제영

 “저 먼저 들어갑니다.”

제영은 잠시 편의점에 들러 간식거리를 잔뜩 사고 송이의 학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학교에 도착한 제영은 조심조심 도서관 안으로 들어섰다.

송이

 “으음….”

잠깐 눈을 붙이던 송이는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에 부스스 눈을 떴다.

송이

 “어?”

눈을 뜨자 보이는 제영의 얼굴에 송이는 꿈인가 싶어 두 눈을 비비고 또 비볐다.

제영

 “눈 아파요.”

그런 자신의 손을 붙잡는 제영의 손길에 그제야 정신이 든 송이다.

제영

 “간식 좀 사 왔어요. 잠깐 나갈래요?”

송이

 “네? 네!”

제영과 송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괜히 피해를 줄까 싶어 학교 앞 벤치로 나왔다.

제영

 “피곤하지 않아요?”

송이

 “쪼끔…. 요.”

제영은 편의점에서 사 온 우유와 초콜릿 같은 것들을 송이에게 건넸다.

제영

 “피곤할 때 단 거 먹으면 좀 나아진다고 해서….”

송이

 “우와 다 제가 좋아하는 거네요~”

송이는 초콜릿 한 개를 까서 제영의 입가에 댔다.

송이

 “경위님도 피곤하니까~ 아 해요 얼른~”

송이의 말에 제영은 입을 벌려 초콜릿을 받아먹었다.

기분 좋은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지자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제영이다.

송이

 “이제 좀 살겠다~”

사탕 하나를 까서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이제야 마음이 좀 놓였다.

제영

 “오늘 밤샐 거예요?”

송이

 “음…. 어차피 오늘 할 분량은 거의 끝냈어요. 집에 가서 좀 잘래요.”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에 송이는 제영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송이

 “너무 졸려….”

제영은 송이가 좀 더 편하게 머리를 기댈 수 있도록 송이 쪽으로 몸을 더 숙여주었다.

*** 

송이

 “경위님 피곤하지 않아요?”

제영

 “괜찮아요.”

늦은 시간, 조용한 밤거리를 나란히 걷는 제영과 송이다.

송이

 “그래도 이렇게 얼굴 보니까 좋다~”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해사하게 웃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도 함께 미소 지었다.

제영

 “시험 언제 끝나요?”

송이

 “내일이 3일 째니까 내일모레면 끝나요!”

제영

 “시험 끝나면 놀러 갑시다.”

송이

 “우와! 정말요?”

제영

 “어디로 놀러 갈지 생각해놔요.”

송이

 “네!”

선선한 밤바람을 맞으며 제영과 천천히 걷던 송이는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제영

 “왜요?”

송이

 “경위님.”

제영

 “네.”

송이

 “우리 우동 먹고 갈래요?”

송이가 제법 심각한 얼굴을 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다름 아닌 동네 포장마차였다. 

포장마차에 들어서자마자 송이는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아 주문을 했다.

송이

 “여기 우동 두 그릇이랑 사이다 한 병 주세요~”

제영

 “여기 자주 와요?”

송이

 “가끔 밤에 배고프면 나와서 먹어요.”

제영

 “혼자요?”

송이

 “은애랑 나오기도 하고 혼자 올 때도 있고…. 근데 거의 혼자 나오죠.”

송이의 말에 제영은 엄한 표정으로 송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영

 “앞으론 혼자 나오지 마요 밤에 그것도 이런 곳을 혼자…. 절대 혼자 나오면 안 됩니다.”

송이

 “푸흐흡..네 알겠습니다~”

송이는 그런 제영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제영

 “정 먹고 싶으면 나한테 전화해요.”

송이

 “넵!”

잠시 후 뜨끈한 우동이 나오고 송이는 그릇째 국물을 들이켰다.

송이

 “흐어~”

송이의 입에서 나온 구수한 감탄사에 제영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송이

 “경위님도 먹어봐요. 여기 우동 진짜 맛있어요!”

제영을 향해 엄지를 척 내미는 송이다.

송이

 “아 맞다!”

송이는 사이다를 따서 제영의 컵에 가득 담은 다음 자신의 컵에도 사이다를 가득 따랐다.

송이

 “원래 우동에 소주가 딱인데 아쉬운 대로 이걸로~짠해요!”

제영

 “푸흡…. 그럽시다.”

사이다가 가득 찬 두 개의 잔이 허공에서 짠하고 부딪혔다.

송이

 “아 배부르다~~”

우동 한 그릇을 싹싹 비우고 포장마차에서 나온 송이와 제영은 소화도 시킬 겸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송이

 “아 좋다~”

송이는 제영의 손을 잡고 걸었고 제영은 그런 송이의 손을 더 꼭 잡았다.

*** 

송이

 “드디어 시험 끝났다아아아!!!”

은애

 “수고했다 송송이~”

송이

 “수고했다 오은애!”

은애와 서로 어깨를 두드려 주며 강의실에서 나온 송이는 마음 같아선 만세 삼창을 부르고 싶었다.

송이

 “이제 잠 좀 잘 수 있겠다.”

시험 기간 내내 제대로 된 잠을 자지 못한 송이는 무엇보다 잠이 가장 고팠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옷만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바로 잠이 들어버린 송이다.

지이이잉//

정신없이 숙면을 취하던 송이는 머리맡에서 울리는 휴대폰 진동소리에 더듬더듬 손을 뻗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송이

 “네..”

제영

 [아…. 자고 있었어요?]

귓가에 들리는 제영의 목소리에 송이는 부스스 일어났다.

송이

 “네…. 네….”

제영

 [얼른 더 자요. 조금 이따 전화할게요.]

송이

 “아뇨 괜찮아요. 일어나야죠!

제영

 [많이 피곤해요?]

송이

 “한숨 자고 일어나서 괜찮아요~”

제영

 [오늘은 푹 쉬어요.]

송이

 “경위님!”

제영

 [네?]

송이

 “우리집에 라면 먹으러 올래요?”

제영

 [네…. 네? 라…. 면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 제영의 목소리에 송이는 웃음을 꾹 눌러 참고 말했다.

송이

 “네! 라면요! 제가 라면 하나는 기가 막히게 끓이거든요~”

제영

 [네…아 라면..]

송이

 “왜요?”

제영

 [아…. 아녜요 전화하고 갈게요.]

송이

 “네~조금 이따 봐요~”

제영과 통화를 마친 송이는 그제야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

박형사

 “경위님? 경위님!”

제영

 “네? 아 네 박 형사님.”

박형사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하게 해요?”

제영

 “아…. 아닙니다.”

박형사

 “어디 아프십니까? 얼굴이….”

제영은 빨개진 얼굴을 달래기 위해 연신 손부채 질을 해댔다.

제영

 “괜찮습니다. 왜 부르셨어요?”

박형사

 “아 이거 경위님이 부탁하신 자료 복사본입니다.”

제영

 “고맙습니다 박 형사님.”

제영은 빨개진 얼굴을 뒤로하고, 박 형사가 넘겨 준 자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2012년 밤손님 강간미수사건 기록-

종이를 한 장씩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제영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져만 갔다.

*** 

송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문부터 활짝 열고 청소를 시작했다.

이불을 개고 탈취제를 뿌리고 집 안에 은은한 향기가 나는 향수도 뿌려놓았다.

송이

 “자! 이제 장 보러 가볼까나!”

제영에게 라면을 먹으러 오라며 초대는 했지만, 진짜 제영에게 라면을 대접할 순 없어 송이는 옷을 챙겨 입고 근처 마트로 향했다.

송이

 “음…경위님이 뭘 좋아하지….”

막상 마트는 왔지만 제영이 무슨 음식을 좋아할지 몰라 한참 고민하던 송이는 제일 무난한 떡볶이를 만들기로 했다.

송이

 “괜찮겠지…?”

설레지만 약간의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송이는 제영에게 문자를 보내 놓고 음식을 하기 시작했다.

*** 

지잉//

한참 집중해서 자료를 보던 제영은 옆에서 짧게 울리는 휴대폰에 손을 뻗어 문자를 확인했다.

송이

 [준비 완료 물이 끓기 시작해요. 빨리 와요!!]

송이의 다급함이 담긴 귀여운 문자에 제영은 잔뜩 굳어 있던 표정을 풀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제영

 [금방 갑니다.]

송이에게 문자를 남기자마자 제영은 차 키를 챙겨 들고 청에서 나와 송이의 집으로 향했다.

딩동//

송이

 “으엇!! 잠시만요!!”

송이는 후다닥 가스 불을 줄이고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송이

 “오…. 오셨어요?”

앞치마를 맨 체 자신을 맡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마음이 간질거렸다.

제영

 “아…. 이거 받아요.”

신발을 벗기 전에 제영은 뒤에 숨겨 놓았던 꽃다발을 송이의 품에 안겨주었다.

송이

 “우와 프리지아네요! 저 프리지아 엄청 좋아하는데!”

제영

 “크..큼 빈손으로 오기가 그래서…송이 씨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사 왔어요.”

꽃향기를 맡으며 환하게 웃음 짓는 송이의 모습이 꽃다발에 담긴 노란 프리지아보다 훨씬 더 싱그러워 보였다.

송이

 “아! 경위님 들어오세요!”

송이는 제영의 팔을 붙잡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송이

 “일단 여기 앉아 있어요!”

제영을 소파에 앉혀 놓고 송이는 부엌으로 들어가 떡볶이를 마저 요리하기 시작했다.

제영

 “제가 뭐 도울 건 없어요?”

제영은 소파에서 일어나 송이의 곁에 와서 섰다.

송이

 “아 경위님은 오늘 손님이잖아요~저기 앉아 있어요!”

제영

 “어? 라면 끓이는 거 아녜요?”

힐끗 부엌을 둘러 본 제영은 보글보글 끓고 있는 떡볶이를 보며 물었다.

송이

 “아 아무리 그래도 손님한테 라면을 대접할 순 없어서…. 경위님 떡볶이 좋아해요?”

제영

 “네 떡볶이 좋아합니다.”

송이

 “다행이다!”

송이는 제영을 다시 소파에 앉혀 놓고 혼자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나름 그럴듯한 한 상을 차려냈다.

송이

 “맛…. 없으면 다 드시지 않아도 되요 알겠죠?”

중간중간 간을 보긴 했지만, 맛에 대한 확신이 없는 송이는 불안한 듯 젓가락을 내주지 않았다.

제영

 “알겠어요~나 배고픈데 이제 먹어도 돼요?”

송이

 “네? 아!! 네!”

배가 고프다는 제영의 말에 송이는 얼른 수저를 내밀었다.

제영

 “먹어 볼게요~”

제영은 먹음직스러운 떡과 어묵을 한번에 입안에 넣었다.

송이는 긴장한 얼굴로 제영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제영

 “음…”

고개를 갸웃거리는 제영의 모습에 송이는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송이

 “경위님 맛없으면 우리 자장면 시켜 먹을까요?”

제영

 “맛있어요!”

제영은 엄지를 척 내밀며 떡볶이를 한입 가득 넣었다.

송이

 “저…. 정말요?”

송이는 조심스럽게 젓가락으로 떡을 집어 맛을 보았다.

제영

 “어때요? 맛있죠?”

송이

 “어…. 네!!”

제영의 물음에 그제야 마음을 놓고 환하게 웃으며 떡볶이를 먹기 시작했다. 

제영

 “설거지는 내가 할게요.”

송이

 “아녜요! 제가 해요!!”

제영이 팔을 걷고 설거지를 하려 하자 송이가 얼른 제영을 밀치고 자신이 고무장갑을 꼈다.

제영

 “송이 씨가 해준 맛있는 떡볶이 먹었으니까 설거지로 보답하게 해줘요~”

송이

 “그럼…. 경위님은 과일 깎아주세요!”

제영

 “과일이요?”

송이

 “네! 거기 냉장고에 사과 있어요!”

제영

 “알겠어요.”

송이가 설거지하는 동안 제영은 소파에 앉아 제법 심각한 얼굴로 사과를 깎기 시작했다.

송이

 “아 설거지 다 했다 경위님 사과…. 어? 크..크하하하!!”

설거지를 마치고 소파에 앉으려던 송이는 탁자에 놓인 사과를 보고 웃음이 터졌다.

제영

 “사…. 사실 과일을 잘 못 깎아요 내가….”

접시에 놓인 사과는 울퉁불퉁 본래 사과 크기의 반이 되어 사과 껍질에 오히려 살이 더 많아 보일 정도였다.

송이

 “크큽….”

송이는 더 이상 웃으면 제영이 혹시 기분이 나쁠까 봐 웃음을 꾹 눌러 참고 사과 하나를 집어 먹었다.

송이

 “경위님도 아 해요~”

그리곤 사과 하나를 집어 제영의 입에 넣어 주었다.

송이

 “맛있죠?”

제영

 “맛은 있네요.”

제영과 송이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사과를 먹으며 송이가 좋아한다는 배우의 드라마를 시청했다.

송이

 “끄앙! 아 너무 멋있어…. 오빠….”

송이는 제영이 옆에 있는 것도 잊은 채 드라마에 몰입했다.

송이

 “어어! 오빠!!”

남자 주인공이 다칠 뻔하면 송이가 더 놀라고 여배우와의 키스 장면이 나오면 두 눈을 가리기도 했다.

제영

 “나는 안볼란다..”

한참을 집중해서 드라마를 보던 송이는 옆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송이

 “하…. 하 제가 너무…. 집중을 했나 봐요….”

제영

 “저 배우가 그렇게 좋습니까?”

질투 어린 시선으로 브라운관을 바라보는 제영을 보며 송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송이

 “아…. 아뇨~겨…. 경위님이 더 잘생겼어요! 어 쫌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송이는 일부러 더욱 오버스럽게 행동하며 삐친 제영을 풀어주었다.

제영

 “근데.”

송이

 “네?”

제영

 “저 사람이랑 나랑 나잇대가 비슷해 보이는데 저 사람은 왜 오빠고 나는 왜 경위님이고 아저씹니까?”

송이

 “네?”

뜬금없는 제영의 물음에 송이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이어 푸하하 하고 웃어버렸다.

송이

 “경위님 설마 이거 질투예요?”

제영

 “질투가 아니라 물어보는 겁니다. 저 사람은 오빠고 나는 왜….”

송이

 “…. 오빠!”

제영

 “….?”

갑작스럽게 자신의 품에 안기며 오빠! 하고 부르는 송이의 모습에 오히려 제영이 더 당황했다.

송이

 “오빠! 라고 불러주기를 바란 거 아녜요?”

제영

 “아…. 아니….”

송이

 “오빠라고 부르는 거 싫어요. 오빠?”

제영

 “…. 하…. 그냥 경위님이라고 부르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송이의 애교에 뻣뻣하게 굳어버린 제영이다.

송이

 “오빠 오빠 오빠~”

제영

 “그만….”

그런 제영의 모습에 송이는 오히려 더 짓궂게 오빠라고 부르며 제영의 품에 파고들었다.

제영

 “난 분명히 그만하라고 했습니다.”

제영은 송이의 양 손목을 붙들어 눕힌 채 단호한 표정으로 경고했다.

송이

 “어…. 미안해요 경…. 위님.”

그제야 제영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 송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하지만 송이의 사과에도 제영은 송이의 손목을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지긋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제영의 모습에 송이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때 제영의 얼굴이 점점 내려오기 시작했고 송이는 그런 제영의 모습에 두 눈을 꾹 감아버렸다.

쪽//하고 이마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촉감에 송이가 조심스럽게 눈을 뜨니 제영이 씩 웃으며 말했다.

제영

 “뭘 바란 겁니까?”

송이

 “…. 어…. 어….”

제영이 손목을 놓아주자 송이는 벌떡 일어나 냉장고로 달려가 물을 벌컥 들이켰다.

송이

 “아…. 아무것도 안 바랬거든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며, 눈을 흘기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제영

 “크하하, 네 알겠어요. 아무것도 안 바랬어요.”

늘 차가운 공기만 가득한 송이의 집 안 공기가 제영의 웃음소리와 온기로 가득 채워졌다.


내 경찰아저씬데요?19화 -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

은애

 “쏭 너 그 얘기 들었어?”

송이

 “무슨 얘기?”

은애

 “민석이 휴학한대.”

송이

 “어? 휴학?”

갑작스러운 민석의 휴학 소식에 송이는 화들짝 놀랐다.

은애

 “군대 간다는 거 같은데.”

송이

 “군대…?”

민석의 휴학 소식에 왜 그렇게 마음이 싱숭생숭한지 송이는 수업 내내 집중할 수 없었다.

교수

 “오늘 수업 여기까지.”

수업이 끝나고 은애와 나란히 강의실을 나서던 송이는 저 멀리서 친구들과 섞여 걸어오는 민석을 보고 본인도 모르게 은애의 뒤로 숨어버렸다.

은애

 “너 왜 그래?”

송이

 “어? 어…. 그냥….”

다행히 민석은 송이를 보지 못한 것인지 아니 보고서도 못 본 척한 것인지 송이를 스쳐 지나갔다.

지잉//

그렇게 한숨 돌리며 강의실을 빠져나와 학생식당으로 향하던 송이의 손에 들린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민석

 -누나 잠깐만 시간 좀 내줘요. 학교 앞에 있는 그 카페에서 기다릴게요.-

은애

 “누구야?”

송이

 “어? 아니…. 은애야 나 잠깐 누구 좀 만나고 와야 할 거 같은데….”

은애

 “누구?”

송이

 “어…. 어 미안 나 잠깐만 다녀올게 미안해!”

송이는 서둘러 가방을 챙겨 민석이 있다는 카페로 뛰어갔다.

딸랑/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 한쪽 구석에 앉아 있던 민석이 살짝 손을 흔들었다.

민석

 “누나!”

송이

 “응….”

잔뜩 미안해하는 송이의 표정과는 달리 민석의 표정은 썩 밝아 보였다.

민석

 “누나~”

송이

 “응? 응….”

밝은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민석에 송이는 살짝 고개를 들었다.

민석

 “나랑 눈도 안 마주칠 거예요?”

송이

 “응? 아니….”

민석

 “나 이제 누나 못 보는데….”

시무룩한 민석의 목소리에 송이는 고개를 돌려 민석과 눈을 맞추었다.

민석

 “누나 나 군대 가요.”

송이

 “…. 들었어 은애한테….”

민석

 “들었구나…. 누나 있잖아요. 어…나 누나랑 이렇게 불편한 관계로 남기 싫은데.”

송이

 “……”

민석

 “나는 누나 좋아했던 거 후회 안 하는데…내가 누나 좋아한 게 잘못한 것도 아니고 누나가 저를 거절 한 것도 잘못한 거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누나가 저한테 이렇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송이

 “…응….”

민석

 “군대는 누나 때문에 가는 거 절대 아녜요. 영장이 나와서 미루지 않고 가는 거니까 그것도 미안해하지 말아요.”

송이

 “응….”

민석

 “다음에 나 제대하면 우리 순댓국에 소주 한잔 해요 알겠죠?”

송이

 “그래 조심히…. 다녀와.”

민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송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민석

 “그동안 고마웠어요. 누나.”

‘잘 가요 내 첫사랑.’

송이는 조심스럽게 민석이 내민 그 손을 꼭 마주 잡았다.

송이

 “몸 조심히 다녀와.”

‘더 좋은 사랑이 찾아오기를….’

민석과 헤어지고 카페에서 나온 송이는 무작정 제영이 있는 서울청으로 향했다.

***

오전 내내 수사자료를 훑어 보던 제영은 잠시 커피를 마시러 카페로 나왔다.

제영

 “아이스 아메리카노 샷 추가해서 한 잔이요.”

뻐근한 어깨를 두드리며 커피를 마시던 제영의 앞에 별로 반갑지 않은 인물이 커피를 들고 제영이 앉아 있는 자리로 걸어왔다.

수련

 “여기 있었네?”

제영

 “아 네….”

수련은 커피를 들고 제영의 건너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수련

 “오늘 하루 종일 바빠 보이던데.”

제영

 “네 좀….”

제영은 수련 쪽으로 시선을 두지 않은 채 대답했다.

수련

 “제영아 아직 나 불편해?”

제영

 “하아….”

수련

 “아직도 날 하제영 첫사랑으로 보는 거냐구.”

제영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겁니까?”

제영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었다.

제영

 “그런 거 아닙니다.”

수련

 “난 다시 잘 해보고 싶은데?”

수련의 말에 제영은 차가운 눈빛으로 수련을 바라보았다.

수련

 “그렇게 쳐다보지 마 나는 너….”

제영

 “그만하시죠.”

수련

 “제영아.”

제영

 “여기 보는 눈 많습니다. 차 팀장님.”

수련

 “하제영.”

제영

 “이제 와서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수련

 “우리 끝난 거 아니잖아.”

제영

 “10년 전 당신이 나 버리고 핀란드로 떠났을 때 그때 차수련과 하제영은 끝났습니다.”

수련

 “그땐….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제영

 “……”

수련

 “우리 다시 시작하면 안 돼?”

제영

 “못 들은 거로 하겠습니다.”

수련

 “제영아..”

제영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팀장님.”

더 이상 수련과 감정 소비를 하고 싶지 않았던 제영은 아직 남아있는 커피를 들고 일어났다.

수련

 “제영아.”

수련은 그런 제영의 손목을 붙잡았다.

제영

 “이거 놔요.”

수련

 “내 말 안 끝났어.”

제영

 “우리 사이에 더 이상 할 말이 남았습니까?”

수련

 “하제영.”

제영

 “먼저 가보겠습니다. 팀장님.”

제영은 수련이 잡은 손을 툭 쳐내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카페를 빠져나왔다.

***

막상 서울청 앞에 도착한 송이지만 괜히 제영에게 피해를 줄까 선뜻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주변만 맴돌았다.

송이

 “많이 바쁘시면 어떡하지….”

제영

 “여기서 뭐 해요?”

송이

 “경위님!”

청으로 들어가려던 제영은 주변을 서성거리는 송이를 발견하곤 얼른 달려가 송이에게 아는 척을 했다.

제영

 “안 들어오고 왜 여기 있어요.”

송이

 “아…. 경위님 바쁠까 봐….”

제영

 “무슨 일…. 있어요?”

평소보다 조금 어두워 보이는 송이의 표정에 제영이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송이

 “아뇨 없어요 그냥 경위님 보고 싶어서….”

제영

 “그럼 같이 들어가요.”

송이

 “아니 괜찮아요. 경위님 얼굴 봤으니까….”

제영

 “송이 씨.”

송이

 “네?”

제영

 “여기서 기다려요. 나 금방 차 키 가지고 나올게.”

제영은 서둘러 청 안으로 들어와 차 키를 챙겼다.

박형사

 “하 경위님 어디 가세요?”

제영

 “아 저 오늘은 좀 일찍 퇴근합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주세요.”

주차장에서 차를 빼 온 제영은 송이가 서 있는 곳에 차를 세우고 송이를 불렀다.

제영

 “송이 씨 타요!”

송이

 “네?”

제영

 “얼른요~”

제영의 재촉에 송이는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제영

 “벨트 매고~”

송이

 “네? 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송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송이

 “저 때문에…. 괜히 일찍 퇴근하신 거 아니에요?”

제영

 “나도 오늘 일 하기 싫었거든요. 그래서 송이 씨 핑계 대고 땡땡이치는 거예요.”

제영은 환하게 웃으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박자에 맞춰 손가락으로 핸들을 톡톡 두드렸다.

제영

 “자 내려요.”

송이

 “우와!”

제영이 차를 세운 곳은 다름 아닌 놀이공원 내에 있는 커다란 동물원이었다.

제영

 “여기서 기다려요. 차 세우고 올게요.”

송이

 “네!”

송이는 동물원에 들어서자마자 아이처럼 뛰어다녔다.

송이

 “경위님! 이거 봐요!”

송이가 제영의 손도 놓고 뛰어가서 가리킨 곳엔 아기 동물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송이

 “우와! 경위님 여기 아기 사자도 있어요!”

신이 나서 동물들을 만져 보는 송이를 보며 제영은 조금 마음을 놓았다.

제영의 손을 꼭 붙잡은 채 동물들을 보고 환하게 웃는 송이를 보며 제영 역시 얼굴에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송이

 “경위님은 어떤 동물 제일 좋아해요?”

제영

 “나는…. 사자?”

송이

 “왜요?”

제영

 “밀림의 왕이니까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제영의 모습에 송이는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제영

 “송이 씨는 어떤 동물이 좋은데요?”

송이

 “저는…. 음…”

제영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송이는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송이

 “저어기.”

제영

 “나무늘보요?”

송이

 “네.”

제영

 “왜요?”

송이

 “그냥…. 세상만사 편해 보이잖아요.”

제영

 “……”

송이

 “그리고 좀 귀엽지 않아요?”

제영

 “자세히 보면 귀여운 면도 있는 거 같고…그러네요.”

송이

 “그쵸!”

송이는 두 눈을 반짝이며 나무늘보를 바라보았다.

제영

 “여기 앉아서 좀 쉬어요~”

송이

 “네!”

한참을 걸어 다니던 제영과 송이는 근처 벤치에 앉았다.

제영

 “아이스크림 먹을래요?”

송이

 “제가 사올게요!”

제영

 “송이 씨는 여기 앉아서 기다려요.”

제영은 근처에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딸기 맛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와 송이에게 하나를 건넸다.

송이

 “고맙습니다~”

송이는 아이스크림을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송이

 “이렇게 있으니까 꼭 어릴 때로 돌아간 거 같아요.”

제영

 “어렸을 때 동물원에 자주 놀러 왔어요?”

송이

 “아뇨 딱 한 번 와봤어요.”

제영

 “네?”

송이

 “저 어렸을 때 좀 가난하게 살았거든요. 근데 딱! 한 번 아버지 외국으로 돈 벌러 가시기 전에 오빠랑 저 데리고 아빠가 동네에 있는 작은 동물원 데리고 갔었어요.”

제영

 “아….”

송이

 “그때 아빠가 목마도 태워 주시고 아이스크림도 사서 손에 쥐여주고…. 아 그때 오빠는 아이스크림 안 사주고 저만 사주셔서 우리 오빠 아직도 그때 이야기 하면서 막 화내요~제가 오빠는 한 입도 안 주고 저 혼자 다 먹었거든요.”

제영

 “송송이 씨 욕심쟁이네.”

송이

 “맞아요~ 저 어렸을 때 욕심 되게 많았대요. 아 그때 아빠가 풍선도 사줬어요~그 헬륨가스 잔뜩 들어있는 거 그거 가지고 집에 가다가 놓쳐서 하늘로 막 날아갔거든요. 저 하루 종일 울었대요. 그 풍선 모양이 아직도 생각나는 거 보면 엄청 아까웠었나 봐요. 어린 마음에도.”

제영

 “어떤 모양이었는데요?”

송이

 “핑크색 돌고래 모양이요!”

제영은 해사하게 웃으며 아이스크림을 먹는 송이의 모습에서 어릴 적 송이의 모습을 보았다.

제영

 “아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여기서 기다려요.”

송이

 “네~”

제영

 “모르는 사람이 아이스크림 사준다고 해도 따라가면 안 돼요.”

송이

 “저 애 아니거든요~”

제영

 “금방 올게요.”

***

잠시 후 제영은 핑크색 고양이가 그려져 있는 풍선을 들고 나타났다.

제영

 “자 이거요.”

송이

 “경위님!”

제영

 “돌고래 모양은 없더라구요 그래서 고양이라도….”

송이

 “우와! 아직도 이 풍선이 있구나!”

제영

 “이번엔 놓치지 말아요.”

송이

 “네!”

송이는 제영이 손에 쥐여준 풍선을 놓치지 않게 꼭 붙잡았다.

송이

 “우리 이번엔 경위님이 좋아하는 밀림의 왕 사자 보러 가요!”

송이는 제영의 손을 꼭 붙잡았다.

제영

 “그래요.”

***

제영

 “들어가요.”

밤이 되 서야 제영의 차는 송이의 집 앞에 도착했다.

송이

 “오늘…. 정말 즐거웠고 감사했어요….”

제영

 “조심히 들어가요.”

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리려던 송이는 잠시 망설이다 제영을 불렀다.

송이

 “경위님.”

제영

 “네. 왜요?”

송이

 “나…. 하고 싶은 말 있는데….”

제영은 송이의 집 앞에 차를 세우고 송이와 공원으로 향했다.

선선한 바람이 송이의 머리를 흐트러뜨리고 제영은 그런 송이의 잔머리를 귀에 꽂아 주었다.

송이

 “경위님…. 사실은 오늘 민석이 만났어요.”

송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자 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영

 “…. 네….”

송이

 “휴학한대요….”

제영

 “휴학이요?”

송이

 “군대…간다고.”

제영

 “……”

송이

 “나보고 미안해하지 말래요…. 근데요 경위님 저…. 기분이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그냥 민석이한테도 너무너무 미안하고…경위님한테도 미안하고…그래요….”

제영

 “송이 씨.”

송이

 “…. 이런 얘기를 경위님한테 하고 싶지 않았는데…. 숨기고 싶지는 않았어요…. 오늘 민석이 만난 것도…”

제영

 “송이 씨.”

송이

 “네….”

제영

 “송이 씨가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나한테 말 안 해도 돼요. 어떤 이야기든 다 나한테 꼭 이야기해줄 필요 없어요. 서로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 들도 있잖아요…. 오늘처럼 강민석 씨에 관한 이야기나 그런 이야기들….”

송이

 “하지만 경위님한테 숨기고 싶진 않았어요.”

제영

 “알아요…. 송이 씨가 어떤 생각으로 나한테 강민석 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지…. 다 알아요…. 나는 송송이 씨 믿어요.”

송이

 “……”

제영

 “그러니까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아도 돼요. 나한테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은 억지로 꼭 하지 않아도 돼요. 오늘처럼 이렇게…송이 씨 마음이 내키면 이야기해줘요.”

송이

 “경위님….”

제영은 송이의 어깨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제영

 “나는 괜찮아요. 지금 송이 씨 옆에 있는 사람은 나니까.”


내 경찰아저씬데요?20화 - 왜 사랑하면 안돼요?

송이

 “여보세요.”

수혁

 [너는 뭐 하고 지내는 데 연락 한 번 없냐.]

송이

 “무소식이 희소식인 거지~”

수혁

 [나 내일 서울 간다.]

송이

 “왜?”

수혁

 [너 보러.]

송이

 “오지 마.”

수혁

 [내일 4시에 서울역 도착이니까 데리러 나와.]

송이

 “애야? 알아서 와.”

수혁

 [야 서준이도 같이 갈 거야.]

송이

 “뭐? 준이도 와?”

수혁

 [그래 서준이 복학 때문에 올라가는 거니까 데리러 오든지 말든지.]

송이

 “아아 잠깐 나 내일 아르바이트 때문에 데리러 못 가.”

수혁

 [어디서 하는데.]

송이

 “내가 주소 문자로 보내줄게. 모르겠으면 전화하고 알겠지?”

수혁

 [어 알았어.]

친오빠 수혁과 통화를 마친 송이는 집 주소를 수혁에게 문자로 보내 놓고는 들뜬 마음으로 집 청소를 시작했다.

*** 

송이

 “어서 오세요~”

남

 “카페모카 아이스 한 잔이요.”

송이

 “네 4,000원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아르바이트하던 송이는 수혁이 올 시간이 다가올수록 불안한 마음에 휴대폰을 자꾸 들여다보았다.

송이

 “잘 찾아오는 건가….”

수혁과 서준 둘 다 길치라 서울 올라오면 항상 송이가 데리러 나가야 했기 때문에 혹시나 길이라도 잃어버릴까 계속 신경이 쓰였다.

딸랑/

송이

 “어서 오세요~”

서준

 “아가씨 참 예쁘게 생기셨네요.”

송이

 “네 감사합…. 어?”

뜬금없는 수작에 대충 감사 인사를 하고 주문을 받으려던 송이는 문득 익숙한 향기에 고개를 들었다.

송이

 “준아!”

그런 송이를 향해 서준이 활짝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서준

 “여기서 일하는 거야?”

송이

 “여긴 어떻게 왔어!”

수혁

 “야 나는 보이지도 않지?”

송이

 “어 왔구나.”

수혁

 “야.”

송이

 “일단 저기 가서 앉아 있어~내가 마실 거 만들어 줄게.”

서준과 수혁은 카페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송이는 서준과 수혁이 좋아하는 음료를 만들었다.

점장

 “누구야?”

송이

 “아! 네 사장님 저희 친오빠랑 친구예요!”

점장

 “아~ 어쩐 지 송이 씨랑 닮았더라.”

송이

 “제가요? 오빠랑요?!”

지웅의 말에 송이가 발끈했다.

점장

 “어…? 어….”

예상치 못한 송이의 반응에 지웅이 당황한 듯 주춤거리자 그제야 정신이 든 송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다 만든 음료를 들고 수혁과 서준이 앉아 있는 자리로 향했다.

송이

 “음료 나왔습니다~ 준이는 아이스 초코 오빠는 아메리카노.”

수혁

 “야 서준인 왜 초코고 나는 아메리카노야 나도 초코 좋아하거든!”

송이

 “오빠 커피 좋아하잖아. 준이 얘는 커피 못 마시니까. 별걸 다 샘낸다 진짜.”

만나자마자 투닥거리는 송이와 수혁의 모습을 보며 서준은 배시시 웃기만 했다.

송이

 “근데 준아 너 내가 여기서 일하는 건 어떻게 알았어?”

서준

 “너희 집에 짐 가져다 놓고 커피 한잔하려고 카페에 들어왔는데 너가 있더라고.”

서준은 자연스럽게 송이의 잔머리를 정리해 주며 물었다.

서준

 “일 늦게 끝나?”

송이

 “응 나 아홉 시쯤 끝나 이거 마시고 둘이 먼저 어디 가서 저녁 먹어.”

서준

 “너는?”

송이

 “나는 가게에서 대충 해결해.”

서준

 “그럼 송아 내가 장 봐서 들어갈게. 이따 저녁 같이 먹자.”

송이

 “그때까지 배 안 고프겠어?”

서준

 “형, 괜찮죠?”

서준의 물음에 수혁은 그저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끄덕였다. 

*** 

송이는 카페 아르바이트가 끝나자마자 가벼운 발걸음으로 카페를 나섰다.

저녁 메뉴를 고민하며 걷던 송이는 집 앞에 있는 익숙한 뒷모습에 깜짝 놀라 쪼르르 달려갔다.

송이

 “경위님!”

제영

 “어 왔어요?”

송이

 “연락도 없이 어쩐 일 이예요~”

제영

 “그냥 보고 싶어서 왔어요.”

송이는 제영을 세워 놓고 이리저리 안색을 살폈다.

송이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죠?”

제영

 “아무 일도 없어요.”

송이

 “진짜죠?”

제영

 “충전하러 왔어요.”

제영은 걱정스레 자신을 바라보는 송이를 꽉 끌어안았다.

제영

 “아 이제 좀 살 거 같네.”

따뜻한 제영의 품에 송이 역시 하루의 피로가 싹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송이

 “오늘도 수고했어요. 우리 경위님~”

송이가 제영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자, 제영은 푸스스 웃어버렸다.

제영

 “얼른 올라가요 피곤하겠다.”

송이

 “쪼끔만 더 있다 가면 안 돼요?”

수혁

 “송송이.”

제영의 손을 잡고 보채던 송이는 바로 뒤에서 들리는 수혁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송이

 “오…. 오빠 언제 내려왔어?”

수혁

 “뭐하냐 너.” 

 

송이

 “어? 어…그게….”

수혁

 “일단 올라가.”

수혁은 자신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하는 제영을 무시하곤 송이의 손목을 잡고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수혁

 “앉아봐.”

서준

 “송아 왔어?”

송이

 “어…. 어 준아.”

수혁

 “송송이 앉아.”

사뭇 다른 수혁의 분위기에 서준이 입 모양으로 무슨 일이냐며 물었고 송이는 아무 일도 아니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수혁

 “설명해봐.”

송이

 “뭐…. 뭘.”

수혁

 “내 입으로 이야기해? 집 앞에서 외간 남자랑 껴안고 있었다고?”

송이

 “오빠!”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서준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두 사람만 번갈아 쳐다보며 서 있었다.

수혁은 끓어 오르는 화를 잠시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물었다.

수혁

 “뭐 하는 사람이야.”

송이

 “경찰.”

수혁

 “경찰?”

송이

 “서울청 광수대 소속 경위.”

수혁

 “몇 살인데.”

송이

 “서른셋.”

수혁

 “뭐? 야 송송이!”

제영의 나이를 듣자마자 수혁을 펄쩍 뛰며 소리를 빽 질렀다.

송이

 “왜!”

수혁

 “너 나랑 몇 살 차이나!”

송이

 “열 살…”

수혁

 “근데!! 열 살 차이 나는 사람이랑 뭘 해?”

송이

 “열 살 차이가 뭐! 어때서!”

수혁

 “너 절대 안 돼!”

송이

 “몰라! 나는 경위님 좋아해.”

수혁

 “아버지가 아시면 너 진짜!”

송이

 “아 몰라! 아빠한테 말 하든지 말든지 그건 오빠 마음이고.”

서준

 “송아….”

서준은 송이의 옷깃을 슬쩍 잡았다.

수혁

 “송송이 너 진짜!!”

송이

 “몰라!! 왜 무조건 안 된다 해!! 내가 좋다잖아!! 내 마음대로 할 거야!”

송이는 수혁에게 소리를 빽 지르곤 자신의 옷깃을 붙잡는 서준의 손도 뿌리친 채 밖으로 나와버렸다.

무작정 걷고 또 걷던 송이가 도착한 곳은 겨우 서울청이었다.

휴대폰을 꼭 쥐고 망설이던 송이는 결심한 듯 제영의 번호를 꾹 눌렀다.

제영

 [네 송이 씨.]

송이

 “경위님….”

제영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송이

 “흐어어엉~”

결국, 꾹꾹 눌러 참은 눈물이 제영의 다정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펑하고 터져버린 송이다.

제영

 [송이 씨 왜 그래요 어디예요.]

송이

 “여…. 기…. 서울청…. 앞에….”

제영

 [기다려요, 금방 나갈게.]

송이와의 통화를 마치자마자 제영은 보고 있던 서류를 덮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사실, 송이의 오빠를 그렇게 마주치고 나서 제영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송이와의 교제 사실을 숨기려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밝혀진 건 제영 역시도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오빠의 손에 이끌려 잔뜩 시무룩한 얼굴로 집에 들어가는 송이의 모습을 보며 제영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청으로 돌아와서도 집중이 되지 않았었다.

제영

 “송이 씨!”

송이

 “경위님….”

한쪽 구석에서 발 장난을 하고 있던 송이는 제영의 목소리에 쪼르르 달려가 품에 안겼다.

제영

 “무슨 일이에요…. 오빠한테 많이 혼났어요?”

빨갛게 부어오른 눈을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묻는 제영에 송이는 그저 아무 말 없이 입술만 꾹 말아쥐었다.

제영

 “왜 울었어요….”

송이

 “…미안해요.”

제영은 자신의 품에 고개를 묻는 송이를 더 꼭 끌어안아 주었다.

제영

 “이것 좀 마셔요.”

송이

 “…. 네.”

제영은 편의점에서 사 온 따뜻한 유자차를 송이의 입가에 대 주었다.

제영

 “이제 좀 괜찮아요?”

송이

 “네….”

제영

 “일어나요 데려다줄게.”

송이

 “…안 갈래요.”

데려다주겠다는 제영의 말에 송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영

 “송이 씨.”

송이

 “나 오늘 경위님이랑 있으면 안 돼요?”

제영

 “…. 안돼요.”

단호한 제영의 말에 송이는 울먹거렸다.

송이

 “경위님….”

제영

 “송이 씨 오빠가 저 마음에 안 들어 하시죠.”

송이

 “…네 근데 그건….”

제영

 “그런데 오늘 내가 송이 씨 외박시키면 송이 씨 오빠가 날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송이

 “……”

제영

 “자 이제 일어나요.”

제영은 일어나서 송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송이

 “…네.”

송이는 잠시 망설이다 제영이 내민 손을 잡았다.

그러자 제영은 읏차 소리를 내며 송이를 일으켜 세웠다.

제영

 “갑시다.” 

두 사람은 선선한 밤바람을 맞으며 두 손 꼭 붙잡고 조용한 거리를 걸었다.

제영

 “송이 씨.”

송이

 “네….”

제영

 “송이 씨가 오빠 이해해줘요.”

송이

 “네?”

제영

 “송이 씨 오빠가 저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거 당연해요.”

송이

 “왜…. 왜 당연해요….”

제영

 “송이 씨랑 나랑 나이 차이도 그렇고….”

송이

 “나이 차이 크게 나는 게 뭐가 어때서요!”

나이 이야기에 발끈하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송이와 눈을 맞췄다.

제영

 “오빠 입장에선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나도 여동생 있는 오빠 입장에서 보면 그 남자 싫을 거 같은데?”

송이

 “……”

제영

 “그러니까 오빠 미워하지 마요.”

송이

 “…. 네.”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하는 송이를 제영은 자신의 품에 꼭 끌어안았다.

제영

 “아이고 착하다 우리 송이.”

어린아이 달래듯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제영의 모습에 송이는 결국 푸스스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 

제영

 “얼른 들어가요.”

송이

 “…네.”

제영은 아쉬운 듯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송이의 볼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송이

 “드…. 들어갈게요.”

빨갛게 물든 얼굴로 버벅거리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 눌러 참았다.

제영

 “좋은 꿈 꿔요.”

송이

 “경위님도….”

서준

 “송아?”

작게 손을 흔들고 계단을 올라가려던 송이는 마침 계단을 내려오던 서준과 딱 마주쳤다.

송이

 “어 준아….”

서준

 “어디 다녀온 거야…. 걱정했잖아.”

서준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송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송이

 “오빠는?”

서준

 “어…. 술 한잔 마시고 자.”

송이

 “…응 너는 왜 나왔어.”

서준

 “너 기다리다가 안 오길래 걱정 돼서 찾아보려고….”

송이

 “여기 길도 잘 모르면서…. 길 잃어버리면 어떡하려고.”

자연스러운 듯 다정한 송이와 서준의 모습에 제영이 잔뜩 궁금한 표정으로 서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제영

 “송이 씨 누구예요?”

송이

 “아…경위님 얘는….”

송이가 뭐라 입을 떼기 전에 서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서준

 “아 송이 남자친구시구나! 저는 송이랑 엄청 친한 친구 윤 서준이라고 합니다.”

서준은 환하게 웃으며 제영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제영

 “하 제영이라고 합니다.”

서준과 제영은 맞잡은 손을 허공에서 몇 번 흔들고는 곧바로 제자리를 찾았다.

제영

 “얼른 들어가요 송이 씨 피곤하겠다.”

송이

 “네…. 경위님은 청으로 가요?”

제영

 “아무래도 오늘은 집에 못 들어갈 거 같아요.”

송이

 “힘들어서 어떡해요….”

제영

 “오늘 송이 씨보고 충전했으니까 괜찮아야 얼른 들어가요. 친구분 기다리잖아.”

송이

 “네…. 전화할게요.”

제영에게 손을 흔든 송이는 자연스럽게 서준의 손을 붙잡았다.

송이

 “들어가자.”

서준

 “아 송아 너 먼저 들어가 나 편의점 좀 다녀올게.”

송이

 “너…. 담배 사러 가는 거 아니지?”

서준

 “너가 끊으라고 한 날 그 당일로 끊었거든?”

송이

 “알겠어 휴대폰 챙겼지? 여기는 밤엔 남자도 위험해.”

서준

 “걱정 마셔.”

서준은 괜찮다는 듯 손을 휘휘 몇 번 젓고는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제영

 “크..큼.”

어쩌다 보니 나란히 골목을 걷게 된 제영과 서준 사이엔 어색하고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제영

 “…. 송이 씨랑 많이 친한가 봐요.”

용기를 낸 제영이 먼저 침묵을 깼다.

서준

 “네. 태어나기 전부터 알았으니까요. 가족들끼리…. 그래서 서로에 대해선 모르는 게 없어요.”

제영

 “아…. 그렇구나.”

서준

 “유치원 초•중•고, 같이 나왔어요. 송아랑.”

제영

 “송아?”

제영은 좀 전부터 거슬리던 호칭을 되물었다.

서준

 “아…. 송아가 저, 준아 이렇게 불러서 저도 그냥 송아, 이렇게 불러요. 뭐…. 애칭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제영

 “애칭….”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 사이엔 또다시 무거운 적막이 흘렀다.

서준

 “…. 송아랑 만난 지 얼마나 되셨어요?”

이번엔 서준이 먼저 적막을 깼다.

제영

 “얼마 안 됐어요…. 두 달 정도?”

서준

 “아…. 그럼 그렇게 깊은 사이는 아니겠네요.”

제영

 “…. 네?”

제영은 순간 자신이 잘 못 들은 줄 알고 되물었다.

서준

 “다행이라구요 두 사람 깊은 관계는 아닌 거 같아서.”

제영

 “윤서준 씨 설마 송송이 씨한테….”

서준

 “그런 감정 있는 거 아니니까 그런 쪽으로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저랑 송아는 가족 이상이니까.”

제영

 “…. 그럼.”

서준

 “송이 오빠랑 같은 마음이에요 저도. 친구가 아닌 진짜 제 친여동생 보는 것 같은 그런 마음.”

제영

 “……”

서글서글하게 웃던 서준의 인상이 어느덧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서준

 “그렇게 깊은 사이 아니면 더 이상 송이랑 깊어지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제영

 “윤서준 씨.”

서준

 “주제 넘는다고 생각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송아랑 평생 함께했던 친구로서 송아가 좀 더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는 충고 정도로 생각해 주세요.”

제영

 “……”

서준

 “그럼 전 이만.”

서준은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한 후, 편의점 안으로 쑥 들어가버렸다.

제영

 “하아….”

서준이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고 혼자 거리에 남겨진 제영은 습관적으로 주머니를 뒤적여 담배를 찾았지만, 주머니엔 송이가 담배 대신 피우라며 넣어준 막대사탕이 손에 잡혔다.

제영은 아쉬운 대로 사탕을 까서 입안에 넣었다.

혀가 아릴 정도로 단맛이 씁쓸한 자신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달래 주길 바라면서….


내 경찰아저씬데요?21화 - 한 걸음 물러서기.

은애

 “쏭 너 얼굴에 왜 그래?”

송이

 “오빠가 나 경위님이랑 만나는 거 알았어.”

은애

 “어떻게?!”

송이

 “서울 잠깐 올라왔거든…. 집 앞에서 경위님이랑 있는 거 봤어….”

은애

 “허…. 어떡하냐..반대…. 하시지…?”

송이

 “어…. 만나러 가지도 못하게 해.”

잔뜩 시무룩한 표정으로 학교 정문을 나서던 송이는 정문 앞에 서 있는 서준을 보곤 화들짝 놀라 은애의 뒤로 숨었다.

은애

 “왜 그래?”

송이

 “나 쟤한테 들키면 안 돼.”

송이는 은애의 뒤에 숨어 슬금슬금 정문을 빠져나왔다.

송이

 “하아….”

은애

 “왜 누군데?”

송이

 “친구, 아니 수혁 오빠가 보낸 스파이.”

서준

 “나 스파이 아닌데?”

송이

 “…. 주…준아.”

겨우 숨을 돌리고 은애의 뒤에서 나온 송이의 손목을 뒤에서 서준이 턱 하고 붙잡아 세웠다.

서준

 “어디가?”

송이

 “지…. 집에 가지~”

서준

 “그럼 같이 저녁 거리 사서 들어가자~”

서준은 자연스럽게 송이의 손을 잡았다.

은애

 “누구야?”

옆에 서 있던 은애는 눈에 하트를 잔뜩 달고 서준을 바라보며 송이에게 물었다.

송이

 “아 은애야 얘는 내 고향 친구…. 윤서준, 준아 이쪽은 내 친구 오은애.”

서준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은애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서준

 “아 안녕하세요. 송아 친구 윤서준입니다.”

은애

 “네? 아…. 네 안녕하세요. 오은애라고 합니다.”

은애는 수줍게 웃으며 서준의 손을 마주 잡았다.

서준은 얼른 다시 은애의 손을 놓고 송이의 가방을 들었다.

서준

 “가자 송아~”

송이

 “그래…. 가자…. 은애야 나 먼저 갈게.”

사실, 학교 끝나고 몰래 제영을 만나러 갈 생각을 하고 있던 송이는 울며 겨자 먹기로 서준과 함께 집 근처 마트로 향했다.

서준

 “저녁에 뭐 먹을까?”

송이

 “…. 아무거나.”

서준

 “고기 구워 먹을까? 수혁이 형도 고기 좋아하잖아.”

송이

 “그래.”

송이는 서준의 옆에서 계속 휴대폰만 바라보며 걸었다.

서준

 “맥주도 한잔할까?”

송이

 “그래.”

서준

 “아 과일도 사자, 집에 과일이 하나도 없더라…송아 포도 좋아하지? 포도 사 갈까?”

송이

 “응? 응.”

지이잉//

송이

 “어? 어! 잠깐 준아 나 화장실 좀.”

액정 가득 떠 있는 경위님 세 글자에 송이는 후다닥 화장실로 뛰어와 문을 걸어 잠그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송이

 “네! 저예요!”

제영

 [학교 끝났어요?]

송이

 “네 아까 끝났는데…. 지금 마트에요 서준이랑.”

제영

 [아….]

송이

 “학교 끝나고 경위님 보러 가려고 했는데….”

제영

 [언제든 보면 되잖아요. 우린~]

송이

 “…. 그래도….”

제영

 [서준 씨 기다리겠다. 얼른 가봐요.]

송이

 “네 이따 전화 또 할게요.”

제영

 [알겠어요. 저녁 맛있게 먹고.]

송이

 “경위님도 식사 거르지 말아요. 알겠죠?”

제영

 [알겠어요~]

제영과의 통화를 마친 송이는 아쉬운 듯 휴대폰을 한번 쳐다보고는 화장실에서 나왔다.

송이

 “어? 장 다 봤어?”

서준

 “응. 집에 가자.”

***

서준과 장을 보고 들어 온 송이는 자신을 보며 아는 척도 하지 않는 수혁을 보곤 방으로 들어 와 문을 탁 닫아버렸다.

송이

 “하아….”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크게 내쉰 뒤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송이는 그대로 그냥 침대에 누워버렸다.

제영과의 연애를 쉽게 허락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수혁이 이렇게까지 반대를 할 줄은 몰랐던 송이는 사실 많이 당황스러웠다.

그저 서로만 좋고 행복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서로 사랑하기도 바쁜데 주변 사람들까지 신경 써야 하니…복잡해지는 머릿속에 송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똑똑/

서준

 “밥 먹자 송아.”

송이

 “어…. 나는 생각 없는데…. 둘이 먹어.”

송이의 말에 서준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서준

 “입맛 없어? 죽 쒀줄까?”

송이

 “아니…그냥….”

서준

 “조금이라도 먹으면 안 돼? 송아 너 생각해서 오늘 고기 사 온 건데….”

송이

 “…. 나갈게.”

서준의 성화에 송이와 서준 그리고 수혁은 불판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았다.

서준

 “자! 먹자 형 얼른 드세요.”

서준은 노릇하게 구워진 고기 한 점을 수혁의 접시에 놓아주었다.

수혁

 “그래 먹자.”

서준

 “자 형 우리 맥주도 한잔할까요?”

아무 말 없이 고기만 먹고 있는 송이와 수혁을 보며 서준은 애써 웃으며 맥주잔을 채웠다.

수혁은 잔이 채워지자마자 단숨에 컵을 비웠다.

말은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 송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이

 “나 먼저 좀 들어가서 쉴게.”

서준

 “송아 더 안 먹어?”

송이

 “응…. 별로 생각이 없네 나 먼저 들어갈게.”

송이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방으로 다시 들어왔다.

송이

 “하아….”

고기 몇 점 집어 먹은 게 명치 끝에서 딱 하고 걸린 것 같은 기분에 송이는 편하게 눕지도 못했다.

***

수혁

 “학교 끝나자마자 바로 와. 어디로 새지 말고.”

송이

 “…….”

수혁

 “알았어?”

수혁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송이는 문을 쾅 닫고 나왔다.

서준

 “송아!”

힘없는 발걸음으로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송이를 붙잡아 세운 서준은 직접 과일을 간 주스가 담긴 텀블러를 송이의 손에 쥐여 주었다.

서준

 “아침도 안 먹었잖아.”

송이

 “나 괜찮은데….”

서준

 “가면서 먹어 얼른 가~ 학교 지각하겠다.”

서준이가 쥐여 준 텀블러를 들고 학교에 도착한 송이는 강의실에 들어서자마자 책상에 엎드렸다.

은애

 “쏭!”

송이

 “어…. 왔어…?”

은애는 힘없이 누워 있는 송이의 이마를 걱정스러운 손길로 짚어 보았다.

은애

 “너 괜찮아?”

송이

 “어…. 아 좀 체기가 있어서…”

어제저녁부터 더부룩하더니 오늘 아침엔 콕콕 쑤시듯 아파왔다.

은애

 “정 아프면 조퇴해 너 얼굴 진짜 말이 아니야.”

송이

 “괜찮아….”

곧이어 교수님이 들어 오고, 수업이 시작되자 송이는 입술을 꾹 깨물고 아픔을 참았다.

교수

 “10분만 쉬고 수업 다시 시작합시다.”

교수님이 강의실에서 나가고, 은애는 식은땀까지 뻘뻘 흘리며 엎드려 있는 송이를 보고 화들짝 놀라 송이를 흔들어 깨웠다.

은애

 “쏭! 송이야!”

송이

 “어…. 나 괜찮아….”

지이잉//

그때,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송이의 휴대폰이 울리고 액정에 떠있는 경위님이라는 글자에 은애는 얼른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은애

 “네, 저….”

제영

 [아…은애 씨? 송이 씨 어디 갔습니까?]

은애

 “경위님 송이가 많이 아파요. 여기 학교 강의실인데….”

제영

 [몇 층입니까?]

은애

 “여기 2층 201호예요.”

제영

 [금방 가겠습니다.]

제영과의 통화를 마치자마자 곧이어 교수님이 들어오고 수업을 다시 시작했다.

송이는 수업에 방해될까 입술이 하얘질 정도로 꾹 깨물어 신음소리를 참아 냈다.

잠시 후, 똑똑/하는 노크 소리가 들리고 제영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제영

 “저 죄송합니다. 잠시 실례할게요.”

교수

 “무슨 일이시죠?”

은애

 “경위님 여기요.”

모든 학생들과 교수님의 시선이 제영에게 쏠려져 있고,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은애를 발견한 제영은 그쪽으로 성큼 다가갔다.

그리곤 송이를 번쩍 안아 들었다.

제영

 “수업 중에 소란을 피워서 죄송합니다. 보시다시피 환자가 있어서….”

교수

 “아…. 네.”

제영

 “그럼 송송이 학생은 제가 병원에 데리고 가겠습니다.”

교수

 “근데 저 송이 학생이랑은 무슨….”

제영

 “남자친굽니다. 애인.”

제영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벙찐 얼굴로 제영과 송이를 번갈아 바라보았고, 제영은 꾸벅 인사를 한 후 서둘러 송이를 자신의 차에 태웠다.

제영

 “송이 씨, 괜찮아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액셀을 밟았다.

제영

 “조금만 참아요. 금방 병원에 도착해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제영은 송이를 업고 응급실로 뛰어갔다.

간호사1

 “환자 침대에 눕혀주세요.”

송이를 침대에 눕히자마자 간호사와 의사가 달려들어 혈압과 체온을 제고 링거를 놓더니 곧이어 검사실로 향했다.

간호사1

 “보호자 분은 서류작성 해주시고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제영

 “아…. 네.”

간호사의 안내대로 서류작성을 마친 제영은 초조한 마음으로 송이를 기다렸다.

잠시 후, 곤히 잠이 든 송이가 검사실에서 나오고, 제영은 후다닥 달려가 송이의 옆을 지켰다.

제영

 “검사 결과 나왔나요?”

간호사1

 “스트레스로 인한 급성 위경련입니다.”

제영

 “위경련이요?”

간호사1

 “한 이 삼일 정도 입원 치료받으시면 괜찮으실 겁니다.”

제영

 “아…. 네 감사합니다.”

입원 수속을 마치고 입원실로 송이와 자리를 옮긴 제영은 깊게 잠든 송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제영

 “미안해요….”

괜히 자신이 부족해 송이를 고생시키는 거 같아 마음이 아픈 제영은 두꺼운 링거 바늘이 꽂힌 송이의 작은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한참을 송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제영은 송이의 오빠에게 연락하기 위해 송이의 휴대폰을 꺼냈다.

액정을 켜자 부재중 전화 4통이 찍혀 있었고, 수신자는 서준과 수혁이었다.

제영은 망설이다 수혁의 번호를 꾹 눌렀다.

몇 번의 통화음이 가고 바로 여보세요 하는 수혁이 목소리가 들렸다.

제영

 “안녕하세요. 저 하제영입니다.”

수혁

 [그쪽이 왜 송이 전화를 받아요?]

제영

 “송이 씨가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수혁

 [뭐라구요? 어디 병원이에요?]

제영

 “여기 해송병원 1322호입니다.”

수혁

 [알겠습니다.]

수혁과의 통화를 마친 제영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제영

 “후우….”

송이

 “…. 경위님….”

제영

 “어? 일어났어요?”

잠에서 깬 송이가 부스스한 얼굴로 제영을 불렀다.

제영

 “물 좀 줄까요?”

송이

 “…. 네.”

제영은 송이를 일으킨 다음 입가에 컵을 대주었다.

목이 탔는지 물 한 컵을 다 비운 송이는 조금 정신이 드는 듯 일어나 자세를 바로잡고 앉았다.

제영

 “괜찮아요?”

송이

 “네…. 괜찮아요.”

제영은 그저 아무 말 없이 제영의 손등만 손가락으로 살살 쓰다듬었다.

송이

 “나 진짜 괜찮은데….”

제영

 “……”

송이

 “응? 나 괜찮아요….”

송이의 말에 제영은 애써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송이

 “경위님 청에 다시 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제영

 “…. 송이 씨 오빠…. 올 거예요.”

송이

 “아….”

제영의 입에서 나온 수혁의 이름에 송이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똑똑하는 노크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수혁과 서준이 급하게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수혁

 “너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수혁은 들어오자마자 송이의 얼굴을 살폈다.

송이는 굳은 얼굴로 수혁의 손길을 피해 버렸다.

수혁

 “야 송송이.”

송이

 “나 괜찮으니까 가.”

서준

 “송아….”

수혁의 옆에 서 있던 서준이 잔뜩 울 듯한 표정으로 송이를 바라보았다.

송이

 “준아 나 괜찮아.”

제영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제영은 수혁과 서준에게 꾸벅 인사를 한 후, 재킷을 챙겼다.

제영

 “송이 씨 나, 가볼게요.”

송이

 “…. 경위님 가지 마요.”

제영의 손을 붙잡는 송이의 모습에 수혁이, 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송이

 “왜!!!”

수혁

 “…. 너 진짜….”

송이

 “왜…. 그러는 건데 진짜!! 내가 좋다잖아. 내가 하제영 아니면 안 되겠다잖아…!! 근데 왜 그래…. 나이 차이 많이 나는 게 뭐 어때서…. 왜 보고 싶은데 못 보게 해…. 왜 같이 있고 싶은데 못 하게 해…!!! 사랑하는데 왜…하지 말라고 그래….”

악에 받쳐 울분을 쏟아 내는 송이의 모습에 수혁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송이를 바라보았다.

베개를 붙잡고 엉엉 눈물을 쏟아 내는 송이를 세 남자는 그저 아무 말 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송이를 제영이 겨우 달래서 재웠고, 제영과 수혁 그리고 서준은 조용히 병실에서 나왔다.

수혁

 “이만 가보세요.”

수혁의 말에 제영은 꾸벅 인사를 하곤 병원에서 나와 청으로 향했다.

***

송이

 “…. 으음….”

서준

 “일어났어?”

밤이 돼서야 잠에서 깬 송이는 몰려오는 두통에 눈을 찡그렸다.

서준

 “물 좀 마실래? 아니면 죽 줄까?”

송이가 깨자마자 분주해진 서준이 이것저것 송이에게 권했다.

송이

 “아니…. 그냥 더 잘래.”

서준

 “약 먹으려면 죽이라도 먹어야 하는데….”

송이

 “오빠는…?”

서준

 “…. 여기는 잘 데 없으니까 내가 집에 가라고 했어.”

송이

 “…어….”

서준

 “그 경위님도 갔어.”

송이

 “…. 어…. 갔구나…. 준아 너도 집에 가서 자 나 혼자 있어도 돼.”

서준

 “너 혼자 두고 어떻게 가…. 송아 뭐라도 먹자…. 응?”

송이

 “그냥 좀 더 잘래….”

송이는 이불을 폭 뒤집어쓰고 서준에게서 등을 돌려 누웠다.

서준

 “나 물 좀 더 떠올게.”

송이

 “…….”

서준이 병실 밖으로 나가고 송이는 베개 밑을 뒤적여 휴대폰을 꺼내 들고 바로 제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영

 [일어났어요?]

송이

 “…. 네….”

제영

 [약은 먹었고?]

송이

 “….네….”

제영

 [거짓말이구나. 바로 대답 못 하는 거 보니까.]

송이

 “…. 흡….”

평소와 다름없는, 아니 평소보다 더 다정한 제영의 목소리에 결국 또 울음이 터지고 만 송이다.

제영

 [또 울어요? 이렇게 눈물이 많아서 어떡해…. 뚝 해요 얼른.]

송이

 “…끕….”

송이는 입술을 꾹 깨물어 눈물을 삼켰다.

제영

 [송이 씨~]

송이

 “……”

제영

 [어? 이제 목소리도 안 들려줄 거예요?]

송이

 “…. 네….”

제영

 [오늘부터 며칠 간은 좀 바쁠 거 같아서 내가 병원에 못 갈 거 같아요.]

송이

 “…끕…. 네….”

제영

 [그러니까 밥 잘 먹고 약도 잘 챙겨 먹고…. 빨리 나아서 퇴원하면 그때 우리 봐요. 알겠죠?]

송이

 “……”

제영

 [계속 병원에 있으면 나 안 갈 거예요, 그러니까 빨리 나아서 퇴원해요. 우리 얼굴 빨리 보게.]

송이

 “…. 네.”

제영

 [나 때문에 아파하고 힘들어하면 나 송이 씨 오빠한테 더 미안하잖아….]

송이

 “…….”

제영

 [그러니까 밥 잘 먹고 약 잘 먹고 울지 말고 알겠죠?]

송이

 “네….”

제영

 [어 나 박 형사님이 부른다. 송이 씨 약 먹고 푹 자요 또 전화할게.]

송이

 “네….”

제영과의 통화를 마친 송이는 끊긴 전화를 한참이나 붙잡고 있다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틀어막기 위해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내 경찰아저씬데요?22화 - 너 없이는…

제영은 송이가 병원에 입원한 동안 정말 병원을 찾아오지 않았고 연락 한 번 없었다.

서준

 “수혁이 형 다음 주에 본가로 내려간대….”

송이

 “…. 그래.”

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수혁과 송이는 단 한마디의 대화가 없었고 집에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서준

 “저기 송아….”

송이

 “서준아 나 조금만 잘게.”

병원에 있는 동안 내내 제대로 숙면을 취하지 못한 송이는 방으로 들어와 이불을 뒤집어썼다.

송이

 “조금만 자고…. 그러고 나서 이야기하자….”

송이는 복잡한 머릿속을 뒤로하고 눈을 꾹 감았다.

*** 

박형사

 “하 경위님 괜찮아요?

제영

 “…. 괜찮습니다.”

요 며칠 동안 제영은 계속해서 자진해서 일을 찾아 몸을 굴렸다.

그런 제영을 보며 박 형사와 다른 형사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제영을 바라보았다.

박형사

 “오늘도 집에 안 들어가세요?”

제영

 “이거 다 끝내려면 오늘도 못 들어갈 거 같습니다.”

박형사

 “집에 좀 들어가서 쉬세요. 그러다 진짜 쓰러집니다.”

제영

 “네…. 먼저들 들어가세요.”

책상 가득히 쌓여 있는 수사 자료기록들을 보던 제영은 짧게 울리는 진동에 휴대폰을 확인했다.

송이

 -나 퇴원했는데…. 많이 바빠요?

송이의 문자를 확인한 제영은 잠시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송이

 [경위님?]

신호음이 채 가기도 전에 들리는 송이의 목소리에 제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제영

 “미안해요. 퇴원했어요?”

송이

 [네 어제 했어요…. 경위님은 많이 바빠요?]

제영

 “…네…. 좀 바쁘네요….”

송이

 [식사는 챙겨 먹고 있죠?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제영

 “나는 괜찮아요. 송이 씨 걱정이나 챙겨요. 밥 거르지 말고.”

송이

 [..네….]

제영

 “얼른 자요…. 늦었다.”

송이

 [네…. 끊을게요.]

송이와의 통화를 마친 제영의 입꼬리는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

병원에서 퇴원한 송이는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왔다.

아침에 눈 뜨면 학교에 가고, 학교가 끝나면 서준이 데리러 와 꼼짝없이 어디 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송이

 “이제 그만 해 어차피 경위님 바빠서 만나지도 못해 그러니까…”

서준

 “송아 나는 그냥 너 데리러 오는 게 좋아서 오는 건데….”

송이

 “그래도 이제 그만 해 경위님 만나러 가지 않을 테니까….”

송이는 힘없이 서준의 손을 놓고는 저만치 앞서 걸어갔다.

*** 

송이

 “나 감시하는 거 서준이한테 그만 시켜.”

수혁

 “뭐?”

송이

 “이제 그만하라고.”

집으로 돌아온 송이는 소파에 앉아 있는 수혁에게 톡 쏘아붙이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휴대폰 먼저 확인하는 송이다.

얼굴을 보진 못해도 항상 문자나 전화를 하던 제영이였는데 어제부터 전화도, 문자도 오지 않았다.

휴대폰을 붙들고 제영의 번호를 누를까 말까 망설이던 송이는 다시 휴대폰을 화장대 위에 올려놓았다. 

*** 

박형사

 “드디어 오늘은 퇴근하시는 겁니까?”

제영

 “아…. 네 갈 곳이 있어서.”

박형사

 “가시는 김에 푹 쉬고 오십시오 하 경위님 얼굴 말이 아닙니다.”

제영

 “…. 내일 뵙겠습니다.”

제영은 오랜만에 청에서 벗어나 집으로 향했다.

며칠간 비어있던 터라 냉기가 흐르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제영이 향한 곳은 욕실이었다.

며칠 동안 세수만 하고 양치만 했던 탓이라 온몸이 끈적거리는 것 같았다.

개운하게 샤워를 마친 제영은 면도까지 말끔하게 마치고 나서야 욕실에서 나왔다.

제영

 “이게 좋겠다.”

거울 앞에서 셔츠를 이것저것 몸에 대보던 제영은 하얀 와이셔츠로 결정했다.

제영

 “넥타이는 이게 나으려나….”

평소엔 잘 매지도 않는 넥타이까지 신중하게 고른 제영은 멀끔한 정장 차림으로 거울 앞에 섰다.

제영

 “다 됐다.”

마지막으로 향수까지 뿌린 제영은 현관문을 나서며 송이의 번호를 꾹 눌렀다.

송이

 [경위님!!]

제영

 “아이고 깜짝이야, 내 전화 기다렸구나.”

송이

 [그럼요! 내가 얼마나….]

제영

 “그래서 송이 씨 보러 가려고 하는데….”

송이

 [네?]

제영

 “10분 있다가 문 열어줄래요?” 

제영과의 통화를 마친 송이는 침대 주변을 빙글빙글 돌아다니며 안절부절못했다.

그리고 결심한 듯,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송이

 “…. 오빠.”

수혁

 “어.”

송이

 “경위님 우리 집에 인사 올 거야.”

수혁

 “뭐?”

송이

 “지금 오고 있데.”

수혁

 “야 송송이.”

송이

 “…. 화만 내지 말고 일단 우리 얘기 좀 들어주면 안 돼?”

수혁

 “…하아….”

송이

 “부탁할게. 오빠.”

진심 어린 송이의 말에 수혁은 그저 입을 꾹 다물 뿐이었다.

*** 

제영

 “어…. 프리지아 한 다발 주세요.”

송이의 집으로 가는 길에 꽃다발까지 산 제영은 미리 준비한 과일 바구니 옆에 꽃다발을 올려놓았다.

제영

 “하아….”

떨리는 마음을 겨우 추스르고 송이네 빌라 계단을 오르던 제영은 안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진동 소리에 발신자를 확인했다.

-박 형사-

제영은 들고 있던 과일 바구니를 내려놓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제영

 “네 접니다.”

박형사

 [하 경위님 살인사건 터졌습니다! 여기 종로 쪽….]

제영

 “금방 가겠습니다.”

제영은 서둘러 차에 올라타 종로 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초조하게 제영을 기다리던 송이는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나도 제영이 오지 않자 수혁의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수혁

 “금방 온다며.”

송이는 수혁의 눈치를 보며 혹시나 싶은 마음에 밖으로 나왔다.

송이

 “어?”

빌라 현관으로 나가려던 송이는 계단 앞에 놓인 과일 바구니를 발견했다.

송이

 “이거….”

불안해진 송이는 집으로 뛰어 들어왔다.

송이

 “전화해볼게.”

송이는 얼른 방으로 들어와 제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 샘으로….]

송이는 계속해서 통화 버튼을 눌렀지만 들려 오는 건 기계음 섞인 여자의 목소리였다.

송이

 “하아….”

*** 

정신없이 사건 현장으로 달려온 제영은 노란 폴리스 라인이 처져 있는 화장실 안으로 들어섰다.

피가 낭자한 현장에 제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늘 봐오던 것들이지만 언제나 보기 힘들었다.

박형사

 “이름은 서현주 나이는 22세, 남자친구랑 여기 건물 술집에서 술 마시다가 혼자 화장실에 왔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되고, 몸에 남은 자상으로 봤을 때 흉기는 회 뜰 때 쓰는 사시미 칼로 추정됩니다.”

제영

 “흉기는 발견되지 않았고?”

박형사

 “네, 흉기를 가지고 도주한 거 같습니다.”

제영

 “신고자는?”

박형사

 “피해자 남자친구가 신고했습니다.”

박 형사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앳돼 보이는 남학생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고 있었다.

남학생

 “제가…못 지켰어요…. 저 때문에…. 제가 따라갔어야 하는데….”

제영은 혼잣말을 하며 눈물을 흘리는 남학생에게 다가갔다.

남학생

 “…흐윽…”

너무도 서럽게 우는 남학생에게 선뜻 말을 걸지 못한 채 제영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남학생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리고 남학생의 어깨를 두드리며 조용히 속삭였다.

제영

 “괜찮아 너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제영

 “일단 이 주변 CCTV랑 블랙박스 자료 찾아보시고 피해자 시신은 유가족에게 동의 구해서 부검하고 이 일대 차량 한 대도 빠짐없이 전부 검문 하세요. 증거가 될 만한 건 모두 챙겨놓고.”

박형사

 “네. 알겠습니다.”

제영

 “…. 그리고 저 남학생 진술은…. 일단 진정시키고 천천히….”

박형사

 “네.”

기억하기 싫은 기억을 또다시 꺼내야 하는 건 어떻게 보면 고문과도 같았기에 제영은 사고 목격자들의 진술을 받기가 항상 조심스러웠다. 특히 이런 살인사건, 그중에서도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들은 더더욱….

박형사

 “자 뒤로 좀 물러나 주세요! 여기 들어오면 공무집행 방햅니다!”

노란 폴리스 라인 주변을 둥그렇게 모여 있는 사람들을 향해 박 형사가 소리쳤다.

제영은 오랜만에 목에 맨 넥타이가 답답하게 목을 조여오는 것 같은 기분에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차로 향했다.

운전석에 앉으며 휴대폰을 확인하자 송이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들이 화면 가득 메워져 있었다.

제영은 송이의 번호를 꾹 누르며 후진을 하려던 순간 둥그렇게 모여 있는 사람들 속에 검은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마스크를 낀 수상한 차림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제영

 “어…?”

송이

 [경위님!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죠?]

제영

 “아..네 송이씨 미안해요 갑자기 사건이 터져서..”

송이

 [괜찮아요 어디 다친 데는..]

남자는 제영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뒤돌아서서 도망쳤다.

제영

 “어…. 어? 송이 씨 미안해요. 조금 이따가 전화할게요.”

송이

 [경위님!]

제영은 차에서 테이저건을 챙겨 무작정 남자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박형사

 “어? 하 경위님 무슨 일….”

제영

 “저 새끼 잡아요!”

제영의 말에 박 형사도 제영을 따라 남자를 쫓기 시작했다.  

툭 하고 끊어진 전화에 송이는 불안한 듯 손톱만 깨물었다.

송이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불안해 보이는 송이의 모습에 옆에 있던 서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서준

 “무슨 일…. 있어?”

송이

 “어? 아니 갑자기 전화가 끊겨서….”

서준은 계속해서 손톱을 물어뜯는 송이의 손을 잡아 내렸다.

서준

 “손톱.”

송이

 “어…? 어….”

서준

 “괜찮아?”

송이

 “…. 나랑 약속했으니까 아무 일도 없을 거야…약속은 꼭 지키는 사람이니까….”

송이는 괜찮을 거라며 마음속으로 수십 번 되 내었다.

제영

 “거기서!!”

제영은 죽을 힘을 다해서 남자의 뒤를 쫓았다.

남자는 골목 사이사이로 도망 다니며 제영을 피했다.

그때 미리 지름길을 파악하고 있던 박 형사가 남자의 앞을 막아섰다.

박형사

 “하아…너 딱 거기 서 있어.”

독 안에 든 쥐 꼴이 난 남자는 품 안에서 번쩍이는 사시미 칼을 꺼내 쥐었다.

제영

 “흉기 내려놓고 손들어.”

제영은 천천히 한 발자국씩 남자에게 다가갔다. 

 

범인2

 “가까이 오지 마!!”

제영

 “진정하고 칼 내려놔.”

범인2

 “오지 마라니까!!!”

점점 흥분하는 남자를 보며 제영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제영

 “다가가지 않을 테니까 지금이라도 칼 내려놔.”

범인2

 “으아악!!”

남자는 미친 듯이 칼을 휘둘러 댔다.

제영

 “하아….”

제영은 한숨을 크게 쉬고는 허리춤에서 테이저건(전기 총)을 꺼내 들었다.

제영

 “진정하고 칼 내려놔.”

범인2

 “…뭐…. 뭐야.”

자신에게 총을 겨누는 제영을 보고 당황한 남자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제영

 “어허, 뒤에는 실탄 든 총 들었는데~”

제영의 말에 화들짝 놀라 뒤돌아선 남자는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박형사

 “우리 경위님 친절하시기도 하네~”

박 형사가 남자에게 총을 겨눈 채로 방긋 웃으며 말했다.

박형사

 “지금이라도 칼 내려놓고 곱게 가자 나도 이거 쏘기 싫어~”

박 형사의 말에 주춤거리던 남자는 눈을 꾹 감고 다시 한 번 칼을 휘둘렀다.

범인2

 “아악! 몰라!!! 죽여!!!”

제영

 “이건 니가 자초한 거다.”

제영은 결국 테이저건의 방아쇠를 당겼다.

*** 

어느덧, 시곗바늘은 열두 시를 향해 가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초조해 하던 송이는 짧게 올리는 진동 소리에 서둘러 휴대폰을 확인했다.

제영

 -늦어서 미안해요, 문 열어 줄래요?

송이는 몸에 스프링이라도 달린 것처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부엌에서 물을 마시던 서준은 갑자기 문을 벌컥 열고 나오는 송이를 보고 깜짝 놀라며 물었다.

서준

 “송아 안자고 뭐….”

송이

 “준아 가서 오빠 깨워.”

서준

 “뭐?”

송이

 “빨리.”

송이의 말에 망설이던 서준은 거실에서 자고 있는 수혁을 흔들어 깨웠다.

서준

 “형 일어나요.”

수혁

 “어…. 왜….”

서준

 “송이가 형 깨우래요.”

수혁

 “왜….”

수혁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수혁

 “무슨 일인데….”

송이

 “오빠 경위님이 지금 집 앞이라는데….”

수혁

 “뭐?”

송이

 “나 문 열어줘도 되지?”

수혁

 “하 참….”

어차피 수혁의 대답은 필요 없다는 듯, 송이는 성큼성큼 걸어가 현관문을 열었다.

제영

 “늦어서 미안해요.”

제영은 이미 다 시들어 버린 꽃과 과일 바구니를 들고 잔뜩 미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제영

 “꽃을 사 왔는데…. 다 시들어 버렸어….”

송이는 꽃다발을 등 뒤로 숨기는 제영에게서 꽃을 빼앗아 꽃향기를 맡았다.

송이

 “아 향기 좋다 고마워요. 경위님.”

현관문 앞에서 쭈뼛거리고 있는 제영을 본 수혁이 마뜩잖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수혁

 “…. 들어오세요.”

내 경찰아저씬데요?23화 - 평범한 연애.

서준은 송이의 방에서 자고, 서준을 제외한 세 사람 사이엔 숨 막힐 듯 어색한 공기만 맴돌았다.

제영

 “…. 늦은 시간에 미안합니다.”

어색한 공기 속에서 제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제영

 “오는 길에 사건이 터져서 늦었습니다.”

비뚤어진 넥타이와 헝클어진 머리가 그가 급하게 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제영

 “늦은 거 알면서도…. 오늘 꼭 와야 할 거 같아서 실례인 줄 알면서도 왔습니다.”

제영의 말에 수혁은 아무 말 없이 앞에 놓인 물만 벌컥 들이켰다.

제영

 “그동안 미친 듯이 일에 몰두해서 지내봤어요, 일부러 송이한테 연락도 하지 않았고 만나지도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마음이 정리되면…. 놓아줘야 맞는 건가…. 싶어서….”

수혁

 “…….”

제영은 잠시 숨을 들이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제영

 “처음엔 많이 망설였어요. 나이 차이보다도 제 직업 때문에…. 많이 위험한 직업이고 또, 남들처럼 평범한 데이트를 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밀어내기도 해봤습니다. 그런데 송이 씨가 그러더라고요. 자기는 생각보다 여리지 않다고…. 강하다고…. 좋아하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드러내는 송이 씨가 예뻤습니다. 제가 다치면 저보다 더 아파하는 송이 씨를 보면서 욕심이 생겼어요….”

담담하게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제영을 수혁이 가만히 바라보았다.

제영

 “내가 지켜주고 싶다…. 아니 꼭 지켜야겠다…. 욕심내면 안 되는데…자꾸 마음이 가고…사랑하게 되어버렸어요.”

수혁

 “……”

제영

 “제가 너무 많이 사랑합니다. 송이 씨를.”

내내 담담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던 제영은 마지막 말 만큼은 고개를 들고 수혁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잠깐의 적막이 흐르고, 수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수혁

 “….송이야.”

송이

 “어…? 어 오빠….”

수혁

 “냉장고에 술 있냐.”  

어느덧, 탁자엔 술상이 차려져 있고 제영과 수혁은 아무 말 없이 술잔만 주거니 받거니 마셨다.

그 적막을 먼저 깬 건 수혁이었다.

수혁

 “…크큼…. 처음에 무례하게 대해서 미안합니다.”

제영

 “아닙니다. 저라도 그랬을 테니까요.”

수혁

 “송이랑 나이 차이가 꽤 나서…제가 송이를 워낙 유별나게 예뻐했어요. 부모님께서 맞벌이하시니까 제가 거의 키웠거든요. 송이가 어렸을 때부터 똑 부러지고 야무져서 지금까지 부모님 속 썩인 적 한 번도 없었어요. 물론 제 말도 잘 들었고…. 대학도 지가 알아서 가고, 장학금도 꼬박꼬박 받아서 저희 부모님 송이 대학 등록금 내 준 적 한 번도 없었어요. 아르바이트해서 용돈도 자기가 벌어서 쓰고….”

제영

 “착했네요….”

수혁

 “정말 착했어요…. 부모님이 제 자랑은 안 해도 송이 자랑은 엄청 하시거든요. 그래서…. 제가 좀 더 욕심을 부렸어요….”

제영

 “……”

수혁

 “송이의 옆에서 좀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기를…”

제영

 “……”

수혁

 “그래서 처음에 하제영 씨 직업이랑 나이 듣고…. 많이 반대했어요.”

제영은 수혁의 마음을 다 이해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영

 “이해합니다. 저도 여동생이 있는 입장에서..”

수혁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제영의 잔에 술을 채웠다.

수혁

 “…. 송이…. 잘 부탁해요.” 

 

수혁

 “송송이!! 이 오빠 마음 알지~?”

송이

 “아~알아. 근데 오빠 일단 일어나서….”

수혁

 “우리 송이! 내 동생!! 이 오빠가 우리 애기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송이의 얼굴을 붙잡고 뽀뽀를 하려는 제영을 잠에서 깬 서준이 겨우 떼어냈다.

서준

 “형 일단 들어가서 주무시고….”

수혁

 “우리 준이!! 우리 준이도 형이 얼마나….”

송이

 “아 또 우리 오빠 술버릇 나온다….”

송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서준을 도와 수혁을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들어와 침대에 눕혔다.

수혁

 “송이야 오빠가 미안해~”

수혁의 사과에 송이는 우뚝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수혁

 “오빠가…. 진짜 미안해…. 우리 송이 아프게 해서….”

물기 어린 수혁의 목소리에 송이가 뒤돌아서 수혁을 바라보았다.

송이

 “오빠….”

수혁

 “괜찮아 보이더라…하제영 씨….”

그 말을 끝으로 수혁은 잠이 들어 버렸다.

*** 

제영

 “송이 씨 나 이제 가볼게요.”

송이

 “경위님 괜찮아요?”

거실엔 몇 병인지도 모르는 술병들이 뒹굴고 있고, 수혁은 정신도 못 차리는데 자리에서 일어나는 제영은 흔들림이 없었다.

제영

 “네 괜찮은데….”

송이

 “…. 경위님 술 어디 버렸죠.”

제영

 “푸흐…. 다 이 속에 있어요.”

탁자를 훑어보는 송이를 보며 웃음이 터진 제영은 자신의 배를 가리켰다.

송이

 “우와…. 어떻게 하나도 안 취하지….”

제영

 “글쎄…. 긴장해서 그런가….”

송이

 “아…. 대리 기사님 불러야죠.”

제영

 “그냥 걸어가죠. 뭐.”

송이

 “안돼요. 위험해.”

단호한 송이의 말에 제영은 웃음이 터졌다.

제영

 “송이 씨 나 경찰인데.”

송이

 “그래도 술 마셨잖아요.”

송이의 성화에 대리기사를 부른 제영은, 굳이 주차장까지 데려다준다는 송이와 나란히 계단을 내려왔다.  

송이

 “피곤해서 어떡해요….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제영

 “괜찮아요. 하나도 안 피곤해.”

제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송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제영

 “얼른 들어가요. 기사님 기다린다.”

송이

 “경위님 가는 거 보고….”

제영

 “송이 씨 올라가는 거 봐야 내가 마음이 편해.”

송이

 “…. 치…. 알겠어요. 내일 봐요.”

제영

 “뭐 잊은 거 없어요?”

송이

 “응?”

제영은 자신의 볼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송이는 슬쩍 대리기사님의 눈치를 보고 제영의 볼에 쪽 하고 입을 맞추곤 후다닥 집으로 뛰어 올라갔다.

제영

 “푸흐….”

그런 송이의 모습에 제영의 입꼬리는 내려올 줄 몰랐다. 

*** 

은애

 “쏭 무슨 좋은 일 있어?”

송이

 “나 오빠한테 허락 맡았다!”

은애

 “어 진짜? 완전 축하해!!!”

송이

 “흐흐 고마웡~”

한동안 마음고생 하던 일이 드디어 해결됐다는 말에 은애도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송이

 “은애야 나 먼저 간다아~”

은애

 “오늘은 친구가 안 데리러 왔네?”

송이

 “준이? 어 이제 안 올 거야~”

송이의 말에 은애는 약간 실망한 듯, 어색하게 웃었다.

송이

 “나 먼저 갈….”

서준

 “송아!”

송이

 “주…준아?”

은애에게 손을 흔들며 뒤돌아서던 송이는 눈앞에 있는 서준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서준

 “뭘 그렇게 놀래~”

송이

 “너 왜…?”

서준

 “너 보러 왔는데?”

서준의 등장에 은애의 입가엔 옅은 미소가 걸렸다.

송이

 “이제 안 와도 된다니까….”

서준

 “나 심심해서 놀러 온 거야….”

잔뜩 시무룩한 얼굴로 송이의 옷깃을 잡는 서준의 모습에 송이의 마음이 약해졌다.

서준

 “나는 송아 하나 믿고 서울로 올라왔는데…나한텐 신경도 안 쓰고….”

송이

 “아니 신경을 안 쓴 건 아니고…. 준아….”

서준

 “귀찮으면 나 그냥 집으로 갈게….”

주인에게 버림받은 듯한 표정으로 뒤돌아서는 서준의 손목을 잡은 건 송이가 아닌 은애였다.

서준

 “….?”

당연히 송이일 줄 알고 환하게 웃으며 뒤돌아서던 서준은 의외의 인물에 화들짝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은애를 쳐다보았다.

은애도 꽤나 당황했는지 서준의 손목을 얼른 놓고는 말을 더듬었다.

은애

 “아…. 어…. 그게….”

서준은 당황하는 은애를 가만히 바라보다 활짝 웃으며 말했다.

서준

 “친구분도 같이 갈래요?”

은애

 “네? 어…. 네!”

송이

 “아니 이야기가 왜 이렇게 흘러가지.”

서준

 “가자 송아!!!”

은애

 “쏭 가자 가자!”

결국, 두 사람 사이에 껴서 시내로 나온 송이다.  

서준

 “송아!! 우리 저거 먹자!! 저기 맛집이래 블로그에서 봤어!”

송이

 “어? 그래….”

해맑게 웃으며 맛집이라는 식당으로 자신의 손을 잡아끄는 서준을 보며 차마 싫은 티를 낼 수 없는 송이다.

서준

 “뭐가 맛있지?”

은애

 “아…. 여기는 고르곤졸라 피자가 맛있는데…피자 좋아해요?”

진지하게 메뉴판을 뚫어져라 정독하는 서준을 보며 옆에 있던 은애가 조심스럽게 메뉴를 추천했다.

서준

 “아! 좋아해요!! 송아 너는 크림 파스타 먹을 거지?”

송이

 “어? 어….”

서준

 “은애 씨는 뭐 좋아해요?”

은애

 “네? 아…. 저는 리조또….”

서준

 “여기요!”

아르바이트생

 “네 주문하시겠어요?”

서준

 “어 고르곤졸라 피자랑 리조또 하나랑 크림파스타 하나 주시는데요, 크림파스타에 버섯은 빼주세요.”

아르바이트생

 “네. 알겠습니다.”

서준은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포크와 나이프를 세팅했다.

서준

 “여기 음식들 다 맛있데, 은애 씨 그쵸?”

은애

 “네…? 네…! 여기 맛있데요.”

어쩐 지 평소와는 다른 은애의 태도에 송이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은애를 바라보았다.

은애

 “응…? 왜?”

송이

 “아냐아~”

은애는 괜스레 붉어진 얼굴을 식히기 위해 연신 손 부채질을 했다.

지이이잉//

액정에 뜨는 반가운 이름에 송이는 얼른 통화 버튼을 눌렀다.

송이

 “네!!”

제영

 [수업 끝났어요?]

송이

 “네 경위님 보러 가려고 했는데…서준이가 와가지고….”

제영

 [아…. 지금 서준 씨랑 같이 있어요?]

송이

 “네 서준이랑 은애랑 같이 시내 나왔어요.”

제영

 [점심은?]

송이

 “지금 먹으려구요 경위님은요? 또 샌드위치나 이런 거로 때우는 거 아니죠?”

제영

 [오늘은 박 형사님이랑 설렁탕 먹었습니다.]

송이

 “우와 잘했어요!”

자신에게 칭찬을 바라는 듯한 말투에 송이는 한껏 진심을 다해 칭찬을 해주었다.

제영

 [송이 씨한테 칭찬 들으려면 밥 잘 챙겨 먹어야겠네.]

송이

 “푸흡 앞으로도 칭찬 많이 해줄게요.”

똑똑//

제영과 한참을 정신없이 통화하던 송이는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서준

 “밥 먹어~”

음식이 벌써 나왔는지, 파스타를 자신의 앞으로 밀어주는 서준의 모습에 송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송이

 “경위님 조금 있다가 다시 전화할게요~”

제영

 [얼른 밥 먹어요.]

송이

 “네~”

송이가 전화를 끊자 서준이 피자 한 조각을 송이의 접시에 놓아줬다.

송이

 “고마워.”

다들 배가 고팠던 건지 아무 말 없이 전투적으로 식사에 전념했다. 

***

송이

 “아…. 배부르다.”

부른 배를 통통 두드리며 식당에서 나온 셋은 소화도 시킬 겸 거리를 걸었다.

서준

 “오랜만에 서울 구경 하니까 좋다~”

해사하게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는 서준의 모습에 송이는 마음이 조금 놓였다.

사실, 서준이가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 며칠 동안 서준에게 무신경했던 거 같아 송이도 마음에 걸렸었다.

서울에 아는 사람이라곤 자신밖에 없는데 송이 본인은 서준보다 제영에게 신경이 가 있었으니, 서준 입장에선 충분히 서운할 만한 상황이었다.

서준

 “송아!!! 우리 저기 가자!”

잔뜩 들뜬 목소리의 서준이 가리킨 곳은 다름 아닌 오락실이었다.

송이

 “오락실?”

서준

 “가자 가자!!”

그렇게 서준의 손에 이끌려서 오락실에 들어온 송이와 은애는 처음엔 어색해 하다가 금세 적응했다.

송이

 “야 준아! 이거 이거 우리 이거 우리 동네 오락실에서 나란히 1, 2등 했잖아!”

서준

 “맞아 이거! 버블버블!!”

어렸을 때, 서준과 송이는 오락실 문지방이 닳을 정도로 학교만 끝나면 오락실로 달려가는 게 일상이었다.

그중에서도 공룡들이 나와 방울을 쏘아대는 게임은 중학생들까지 통틀어서 서준과 송이가 나란히 1, 2등에 이름을 올렸었다.

송이

 “오랜만에 몸 좀 풀어볼까?”

송이는 은애에게 가방을 맡기고는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송이

 “지는 사람 아이스크림 내기.”

서준

 “콜.”

서준 역시 비장한 표정으로 스틱을 잡았다.

송이

 “준비….”

서준

 “시작!!”

송이의 시작 소리와 함께 둘은 미친 듯이 게임에 집중했다.

송이

 “아싸! 송송이 승!!”

서준

 “으어어..”

승자는 송이었고 서준은 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애꿎은 스틱만 돌려댔다.

지이잉//

송이

 “네 경위님!”

제영

 [아직 밖이에요?]

송이

 “네! 서준이랑 오락실 왔어요!”

제영

 [어 나 여기 시내 근천데 어디쯤이에요?]

송이

 “경위님 퇴근했어요?”

제영

 [네 좀 일찍 끝났어요.]

송이

 “아 여기 팡팡 오락실이요.”

제영

 [금방 갈게요.] 

잠시 후, 하얀 셔츠와 까만 슬랙스 차림의 제영이 송이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으며 들어왔다.

송이

 “경위님!”

은애

 “아 안녕하세요. 경위님~”

제영을 발견한 은애 역시 반갑게 웃으며 꾸벅 인사를 했다.

제영

 “안녕하세요. 서준 씨.”

자신을 본 척 만 척하는 서준에게 제영이 먼저 다가가 인사를 했다.

서준

 “아 네 안녕하세요.”

네 사람 사이엔 잠시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것도 잠시 펌프를 발견한 송이가 그쪽으로 후다닥 뛰어가 자리를 잡았다.

송이

 “준아! 이거 이거!”

서준

 “펌프!”

서준 역시 펌프가 반가운지 송이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섰다.

제영

 “이게 아직도 있네~”

제영은 아직 남아 있는 펌프가 반가운 듯,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송이

 “경위님도 이거 할 줄 알죠!”

제영

 “그럼요 내 별명이 하 펌프였는데.”

송이

 “푸흡.”

제영

 “진짠데?”

송이

 “그럼 하 펌프의 실력 좀 봐야겠다.”

송이는 펌프에서 내려와 제영에게 자리를 권했고 어쩌다 보니 제영과 서준 나란히 펌프에 올라서게 되었다.

송이

 “오오. 둘이 대결인가요~ 경위님 준이도 펌프 엄청 잘하거든요. 날아다녀요.”

제영

 “오 그래요? 그럼 어디 한번 해볼까요?”

도발하는 듯한 제영의 말에 서준은 입술을 꾹 말아 쥐고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그렇게 자존심을 건 펌프 대결이 시작되었다.

90년대 음악이 흘러나오고, 제영과 서준은 땀까지 뻘뻘 흘리며 화면에 뜨는 화살표를 꾹꾹 밟았다.

송이

 “오오~”

처음엔 서준이 약간 앞서가는 듯했지만 제영이 점점 치고 올라왔다.

음악이 끝나고, 두 사람 동시에 점수가 떴다.

송이

 “오오 하제영 승!!”

결과는 5점 차이로 제영이 이겼고, 서준은 나라를 잃은 듯한 표정으로 펌프에서 내려왔다. 

제영

 “오늘 저녁은 제가 살게요. 다들 시간 괜찮죠?”

송이

 “네!”

송이가 제일 먼저 대답을 했고, 뒤따라 은애도 고개를 끄덕였다.

제영

 “서준 씨는요?”

서준

 “…. 저도 뭐….”

제영

 “그럼 우리 소고기 먹으러 갈까요?”

환하게 웃으며 소고기를 먹으러 가자는 제영을 송이는 옆에서 쿡 찔렀다.

송이

 “…. 너무 비싸잖아요….”

제영

 “괜찮아요~가요 얼른.” 

*** 

송이

 “우와 잘 먹겠습니다.”

은애

 “잘 먹을게요. 경위님~”

송이와 은애는 제영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서준

 “…. 잘 먹을게요.”

테이블 아래로 자신의 발을 툭 치는 송이 때문에 잠시 망설이던 서준도 제영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제영

 “네 맛있게 먹어요~”

제영은 집게와 가위를 들고 고기를 구워 세 사람 각자의 접시에 놓아주기 바빴다.

그 모습을 본 송이는 고기 쌈을 한 쌈 싸서 제영의 입가에 댔다.

송이

 “아~”

제영

 “고마워요.”

제영은 크게 입을 벌려, 쌈을 받아먹었다.

계속해서 고기를 굽는 제영에게 송이는 옆에서 틈틈이 쌈을 싸서 제영의 입에 넣어주었다.

은애

 “서준 씨 이거 먹어요.”

서준의 옆에 앉아서 고기를 먹던 은애는 서준이 자신의 옆에 놓여진 계란찜이 손이 닿지 않아 먹지 못하자, 계란찜을 슬쩍 서준의 옆으로 놓아주었다.

서준

 “아 고마워요.”

그렇게 서로를 챙겨 주며 식사를 마쳤다.

은애

 “잘 먹었습니다~”

서준

 “…. 잘 먹었어요.”

어느덧, 어두워진 거리에 송이는 서준을 쿡 찌르며 속삭였다.

송이

 “은애 좀 데려다줘.”

서준

 “어?”

송이

 “너무 어둡잖아. 위험해.”

서준

 “…. 알겠어.”

그렇게 은애와 서준을 보낸 송이는 조용한 밤거리를 제영과 나란히 걸었다.

송이

 “아~좋다~”

제영의 손을 잡고 걷던 송이는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제영

 “나도 좋다.”

송이

 “푸흐흐..”

송이는 푸스스 웃으며 제영의 손을 더 꼭 잡았다.


내 경찰아저씬데요?24화 - 이미 깨져버린 접시처럼.

송이

 ”오빠 조심히 가고 도착하면 전화해.”

수혁

 “밤늦게까지 돌아다니지 말고 밥 잘 챙겨 먹고…. 서준이한테 전화해서 물어본다.”

송이

 “…. 알겠어.”

수혁은 작게 미소 지으며 송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수혁

 “간다.”

서준

 “형 조심히 가요.”

수혁

 “어 서준이 너도 학교 잘 다니고…. 연락해라.”

서준

 “알겠어요….”

수혁은 옆에 서 있는 제영에게도 꾸벅 인사를 하곤 훌쩍 기차에 올라탔다.

떠나는 기차를 보며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진 거 같아 애꿎은 눈만 벅벅 비볐다.

송이

 “눈 아파.”

제영은 그런 송이의 손을 깍지 껴 잡았다.

제영

 “우리도 갑시다.” 

*** 

수혁이 본가로 돌아가자마자 서준도 송이의 빌라 근처에 자취 집을 얻어 나갔다.

며칠 동안 북적거리던 집 안이 또다시 휑해진 것 같은 기분에 괜스레 쓸쓸해졌다.

송이

 “에이 뭐 원래 혼자 살았는데!”

애써 씩씩한 척, 잠시 동안 묻어 있던 수혁과 서준의 흔적을 치우는 송이다.

딩동//

한참 땀까지 흘리며 집 안 청소를 하던 송이는 갑작스러운 초인종 소리에 택배인가 싶어 현관으로 달려나갔다.

송이

 “누구세요!”

송이

 “경위님?”

문 앞엔 양손 가득 먹을거리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제영이 서 있었다.

제영

 “외로울 거 같아서.”

송이

 “우와 뭘 이렇게 많이 사오셨어요~”

제영이 사온 음식들을 하나둘 차리다 보니까 어느덧 상이 음식으로 가득 찼다.

송이

 “치킨 피자에 초밥까지….”

음식들의 먹음직스러운 자태에 벌써 입맛을 다시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젓가락을 쥐여주었다.

제영

 “자 얼른 먹어요.”

송이는 옆에 있던 젓가락을 뜯어 똑같이 제영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송이

 “경위님도 얼른 드세요.”

제영

 “잘 먹겠습니다~”

송이

 “잘 먹을게요~”

두 사람은 동시에 젓가락을 움직여 부지런히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제영

 “자 여기 다리.”

제영은 제일 먼저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닭 다리를 송이의 접시에 놓아주었다.

송이

 “와 경위님 좋은 사람.”

제영

 “응?”

송이

 “닭 다리 주는 사람 좋은 사람.”

제영

 “푸흡….”

진지한 얼굴로 엄지를 척 내미는 송이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버린 제영이다. 

송이

 “흐어 배불러….”

평소보다 과식한 송이는 바닥에 딱 붙어 배를 두드렸다.

제영

 “아이스크림도 사 왔는데 그건 나중에….”

제영의 말에 송이는 단호한 표정으로 검지 손가락을 척 치켜들고는 노! 를 외쳤다.

제영

 “응?”

송이

 “원래 밥 배 디저트 배는 따로 있어요.”

제영

 “푸하하!”

제영과 송이는 음식을 다 치우고 소파에 나란히 앉아 TV를 틀었다.

마침 TV엔 송이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가 하고 있었고 송이는 열혈 시청자 모드로 드라마를 시청했다.

한참을 말도 없이 드라마를 시청하던 송이는 자꾸만 감기는 두 눈을 비볐다.

송이

 “졸려요….”

제영

 “들어가서 잘래요?”

송이

 “아니…. 그냥 조금 더 있다가….”

송이는 제영의 품에 조금 더 파고들었고 제영은 그런 송이의 어깨를 토닥였다.

송이

 “오늘…. 고마워요….”

웅얼거리며 말을 마친 송이는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제영

 “푸흡…. 내가 진짜 너 때문에 웃는다….”

제영은 송이를 조용히 안아 들어 방으로 들어왔다.

조금 뒤척이는 듯한 송이가 깰까 싶어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히고 이불까지 덮어주었다.

제영

 “잘 자요.”

제영은 곤히 잠이 든 송이의 볼에 입을 맞추곤 조용히 집을 나왔다. 

*** 

점장

 “송이 씨 이제 괜찮아?”

송이

 “네! 이제 멀쩡해요, 저번 주는 혼자서 힘드셨죠.”

점장

 “송이 씨가 없으니까 손님도 안 오더라고.”

지웅의 너스레에 송이는 한번 허허 웃고는 명찰을 고쳐 달았다.

송이

 “어서 오세요~”

수련

 “어머, 그때 제영이 병실에서 본 그 학생 맞죠?”

자신을 아는 척하는 여자의 목소리에 송이는 포스기에서 눈을 떼고 수련을 쳐다보았다.

송이

 “아…. 경위님 선배분….”

별로 탐탁지 않은 인물에 송이는 그저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수련

 “여기서 아르바이트해요?”

송이

 “아…. 네 주말에.”

‘이런 거 물어볼 정도로 친했나.’ 싶은 생각에 송이는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포스기만 두드려댔다. 

 

수련

 “아, 일하는 데 방해했구나! 미안해요. 음…. 나는 카페 모카 아이스로.”

송이

 “3,500원입니다.”

수련

 “여기. 아 근데….”

카드를 건네준 수련은 주변을 둘러보다 송이에게 가까이 오라며 손짓을 했다.

송이

 “네?”

송이가 수련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수련은 송이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수련

 “혹시 제영이랑 무슨 사이에요?”

송이

 “네에???”

수련의 입에서 나온 뜬금없는 물음에 송이는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송이

 “어…. 음…. 죄송해요.”

주변에서 느껴지는 사람들의 시선에 송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수련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난 제영이 입원했을 때 찾아와서 혹시 친한 사인가 하고~”

송이

 “아…. 네….”

송이는 순간 제영과 자신과의 사이를 수련이 알면서도 이러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수련

 “설마…. 뭐…. 이렇게 어린 친구랑 제영이가….”

송이

 “커피 나왔습니다.”

송이는 서둘러 커피를 수련에게 건넸다. 얼른 들고 좀 나가라는 의미를 듬뿍 담아서.

수련

 “아 고마워요. 자주 올게.”

송이

 “네 안녕히 가세요.”

수련이 카페를 나가자 송이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몰아 내쉬었다.

그리곤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송이

 “자주 안 왔으면 좋겠네요.” 

*** 

요 며칠 새 자주 일어나는 강력범죄에 제영은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다.

송이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워가며, 사건기록을 보는 제영의 곁에 짙은 향수 냄새가 훅하고 풍겼다.

수련

 “하 경위 바빠?”

제영

 “네 좀. 무슨 일이시죠?”

제영의 물음에 수련은 슬쩍 송이가 일하는 카페의 커피를 제영 쪽으로 내밀었다.

수련

 “이것 좀 마시면서 해~”

제영은 수련이 내민 익숙한 로고의 커피 컵에 지금 뭐하냐는 표정으로 수련을 올려다보았다.

수련

 “여기 커피가 제일 맛있더라고 마침 아르바이트생도 우리가 아는….”

제영

 “지금 뭐하는 겁니까?”

수련

 “응? 뭐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의 수련을 보며 제영은 주변을 둘러보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영

 “허튼짓하지 마십시오.”

수련

 “허튼짓? 그게 뭔데?”

빙글 웃으며 되묻는 수련을 보며 제영은 들고 있던 커피를 쓰레기통에 확 하고 처박았다.

제영

 “지금 본인이 하고 있는 짓.”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성큼성큼 저만치 멀어지는 제영을 보며 수련은 그저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 

지웅의 말대로 정말 송이가 있는 날에 사람이 유난히 많은 건지, 내내 화장실 갈 틈 없이 일하던 송이는 퇴근 시간이 거의 다 돼서야 의자에 잠깐 엉덩이를 붙일 수 있었다.

점장

 “거봐 손님들이 송이 씨 때문에 오는 거라니까~”

송이

 “정말 그런가 봐요~”

지웅의 말에 송이가 울상을 지으며 대답했다.

점장

 “우리 송이 씨 매출 공신 일등이니까 잘 모셔야겠네.”

송이

 “매번 사장님이 만들어주시는 음식들로도 충분합니다~”

아픈 다리를 통통 두드리며 지웅과 수다를 떨던 송이는 ‘딸랑’하고 손님이 들어오는 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포스기 앞에 섰다.

송이

 “주문하시겠어요?”

수련

 “아직 일하고 있었네요~”

송이는 반갑지 않은 목소리에 포스기에서 눈도 떼지 않고 대답했다.

송이

 “네, 주문하시겠어요?”

수련

 “어머 너무 딱딱하다 송이 씨~그래도 나 제영이랑 친한 사인데.”

친한 사이에 힘을 줘서 말하는 수련을 보며 송이는 찝찝해지는 기분을 애써 숨기고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송이

 “제가 사근사근한 성격은 아니어서…주문 뭐로 하시겠어요?”

수련

 “아~그렇구나? 어 이번엔 아이스 아메리카노 줘요. 아까 낮에 사 간 건 제영이 줬거든~”

자신의 앞에서 제영과의 친분은 과시하는 수련의 모습을 보며 송이는 대체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송이

 “아…. 네 금방 만들어 드릴게요.”

송이는 손에 모터를 단 듯, 최대한 빨리 커피를 만들어 수련의 앞에 내왔다.

송이

 “여기 커피 나왔습니다.”

수련

 “진짜 빨리 만들어줬네~ 나랑 오래 있기 싫어서 그런가?”

정곡을 찌르는 듯한 수련의 말에 송이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송이

 “아뇨 그럴 리가요 우리 경위님이랑 친하신 분인데.”

수련

 “우리 경위님?”

송이

 “아….”

송이는 본인도 모르게 나온 말버릇에 난감한 표정으로 아무 대꾸도 못 했다.

수련

 “아~엄청 친한가 보다~우리 제영이랑.”

수련의 입에서 나온 우리 제영이 소리에 송이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송이

 “아…. 하하 네.”

그저 웃으며 얼른 수련이 나가기만을 바라고 있는데 수련이 또 송이에게 가까이 오라며 손짓을 했다.

수련

 “내가 사실은 제영이 첫사랑이거든요. 결혼까지 약속했던.”

송이

 “…. 네?”

첫사랑, 이라는 말에 송이의 표정이 굳었다.

수련

 “아 제영이가 말 안 했어요?”

송이

 “…그런 걸 이야기할 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라서요.”

수련

 “아…. 그렇구나…. 나는 이만 가볼게요~다음에 또 봐요. 송이 씨.”

수련이 카페에서 나가고, 멍하니 서 있던 송이는 지웅의 기척에 정신을 차리고 퇴근 준비를 했다. 

송이

 “어, 준아.”

서준

 [송아 어디야?]

송이

 “나 카페 끝나고 집에 가는 길 왜?”

서준

 [그대로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세요~]

서준의 말대로 송이가 고개를 돌리자 건너편에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는 서준이 보였다.

송이

 “어디 다녀와?”

서준

 [아르바이트 면접 보고 집에 가는 길에 마침 송아 너가 딱 보이길래.]

송이와 서준은 반대편 길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통화를 하면서 걸었다.

송이

 “그렇구나….”

서준

 [송아 무슨 일 있어?]

평소와 조금 다른 송이의 목소리에 단번에 서준이 무슨 일이 있나 물어왔다.

송이

 “아니~무슨 일이 있긴 그냥 좀 피곤해서.”

서준

 [거기 서서 잠깐 기다려.]

서준은 횡단보도 파란 불이 켜지자마자 송이에게 달려왔다.

서준

 “진짜 아무 일도 없어?”

송이의 얼굴을 살피며 걱정스레 묻는 서준의 모습에 송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송이

 “그냥 좀 피곤한 거라니까~”

서준과 나란히 길을 걷던 송이는 집 근처에 보이는 포장마차를 보곤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그쪽으로 옮겼다.

송이

 “준아 우리 우동에 소주 딱 한 잔만 하고 가자.” 

*** 

수련

 “제영아 퇴근해?”

제영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팀장님.”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살갑게 구는 수련에게 제영은 꾸벅 인사를 하곤 차 키를 챙겼다.

수련

 “잠깐만 제영아!”

막 뒤돌아서 나가려는 제영의 옷깃을 수련이 붙잡았다.

제영

 “무슨 일이에요?”

수련

 “나 오늘 차를 안 가지고 왔는데…. 나 좀 태워다 주면 안 될까?”

제영

 “택시 잡아 드릴게요.”

수련

 “너무 하다…. 진짜…. 너랑 나랑 이 정도 사이밖에 안 돼?”

자신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수련의 모습에 결국 제영은 수련을 차에 태웠다.  

제영과 수련 사이엔 차가운 침묵만이 감돌았고, 침묵을 견디다 못한 수련이 먼저 손을 뻗어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DJ

 “자 마지막 곡으로 7899님이 신청해주신 곡,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my everything 들려드릴게요.”

수련

 “어? 이 노래 너가 옛날에 나한테 불러주던 그 노래다 맞지?”

익숙한 멜로디가 반가운 수련이 박수를 짝하고 치며 제영에게 물었지만, 제영은 아무 말 없이 운전에만 집중했다.

수련

 “…제영아.”

제영

 “집이 이 근처 맞으시죠 팀장님.”

수련

 “하제영.”

제영

 “이쯤에서 세워드릴게요.”

제영은 골목 어귀에 차를 세웠다.

제영

 “조심히 들어가세요.”

끝까지 수련을 쳐다보지 않은 채 말을 건네는 제영의 모습에 수련은 눈물이 터져버렸다.

수련

 “미안해.”

제영

 “내려요.”

수련

 “제영아….”

제영

 “이제 그만 해요 선배 우리 옛날에 끝났잖아.”

수련

 “그땐 내가….”

제영은 수련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영

 “이미 깨져버린 접시를 억지로 이어 붙여도 접시는 제 기능을 할 수 없어요. 보기 흉한 유리조각들일 뿐이지…. 그건 남녀 사이도 마찬가지예요.”

수련

 “…나는 아직 너 사랑해.”

수련의 고백에 제영은 차가운 눈빛으로 가만히 수련을 바라보았다.

라디오에서 흐르던 달콤한 음악이 끝나고 제영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영

 “…나는…이제 차수련을 사랑하지 않아요.”


내 경찰아저씬데요?25화 - 나 좀 잡아줘요.

송이

 “크으~”

무작정 포장마차에 자리를 잡고 앉아, 우동과 소주를 시킨 송이는 우동이 채 나오기도 전부터 잔을 비웠다.

서준

 “무슨 일인데 대체….”

송이

 “아무 일도 없어어~”

말로는 아무 일도 없다면서 잔을 비우는 속도는 점점 빨라져 가는 송이를 보다 못한 서준은 술잔을 빼앗아 버렸다.

서준

 “이제 그만 마셔.”

송이

 “아 줘~ 그냥 술이 고파서 그래~”

송이는 서준에게서 다시 술잔을 빼앗은 다음 술을 가득 채웠다.

서준

 “그 하제영 경위님 첫사랑이라도 나타났어?”

장난스럽게 던진 서준의 말에 술을 따르던 송이는 동작을 멈췄다.

서준

 “진…. 짜야?”

송이

 “…이모 여기 소주 한 병 더요~”

아무 말 없이 소주를 추가한 송이는 우동 국물을 안주 삼아 계속해서 술잔을 기울였다. 

*** 

제영은 상처받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수련을 뒤로하고 무작정 송이의 집 앞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제영은 송이의 번호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금방 달칵하고 전화 받는소리에 제영은 여보세요 하고 곧이어 송이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하지만 들려오는 목소리는 별로 반갑지 않은 사람의 목소리였다.

서준

 [저 윤서준인데요.]

제영

 “아 송이 씨랑 같이 있습니까?”

서준

 [네 송아가 좀 취해서.]

제영

 “술 먹였습니까?”

송이가 술에 취했다는 말에 제영의 목소리가 한 톤 높아졌다.

서준

 [제가 먹인 게 아니고 본인이 마신 겁니다.]

제영

 “옆에서 안 말리고 뭐 했습니까?”

서준

 [말린다고 안 마시는 애가 아니라서요.]

한 마디도 지지 않는 서준에 제영은 한숨을 푹 쉬고 위치를 물었다.

제영

 “그래서 거기 지금 어딥니까?”

서준

 [송이네 동네 포장마차요.]

제영

 “금방 가겠습니다.”

제영은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송이가 있다는 포장마차로 뛰기 시작했다. 

송이

 “아니이~그래서어 첫사랑이 뭐냐 고오~”

이미 한계치를 넘게 소주를 마신 송이는 서준을 붙잡아 두고 첫사랑이 뭐냐며 다그쳤다.

서준

 “송아 일단 물 좀 마시자.”

송이

 “아 이거 치워봐아~그러니까 너도 첫사랑이 막 지금도 보고 싶고 그래?”

서준은 송이의 입가에 물컵을 대줬지만, 송이는 고개를 돌렸다.

송이

 “아니 대체 첫사랑이 뭔데에….”

송이는 아까 낮에 자신이 제영의 첫사랑이라며 소곤대는 수련의 모습이 자꾸만 생각이 나서 울컥했다.

송이

 “첫사랑이 뭐어!! 지금 현재가 중요한 거 아니냐아?”

서준

 “하아….”

송이

 “다 필요 없으어!!”

소리를 버럭 지르며 소란을 피우는 송이의 모습에 주변 눈치를 보던 서준은 송이를 두 팔로 감싸 안았다.

서준

 “송아 조금만 조용히….”

송이

 “하제영 불러어! 내가 물어봐야 게써어!”

서준

 “금방 올 거야 그러니까 조용히 좀….”

제영

 “서준 씨.”

때맞춰 나타난 제영의 모습에 서준은 꾸벅 인사를 했다.

제영은 얼른 뛰어가 서준의 품에 안겨 있는 송이를 떼어내고 자신이 부축했다.

서준은 그런 제영의 태도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송이

 “어? 진짜 경위님이네.”

제영

 “술 많이 마셨어요?”

송이

 “많이 마셨어요 왜요!”

제영

 “서준 씨 송이 좀 제 등에 업혀 줄래요.”

서준

 “제가….”

제영

 “아니 제가 데려다줄게요. 차도 그쪽에 있고.”

제영의 말에 잠시 망설이던 서준은 송이를 부축해 제영의 등에 업혀 주었다.

제영

 “엇차…. 송이는 제가 데려다줄 테니까 걱정 말고 가요.”

서준은 제영에게 꾸벅 인사를 하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집 쪽으로 옮겼다.  

송이

 “나 내릴래요 내려줘요.”

제영

 “잘 걷지도 못하잖아. 그냥 가만히 있어요.”

송이

 “내려달라니까요!”

갑자기 버럭 하고 소리를 지르는 송이의 모습에 놀란 제영이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러자 송이가 제영의 등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송이

 “나 혼자 갈 수 있으니까아…. 저리 가요.”

제영에게서 가방을 휙 뺏어 들고는 비틀비틀 걸어가는 송이를 멍하니 바라보던 제영은 성큼성큼 걸어가 송이의 손목을 붙잡았다.

제영

 “같이 가요 위험해.”

송이

 “혼자 갈 수 있다니까요!”

송이는 고집스럽게 제영에게서 잡힌 손목을 비틀어 뺐다.

제영

 “송송이!”

송이

 “…왜 소리 질러요?”

제영

 “하아…송이 씨…. 왜 이래요 오늘.”

제영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송이

 “…. 갈래요.”

송이는 제영을 뒤로 하고 무작정 앞으로 걸었고, 제영도 그런 송이를 붙잡지 않았다. 

*** 

다음 날, 송이는 잔뜩 숙취에 찌든 얼굴로 겨우 일어나 카페에 출근했다.

점장

 “송이 씨 어제 무슨 일 있었어요?”

송이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물었다.

송이

 “네? 아 어제 라면을 먹고 자서…”

점장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송이

 “괜찮아요~ 저 들어가서 옷 갈아입고 나올게요.”

송이는 애써 웃으며 도망치듯, 탈의실로 들어왔다.

송이

 “아직도 술 냄새나나.”

아직도 몸에 술 냄새가 짙게 배어 있는 듯해 송이는 가방에서 탈취제를 꺼내 온몸에 뿌렸다. 

송이

 “어서 오세요 주문 도와 드리겠습니다.”

술 냄새가 풍기지 않게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입을 조그맣게 벌리며 주문을 받던 송이는 자신의 앞에 쓱 하고 놓인 숙취 음료에 고개를 들었다.

서준

 “해장도 못 했지.”

송이

 “어 준아…. 고마워 저쪽 가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음료 만들어다 줄게.”

서준

 “아냐, 나도 아르바이트 가봐야 해, 이거 주러 온 거야.”

송이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 서준이 준 숙취 해소 음료를 벌컥 들이켰다.

송이

 “크으…이제 좀 살겠다.”

부글거리던 속을 좀 달랜 송이는 한결 편한 얼굴로 커피를 만들 수 있었다.

딸랑/

송이

 “어서 오세….”

수련

 “안녕하세요 송이 씨.”

별로 달갑지 않은 수련의 등장에 송이는 진정된 속이 다시 부글거리는 거 같았다.

송이

 “주문하시겠어요.”

수련

 “아 제영이가 여기 오면 뭐 마셔요?”

송이

 “네?”

수련

 “아니 피곤해 보이길래 커피 한 잔 사다 주려고 나랑 사귈 땐 바닐라 라떼 좋아했는데 요새도 그거 먹나.”

겨우 진정시켜 놓은 속을 다시 벅벅 긁어 놓는 수련 덕에 송이는 입술을 꽉 깨물며 대답했다.

송이

 “…잘 모르겠는데요.”

수련

 “그래요? 그럼 아이스 바닐라 라떼로 줘요. 두 잔.”

송이

 “7,000원입니다.”

계산을 마치고 뒤돌아서서 음료를 만들던 송이는 ‘딸랑’하고 손님이 들어 오는 종소리에 다시 뒤돌아서서 포스기 앞에 섰다.

송이

 “주문….”

제영

 “송이 씨.”

송이

 “오셨어요.”

송이와 제영, 두 사람 사이엔 어색한 침묵만이 흘렀다.

수련

 “어머 제영아 너 커피 내가 사 가려고 기다리던 참인데.”

창가 자리에 앉아 음료를 기다리던 수련은 제영의 모습을 보자마자 쪼르르 달려와 제영의 옆에 섰다.

제영

 “송이 씨 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부탁해요.”

수련

 “아~취향이 바뀌었구나 옛날에 너 바닐라 라떼만 먹었잖아 달달한 거.”

자신의 옆에서 주절주절 옛날이야기를 해대는 수련을 아랑곳하지 않고 제영은 송이만 바라보았다.

송이

 “바닐라 라떼 두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나왔습니다.”

그런 제영의 시선에도 송이는 동요 없이 음료를 만들어 내왔다.

제영

 “퇴근하고 데리러 올게요.” 

청으로 가는 길 내내 수련은 제영의 옆에 딱 붙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수련

 “제영아 오늘 퇴근하고 나랑 저녁 먹자.”

제영

 “선약이 있어서요. 팀장님.”

수련

 “우리 예전에 자주 갔던 그 일식집 있잖아 거기 사장님이 왜 너랑 같이 안 오냐고…”

자꾸만 옛날 일을 들추는 수련에 제영은 발걸음을 딱 하고 멈춰 섰다.

제영

 “팀장님.”

수련

 “수련아 라고 해 봐.”

제영

 “선배 대체 왜 이래요.”

수련

 “나는 아직 너 사랑하니까.”

뻔뻔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자신을 아직 사랑한다며 당당하게 이야기를 하는 수련의 모습에 제영은 말문이 막혔다.

제영

 “…우린 끝났어요.”

수련

 “난 아직 안 끝났어.”

수련은 조심스럽게 제영의 손을 잡았다.

수련

 “우리 다시 시작해.”

제영은 주변을 휙휙 둘러 보고는 얼른 수련의 손을 뿌리쳤다.

제영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수련

 “너가 아무리 그래도 나는…너 아직 사랑해.” 

*** 

점장

 “송이 씨, 좀 앉아서 쉬어요.”

송이

 “아, 저 이것만 마저 정리하구요.”

하루 종일 안색이 좋지 않은 송이가 걱정된 지웅은 송이에게서 대걸레를 빼앗아 들고는 의자에 앉혔다.

점장

 “나머지는 내가 정리할 테니까 송이 씨 먼저 퇴근해요.”

송이

 “네? 아니에요 이거마저 하고….”

점장

 “나 그렇게 악덕 사장 아니에요. 얼른 먼저 들어가요.”

송이

 “…감사합니다 사장님.”

겨우 아르바이트를 끝마친 송이는 아까 낮에 데리러 오겠다는 제영의 말을 기억하고는 카페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제영을 기다렸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발장난을 하던 송이는 휴대폰을 꺼내 제영에게 문자를 했다.

송이

 -카페 근처 공원에서 기다릴게요. 

*** 

수련

 “자 광수대 광역 1팀 오늘 회식 한 번 할까요?”

수련의 말에 주변 형사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박형사

 “오늘 차 팀장님 환영식 겸 회식으로 하죠!”

수련

 “좋습니다! 제가 이 주변 한우 집으로 예약해놓을게요 끝나고 다 그쪽으로 모이세요. 단, 한 분도 빠지시면 안 됩니다.”

수련은 굳이 제영 쪽을 바라보며 강조했다.

제영은 수련이 쳐 놓은 덫인 걸 알면서도 직장상사라는 이유로 피하지 못했다.

결국, 박 형사의 손에 이끌려 회식장소에 도착한 제영은 계속해서 휴대폰을 확인했다.

지잉/

짧게 울린 진동에 주변 눈치를 살피던 제영은 서둘러 송이에게 답장을 했다.

제영

 -나 금방 갈게요 조금만 기다려요.

어느 정도 분위기만 맞춰주다 중간에 빠지기 위해 눈치만 보는 제영을 수련이 발견하곤 술잔을 들고 옆에 바짝 다가와 앉았다.

수련

 “하 경위 한 잔 받아요.”

제영

 “아 저는 괜찮습니다.”

수련

 “어머 나 서운 할라 그래 내가 주는 술이 그렇게 싫어요?”

두 눈을 내리깔고 상처받은 얼굴을 하는 수련을 보고 옆에 있던 박 형사가 제영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박형사

 “팀장님이 주시는 건데 얼른 한 잔 받아요.”

주변의 눈치를 보던 제영은 결국 술 한 잔을 받아 들었다. 

*** 

송이

 “….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제영의 문자를 확인하고 난 후에도 한참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 제영의 번호를 보고 잠시 망설이던 송이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짧게 신호음이 가고, 들린 목소리는 제영이 아니라 수련의 것이었다.

수련

 [네 하제영 휴대폰입니다.]

수련의 목소리에 놀란 송이는 아무 대답 없이 숨만 쌕쌕 내쉬었다.

수련

 [여보세요?]

송이

 “아 잘못 걸었습니다.”

송이는 후다닥 전화를 끊어버렸다.

전화를 끊고 잠시 벤치에 앉아 생각하던 송이는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왜 전화를 끊었지? 첫사랑은 첫사랑이고 지금 경위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난데….’

혼자 멍하니 앉아 생각에 잠겼던 송이는 잠깐 스치는 찬 바람에 정신을 차리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 

제영

 “박 형사님 저는 먼저 가볼게요.”

옆에 앉았던 수련이 잠시 화장실에 갔을 때, 주변 눈치를 보던 제영은 옆에 앉은 박 형사에게 슬쩍 귓속말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련

 “제영아!”

뒤따라 들리는 수련의 목소리에 제영은 한숨을 푹 쉬고 뒤돌아섰다.

제영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팀장님.”

제영이 꾸벅 인사를 하고 성큼 앞서나가자, 수련이 제영의 손을 급하게 잡아 세웠다.

수련

 “너 그 여자 만나러 가는 거잖아…. 가지마.”

제영

 “…선배.”

제영은 수련에게 잡힌 손을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수련과 눈을 맞췄다.

제영

 “이제 그만 나 놓아줘요.”

수련

 “내가 더 잘할게…. 내가 더 사랑할게…. 그러니까 너는 그냥 내 옆에만 있어 줘.”

제영

 “사랑은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선배 더 좋은 사람 만나요. 이제.” 

제영은 미련 없이 뒤돌아서, 한 걸음 한 걸음 수련에게서 멀어졌다.

수련

 “제영아!”

수련은 제영을 따라 뛰어가 제영의 등을 끌어안았다.

수련

 “어쩔 수가 없었어…제영이 네가 싫어서 떠난 게 아니야….”

제영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수련

 “나 10년 전에 핀란드로 떠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네 생각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적 없었어….”

수련의 진심 어린 목소리에 제영의 마음이 순간 흔들렸다.

수련

 “네가 날 정말 잊었다면…내 전 휴대폰 번호 왜 안 지운 건데…?”

제영

 “……”

수련

 “좀 아까 너 화장실 갔을 때, 전화가 와서 우연히 너 휴대폰 봤어…. 너랑 맞춘 번호…. 아직 안 지웠잖아….”

수련의 말에 제영은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수련의 말이 다 사실이었기에….

수련에 대한 다른 흔적은 지워도 그 번호만큼은 지울 수가 없었던 제영이었다.

서로의 생일로 맞춘 번호, 그렇기에 매년 수련의 생일을 잊을 수가 없었다.

수련

 “우리 다시 시작하자.”

‘사랑해요. 경위님.’

멍하니 서 있던 제영은 귓가에 울리는 송이의 목소리에 애써 뒤돌아서서 수련과 마주 섰다.

제영

 “…미안해요. 선배.”

잔뜩 헝클어진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수련을 뒤로하고 제영은 송이의 집으로 달려갔다.

‘미안해요 송이 씨….’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 송이는 따뜻한 물에 입욕제를 풀고 몸을 담갔다.

나른하게 풀리는 몸에 아무 생각 없이 잠시 눈을 꼭 감았다.

귓가에 왕왕 울리는 수련의 목소리에 송이는 물속으로 얼굴을 폭 파묻었다.

딩동//

한참을 욕조에 앉아 목욕을 즐기던 송이는 한밤중에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흠칫 놀라 그 자리에 굳었다.

쾅쾅/

제영

 “송이 씨 나예요!”

문밖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마음이 놓인 송이는 천천히 욕조에서 일어나 커다란 수건으로 몸을 둘둘 말았다.

제영

 “송이 씨!”

그새를 못 참고 자신의 이름을 불러 대는 제영에 혹시나 주민들이 피해를 볼까 싶어 송이는 서둘러 티셔츠와 반바지를 꿰어 입고 문을 열었다.

제영

 “송이 씨.”

송이

 “무슨 일이에요.”

송이가 뭐라 입도 열기 전에 제영이 무너져 내리듯 송이의 품에 안겼다.

제영

 “…나 좀 꽉 잡아줘요.”


내 경찰아저씬데요?26화 - 과거 지우기.

제영

 “나…. 좀 흔들리지 않게 꽉 잡아줘….”

처음 보는 제영의 흐트러진 모습에 송이의 마음이 뻐근해졌다.

제영

 “미안해…. 송이야….”

자신을 품에 안아버리는 제영을 송이는 밀어냈다.

송이

 “이거 놔요….”

제영은 자신을 자꾸 밀어내는 송이를 더 꼭 품에 안았다.

*

송이

 “이것 좀 마셔요.”

송이는 차가운 꿀물이 든 컵을 제영의 손에 쥐여주었다.

제영

 “고마워요.”

제영은 송이의 눈치를 슬쩍 보고는 꿀물을 벌컥 들이켰다.

송이

 “…술 많이 마셨어요?”

제영

 “조금…”

제영은 아무 말 없이 컵 끄트머리만 만지작거렸다.

송이

 “할 말 있어서 온 거 아니에요?”

제영

 “다…. 알고 있다면서요.”

조심스럽게 입을 연 제영을 보며 송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송이

 “네…”

제영

 “근데 왜 나한테 말 안 했어요.”

송이

 “그럼 경위님은 왜 말 안 했어요? 차수련 씨가 첫사랑이라고.”

송이의 물음에 제영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송이

 “나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나는 정말 차수련 씨가 경위님 선밴 줄만 알았어…. 그냥…. 좀 후배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그런 선배…인 줄만 알았어요…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건가…. 근데…그 사람이 나한테 와서 자기가 경위님 첫사랑이래…. 다시 시작하고 싶데…. 그럼 난 뭐라고 해야 해요?”

눈물을 글썽이며 다다다 자신을 쏘아붙이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마음이 쓰렸다.

송이

 “그래서 혼자 믿었어요…. 아니 믿으려고 엄청 노력했어요…첫사랑은 첫사랑일 뿐이니까…. 근데…. 자꾸 와서 경위님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그래도 경위님 상산데…내가 잘못 행동하면 경위님한테 피해갈까 봐…그래서 아무 말도….”

송이의 눈에 말갛게 고인 눈물이 결국 툭 하고 떨어졌다.

송이

 “근데 결국은 흔들린 거네요…. 경위님도…”

제영

 “송이 씨…. 그게….”

송이

 “결혼까지 약속했었다면서요….”

제영

 “……”

송이

 “흔들리잖아요. 경위님 지금.”

송이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제영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송이

 “봐…. 대답 못 하잖아.”

제영

 “…송이 씨가 나 붙잡아주면 안 돼요…?”

송이

 “경위님 엄청 이기적이네요. 그럼 나는요?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여자한테 흔들리는 거 두 눈으로 똑바로 보고 있으라구요? 경위님의 이기심 때문에 나는 상처 받아도 괜찮아요?”

제영

 “송이 씨….”

송이

 “…흔들리면 가세요 차수련 씨한테.”

결국, 제영에게 모진 말을 쏟아 내고는 뒤돌아서는 송이다.

제영

 “진심이에요?”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 오는 제영에 송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제영은 성큼 송이의 뒤로 다가가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자신 쪽으로 송이를 돌려세웠다.

제영

 “나 정말…. 그 사람한테 가요?”

애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제영을 보며 송이는 잡힌 손을 빼냈다.

송이

 “경위님 마음대로 하세요.”

송이의 한 마디에 제영은 맥이 탁하고 풀린 듯, 멍하니 서 있었다.

***

박형사

 “하 경위님? 경위님!”

제영

 “아…. 네? 네 박 형사님.”

박형사

 “무슨 일 있어요? 안색이 안 좋아….”

제영

 “아…. 아뇨 없습니다.”

박형사

 “여기 부탁하신 자료.”

제영

 “아 감사합니다.”

평소와 달리 하루 종일 멍한 상태의 제영의 모습에 박 형사는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았다.

박 형사가 준 자료도 보는 둥 마는 둥 하던 제영은 책상 위에서 울리는 진동소리에 송이 인가 싶어 서둘러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제영

 “네 여보세요.”

간호사1

 [하서영 씨 보호자 분 되시죠?]

제영

 “네? 네! 제가 서영이 보호잔데 무슨 일이시죠…?”

간호사의 입에서 나온 서영의 이름에 제영은 잔뜩 긴장했다.

간호사1

 [아 서영 씨가 자꾸 오빠를 찾아서….]

제영

 “서영이가요?”

서영이라는 이름이 들리는 순간, 건너편에 앉아 있던 수련이 고개를 들었다.

간호사1

 [네…. 잠깐 좀 와보시는 게….]

제영

 “금방 가겠습니다.” 

제영은 통화를 마치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제영

 “저 잠시 어디 좀 다녀올게요.”

급하게 나가는 제영을 보며 수련도 뒤따라 나섰다.

***

서준

 “송아야?”

송이

 “어? 준아.”

그냥 멍하니 동네 벤치에 앉아 발장난을 하던 송이는 서준이 오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서준

 “여기서 뭐 해?”

송이

 “어 그냥 오늘 공강인데 집에만 있기 답답해서.”

서준

 “…. 너 울었어?”

송이

 “어? 아니~어제 라면 먹고 잤어.”

퉁퉁 부어 버린 눈을 행여나 들킬까 서준의 시선을 피한 송이지만 눈치 빠른 서준은 송이가 운 걸 금세 눈치채버렸다.

서준

 “송송이 거짓말하면 다 티 나는 거 아직도 몰라?”

송이

 “응? 아 어제 영화를 봤는데….”

서준

 “너 자꾸 거짓말할래?”

순식간에 차가워진 서준의 목소리에 흠칫 놀란 송이는 그만 입을 꾹 다물었다.

서준

 “무슨 일인지 말 안 해줄 거야?”

송이

 “헤어졌어.”

서준

 “어…?”

송이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말에 서준도 당황스러운 듯 송이를 쳐다보았다.

송이

 “나 울면 너 또 화낼 거지….”

서준의 눈치를 보며 입술을 꽉 말아 무는 송이를 보며 서준은 손가락으로 송이의 입술을 쓰다듬었다.

서준

 “오늘만 봐줄게.”

다정한 서준의 태도에 결국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버린 송이다.

어깨까지 들썩이며 서럽게 눈물을 흘리는 송이를 서준은 조심스럽게 품에 안아 등을 토닥여주었다.

***

제영

 “서영아!”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온 제영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서영이가 있는 병실의 문을 벌컥 열었다.

서영

 “오빠….”

제영

 “무슨 일이야.”

서영

 “…남자….”

제영

 “어?”

서영이 조심스럽게 가리킨 곳을 보니 의사로 보이는 남자가 제영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서영

 “의사 선생님…. 남자….”

제영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남자의사

 “서…. 서영 씨를 담당하시던 한혜수 교수님이 다..다른 곳으로 가셔서…제가….”

차가운 표정의 제영을 보고 당황한 듯한 의사가 말을 더듬었다.

 

제영

 “하아…. 나가서 이야기하죠.”

제영은 무릎을 가득 끌어안고 앉아 있는 서영을 보곤 의사에게 눈짓했다.

제영

 “서영이에 대한 차트는 읽어 보신 겁니까?”

남자의사

 이…. 읽어 봤는데…지금 저희 과에 지금 당장 여자 의사가…. 없어서….”

제영

 “그럼 저를 먼저 부르셨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환자가 어떤 상탠지 아시면서.”

구구절절 맞는 말만 해대는 제영의 앞에 의사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제영

 “새로운 교수님은 언제 오십니까?”

남자의사

 “내일모레쯤이면 오…. 오실 거 같습니다.”

제영

 “그럼 내일 회진 하시기 전에 저한테 꼭 전화 주십시오.”

남자의사

 “네 죄송합니다.”

의사는 제영에게 꾸벅 인사를 하곤 종종걸음으로 다른 병실로 향했다.

***

서준

 “다 울었어?”

서준의 품에 안겨 눈물을 쏟아 낸 송이는 아직도 남은 울음 끝에 어깨를 들썩였다.

송이

 “고마워….”

송이는 뒤늦게 몰려온 창피함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서준의 품에서 떨어졌다.

서준

 “내가 가서 그 경위님 혼내 줄까?”

장난스럽게 웃으며 자신의 기분을 풀어주려 노력하는 서준의 모습에 송이는 푸스스하고 웃어버렸다.

서준

 “에이! 뭐 남자가 그 사람밖에 없어? 뭐 정 없으면 내가 너 데리고 살게.”

송이

 “…. 싫은데?”

서준

 “너무 단호하다. 나 상처받았어.”

송이

 “이제 가야겠다.”

송이는 자신이 서준을 너무 오래 붙잡아 둔 거 같아, 바지를 털고 일어섰다.

서준

 “집에 가게?”

송이

 “응 이제 들어가야지.”

서준

 “가자 데려다줄게.”

송이

 “날도 환한데 뭘.”

서준

 “그냥 좀 더 위로해주고 싶어서.”

***

병실 안으로 들어온 제영은 금세 곤히 잠든 서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제영

 “미안해 서영아….”

무서운 꿈을 꾸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고통스러워 하는 서영의 손을 제영이 꽉 잡아 주었다.

똑똑/

제영

 “네.”

제영은 간호사인가 싶어 서영이 맞고 있는 링거를 확인했다.

제영

 “아직 한참 남았는데.”

수련

 “제영아.”

뒤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제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영

 “팀장님이 여기 왜….”

수련

 “…서영이….”

제영

 “이리 나와요.”

제영은 서영에게 다가서려는 수련의 손목을 잡아채 병실 밖으로 나왔다.

수련

 “아! 제영아!”

제영

 “여길 왜 와요.”

수련

 “내가 못 올 곳이라도 온 거야?”

제영

 “가요.”

수련

 “제영아.”

제영

 “가요 얼른.”

수련

 “서영이 깨기 전에 얼굴이라도 보고 갈게.”

제영에게 잡힌 손을 뿌리치고 병실 안으로 들어서려는 수련을 제영이 다시 한 번 막아섰다.

제영

 “돌아가요. 제발.”

수련

 “제영아…”

제영

 “그냥 잊어버리고 살아요. 선배.”

턱밑까지 차오른 울분에 제영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제영

 “이제 그냥 깨끗하게 다 잊어요!! 제발!”

수련

 “하제영!”

제영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니까! 그냥…. 그냥 모르는 척 살아요….”

제영은 두 눈 가득 차오르는 눈물이 흐르기 전에 옷 소매로 거칠게 닦아냈다.

수련

 “내 잘못도 있는 거잖아…. 근데 어떻게 잊고 살아….”

제영

 “이제 그만 놔요…. 나도 서영이도….”

수련은 어깨까지 들썩이며 눈물을 흘리는 제영을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수련

 “어떻게 그래…내가….”

제영

 “…사고였어요….”

수련

 “…내가 그때…. 너 부르지 않았으면….”

제영

 “…흐흑….”

수련

”미안해….”

수련은 그저 제영의 등을 계속 토닥여 주는 것밖에 해줄 수가 없었다.

***

송이

 “나 들어갈게. 너도 얼른 가~ 아르바이트 가야 한다며.”

서준

 “그래 너 들어가는 거 보고…”

송이

 “얼른 가~나 진짜 들어간다~”

서준

 “응 밥 잘 챙겨 먹고.”

송이는 서준에게 손을 한번 흔들어 보이곤 집 안으로 들어왔다.

집 안에 흐르는 적막감에 마음이 더 쓰려 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든 송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집 안 청소를 시작했다.

송이

 “흐어 먼지 봐.”

침대 안쪽부터 서랍장 뒤쪽까지 평소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곳 구석구석 일을 찾아서 청소를 시작한 송이는 땀까지 뻘뻘 흘리며 청소에 집중했다.

*

송이

 “아 개운하다.”

실컷 땀을 흘리고 샤워를 한 송이는 소파에 기대어 앉아 맥주 한 캔을 땄다.

송이는 딱/하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따진 맥주를 벌컥 들이켰다.

송이

 “크으~”

벌써부터 노곤 노곤해진 송이는 두 눈을 슬며시 감았다.

적막이 싫어 틀어 놓은 TV에선 헤어진 연인들에 대한 애절한 드라마 배경음악이 적막을 채웠다.

-사랑하니까…정말 많이 사랑하니까…제일 먼저 효진씨 생각이 났어요…그래서 달려왔어요. 나 좀 붙잡아 달라고….-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의 대사에 송이는 감고 있던 두 눈을 번쩍 떴다.

애절해 보이는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의 손을 꼭 붙잡고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제영의 모습과 겹쳐져 보여 송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 꽉 붙잡아줘요…다시는 흔들리지 않게…-

남자 주인공의 말에 여자 주인공은 애달픈 키스로 대답했다.

송이는 자꾸만 뿌얘지는 시야에 손으로 벅벅 눈물을 닦아내고는 TV를 꺼버렸다.

송이

 “…보고 싶다….”

자꾸만 떠오르는 제영과 수련의 다정한 모습에 송이는 두 눈을 꽉 감아버렸다.

송이

 “…. 행복해요. 경위님?”

제영에겐 닿지 않을 송이의 질문이 공허한 거실에 조그맣게 울려 퍼졌다.


내 경찰아저씬데요?27화 - 과거, 현재…. 그리고….

한참을 병실 밖에서 소리 없이 눈물을 쏟은 제영과 수련은 서영의 병실에 들어와 그저 자는 서영이의 모습만 가만히 바라보았다.

수련

 “많이 컸다. 서영이…”

제영

 “……”

서영

 “오빠아….”

제영

 “어어 서영아 오빠 여기 있어.”

자신을 찾는 듯 잠결에 손을 뻗는 서영의 손을 제영은 꽉 잡아 쥐었다.

서영

 “의사 선생님 갔어?”

제영

 “어 갔어 내일모레면 다른 선생님 오실 거야.”

불안한 듯 병실 안을 둘러 보던 서영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수련과 눈이 마주치곤 흠칫 몸을 떨었다.

서영

 “누…. 구야?”

서영의 물음에 잠시 망설이던 제영은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제영

 “오빠랑 같이 일하는 선배님이야.”

서영

 “아…. 안녕하세요.”

잔뜩 경계 어린 눈빛으로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서영에게 수련은 최대한 예쁜 미소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수련

 “안녕 서영아 오빠 말대로 되게 예쁘다 서영이.”

제영

 “아 선배 이제 가보셔야 하잖아요.”

애써 눈물을 참아 내는 수련의 모습에 제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련

 “어…? 어…. 서영아 안녕 몸조리 잘하고 다..음에 또 보자.”

서영

 “안녕히 가세요.”

제영

 “오빠 이제 들어가 봐야 하는데…. 서영이 혼자 있을 수 있지?”

서영

 “응…. 매일 혼자 있었는데 뭐….”

제영

 “내일 아침 일찍 올게.”

수련은 또다시 눈물이 터지기 전에 서둘러 제영과 병실 밖으로 나왔다.

제영

 “차 가지고 왔죠?”

수련

 “아니…. 급해서 택시 타고 왔어….”

제영

 “…타세요. 데려다줄게.”

수련

 “아냐…. 그냥 택시 타고 갈게.”

제영

 “타요.”

제영의 말에 수련은 조용히 차에 올라탔다.

무거운 적막이 흐르는 차 안에서 먼저 입을 뗀 건 제영이었다.

제영

 “이제 찾아오지 말아요.”

수련

 “가끔…. 서영이 얼굴 보러 오면 안 돼…?”

제영

 “…이제 그만 아파해도 돼요. 선배.”

빨간 불에 차를 세운 제영은 곧은 시선으로 수련을 바라보았다.

제영

 “선배 잘못이 아니라 내 잘못이에요.”

수련

 “…….”

제영

 “한동안은 서영이 보러 병원 못 왔어요…. 미안해서…도저히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서…그러다 자고 있을 때 잠깐씩 얼굴 보고 가고…. 그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건…하루라도 빨리 내 손으로 밤손님 그 새X 잡는 거예요.”

수련

 “…. 많이 힘들었겠다. 우리 제영이..”

수련은 제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손을 뻗었지만, 제영이 그 손을 잡아 내렸다.

제영

 “선배가 나한테 이러는 거…. 사랑 아니야…. 죄책감으로 인한 감정이지….”

수련

 “아니야…. 나 아직 너….”

제영

 “그만…이제 나 그만 잊어버리고 더 좋은 사람 만나요. 누나 상처 다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

뒤에서 울리는 클랙슨 소리에 제영은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

송이

 “나 먼저 가볼게.”

은애

 “너 무슨 일 있지.”

잔뜩 그늘진 얼굴로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향하는 송이의 손목을 은애가 잡아챘다.

송이

 “아니 아무 일도 없어.”

은애

 “아무 일도 없긴 경위님이랑 또 뭔 일 있구나?”

결국, 은애의 손에 이끌려 자신이 일하는 카페에 은애와 마주 앉은 송이다.

점장

 “어 송이 씨 왔어요?”

송이

 “네 사장님 오늘은 많이 안 바쁘네요.”

점장

 “송이 씨 때문에 바쁜 거라니까~”

짓궂게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을 건네는 지웅을 향해 송이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어주었다.

점장

 “내가 음료 만들어다 줄게요. 뭐 마실래요?”

송이

 “저는 그냥 아메리카노요.”

은애

 “아…. 저도 아메리카노….”

점장

 “더 맛있는 거 먹지…. 음…. 알았어요. 내가 아메리카노 최고로 맛있게 뽑아다 줄게요.”

송이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사장님.”

지웅이 커피를 만들기 위해 자리를 비우고, 은애는 본격적으로 의자를 당겨 앉았다.

은애

 “무슨 일인데….”

송이

 “나…헤어졌어.”

은애

 “뭐어?!”

송이의 말에 소리를 빽 지른 은애는 얼른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조용히 속삭였다.

은애

 “왜…. 왜 헤어졌는데?”

송이

 “…그냥….”

은애

 “그냥이라니 무슨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송이

 “…. 그게….”

점장

 “커피 나왔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던 송이는 지웅의 등장에 다시 입을 닫았다.

송이

 “감사합니다. 사장님.”

점장

 “그럼 이야기 나눠요~”

지웅은 눈치껏 자리를 피해 주었고, 송이는 커피 한 모금 들이키고 다시 입을 열었다.

송이

 “…첫사랑이 나타났어.”

은애

 “뭐?”

송이

 “경위님이 일하는 팀의 팀장으로 들어왔대…”

은애

 “그래서?”

송이

 “오랫동안 사랑한 사이였고…결혼까지 약속했던 깊은 사이였나 봐.”

은애

 “그런데.”

송이는 잠시 숨을 돌리며, 커피를 벌컥 들이켰다. 그리곤 다시 입을 뗐다.

송이

 “…. 흔들리는 거 같아서…. 경위님이.”

은애

 “그래서 놓아줬어? 멋있게?”

송이

 “응….”

은애

 “참 잘했네! 송송이.”

송이

 “어?”

은애

 “잘했다고 멍청한 짓.”

은애는 앞에 놓인 커피를 숨도 쉬지 않게 벌컥벌컥 들이켰다.

은애

 “크으….”

송이

 “……”

은애

 “경위님이 먼저 놓아달라고 하디?”

송이

 “아니…. 잡아달라고….”

은애

 “근데 너는 놓아준 거고?”

송이

 “응….”

은애

 “너 경위님 이제 사랑하지 않아?”

단도직입적인 은애의 물음에 송이는 잠시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은애

 “정말 경위님이 그 첫사랑이랑 잘 되도 너 괜찮아?”

다시 한 번 묻는 은애의 질문에 잠시 망설이던 송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송이

 “…아니.”

은애

 “근데 왜 경위님 손 놨어.”

송이

 “…흔들린다니까…내가 다시 붙잡을 자신이 없어서….”

고개를 푹 숙이며 또다시 눈물을 글썽이는 송이의 모습에 은애는 마음이 아팠다.

은애

 “송송이 나 봐봐.”

은애의 말에 송이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대충 쓸어내리고 은애를 바라보았다.

은애

 “경위님이 지금 사랑하는 사람은 너잖아 이 맹추야.”

송이

 “…그치만.”

은애

 “그러고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직접 경위님한테 가서 물어봐.”

송이

 “……”

은애

 “사랑도 혼자 할 수 없듯이 이별도 너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은애의 말에 송이는 모두 맞는 말이기에 반박할 수도 없었다.

상대방에게 제대로 이야기도 들어보지 않고 혼자 상상하고 혼자 정리하고, 나 혼자 결정해버리고….

경위님 입장에선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송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송이

 “나…. 다녀올게.”

***

그렇게 침묵 속에서 청 앞에 도착한 제영과 수련은 나란히 차에서 내렸다.

수련은 제영의 팔을 붙잡고 물었다.

수련

 “…그 여자 많이 사랑해?”

제영

 “네…. 한 때 선배를 사랑했던 것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사랑해요.”

제영의 뼈있는 말에 수련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수련

 “하제영 너 은근히 독하다.”

제영

 “이래야 선배도 나한테 정이 떨어질 테니까….”

수련

 “송송이 씨…좋은 여자 같더라.”

제영

 “내가 눈이 조금 높아요.”

제영의 장난에 그제야 수련도 마음 놓고 웃을 수 있었다.

제영

 “들어가요.”

수련과 나란히 청 안으로 들어서려던 제영은 문득 스치듯 본 익숙한 인영에 발걸음을 멈췄다.

제영

 “송이 씨?”

제영이 자신을 알아보는 듯하자 송이는 후다닥 뛰어가 버렸다.

제영

 “송이 씨!!”

제영은 수련을 먼저 들여보내고 송이를 뒤쫓아 뛰었다.

제영

 “송이 씨!!! 잠깐만요!”

은애의 말에 무작정 청으로 달려간 송이는 다정한 두 사람의 모습에 몸이 굳었다.

제영 몰래 뒤돌아서 도망가려던 송이는 결국 제영에게 딱 들키고 말았다.

이러다 잡힐 거 같았던 송이는 눈에 보이는 골목 안으로 쑥 들어가 커다란 휴지통 뒤에 몸을 숨겼다.

제발, 그냥 지나가라…. 제발 그냥 가줘요….

송이는 휴지통 뒤에 숨어서 제영이 그냥 지나치기만을 바랐다.

잠시 후, 골목 안쪽으로 들어오는 제영의 발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제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영

 “송이 씨 여기 있어요? 여기 있죠?”

제영

 “찾지 않을게요. 그냥 거기서 내 말만 들어줘요.”

제영은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어갔다.

제영

 “차 선배한테 잠깐 흔들렸던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그건 선배를 아직 좋아해서가 아니라 과거에 대한 미련이었어요. 채 정리되지 않은 감정에 대한 미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고 딱 그 정도. 미리 말 못한 건 미안해요….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과거였어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기도 했고…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은 10년 전에 정리해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영의 시선은 송이가 숨어 있는 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제영

 “…나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차 선배를 만났고, 몇 개월 있다가 사귀게 되었어요…서로 많이 사랑했어요…. 정말 대학 졸업하면 결혼을 약속할 만큼…. 그런데….”

과거 이야기를 하며, 괴로운 듯 미간을 찌푸리는 제영의 모습에 송이의 미간도 같이 찌푸려졌다.

제영

 “내가 서영이를 다치게 했어요…내가…전화 와서 데리러 와달라고 했을 때…. 그때 갔으면 우리 서영이 내가 지킬 수 있었는데…밤손님 새끼 잡을 수 있었는데…. 내가 그때 차 선배 집에…인사를 갔어요…내가 못 지켰어요…. 우리 서영이를….”

제영은 울지 않기 위해 주먹을 꽉 쥐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송이

 “……”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송이도 무릎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쏟았다. 두 남녀는 각자의 공간에서 한 남자는 눈물을 삼키고, 한 여자는 눈물을 쏟았다.

겨우 감정을 추스른 제영은 조심스럽게 송이가 숨어 있는 곳으로 다가가 송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제영

 “…. 손잡아요.”

자신에게 내민 제영의 손을 가만히 바라보던 송이는 제영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영은 송이의 손을 꼭 잡고 송이와 마주 섰다. 그리고 서로 눈을 맞췄다.

제영

 “정말 미안해요. 마음 아프게 해서.”

송이

 “…미안해요…. 마음대로 손 놔버려서….”

송이의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을 손으로 닦아준 제영은 그대로 송이를 품에 꽉 안았다.

굳이 집까지 데려다준다는 제영의 고집에 송이는 제영과 나란히 집까지 걸었다.

제영

 “…. 며칠 사이에 왜 이렇게 핼쑥해졌어요.”

핏기없는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는 제영의 다정한 눈빛에 송이는 또다시 울컥할 뻔한 걸 겨우 눌러 삼켰다.

송이

 “경위님 얼굴도…. 만만치 않은데요.”

송이의 말에 제영은 푸스스 힘 빠진 웃음을 지었다.

제영

 “밥 꼭 챙겨 먹어요.”

송이

 “경위님도…. 잘 챙겨 먹어요….”

그 말을 끝으로 둘은 한동안 아무 대화 없이 나란히 걸었다.

송이

 “다 왔다…. 나 들어가 볼게요.”

제영

 “전화…. 할게요.”

제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하고 뒤돌아서 계단을 오르려던 송이는 멈칫하고 다시 제영 쪽으로 뛰어와 제영의 앞에 섰다.

송이

 “…. 나 서영 씨한테 인사시켜 줘요.”

송이의 말에 놀란 제영이 아무 말 없이 송이를 바라만 보았다.

송이

 “…. 싫어요?”

다시 한 번 묻는 송이의 목소리에 정신이 든 제영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제영

 “아뇨! 가요 같이 서영이한테.”

내 경찰아저씬데요?28화 - 늘 지금처럼.

은애

 “기말고사…시험 따위 없어졌으면….”

은애는 중얼거리며 책상에 얼굴을 파묻어 버렸다.

송이

 “하아….”

지잉/

쌓인 책을 보며 한숨을 쉬던 송이는 짧게 울리는 진동에 휴대폰을 확인했다.

제영

 -오늘도 늦게까지 공부해요?

요 며칠째 송이의 얼굴을 보지 못한 제영이 매일 보내는 문자 내용이다.

제영의 문자를 확인한 송이는 전원 버튼을 꾹 눌러 휴대폰을 껐다.

사실 그 날 이후, 송이는 일부러 잠시 제영을 피했었다.

다시 제영의 얼굴을 마주 보고 사랑을 이야기할 자신이 없었기에, 시험을 핑계 대고 제영과의 만남을 미뤄왔다.

매일 오는 제영의 문자에 그저 그런 대답으로 일관하는 송이였다.

형광펜으로 줄까지 쳐 가며 시험공부를 하던 송이는 뻐근해져 오는 두 눈가를 손가락으로 꾹 누르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송이

 “은애야 나 10분만 눈 좀 붙일게.”

은애

 “그래 10분 있다가 깨워줄게.”

어느덧 11시를 향하고 있는 시곗바늘에 송이는 옆에 앉은 은애에게 깨워주길 부탁하고는 잠시 눈을 붙였다. 

은애

 “쏭! 일어나봐.”

송이

 “어? 어…. 어….”

잠시 후, 자신을 깨우는 은애의 손길에 부스스하게 눈을 뜬 송이는 앞에 있는 사람을 보고 화들짝 놀라 입을 막았다.

송이

 “어…겨…. 경위님?”

자신의 앞에 앉아 손을 흔들고 있는 사람이 정말 제영이 맞는지, 송이는 계속해서 눈을 비비고 확인했다.

제영

 “나 맞아요~”

송이

 “경위님이 왜 여기 있어요?”

제영

 “보고 싶어서 같이 공부하려고 왔어요.”

송이

 “네?”

제영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커다란 가방 안에서 두꺼운 책들을 잔뜩 꺼내 책상에 올려놓았다.

제영

 “나도 공부할 거니까 방해하지 마요.”

정말 진지한 표정으로 책에 집중하는 제영을 보며 송이도 서둘러 집중했다.

툭/

정신없이 시험공부에 집중하던 송이는 눈앞에 떨어진 종이비행기에 고개를 들어 제영을 쳐다보았다.

제영은 송이를 보며,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송이는 조심스럽게 종이비행기를 펼쳐 보았다.

-많이 보고 싶었어요.-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눌러 쓴 제영의 글씨에 송이는 얼어 있던 마음이 조금은 풀린 거 같았다.

조금은 풀린 송이의 표정에 제영은 또다시 한 자 한 자 글씨를 눌러 써서는 쪽지 모양으로 곱게 적어 송이에게 건넸다.

-미안하단 말 그만할래요, 어제보다 오늘, 오늘 보다 내일 더 많이 사랑할게요.-

화려한 단어로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마음을 담백하게 고백한 제영의 쪽지에 송이의 마음이 조금씩 다시 녹아내렸다.

한참을 책에 고개를 파묻고 공부를 하던 송이는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고개를 들었다.

송이

 “벌써 두시네….”

어느덧, 새벽 2시를 향해 가고 있는 시곗바늘을 보던 송이는 문득 자신의 앞에 앉아 졸고 있는 제영을 쳐다보았다.

송이

 “경위님?”

많이 피곤했는지 자신이 부르는 소리에도 꾸벅꾸벅 조는 제영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송이는 조심스럽게 제영의 옆으로 다가가 자신의 다리를 덮고 있던 담요를 덮어주었다.

송이

 “…피곤하면서…. 왜 왔어요….”

자신이 옆에 다가온 것도 모른 채 깊게 잠이 든 제영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송이

 “살은 또 왜 이렇게 많이 빠졌고….”

며칠 사이 푸석해진 제영의 얼굴을 살짝 쓰다듬는 송이다.

깊게 잠든 듯한 제영의 모습에 송이는 턱을 괴고 앉아 조심스럽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송이

 “나…. 경위님 싫어져서 연락 피한 거 아니에요…. 그거 알죠? 그냥 조금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어요…경위님이 나 많이 사랑하는 거 알아요…. 그래서…. 내가 너무 미안해서…그래서 연락 못 했어요…나 조금 이해해 줄 수 있죠? 아니 이해해줘야 해요…. 나도 경위님 첫사랑 다 이해하니까…. 그건 이해해줘요. 아…. 나 되게 말 못한다 그쵸….”

말을 다 끝마친 송이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제영이 송이의 손을 꽉 잡아 다시 자리에 앉혔다.

송이

 “언제 깼어요?”

화들짝 놀란 송이가 조용히 묻자 제영이 푸스스 웃으며 대답했다.

제영

 “아까부터.”

송이

 “근데 왜 자는 척했어요.”

제영

 “그냥.”

제영은 송이의 손을 깍지를 껴 꼭 잡았다.

제영

 “어제보다 오늘, 오늘 보다 내일…. 그리고 앞으로 더욱더 많이 사랑해줄게요.” 

 

은애

 “시험 끝!!!!!!”

송이

 “으어…드디어 끝났다.”

은애

 “치킨에 맥주 콜?!”

송이

 “어! 그럴까? 요 앞에 서준이가 아르바이트하는 치킨집 있는데.”

은애

 “아…. 그때 그 친구?”

송이

 “응! 거기로 가자.”

시험도 끝났겠다 시원한 맥주나 한잔하고 들어갈 생각에 송이와 은애는 서준이 일하는 가게로 향했다.

서준

 “어서오..어? 송아야!”

송이

 “나 왔어~”

서준

 “어 잘 왔어. 잘 왔어~저쪽으로 앉아 아 그때 그 친구도 왔네! 은애 씨 맞죠?”

은애

 “네? 아…. 네! 안녕하세요.”

술을 마시기엔 아직 조금 이른 시간이라, 치킨집엔 아무도 없었기에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서준

 “뭐 줄까? 송아는 프라이드 먹을 거고 은애 씨는 뭐 좋아해요?”

은애

 “네? 저는 아무거나….”

서준

 “어 그럼 양념 한 마리 프라이드 한 마리로 줄게요.”

은애

 “네!”

서준이 치킨을 튀기러 주방 안으로 들어가고, 은애는 서준이 있는 쪽으로 계속 시선을 뒀다.

송이

 “은애야?”

은애

 “어? 어! 어!”

멍하니 서준이 있는 주방을 바라보던 은애는 송이의 부름에 화들짝 놀랐다.

송이

 “뭘 그렇게 봐?”

은애

 “어? 어…. 아냐.”

송이

 “음…너어..혹시….”

뭔가를 눈치챈 듯, 주변을 둘러 보는 송이의 모습에 은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송이는 은애 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였다.

송이

 “너…. 준이한테 관심 있지?”

은애

 “어? 어?!!”

정곡을 찌르는 송이의 말에 은애는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송이

 “진짜야?!”

자신을 따라 소리를 높이는 송이의 모습에 은애는 서둘러 송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은애

 “쉿!”

때마침 치킨을 다 튀긴 서준이 두 사람이 있는 쪽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서준

 “치킨 나왔습니다~”

은애

 “어…. 네네!”

서준의 등장에 은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활짝 웃으며 주변을 정리했다.

서준

 “내가 특별히 다리 세 개 넣었어~”

송이

 “손님도 없는데 너도 같이 먹으면 안 돼?”

송이의 말에 서준이 슬쩍 고개를 돌려 사장님의 눈치를 보자, 사장님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

 “감사합니다. 사장님~”

서준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송이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때쯤, 송이가 슬쩍 눈치를 보며 서준에게 이상형을 물었다.

송이

 “준아 너는 이상형이 뭐야?”

갑작스러운 송이의 물음에 당황한 건 오히려 은애였다.

은애

 “야…. 너…. 너는 뭘 갑자기 그런 거 물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어느새 서준의 대답을 은근히 기다리는 은애다.

서준

 “나 이상형? 음…뭐 딱히 없는데.”

서준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닭 다리를 뜯었다.

송이

 “너도 이제 연애해야지.”

송이의 말에 서준은 먹던 치킨을 내려놓고, 가만히 송이를 바라보았다.

서준

 “갑자기 왜?”

송이

 “어?”

갑작스러운 서준의 진지한 태도에 당황한 송이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서준

 “왜 갑자기 연애하라 그러냐고.”

송이

 “아니…. 그냥…너도 이제 연애도 하고….”

서준

 “…내가 알아서 해.”

송이

 “어? 어…. 그래.”

둘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냉기에 옆에 있던 은애도 어찌할 줄을 몰랐다.

서준

 “나는 먼저 일어날게. 먹고 가. 저 먼저 일어날게요 은애 씨 맛있게 먹고 가요.”

서준은 결국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 버렸다.

은애와 송이도 치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뒤이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이

 “나 간다 준아 연락할게.”

서준

 “어 가.”

평소와는 확실하게 다른 서준의 태도에 송이의 마음이 불편했다. 

지이잉//

불편한 마음으로 씻고 잠자리에 누운 송이는 제영에게서 온 전화에 얼른 통화 버튼을 눌렀다.

송이

 “네 저예요.”

제영

 -오늘 시험 끝났죠?

송이

 “네! 오늘 끝나서 은애랑 맥주 한 잔 마시고 집에 들어왔어요. 경위님은 청이에요?

제영

 -네 아직 일이 덜 끝났어요.

송이

 “저녁은요?”

제영

 -먹었죠. 좀 아까.

송이

 “피곤하다고 커피 많이 마시지 말구요.”

제영

 -…….

송이

 “경위님?

제영

 -목소리 들으니까 보고 싶다….

송이

 “치….”

요즘 들어 부쩍 낯간지러운 말과 표현이 많아진 제영의 모습이 싫지만은 않은 송이다.

제영

 -아 방학했죠?

송이

 “네! 기말고사 끝났으니까 오늘부터 방학이네요.”

제영

 -그럼 우리 내일…놀러 갈래요? 

송이

 “어디로요?”

제영

 -음…. 그냥 가까운 데 하루 다녀와요. 우리.

갑작스러운 제영의 여행 제안에 송이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이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송이

 “네! 그래요.”

제영

 -그럼 내일 아침에 열 시까지 집 앞으로 데리러 갈게요 준비하고 있어요.

송이

 “네 그럼 내일 봐요~”

송이는 제영과의 통화를 마치자마자 방 한쪽 구석에 방치해 놓은 여행용 캐리어를 꺼냈다.

언젠가는 쓸 일이 있겠지 싶어 홈쇼핑 세일 할 때 구비해놓았었다.

송이

 “일단 갈아입을 옷이랑 칫솔이랑…. 또….”

이것저것 주섬주섬 짐을 챙기던 송이는 벌써 설레는 마음에 푸스스 웃음이 먼저 터져버렸다. 

다음 날,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뜬 송이는 일찍부터 일어나 샤워를 마치고 제영의 전화를 기다렸다.

지이잉//

드디어 기다리던 제영의 전화에 송이는 진동이 울리자마자 통화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송이

 “네 경위님!”

제영

 -나 집 앞인데 준비 다 했어요?

송이

 “네 지금 나갈게요~”

송이는 들뜬 발걸음으로 빌라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제영

 “어! 어 그러다 넘어져요!”

송이

 “괜찮아…. 아악!!”

차 문에 기대 서 있던 제영은 괜찮다며 계단을 뛰어 내려오다 결국 삐끗하는 송이를 보고 얼른 달려가 부축했다.

제영

 “괜찮아요?”

송이

 “네….”

송이는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차에 올라탔다.  

제영

 “자 이제 출발합니다~”

제영은 부드럽게 핸들을 꺾어, 동네를 벗어났다.

송이

 “근데 경위님 이렇게 자리 비워도 돼요?”

제영

 “경찰도 휴가 있을걸요?”

송이

 “경위님!”

제영

 “걱정 말아요~허락받고 쉬는 거니까~”

제영의 말에 그제야 마음을 놓고,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즐기는 송이다.

송이

 “너무 좋아요~”

제영

 “나도 너무 좋아요.”

두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는 송이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송이

 “아! 라디오 틀어도 돼요?”

송이의 말에 제영이 라디오를 틀었다.

마침 라디오에선 귀에 익숙한 여름 노래가 나왔고, 두 사람은 동시에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다 이내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서로를 보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환하게 웃었다.


내 경찰아저씬데요?29화 - 한 여름밤의 로맨스.

한참을 달리고 달려, 주변은 어느새 초록빛 나무들이 즐비했다.

송이

 “우와 나무가 엄청 많아요~”

잔뜩 들뜬 표정으로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려고 하는 송이를 제영이 손을 뻗어 얼른 막았다.

제영

 “그러다 다쳐요.”

송이

 “치….”

제영

 “조금 있으면 도착해요~” 

잠시 후, 제영은 어느 한적한 시골집 앞에 차를 세웠다.

제영

 “다 왔어요. 내려요~”

송이

 “여기가 어디예요?”

제영은 말없이 송이의 손을 잡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제영

 “할머니~”

제영의 목소리에 부엌 쪽에서 할머니 한 분이 나와 반갑게 맞았다.

할머니

 “아이고 내 새끼 왔어? 어쩐 일이여~”

제영

 “할머니 보고 싶어서 왔지요~”

할머니

 “오야 옆에 아가씨는 누구여?”

할머니는 반짝 빛나는 눈빛으로 송이를 쳐다보았다.

송이

 “아…. 안녕하세요~할머님 저는….”

제영

 “할머니 내 여자친구~”

할머니

 “여자친구여? 아유 곱구먼. 그려~올해 나이가 몇 살이여?”

제영

 “아이고 할머니 우리 일단 들어가면 안 돼?”

할머니

 “어어!! 그려 그려 얼른 들어와~” 

할머니

 “이것 좀 먹어봐~”

할머니는 수박과 감자, 옥수수를 쟁반 한가득 내오셨다.

제영

 “우와 나 혼자 올 땐 아무것도 안 내오더니 여자친구랑 오니까 이런 것도 주네. 우리 할머니~”

할머니

 “뭐여? 맨날 얼굴만 삐죽 보여주곤 가는 놈이~어디서 투정이여~”

제영

 “그르네~송이 씨 이거 먹어봐요. 이 수박 할머니가 직접 키운 거라 엄청 달아요.”

제영은 수박 중에서 제일 큰 조각을 송이에게 건네주었다.

송이

 “아 고마워요.”

송이는 눈치를 보며 수박 한 입을 크게 베어 물었다.

할머니

 “맛있지?”

송이

 “네~엄청 달아요.”

송이가 방긋 웃으며 대답하자 할머니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송이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할머니

 “이름이 뭐여?”

송이

 “송송이 입니다.”

할머니

 “성이 송 씨여?”

송이

 “네 성이 송이고 이름이 송이라고 합니다.”

할머니

 “그려 올해 나이가 몇이여?”

송이

 “아…. 저 올해 스물셋…”

할머니

 “아이고 이놈의 자식 도둑놈이구먼!”

송이의 대답에 할머니는 옆에 앉은 제영의 등짝을 세게 때렸다. 

 

제영

 “아! 아파요. 할머니~”

할머니

 “아파도 싸 이놈의 자식!”

제영

 “나이는 어려도 얼마나 어른스러운데~”

할머니

 “그려 우리 제영이가 잘 해줘?”

송이

 “네 엄청 잘해줘요. 할머니~”

살갑게 웃으며 대답하는 송이의 모습에 할머니도 어느새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제영과 송이를 번갈아 보았다.

제영

 “할머니 저녁에 우리 고기 먹어요.”

할머니

 “잉? 자고 갈껴?”

제영

 “우리 여기로 휴가 온 건데 일박 이일로.”

할머니

 “아이고 그럼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할머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부엌으로 가 뭔가 분주하게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할머니

 “저기 앞에 냇가 있어 거기서 좀 놀다 들어와~”

송이

 “할머니도 저희랑 같이 가요~”

할머니

 “아이고 나 그렇게 눈치 없는 늙은이 아녀~내가 맛있는 저녁 해줄 테니까 놀다 들어와~”

할머니는 해 떨어지기 전에 놀다 오라며 송이와 제영의 등을 떠밀었다. 

제영

 “여기 조금만 걸어가면 나 어렸을 때 놀던 냇가가 있는데 물이 엄청 맑아요~”

오랜만에 자신이 살던 고향에 온 제영은 평소보다 좀 들뜬 모습이었다.

송이는 그런 제영의 모습이 낯설었지만, 또 훨씬 좋아 보여 송이 역시 기분이 함께 들떴다.

송이

 “와~여기 공기 엄청 좋아요~”

빽빽한 빌딩 숲이 있는 서울과는 달리 풀과 꽃, 그리고 아담한 집들이 있는 시골 풍경에 송이의 마음이 한층 더 맑아지는 것 같았다.

천천히 시골 길을 거닐 던 송이는 익숙한 풀에 발걸음을 멈췄다.

송이

 “어? 민들레!”

서울에서도 가끔 보이는 민들레 홀씨가 반가웠던 송이는 후다닥 뛰어가 민들레를 꺾었다.

그리곤 제영을 향해 힘껏 후~불었다.

송이

 “어렸을 때 이거 엄청 불고 다녔는데~”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에 송이는 길을 걷는 내내 웃음꽃이 사라질 줄 몰랐다.

생각보다 훨씬 더 좋아하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도 마음이 놓였다.

제영

 “어? 잠깐만요 송이 씨.”

제영의 말에 송이는 발걸음을 멈췄다.

제영은 성큼성큼 송이의 앞에 다가가 송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송이

 “왜…. 왜요?”

제영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자 송이는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꾹 감았다.

제영

 “풉….”

귓가에 들리는 제영의 웃음소리에 송이가 눈을 뜨자 제영이 푸스스 웃으며 민들레 홀씨를 흔들어 보였다.

제영

 “이거 묻어서~”

송이

 “아…. 뭐…. 뭐예요.”

괜스레 부끄러워진 송이는 빨개진 얼굴을 감추려 발걸음을 빨리했다.

제영

 “잠깐만요 송이 씨~”

송이

 “아…. 안 속아요. 이제.”

못 들은 척 발걸음을 더 빨리하는 송이의 손목을 확 잡아채는 제영이다.

송이

 “또…. 뭐 묻었….”

쪽//

갑자기 왔다 간 제영의 입술에 송이는 멍하니 서서 제영을 바라보았다.

제영

 “자 갑시다~”

모르는 척 앞서 가는 제영에 뒤늦게 정신 차린 송이가 빨개진 얼굴로 제영을 앞질러 뛰어갔다. 

송이

 “우와 물이 엄청 깨끗해요.”

제영을 따라 도착한 작은 개울가엔 물고기가 훤히 비춰 보일 정도로 물이 맑았다.

제영

 “물에 들어가 볼래요?”

송이

 “네!”

제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물 안으로 들어가 물장난을 하는 송이다.

송이

 “와 엄청 시원해요~”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 제영에게 물장난하는 송이에 제영도 함께 물장난했다.

한참을 서로에게 물을 뿌리고 놀던 둘은 이내 지친 듯, 물 밖으로 나와 원두막에 나란히 누웠다.

송이

 “아…. 힘들다.”

제영

 “어렸을 땐 해가 지는 것도 모르고 놀았는데.”

송이

 “이제 우리도 늙었나 봐요.”

장난스러운 송이의 말에 제영은 웃음을 터뜨렸다.

제영

 “내 앞에서 나이 이야기 하면 반칙인데.”

송이

 “아 맞다.”

송이는 얼른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제영

 “이제 우리 밥 먹으러 갈까요?”

송이

 “빨리 가요! 할머니 힘드시겠다.”

순간 퍼뜩 드는 할머니 생각에 송이는 벌떡 일어났다. 

송이

 “할머니 저희 왔어요~”

발걸음을 재촉해서 할머니 집으로 돌아오자 부엌에서 밥을 하던 할머니께서 반갑게 뛰어나오셨다.

할머니

 “벌써 왔어? 좀 더 놀고 오지~”

송이

 “할머니 혼자 힘드실까 봐요. 저 뭐 도울 거 없어요?”

송이는 살갑게 할머니를 따라 부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왠지 마음 한쪽이 찌르르해지는 것 같았다.

제영

 “할머니 나는 뭐 도울까요?”

할머니

 “아가씨 데리고 나가~ 네가 들어와서 이것 좀 돕고.”

할머니의 말에 제영은 송이를 데리고 나와 마루에 앉혔다.

제영

 “송이 씨는 여기 멍이랑 놀고 있어요~”

제영의 말에 마루 아래를 내다보니 하얀 백구 한 마리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송이를 맞았다.

송이

 “아 이름이 멍이에요?”

제영

 “네. 와 이 자식 나한테도 꼬리는 안 흔들더니 송이 씨가 마음에 들었나 봐요.”

배신감 어린 눈길로 백구를 바라보던 제영은 이내 할머니가 부르는 소리에 부엌으로 쏙 들어갔다.

굴뚝에선 밥 짓는 연기가 흩어지고 제영은 마당으로 나와 돗자리를 폈다.

제영

 “송이 씨 여기 와서 앉아 있어요~”

제영은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고, 송이는 돗자리 위에 상을 펴고 수저를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잠시 후, 제영이 고기와 불판을 들고나와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제영

 “할머니 얼른 나와요~”

할머니

 “알것어~”

할머니는 쟁반 가득 상추와 김치를 들고 나왔다.

제영

 “내가 들고 온다니까 그걸 왜 다 들고나와요.”

제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쟁반을 받아 들었다.

할머니

 “닭 한 마리 잡아다 푹 고아 맥여야 하는데….”

제영

 “조만간 또 올게. 그때 먹으면 되지~자 할머니 아 해봐요.”

제영은 쌈을 크게 싸서 할머니의 입에 쏙 넣어 주었다.

제영

 “맛있죠?”

할머니

 “너도 얼른 먹어 아가씨도 얼른 먹고.”

송이

 “네 잘 먹겠습니다~” 

제영은 고기를 굽는 족족 할머니와 송이의 접시에 놓아주었다.

그런 제영을 본 송이는 슬쩍 쌈 하나를 싸서 제영에게 내밀었다.

송이

 “이거 먹어요. 이제 내가 구울게.”

제영

 “나는 틈틈이 먹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송이 씨 많이 먹어요.”

송이

 “나 많이 먹었어요 이리 줘요. 집게.”

송이가 제영에게서 집게와 가위를 뺏으려고 하자 할머니가 송이의 손을 붙잡아 다시 앉혔다.

할머니

 “제영이 쟤 고기 잘 구우니까 걱정 말고 아가씨 많이 먹어~”

제영

 “봐요. 우리 할머니는 내가 굽는 고기 좋아해요~”

제영과 할머니의 말에 송이는 마음을 놓고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

배불리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란히 설거지를 마친 송이와 제영은 마루에 앉아 까만 하늘에 수놓은 별들을 구경했다.

송이

 “이렇게 별이 많은 거 처음 봐요.”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는 송이의 모습이 새삼 더 예뻐 보였다.

할머니

 “아가씨 데리고 산책이나 좀 댕겨와~”

제영

 “그럴까요? 송이 씨 우리 산책하러 나가요.”

제영의 말에 송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살랑 이는 바람을 맞으며 한산한 거리를 걸었다.

송이

 “확실히 공기가 다른 거 같아요~”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은지 송이의 얼굴엔 내내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제영

 “송이 씨가 이렇게 좋아할지 몰랐어요. 사실 좀 불안했거든요.”

송이

 “왜요?”

제영

 “할머니 뵙는 거 부담스러워 할까 봐….”

송이

 “사실은…. 처음엔 좀 놀랐거든요. 당황스럽기도 하고…. 그런데 음…좋아요. 지금은.”

제영

 “좋…. 아요?”

송이

 “경위님이 절 그만큼 좋아하고 믿어주는 거 같아서…그래서 좋아요.”

수줍은 듯, 웅얼거리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의 얼굴에도 저절로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송이

 “어? 토끼풀이다!”

천천히 길을 걷던 송이는 무언가를 발견하곤 제영의 손도 놓고는 후다닥 그쪽으로 달려갔다.

제영

 “토끼풀 좋아해요?”

송이

 “네! 저 어렸을 때 이걸로 반지도 만들고 그랬거든요. 학교 다닐 때 어떤 남자애가 이걸로 반지 만들어서 선물도 해주고…. 아…”

한참을 신이 나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재잘거리며 떠들던 송이는 옆에서 큼큼거리는 제영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어 입을 다물었다.

제영

 “그래서 토끼풀을 좋아하는구나.”

송이

 “아…. 아니 꼭 그래서 좋다기보단….”

제영

 “여기서 기다려봐요.”

제영은 성큼성큼 풀밭으로 들어가선 토끼풀을 한 아름 꺾어서 나왔다.

송이

 “경위님?”

제영

 “저기 의자에 앉아서 잠깐 기다려요.”

제영의 말에 송이는 제영이 가리키는 의자에 앉아서 제영이 하는 행동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뭔가를 하는 듯, 엄청 집중한 표정으로 토끼풀을 만지작거렸다.

그제야 제영이 뭘 하는지 알아챈 송이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 밀어 넣었다.

제영

 “다 됐다.”

잔뜩 뿌듯한 얼굴로 완성된 작품을 들고 송이에게 다가왔다.

제영

 “눈 감고 손 내밀어 봐요.”

제영의 말대로 송이는 모르는 척 눈을 감고 손을 내밀었다.

잠시 후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뭔가가 끼워진 느낌이 들어 송이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제영

 “짠.”

송이

 “우와….”

지금까지 봐온 토끼풀 반지와는 다르게 노란 민들레가 함께 엮인 반지가 송이의 손에 끼워져 있었다.

제영

 “마음에 들어요?”

송이

 “진짜 예뻐요.”

송이의 말에 잔뜩 뿌듯한 표정으로 환하게 미소를 짓는 제영이다.

송이

 “꼭 프러포즈 받는 거 같아요.”

제영

 “크큼…. 나 이거 프러포즈 아는 거 아닌데.”

송이

 “아….”

단호한 제영의 말에 민망해진 송이는 아…. 하고 입을 다물었다.

제영

 “프러포즈 더 멋있게 할 건데….”

송이

 “…. 네?”

제영

 “그 반지 끼워진 손에 제일 예쁜 반지 끼워줄게요.”

제영은 토끼풀 반지가 끼워진 송이의 네 번째 손가락에 작게 입을 맞췄다.


내 경찰아저씬데요?30화 - 엇갈리다.

할머니

 “어여 들어와서 자~”

송이

 “네? 네!”

할머니

 “제영이 너도 어여 들어가~”

제영

 “네….”

제영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겨 할머니 옆 방으로 들어갔다.

송이 역시 쭈뼛쭈뼛 할머니의 옆에 깔린 이부자리에 몸을 눕혔다.

잠자리가 뜬 탓에 송이가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자 할머니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할머니

 “잠이 안 와?”

송이

 “네? 네…. 죄송해요. 할머니 저 때문에 못 주무시죠….”

할머니

 “아녀 괜찮어~”

송이

 “……”

잠시 침묵이 흐르고 할머니는 송이 쪽으로 몸을 돌리고 누웠다.

할머니

 “우리 제영이..많이 사랑해줘…. 사랑 많이 못 받고 큰 아이야….”

송이

 “네….”

할머니

 “서영이 자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몇 년을 죄책감에…많이 힘들어했어….”

송이

 “……”

할머니

 “제영이 저놈 웃는 얼굴 진짜 오랜만에 봐…. 고마워 아가씨….”

할머니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따뜻한 두 손으로 송이의 손을 꼭 붙잡았다.

송이

 “…. 경위님 덕분에 제가 더 행복해요. 할머니….”

송이의 말에 할머니는 잡은 손을 힘주어 한 번 더 잡고는 천천히 송이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포근함에 송이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

제영

 “할머니 조만간 또 올게요. 그때까지 끼니 잘 챙겨 드시고 내가 보내 준 영양제 꼭꼭 챙겨 드시고 알겠죠?”

할머니

 “알겠어. 가면 갈수록 잔소리만 늘어가 어째.”

송이

 “할머니 다음에 또 올게요~”

할머니는 송이를 꼬옥 안고는 송이만 들릴 만한 목소리로 조그맣게 속삭였다.

할머니

 “저놈이 속 썩이면 나한테 일러 내가 혼내줄 테니까.”

할머니의 말에 송이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영

 “두 분이 무슨 비밀 얘기 하는 거야? 나 소외감 드는데.”

송이

 “아무것도 아니에요~ 할머니 저희 이제 갈게요.”

할머니

 “조심히들 가.”

송이와 제영이 차에 올라타고, 할머니는 두 사람이 탄 차가 저만치 멀어져 갈 때까지도 손을 흔들고 서 계셨다.

제영

 “할머니가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송이

 “네?”

제영

 “아니…. 뭐…. 궁금해서….”

송이의 되물음에 머쓱한 듯, 시선을 돌렸다.

송이

 “음…경위님이 속 썩이면 할머니한테 이르라고 혼내준다고 하셨어요.”

제영

 “2대1인 겁니까?”

송이

 “아마도요?”

능청스러운 송이의 태도에 제영은 피식 웃어버렸다.

*

송이

 “저 들어가 볼게요. 이번 여행 진짜 최고였어요.”

송이는 제영에게 엄지를 척 내밀었다.

제영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네요.”

송이

 “경위님 오늘 출근해요?”

제영

 “특별한 연락 없으면 안 해도 될 거 같은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영의 휴대폰이 울렸다.

제영

 “나가야 할 거 같네요.”

송이

 “얼른 가보세요. 이따 전화할게요.”

제영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청 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집으로 돌아온 송이는 짐을 채 풀지도 못하고 피곤한 몸을 침대에 눕혔다.

송이

 “으어….”

조금만 누워 있다 정리하자 싶어 송이는 편하게 자리를 잡고 누웠다.

몸이 노곤 노곤해지더니 송이는 곧 잠이 들어버렸다.

***

평소보다 좀 어수선하고 분주한 분위기에 제영은 박 형사와 팀원들이 있는 곳으로 서둘러 뛰어갔다.

제영

 “무슨 일입니까?”

박형사

 “어 하 경위님, 여기 이 여대생이 신고하러 왔는데…. 아무래도 이거 좀 심상치가 않아서요.”

제영

 “심상치가 않다니요?”

박형사

 “그 범인이 이 여대생 가방 속에 이 쪽지를 넣어 놨어요.”

박 형사가 장갑 낀 손으로 꼬깃꼬깃한 쪽지 한 장을 제영에게 건넸다.

제영 역시 장갑을 낀 후 행여 쪽지가 찢어질세라 조심스럽게 쪽지를 펴 보았다.

[자꾸 나 자극 하지 마. 나 잡으려고 하면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 주변 사람들도 위험해 질 거야. 하제영 경위.]

자신에게 전하는 경고 메시지에 제영은 순간적으로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박형사

 “이거…. 설마…. 밤손님 그놈 짓인 겁니까?”

제영

 “일단 지문감식 의뢰부터 하세요.”

제영은 아직도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고 있는 여대생을 바라보았다.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가 잔뜩 헝클어져 있었고, 하얀 셔츠는 여기저기 찢겨 있었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움츠린 채 바들바들 떠는 여대생의 모습에 제영은 자신의 자리에 있던 담요 한 장을 여대생의 어깨에 둘러주었다.

제영

 “이 순경, 따뜻한 차 같은 것 좀 내와.”

이순경

 “네!”

제영은 이 순경이 타온 유자차를 여대생의 손에 쥐여주었다.

제영

 “이제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여대생

 “가…. 감사합니다….”

제영

 “범인을 잡으려면 피해자의 진술이 필요하거든요. 아주 조금이라도 기억 나는 게 있으면 우리한테 이야기해주셔야 해요. 천천히 해도 되니까 일단 안정을 좀 취하세요.”

여대생은 조금 안정이 된 듯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후, 여대생이 조용히 제영을 불렀다.

여대생

 “저…. 이제 진술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여대생의 말에 제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여대생의 앞에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제영

 “뭐든 기억나는 게 있으면 이야기해줘요.”

여대생

 “어…학교 끝나고…. 골목길을 걸어가는데…뒤에서…어떤 남자가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끌…끌고….”

제영

 “천천히…. 천천히 이야기 해도 돼요….”

제영의 말에 여대생은 크게 숨을 한번 고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여대생

 “까만 모자를 쓰고 있었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어요….”

제영

 “혹시…. 손등에 흉터 같은 건 없었어요?”

여대생

 “어…”

여대생은 잠시 기억을 더듬는 듯, 미간을 찌푸리더니 뭔가 생각이 난 듯 아! 하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대생

 “있었어요! 엄지하고 검지 사이에 길게 찢어진 흉터 본 거 같아요!”

제영

 “엄지와 검지 사이에요?”

여대생

 “네…. 칼…. 꺼낼 때 봤어요…. 제가 막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는데…그 길 지나가던 어떤 남자가 경찰에 신고했다고 하면서 저한테 뛰어왔어요…. 그러니까 쪽지 같은 거 저한테 던지고 도망갔어요….”

울음을 꾹 참으며 더듬더듬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여대생의 모습에 제영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제 동생을 포함한 힘 없는 여성들을 상대로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모자라, 이젠 새벽도 아닌 저녁에 범죄를 저지르고, 현직 경찰을 협박까지 하는 대범함까지 보이고 있다. 그전 밤손님이 저지르는 범죄 패턴에서 벗어 난 행동이었다. 정말 이대로 두다간 제영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위험해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더 초조해졌다.

순간 송이의 생각이 확 스쳐 가는 순간, 제영은 겁이 났다.

박형사

 “하 경위님?”

제영

 “아…. 네…. 네.”

박 형사의 목소리에 정신이 든 제영은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어 나갔다.

제영

 “오늘은 일단 집으로 돌아가셔도 돼요. 집에 누구 있어요?”

여대생

 “아뇨 저 혼자…. 살아요.”

제영

 “그럼 주변에 혹시 같이 있어 줄 사람 있어요?”

여대생

 “…. 네 친구가 근처에 살아요.”

제영

 “그럼 그 친구랑 며칠 같이 있어요. 그 주변 계속 우리들이 순찰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리고 박 형사님.”

박형사

 “네.”

제영은 박 형사 쪽으로 몸을 숙여 박 형사만 들릴 정도로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영

 “이번 사건은 차 팀장님 모르게 조용히 진행합니다.”

박형사

 “네? 그래도 됩니까?”

제영

 “…. 네 일단 조용히 수사합시다.”

박형사

 “네 알겠습니다.”

박 형사와의 대화를 마친 제영은 아직도 잘게 떨고 있는 여대생의 모습에 제영은 잠시 흔들렸던 마음을 다잡았다.

제영

 “내가 꼭 그 범인 잡을 겁니다.”

제영은 밤손님에게 당한 아무 죄 없는 피해자들과 또 다른 피해자가 절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동생과 연인을 위해 다시 한 번 제 손으로 범인을 잡으리라 굳게 다짐했다.

***

한참 단잠에 빠져 있던 송이는 베개 밑에서 울리는 진동소리에 눈도 채 뜨지 못하고 전화를 받았다.

송이

 “네….”

수혁

 “너 잤어?”

송이

 “어…. 오빠 어쩐 일이야….”

수혁

 “너 서준이 아픈 거 알아?”

송이

 “뭐?”

갑작스러운 서준의 소식에 송이는 잠이 싹 달아 난 듯, 벌떡 일어나 앉았다.

수혁

 “몰랐구나.”

송이

 “어…어….”

수혁

 “너 걱정할까 봐 얘기 안 했나 보네, 서준이 몸살 걸려서 꼼짝도 못 하나 봐. 얘 몸살 걸리면 아무것도 못 먹고 누워 있잖아. 지금이라도 한번 가 봐.”

송이

 “어…. 어 오빠 지금 가 볼게.”

수혁

 “너는.”

송이

 “어?”

수혁

 “너는 어디 안 아프고 잘 지내는 거지?”

송이

 “…. 응 오빠 나 잘 지내.”

수혁의 따뜻한 목소리에 송이는 순간 눈물이 핑 고였다.

수혁

 “…. 그래 다행이다 얼른 서준이한테 가봐.”

송이

 “응 오빠도 건강 챙기고….”

수혁

 “그래 끊자.”

수혁과의 통화를 마치자마자 송이는 휴대폰과 지갑만 챙겨 서준의 집으로 향했다.

딩동//

송이

 “준아 나야 문 열어!”

몇 번이나 초인종을 눌렀지만, 안에선 아무런 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문도 못 열어 줄 정도로 아픈 건가 싶어 걱정된 송이는 도어락을 열고 무작정 생각 나는 숫자로 비밀번호를 눌렀지만 계속해서 비밀번호가 틀렸다는 경보음만 울렸다.

서준의 생일도 아니고, 부모님 생신도 아니고, 혹시나 싶은 마음에 송이는 자신의 생일인 숫자 4개를 차례차례 눌렀다.

그러자 삐리릭/하고 잠금이 해제되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송이는 후다닥 집 안으로 들어와 서준의 방으로 향했다.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온통 땀 범벅이 된 서준이 침대에 누워 끙끙 앓고 있었다.

놀란 송이가 얼른 서준의 이마를 짚어 보자, 서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겨우 눈을 떴다.

서준

 “송아야..?”

송이

 “이 미련 곰탱아! 이렇게 아픈데 왜 전화도 안 하고 병원도 안 갔어!”

속상한 마음에 덜컥 화부터 내자, 서준이 푸스스 웃으며 송이의 손을 꼭 잡았다.

서준

 “진짜 송아네..”

송이

 “약은 먹었어?”

송이의 물음에 서준은 고개를 흔들었다.

송이

 “잠깐 있어 봐, 약 사올게.”

송이는 제영의 이마를 한 번 더 짚어 보고는, 서둘러 약국으로 향했다.

감기약은 종류별로 다 산 송이는 근처 죽 집에서 서준이 좋아하는 호박죽까지 샀다.

조용히 서준의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서준은 어느새 곤히 잠들어있었다.

송이는 그냥 자게 두려다가, 혹시나 감기가 더 심해질까 싶어 조심스럽게 서준을 흔들어 깨웠다.

송이

 “준아 약 먹고 자자.”

서준

 “..으응..”

서준은 퉁퉁 부은 얼굴로 일어나 앉았다.

송이

 “아 맞다 너 아무것도 안 먹었지…. 일단 죽부터 좀 먹자.”

송이는 쇼핑백 안에서 죽을 꺼냈다.

서준

 “안 먹으면 안 돼?”

송이

 “빈속에 약 먹으면 안 돼.”

송이는 죽을 한 숟갈 떠서 호호 불어 서준의 입가에 댔다.

잠시 망설이던 서준은 곧 입을 벌려 송이가 주는 죽을 받아먹었다.

몇 숟갈 더 받아먹던 서준은 영 입맛이 없는지 고개를 흔들었다.

송이

 “그래 이제 약 먹어.”

송이는 해열제와 종합 감기약을 꺼내 서준의 손바닥에 쏟아주었다.

송이

 “약 먹고 푹 자.”

서준

 “나 잠들고 나서 가면 안 돼?”

송이

 “아프니까 응석도 부리네 알겠어 너 자면 갈 테니까 편히 자.”

송이의 말에 서준은 한결 편한 표정으로 잠이 들었다.

그런 서준을 바라보던 송이는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같이 잠들어버렸다.

***

심란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해 제영은 청에서 나오자마자 송이의 번호를 꾹 눌렀다.

평소 같아선 신호음이 길게 이어지기 전에 네 경위님 하는 송이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기계음 섞인 여자의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제영

 “잠들었나….”

불안한 마음을 애써 지우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송이의 집으로 핸들을 꺾는 제영이다.


내 경찰아저씬데요?31화 - 서로를 향한 다짐

한참 잠에 빠져 있던 송이는 끈질기게 울리는 진동 소리에 미간을 찌푸리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송이

 “네….”

제영

 “송이 씨!”

갑작스러운 제영의 큰 소리에 놀란 송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전화기만 꾹 쥐고 있었다.

제영

 “어딥니까 지금!”

송이

 “네? 저 지금…서준이 집에….”

제영

 “하아…. 전화는 왜 안 받았어요!”

송이

 “잠깐…. 잠들었어요.”

제영

 “주소 문자로 보내요. 그쪽으로 갈게요.”

송이

 “…. 아니 지금 집으로 갈 거예요.”

제영

 “그래요.”

제영과의 통화를 마친 송이는 곤히 자고 있는 서준을 잠시 보고는 조심스럽게 집에서 나왔다.

송이는 화가 난 듯한 제영의 목소리가 마음에 걸려 발걸음을 빨리했다.

빌라 현관에 비스듬하게 기대 서 있는 제영을 발견하자마자 송이는 후다닥 제영에게 달려갔다.

송이

 “경위님…”

제영

 “왔습니까?”

송이

 “…. 전화 못 받아서 미안해요….”

평소와는 다른 무거운 표정을 한 제영의 모습이 낯설어 송이는 제영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제영

 “전화는 왜 못 받은 겁니까?”

송이

 “서준이가 아파서…. 간호해 주다가…. 깜빡 잠들어서…. 미안해요. 진짜….”

고개를 푹 숙인 채 웅얼거리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조금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제영

 “송이 씨 나 봐요.”

제영의 말에 송이는 고개를 들어 제영과 눈을 맞췄다.

제영

 “나 송이 씨 엄청 걱정했어요.”

송이

 “미안해요….”

제영은 송이를 품에 꼭 안아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다.

송이의 방 불이 켜지는 것까지 확인한 제영은 마음을 놓고 청으로 향했다.

제영

 “박 형사님 오늘 사건 현장 CCTV 블랙박스부터 다 확인하고 목격자 찾으세요.”

박형사

 “네.”

제영

 “지문 감식은 최대한 빨리해달라고 하세요.”

박형사

 “네 그렇지 않아도 내일 오전이면 결과 받아 볼 수 있을 겁니다.

제영은 밤손님 수사에 서둘러 박차를 가했다.

수련

 “하 경위 잠깐 나 좀 봐요, 휴게실에서 기다릴게요.”

갑작스러운 수련의 호출에 제영은 긴장한 표정으로 수련이 있는 휴게실로 향했다.

수련

 “앉아.”

제영

 “무슨 일입니까.”

제영의 물음에 수련은 잠시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수련

 “너 밤손님 사건 본격적으로 수사 시작했다며.”

제영

 “어떻게…. 아셨습니까?”

수련

 “숨기면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이 사건에서 당장 손 떼.”

제영

 “팀장님! 아니 선배!”

수련

 “너 위험해.”

제영

 “선배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해.”

수련

 “사건에 개인감정 들어가면 더 위험해지는 거 몰라?”

제영

 “…. 그건 아는데…. 하지만 선배.”

수련

 “내가…. 내가 맡아서 해.”

수련의 말에 제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높였다.

제영

 “내가 왜 얘기 안 했는데!”

수련

 “내 손으로 잡을게.”

제영

 “선배!”

수련

 “이건 팀장으로서 명령하는 거야.”

제영

 “선배….”

수련

 “그동안은 그냥 봐왔는데, 이제는 안돼 너 이 사건에서 손 떼.”

수련의 단호함에 제영은 망설이지 않고 무릎을 꿇었다.

수련

 “하제영!”

제영

 “…. 부탁할게. 선배…. 서영이뿐만 아니라…. 모든 피해자를 위해서 내가 꼭 잡게 해줘….”

간절한 제영의 부탁에 수련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수련

 “그럼 서영이의 오빠로서가 아니라 경찰 하제영으로써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수사해, 물론 나도 같이.”

제영

 “선배…. 이제 그만….”

수련

 “같이 잡자 이렇게 해야 내가…. 마음이 좀 편할 거 같아.”

결국, 수련의 손을 잡은 제영은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 

점장

 “송이 씨 왔어요?”

송이

 “네 저 옷 갈아입고 나올게요.”

저번에 서준의 집에 갔다가 잠깐 얼굴을 본 이후 며칠 동안 제영의 얼굴은 물론이고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다.

또 어떤 사건이 터진 건지 문자에도 답이 없는 제영에 송이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제영의 연락을 기다리는 일밖에 없다는 것에 괜히 더 서러움이 북받친 송이는 자꾸만 입꼬리가 아래로 내려갔다.

점장

 “송이 씨 무슨 걱정거리 있어요?”

송이

 “네? 아…. 아뇨 아녜요~”

이럴 땐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에 다 드러나는 제 모습이 참 싫은 송이다.

하늘이 도운 건지 제영의 생각을 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송이는 카페 일이 바빴다.

점장

 “날씨가 더워져서 그런 지 손님이 많아서 힘들죠 송이 씨.”

송이

 “아뇨 괜찮아요~ 오히려 바빠서 좋은데요.”

지웅의 걱정 어린 시선에 송이는 환하게 웃어 보이곤 음료 만들기에 열중했다.

정말 잠깐 앉아서 쉴 틈 없이 손님이 휘몰아치고 가고, 퇴근 시간이 다가와서야 잠깐 앉아서 쉴 시간이 생겼다.

송이는 의자에 앉아 종일 서 있느라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물렀다.

점장

 “오늘은 바로 들어가요 뒷정리 내가 할게요.”

송이

 “아니에요. 사장님! 저번에도 사장님이 뒷정리하고 가셨잖아요….”

점장

 “오늘은 진짜 너무 힘들어 보여서 그래요 송이 씨.”

송이

 “…. 아….”

나름대로 표정관리를 했다고 생각했던 송이는 지웅의 말에 잠시 벙쪘다.

점장

 “그러니까 오늘은 얼른 먼저 들어가서 쉬어요.”

송이

 “…. 감사합니다. 사장님.”

점장

 “힘내요 송이 씨.”

송이

 “…. 사장님….”

점장

 “아이고 내가 송이 씨 울리겠다 얼른 들어가요~”

송이는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아 내고 탈의실로 들어왔다.

자꾸만 비집고 나오려는 눈물을 손등으로 벅벅 문지르곤 주섬주섬 자신의 옷으로 갈아입고 지웅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점장

 “조심히 가요.”

*** 

박형사

 “이름은 김혁수 올해 45세, 여기 10년 전 CCTV에 찍힌 사진으로 현재 모습을 유추해본 몽타주입니다.”

제영

 “김혁수…밤손님 이름이 김혁수라고….”

제영은 밤손님의 이름 세 글자를 입안에서 곱씹었다.

제영

 “거주지는 파악 안 됐어요?”

박형사

 “알아보고 있습니다.”

10년 전 일개 형사였던 제영은 지금처럼 이렇게 수사를 이끌어 나갈 힘이 없었기에 위에서 접으라면 그냥 접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때 조금 더 수사했더라면 밤손님을 금방 잡을 수 있었을 거고 다른 피해자들도 생기지 않았을 거란 생각에 제영은 허탈해졌다.

제영

 “이렇게 금방 찾아낼 수 있던 것을….

수련

 “하 경위 오늘은 좀 들어가서 쉬지.”

제영

 “괜찮습니다. 팀장님.”

수련

 “범인 잡기 전에 하 경위가 쓰러질 거 같아 오늘은 들어가서 쉬어.”

결국, 수련의 성화에 제영은 무거운 발걸음을 떼어 청에서 나왔다.

오랜만에 하는 퇴근에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다름 아는 송이였다.

시계를 확인한 제영은 송이의 퇴근 시간에 맞춰 서둘러 송이가 일하는 카페로 향했다.

*** 

혼자 어두운 거리를 천천히 걸어가던 송이는 문득 눈앞에 보이는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까만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송이

 “할머니 댁에서 본 하늘은 진짜 예뻤는데….”

서울의 밤하늘은 그저 까맣기만 할 뿐 별은 보이지 않았다.

그냥 멍하니 앉아 하늘을 보던 송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어폰을 꽂고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던 송이는 뒤에서 느껴지는 인적에 우뚝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손에 든 가방을 꼭 쥐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달리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송이

 “하나…. 둘….”

셋! 을 외치려던 순간 뒤에서 누군가가 송이의 손목을 확 잡아챘다.

놀란 송이는 발버둥을 치며 소리를 빽 질렀다.

송이

 “살려주세요!!”

제영

 “송이 씨 나예요!”

두 눈을 꼭 감고 소리를 지르던 송이는 귓가에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송이

 “경위님?”

잔뜩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목을 붙잡고 서 있는 제영의 모습에 송이는 한숨을 푹 내쉬곤 제영의 어깨를 퍽 때렸다.

송이

 “놀랐잖아요! 기척도 없이!”

제영

 “아니….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길래….”

그제야 송이는 자신의 손에 들린 이어폰을 쳐다봤다.

송이

 “아…. 이어폰….”

제영

 “내가 밤에 이어폰 꽂고 다니지 말라고 했죠.”

금세 엄한 표정으로 자신을 꾸짖는 제영의 모습에 송이는 모르는 척 말을 돌렸다.

송이

 “근데 어쩐 일이에요?”

제영

 “애인이 애인 만나러 오는데 뭐 무슨 일이 있어야 해요?”

송이

 “그런 애인이 그동안 연락 한 통 없길래 물어봤어요. 왜요?”

훅 들어 오는 송이의 공격에 이번엔 제영이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돌리며 송이의 손을 꼭 잡았다.

제영

 “아 날씨 좋다.”

송이

 “치…. 말 돌리기는….”

송이도 그런 제영의 모습이 싫지 않은 듯 마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깍지 낀 손을 흔들며 거리를 걷던 송이와 제영은 약속이나 한 듯 동네 놀이터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제영

 “그네 탈래요?”

제영의 물음에 송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그네에 올라탔다.

제영

 “꽉 잡아요.”

제영은 혹시나 송이가 다칠까 봐 정말 아이 다루듯 살살 그네를 밀었다.

송이

 “더 세게요!”

보다 못한 송이가 더 세게 밀라며 주문하자 제영은 괜찮겠냐며 소매를 걷어붙이고 송이가 원하는 세기로 그네를 밀어주었다.

송이

 “와아~역시 그네는 이래야지!”

바람에 치마가 펄럭이고 머리가 흩날려도 송이는 개의치 않고 오랜만에 타는 그네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제영

 “이번엔 저거 탈래요?”

제영이 가리킨 기구는 ‘뺑뺑이’였다.

동그란 기구 안에 들어가면 친구들 서로 번갈아 가면서 뱅글뱅글 밀어주는 그런 기구.

송이

 “네! 저 뺑뺑이 진짜 좋아해요!”

송이는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간 듯, 얼른 기구에 올라탔다.

제영

 “자 꽉 잡아요.”

제영은 크게 숨을 들이쉰 다음 있는 힘껏 기구를 돌리기 시작했다.

송이

 “완전 재미있어요!!”

해맑게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송이의 모습에 그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송이에게 집중하는 제영이다.

제영

 “재밌어요?”

송이

 “네!”

놀이터의 꽃인 미끄럼틀도 타고 한참 땀이 나도록 놀던 둘은 놀다 지켜 근처 마트에서 아이스크림 하나씩 손에 들고 벤치에 앉아 쉬었다.

송이

 “오랜만에 진짜 신나게 논 거 같아요.”

제영

 “나도 재밌었어요.”

간간히 부는 시원한 바람이 두 사람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 주었다.

제영

 “미안해요.”

송이

 “뭐가요?”

제영

 “매번 기다리게 해서.”

송이

 “경위님이 나쁜 사람들 잡으려면 바빠야죠~”

송이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었다.

그런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오히려 더 마음이 쓰였다. 

제영

 “고마워요.”

송이

 “어 오늘 왜 이래요? 나 진짜 괜찮은데.”

제영은 가만히 송이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송이

 “무슨…. 일 있어요?”

단번에 무슨 일이 있냐며 묻는 송이에 제영은 그저 웃기만 할 뿐 대답을 피했다.

얼굴에 잔뜩 심란하다고 써 붙여 놓고선 아무 일도 없다고 둘러대는 제영의 모습에 송이는 모르는 척 제영의 손을 꼭 잡았다.

송이

 “아 기분이다. 오늘은 내 어깨 빌려줄게요.”

자신의 어깨를 툭툭 치며 기대라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송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제영

 “무거울 텐데~”

송이는 그런 제영의 등을 천천히 토닥였다.

송이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그냥 이렇게 위로해 주는 거밖에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요. 나는.”

잠시 송이의 어깨에 기대 눈을 감고 있던 제영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영

 “서영이…. 아프게 한 범인 잡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송이

 “정말요?”

제영의 말에 송이는 깜짝 놀라며 제영을 쳐다보았다.

제영

 “네…. 곧 내 손으로 잡을 수 있어요.”

제영이 얼마나 바라고 바라왔던 일인지 알았지만, 송이는 그 순간마저도 제영이 다칠까 봐 걱정되었다.

송이

 “…잘 됐다고 응원해줘야 하는 거죠. 나….”

제영

 “송이 씨가 걱정하는 일 일어나지 않을 거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마요.”

송이의 마음을 읽은 제영이 송이의 손을 꼭 잡으며 안심시켰다.

따뜻한 제영의 온기에 조금 안심이 되었지만 그래도 자꾸만 불안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제영에겐 위험한 일들이 일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사귀는 동안 다치는 것도 봐왔지만, 이번엔 유난히 불안한 송이다.

하지만 그것을 티 내지 않기 위해 더 환하게 웃으며 제영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송이

 “이번에 범인 꼭 잡고 서영 씨한테 나랑 같이 가요.”

제영

 “그래요 꼭 그렇게 해요.”

제영은 송이를 품에 안은 채 자신의 마음을 한 번 더 다잡았다.

이번엔 그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고 꼭 지켜 내겠다고….


내 경찰아저씬데요?32화 - 그 누구의 탓도 아닌

박형사

 “여기 김혁수 거주지 주소 찾았습니다.”

박 형사는 주변의 눈치를 보더니 조용히 하얀 쪽지와 사진 한 장을 제영에게 내밀었다.

제영

 “주소 확실한 겁니까?”

박형사

 “네, 확실합니다. 아 그리고 김수혁이 최근에 주민등록증을 새로 발급을 받았더라구요 여기 최근 사진입니다.”

제영

 “잠복…. 들어갑시다.”

박형사

 “네.”

제영과 박 형사는 주변 눈치를 살피며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가스총과 실탄이 든 총을 챙겼다.

그리곤 옆에서 모르는 척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수련을 향해 슬쩍 눈치를 줬다.

제영

 “갑시다.”

두 사람은 출동할 때 쓰는 차량이 아닌 제영 개인차로 향했다.

제영

 “박 형사님.”

박형사

 “네.”

제영

 “…. 죄송해요.”

박형사

 “…. 아닙니다.”

제영

 “이번 일 잘못되면 저도 박 형사님도…정직당할지도 모르는데…개의치 않고 도와주셔서….”

박형사

 “하 경위님.”

제영

 “네.”

박형사

 “아니다. 나 오늘은 잠깐 말 놓을게요. 하 경위.”

제영 자신보다 10살은 훌쩍 넘게 많은 나이인 박 형사였지만 5년 동안 한 번도 제영에게 말을 놓은 적 없었다. 경찰대를 나와 남들보다 조금 빨리 경위라는 직급을 달고, 처음 함께 일하게 되었고 처음엔 자신보다 직급은 낮지만, 나이는 훨씬 많은 박 형사를 대하는 게 많이 힘들었지만, 함께 오래 일하면서 누구보다 손발이 잘 맞는 파트너이자 의지가 되는 형님 같은 존재였다.

그렇지만 일하는 내내 아니 사적인 자리에서도 박 형사는 제영에게 말을 놓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박형사

 “나 조금 서운하려고 하네, 나는 하 경위 엄청 편하게 생각하고 동료 이상으로 생각하는데 하 경위는 아냐?”

제영

 “저는…. 박 형사님한테 피해 갈까 봐….”

박형사

 “하 경위니까 다 감수하고 각오하고 뛰어든 거야. 내가 그동안 봐온 하 경위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은 꼭 해내는 성격인데…범인도 잡으려고 마음먹으면 어떻게 해서든 잡잖아. 그런데 오늘은 왜 이렇게 미리 겁을 내.”

제영

 “…. 혹시라도 잘못되면…. 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

박형사

 “절대 그럴 일 없을 테니까 하 경위답지 않게 미리 겁내지 말아요.”

박 형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수련이 주변 눈치를 보며 조심히 차 문을 열고 들어왔다.

수련

 “이제 출발하자.”

제영의 차는 조용히 청을 빠져나왔다.

*** 

어쩐 일인지 한가한 카페 분위기에 송이는 의자에 앉아 오랜만에 여유로움을 즐겼다.

점장

 “다들 놀러 갔나 봐요.”

송이

 “그러게요. 휴가철이라 사람이 없나….”

점장

 “송이 씨는 휴가 안 가요?”

송이

 “휴가요? 음…”

사실 휴가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해 본 적 없는 송이는 문득 제영과 다녀온 할머니 댁을 생각했다.

송이

 “휴가 미리 다녀왔어요.”

점장

 “어디로 다녀왔어요? 산? 아니면 바다?”

송이

 “아뇨 산 바다보다 더 좋은 데요.”

할머니 댁에서의 행복한 기억을 떠올린 송이의 입가엔 절로 옅은 미소가 자리를 잡았다.

딸랑/

지웅과 얘기를 나누던 송이는 손님이 들어오는 소리에 얼른 일어났다.

송이

 “어서 오세…. 어? 준아!”

서준

 “오늘은 많이 안 바쁘네.”

서준은 눈에 띄는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송이

 “그러게 오늘은 손님이 별로 없네…. 잠깐 기다려 음료 만들어서 올게.”

서준

 “응.”

송이는 서준이 좋아하는 초콜릿 음료를 만들어 자리로 향했다.

송이

 “몸은 괜찮은 거야?”

서준

 “응 다 나았어…. 고마워.”

송이

 “우리 사이에 뭘~다 나았으면 됐어.”

서준

 “송아야.”

송이

 “어?”

잠시 망설이던 서준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서준

 “미안해.”

뜬금없는 서준의 사과에 송이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서준만 바라보았다.

서준

 “저번에 치킨집에서…화내고 그런 거….”

송이

 “에이~그럴 수도 있지 너 왜 그래 어색하게~”

송이는 별거 아니라는 듯 환하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서준

 “송아야.”

송이

 “어?”

서준

 “나…. 귀찮은 거 아니지….”

송이

 “뭐라고?”

서준

 “혹시 내가 귀찮거나 신경 쓰여서 연애하라고 하는 거면….”

송이

 “야 윤서준.”

서준의 말에 송이는 정색하며 서준의 이름을 불렀다.

송이

 “너 내가 그때 연애하라고 한 말을 그렇게 받아들인 거야?”

서준

 “난 이제 네가 남자친구도 생기고 그래서…내가 관여하는 게 귀찮은 건가…. 해서…. 그래서 연애하라고…”

송이

 “우리가 그 정도 사이밖에 안 돼? 너 그동안 진짜 그렇게 생각한 거야? 진짜 나 실망이다.”

서준

 “송아야..”

송이

 “너랑 나랑 알고 지낸 세월이 몇 년인데…. 그런 생각을 하냐..진짜…내가 남자친구 생겼다고 해서 널 귀찮아하긴 왜 귀찮아해…너가 그랬지 우린 가족 같은 사이라고…. 가족끼리 서로 챙겨주고 걱정하는 게 귀찮아하고 그런 일이야? 당연한 거잖아…. 서로 걱정하고 그러는 거…내가 너보고 연애하라고 한 건 내 친구가 너를…마음에 두고 있어서…. 정말 괜찮은 친구라 너랑 잘 해봤으면 하는 마음에…”

서준

 “어…?”

송이

 “아 나 은애한테 죽었다…. 준아 너 이거 티 내면 안 돼.”

서준

 “어…. 어….”

송이

 “손님 왔다 준아 나 먼저 일어난다~”

서준

 “어? 어 나도 가야 해.”

서준이 돌아가고 송이는 그제야 무거운 돌덩이를 내려놓은 듯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 

제영

 “저 집 맞죠?”

박형사

 “네.”

세 사람은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범인의 집 앞에서 잠복을 시작했다.

몇 시간이고 에어컨도 틀지 못한 채 답답한 차 안에서 버텨야 하는 일이기에 사실 아무리 잠복에 익숙해져 있어도 할 때마다 힘든 건 어쩔 수 없었다.

잔뜩 지친 얼굴로 옷을 펄럭 이며 땀을 식히는 수련과 박 형사의 모습에 제영은 미안하기도 했고 또 고맙기도 했다.

박형사

 “어? 숙여요!”

박 형사의 말에 제영과 수련은 서둘러 자세를 낮췄다.

박형사

 “김혁수 나타났습니다.”

박 형사가 가리키는 곳엔 누추한 차림새의 남자가 까만 비닐봉지를 흔들며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제영은 서둘러 수련과 박 형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제영

 “일단 저랑 차 팀장님이 먼저 기습해서 김혁수를 저쪽 골목으로 몰게요. 박 형사님은 저쪽 골목에서 미리 기다리고 계셨다가 덮치세요.”

박형사

 “네.”

제영의 지시에 두 사람은 서둘러 채비를 마쳤다.

제영은 막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수련과 박 형사를 불러 세웠다.

제영

 “박 형사님 그리고 차 팀장님.”

박형사

 “네.”

수련

 “왜?”

제영

 “다치지 말아요.”

제영의 말에 두 사람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영

 “나갑시다.”

차 문을 열고 제영과 수련은 길을 묻는 행인인 척 자연스럽게 김혁수에게 다가갔다.

수련

 “저 아저씨 여기 마트는 어디 있어요?”

수련의 물음에 땅바닥을 향해 있던 김혁수의 시선이 수련을 바라보았다.

김혁수

 “저 골목 건너에 있수다.”

제영은 혹시나 김혁수가 자신을 알아볼까 싶어 고개를 돌리고 서 있었다.

수련

 “감사합니다. 아 저 건너편 집에 이사 왔거든요.”

수련이 시간을 버는 사이에 박 형사는 김혁수의 시선을 피해 골목에 몸을 숨겼다.

김혁수

 “더 물어볼 거 없으면 난 이만.”

김혁수는 수련을 무시한 채 집 대문을 열었다.

그때 박 형사의 준비가 완료됐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은 제영이 바로 김혁수를 불러 세웠다.

제영

 “김 혁수.”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김혁수는 휙 뒤를 돌아 제영을 쳐다보았다.

위아래로 제영을 훑어 보던 김혁수는 놀란 듯 주춤 두 눈을 크게 떴다.

제영

 “밤손님 이제서야 얼굴을 보네.”

김혁수

 “하…. 제영 경위?”

제영

 “영광이네! 나를 알아봐 주고.”

제영은 빙긋 웃으며 김혁수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김혁수

 “생각보다 빨리 찾았네! 날.”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는 김혁수의 모습에 제영은 기가 찼다.

제영

 “10년 전보단 기술이 많이 발전이 돼서 말이야 나도 놀랐어. 이렇게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다닐 줄은 몰랐거든.”

김혁수

 “이렇게 빨리 잡히면 재미가 없을 거 같은데.”

김혁수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돌아서서 박 형사가 있는 골목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수련과 제영은 그 뒤를 쫓았다.

골목 안쪽에서 몸을 숨긴 박 형사는 김혁수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대로 쓰러뜨려 덮쳤다.

김혁수

 “넌 뭐야!!”

박형사

 “가만있어!”

발버둥을 치는 김혁수를 몸으로 누르고 뒷주머니에서 수갑을 꺼내던 박 형사는 갑자기 윽하며 옆으로 쓰러졌다.

제영

 “박 형사님!!!”

박형사

 “저쪽으로…갔어요…잡아….”

그 와중에 박 형사는 피가 솟구치는 옆구리를 부여잡고는 다른 한 손으로 김혁수가 도망간 쪽을 가리켰다.

수련

 “박 형사님 내가 병원으로 모실 테니까 너는 얼른 쫓아가.”

제영

 “부탁해요. 선배.”

제영은 서둘러 박 형사가 가리킨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지만 이미 김혁수는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순간 다리가 풀린 제영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 

카페 아르바이트가 끝난 송이는 자연스럽게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으려다 제영의 말이 생각나 아쉬운 표정으로 이어폰을 집어넣었다.

송이

 “범인…. 잡았나….”

하루 종일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송이는 결심한 듯 제영의 번호를 꾹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곧 잔뜩 갈라진 제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영

 [네….]

송이

 “경위님?”

평소와 다른 제영의 목소리에 송이는 덜컥 겁부터 났다.

제영

 [..네 송이 씨….]

송이

 “경위님…. 무슨 일 있어요?”

제영

 […하아….]

송이

 “경위님…?”

제영

 [송이 씨…. 나…. 어떡하죠…]

송이

 “경위님 무슨…. 일 있는 거죠? 지금 어디예요?”

제영

 [병원이에요 여기….]

송이

 “병원이요? 경위님 어디 다쳤어요?”

병원이란 말에 송이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제영

 [나 말고…박 형사님이….]

송이

 “박 형사님이요?”

제영

 [송이 씨…]

지금이라도 당장 쓰러질 것 같은 제영의 목소리에 송이는 초조한 듯 손톱만 물어뜯었다.

송이

 “경위님…. 어디 병원이에요?”

송이는 그 자리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제영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

 “박준호 환자분 보호자분.”

제영

 “네 여기 접니다.”

수술실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제영은 의사의 목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사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경과를 좀 지켜보죠.”

제영

 “감사합니다.”

곧이어 수술실 안에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침대에 실려 나오는 박 형사의 모습에 제영은 입술을 꽉 깨물고 눈물을 참았다. 

 

간호사2

 “오늘은 중환자실에서 경과를 지켜보고 그다음에 일반 병실로 옮길게요.”

제영

 “네 알겠습니다.”

박 형사가 누워 있는 침대는 중환자실로 들어가고, 제영은 보호자실 의자에 털썩 앉았다.

송이

 “경위님!”

고개를 푹 숙이고 입술을 꽉 깨문 채 비집고 나오려는 울음을 눌러 삼키던 제영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제영

 “송이 씨….”

잔뜩 땀이 맺힌 얼굴로 제영에게 달려온 송이는 잠시 숨을 고르곤 입을 열었다.

송이

 “…. 괜찮아요….”

그리곤 제영의 손을 꼭 잡았다.

제영

 “송이 씨…. 흐흑….”

입술이 하얗게 질리도록 꽉 깨물고 참고 있던 눈물이 결국 터져 버린 제영은 그 와중에도 소리를 삼키며 울었다.

송이는 그런 제영을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

송이

 “괜찮아요…괜찮아요….”

제영

 “나 때문에 다친 거에요…나 때문에….”

당장에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제영의 모습에 송이의 마음도 무너져 내렸다.

송이

 “경위님 탓 아니에요…”

모든 걸 토해내듯 눈물을 쏟아내는 제영을 송이는 한참 동안 끌어안고 끊임없이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밖에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송이

 “괜찮아요…괜찮아….”


내 경찰아저씬데요?33화 - 잘못된 선택

간호사2

 “박준호 환자분 깨어나셨습니다.”

간호사의 말에 제영과 송이는 동시에 벌떡 일어나 중환자실로 향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삑삑거리는 기계음이 들리고 박 형사가 희미하게 눈을 뜨고 있었다.

제영은 얼른 뛰어가 박 형사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제영

 “박 형사님 괜찮아요?”

제영의 물음에 박 형사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영

 “가족분들한테 연락할게요…놀라실까 봐 밤에 연락 못 드리고….”

박 형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제영의 손을 꼭 잡았다.

놀란 제영이 고개를 들고 박 형사를 바라보자, 옅게 미소를 지으며 제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을 달래는 듯 손을 꼭 잡는 박 형사의 행동에 결국 꾹꾹 참고 있던 눈물이 또다시 터지고만 제영이다.

제영은 그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주먹을 꽉 쥐었다.

손끝이 하얘지도록 주먹을 쥐는 제영을 옆에서 지켜보던 송이는 조용히 자리를 피해주었다.

병실 밖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던 송이는 제영이 나오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영

 “송이 씨 나 청에 다시 들어가 봐야 할 거 같아요.”

송이

 “네?”

제영

 “가면서 태워다 줄게요.”

급하게 병원을 나서는 제영의 모습에 송이는 얼떨결에 차에 올라탔다. 

제영

 “조금 이따가 연락할게요. 조심히 들어가요.”

송이

 “…. 네.”

송이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지켜본 제영은 서둘러 청으로 향했다.

수련

 “박 형사님은 괜찮아?”

제영

 “네….”

수련

 “밤손님 수사 내가 지원 요청했어.”

제영

 “차 팀장님….”

수련

 “박 형사님이 범인한테 당한 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야.”

제영

 “……”

수련

 “일단 광역 1팀이랑 2팀이 손잡고 수사 시작할 거야.”

제영

 “네.”

수련

 “이제부터 개인행동은 안돼.”

단호한 수련의 목소리에 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 

집으로 돌아온 송이는 힘이 쭉 빠지는 기분에 바로 침대에 몸을 눕혔다.

어제오늘 처음 본 제영의 약한 모습에 송이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언제나 강한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그렇게 자신의 앞에서 한없이 약한 모습을 보인 제영이 한없이 안쓰러웠다.

경찰이라는 직업을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제영은 늘 강할 것이라고만 생각한 저 자신이 너무도 부끄럽고 제영에게 미안했다.

이런저런 생각에 한없이 가라앉고 있을 때쯤 가방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송이는 제영인가 싶어 서둘러 통화 버튼을 눌렀다.

송이

 “네.”

은애

 [쏭 뭐해?]

송이

 “아…어 나 그냥 집에 있지.”

은애

 [뭐야 그 목소리는…. 무슨 일 있어?]

송이

 “어? 아냐 아무것도 그냥…. 날씨가 더워서….”

은애

 [나 여기 서준이 일하는 치킨집인데 쏭 너 올래?]

송이

 “지금?”

은애

 [뭐…. 싫으면 어쩔 수 없고….]

송이

 “미안….”

은애

 [서준 씨 송이 못 나온다고 하는데….]

서준

 [송아야 너 무슨 일 있어?]

송이

 “어 준아 나? 아니 아무 일도 없는데…. 그냥 좀…. 피곤하네.”

서준

 [어디 아픈 건 아니고?]

송이

 “어 괜찮아….”

서준

 [그래 그럼 쉬어.]

송이

 “응….”

서준과의 통화를 마친 송이는 그대로 눈을 꾹 감았다. 

*** 

의자에 기대 지끈거리는 머리를 잠시 식히던 제영은 짧게 울리는 진동소리에 미간을 찌푸리며 문자를 확인했다.

김혁수

 -그러니까 나 건드리지 말랬잖아. 다음 희생자는 누구일 거 같아? 궁금하면 당신 차에 쪽지를 확인해봐.

문자를 확인한 제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수련

 “무슨 일이야?”

제영

 “아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요. 머리가 좀 아파서.”

제영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자신의 차가 세워져 있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 와이퍼 사이에 꽂힌 하얀 쪽지를 발견한 제영은 서둘러 쪽지를 펴보았다.

-병원에 있는 동생? 아니면…하 경위가 지켜내고 싶은 애인? 우리가 어디서 만날까?-

 쪽지를 읽는 제영의 손이 사시나무 떨리듯 덜덜 떨려왔다.

순간적으로 모든 머릿속의 사고 회로가 멈춘 것 같아 제영은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다 정신이 든 제영은 곧바로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바로 서영이 있는 병원으로 핸들을 돌렸다.

그러면서 한 손으론 송이의 번호를 꾹 눌렀다.

길고 긴 통화 음이 끝나도록 들리지 않는 송이의 목소리에 제영은 초조함에 계속해서 통화 버튼만 눌러댔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서준의 생각에 바로 서준에게 전화를 걸자 곧바로 서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준

 [네.]

제영

 “혹시 송이랑 같이 있어요?”

서준

 [아뇨 송이 집에 있을 텐데….]

제영

 “전화를 안 받는데 서준 씨 혹시 지금 송이 집에 가서 송이랑 같이 있어 줄 수 있어요?”

서준

 [네? 무슨 일 있어요?]

제영

 “일단 같이 좀 있어 줘요 부탁할게요.”

서준

 [네.]

서준과의 통화를 마친 제영은 곧바로 수련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련

 [어 너 어디야?]

제영

 “선배 나 지금 서영이한테 가고 있어요.”

수련

 [왜? 서영이 안 좋아진 거야?]

제영

 “선배 서영이 있는 병원이랑 송이 사는 집으로 지원인력 좀 보내줘요. 김혁수한테 쪽지가 왔어.”

수련

 [쪽지?]

제영

 “일단 부탁해요. 선배 자세한 얘기는 이따가 해요.”

수련

 [어 알았어.]

제영은 수련과의 통화를 마치자마자 계속해서 송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송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제영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죠…. 송이 씨….” 

*** 

잠깐 누워 있는 다는 게 정신없이 잠에 빠졌다 일어난 송이는 몰려오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송이

 “아…. 진통제가 어디 있을 텐데….”

겨우 일어나 서랍장을 뒤졌지만, 저번에 사 놓았다고 생각한 진통제는 이미 빈 곽이었다.

송이는 결국 지갑과 휴대폰을 들고 집 밖으로 나왔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약국으로 향하던 송이는 자꾸만 올리는 진동에 귀찮은 듯 통화 버튼을 눌렀다.

서준

 [송아야 어디야?]

송이

 “어 나 밖….”

서준

 [너 어디 아파?]

송이

 “아 두통이 좀 있어서 약 사러 잠깐 나왔어. 왜?]

서준

 [아니 좀 전에 경위님한테 전화 와서 너랑 같이 있으라고 해서 지금 너희 집으로 가고 있거든 은애 씨랑.]

송이

 “경위님이?”

서준

 [너 그 마트 앞에 있는 약국으로 갈 거지?]

송이

 “어 거기가 제일 가까워.”

서준

 [그럼 우리가 그쪽으로 갈게.]

송이

 “어? 어 그래.”

서준과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제영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송이는 급한 전환가 싶어 얼른 통화 버튼을 눌렀다.

송이

 “네 경위님 저….”

제영

 [송이 씨 왜 전화를 안 받아요!]

송이

 “아…. 저 머리가 아파서 좀 깊게 잠이 들었나 봐요….”

제영

 [지금 집입니까?]

송이

 “아뇨 저 약 사러 잠깐 나왔는데….”

제영

 [혼자요?]

송이

 “네…. 잠깐 혼자 나왔는데 서준이가 곧 온대요.”

제영

 [송이 씨 오늘은 혼자 있지 말고 서준 씨랑 친구랑 꼭 같이 있어요.]

송이

 “네?”

제영

 [이유는 묻지 말고 오늘은 내 말대로 해요 알겠죠?]

송이

 “네….”

제영

 [또 전화할게요. 꼭 내 말 들어야 해요.]

송이

 “네….”

제영과의 통화를 마친 송이는 또다시 몰려오는 두통에 얼른 약국으로 발걸음을 빨리했다.

약사

 “어서 오세요.”

송이

 “아 저 두통이 좀 심해서요 진통제 주세요.”

약사

 “여기 이거 하루에 두 알 드세요.”

송이

 “아 감사합니다.”

약을 받아 든 송이는 약국에서 먼저 두 알을 삼켰다.

약국에서 막 나서려던 송이는 건너편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서준과 은애를 발견하곤 손을 흔들었다.

곧 파란 불이 되고 서준에게 달려가려던 송이는 순간 등 뒤에서 느껴지는 둔탁한 고통에 그대로 눈앞이 까맣게 변해버렸다.

서준

 “송아야!!!!”

서준의 비명 소리를 끝으로 송이는 정신을 놓아버렸다. 

 

*** 

병원에 도착한 제영은 서둘러 서영이 있는 병실로 향했다.

벌컥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놀란 서영이 커다란 눈으로 제영을 쳐다보았다.

서영

 “오빠?”

제영

 “어…. 어 서영아.”

침대에 걸터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서영의 모습을 보자 마음이 놓인 제영은 다리에 힘이 풀렸다.

서영

 “오빠 어쩐 일이야?”

제영

 “어? 어 너 보고 싶어서 왔지.”

서영

 “왜 이렇게 땀을 흘려…. 아이스크림 줄까?”

제영

 “아냐 서영이 먹어.”

잠시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던 제영은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길고 긴 진동소리에 왠지 모를 불길함에 땀이 맺힌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제영

 “네.”

서준

 “경위님! 송아가..”

제영

 “무슨 일입니까!”

급박해 보이는 서준의 목소리에 제영이 벌떡 일어났다.

서준

 “송아가..퍽치기…”

제영

 “진정하고 똑바로 말해봐요!!”

서준

 “송아를 뒤에서 누가 쇠파이프로 때려서…쓰려졌어요…. 그래서 지금 병원에 가는 길…. 이에요….”

제영

 “어디 병원으로 갑니까!”

서준

 “해송병원이요.”

제영

 “금방 가겠습니다.”

서영

 “오빠?”

제영

 “아…. 서영아 미안해 오빠 지금 사건이 터져서 가봐야 할 거 같아…. 다음에 또 올게….”

서영

 “…응.”

급격하게 어두워진 서영의 표정에 제영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병원 측에 절대로 서영이를 혼자 두지 말라는 신신당부를 해 놓고선 서둘러 송이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사를 마친 송이는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채 두 눈을 꾹 감고 있었다.

은애

 “송이…. 괜찮겠죠?”

서준

 “네 괜찮을 거예요….”

자신이 조금 일찍 횡당보도를 건너갔으면 송이가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서준은 송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잠시 후, 제영이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곤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서준

 “오셨어요.”

제영

 “…네.”

제영은 한 걸음 한 걸음 송이가 누워 있는 침대로 걸어갔다.

그리곤 핏기없는 송이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제영

 “송이 씨…. 나 왔는데…”

허망한 표정으로 송이의 얼굴을 바라보는 제영을 보며 서준은 은애를 데리고 병실 밖으로 자리를 피해주었다.

한참 후,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병실에서 나온 제영은 서준의 옆에 앉았다.

서준은 들고 있던 커피를 제영에게 건넸다.

제영

 “고마워요.”

두 사람 사이엔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서준

 “…죄송해요.”

그 침묵을 먼저 깬 건 서준의 사과였다. 

제영

 “서준 씨가 죄송할 일 아니에요…. 제 잘못…. 아니 저 때문에 일어난 일이에요.”

서준

 “네?”

제영

 “…제가 쫓고 있던 범인이 저…겁주려고 송이 씨한테….”

제영은 차마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서준

 “…하아….”

제영

 “내가…. 못 지킨 거에요…내가….”

자신이 송이에게 먼저 갔었다면 송이를 지킬 수 있었을 텐데…아니 애초에 송이를 자신의 곁에 두지 않았다면 송이는 이런 위험한 일에 휩쓸리지 않았을 텐데….

제영은 처음으로 경찰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자기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서준

 “…그럼 그러고 있을 게 아닌데요.”

제영

 “?”

서준

 “지금 이러고 후회하고 있을 게 아니라 빨리 정신 차리고 송이 저렇게 만든 놈 잡아야죠. 경찰이잖아 하제영 경위님.”

서준의 말에 제영은 무언가에 세게 얻어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서준

 “나는 지금 이렇게 송이 옆에 앉아서 후회하는 것밖에 할 수 없는데 하제영 경위님은 경찰이니까 범인 잡아서 혼내 줄 수 있잖아요.”

제영

 “…고마워요. 정신 차리게 해줘서.”

제영은 겨우 정신 줄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준

 “송이 깨어나면 연락 드릴게요.”

제영

 “…. 잘 부탁해요.”

서준의 충고에 정신이 든 제영은 자신 때문에 다친 사람들을 보며 후회를 할 게 아니라 더 정신을 바짝 차려서 더 이상 자신 때문에 다치는 사람들이 없게 범인을 잡아야 했다.

잠시 흐트러진 마음을 재정비하고 다시 한 번 자신의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야겠다는 다짐을 새기는 제영이다.

자신이 지켜내지 못한 여동생 서영이와 박 형사 그리고 자신만을 믿고 따라 준 연인 송이를 위해서….


내 경찰아저씬데요?34화 -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요

제영은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곧바로 청으로 향했다. CCTV를 돌려 보던 수련은 제영을 발견하자마자 달려와 물었다.

수련

 “송이 씨 괜찮아?”

제영

 “…. 아직 의식이 없어요.”

수련

 “우리가 도착했을 땐…. 이미 도망가고 없었어.”

제영

 “빨리 검거해야 해요 또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제영의 말에 수련은 팀원들을 불러 모으고 본격적으로 수사를 시작했다.

수련

 “일단 김혁수 수배 내려. 아직 이 주변에 머물고 있을 확률이 높으니까 검문 강화 하고.”

지이이잉//

액정에 뜨는 발신자 번호 표시 제한이라는 글자에 제영은 주변을 조용히 시킨 후 스피커 버튼과 녹음 버튼을 눌렀다.

제영

 “네 하제영입니다.”

김혁수

 “어때 주변 사람들이 자기 자신 때문에 다치는 걸 두 눈으로 보고 있는 기분이.”

제영

 “……”

김혁수

 “똑같이 당해 보라고 너도 나처럼.”

제영

 “그게 무슨 말이야.”

김혁수

 “너 혼자만 피해자 같지?”

제영

 “똑바로 말해.”

김혁수

 “그냥 이렇게 알려주는 건 좀 심심한데.”

뚝/

제영

 “끊어버렸어요.”

잠시 후, 제영의 휴대폰에 짧은 주소 한 줄과 혼자 오라는 문자가 전송되었다.

제영

 “주소 왔어요.”

수련

 “다들 준비해.”

제영

 “나 혼자 갈게요.”

수련

 “위험해서 안 돼.”

제영

 “일단은 나 혼자서 만날게요. 김 형사랑 팀원들은 뒤에서 잠복하고 있다가 내가 위험해 지면 그때 나와서 좀 도와줘요.”

수련

 “괜찮겠어?”

제영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 같으니까 섣부르게 날 공격하진 않을 거예요.”

제영의 말에 수련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련

 “준비 단단히들 하고 하 경위 차 뒤에서 거리 두고 따라가. 그리고 범인이 있는 장소에 도착하면 각자 위치로 흩어지고 혹시 범인이 돌발 행동할 수 있으니까 테이저건이랑 진압봉 챙기고….”

제영

 “…네 팀장님.”

수련

 “출발하자.”

***

서준

 “송아야!!!”

송이의 옆에서 언제쯤 정신이 돌아오려나 전전긍긍하던 서준은 송이의 작은 움직임에 벌떡 일어나 의사를 불렀다.

의사

 “송송이 씨 내 말 들리세요?”

의사의 물음에 송이의 고개가 희미하게 끄덕였다.

서준

 “송아야 나 보여?”

자신의 물음에 옅은 미소를 짓는 송이의 모습에 서준은 눈물을 쏟았다.

서준

 “흐엉 우리 송아 살았다!”

의사

 “의식은 거의 회복한 거 같습니다. 좀 더 경과를 지켜보죠.”

서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의사가 나가고 서준은 송이에게 다가가 앉았다.

서준

 “미안해…. 송아야 내가…. 그때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고개를 푹 숙인 채 사과를 하는 서준을 가만히 바라보던 송이는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여 서준의 손등을 감싸 쥐었다.

서준

 “송아야..”

괜찮다는 듯 손등을 토닥이는 송이의 손길에 서준은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 밀어 넣었다.

서준

 “경위님은 범인…. 잡으러 가셨어.”

서준의 말에 송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

김혁수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한 제영은 주변을 경계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김혁수

 “빨리 왔네.”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김혁수의 모습에 제영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눌러 참았다.

제영

 “하고 싶은 말이 뭔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김혁수

 “여자친구는 잘 있고?”

김혁수의 입에서 나온 송이의 이야기에 제영은 주먹을 꽉 쥐었다.

제영

 “…대체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김혁수

 “10년 전 당신이 구해내지 못한 내 아내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

제영

 “뭐?”

김혁수

 “하…. 기억도 못 하겠지. 너희 경찰들한텐 수 많은 피해자 중 한 명일 테니까….”

제영

 “……”

김혁수

 “안성동 부녀자 살인 사건, 최초 피해자 김미선 기억 나?”

김혁수의 입에서 나온 익숙한 이름에 제영은 멈칫했다.

김혁수

 “내가 울면서 아내 찾아 달라고 갔을 때, 너희들 뭐라 그랬어. 조금만 기다리라고…조금만 더 기다리라며…근데…근데!!! 결국, 죽었어!!!”

제영

 “…….”

김혁수

 “그때 조금만 서둘렀으면…! 살 수 있었어!!!”

울부짖으며 자신의 멱살을 잡아 쥐는 김혁수를 제영은 뿌리칠 수가 없었다.

김혁수

 “시장 가서 반찬거리 사 온다는 사람이!!! 며칠 만에 싸늘하게 죽어서 돌아왔어!!!”

제영

 “그땐…나도…. 어쩔 수 없었어….”

물밀 듯 밀려오는 기억에 제영은 다리에 힘이 풀렸다.

10년 전 유난히도 추운 겨울 어느 날, 한 남자가 덜덜 떨면서 자신의 아내를 찾아 달라며 울고 불며 경찰서를 찾아 왔었다.

별다른 정황이 없어 일단은 기다려 보자는 선배 형사의 말에 제영은 그대로 그 남자에게 전했고 남자는 분명 납치라며 난동을 피웠었다.

얼른 대충 달래서 보내라는 선배의 말대로 제영은 대충 금방 찾아 주겠다며 달래 집으로 보냈었다.

하지만 이틀 후, 부인은 집 근처 공원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죽은 아내의 시신을 붙잡고 오열하던 남자는 자신을 말리는 제영을 서늘한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그 서늘한 눈빛은 곧 제영의 마음에서 잊혀졌었다.

제영

 “그땐…. 나도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었고…. 위에서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어….”

김혁수

 “핑계 대지 마.”

제영

 “……”

김혁수

 “네가 죽인 거야…내 아내…네가 죽인 거야!!!”

제영

 “…미안해….”

김혁수

 “그럼 너도 죽어!”

김혁수는 품속에서 흉기를 꺼내 제영의 목에 겨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련과 팀원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김혁수를 에워쌌다.

수련

 “칼 내려놔.”

김혁수

 “그렇겐 못하지…. 이렇게 쉽게 끝낼 거였으면 시작도 안 했어.”

수련

 “당신 때문에 애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어!! 이제 그만해.”

김혁수

 “그럼 내 아내는 누가 살려낼 건데? 누가!!! 살릴 거냐고!!!”

수련

 “어쩔 수가 없었잖아. 지금 당신이 이런 행동을 해봐야 달라지는 건 없어.”

김혁수

 “어쩔 수가 없어? 말은 쉽네….”

수련

 “이제 그만 끝내.”

수련은 천천히 김혁수에게 다가섰다. 

김혁수

 “거기서 멈춰.”

수련

 “하 경위 놔 줘.”

수련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김혁수는 칼끝에 힘을 줘 제영의 목에 생채기를 냈다.

수련

 “김혁수!!!”

제영

 “팀장님 물러서요.”

수련

 “하 제영!”

김혁수

 “사람 하나 더 죽인다고 달라질 건 없으니까.”

수련

 “당신 때문에 억울하게 가족을 잃은 피해자 가족들은…. 무슨 죄야?”

김혁수

 “……”

수련

 “당신의 분노 때문에 죄 없는 사람들이 희생되었어.”

김혁수

 “그건!”

수련

 “이제 충분히 알겠으니까 그만해.”

수련은 김혁수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그의 뒤에 서 있던 김 형사에게 조용히 눈짓으로 지시를 내렸다.

수련의 신호를 본 김 형사는 고개를 끄덕이곤 그대로 김혁수의 등을 향해 테이저건을 쐈고

제영은 바로 김혁수의 팔을 꺾고 빠져나와 수갑을 채웠다.

제영

 “김혁수 당신을 종로구 연쇄 살인 혐의로 긴급 체포…. 합니다.”

***

송이

 “나 이제 괜찮다니까~머리 조금 꿰맨 거 가지고 뭘~”

송이는 며칠 새에 정신도 완전히 돌아와 이제 사람들과 대화도 나눌 정도로 회복되었다.

서준

 “그래도 안 돼 아직 환자야 너.”

서준은 송이의 옆에 딱 붙어서 지극 정성으로 간호했다.

송이

 “이렇게 멀쩡한 환자가 어디 있냐.”

서준

 “의식 안 돌아올 때…. 나 진짜 너 죽는 줄 알았어….”

축 처진 어깨로 또 울먹이는 서준의 모습에 송이는 알았다며 서준이 주는 과일을 받아먹었다.

송이

 “…경위님은…. 많이 바쁜가 보다.”

서준

 “어? 어…. 그 범인 잡아야 하니까.”

제영을 찾는 송이의 말에 서준은 애써 말을 돌렸다.

송이

 “보고 싶다. 경위님….”

서준

 “조금 기다리면 범인 잡고 짠하고 나타날걸?”

서준의 말에 송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서준

 “어머님 아버지께 연락 아직 안 드렸어.”

송이

 “잘했어. 괜히 놀라셔서 그 먼 데서 올라오실 텐데….”

서준

 “그동안은 내가 보호자니까 내 말 잘 들어야 해~”

송이

 “고마워. 준아.”

송이는 밤낮으로 자신의 옆을 지키는 서준에게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서준

 “됐어요~우리 사이에 뭘 낯 간지럽게. 나 물 뜨러 다녀올게.”

서준은 빈 물병을 가지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

티를 내진 않지만, 내내 제영을 기다리는 송이를 보며, 서준은 제영에게 계속해서 연락을 해봤지만, 제영과 연락이 되지 않았다.

통화 버튼을 누르려던 서준은 제영에게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서준

 -1821호 송이 보고 싶지도 않아요?-

***

김혁수를 체포하고 제영은 며칠 동안 집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김혁수를 잡고 나면 뭐든지 다 해결될 줄 알았지만, 오히려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

서영이와 박 형사님…. 송이 그리고 다른 피해자들까지 모두 자신 때문에 죽거나 다친 것이라고 생각하니 죄책감에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자신이 만약 그때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였다면 김혁수의 아내를 살릴 수 있었을까……그렇다면 이런 피해자들도 나오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제영은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송이가 깨어났다는 서준의 전화와 문자가 연달아 왔지만, 제영은 송이를 찾아갈 수 없었다.

아니 얼굴 볼 자신이 없었다.

지잉/

짧게 울린 진동에 문자를 확인한 제영은 서준에게서 온 짧은 문자 한 줄에 마음이 흔들렸다.

병원 호수와 보고 싶지 않냐는 서준의 문자에 제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송이

 “집에 가서 자고 내일 와.”

서준

 “자고 가도 된다니까……”

송이

 “아 내가 불편해서 그래 그러니까 자고 내일 낮에 와~”

송이는 굳이 밤새 자신의 옆에서 간호하겠다는 서준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병실 불을 끄면서도 송이는 여전히 병실 밖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혹시나 제영이 저 문을 열고 들어서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에…

***

송이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도착한 제영은 한참을 차 안에서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러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 송이가 좋아하는 케이크를 들고 병실로 향했다.

송이의 병실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제영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늦은 시간이라 병실 안은 약한 스탠드 빛만이 송이가 자는 모습을 비치고 있었다.

곤히 자고 있는 송이의 옆에 조용히 다가가 앉은 제영은 긴장되는 손길로 송이의 마른 얼굴을 쓰다듬었다.

제영

 “…. 나 왔어요…. 미안해요…. 너무 늦어서….”

안 좋은 꿈을 꾸는지 잠결에 미간을 찌푸리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토닥여 주었다.

제영

 “송이 씨를 볼 면목이 없어서…이렇게 송이 씨 자는 모습이라도 보고 싶어서…. 왔어요…. 나 되게 못났다…. 그쵸.”

제영은 곤히 자고 있는 송이의 얼굴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제영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차마 깨어 있는 송이를 보고 이별을 이야기할 자신이 없었던 제영은 자고 있는 송이의 귓가에 대고 이별을 고했다.

제영

 “나 되게 이기적이고 나쁜 거 아는데…. 차마 송이 씨 얼굴 보고 이야기 못하겠어서..이렇게 숨어서 이야기할게요…지켜 준다고 약속만 해놓고….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요…. 송이 씨를 위해서 내가 놓아줘야 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내 옆에 있으면 송이 씨도…. 위험해지는 거 같아…그래서…내가 놓아줄게요…나 비겁하다고 욕해도 좋아요…. 미안해요…끝까지 지켜주지 못해서…사랑해서 놓아준다는 그런 비겁한 놈들 이해 안 갔는데…내가 그 비겁한 놈이 되어 버렸어요…미안해요…사랑…해요.”

제영은 송이의 머리맡에 케익과 쪽지 한 장을 놓아두곤 급하게 병실에서 빠져나왔다.

***

차로 돌아온 제영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뺨을 내리쳤다.

제영

 “비겁한 새끼! 나쁜 새끼!”

양 볼이 빨갛게 부어오를 때까지 뺨을 내리치던 제영은 결국 양손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삼켰다.


내 경찰아저씬데요?35화 - 놓아 줘야 해요?

서준

 “누구 왔다 갔어?”

아침 일찍 송이의 병실에 도착한 서준은 침대맡에 놓인 케이크 상자를 보고 물었다.

송이

 “…응 경위님.”

서준

 “근데 너 표정이 왜 그래?”

송이

 “아니…. 아냐 아무것도.”

서준의 말에 송이는 손에 들고 있던 쪽지를 숨겼다.

서준

 “뭐야~ 뭐 연애편지야?”

송이

 “…. 밥은 먹었어?”

서준

 “먹고 왔지 너는 많이 먹었어?”

송이

 “응 많이 먹었어.”

아무렇지 않은 척 서준을 대하던 송이는 손에 들고 있던 쪽지를 꾹 말아 쥐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한 줄의 메시지가 전하는 이야기가 대체 무엇일까…송이는 어쩌면 예고되었던 이별을 아무런 준비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현재로썬 빨리 병원에서 퇴원해야 제영을 만나서 이유라도 들어 볼 수 있으니까….

송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잘 먹고 잘 쉬는 일밖에 없었다.

자신이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될까 봐 전화나 문자를 하는 것도 왜인지 모르게 두려웠던 송이는 휴대폰을 아예 꺼놓았다.

서준

 “어? 뉴스에 경위님 나온다 연쇄 살인범 잡았다는데?”

서준의 말에 송이는 고개를 돌려 TV를 보니 범인으로 보이는 남자의 팔을 붙잡고 청 안으로 들어서는 제영이 카메라에 비쳤다.

잠시 스쳐 갔지만 한눈에 봐도 수척해 보이는 제영의 얼굴에 송이는 마음이 쓰렸다.

***

김혁수 검거의 공을 인정 받은 제영은 개인 수사에 대한 징계를 피할 수 있었다.

정상적으로 청에 출근한 제영은 별일 없다는 듯 평소같이 행동했다.

제영

 “차 팀장님 저 박 형사님 병원 갈 건데 갈래요?”

수련

 “같이 가요.”

제영의 차에 올라탄 수련은 걱정스러운 눈길로 제영의 안색을 살폈다.

수련

 “괜찮아?”

제영

 “뭐가?”

수련

 “너 괜찮냐고.”

제영

 “괜찮아.”

수련

 “송이 씨는 퇴원했어?”

제영

 “…. 했을 거야.”

수련

 “했을 거야 라니?”

제영

 “……”

입을 꾹 다물어 버리는 제영의 모습에 수련도 더 이상 묻지 못했다.

두 사람은 암묵적인 침묵 속에서 박 형사가 입원한 병실에 도착했다.

똑똑 노크를 하고 병실 안으로 들어서자 이젠 침대에 앉아서 자신을 맞이하는 박 형사의 모습에 제영은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

제영

 “몸은 좀 어떠세요?”

박형사

 “보다시피 많이 나았어요.”

제영

 “범인…. 잡았어요.”

박형사

 “우리 하 경위님 카메라빨 잘 받던데요?”

박 형사의 농담에 얼어 있던 표정을 풀고 미소를 짓는 제영이다.

박형사

 “고생했어요.”

박 형사는 제영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그의 행동에 제영은 그동안 응어리져 있던 것들이 모두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

의사

 “내일이면 퇴원해도 되겠네요. 고생했어요.”

서준

 “이제 다 나은 건가요?”

의사

 “네 이제 거의 다 나아서 퇴원하고 며칠 통원치료만 받아도 됩니다.”

송이

 “감사합니다.

서준

 “다행이다 축하해~”

의사 선생님이 나가고 송이의 퇴원을 송이 본인보다 서준이 더 좋아했다.

송이

 “그러게 다행이다.”

송이는 퇴원한다는 소식을 제영에게 알려야 하나 고민이 되어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서준

 “경위님한테 전화해야겠다.”

송이

 “아니! 아냐 준아.”

서준

 “왜?”

송이

 “어? 어 내가…. 내가 얘기할게.”

서준

 “그나저나 경위님 많이 바쁜가 보네 너 보러 한 번을 안 오고….”

송이

 “많이…. 바쁜가 봐…. 어 준아 나 물 좀….”

서준의 말에 정곡을 찔린 송이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돌렸다.

서준

 “어 여기 물.”

자꾸만 자신도 모르게 몰려오는 이별의 그림자를 송이는 무시하고 싶었다.

제영이 바빠서 못 오는 거라고…. 그렇게 믿어버렸다.

***

제영

 “연남동 부녀자 살인 사건 수사 기록지 좀 주세요.”

김형사

 “여기 있습니다.”

제영

 “김영순 씨 부검 결과는 나왔습니까?”

김형사

 “아뇨 오늘 오전 중으로 나올 거 같습니다.”

김혁수를 검거한 이후 제영은 미친 듯이 일에만 매달렸다.

주변 형사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청에서 밤을 지새우는 일이 허다해 진 제영의 모습을 수련은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수련

 “하 경위 휴게실에서 나 좀 봐요.”

수련의 부름에 제영은 보고 있던 수사 기록을 내려놓고 휴게실로 향했다.

수련

 “자 커피.”

수련은 들고 있던 아이스 커피 한 잔을 제영에게 건넸다.

제영

 “고마워요.”

수련

 “이제 들어가서 좀 쉬어.”

제영

 “아직 괜찮아요.”

수련의 걱정 어린 말에 제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수련

 “얼굴은 안 괜찮아 보이는데.”

제영

 “잠을 좀 설쳤더니….”

수련

 “무슨 일 있는 거 같은데 무슨 일이냐고는 더 이상 묻지 않을게 근데 오늘은 좀 들어가서 쉬어라 이건 선배로서의 걱정보단 상사의 명령 정도로 하자. 걱정하는 거라 그러면 내 말 죽어도 또 안들을 테니까.”

수련은 제영의 어깨를 한번 툭 치고는 저만치 걸어갔다.

제영은 휴게실에 놓인 거울에 비친 자신의 초췌한 모습에 헛웃음을 흘렸다.

비겁하게 자고 있는 송이에게 자기 맘대로 헤어지자고 고해성사까지 해 놓고서는 자신의 모습은 정말 어이가 없는 몰골이었다.

정리되어 있지 않은 수염 덕에 더욱더 아저씨 같아 보여 송이가 봤으면 아저씨라고 놀릴 게 뻔한 모습. 제영은 그 와중에 떠오르는 송이의 생각에 들고 있던 커피 컵을 콰득 구겨버렸다.

잠이라도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까 싶어 휴게실에서 자리를 털고 나오던 제영은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송이

 “경위님….”

제영

 “송이 씨…?”

송이

 “…보고 싶었어요.”

잔뜩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뛰어와 자신의 품에 안기는 송이를 제영은 내치지 못했다.

송이

 “얼굴이 그게 뭐예요….”

송이가 일하는 카페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마주 보지 못했다.

아니 송이만 일방적으로 제영의 눈을 바라보았지만, 제영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지 못했다.

송이

 “그때 준 케이크 잘 먹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생크림 케이크던 데요~그 덕분에 나 빨리 나은 거 같….”

제영

 “송이 씨.”

송이

 “아 서준이가 경위님 TV에 나온 거 멋있다고 진짜 남자로서 멋있는 거 인정한다고 그랬어요 나도 TV 봤는데 멋있….”

제영

 “송이야.”

송이는 지금 당장 제영의 입에서 나올 말이 두려워 자꾸만 화제를 돌리려 했지만, 제영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제영

 “그때 케이크 옆에 놓아뒀던 쪽지 읽었죠.”

송이

 “아뇨 안 읽었는데…중요한 쪽지였어요? 아니 읽으려 했는데 서준이가 버렸나…. 없어져가지고….”

제영

 “내가 그만 놓아줄게요 나 이제 송이 씨 못 지켜 줄 거 같아요.”

애써 모르는 척 거짓말을 하는 송이에게 제영은 쪽지 내용을 그대로 읊어 내려갔다.

송이

 “경위님…”

제영

 “이제 우리 헤어져요.”

송이

 “제발요….”

제영의 입에서 나온 차가운 말에 송이는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송이

 “하나도 안 들려요 나 안 들을래.”

제영

 “미안해요.”

미안하단 말이 이렇게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이었나…. 송이는 미안하단 제영의 말에 그나마 잡고 있던 실낱같은 희망의 끈이 뚝 끊겨버린 것 같았다.

송이

 “왜…. 요? 왜…헤어져요.”

제영

 “자신이 없어요. 이제 내가 누군가를 지킬 그럴 자신이 없어.”

송이

 “우리 처음에 사귈 때 내가 그랬잖아요 나 그렇게 약한 사람 아니라고 경위님이 지켜주지 않아도 나 괜찮다고…하나도 안 무섭다고….”

제영

 “나 때문에 다쳤잖아.”

송이

 “그건…. 내가 조심을 못 한 거잖아요. 그때 내가 경위님 전화만 잘 받았어도 피할 수 있었는데 내가 잘못한 거에요.”

제영

 “송이 씨…그건 송이 씨 잘못이 아니에요. 내 옆에 있어서…. 송이 씨가 다친 거야…. 그러니까 내 잘못이에요…. 내가 그때 서영이를 선택했어…아니 처음부터 내가 송이 씨를 욕심내면 안 되는 거였어요….”

송이

 “경위님!”

제영

 “내가…. 잘못해서 박 형사님도 서영이도 그리고…. 송이 씨도 다친 거예요…”

송이

 “아니에요…그냥 사고였어요….”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자신의 손을 꼭 잡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자꾸만 약해지려는 마음을 애써 다시 다잡았다.

제영

 “…. 이제 우리 각자로 돌아가요…함께 있어도 위험하지 않은 그런…. 좋은 남자랑….”

송이

 “나빴어…”

송이는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원망 어린 눈빛으로 제영을 바라보았다.

송이

 “혼자만 마음 정리 하면 끝나는 거에요? 그럼 남겨진 사람은요? 아니 나는요? 왜 이렇게 이기적이에요 경위님…? 나는 이제 어떻게 해요…사랑도 혼자 할 수 없는 것처럼 헤어지는 것도 혼자 하는 거 아니잖아요…적어도 나도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은 줬어야지…나도 마음을 닫을 시간을 줘야 하잖아요…나는 어떡하라고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결국, 울음이 터져 버린 송이는 양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습관적으로 송이의 눈물을 닦아 주려던 제영은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모진 마음을 먹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영

 “미안합니다.”

혼자 울고 있는 송이를 두고 나오는 제영의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지금 송이의 앞에 앉아 있다간 자신도 모르게 송이를 품에 안아서 달랠 거 같아 제영은 모진 마음을 먹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하지만 카페를 떠나지 못하고 뒤 편에 숨어 송이의 모습을 지켜보던 제영은 잠시 망설이다 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영

 “난 데요. 여기 청 근처에 ‘하루 카페’라고 있는데 거기 송이 씨 혼자 있어요. 서준 씨가 좀 데리러 와줘요.”

서준

 [뭐라구요?]

제영

 “…. 부탁합니다.”

***

제영의 전화를 받은 서준은 서둘러 제영이 말한 카페로 달려갔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쪽 구석 자리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울고 있는 송이의 모습이 보였다.

서준은 얼른 송이가 있는 자리로 뛰어갔다.

서준

 “송아야!”

송이

 “어…. 어? 준아….”

서준

 “무슨 일이야.”

이미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을 본 서준이 급격히 어두워진 얼굴로 송이에게 물었다.

송이

 “……”

서준

 “송송이.”

송이

 “헤어졌어….”

서준

 “뭐?”

송이

 “…헤어졌다고….”

또다시 감정이 북받쳐 오른 송이는 서준의 품에 안겨 펑펑 눈물을 쏟았다.

송이

 “힘들어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괜찮다고…. 나 놓아준대…얼굴엔 안 괜찮다고 쓰여 있는데…. 마음에도 없는 모진 말로 나랑 헤어지자고 한다…그럼…나는 어떻게 해야 해 준아? 내가 경위님 놓아줘야 경위님이 안 힘든 건가? 그런 거야? 그런 거면…내가 힘들어도 놓아줘야 하는 거지…”

서준

 “…….”

송이의 말에 서준은 아무런 대꾸 없이 그저 송이의 어깨만 끌어안아 달래 줄 뿐이었다.

***

서준이 카페 안으로 들어서는 것까지 보고 돌아선 제영은 집으로 가지 않고 청으로 향했다.

수련

 “너 집에 가라니까 왜 또 와.”

좀 전 보다 더 안 좋아진 얼굴을 하고 들어 온 제영을 보며 수련이 물었다.

제영

 “일이라도 해야…생각이 안 날 거 같아서…”

수련

 “하제영.”

제영은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얼굴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제영

 “놓아줬어요…. 내가…. 혼자 멋있는 척 다하면서…. 아…. 놓아준 게 아니라…. 내가 도망친 거야…비겁하게….”

수련

 “……”

제영

 “지금도 보고 싶은데…아직도 정말 많이 사랑하는데…어떡하지 나…”


내 경찰아저씬데요?36화 - 원치 않은 이별

송이엄마

 [이놈의 기지배 너 병원에 입원했었다면서!]

송이

 “어…. 별거 아니었어. 그냥 조금 다쳐서 잠깐 입원한 거야.”

송이엄마

 [그래도 엄마·아빠한테 전화를 헸었어야지!]

송이

 “그랬으면 엄마 아빠 또 바로 서울 왔을 거잖아 바쁜데….”

송이엄마

 [아무리 바빠도 자식보다 중한 게 어디 있어!]

송이

 “이제 다 나았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송이엄마

 [수혁이가 다음 주 중에 너 데리러 갈 거야.]

송이

 “어? 오빠가?”

송이엄마

 [어차피 방학도 하고 했으니까 본가로 내려와서 몸보신 좀 하고 가.]

송이

 “…. 응 알겠어요.”

통화를 마친 송이는 카페로 향했다.입원 기간 동안 출근하지 못해 송이는 미안한 마음으로 카페에 들어서자 지웅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송이의 안색을 살폈다.

점장

 “괜찮아요. 송이 씨?”

송이

 “네 저 다 나았어요. 죄송해요. 사장님 저 때문에 많이 힘드셨죠.”

점장

 “많이 안 바빠서 괜찮았어요. 더 쉬지 왜 나왔어요. 이번 주까지 쉬어도 되는데….”

송이

 “아…. 저 사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

점장

 “뭔데요?”

송이

 “저…. 그만둬야 할 거 같아요. 죄송해요.”

송이의 말에 지웅은 잔뜩 아쉬운 표정을 하고 물었다.

점장

 “몸이 많이 안 좋은 거예요?”

송이

 “아 그건 아니구요..저 사정이 좀 생겨서…갑작스럽게 그만둬서 죄송해요. 사장님…사람 구할 때까진 있어야 하는데…”

점장

 “괜찮아요. 평일 아르바이트생 중에 주말에 하고 싶다는 친구 있어 그니까 너무 미안해 하지 말아요~그나저나 아쉽다 송이 씨…. 앞으로 자주 놀러 올 거죠?”

평소보다 조금 더 심혈을 기울여 마지막 커피를 만들고 송이 역시 아쉬운 마음으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점장

 “그동안 수고했어요. 송이 씨.”

송이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사장님 제 편의 다 봐주셔서…제가 폐만 끼친 거 같아요….”

점장

 “송이 씨가 일을 그만큼 잘했으니까~ 아 그리고 이거.”

지웅이 내민 건 반지케이스였다.

송이

 “이게 뭐예요?”

점장

 “여기 자주 오던 그 잘생긴 경찰분…. 아! 하제영 씨 송이 씨 남자친구 맞죠?”

지웅의 물음에 송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입술만 깨물었다.

점장

 “우리 카페에서 저번 달에 커플들 응모권 행사했잖아요~”

송이

 “아…. 네.”

점장

 “그때 송이 씨 남자친구가 명함 넣었었거든요. 어제 추첨 하는데 어떻게 또 송이 씨 남자친구가 당첨됐네요.”

지웅이 활짝 웃으며 반지케이스를 열자 한 쌍의 반지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송이

 “아…커플링 이벤트…”

점장

 “송이 씨가 대신 전해 주면 더 좋아할 거 같아서.”

송이

 “아…네…. 고맙습니다. 사장님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점장

 “나도 고마웠어요. 조심히 들어가고 자주 놀러 와요~”

한껏 자태를 뽐내며 반짝거리는 반지가 괜히 보기 싫어 반지케이스를 받자마자 가방 속에 쑤셔 넣은 송이는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지웅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하곤 서둘러 카페에서 나왔다.

눈물을 꾹꾹 눌러 삼키며 무작정 걷고 또 걷던 송이는 익숙한 장소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송이

 “서울청…”

또다시 제영의 생각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괜스레 서글퍼진 송이는 서둘러 등을 돌렸다.

박형사

 “송이 씨?”

등 뒤에서 들리는 박 형사의 목소리에 송이는 우뚝 발걸음을 멈췄다.

***

박형사

 “자 마셔요.”

송이

 “아…. 네 고맙습니다.”

박 형사님의 손에 이끌려 송이는 결국 제영이 일하는 곳에 박 형사님과 마주 보고 앉았다.

박형사

 “송이 씨도 다쳤다면서요. 괜찮아요?”

송이

 “아…. 네 괜찮아요. 형사님은요?”

박형사

 “나야 뭐 다치는 게 일상인 사람이라 금방 나아요.”

송이는 혹시나 제영이 들어올까 눈치를 보며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어 원샷해 버리곤 벌떡 일어났다.

송이

 “아…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박형사

 “조금 있으면 하 경위님 올 텐데 안 보고 가도 돼요?”

송이

 “보면 더 보고 싶어지니까….”

박형사

 “네?”

송이

 “아…. 아뇨!! 아 저 다…. 다음에 다시 올….”

얼른 가방을 챙겨 뒤돌아서 나가려던 송이는 이제 막 들어오던 제영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박형사

 “아 이제 왔네! 하 경위님~”

아무것도 모르는 박 형사님은 얼른 제영이 있는 쪽으로 송이의 등을 떠밀었다.

송이

 “아…. 저기….”

제영

 “무슨 일입니까?”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차가운 제영의 목소리가 송이의 마음을 쿡쿡 아프게 찔렀다.

송이

 “…. 그게….”

제영

 “따라와요.”

제영은 송이의 손목을 잡고 자신의 차로 향했다.

송이

 “아파요. 이것 좀 놓고….”

제영

 “타요.”

송이가 차에 올라타자마자 제영은 빠르게 차를 출발시켰다.

***

송이의 집 앞에 차를 세운 제영은 송이 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제영

 “내려요.”

송이

 “…경위님.”

제영

 “앞으론 찾아오지 말아요 아무나 함부로 드나들 수 있는 곳 아닙니다. 경찰청은.”

제영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가 되어 송이의 가슴에 박혔다.

송이

 “아무나…? 하….”

제영

 “……”

송이

 “아무나…그러네요…아무나 나 이제 경위님한테 아무나가 되어버렸네요….”

허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송이를 제영은 똑바로 눈을 맞출 수 없었다.

송이

 “뭐든 쉬워서 좋겠어요. 사랑하는 것도 또…. 이별을 하는 것도 참 쉽네요. 경위님은….”

제영

 “…네 쉽습니다. 나는….”

송이

 “…. 나는 너무 어려운데…”

제영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겁니다.”

담담한 목소리로 상투적인 이야기를 해대는 제영의 모습에 송이는 두 눈에 힘을 주고 눈물을 참았다.

비틀거리며 차에서 내린 송이는 문득 가방에 있는 반지케이스가 생각났다.

송이는 가방을 뒤적여 반지케이스를 꺼내 들었다.

송이

 “아…. 그리고 이거.”

제영

 “이게 뭡니까?”

송이

 “우리 카페에서 했던 이벤트 선물이래요. 사장님이 전해주라고 해서요.”

제영

 “……”

송이

 “…가볼게요.”

송이가 차에서 내리고, 제영은 주인을 잃은 채 빛을 발하고 있는 한 쌍의 반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

수혁

 “송송이!”

송이

 “어 오빠 왔어?”

수혁

 “얼른 타 덥다.”

송이

 “기차 타고 가도 되는데 뭘 데리러 까지 와.”

수혁

 “몸은 괜찮아?”

송이

 “어 이제 다 나았어.”

차를 타자마자 송이는 조수석 좌석을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송이

 “오빠…. 미안 나 눈 좀 붙일게.”

며칠째 제대로 눈을 붙인 적이 없는 송이는 본가로 가는 동안 억지로 잠을 청하려고 노력했다.

수혁

 “하 경위님은 너 본가 가는 거 알아?”

송이

 “……”

제영에 대해 묻는 수혁의 질문에 송이는 그저 두 눈을 꾹 감아 버렸다.

***

송이

 “으음….”

오랜만에 깊게 잠이 든 송이는 부스스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덧, 집 근처 마지막 휴게소였다.

수혁

 “깼어? 뭐 좀 먹을래?”

때마침 차 문을 열고 들어선 수혁은 송이가 제일 좋아하는 감자 구이를 건넸다.

송이

 “응…. 오빠 미안 혼자 운전 하느라 피곤했지….”

수혁

 “곤히 자길래 안 깨웠어 자 여기 물.”

입맛이 없어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자신을 생각해서 사온 수혁의 성의에 송이는 큰 감자 하나를 이쑤시개로 찍어 꾸역꾸역 넘겼다.

수혁

 “많이 먹어 너 말랐다.”

송이

 “나 다이어트 한 건데?”

수혁

 “입 다물고 먹어라.”

송이

 “네.”

***

송이는 거의 반년 만에 집 현관문 비밀번호 4자리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송이

 “엄마 나 왔어~”

송이엄마

 “왔어? 얼른 와서 앉아 밥 먹자.”

오랜만에 보는 엄마 음식에 내내 입맛이 없던 송이도 조금 식욕이 돌았다.

송이

 “아빠는?”

송이의 물음이 끝나자마자 시원하게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 더니 아빠가 시원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송이아빠

 “딸 아빠 여깄지~”

화장실에서 나온 아빠는 딸을 발견하자마자 달려가 껴안았다.

송이

 “으으 아빠 더워.”

송이아빠

 “우리 딸 왜 이렇게 말랐어!”

송이

 “다이어트 했어.”

송이아빠

 “뺄 데가 어디 있다고! 이렇게 예쁜데…. 안 되겠다 너 여기 있는 동안 살 좀 찌워서 보내야겠다. 여보 얘 얼른 밥부터 먹여.”

식탁에 모여 앉은 식구들은 오랜만에 풍성한 저녁 식사를 했고 송이 역시 오랜만에 밥 다운 밥을 먹었다.

송이엄마

 “과일 먹자~”

식사를 마친 식구들은 거실에 모여 앉았고 엄마는 과일을 한가득 가져와 깎기 시작했다.

얼마 만에 느끼는 따뜻함과 안락함인지,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진 송이는 혹시나 들킬까 하품하는 척 눈물을 닦았다.

송이엄마

 “송이 너는 남자 친구 없어?”

엄마의 기습적인 질문에 수박을 먹던 송이는 사레가 들려 버렸다.

송이

 “응? 큽…아…. 남자친구?”

송이는 자신도 모르게 슬쩍 수혁의 눈치를 보았다.

수혁은 그런 송이의 눈치에 어깨를 들썩하고 수박을 크게 베어 물었다.

송이엄마

 “없어?”

송이

 “어…어….”

송이는 대충 얼버무리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이

 “엄마…. 나 좀 피곤해서 먼저 들어갈게.”

아무렇지 않은 척 방으로 들어온 송이는 또다시 떠오르려는 제영과의 기억을 억지로 밀어내며 베개에 고개를 묻었다.

만약 제영과 헤어지지 않았다면 엄마의 질문에 당당하게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할 송이었다.

아무리 부모님이 반대해도 송이 자신은 제영과 함께 라면 그 반대도 이겨 낼 자신감이 있었다.

수혁에게 허락을 받아 낸 것처럼…둘이라면 함께라면 뭐든 이겨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울고도 남은 눈물이 있는지 자꾸 비집고 나오려는 눈물에 송이는 결국 소리 죽여 눈물을 쏟아내 그날 밤도 울다 지쳐 잠들어버렸다.

***

박형사

 “하 경위님 날씨도 더운데 커피 한잔 하실래요?”

제영

 “아…. 저는 괜찮…”

박형사

 “날 더운데 아이스 커피 한잔하고 가요~”

박 형사의 성화에 결국 제영은 송이가 일하는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섰다.

딸랑/하는 익숙한 소리가 들리고 제영의 시선은 자신도 모르게 송이를 찾고 있었다.

아르바이트생

 “어서 오세요~”

하지만 곧이어 들리는 낯선 목소리에 제영은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박형사

 “어? 송이 씨 아르바이트 그만뒀어요. 경위님?”

제영

 “네? 어….”

박 형사의 물음에 제영은 대충 얼버무리고 커피를 주문했다.

제영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이요.”

아르바이트생

 “5,000원입니다.”

제영은 저쪽에 앉아 있는 박 형사의 눈치를 보곤 조그맣게 물었다.

제영

 “근데…저 혹시 여기 일하던 송송이 씨라고….”

아르바이트생

 “아 송이 언니요? 얼마 전에 그만뒀어요.”

제영

 “아…. 네 감사합니다.”

커피를 받아 들고나오는 제영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자신 때문에 그만둔 거냐고 당장이라도 전화해서 묻고 싶었지만, 자신은 지금 그런 말 할 자격이 되지 못했다.

자신이 먼저 찾아오지 말라고 해놓고, 보지 말자고 해놓고, 당장 자신의 눈앞에서 송이가 사라지니까 마음이 아렸다.

박형사

 “하 경위 안 들어가요?”

제영

 “아…. 저는 조금 있다가 들어갈게요. 먼저 들어가세요.”

박 형사를 먼저 청으로 들여 보낸 제영은 안 주머니를 뒤적여 담배를 찾았다.

송이와 헤어진 후, 자연스럽게 끊었던 담배를 찾은 제영이다.

늘 담배가 있던 자리엔 송이가 늘 채워 놓은 사탕과 껌들이 가득했지만 이젠 담배가 다시 차지하고 있었다.

만약 송이가 이 모습을 봤다면 엄청 옆에서 잔소리했을 텐데…

불을 켜고 담배를 깊숙이 빨아들인 제영은 지금 이 순간조차도 송이를 떠올리는 자신의 모습에 피식 실소가 흘렀다.

제영은 담배를 피우며 주머니를 뒤적여 휴대폰을 켰다.

휴대폰 액정 가득 웃고 있는 송이의 모습에 만져지지 않는 송이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연신 액정만 만지작거리며 담배를 태웠다.

제영

 “원치 않은 이별이라…. 나도 하기 힘들다….”


내 경찰아저씬데요?37화 - 보고 싶어

송이엄마

 “이제 그만 일어나지?”

어느새 1시를 가리키는 시곗바늘에 한 여사는 송이의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휙 걷어 버렸다.

송이

 “응…”

송이엄마

 “얼른 일어나서 밥 먹어.”

송이

 “으응….”

무거운 몸을 일으킨 송이는 머리만 질끈 묶고 식탁에 앉았다.

송이엄마

 “너 혼자 있을 때 매일 이렇게 늦게 일어나지?”

송이

 “응? 아니 집에 오니까 편해서 그렇지 편해서.”

송이엄마

 “아침도 안 챙겨 먹을 거 아냐.”

송이

 “아니 빵이라도 먹고 그래 근데 오빠는?”

송이는 엄마의 잔소리 폭탄이 터지기 전에 얼른 말을 돌렸다.

송이엄마

 “서준이 데리러 나갔어.”

송이

 “준이? 아 맞다 오늘 온다 그랬지.”

잠시 후,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수혁과 서준이 들어왔다.

송이

 “준아!”

서준

 “이제 일어난 거야?”

송이

 “어? 어….”

서준의 말에 송이는 머쓱한 듯, 머리를 매만졌다.

송이엄마

 “우리 서준이 왔어? 어째 너도 얼굴이 말랐어~엄마가 보내 준 홍삼은 잘 먹고 있어?”

서준

 “에이 하나도 안 말랐는데 엄마가 챙겨 준 건 다 잘 챙겨 먹고 있어요~”

어째 모녀 사이보다 더 모자 사이 같은 두 사람 사이에서 송이는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수혁

 “송송이 그러고 서 있지 말고 들어가서 씻고 나와.”

송이

 “어….”

서준과 엄마 사이에서 멍하니 서 있던 송이는 얼른 욕실로 향했다.

***

수련

 “하 경위!”

제영

 “네? 아 네 팀장님.”

수련

 “손!!”

수련의 말에 그제야 자신의 손에 느껴지는 찌릿한 느낌에 얼른 커터 칼을 내려놓고 손가락을 감싸 쥐었다.

수련

 “정신을 어디다 두고 온 거야.”

수련은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제영의 손가락을 감쌌다.

꽤 깊게 베였는지 하얀 손수건은 금세 빨갛게 물들었다.

제영

 “아 괜찮아요.”

찌릿찌릿 몰려오는 기분 나쁜 아픔에 제영은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수련

 “손 봐봐.”

숙직실에서 구급상자를 가지고 온 수련이 손수건을 치우자 꽤나 깊게 베인 상처엔 아직도 피가 배어 나왔다.

수련

 “꽤 상처가 깊은데 소독하고 병원 가 봐.”

제영

 “괜찮아요.”

수련은 소독약과 연고를 꺼내 조심조심 상처를 치료했다.

수련

 “무슨 생각을 했길래 그래.”

제영

 “아니에요. 아무것도.”

수련

 “그렇게 힘들어할 거면서 왜 놔줬어.”

제영의 상처에 밴드까지 단단히 붙여 준 수련은 제영의 어깨를 툭 한번 쳐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련의 말에 서준은 그저 멍하니 서서 빨갛게 물든 밴드만 만지작거렸다.

***

송이

 “어디 가게?”

수혁

 “영화 보러.”

송이

 “영화? 둘이?”

서준

 “아니 너랑 셋이.”

송이

 “저기 나는 그냥 집에…”

수혁

 “그럼 서준이랑 나랑 둘이 가리?”

송이

 “그냥 둘이 다녀와 나는 그냥 집에….”

서준

 “송아야 같이 가자 응?”

결국, 두 사람의 성화에 못 이긴 송이는 두 남자 사이에 껴서 영화관으로 향했다.

하필이면 골라도 손수건 없이 볼 수 없다는 슬픈 영화인지, 송이는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다.

서준

 “이거 되게 슬프다던데.”

서준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송이를 바라보았다.

그런 서준과 눈이 마주친 송이는 괜찮다는 듯 옅게 미소를 지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스크린 가득 행복한 연인의 모습이 담겼다.

영화는 평범한 연인들의 연애로 러닝 타임을 채웠고, 중반을 넘어가면서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이 헤어지는 내용이 나왔다.

그리고 결국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하고, 각자의 삶에서 서로를 그리워했다. 알고 보니 남자주인공이 불치병에 걸려 여자를 놓아준 것이었고 결국 남자주인공은 세상을 떠났다. 남자주인공의 장례식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는 여자주인공을 보며 송이도 함께 눈물을 쏟았다.

어깨까지 들썩이며 눈물을 흘리는 송이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서준은 못 본 척 영화에 다시 시선을 돌렸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송이는 퉁퉁 부은 두 눈을 가리기 위해 가방을 뒤적여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수혁

 “송송이 너 엄청 울었나 보다.”

송이

 “어…. 영화가 엄청 슬프네….”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하며 저만치 걸어가는 송이를 수혁은 미심쩍은 표정을 하고 송이의 손목을 붙잡아 세웠다.

수혁

 “너 무슨 일 있지.”

송이

 “어? 아니 영화가 슬퍼서 좀 많이 울었다니까.”

수혁

 “너 방에서 매번 우는 소리 다 들었거든 모르는 척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서준이 너는 뭐 알지?”

갑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는 수혁의 시선에 서준은 얼른 고개를 돌려 시선을 회피했다.

수혁

 “뭐야 무슨 일인데.”

송이

 “오빠 우리 술 한잔하고 들어가자.”

송이의 말에 세 사람은 근처 술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

송이

 “소주 세 병하고 치킨 한 마리 주세요.”

곧이어, 술과 안주가 나오고 송이는 말없이 소주를 잔에 따랐다.

그런 송이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수혁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수혁

 “…헤어졌냐.”

수혁의 말 한마디에 소주잔을 집던 송이의 손이 멈칫했다.

송이

 “…응.”

송이의 대답에 수혁은 아무 말 없이 잔에 담긴 소주를 들이켰다.

수혁

 “서준이 너는 알고 있었어?”

서준

 “…네.”

수혁

 “그렇게 허락해 달라고 그러더니 왜 헤어진 거야?”

송이

 “미안해서 옆에 있을 수가 없데….”

수혁

 “뭐?”

송이

 “자기 옆에 있으면 내가 다친 데…. 그래서 놓아 준데..”

수혁

 “너…병원에 입원했던 게 그 자식 때문이야?”

송이

 “……”

수혁의 물음에 송이는 아무 말 없이 연거푸 잔만 비웠다.

***

제영

 “이모 여기 소주 한 병 주세요.”

수련의 성화로 일찍 퇴근한 제영은 바로 집으로 향하지 않고 동네 포장마차로 향했다.

안주도 없이 잔만 계속해서 기울이던 제영은 술에 취할수록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송이의 얼굴에 휴대폰을 꺼냈다.

휴대폰 액정 가득 웃고 있는 송이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그리움을 달래는 제영이다.

수련

 “혼자 무슨 청승이야.”

제영의 건너편에 자리를 잡고 앉은 수련은 제영이 마시고 있는 잔을 뺏어 들고 소주를 따라 마셨다.

수련

 “크으 좋다.”

제영

 “뭐예요 선배.”

수련

 “혼자 너무 쓸쓸해 보여서 합석 좀 했는데 나 도로 갈까?”

제영

 “이모 여기 잔 하나만 더 주세요.”

수련

 “이모 여기 우동도 하나 주세요.”

우동 한 그릇을 안주로 삼아 아무런 대화 없이 술잔만 기울이는 두 사람이다.

수련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도 하고 슬프면 울기도 하고 그래 좀.”

제영

 “괜찮아요 나.”

수련

 “하나도 안 괜찮은 얼굴로 괜찮다고 하면 괜찮아져?”

제영

 “그냥 매일 매일 보고 싶고 그리운 거 빼고 버틸 만해요 나.”

수련

 “그게 안 괜찮은 거야.”

제영

 “이모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제영은 아무 대꾸 없이 연거푸 소주잔만 비웠다.

***

수혁

 “얘 나한테 좀 업혀줘.”

서준

 “네!”

송이

 “나 걸어갈 수 있다니까아!”

서준

 “송아야 잠깐만.”

서준은 비틀거리는 송이를 부축해 수혁의 등에 업혀 주었다.

송이

 “걸어갈 수있다고오!”

수혁

 “조용히 해라 송송이.”

송이

 “내려줘어!! 내려달라고오!”

수혁

 “야야! 가만히 있어!”

수혁의 등에서 발버둥 치던 송이는 결국 눈 깜짝할 새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서준

 “송아야!”

수혁

 “야! 송송이!”

송이

 “흐어어어엉 아프잖아!”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는 송이의 모습에 두 남자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송이

 “하 경위님 보고 싶어…나 얼굴 한 번만 보고 오면 안 돼? 오빠 나 하 경위님한테 데려다줘…응?

제영을 찾으며 통곡을 하는 송이의 모습에 두 남자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그저 송이의 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서준

 “송아야 일단 오늘은 집에 가자.”

먼저 정신을 차린 서준이 송이를 부축해 일으켰고, 하루 종일 눈물을 쏟은 송이는 축 처진 채 서준에게 몸을 기댔다.

수혁은 그런 송이를 엎었고,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송이는 수혁의 등에서 곤히 잠이 들었다.

***

수련

 “제영아 정신 좀 차려봐 어?”

제영

 “어! 편의점 가요 편의점!”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던 제영은 결국 주량을 넘어서고 말았다.

수련은 비틀거리며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는 제영을 부축했다.

제영

 “딸기 우유가….”

제영은 딸기 우유 하나를 집어 들었다.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제영은 편의점 의자에 앉아 딸기우유를 마셨다.

수련

 “너 딸기 우유 좋아했어?”

수련의 물음에 제영은 아무 대꾸 없이 딸기우유를 벌컥 들이켰다.

제영

 “달다…이렇게 달기만 한 게 뭐가 좋다고….”

오늘따라 왠지 더 달게만 느껴지는 딸기우유에 제영은 채 다 마시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제영

 “선배 조심히 가요 나 먼저 들어갈게…”

제영은 자신을 부축하려는 수련에게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집으로 향했다.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제영은 옷도 채 갈아입지 못하고 침대에 누웠다.멍하니 누워 천장을 바라보던 제영은 짧게 울리는 진동소리에 손을 뻗어 휴대폰을 확인했다.

[우리 200일! 경위님 200일 동안 사랑해줘서 고마워요♡ 앞으로도 많이 사랑해요. 우리.]

제영

 “하…”

한 달 전에 예약 전송을 해 놓은 송이의 문자였다. 200일 잊어버리면 안 된다며 한 달 전부터 미리 예약 문자 해놓는다던 송이의 들뜬 얼굴이 떠올랐다. 겨우 참고 있던 그리움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제영은 두 눈을 꾹 감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

송이

 “으음….”

쓰린 속을 부여잡고 일어난 송이는 무거운 몸으로 거실로 나왔다.

서준

 “속은 괜찮아?”

송이

 “어…. 어….”

송이엄마

 “이리 와서 해장하세요. 따님.”

송이

 “아…. 엄마….”

송이엄마

 “얼른 와서 앉아 너 기다리느라 수혁이랑 준이도 밥 못 먹었어.”

송이

 “먼저 먹지….”

송이가 미안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자, 서준이 송이에게 무언가를 쑥 내밀었다.

서준

 “자, 너 술 먹고 나면 이걸로 해장하잖아.”

서준이 내민 건 오랜만에 보는 딸기우유였다.

딸기우유를 보자 또다시 떠오르는 제영과의 추억에 고개를 흔드는 송이다.

서준

 “송아야?”

송이

 “어…. 어 고마워.”

생각하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자꾸만 불쑥불쑥 떠오르는 그의 모습과 그와 함께한 추억들이 힘들게 했다.

송이엄마

 “밥 먹고 나서 마셔, 자 얼른 밥 먹자.”

밥알이 모래알같이 꺼끌거리는 거 같아 송이는 앞에 놓인 북엇국만 떠먹었다.

그 모습을 본 수혁이 송이가 좋아하는 메추리알 장조림 하나를 집어 송이의 밥에 놓아주었다.

수혁

 “팍팍 많이 먹고 기운 차려.”

수혁의 말에 송이는 자꾸만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밥으로 틀어막았다.

꾸역꾸역 밥 반 공기 정도를 비운 송이는 방으로 들어와 컴퓨터를 켰다.

오랜만에 메일을 확인하기 위해 메일함을 클릭한 송이는 수백 개의 스팸 메시지 중 그리운 이름을 발견했다.

[사랑하는 송이 씨에게.]

송이는 떨리는 손으로 메일을 클릭했다.

[내가 말했죠? 우리 200일 절대 안 잊어버린다고.

송이 씨가 예약 문자 해 놓기 일주일 전에 미리 나는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어요.

지금은 송이 씨 데려다주고 집에서 혼자 맥주 한잔하는 중이고.

이 메일을 쓰면서 또 한 번 송이 씨 생각을 하네요.

송이 씨를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떠올리다 보니 우리 참, 사건 사고들이 잦았던 거 같아요.

그런 많은 사건을 겪으면서도 내 옆에서 날 사랑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송이 씨.

내가 말주변도 없고 글솜씨도 없어서 어떻게 해야 내 마음이 송이 씨한테 잘 전달될까 고민을 해봤는데 그냥 내가 송이 씨를 사랑하는 마음 그대로 이렇게 글로 적어봅니다.

남들처럼 평범한 연애, 자주는 아니더라도 우리 남들 해보는 건 다 해봅시다.

조금 스펙타클한 연애가 될 테지만 절대 송이 씨가 다치거나 위험한 일은 없게 노력할 겁니다.

난 항상 송이 씨 볼 때마다 약속해요. 끝까지 송이 씨 지킬 거라고. 나 자신에게 그리고 송이 씨에게.

아 쓰다 보니 너무 길어지네…

벌써 맥주 한 캔도 다 비워가요. 송이 씨 우리 앞으로 2,000일 아니 20년 아니 평생 더 깊이 더 많이 사랑합시다.

송이 씨가 날 사랑하는 것보다 딱 10배 더 내가 송이 씨를 사랑할게요.

고마워요, 미안해요…그리고 정말 많이 사랑합니다.

당신만의 경찰 하제영.]

눈물 때문에 뿌옇게 흐려진 시야를 벅벅 닦으며 편지를 다 읽은 송이는 휴대폰을 꺼내 기념일을 확인했다.

액정엔 아주 선명하게 200일♡ 이라는 글자가 환하게 떠올랐다.

잊힐 만하면 더욱더 짙어지는 그와의 추억에 송이는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만 퍽퍽 내리쳤다.

송이

 “보고 싶어 죽겠어!!! 너무 보고 싶어 죽겠는데 나 어떡해!!! 아직 사랑하는데 어떡하냐고!!!!!!”

송이의 울부짖음에 놀란 서준이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서준

 “송아야!!”

송이

 “서준아 나 어떡해! 나 좀 어떻게 해줘…너무 보고 싶어서 미칠 거 같아…서준아 나 어떡해!!!”

서준은 그런 송이를 품에 꽉 껴안았다.

송이

 “원래…이렇게 힘든 거야…? 그 사람도…이렇게 힘들까?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아플까…?”


내 경찰아저씬데요?38화 - 헤어질 수 없어요

제영

 “몇 시야….”

숙취에 찌든 얼굴로 잠에서 깬 제영은 환하게 들어 오는 햇빛에 두 눈을 찡그리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제영

 “허…”

시간은 어느새 출근 시간을 훌쩍 지나 있었고, 휴대폰엔 수련이 보낸 문자 한 통이 와있었다.

수련

 [며칠 쉬다 나와. 이다음부턴 휴가 없다.]

문자를 확인한 제영은 마음 놓고 조금 더 눈을 붙였다.

지이잉//

오랜만에 숙면을 취하던 제영은 길게 울리는 진동에 미간을 찌푸리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제영

 “네…. 하제영 입니다.”

할머니

 [여태 잤어? 출근은?]

제영

 “아 할머니…. 쉬는 날이에요….”

할머니

 [그때 다녀가곤 전화도 없고 너 좋아하는 장아찌 담아 놨어 가져가 먹어.]

제영

 “다음에…. 할머니 다음에 갈게요.”

할머니

 [쉬는 날이라며 잠깐 와서 가져가 서영이도 좋아하잖어.]

제영

 “…네….”

통화를 마친 제영은 욕실로 향했다.

무거운 몸을 찬물로 씻고 나니 조금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샤워를 마친 제영은 머리도 채 말리지 않은 채 차에 올라탔다.

***

송이

 “…미안해 준아.”

서준의 품에 안겨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눈물을 쏟아 낸 송이는 자신의 눈물로 흠뻑 젖은 서준의 옷자락을 보며 잔뜩 미안한 표정을 했다.

서준

 “너 괜찮아…?”

송이

 “…….”

서준

 “그렇게 보고 싶으면 보러 가자.”

송이

 “…그러고 싶은데…내가 찾아가면 경위님이 더 힘들 거 같아….”

자기가 그렇게 힘든 상황에도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송이의 태도에 서준은 화가 났다.

서준

 “너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질 거 같아 알아? 그렇게 보고 싶으면 찾아가! 가서 화를 내던 붙잡고 울던 해!”

송이

 “……”

서준

 “아직 못 놓겠으면 매달려 봐! 나 한 번만 더 봐달라고 애원이라도 해! 그래도 안 잡히면 그땐 깨끗하게 잊어.”

송이

 “…내가 매달리면 그 사람이 나 다시 봐줄까?”

잔뜩 흐트러진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묻는 송이의 모습에 서준은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못했다.

***

제영

 “할머니 저 왔어요.”

할머니

 “어째 살이 쏙 빠져서 왔대~ 이리 와서 앉어.”

할머니는 제영의 마른 얼굴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제영

 “괜찮아요. 잘 챙겨 먹고 있어….”

제영은 할머니가 걱정할까 애써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할머니

 “그 아가씨는 잘 지내?”

할머니가 송이의 안부를 묻자 제영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제영의 굳어진 표정을 눈치챈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밥 먹고 가.”

잠시 후, 할머니는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가득 저녁상을 차려왔다.

제영

 “할머니 뭐 이렇게 많이 차렸어요.”

제영은 얼른 상을 받아 들고 원두막에 내려놓았다.

할머니

 “우리 손주 살 좀 찌워서 보내려고.”

할머니는 앉자마자 커다란 닭 다리를 뜯어 제영의 그릇에 놓아주었다.

할머니

 “제일 큰놈으로 잡았어. 많이 먹고 가.”

제영

 “할머니도 얼른 드세요.”

할머니

 “많이 먹어.”

할머니는 저녁 식사 내내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제영의 그릇만 채워주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할머니는 내일 출근해야 하는 제영을 걱정했다.

할머니

 “내일 출근 해야 하잖어.”

제영

 “며칠 휴가받았어요. 자고 가도 돼.”

할머니

 “그려 나가서 산책이라도 좀 하고 와.”

제영

 “네 다녀올게요.”

제영은 슬리퍼를 끌고 동네로 나왔다.

초저녁인데 벌써 어두워진 시골 거리는 가로등이 없으면 정말 암흑천지였다.

제영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천천히 길을 따라 걸었다.

조금 걷다 보니 송이와 함께 놀던 계곡이 나왔다.

제영은 본인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송이와 오기 전엔 어렸을 때 추억이 떠오르던 곳이었는데 이젠 송이와의 추억이 먼저 떠올랐다.

제영

 “참 병이다….”

계곡을 지나쳐 걸어가면서도 곳곳에 묻어 있는 송이와의 추억에 제영은 발걸음을 멈추고 눈에 보이는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렇게 별이 많은 건 처음 봐요.’

이 와중에도 반짝이는 눈으로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바라보던 송이의 모습이 눈에 선해진 제영은 그 벤치에서조차도 벌떡 일어나 서둘러 할머니 댁으로 뛰어갔다.

***

송이엄마

 “더 있다. 가지 아직 방학 더 남았잖아.”

송이

 “아르바이트…. 때문에 취업 준비도 해야 하고….”

송이엄마

 “반찬 챙겨 준 거 다 먹으면 연락해 택배로 보내 줄게.”

송이

 “알겠어요. 중간에 또 올게.”

송이엄마

 “날씨 더운데 입맛 없어도 밥 잘 챙겨 먹어 알겠지?”

송이

 “알겠어…. 걱정하지 말아요.”

수혁

 “태워다 준다니까.”

송이

 “버스 있는데 힘들게 뭐하러…. 나 혼자 갈 수 있어 오빠.”

서준

 “저도 가볼게요.”

송이엄마

 “그래 서준이도 조심히 가고 우리 송이 좀 옆에서 잘 좀 봐줘.”

서준

 “걱정 말아요. 엄마.”

결국, 송이는 본가에 온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서준과 함께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서준

 “송아야.”

송이

 “준아 나 잘래 이따가 얘기하자.”

서준

 “그래….”

송이는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았다. 잠이 오는 건 아니지만 억지로 잠을 청했다.

***

제영

 “가볼게요.”

할머니

 “반찬 다 떨어지면 또 와 밥 잘 챙겨 먹고.”

제영

 “반찬 사 먹어도 된다니까요. 힘들게 내 것까지 하지 않아도 돼요.”

할머니

 “서영이는 아무거나 먹으면 안 되잖어.”

제영

 “…. 가볼게요.”

제영은 할머니가 바리바리 챙겨 주신 반찬을 뒷좌석에 챙겼다.

제영

 “식사 잘하시고 영양제랑 비타민 잘 챙겨 드세요.”

할머니

 “어여 가.”

제영

 “갈게요.”

제영은 꾸벅 인사를 하곤 운전석에 올라탔다.

할머니

 “제영아.”

창문을 두드리며 자신을 부르는 할머니의 목소리에 제영은 창문을 내렸다.

제영

 “네.”

할머니

 “다음에 올 땐 그 아가씨랑 같이 와.”

제영

 “…. 할머니.”

할머니

 “알겠지?”

할머니의 말에 제영은 아무 말 없이 인사를 꾸벅하곤 차를 출발시켰다.

***

제영

 “서영아.”

할머니 댁에서 제영은 자신의 집이 아닌 서영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서영

 “오빠!”

오랜만에 보는 제영의 모습이 반가운 서영이 환하게 웃으며 제영을 맞았다.

제영

 “잘 있었어? 얼굴이 좋아졌는데?”

서영

 “오빠는 얼굴이 엄청 안 좋아졌는데?”

제영

 “나 괜찮은데?”

서영의 앞에서 애써 괜찮은 척 웃어봤지만, 서영은 귀신같이 제영의 상태를 알아봤다.

제영

 “할머니가 서영이 좋아하는 매실 장아찌 싸주셨어. 이따 저녁에 먹자.”

서영

 “할머니 댁 다녀왔어?”

제영

 “응 하룻밤 자고 왔어.”

서영

 “경찰서는?”

제영

 며칠 휴가받았어. 오빠 오늘 자고 갈 건데?”

서영

 “정말? 우와!”

오래간만에 제영과 오랜 시간을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서영은 뛸 듯이 기뻐했다.

그런 서영의 모습에 제영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영양사

 “하서영 씨 저녁 식사 나왔습니다.”

어느덧 시간은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고, 제영은 서영의 앞에 식사를 놓아주었다.

제영

 “잠깐만 할머니가 서영이 주라고 반찬 많이 싸주셨어.”

냉장고에 미리 넣어 둔 반찬을 조금씩 덜어 서영의 식탁에 놓아주는 제영이다.

서영

 “오빠는 저녁 안 먹어?”

제영

 “서영이 먹는 거 보고 나가서 먹고 올게.”

서영

 “같이…. 먹으면 안 돼? 어차피 나 밥 다 못 먹는데….”

자신의 눈치를 보며 밥을 덜어내는 서영의 모습에 제영은 알겠다며 숟가락을 들었다.

서영

 “매일 혼자 먹다가 같이 먹으니까 좋다.”

환하게 웃으며 밥을 크게 떠먹는 서영의 모습에 제영은 마주 보고 웃어 주었다.

늘 병실 안에서 혼자 밥을 먹고 하루 종일 갇혀 있을 서영의 모습이 눈앞에 선해 제영은 입안에 넣은 밥알이 모래알 같아 넘기지 못했다.

제영은 옆에 놓인 생수통을 집어 들어 벌컥 들이켰다.

***

송이

 “준아 나 들를 데가 있어 너 먼저 가.”

서준

 “너 설마….”

송이

 “이따 연락할게.”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송이는 자신을 붙잡는 서준을 피해 택시부터 잡아탔다.

송이

 “기사님 서울청이요.”

택시는 저만치 멀어지고 서준은 불안한 눈빛으로 송이가 탄 택시를 바라보았다.

택시에서 내린 송이는 거침없이 서울청 안으로 들어섰다.

박형사

 “송이 씨?”

주변을 둘러 보는 송이의 모습을 먼저 발견한 박 형사가 반갑게 다가와 아는 척을 했다.

송이

 “아…. 안녕하세요. 형사님.”

박형사

 “하 경위 보러 왔어요?”

박 형사의 물음에 송이는 고개만 끄덕였다.

박형사

 “어…. 하 경위 집에 있을 텐데…. 휴가 냈어요.”

송이

 “…아…네.”

어쩐지 힘이 쭉 빠지는 기분에 송이는 힘없이 뒤돌아섰다.

박형사

 “아! 송이 씨!”

송이

 “네?”

송이가 뒤돌아보자 박 형사는 냉장고에서 꺼내 온 딸기 우유를 송이의 손에 쥐여주었다.

박형사

 “하 경위가 송이 씨 좋아한다고 이 딸기우유를 매일 사다 넣어 놓더라고 근데 송이 씨가 통 보이질 않으니…줄어들지를 않아…”

박 형사가 가리킨 냉장고 안엔 정말 송이가 좋아하는 딸기우유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 행동은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해요 경위님…?’

송이는 뒤돌아서서 무작정 제영의 집을 향해 달렸다.

***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계단을 뛰어 올라간 송이는 제영의 집 현관문 앞에서 숨을 몰아쉬었다.

송이

 “하아…. 경위님….”

송이는 그 힘든 와중에도 숨을 헐떡이며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하고 맑은소리가 복도 가득 울렸지만, 안에선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송이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계속해서 초인종을 눌렀지만, 제영은 나오지 않았다.

전화를 해봐야 하나 싶어 가방을 뒤적여 휴대폰을 꺼냈지만, 배터리가 다 닳아 켜지지도 않았다.

송이

 “어떡하지…”

현관문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며 발만 동동 굴리던 송이는 일단 기다려 보자 싶어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송이

 “…. 금방 오시겠지.”

***

서영

 “오빠 의자에서 안 불편하겠어?”

제영

 “괜찮아 얼른 자.”

제영은 서영의 이부자리를 봐주고 자신은 보호자용 간이침대에 몸을 뉘였다.

자신의 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길이였지만 제영은 몸을 한껏 구부려 자세를 잡았다.

서영

 “잘자 오빠.”

제영

 “…. 좋은 꿈 꿔 서영아.”

제영이 불을 끄고 잠시 후, 서영이의 새근거리는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제영

 “오빠가…. 항상 미안해…. 그리고…많이 사랑해 서영아.”

혹시나 서영이 깰까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던 제영도 곧, 스르르 잠이 들었다.

*

제영

 “오빠 조만간 또 올게. 밥 잘 챙겨 먹고 약도 잘 먹고.”

서영

 “알겠어~ 걱정하지 마라니까 오빠나 밥 잘 챙겨 먹어.”

제영

 “할머니가 주신 반찬 냉장고에 넣어 놨으니까 덜어 먹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오빠한테 전화하고.”

서영

 “네네 알겠습니다~ 얼른 가 오빠 차 막히겠다.”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서영의 모습에 제영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떼어 차에 올라탔다.

***

생각보다 막히지 않아 예상했던 시간보다 빨리 집에 도착한 제영은 피곤함에 뻣뻣하게 굳은 목을 주무르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의 현관문 앞으로 걸어가던 제영은 문 앞에 앉아 있는 익숙한 인영에 발걸음을 빨리해 달려갔다.

제영

 “송이 씨?!!”

처음엔 자신이 잘못 본 줄 알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니 송이가 맞았다.

문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잠을 자고 있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서둘러 송이를 흔들어 깨웠다.

제영

 “송이 씨!!”

송이

 “…경위님….”

흐릿한 시야로 보이는 제영의 모습에 송이는 그대로 제영의 품으로 쓰러져 버렸다.


내 경찰아저씬데요?39화 - 아직 사랑하잖아요

송이

 “으음….”

깨질 듯한 두통으로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눈을 뜬 송이는 주변을 둘러보다 자신의 방이 아닌 걸 확인하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어제 일을 가만히 되짚어 보기 위해 생각에 잠겼던 송이는 조심스럽게 열리는 문소리에 화들짝 놀라 다시 누워 이불을 덮고 자는 척을 했다.

제영

 “일어난 거 다 알아요.”

제영의 낮은 목소리에 송이는 움찔하며 일어났다.

제영

 “이거 마셔요.”

제영이 내민 건 딸기우유 한 팩이었다.

송이는 망설임 없이 딸기우유를 뜯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송이

 “하아 살겠다.”

제영

 “…. 정신 차렸으면 이제 집에 가요.”

송이가 채 우유를 다 마시기도 전에 제영은 차가운 말 한마디를 남기고 방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잠시 침대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던 송이는 정신을 차리고 방문을 벌컥 열고 나갔다.

송이

 “…경위님은 괜찮아요?”

제영

 “……”

송이

 “괜찮냐고 묻잖아요. 내가.”

송이는 제영의 앞으로 다가가 제영과 시선을 맞추며 물었다.

제영

 “…. 네 아주 잘 지내요. 나.”

송이

 “거짓말.”

제영의 까슬한 얼굴이 괜찮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데 제영은 괜찮다며 시선을 피했다.

제영

 “…. 그러니까 송이 씨도 이제 잘 지내요.”

송이

 “하나도 안 괜찮은 얼굴로 괜찮다고 하면 내가 ‘아 그렇구나! 경위님은 나 다 잊고 아주 행복하게 사는구나’ 라고 믿어야 해요?”

제영

 “……”

송이

 “나…경위님한테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러 온 건데.”

제영

 “송송이 씨.”

송이

 “나 자존심 같은 거 하나도 없어서 경위님한테 한번 붙잡혀 달라고 부탁하러 왔어요.”

제영

 “……”

제영은 송이의 애절한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송이

 “일단 내가 좀 살고 봐야 할 거 같아서…. 매일 눈물을 흘리는데…눈물샘이 마르지도 않아요…나 너무 힘들어요…우는 것도 힘들고…어디를 가던 경위님과 함께한 추억이 떠올라서 미칠 거 같아요….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아도…. 아니 꿈에서조차 경위님이 나와요…근데…. 정말 무서운 건 꿈에서조차도 경위님이 나를 모르는 척해…”

제영

 “…그만하고 가요.”

제영은 독하게 마음을 먹고 시선을 피했다.

송이

 “정말…. 괜찮아요. 경위님은…?”

제영

 “……”

송이

 “나…안 보고 싶었어요?”

송이는 뒤에서 제영을 끌어안으며 물었다.

제영은 입술 끝까지 올라온 보고 싶었다는 말을 애써 꾹꾹 밀어 넣었다.

송이

 “나는…엄청 보고 싶었는데…나는…아직 많이 사랑해요…”

제영

 “….가요.”

자신의 팔을 푸르고 방으로 들어가버린 제영의 모습에 송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

삼 일간의 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제영은 평소와 다름없이 아니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의 사건을 담당했다.

박형사

 “하 경위님 연내동 이남수 잠복 다녀오겠습니다.”

제영

 “같이 갑시다.”

박형사

 “하 경위님도요?”

제영

 “네.”

제영은 박 형사와 함께 연내동 살인사건 범인의 집으로 향했다.

요즘 들어 어떤 일이든지 열심히, 어쩌면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사건마다 궂은일 마다치 않고 나서는 제영의 모습에 박 형사는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굳이 박 형사는 더 이상 제영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괜찮아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괜찮냐고 묻는 것조차도 괜찮지 않을 테니까….

***

제영의 집에 다녀 온 후 송이는 더 이상 제영을 찾아가지 않았다.

그저 정신 줄을 놓고 하루하루 사는, 아니 버틴다는 표현이 맞았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끼니도 거른 채 잠만 자던 송이는 받지 않는데도 끈질기게 울리는 진동소리에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전화를 받았다.

송이

 “여보세요.”

서준

 [송아야 아직도 자?]

송이

 “아니…. 왜?”

서준

 [너 좋아하는 닭볶음탕 만들어 놨어 오라구….]

송이

 “준아 나 그냥…”

서준

 [수혁이 형이 너 제발 밥 좀 먹이라고 부탁했어….]

송이

 “…. 알았어…. 금방 갈게.”

수혁의 부탁이라는 서준의 말에 송이는 방에서 나와 나갈 채비를 했다.

***

딩동//

서준

 “송아야?”

송이

 “응….”

서준

 “얼른 들어와~”

서준은 송이가 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송이를 식탁에 앉혔다.

서준

 “잠깐만 기다려~”

식탁엔 전부 송이가 좋아하는 반찬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었다.

송이

 “이 반찬들 다 네가 만든 거야?”

서준

 “엄마가 그때 싸준 것도 있고 저 장조림은 내가 인터넷 보고 만든 거야 송아 너 밥 먹이려고.”

서준은 그릇 가득 닭볶음탕을 담아와 송이의 앞에 놓아주었다.

서준

 “내가 걱정하는 거 알면 조금이라도 먹어줘 알겠지?”

자신의 손에 숟가락을 쥐여주며 잔뜩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서준의 모습에 송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주변 사람들을 걱정시키지 싫은 송이였기에 억지로라도 밥을 밀어 넣었다.

서준

 “자 이것도 먹어 봐.”

서준은 앞에 앉아 송이의 숟가락에 반찬들을 놓아주기 바빠 정작 자신의 밥은 줄어들지 않았다.

송이

 “걱정하지 말고 너도 밥 먹어.”

결국, 보다 못한 송이가 반찬 하나를 집어 서준의 밥그릇에 놓아 주었다.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자신도 숟가락을 드는 서준의 모습에 송이는 넘어가지 않는 밥을 입안에 욱여넣었다.

***

박형사

 “하 경위 피곤하지 않아요?”

제영

 “괜찮아요…. 형사님은 괜찮으세요?”

박형사

 “나는 어제 좀 쉬었더니 괜찮은데…. 경위님은 요새 계속 밤샘했잖아.”

제영

 “괜찮아요.”

8시간이 지나도록 보이지 않는 범인 때문에 두 사람은 이 더운 날 에어컨도 틀지 못한 채 차 안에서 더위에 지쳐버렸다.

박형사

 “이 미꾸라지 같은 놈이 설마 눈치챈 건 아니겠죠?”

제영

 “조금만 더 기다려 보고 정 안 되면 집 안에 들어가 봅시다.”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에 얼음이 잔뜩 든 커피를 사와도 3분 만에 다 녹아버려 미지근한 물이 되어 버렸다.

박 형사는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오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웠고, 제영은 더위를 더 이상 참지 못해 잠깐 시동을 켜 에어컨을 틀었다.

에어컨을 쐬며 주변을 둘러 보던 제영은 주변에 보이는 눈에 익은 빌라에 그제야 이 동네가 서준이 사는 동네라는 걸 깨달았다.

‘송이 씨…. 잘 챙겨 주고 있겠지?’

그 순간 제영은 서준이 사는 빌라를 보면서도 송이를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 이젠 익숙해질 법도 했다.

잠시 긴장을 풀고 에어컨을 쐬던 제영은 저만치서 걸어오는 익숙한 모습에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두 눈을 찌푸렸다.

제영

 “송…. 이 씨?”

송이가 즐겨 입는 하얀 셔츠를 본 제영은 그제야 송이를 알아보고 자세를 낮추려 할 때 송이의 뒤에서 거리를 두고 따라오는 범인을 발견하고 크게 놀랐다.

아무리 봐도 송이를 노리며 뒤따르는 것 같은 범인의 모습에 제영은 서둘러 장비를 챙기고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려 범인 쪽으로 슬며시 다가갔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범인 쪽으로 다가선 제영이 기회를 보고 범인을 덮치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속으로 하나둘 셋! 을 외치려던 순간 범인이 송이의 뒤에서 송이를 확 끌어안았다.

송이

 “꺄아악!!!”

놀란 송이는 버둥거렸고 제영이 이남수에게 다가서려 하자, 이남수는 품속에서 칼을 꺼내 들어 송이의 옆구리에 갖다 댔다.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에 놀란 송이는 흡 하고 숨을 참았다.

제영

 “이남수!!! 칼 내려놔!!”

이남수

 “나 잡으려고 집 앞에서 주구장창 기다리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제영

 “칼 내려놓고 여자 이쪽으로 보내.”

제영은 범인이 흥분하지 않게 차분하게 말을 걸며 범인 쪽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이남수

 “더 이상 다가오지 마!”

제영이 자신에게 더 가까워지자 범인은 칼을 휘두르며 위협을 했다.

그 모습에 놀란 송이가 크게 소리도 내지 못하고 두 눈만 크게 뜬 채 제영만 바라봤다.

제영

 “저 여자는 아무 잘못도 없잖아. 인질은 놔주고 나랑 이야기합시다.”

제영은 차분하게 범인과 대화를 시도했고, 차로 돌아오던 박 형사는 제영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조심스럽게 범인의 뒤로 다가갔다.

이남수

 “내가 무슨 죄가 있어!!!”

극도로 흥분한 범인의 상태에 제영은 송이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어쩔 줄을 몰랐다.

제영

 “그래 일단 그 칼은 내려놓고 이야기하자.”

이남수

 “다가오지 마! 이 새끼들아! 다가오면 정말 찌른다!!”

송이의 목에 칼을 갖다 대고 협박을 하던 범인은 한 걸음 더 다가오려던 제영의 모습에 더 흥분해선 칼을 쥔 손에 힘을 줘 송이의 목에 깊은 상처를 냈다.

송이

 “아아악!! 살려주세요….”

송이의 하얀 목덜미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 눈이 돌아버린 제영이 거침없이 범인에게 다가갔다.

제영

 “야 이 새끼야!!!”

좀 전과는 확 달라진 눈빛으로 자신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는 제영의 모습에 당황한 범인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칼을 휘두르며 자신을 보호하는 것뿐이었다.

이남수

 “더…. 다…. 다가오지 마!!”

칼을 허공에 붕붕 휘두르며 제영을 막으려 했지만, 제영은 개의치 않았다.

이남수

 “다가오지 말라고!!!”

제영이 총을 겨누며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오자 극도로 흥분한 이남수는 송이를 더 위협하며 칼을 높이 치켜들었고 그 모습을 본 제영이 온몸으로 송이를 감싸 안았다.

송이

 “경위님!!!”

송이의 비명이 제영의 귓가를 울리고 하얀 와이셔츠는 빨갛게 물들어 버렸다.

송이

 “경위님!!! 안 돼요!! 경위님!!!”

***

송이

 “경위님!! 경위님 정신 차려 봐요!! 경위님!!”

범인의 칼을 그대로 몸으로 받아 낸 제영은 응급실로 옮겨졌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수술실로 들어가는 제영의 모습에 송이는 무서웠다.

송이

 “경위님!!”

의사

 “여기서부터는 들어가면 안 됩니다!”

제영의 손을 붙잡고 놓지 못하는 송이를 옆에 있던 박 형사가 말렸고, 잠시 후 수술 중이라는 빨간 불빛이 번쩍하고 켜졌다.

박형사

 “송이 씨…. 하 경위 괜찮을 거에요….”

수술 중이라는 빨간 불빛이 켜지는 순간부터 송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온갖 신들을 찾으며 간절하게 기도를 했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오직, 저 안에 혼자 들어가 있는 제영이 아무 탈 없이 수술이 마칠 수 있게 간절한 마음을 모아 기도를 하는 것밖에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기도를 하는 송이의 눈가엔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송이

 “제발…부탁드립니다…”

생각보다 길어진 수술 시간에 송이는 더욱더 초조해졌다.

잠시 후, 수술 중이라는 불이 꺼지고 수술실 문이 열렸다.

피곤한 표정으로 마스크를 벗으며 나오는 의사의 모습에 송이는 잔뜩 긴장했다.

의사

 “하제영 씨 보호자분.”

송이

 “네!”

의사

 “일단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송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수술이 잘 끝났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송이는 잔뜩 졸였던 마음을 조금 풀었다.

의사

 “그런데….”

하지만 곧바로 바뀌는 문장의 맥락에 송이는 다시 마음을 졸이며 의사의 입 모양에 집중했다.

의사

 “환자가 칼에 찔린 부위가 워낙 깊고 출혈양도 많아서…. 일단 경과를 좀 지켜봐야 할 거 같습니다.”

송이

 “경과를…. 지켜본다는 건….”

의사

 “…. 환자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 봐야 한다는 이야깁니다.”

송이

 “수술 잘 됐다면서요…근데 왜….”

의사

 “일단 경과를 지켜보죠.”

의사는 그렇게 무책임한 말을 남겨 두곤 휑하니 송이를 지나쳐 걸어가 버렸다.

의사가 사라진 자리만 멍하니 바라보던 송이가 갑자기 핑 도는 기분에 휘청거리자 그 모습을 본 박 형사가 얼른 뛰어가 송이를 부축했다.

박형사

 “괜찮아요?”

송이

 “박 형사님 경위님…일어날 거예요. 그쵸….”

박형사

 “그럼요 꼭 일어날 겁니다.”

송이

 “…. 절대 먼저 나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까…그 약속 꼭 지킨다고 했으니까…. 꼭 일어날 거예요….”


내 경찰아저씬데요?40화 - 나랑 연애해 줄래요

송이의 간절함이 아직 부족한 건지 제영은 3일을 넘게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송이는 집에서 간단한 짐을 챙겨와 제영의 옆에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회진을 올 때마다 의사는 계속해서 좀 더 지켜보자는 쓸데없는 말만 해댔고, 송이의 속은 타들어 갔다.

하지만 제영에 대한 굳은 결심으로 송이는 씩씩하게 제영의 옆을 지켰다.

송이

 “경위님 많이 피곤했나 보다…. 그래도 조금 오래 자는 거 같은데…. 이제 조금만 더 있다가 눈 뜨고 나 봐줘야 해요 알겠죠?”

송이는 제영의 얼굴을 닦아주며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혼잣말을 했다.

송이

 “나 혼자 두지 않기로 약속했으니까…. 그 약속 믿을게요 나….”

제영의 까슬한 얼굴을 송이는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

송이

 “미안해요…나 때문에….”

자신을 대신해 막아서던 제영의 빨갛게 물든 셔츠와 그 와중에도 자신을 살피던 제영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죄책감에 항상 괴로운 송이였다.

혹시나 제영이 자신의 울음소리를 들을까 입술을 꾹 깨물고 눈물을 삼켜내는 송이다.

*

그렇게 이틀이란 시간이 또 지나갔다.

송이는 여느 때처럼 수건에 물을 적셔와 제영의 얼굴과 손을 닦아주며 혼잣말을 했다.

송이

 “오늘도 날씨가 엄청 좋아요. 놀러 가기 진짜 좋은 날씨…경위님 일어나면 우리 저번에 갔던 동물원 갈래요? 이번엔 김밥 제대로 싸서 놀러 가요 그리고 저녁에는…. 한강 가서 맥주 마실까요?”

혼잣말이 익숙해진 송이는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도 제영을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송이

 “…경위님 목소리 듣고 싶다….”

송이는 제영의 손을 붙들고 고개를 묻었다.

병원 소독약 냄새 속에 옅게 배인 제영의 따뜻한 향에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는 송이다.

제영

 “…씨….”

제영의 손을 꼭 붙잡고 있던 송이는 귓가에 들리는 작은 소리에 몸을 일으켜 제영을 바라보았다.

송이

 “경위님!”

드디어 제영의 까만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송이

 “저…. 보여요?”

송이의 물음에 제영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송이는 서둘러 밖으로 나가 의사를 불러왔다.

병실에 들어온 의사는 곧바로 제영의 상태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의식을 완전히 회복했다는 진단을 내리고 그래도 아직 상처가 아물어야 하니 좀 더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의사

 “환자가 호흡을 스스로 하니까 이제 산소호흡기는 떼도 될 거 같습니다.”

의사의 말에 간호사가 제영의 얼굴을 감싸고 있던 호흡기를 뗐다.

의사와 간호사가 나가고, 제영과 단둘이 남은 송이는 제영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제영의 까만 눈동자를 보니 또다시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송이를 괴롭게 했다.

자신의 눈을 피하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이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송이를 불렀다.

제영

 “송이 씨….”

송이

 “네…?”

제영

 “왜…. 나 안 봐요.”

제영의 물음에 송이는 그저 입술을 꾹 깨문 채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삼켜 낼 뿐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제영

 “지금 울면 내가 달래 줄 수가 없는데….”

제영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송이는 결국 꾹꾹 눌러 참던 눈물샘이 터지고 말았다.

송이

 “미안해요…. 나 때문에….”

자신의 품에 얼굴을 묻고 목 놓아 우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어정쩡한 포즈로 링거가 꽂혀 있지 않은 한 손으로 송이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한참을 제영의 품에 안겨 눈물을 쏟은 송이는 뒤늦게 밀려오는 민망함에 얼굴이 빨개졌다.

제영

 “다 울었어요?”

송이

 “…. 네 죄송해요.”

제영

 “뭐가 죄송해요….”

송이

 “앞으로는 그러지 마요 정말.”

제영

 “앞으로도 이럴 겁니다.”

송이

 “……”

제영

 “송이 씨가 말한 약속…다 지켰어요 나.”

송이

 “누가 이렇게 다치면서까지 지키랬어요!?”

울컥하는 마음에 송이는 제영에게 소리를 버럭 질러버렸다.

제영

 “송이 씨….”

송이

 “이렇게 다치면서까지 지킬 필요 없었잖아요! 나는 이제 경위님한테 아무나인데! 이제 상관없는 사람인데…”

제영

 “……”

송이

 “…이번에도 의무감으로 지킨 거예요? 저번에 말한 것처럼 경위님은 대한민국 경찰이니까…대한민국 국민이 위험에 빠져있으면 당연히 구해야 하는 거니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송이의 입은 마음과 다른 말을 했다.

제영

 “…내가 경찰이라서 의무감도 없지 않아 있었어요…. 없다고 말 못 해요 그건….”

송이

 “…….”

제영

 “그런데 그 순간엔 내가 경찰이라는 것보다 한 여자를 사랑하는 한 남자로서 보호한 겁니다.” 

제영의 말에 송이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

박형사

 “하 경위!!!”

제영이 깨어났단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제일 먼저 달려온 박 형사는 침대에 앉아 있는 제영을 보고 덥석 끌어안았다.

제영

 “아…. 아 박 형사님 옆구리….”

박형사

 “아…. 아아 미안해요.”

제영의 신음소리에 박 형사는 얼른 품에서 떨어져 나와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제영

 “이남수는 체포했어요?”

이 상황에서도 범인을 체포했냐고 묻는 제영의 모습에 박 형사는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박형사

 “정말 천생 경찰이네요 하 경위는…. 이남수 그날 체포해서 넘겼습니다.”

박 형사의 말에 그제야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제영이다.

박형사

 “다행입니다. 진짜…. 다들 얼마나 걱정들을 했는지…큰일 날 뻔했어요. 정말.”

멀쩡하게 앉아 있는 제영의 모습에 박 형사는 내내 졸였던 마음을 편히 놓았다.

박형사

 “당분간 아무 생각 말고 푹 쉬고 다 나으면 출근해요.”

제영

 “금방 퇴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송이

 “더 있어야 해요.”

금방 퇴원할 거란 제영의 말에 송이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박형사

 “하하! 송이 씨가 하 경위 옆에서 단단히 지키고 있어서 마음이 좀 놓이네요.”

제영

 “아 박 형사님 저번에 말씀드린 심순복 할머니 부검 결과 나왔어요?”

박형사

 “제가 다 검토하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걱정 말고 쉬세요.”

제영

 “그럼 저번에 종로구 연쇄 살인 사건….”

박형사

 “아 안 되겠다 내가 여기 있으면 하 경위가 푹 쉬지 못하는 거 같아요 나 갑니다~”

자꾸만 일에 관해 물어보는 제영에 박 형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박형사

 “이제 퇴원할 때까지 안 올 겁니다~ 퇴원하고 봐요.”

제영

 “그 부검 결과 확인하고 재수사 들어가야 하는데….”

송이

 “경위님!!”

결국, 참다못한 송이가 버럭 소리를 쳤다.

제영

 “아…. 알겠습니다.”

박형사

 “송이 씨 잘한다~ 입원해 있는 동안 하 경위 잘 부탁해요~”

송이

 “걱정 마세요.”

박형사

 “그럼 전 이만 갑니다~”

송이

 “안녕히 가세요~”

박 형사가 병실 문을 나서자마자 송이는 제법 무서운 표정으로 제영의 앞에 앉았다.

송이

 “지금 경위님 환자인 거 알아요. 몰라요?”

제영

 “아니…그래도….”

송이

 “병원에 있는 며칠 동안만이라도……경위님 몸만 생각하면 안 돼요? 경찰이 경위님 혼자 있는 것도 아니고 경위님 없어도 알아서 다 하잖아요.”

제영

 “…. 송이 씨…. 그렇지만….”

송이

 “나는 그때 정말 경위님 잘못되는 줄 알았어요…경위님 못 깨어나는 동안…나 정말 너무너무 무서웠어요…이제 나도…. 생각해 주면 안 돼요?”

두 눈 가득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자신을 바라보며 묻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조심스럽게 송이를 품에 안았다.

제영

 “미안해요…. 내 생각만 했어요….”

***

송이의 정성 어린 간호와 제영의 평소 건강한 체력 덕에 제영은 금방 퇴원을 할 수 있었다.

송이

 “퇴원했어도 며칠은 쉬어야 하는 거 알죠?”

제영

 “네 알겠습니다~”

며칠은 푹 쉬어야 한다며 신신당부를 하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 올라탔다.

송이

 “벨트 매요.”

운전도 당분간은 금지라며 운전석엔 제영이 아닌 송이가 올라탔다.

제영

 “나…믿어도 되죠?”

송이

 “아 나 베스트 드라이버라니까요.”

송이는 자신만 믿으라며 호언장담을 하고는 부드럽게 액셀을 밟았다.

생각보다 훨씬 더 뛰어난 송이의 운전실력 덕에 편하게 제영의 집 앞에 도착했다.

제영

 “들어 왔다 가요.”

송이

 “그럼…그럴까요?”

송이는 오랜만에 오는 제영의 집이 괜히 긴장돼서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제영

 “소파에 앉아 있어요. 내가 금방 점심 해줄게.”

제영은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마자 주방으로 가 앞치마를 둘렀다.

송이

 “제가 할게요! 경위님은 앉아서 쉬어요.”

송이는 서둘러 주방으로 뛰어갔다.

제영

 “이정도는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송이 씨는 소파에 가서 앉아 있어요.”

제영은 송이를 기어이 소파에 착석시켜 놓고 음식을 준비했다. 결국, 송이는 어색하게 소파에 앉아 제영의 뒷모습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제영

 “집을 오래 비워서 재료가 별로 없네…송이 씨 김치 볶음밥 좋아해요?”

송이

 “네? 네…. 네!”

제영은 제법 익숙한 솜씨로 김치를 썰고 밥과 함께 볶기 시작했다.

혼자 거실에 앉아 있던 송이는 제영이 혼자 일하는 게 미안해 괜히 주방으로 가 기웃거렸다.

제영

 “배고파요?”

송이

 “아니 제가 뭐 도울 건 없나 해서요….”

제영

 “없어요. 이제 다했으니까 식탁에 앉아 있어요.”

잠시 후, 제영은 접시를 꺼내 볶음밥을 담아 송이의 앞에 먼저 놓아주었다.

제영

 “맛이 있을지 모르겠다.”

송이

 “맛있을 거 같은데요? 잘 먹겠습니다.”

송이는 먹음직스럽게 윤기가 흐르는 김치 볶음밥을 한 숟갈 크게 떠먹었다.

제영은 긴장되는 표정으로 송이의 입만 바라보았다.

몇 번 씹던 송이는 활짝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송이

 “진짜 맛있어요.”

잘 먹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만족한 듯 자신도 숟가락을 들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마치고 두 사람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서로에게 기댔다.

제영

 “살 거 같다.”

아무 말 없이 서로에게 기대 서로에게만 집중했다.

제영

 “잠깐만요.”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나온 제영은 송이에게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송이

 “이게 뭐예요…?”

제영

 “열어 봐요.”

송이는 조심스럽게 박스를 열었다.

송이

 “어? 이거….”

박스 안엔 저번에 지웅의 카페에서 이벤트 당첨으로 받은 커플 링이 목걸이로 만들어져 있었다.

제영

 “내가 민들레 꽃반지 끼워주면서 한 말 기억하죠. 세상에서 제일 예쁜 반지 끼워 주겠다고….”

송이

 “경위님….”

제영

 “근데 네 번째 손가락은 프러포즈할 때까지 비워 두고 싶어서….”

제영은 조심스럽게 송이의 뒤로 가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제영

 “예쁘다.”

송이의 목에서 반짝 빛을 내는 반지를 보며 제영은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송이

 “경위님은요?”

송이의 물음에 제영이 티셔츠 안에서 목걸이 줄을 빼내자 제영의 목에서도 송이와 같은 반지가 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제영은 송이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송이와 눈을 맞췄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영

 “염치없지만 송송이 씨 나랑…두 번째 연애해줄래요?”


내 경찰아저씬데요?41화 - 프러포즈 할 겁니다.

은애

 “야 송송이! 너 그동안 연락도 없고!!”

오랜만에 만난 송이를 만난 은애는 그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던 송이를 보자마자 껴안았다.

송이

 “미안…그럴 사정이 있었어….”

은애

 “내가 얼마나 걱정했던 줄 알아?”

송이

 “내가 사죄의 의미로 치킨 쏠게 가자!”

은애

 “야!”

송이

 “어?”

은애

 “내가 치킨에 막 넘어가고 어? 그럴 거 같아?”

송이

 “어.”

은애

 “넌 날 너무 잘 알아. 치느님은 언제나 옳습니다. 가자.”

은애는 송이의 팔에 팔짱을 끼며 서준이 일하고 있는 가게로 향했다.

송이

 “준아!”

은애

 “쭌!”

서준을 부르던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를 마주 봤다.

송이와 눈이 마주친 은애는 합하고 입을 막았다.

송이

 “너 뭐야?”

서준

 “은애…. 어? 소…. 송아야.”

주방에서 은애만 보고 활짝 웃으며 은애의 어깨를 감싸려던 서준은 옆에 서 있던 송이를 발견하곤 얼른 팔을 내렸다.

송이

 “두 사람 뭐야?”

서준

 “어? 어…. 송아야 저기…”

은애

 “우리 사귀어!”

은애는 당연히 송이가 엄청 놀랄 거란 생각으로 두 눈 꼭 감고 나름 폭탄선언을 했지만, 송이는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송이

 “언제부터?”

너무도 담담한 송이의 태도에 오히려 서준과 은애가 당황해 버렸다.

서준

 “어…. 얼마 안 됐어.”

송이

 “잘됐네! 축하해.”

은애

 “그게…. 다야?”

송이

 “뭐가 더 있어야 해?”

송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닭 다리를 뜯었다.

서준

 “아니 그건 아니지만….”

송이

 “은애가 처음에 준이 좋다고 했고, 준이 너도 은애가 좋으니까 사귀는 거 아냐?”

서준

 “응…. 그…. 그렇지.”

송이

 “근데 뭐 걸림돌 될 것도 없고 예쁜 사랑 하면 되는 건데 뭘.”

어째 생각보다 담담한 반응에 은애와 서준이 오히려 김이 빠진 기분이 들었다.

송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둘 다 너무 소중한 사람들이라…. 더 좋은 거 같아.”

툭 내뱉은 송이의 진심 어린 한 마디에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려 서로를 마주 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

제영

 “와 정말? 둘이 사귀어요?”

제영의 집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고 송이는 제영의 어깨에 기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오늘 서준과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했다.

송이

 “네 오늘 서준이 가게 다녀 왔는데 준이가 저보다 은애를 더 반가워 하더라구요 조금 서운했어요.”

사실 티를 내지 않았지만, 자신보다 은애를 더 반가워하는 서준의 모습에 잠깐 서운한 마음이 든 송이였다.

제영

 “내가 있는데 서운해?”

제영은 송이의 손을 꽉 잡으며 밉지 않게 눈을 흘겼다.

그런 제영의 태도에 송이는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제영

 “어어? 웃으라고 한 얘기 아닌데?”

송이

 “경위님 있어서 하나도~안 서운해요 됐죠?”

해사하게 웃으며 자신의 손을 더 꽉 잡는 송이를 보며 제영도 마주 보고 웃었다.

송이

 “아! 경위님 내일까지 쉬죠?”

제영

 “네 내일모레부터 출근해요.”

송이

 “그럼 우리 내일 데이트 가요!”

제영

 “데이트? 어디로?”

송이

 “비밀!”

*

다음 날, 송이는 아침 일찍부터 준비를 마치고 제영의 연락을 기다렸다.

잠시 후, 집 앞에 도착했다는 제영의 연락에 송이는 운동화를 꿰어 신고 후다닥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차 문에 기대 송이를 기다리던 제영은 계단을 뛰어 내려오는 송이의 모습에 얼른 뛰어가 송이를 붙잡았다.

제영

 “넘어지면 어쩌려고 뛰어와요.”

송이

 “경위님이 이렇게 잡아 주면 되죠~”

품에 폭 안긴 채 자신을 올려다보며 이야기하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제영

 “얼른 차에 타요~”

송이

 “네!”

제영

 “자 어디로 모실까요!”

송이

 “우리…. 첫 데이트 한 곳이요!”

제영

 “어…”

멈칫하는 제영의 태도에 송이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제영을 바라봤다.

제영은 아무 말 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

제영

 “여기 맞죠?”

제영의 차가 멈춘 곳은 둘의 첫 데이트 장소인 공원이었다.

제영의 물음에 송이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영

 “갑시다. 데이트하러.”

제영은 송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고 송이는 그 손을 꼭 붙잡고 걸었다.

하얀 벚꽃 잎이 흐드러지게 피워져 있던 그 날, 수줍게 제영의 손을 잡고 걷던 송이는 어느덧 하얀 눈꽃이 휘날리는 날 제영에게 기대 그 길을 걷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그저 서로의 온기에 기대 길을 걸었다.

송이

 “봄에 올 때랑은 분위기가 많이 다른 거 같아요.”

제영

 “조금 쓸쓸해 보이죠.”

송이

 “네…. 그래도 좋아요. 경위님 옆에 있어서.”

가끔 이렇게 툭툭 내뱉는 송이의 말에 제영은 가슴이 한 번씩 쿵 울렸다.

제영

 “나도 좋아요. 송이 씨 옆에 있어서.”

송이

 “아 맞다. 경위님 짠! 이거 봐요.”

송이는 발걸음을 멈추고 제영을 보며 발을 통통 굴렀다.

제영

 “어? 이거 그때 그 운동화네요?”

송이

 “네 이거 경위님이 처음으로 사준 운동화예요!

제영

 “예쁘다.”

자신을 보며 환하게 웃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의 심장은 처음과 같이 쿵쿵거렸다.

송이

 “아 배고프다. 경위님 우리 밥 먹으러 가요.”

제영

 “그래요.”

두 사람은 제법 쌀쌀하게 부는 겨울바람에 서둘러 차 안으로 들어왔다.

얼큰한 국물이 먹고 싶다는 송이의 뜻을 따라 근처 국밥집에 차를 세웠다.

***

송이

 “이모 여기 국밥 두 그릇 주세요.”

주문하자마자 바로 나온 뜨끈뜨끈한 국밥에 송이는 바로 밥을 말아 한 숟갈 크게 떴다.

송이

 “우와 여기 진짜 맛있어요.”

엄지손가락까지 치켜 올리며 복스럽게 밥을 먹는 송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던 제영은 잠시 고민하다 툭 한마디 뱉었다.

제영

 “사랑해요. 송이 씨.”

송이

 “푸흑..켁…. 네?”

제영의 말에 놀란 송이가 입안에 있는 밥을 바닥에 내뱉어 버렸다.

제영

 “괜찮아요?”

제영이 얼른 물을 따라 송이에게 건네자 송이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잠시 숨을 골랐다.

송이

 “네…. 네 괜찮아요.”

제영

 “뭘 그렇게 놀라요.”

송이

 “아니…. 그냥 너무 갑작스럽게 훅…. 들어오니까.”

제영

 “크하하!”

당황한 듯 빨개진 얼굴을 수시로 손 부채질을 하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웃음이 터져버렸다.

송이

 “우…. 웃지 마요!”

매번 자신이 먼저 스스럼없이 애정표현을 하면서도 제영의 갑작스러운 애정표현에 크게 당황해 버린 송이다.

식당이모

 “어머 둘이 너무 잘 어울린다 신혼부부야?”

빈 깍두기 접시를 채워주던 식당 이모의 말에 송이의 얼굴은 한 번 더 빨갛게 달아올랐다.

식당이모

 “새댁이 너무 예쁘네~”

식당 이모의 물음에 송이가 해명하기 위해 입을 떼려는 순간 제영이 더 빨랐다.

제영

 “네 저희 잘 어울리죠?”

식당이모

 “둘이 선남선녀야~진짜 잘 어울려~”

제영

 “감사합니다~여보 우리 잘 어울린대~”

제영의 능청스러움에 송이는 그저 빨개진 얼굴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인 채 국밥만 퍼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도망치듯 나온 송이는 옆에 있는 제영의 팔을 퍽퍽 때렸다.

송이

 “거기서 여보…. 가 뭐예요 여보가!”

제영

 “뭐 어때요 어차피 결혼할 건데.”

송이

 “어…. 네?”

제영

 “나랑 결혼 안 할 거예요? 나 조만간 프러포즈할 건데?”

온 얼굴로 당황했다는 표시를 내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능청스럽게 물었다.

송이

 “네? 겨…. 결혼…. 해…. 해야죠. 근데….”

제영

 “그럼 미리 연습해보죠. 뭐 가요 여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여보라고 부르는 제영의 모습에 송이는 황당한 얼굴로 제영의 뒤를 따랐다.

어쩐 지 제영이 조금, 아니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하며….

***

은애

 “그래서 결혼 얘기를 했다고? 경위님이?”

송이

 “응….”

은애

 “흠…. 넌 어떤데?”

은애의 물음에 송이는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뗐다.

송이

 “나도…. 결혼을 한다면 경위님이랑…하고 싶어.”

은애

 “근데 좀 빠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민이라는 거네….”

송이

 “…. 그렇지…. 나는 결혼하기엔 좀 이른 나이지만…. 경위님은 적령기잖아….”

송이는 애꿎은 빨대만 잘근거렸다.

은애

 “나는 송이 너가 결혼에 대한 확신이 들면 빨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거 같아.”

송이

 “졸업도 해야 하고…취직도 해야 하는데…내가 경위님 옆에 서기엔 아직은 많이 부족한데…나도 자리를 잡고….”

은애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하는데 자격이 뭐가 필요해, 서로 사랑하고 평생 사랑할 자신만 있으면 되지.”

송이

 “그래도…. 결혼은 현실이잖아…경제적 능력, 여건도 있어야 하고…”

은애

 “그래서 그런 것만 빼면 네 마음은 어떤데.”

은애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송이는 자기 자신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리곤 답을 알아낸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송이

 “지금 당장에라도…. 하고 싶어.”

은애

 “그럼 됐네! 해결!”

***

은애와 헤어지고 천천히 집까지 걸어가던 송이는 웨딩드레스가 진열된 진열장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순백의 화려함을 뽐내는 웨딩드레스의 자태에 송이는 홀린 듯 멍하니 드레스를 바라보았다.

제영을 만나기 전엔 이런 것들을 봐도 별 감흥이 없었던 송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자신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제영의 옆에 서 있는 상상을 하곤 했다.

아직은 먼 이야기 같던 결혼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은 기분에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컸다.

한참을 서서 웨딩드레스를 바라보던 송이는 길게 올리는 진동에 제영임을 확인하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송이

 “네 저예요.”

제영

 [어디에요?]

송이

 “은애 잠깐 만나고 집에 가는 길이에요.”

제영

 [송이 씨.]

송이

 “네?”

제영

 [내일…. 서영이한테…같이 갈래요?]

송이

 “…네 같이 가요.”

*

다음 날, 송이는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부산스럽게 준비를 했다.

송이

 “이게 좋으려나? 이게 낫나?”

결국, 제일 얌전해 보이는 베이지색 원피스로 결정한 송이는 거울 앞에 앉아 화장하기 시작했다.

집 앞에 도착했다는 제영의 전화가 오기 딱 1분 전 준비를 다 마친 송이는 서둘러 가방과 조금 큰 선물 상자를 챙겨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제영

 “뛰지 마라니까.”

송이

 “얼른 가요!”

송이는 제영의 차에 올라타서도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앞만 바라보았다.

제영

 “긴장돼요?”

송이

 “네? 네 많이….”

제영

 “동생인데요. 뭐 서영이도 분명히 송이 씨 좋아할 거예요.”

제영은 조용히 송이의 차가운 손을 살며시 잡았다.

제영의 따뜻한 온기가 손을 통해 전해져 오자 긴장된 마음이 조금 풀리는 것 같은 송이다.

차는 복잡한 고속도로를 지나 한적한 국도를 달렸다.

제영

 “이제 거의 다 왔어요.”

조금 더 달리다 보니 예쁘게 생긴 건물 하나가 눈에 띄었다.

송이

 “저기예요?”

제영

 “네 도착했어요.”

***

병원에 도착한 송이는 심호흡을 한번 하곤 천천히 제영의 뒤를 따라 서영이 있는 병실로 향했다.

똑똑/

서영

 “네.”

제영

 “오빠 들어간다~”

병실 문이 열리고 침대에 앉아 있던 서영이 벌떡 일어나 제영과 송이를 맞았다.

서영

 “오빠!”

제영

 “잘 있었어? 그때 준 반찬은 다 먹었고?”

서영

 “아직 좀 남았어, 저분이 오빠가 말한 분이야?”

자신에게 쏠리는 서영의 시선에 송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꾸벅 인사를 했다.

송이

 “아…. 안녕하세요. 송송이입니다. 바…. 반가워요. 서영 씨.”

서영

 “안녕하세요. 제영 오빠 동생 하서영이에요.”

잔뜩 긴장한 송이에게 서영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 덕에 조금 긴장이 풀린 송이는 서영이 내민 손을 덥석 잡으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곤 손에 들려 있는 선물 상자를 서영에게 내밀었다.

송이

 “아, 이건 선물….”

서영

 “이게 뭐예요?”

송이

 “별건 아닌데…. 한번 열어보세요.”

서영이 박스를 열자 박스 안엔 딸기 우유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송이

 “아…. 딸기 우유…. 좋아한다고 해서….”

송이의 귀여운 발상에 두 남매가 마주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서영

 “고마워요. 송이 씨 잘 먹을게요.”

괜스레 어색한 분위기 속에 서로 헛기침만 하고 있는 사이 제영이 전화를 받으러 병실 밖으로 나갔다.

더 어색해진 것 같은 분위기에 송이는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서영

 “저기…. 송이 씨.”

어색함을 먼저 깬 건 서영이었다.

송이

 “네? 네.”

서영

 “우리…. 오빠 잘 부탁해요.”

서영은 송이의 손을 꼭 잡았다.

서영

 “…오빠…. 나 때문에 지난 10년간 많이 괴로워했어요…. 이제…송이 씨가 옆에서 우리 오빠…행복하게 해주세요.”

서영의 진심 어린 부탁에 송이는 자꾸만 차오르는 눈물을 꾹 눌러 삼키곤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서영

 “오빠가…. 너무 행복해 보여서…정말 다행이에요….”

자신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훔치는 서영의 모습에 결국 같이 눈물이 터져 버린 송이는 서영을 끌어안았다.

송이

 “걱정하지 말아요…제가 평생 옆에서 경위님 행복하게 해줄게요.”


내 경찰아저씬데요?42화 - 평생 함께 하고 싶습니다

송이

 “내일부턴 자주 못 보겠네요….”

내일부터 출근해야 하는 제영을 오늘따라 더욱더 보내기 싫은 송이다.

출근하면 요즘처럼 자주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송이는 아쉬운 마음에 괜히 한번 제영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제영은 그런 송이의 마음을 알기에 아무 말 없이 그저 꽉 안아 주었다.

송이

 “벌써 보고 싶어질라 그래…”

평소에는 없던 송이의 투정에 제영은 푸스스 웃어버렸다.

송이엄마

 “송송이!”

뒤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송이는 화들짝 놀라 제영의 품에서 떨어져 나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송이

 “엄마…?”

본가에 있어야 할 엄마가 왜 자신의 집에서 내려오는지…. 송이는 잔뜩 당황한 표정으로 그저 멍하니 엄마를 쳐다보았다.

송이엄마

 “이놈의 지지배! 이 밤중까지 집에도 안 들어오고!”

미선은 송이를 보자마자 등짝부터 때렸다.

송이

 “아! 아퍼…! 아니…. 엄마 전화도 없이 어쩐 일이야….”

송이엄마

 “딸내미 집에 일일이 보고 하고 와야 해!”

송이

 “아니 그건 아닌데…. 엄마 혼자 왔어요?” 

송이엄마

 “아빠도 같이 왔지! 그나저나…. 이 분은 누구야?”

자신에게 꽂히는 시선에 제영은 얼른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제영

 “안녕하세요. 저는 하제영이라고 합니다.”

송이엄마

 “어머 우리 송이 남자 친구구나?”

엄마의 호들갑에 송이는 얼른 미선의 팔을 붙잡고 집으로 이끌었다.

송이

 “엄마 일단 우리 들어갑….”

송이엄마

 “어머 어머 들어왔다가요~안에 송이 아빠도 계시는데 인사하고 가요!”

송이

 “어…. 엄마? 경위님 바빠~일단 다음에….”

제영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어서 송이 씨도 피곤할 거 같아요~내일 제대로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송이엄마

 “어머 예의도 밝네! 그럼 내일 꼭 와요~”

제영

 “네 내일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송이엄마

 “조심히 가요~”

***

제영이 돌아가고 송이는 엄마와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느끼는 사람의 온기에 송이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송이아빠

 “우리 딸!”

송이

 “아빠~”

송이아빠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왔어~”

송이

 “어? 어…. 그게….”

아빠의 물음에 송이가 웅얼거리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엄마가 대신 대답을 했다.

송이엄마

 “여보 우리 송이가 남자친구가 생겼지 뭐야!”

송이아빠

 “뭐? 남자친구!!?”

미선의 말에 한석은 펄쩍 뛰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송이엄마

 “뭘 그렇게 놀래 이제 남자친구 사귈 나이지.”

송이아빠

 “봐…. 봤어? 어때? 어떤 노…. 아니 어떤 남자야!”

송이

 “어? 어…. 이름은 하제영이고…서울청 광수대 소속…경위….”

송이엄마

 “어머 경찰이야? 진짜 잘생겼던데 아! 나이는 어떻게 돼?”

송이

 “좀…. 많아.”

송이아빠

 “열 살 이상은 안 된다.”

아빠의 단호한 말에 송이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송이

 “딱 열 살 차이 나 서른셋.”

송이아빠

 “안돼!”

송이엄마

 “훤칠하니 잘 생겼더만 내일 인사 오기로 했어~”

송이아빠

 “누구 마음대로!”

송이엄마

 “내 마음대로.”

*

다음 날, 제영은 복귀를 하루 미루고 아침부터 말끔하게 차려입고 송이의 집으로 향했다.

떨리는 마음에 밤새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한 제영이었지만, 아침부터 꽃집에 들러 꽃 한 다발과 과일바구니까지 챙겨 송이의 집 앞에 도착했다.

송이의 집엔 몇 번 와봤지만, 오늘은 왠지 모르게 현관문이 엄청 거대해 보였다. 제영은 문 앞에서 헛기침을 몇 번 하곤 초인종을 눌렀다.

오늘따라 초인종 소리도 커다랗게 느껴지는 것 같아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그 사이로 송이가 뛰어나와 제영을 맞이했다.

송이

 “왔어요? 긴장되죠….”

제영

 “어…좀 긴장되네요….”

송이

 “아빠하고 엄마 기다리고 계세요 그냥…. 어…. 편안하게 알겠죠?”

송이 역시 제영 못지않게 긴장을 했는지 손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송이

 “어…. 얼른 들어 와요. 일단.”

제영은 옷매무새를 한 번 더 확인하곤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섰다.

송이엄마

 “어머 어서 들어와요. 오늘 보니까 더 멋있네~”

제영

 “안녕하세요. 어머님 아 이거 받으세요.”

제영은 들고 있던 꽃다발을 미선에게 내밀었다.

송이엄마

 “어머 뭘 이런 걸 다~ 고마워요~얼른 들어와요~”

제영이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 못마땅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한석과 눈이 마주쳤다.

제영은 얼른 차렷하고 서서 90도로 허리를 접어 인사를 했다.

제영

 “안녕하세요. 아버님 하제영이라고 합니다.”

제영의 인사에도 한석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송이

 “아…. 아빠~”

송이아빠

 “큼…. 앉아요.”

제영

 “네 아버님.”

드디어 제영과 한석이 한 공간에 마주 앉았다. 두 남자 사이엔 어색한 침묵과 숨 막히는 적막이었다.

두 남자 사이에 흐르는 숨 막히는 적막을 깬 건 미선이었다.

송이엄마

 “배고프죠? 차린다고 차렸는데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네~”

제영

 “완전 진수성찬입니다. 어머님~”

탕을 내오며 한석의 옆에 앉은 미선이 툭 신호를 주자 그제야 한석이 숟가락을 들었다.

송이아빠

 “으흠…. 일단 밥부터 먹읍시다.”

제영

 “네 잘 먹겠습니다.”

제영은 평소보다 더 복스럽게 음식을 먹었다.

제영

 “우와 어머님 진짜 맛있습니다~”

송이엄마

 “잘 먹어주니까 내가 더 좋다~ 이것도 좀 먹어봐요. 이것도.”

제영의 큰 리액션에 신이 난 미선은 메인메뉴인 갈비찜을 제영 쪽으로 놓아주었다.

제영은 미선이 주는 음식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받아먹었다.

나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치고 드디어 제영과 한석의 독대가 이루어졌다.

송이아빠

 “흐흠..나이가 송이보다 열 살이나 많다고….”

제영

 “네 제가 나이가 좀 많습니다.”

송이아빠

 “부모님은 우리 송이 마음에 들어 하나?”

한석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제영은 조용히 입을 뗐다.

제영

 “부모님은…. 이혼하시고, 두 분 각자 외국으로 나가서 사십니다….”

평소에 가정사에 대해 잘 이야기하지 않는 제영이라 송이도 제영이 자신에게 이야기해주기만을 기다렸었다.

자신의 가족 앞에서 드러나는 제영의 상처에, 송이는 마음이 아팠다.

송이는 조심스럽게 제영의 옆으로 가 손을 꼭 붙잡았다.

그런 송이의 모습에 제영도 한결 마음이 놓여 옅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송이아빠

 “직업이 경찰이라 위험한 일도 많을 테고….”

제영

 “아무래도 직업의 특성상 위험한 일…. 많습니다. 하지만 송이 씨에게 약속했습니다. 평생 옆에서 지켜주겠다고…. 그 약속 지키기 위해서 절대 안 다칠 겁니다.”

송이아빠

 “그게 자네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사실 난….”

제영

 “아버님 저 송이 많이 사랑합니다. 허락해주신다면 결혼…. 하고 싶습니다.”

송이아빠

 “나는 사실 자네 마음에 안 들어.”

송이

 “아빠….”

송이아빠

 “나이가 많은 것도 직업도 다 탐탁지 않아.”

제영

 “죄송합니다…. 그런데 아버님…저 송이 정말 많이 사랑하고 송이 평생 행복하게 해줄 자신 있습니다.”

술상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은 두 남자는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술잔만 기울였다.

한 잔 두 잔 서로 술잔을 주고받던 두 사람 중에 먼저 입을 연 건 제영이었다.

제영

 “평생 지켜주고 평생 사랑해주겠습니다. 아버님, 송이와의 결혼 꼭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영은 무릎을 꿇고 단호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허락을 구했다.

송이아빠

 “우리 송이 이제 스물셋인데…. 너무 이르다고 생각 안 하나?”

제영

 “결혼이 송이 씨의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할 겁니다. 송이 씨 학교 졸업하고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게 제가 옆에서 열심히 도울 겁니다.”

송이아빠

 “…결혼이 그렇게 쉬운 일도 아니고.”

한석은 연신 잔만 기울였다. 그렇게 한 병 두 병 술잔이 늘어가고 얼음물을 마셔가며 버티는 제영이지만 빨개진 얼굴은 감출 수 없었다.

정신력으로 겨우 버티며 한석의 잔을 받는 제영의 모습에 송이는 걱정스러운 듯 제영의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송이

 “괜찮아요?”

제영

 “네 괜찮아요. 송이 씨 들어가서 자요 피곤할 텐데…”

그 와중에도 자신을 걱정하는 제영의 모습에 송이는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쾅/

그때, 두 눈을 겨우 뜨며 버티고 있던 한석이 그대로 상에 머리를 박았다.

송이

 “아빠!”

송이엄마

 “여보!”

놀란 송이와 미선이 한석에게 달려갔고, 한석은 그대로 쓰려져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제영은 얼른 한석을 업어 송이의 방 침대에 눕혔다.

송이엄마

 “아이고 고생했네! 하 서방.”

송이

 “어…엄마!”

송이엄마

 “왜~이제 하 서방 맞잖아. 그치 하 서방?”

제영

 “네 맞습니다. 장모님~”

송이엄마

 “어머머!! 장모님이래! 송이야 들었어?”

송이

 “아니 뭐…. 엄마는 딸내미가 일찍 시집간다는데 막 이렇게 쉽게 내줄 거야?”

제영

 “장모님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괜히 폐를 끼친 건 아닌지….”

송이엄마

 “아니야 폐는 무슨~ 조심히 가요.”

제영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

송이와 함께 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제영은 눈에 보이는 벤치에 푹 주저앉았다.

송이

 “괜찮아요?”

제영

 “긴장이 풀리니까…. 이러나 봐요…. 잠깐 앉아서 쉬면 괜찮아 져요.”

송이

 “편의점 가서 숙취 음료 좀 사 올게요.”

제영

 “잠깐 여기 앉아봐요.”

제영은 송이의 손목을 잡아 자신의 옆에 앉혔다. 그리곤 송이의 어깨에 머리를 슬쩍 기댔다.

제영

 “이러고 있으면 괜찮아질 거 같은데…”

제영의 애교 섞인 행동에 송이는 푸스스 웃으며 어깨를 더 내어주었다.

***

송이아빠

 “송송이 이리 와서 앉아 봐.”

다음 날 아침, 술이 깬 한석은 송이를 불러 앉혔다.

송이아빠

 “너 정말 그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어?”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송이는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송이

 “응.”

송이아빠

 “결혼이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하면 하나의 가정을 꾸려나가야 해, 더 이상 엄마 아빠 없이 혼자서 살림을 이끌어나가고 이제 한 남자의 아내로서 평생 살아야 해.”

송이

 “…. 응 알아….”

송이아빠

 “그래도 자신 있어?”

송이

 “경위님이 옆에 있으면…. 그런 거 다 헤쳐나갈 자신 있어.”

송이아빠

 “결혼이 그런 자신감만으로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냐.”

송이

 “아빠…. 나…. 경위님 많이 사랑하고 믿고 있어…. 그냥 쉽게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나도 경위님이랑 만나면서 결혼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고 생각했어…근데 결론은 이 사람이랑 함께면 평생 함께 행복하게 사랑할 자신 있다는 거였어. 아빠…. 나 한 번만 믿어줘요.”

송이의 단호하고도 진심 어린 고백에 한석은 마냥 어리게만 보이던 송이가 새삼 어른스러워 보였다.

송이아빠

 “…한 번 더 보자 그래.”

*

한석의 호출로 제영은 퇴근하자마자 송이의 집으로 향했다.

제영

 “안녕하십니까? 어머님 아버님.”

송이엄마

 “일 끝나고 바로 와서 피곤하죠?”

제영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제영이 집 안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한석은 추리닝 차림으로 현관문을 나섰다.

송이아빠

 “나가지.”

제영

 “네? 아…. 네!”

한석은 제영과 단둘이 집 앞 포장마차로 향했다.

송이아빠

 “여기 소주 한 병이랑 우동 두 그릇이요.”

한석과 단둘이 마주 앉은 제영은 긴장한 듯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앉았다.

송이아빠

 “속은 좀 괜찮나?”

제영

 “네 괜찮습니다. 아버님은 괜찮으십니까?”

송이아빠

 “뭐…. 나도 괜찮네! 자 한잔하세.”

한석은 제영의 잔 가득 소주를 따라 주었다.

그렇게 또 한 잔 두 잔 아무 말 없이 술잔만 기울였다.

잠시 후 한석은 잔을 탁하고 탁자에 내려놓곤 입을 열었다.

송이아빠

 “송이 눈에서 눈물 나게 하면 그날로 자네는 나한테 죽어.”

제영

 “네 절대 송이 눈에서 눈물 나게 하지 않겠습니다!”


내 경찰아저씬데요?43화 -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송이의 부모님 결혼 허락을 받은 두 사람은 아직 특별하게 달라지진 않았다.

송이

 “아니 지금 대낮인데 뭐가 늦어요. 아빠~ 열두 시 전에 들어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요.”

아, 달라진 건 매일 같이 송이와 제영에게 걸려 오는 한석의 전화정도?

송이

 “아 아빠! 진짜 나쁜 짓 하려면 낮하고 밤이 무슨 상관이야! 나하고 제영 씨 믿고 걱정하지 마요 나 이제 전화 안 받는다? 아 알겠어.”

송이는 조금은 신경질적으로 휴대폰을 가방 속에 넣고 지퍼를 닫았다.

제영

 “아버님이에요?”

송이

 “네 시간 늦었다고 들어가래요.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제영

 “아버님 이해해드려요. 아마 아버님들은 다 같은 생각이실 거야 자신 빼고 다 늑대라고….”

송이

 “경위님은 아니잖아요~”

송이의 말에 제영은 송이의 코앞까지 다가가 조그맣게 속삭였다.

제영

 “나도 늑댄데?”

갑자기 훅 다가오는 제영의 따뜻한 숨결에 당황한 송이가 어찌할 줄을 모른 채 두 눈만 도르르 굴렸다.

가까이 다가선 제영은 조용히 송이의 귓가에 속삭였다.

제영

 “이럴 땐 이렇게 눈 감는 건데.”

제영은 송이의 눈을 한쪽 손으로 꼭 가린 채 작게 쪽 하고 입을 맞췄다.

화르륵 빨갛게 달아오르는 얼굴을 식히기 위해 열정을 다해 손 부채질을 하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웃음이 터져 버렸다.

송이

 “우…. 웃지 말아요.”

제영

 “귀여워서.”

낯부끄러운 말도 서슴없이 내뱉는 제영의 모습에 살짝 눈을 흘기는 송이다.

***

은애

 “그래서 결혼하기로 한 거야?”

송이

 “결혼 허락을 받은 거지 아직 구체적인 건 잘….”

서준

 “그래 좀 더 만나보고 결정해 너무 성급하게 결정하는 건 아닌 거 같애…. 결혼이란 게 예로부터 인륜지대사라고 하는데….”

은애

 “그만.”

서준

 “아니 그게 아니라 내 말은 결혼은….”

은애

 “그만해라.”

서준

 “알겠어….”

송이의 결혼 소식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선조들의 이야기부터 줄줄이 이야기를 늘어놓는 서준의 입을 말 한마디로 막는 은애다.

은애

 “경위님은 그 날 이후로 뭐 달라진 건 없고?”

송이

 “음…. 없는데 평소랑 똑같아.”

은애

 “프러포즈는?”

송이

 “에이 뭐 결혼 허락받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내심 한편으론 프러포즈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송이지만, 겉으론 별 기대 않는 척했다.

은애

 “너는 뭐 바라는 프러포즈 있어?”

서준

 “여자들은 뭘 그렇게 프러포즈에….”

은애

 “여자들은? 뭐.”

서준

 “아니 뭐…프러포즈가 그렇게 중요한가….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한 거 아닌가….”

은애

 “막 촛불 켜놓고 사람들 앞에서 성대하게 과시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을 확인시켜 주는 거 그런 거…. 그냥 진심으로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거 그런 거 말하는 거지!”

송이 역시 은애의 말에 동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막 촛불을 켜고,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이러는 거에 송이는 딱히 가슴이 뛰지 않았다.

물론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자신은 그런 화려하고 성대한 프러포즈는 원하지 않았다.

***

서준, 은애와 함께 점심식사를 마친 송이는 곧바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조금 있으면 졸업도 다가오고, 그 말인즉슨 취업을 해야 한다는 뜻이기에 송이는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곤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한참을 집중해서 이력서를 작성하던 송이는 작게 올리는 진동에 휴대폰을 들고 도서관 밖으로 나왔다.

송이

 “네 경위님.”

제영

 [어디예요?]

송이

 “도서관이요.”

제영

 [저녁에 도시락 싸서 도서관으로 갈게요 저녁 먹지 말고 기다려요.]

송이

 “우와! 하제영 표 도시락 먹을 수 있는 거예요?”

제영

 [매일 저녁 샌드위치 같은 거 먹지 말고 밥 먹으라고 챙겨 가는 거예요.]

송이

 “어…. 그거 어디서 많이 듣던 대산데….”

제영

 [누가 나한테 많이 하던 이야기예요.]

송이

 “이따 봐요~나 밥 많이 먹을 거야.”

제영

 [알겠어요. 밥 많이 싸갈게.]

***

송이와의 통화를 마친 제영은 곧바로 근처 마트로 향했다.

하루 종일 밤샘근무를 해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이것저것 꼼꼼히 식 재료들을 훑어 보며 메뉴를 고민하던 제영은 송이가 좋아하는 반찬들로 삼단 찬합을 채우기로 했다.

고기와 채소들로 카트를 채운 제영은 마지막으로 우유 코너로 향했다.

제영

 “딸기우유….”

송이가 좋아하는 딸기우유까지 가득 담은 제영은 콧노래까지 부르며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온 제영은 분주하게 움직여 송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가벼운 소시지 볶음부터 시작해서 불고기까지 척척 만들어 낸 제영은 마지막으로 과일까지 깎아 삼단 찬합을 꽉꽉 채웠다.

뿌듯한 마음으로 도시락을 손에 들고 도서관으로 향하는 제영이다.

***

제영

 -도시락 도착했습니다.-

제영의 문자에 송이는 책을 덮고 도서관 앞 벤치로 달려나갔다.

총총걸음으로 계단을 뛰어 내려오던 송이는 벤치 앞에 앉아 자신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제영에게 손을 흔들었다.

송이

 “경위님!”

제영

 “얼른 앉아요. 배고프겠다.”

송이가 벤치에 앉자마자 제영은 찬합을 열고 젓가락을 꺼냈다.

송이

 “우와 이거 다 경위님이 만든 거예요?”

주먹밥부터 시작해서 불고기에 샐러드까지 찬합 가득 송이가 좋아하는 음식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었다.

제영

 “자 얼른 먹어요.”

제영은 송이의 손에 젓가락을 쥐여주었다.

송이

 “잘 먹겠습니다~”

뭐부터 먹을까 잠시 고민하던 송이는 역시 고기 먼저 맛을 보았다.

송이

 “와…진짜 맛있어요.”

볼이 빵빵 해 지도록 음식을 넣고 우물거리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왠지 모를 뿌듯함에 엄마들이 말하는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는 말을 이해할 거 같았다.

송이

 “진짜 배불러요.”

부른 배를 통통 두드리며 벤치에 기대앉아 있는 송이에게 제영이 뭔가를 불쑥 내밀었다.

송이

 “어? 딸기우유!”

제영이 내민 건 다름 아닌 단지 모양 딸기우유였다. 

제영

 “새벽까지 공부할 거 아냐…. 밤에 출출하면 마셔요.”

송이

 “지금 마시면 안 돼요?”

제영

 “돼요. 많이 사 왔어.”

제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송이는 딸기우유를 벌컥 들이켰다.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함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것 같았다.

제영

 “감기 들겠다. 이제 들어가요 데려다줄게.”

제영의 말에 송이는 아쉬운 듯 천천히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런 아쉬움을 달래기라도 하듯 제영의 손을 꽉 잡고 최대한 천천히 걷는 송이다.

송이

 “아쉽다….”

제영

 “나도 공부하고 갈 건데?”

송이

 “정말요?”

제영

 “나도 자료 찾아볼 거 있어서 조금 있다가 갈 거예요.”

마주 앉아 공부하던 제영은 잠깐 나갔다가 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잠시 후, 조용히 자리로 돌아온 제영은 연습장 끄트머리에 뭔가를 적어 송이에게 보여주었다.

‘나 책 좀 찾아 줄래요?’

제영은 꼬깃꼬깃 접힌 쪽지 하나를 송이에게 건넸다.

송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제영을 바라보았고 제영은 조그맣게 입 모양으로 ‘부탁해요’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책에 집중했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책장 쪽으로 걸어간 송이는 쪽지를 펴봤다.

뜬금없는 제영의 부탁이었지만 송이는 천천히 책장을 돌아가며 책을 찾았다.

별생각 없이 책 찾는 일에 집중하던 송이는 마지막 책 제목을 보고선 멈칫 허공에서 손이 멈췄다.

‘프러포즈’

송이

 “어…?”

천천히 마지막 책을 집어 들자 책 표지에는 작은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표시된 부분 한번 펼쳐볼래요?’

살짝 접혀 있는 부분을 펼치자 그사이엔 작은 봉투 하나가 꽂혀 있었다.

송이가 봉투를 뜯어 보려는 순간, 뒤에서 제영이 송이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제영

 “그건 내가 뜯어 줄게요. 손 내밀어봐요.”

제영은 봉투를 조심스럽게 뜯었고, 봉투 안에 든 쪽지를 송이에게 건네주었다.

송이

 “어…?”

쪽지를 읽은 송이가 놀란 표정으로 제영을 바라보자, 제영은 은은하게 웃으며 송이를 바라보았다.

송이

 “경위님….”

주변을 둘러 보던 제영은 송이만 들릴 만한 목소리로 조그맣게 속삭였다.

제영

 “나 이제 프러포즈 할 거예요.”

그리곤 송이의 손을 잡고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공간으로 들어왔다.

제영

 “피아노 치면서 노래 불러주고…. 이런 거 나 잘 못 해요…”

송이

 “저도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제영

 “…아…. 이거 은근히 떨리네요.”

제영은 크게 숨을 한번 몰아쉬고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제영

 “내가 많이 사랑합니다. 송이 씨…. 어…. 이렇게 빛이 나는 여자를 사랑해도 될까 하는 마음이 들어 처음엔 조금 망설였는데…. 송이 씨를 사랑하면서 나도 빛이 나는 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 우리 사랑하면서 많이 힘들고 아픈 일도 많았는데…. 옆에서 함께 견뎌 내 줘서 고마워요…내가 아침에 눈을 떠서 제일 먼저 보는 사람이 송이 씨였으면 좋겠고, 퇴근하고 문을 열고 들어오면 나를 맞이 해주는 사람도 바로 당신이었으면 좋겠어요…평생…사랑하고 싶습니다. 나랑 결혼…해줄래요?”

자신에게 가만히 눈을 맞추며 마음을 고백하는 제영의 모습에 송이의 두 눈엔 이미 눈물로 가득했다.

갑자기 눈물을 쏟아 내는 송이의 모습에 당황한 제영이 벌떡 일어나 송이를 품에 안아 달랬다.

제영

 “왜…. 왜 울어요.”

송이

 “…너무 좋아서….”

제영

 “반지…. 받아 줄래요?”

제영의 물음에 송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제영은 조심스럽게 반지를 꺼내 송이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송이

 “딱 맞아요.”

자신에게 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환하게 웃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 역시 자신의 손가락을 펼쳐 보여주었다.

송이

 “어…?”

제영의 네 번째 손가락에도 자신의 반지와 같은 디자인의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송이

 “특별할 것 없는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제영

 “이 세상에서 제일 빛나는 사람이에요 송송이 씨는”

해사하게 웃는 송이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간 제영은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달콤한 향기에 취해 서로의 입술을 탐하는 두 사람의 사이로 살랑이는 봄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

늦은 밤이나 돼서야 도서관에서 나온 두 사람은 손을 꼭 붙잡고 나란히 집까지 걸었다.

송이

 “근데…. 나 요리 잘 못 하는데….”

문득 자신의 요리 솜씨가 걱정된 송이가 볼멘소리하자 제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영

 “괜찮아요, 내가 하면 되니까.”

송이

 “내…. 음식 맛없었어요?”

제영

 “네? 아니 그 뜻이 아니고…. 어…송이 씨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된다는…뭐 그런 이야기죠.”

송이

 “치….”

제영

 “아이는 몇 명이 좋을까요?”

제영의 물음에 송이의 얼굴이 빨갛게 익어버렸다.

송이

 “어…. 네…?”

제영

 “푸흡….”

송이

 “아…. 경위님!”

제영

 “어? 농담 아닌데? 우리 딱 둘만 낳아서 잘 키워봅시다. 부인.”

송이

 “아…. 몰라요!”

제영의 농담에 송이는 빨개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저만큼 앞서 걸어가 버렸다. 그런 송이의 모습에 결국 크게 웃음이 터져 버린 제영이다.


내 경찰아저씬데요?44화 - 서로가 서로에게

송이

 “다 준비했어요. 내려갈게요!”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확인한 송이는 신발장 앞에서 잠시 고민하다 굽이 낮은 단화를 신었다.

제영

 “타요~”

송이

 “경위님…. 정장 입었네요!?”

평소에 늘 제복 아니면 편한 옷차림만 보다가 처음으로 정장 차림의 제영을 본 송이는 새삼 또 한 번 제영에게 반해버렸다.

제영

 “침 떨어지겠다.”

입을 헤 벌리고 자신을 대 놓고 감상하는 송이의 모습에 부끄러워진 제영은 애써 모르는 척 반짝이는 송이의 눈빛을 피했다.

송이

 “할머님 혹시 양갱 좋아해요?”

제영

 “송이 씨가 사 가면 다 좋아하실걸요?”

송이

 “그래도…. 뭘 좋아하시는지 모르니까 이것저것 샀는데…”

할머니와 이미 한 번 만난 적 있긴 했지만, 이번엔 정식으로 인사를 간다고 생각하니 훨씬 더 긴장되는 송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새벽부터 잠을 설친 송이는 고민하다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

제영

 “송이 씨…? 송이 씨 일어나요.”

송이

 “음…. 어? 벌써 도착했어요?”

주변을 둘러 보던 송이는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송이

 “내…. 내려야죠.”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차 문을 열려는 송이의 손목을 붙잡아 다시 자리에 앉히는 제영이다.

송이

 “왜…. 왜요?”

훅 다가오는 제영에 놀란 송이가 뒤로 몸을 빼자 제영이 푸스스 웃으며 송이의 머리를 정리해줬다.

제영

 “어떻게 해도 예쁘긴 한데…. 머리는 좀 정리해야 할 거 같아서.”

송이

 “아…. 머…. 머리.”

제영

 “다 됐다. 갑시다. 이제.”

송이

 “네…. 네!”

송이는 후다닥 차에서 내렸다.

***

제영

 “할머니~”

할머니

 “어여들 와~”

송이와 제영이 나란히 마당으로 들어서자마자 부엌에 계씨던 할머니는 버선발로 뛰어나와 두 사람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할머니

 “아이고 아가씨 왔어?”

송이

 “안녕하셨어요~”

할머니

 “잘 왔어. 잘 왔어.”

자신의 손을 꼭 잡는 할머니의 모습에 긴장되었던 마음이 조금 놓이는 것 같은 송이다.

할머니가 내온 과일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제영은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제영

 “할머니 우리…. 결혼하고 싶어요.”

할머니

 “결혼? 아가씨 쪽에선 허락한 겨?”

송이

 “네…. 저희 부모님은 다 허락하셨어요…. 죄송해요. 할머님 먼저…. 찾아뵀어야 하는 건데 갑작스럽게 저희 부모님이 서울에 올라오셔서 먼저….”

할머니

 “괜찮어~나도 당연히 찬성이여 처음 봤을 때부터 맘에 들었어.”

제영

 “우리…결혼한다니까요?”

할머니

 “그려 결혼하라니까?”

할머니의 쿨한 허락에 오히려 당황한 건 제영과 송이였다.

제영

 “정말 그게 다야?”

할머니

 “뭐 그럼 내가 안 된다고 해야 혀?”

제영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뭐 부모님은 뭐하시냐…뭐 이런 거 물어봐야 하는 거….”

할머니

 “너희 둘이 결혼하지 뭐 가족들끼리 결혼한대? 둘만 좋으면 됐지 뭐~ 아가씨 부모님도 허락했담 서 그럼 식장만 잡으면 되것네.”

그렇게 두 사람은 쉽게 할머니의 결혼 허락을 받았다.

할머니

 “온 김에 저녁 먹고 가~”

평소와 같이 할머니는 부엌으로 가 부지런히 저녁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

할머니

 “어여 먹어~”

몸보신 해야 한다며 제일 큰 닭을 삶아 상 한가운데 내온 할머니는 닭 다리 하나를 뚝 뜯어 송이에게 먼저 쥐여주고 나머지 다리 하나는 제영에게 건넸다.

제영

 “이거 할머니 드셔.”

제영은 할머니가 건넨 닭 다리를 다시 할머니 그릇에 놓아주었다.

할머니

 “나는 괜찮여 너 많이 먹어.”

제영

 “저번에는 내가 먹었으니까 이제 할머니 차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송이도 닭 다리를 할머니 그릇에 옮겼다.

송이

 “이것도 할머니 드세요.”

할머니

 “아니 얘들이 왜 이래~”

송이

 “할머니가 많이 드셔야 저도 많이 먹을 거예요~”

풍족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송이는 할머니를 도와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제영

 “내가 할게요. 들어가 있어요.”

송이

 “괜찮아요. 경위님은 들어가서 앉아 있어요~”

할머니

 “아가씨도 들어가서 앉어 나중에 내가 해도 돼.”

송이

 “이것만 하고 들어갈게요.”

마지막 그릇 물기까지 제거하고 나서야 마루에 앉은 송이는 할머니가 내온 사과를 깎기 시작했다.

할머니

 “아유 이런 거 안 해도 돼~”

송이

 “저 과일 잘 깎아요~ 앞으로 제가 올 땐 할머니 앉아서 쉬세요.”

과일을 다 깎은 송이는 접시에 예쁘게 담은 사과 하나를 포크로 찍어 할머니에게 건넸다.

송이

 “드세요.”

할머니

 “아이고 과일도 잘 깎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제영은 포크로 사과 하나를 찍어 송이에게 건넸다.

송이

 “내…. 내가 먹을게요.”

할머니

 “벌써부터 각시 챙기는 겨?”

제영

 “그럼요 내 각시는 내가 챙겨야지~”

벌써부터 보이는 제영의 팔불출 기질에 할머니는 허허 웃어넘겼다.

할머니

 “자고 가면 안 되는겨?”

제영

 “내일 출근해야 해서 다음에 또 올게요.”

마음 같아선 하룻밤 자고 가고 싶었지만, 제영이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했기에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할머니

 “결혼식은 언제쯤 올릴껴?”

제영

 “다음 주에 상견례 할 때 이야기 하기로 했어요.”

할머니

 “그려~”

제영

 “연락하고 모시러 올게요.”

할머니

 “조심히 올라가.”

송이

 “할머니 다음 주에 봬요~”

할머니

 “그려그려 어여 가.”

자신의 차가 골목길을 빠져나올 때까지도 서서 손을 흔들어 주시는 할머니의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진 제영은 괜히 눈에 뭐가 들어간 척 눈을 벅벅 비볐다.

그런 제영을 눈치챈 송이는 모르는 척 제영의 손을 꽉 잡아 쥐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손끝으로 느껴지는 송이의 온기에 위로 되는 기분이 든 제영은 그 따뜻함이 좋아 손을 더 꽉 힘주어 잡았다.

***

송이

 “나 정말 괜찮아 오빠? 어디 화장 번지고 그런 거 아냐?”

수혁

 “괜찮아 예뻐.”

눈이 마주칠 때마다 묻는 자신이 귀찮을 법도 한데 오늘따라 수혁은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송이의 물음에 일일이 다 대답해 주었다.

극도의 긴장감으로 인해 바짝바짝 마르는 입안에 송이는 벌써 세 컵째 물잔을 비웠다.

수혁

 “긴장돼?”

송이

 “응…. 조금.”

언제나 어리게 만 보였던 동생이 어느덧 결혼한다며 어른스러운 정장 차림을 입고 상견례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게 수혁은 믿어지지 않았다.

수혁은 옆에서 잔뜩 긴장한 채 뻣뻣하게 굳어 있는 송이의 손을 꽉 잡아 주었다.

송이

 “오빠.”

수혁

 “너무 긴장하지 마.”

따뜻한 수혁의 온기에 송이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수혁

 “울면 화장 지워진다. 그럼 다시 못생겨지잖아.”

송이

 “아 오빠!”

수혁의 농담에 긴장이 조금 풀린 송이는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에 다시 한 번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영과 할머니 그리고 서영이 차례대로 들어와 맞은 편에 앉았고, 본격적인 상견례가 시작되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건 송이의 엄마 미선이었다.

미선

 “우리 송이 잘 부탁드립니다. 애가 아직 어려서…아무것도 몰라요.”

미선의 말을 시작으로 할머니와 가족들은 봇물 터지듯 서로 칭찬을 시작했다.

할머니

 “아이고 얼마나 야무지고 살가운지 몰라요. 손도 빠르고.”

미선

 “우리 송이가요…?”

미선으로서는 처음 듣는 송이의 이야기에 어안이 벙벙했다.

제영

 “아…. 저번에 송이랑 할머니 댁에 놀러…. 간 적이 있거든요. 그때….”

미선

 “아….”

할머니

 “귀하고 예쁘게 키운 따님…저희 손주에게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미선

 “아유 아닙니다. 사돈 어르신, 듬직하고 멋있게 키워주신 손주…. 저희 아이에게 보내주셔서 저희가 더 감사합니다.”

할머니

 “부모…가 있어도 없는 것처럼 자란 아이라…그게 흠이 되면 어쩌나…항상 걱정했는데…. 이렇게 좋은 장인어른 장모님 만나 이제 발 뻗고 잘 수 있을 거 같네요….”

한석

 “아들 하나 더 얻은 거 같아서 듬직합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상견례가 마무리되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식당을 나서던 송이는 자신을 부르는 서영의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섰다.

서영

 “새언니!”

송이 씨가 아닌 새언니라고 부르며 달려와 자신의 손을 잡은 서영은 잠시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서영

 “앞으로 잘 부탁해요 새 언니.”

해사하게 웃는 얼굴로 손을 내미는 서영의 모습에 송이도 마주 보고 환하게 웃어주며 손을 마주 잡았다.

송이

 “나도 잘 부탁해요. 아가씨.”

*

상견례가 끝나고 예비부부 두 사람은 본격적인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집은 제영이 살고 있는 곳도 둘이 살기에 충분했고, 따로 예물 같은 것도 하지 않기도 결정했기에 그쪽으로는 준비가 따로 필요 없었다.

송이

 “경위님 스,드,메가 뭔 줄 알아요?”

제영

 “그게 뭔데요?”

송이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줄임 말이래요. 결혼할 때 필요한 패키지.”

어느덧 제영과 송이는 대화의 주제는 결혼에 관한 것들이었다.

카페에 잠깐 앉아 이것저것 검색을 하던 송이는 커피 한 모금 마시곤 깜짝 놀라며 제영에게 휴대폰을 보여준다.

송이

 “결혼 준비하다가 많이들 싸우고 헤어진대요.”

송이가 보여 준 글은 결혼 준비를 하다 성격 차이로 헤어졌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제영

 “걱정돼요?”

제영의 물음에 송이는 잔뜩 심각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영

 “뭘 걱정해요. 송이 씨 하고 싶은 대로 다 해요 내가 다 맞출게.”

송이

 “치…. 경위님은 의견 같은 거 안 낼 거예요? 뭐 결혼은 나 혼자 하는 건가?”

딴 데로 툭 튀어버리는 대화 주제에 당황한 제영이 그게 아니라는 듯 억울한 표정을 짓자 송이가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송이

 “이렇게 들도 많이 싸운대요~ 그러니까 우리 서로 맞춰 가야죠.”

제영

 “그럽시다 우리 서로 맞춰 가요.”

***

사진기사

 “자 신랑님 좀 더 신부님 쪽으로 가까이! 어 신부님 좀 더 웃어주세요!”

난생처음 펑펑 터지는 플래시 속에서 사진을 찍으려니 여간 어색하기 짝이 없는 예비부부는 사진기사의 주문에 맞춰 최대한 열심히 포즈를 취했다.

사진기사

 “자 이번엔 신랑님이랑 신부님 마주 보고 신부님이 신랑님 입술에 가까이 다가가서….”

다소 부끄러운 요구에 잠시 망설이던 송이는 천천히 제영에게 다가갔다.

사진기사

 “입술이 닿을 듯 말 듯 오케이 조금 더!”

숨결이 느껴지는 거리에서 멈춰선 송이는 사진기사의 더 다가가라는 주문에 더 다가서지 못하고 눈만 질끈 감았다.

사진기사

 “조금만 더!!”

계속해서 조금만 더를 외치는 사진 기사의 목소리에 송이는 에라 모르겠다 싶은 마음으로 제영의 입술에 꾸욱 입을 맞췄다.

사진기사

 “그렇지!!!”

송이가 제영의 입술에 입을 맞추자마자 플래시들은 펑펑 터지고 셔터 소리가 연속으로 들렸다.

사진기사

 “자 촬영 끝! 수고하셨습니다. 신랑 신부님.”

촬영이 끝나자마자 송이는 빨개진 얼굴을 들킬세라 후다닥 탈의실로 뛰어갔다.

잠시 앉아 빨개진 얼굴을 식힌 송이는 하루 종일 몸을 꽉 조인 드레스를 벗어 버리고 티에 청바지로 갈아입었다. 

송이

 “아 살 거 같다.”

똑똑/

송이

 “네…. 네!”

제영

 “들어가도 돼요?”

송이

 “네!”

문이 열리고 하루 종일 입던 각 잡힌 턱시도가 아닌 자신과 같은 티에 청바지 차림의 제영이 들어왔다.

제영

 “많이 답답했죠?”

송이

 “네…. 조금…. 많이…. 진짜 답답했어요……”

제영

 “고생했어요.”

제영은 하루 새에 핼쑥해진 송이를 품에 꼭 안아 주었다.

송이

 “너무 답답했어요….”

제영의 품에서 어리광을 부리던 송이의 위에서 꼬르륵하고 우렁찬 소리가 퍼졌다.

제영

 “…어?”

송이

 “아…”

몸을 꽉 조였던 드레스를 벗고 나니 종일 비어있던 위장이 배고프다고 요동쳤다.

송이

 “배고파요….”

제영

 “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으니까 배고플 만하죠…. 얼른 밥 먹으러 가요 우리.”

송이

 “나 많이 먹으면 안 되는데…. 드레스 입을 때까지 다이어트 해야 해요.”

제영

 “안 해도 예쁜데.”

송이

 “그건 경위님 눈에만 그런 거죠!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고….”

제영

 “나한테만 예뻐 보이면 되지 또 누구한테 예뻐 보이려고요?”

제영의 급작스러운 질문에 말문이 막힌 송이가 눈동자만 도르르 굴렸다.

송이

 “어….”

제영

 “그니까 오늘은 맛있는 거 먹어요 갑시다. 여보.”

송이

 “아…. 아!! 경위님!”

제영의 장난에 송이는 당했다는 듯 소리를 지르며 제영의 뒤를 따랐다.



내 경찰아저씬데요?45화 - 이제부터 내 경찰아저씬데요

생각보다 조금 수월하게 결혼 준비를 마친 송이와 제영은 생각보다 마지막으로 드레스를 보러 갔다.

송이

 “와…진짜 예쁘다.”

하얗고 반짝이는 웨딩드레스의 자태에 반한 송이는 멍하니 서서 드레스만 쳐다보았다.

직원1

 “신부님 이런 디자인은 어떠세요?”

보다 못한 직원이 먼저 송이에게 드레스 하나를 추천했다.

수수하면서도 우아해 보이는 디자인의 드레스가 마음에 들었는지 송이는 입어 보겠다며 탈의실로 따라 들어갔다.

잠시 후,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커튼이 열리고 하얀 눈꽃 같은 드레스를 입은 송이가 제영

보며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직원1

 “정말 예쁘세요. 신부님.”

송이

 “저…. 어때요. 경…. 아니 자기…?”

멍하니 송이를 바라보던 제영은 송이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영

 “예…. 뼈요…. 예쁘다.”

직원1

 “신랑님이 반했나 봐요. 호호.”

제영

 “아…. 진짜 예쁘다.”

직원1

 “다른 것도 입어 보실래요?”

송이

 “아…. 그래도 되나요?”

직원1

 “그럼요~ 이런 디자인도 잘 어울리실 것 같은데.”

직원의 권유로 다른 디자인의 드레스를 입어 본 송이는 조금은 노출이 있는 디자인에 살짝 망설였다.

직원1

 “요즘 드레스에 이 정도 노출은 괜찮아요.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이런 걸 입어 보겠어요~”

송이

 “그쵸…?”

직원의 말에 용기를 낸 송이는 난생처음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었다.

직원1

 “커튼 열겠습니다~”

커튼이 열리고 송이는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제영의 반응을 살폈다.

송이

 “어…. 때요?”

좀 전과는 사뭇 다른 제영의 표정에 송이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송이

 “별로…. 예요?”

제영

 “너무 야해요. 다른 거.”

제영은 훤히 드러난 송이의 어깨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송이

 “하지만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제영

 “다른 거 보여주세요.”

직원1

 “하…. 하 신랑님이 노출을 싫어하시나 봐요~신부님 이거 한번 입어보세요.”

제영의 단호함에 난감해진 직원이 어색하게 웃으며 서둘러 다른 디자인의 드레스를 추천했다.

송이

 “나 이거 마음에 들어요.”

처음 입어 보는 디자인이지만 좀 전에 입었던 드레스보다 지금 입은 드레스가 훨씬 더 자신에게 꼭 맞는 것 같아 마음에 쏙 들었다.

제영

 “다른 것도 한 번 입어봐요.”

송이

 “나는 이게 마음에 든다니까요.”

제영

 “송이 씨.”

송이

 “내가 입을 거잖아요! 결혼식에선 내가 주인공인데 왜 경위님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입으면 안 돼요?”

제영

 “하아…. 송이 씨 어른들도 모이는 자린데 너무….”

송이

 “몰라요. 난 이걸로 할 거예요.”

서로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팽팽히 맞서는 두 사람의 모습에 직원은 늘 있는 일이라는 듯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웨딩 케이프를 들고나와 송이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직원1

 “이렇게 하면 훨씬 낫지 않아요. 신랑님?”

송이

 “제영 씨…. 아니 자…. 기야! 이걸로 해요…네?”

쉽게 볼 수 없는 송이의 애교에 제영의 두 눈이 흔들렸다.

‘뭐…. 지금 보니까 확실히 좀 전보다 훨씬 나은 것 같네….’

송이

 “이걸로 확정?!”

다시 한 번 묻는 송이에 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1

 “그럼 이걸로 하시는 거로…?”

제영

 “네 그 드레스로 할게요.”

직원의 센스로 타협점을 찾은 드레스 고르기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직원1

 “그럼 신랑님 턱시도는….”

송이

 “제가 골라도 되죠?”

직원1

 “네 그렇게 하셔도 돼요.”

송이는 제법 심각한 얼굴로 턱시도 몇 벌을 골라 제영에게 건넸다.

송이

 “이거 입어봐요!”

제영

 “이걸 다요?”

송이

 “네!”

해맑게 웃으며 대답을 하는 송이의 모습에 제영은 군말 없이 턱시도를 받아 들고 탈의실로 향했다.

잠시 후 커튼이 열리고 검은 턱시도 차림의 제영이 나왔다.

제영

 “어때요?”

다부진 체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디자인에 송이는 넋을 잃고 감상을 시작했다.

제영

 “송…이 씨?”

송이

 “네? 네! 어…. 다음 거.”

그렇게 다 너무 멋있어 보여서 패스를 한 송이는 마지막으로 입은 회색빛 턱시도까지 본 후 항복을 선언했다.

송이

 “그냥 제복으로 입어요!”

제영

 “네?”

송이

 “어떻게 그렇게 다 소화를 잘해요. 짜증 나게!”

뜬금없는 송이의 짜증에 제영은 당황했다.

송이

 “결혼해서 딴 여자들이 눈독 들이면 어떡해…. 결혼반지 꼭 끼고 다녀요. 알겠죠?”

제영

 “푸흐흡….”

그제야 송이의 말을 알아들은 제영이 웃음을 터뜨렸다.

제영

 “지금 벌써부터 내가 바람 필까 봐 걱정인 거예요?”

송이

 “경위님은 걱정 안 되는데 다른 여자들이 걱정인 거죠!”

제영

 “걱정하지 마요 반지 절대 안 뺄게.”

두 사람의 애정행각에 직원은 한숨을 푹 쉬며 턱시도를 정리했다.

*

송이

 “청에 청첩장은 다 돌렸어요?”

제영

 “네 다들 꼭 오신다고 했어요.”

송이

 “청첩장 나온 거 보니까…. 이제 진짜 우리가 결혼하는 게 실감 나는 거 같아요.”

이제 결혼식을 딱 1주일 앞둔 두 사람은 설렘으로 하루하루 밤잠을 설쳤다.

송이

 “이제 우리 1주일만 있으면 진짜 부부 되는 거네요.”

제영

 “네, 우리 부부 되는 거예요.”

송이

 “좀…떨린다.”

제영

 “나도…. 떨려요.”

마주 잡은 두 손으로 고스란히 서로의 떨림이 느껴졌다.

제영

 “잘할게요.”

송이

 “나도…. 잘할게요.”

***

드디어 결혼식 당일, 송이는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하느라 바빴다.

송이엄마

 “여보 나 어때?”

송이아빠

 “아 당신이 결혼해?”

송이엄마

 “그래도 사람들 맞이하는데 엄마도 예뻐야지.”

송이아빠

 “예뻐 예뻐.”

송이엄마

 “또 또 성의 없게!”

아침부터 투닥거리는 엄마 아빠의 모습에도 송이는 코끝이 찡해졌다.

송이엄마

 “딸 울어?”

송이

 “어? 어…. 아니…. 그냥….”

송이엄마

 “결혼하려니까 마음이 이상하지?”

송이

 “응…이제 나도 한 가정을 꾸려야 한다니까…좀 겁도 나고.”

송이엄마

 “으이구 우리 애기가 언제 이렇게 커서 결혼을 한대.”

미선의 눈에는 아직도 어린아이로만 보이는 송이가 결혼한다니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송이

 “엄마아….”

두 눈 가득 눈물을 글썽이며 울먹이는 송이를 미선이 꽉 껴안았다.

송이엄마

 “잘 살아야 해 알겠지?”

송이

 “…. 응….”

오랜만에 느끼는 엄마의 품에 송이는 결국 어린아이처럼 울음이 터져버렸다.

송이엄마

 “신부가 울면 어떡해~ 얼른 뚝 그쳐 결혼식 때 예쁘게 보여야지.”

송이

 “엄마…. 고마워요….”

송이의 말 한마디에 참고 있던 미선의 울음도 터지고 말았다.

송이아빠

 “둘이 그렇게 울면 어떡해 이따 식장에서 둘 다 눈 퉁퉁 부어서 결혼식 치를 거야?”

한석의 말에 두 모녀는 겨우 눈물을 닦고, 서둘러 식장으로 향했다.

***

화려한 웨딩드레스로 갈아입고 메이크업까지 마친 송이는 신부 대기실에 앉아 떨리는 마음으로 결혼식을 기다렸다.

은애

 “쏭!”

서준

 “송아야~”

송이

 “은애야! 준아!”

제일 먼저 신부대기실을 찾은 사람은 핑크빛 원피스를 입은 은애와 말끔한 정장 차림의 서준이였다.

은애

 “예쁘다…. 진짜.”

은애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송이의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봤다.

송이

 “쑥스럽게 왜 이래~”

은애

 “딴 사람 같다, 그래서 예뻐.”

송이

 “야~”

잔뜩 긴장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긴장을 조금이나마 풀어주기 위한 장난이란 걸 아는 송이는 은애 덕분에 조금 긴장을 덜 수 있었다.

서준

 “진짜 예쁘다 송아야.”

자신의 가족 같은 존재였던 송이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신부의 모습을 하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서준은 마음이 많이 복잡했다.

아직 어린 나이에 잘해나갈 수 있을지, 아직 더 꿈을 펼쳐야 할 나인데 결혼 때문에 못해보는 건 아닌지…그런 걱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마냥 밝게 웃어 줄 수만은 없던 서준이다.

송이

 “나 잘할 수 있어 그러니까 그런 표정 하지 마~”

서준의 표정을 읽은 송이가 활짝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제법 어른스러운 송이의 태도에 한결 마음이 놓인 서준도 송이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은애

 “쭌 우리도 결혼할까?”

서준

 “야…. 야 뭘 하자고?”

은애

 “결혼하자!”

서준

 “아니 무슨 결혼이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거야?”

투닥거리며 신부대기실을 빠져나가는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모습에 송이는 푸스스 웃음을 터트렸다.

은애

 “아 맞다! 쏭 부케는 내가 받는다~!”

서준

 “야! 그거 받고 6개월 안에 결혼해야 한다는데!”

은애

 “아 하면 되지!”

시끌벅적했던 서준과 은애가 나가고 잠시 후 신부대기실을 찾아온 사람은 송이의 오빠 수혁이였다.

마냥 어린 동생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수혁 역시 마음이 이상했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편이라 딸처럼 동생처럼 그렇게 키운 송이였는데 웨딩드레스를 입고 조신하게 앉아 있는 송이의 모습이 수혁에겐 좀 낯설게까지 느껴졌다.

수혁

 “흐흠..너 좀 낯설다.”

송이

 “내가 오빠보다 결혼 빨리해서 어떡해….”

수혁

 “그니까 좀 천천히 하지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그렇게 빨리 가냐.”

자신의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마음에도 없는 말을 툭툭 내뱉는다는 걸 아는 송이는 그저 수혁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수혁

 “그렇게 좋아?”

송이

 “응 좋아.”

좋으냐고 묻는 자신의 물음에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좋다고 대답하는 송이의 모습에 수혁은 그제야 환하게 웃어주었다.

수혁

 “너가 좋으면 좋은 거지. 그래…. 축하한다. 내 동생.”

수혁의 축하 인사에 송이는 해사한 미소로 답했다.

박형사

 “자 이제 곧 결혼식이 시작될 예정이오니 하객분들은 모두 자리에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를 맞은 박 형사님의 결혼식 시작을 알리자 사람들은 식장 안 곳곳 자리를 채워갔다.

수혁

 “떨지 말고 이따 보자.”

송이

 “응…. 오빠.”

수혁이 나가고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고 있을 때, 서영이 수줍게 신부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서영

 “새언니 오늘 정말 예뻐요.”

송이

 “아가씨 왔어요? 몸은 괜찮아요?”

서영

 “이제…. 퇴원해도 된대요. 이 소식 언니한테 꼭 말해주고 싶었어요….”

송이

 “정말요? 와 진짜 잘됐다. 축하해요. 서영…아니 아가씨.”

서영

 “신혼여행 다녀오면 할머니 댁에서 봐요. 우리.”

송이

 “그래요. 아가씨.”

서영

 “파이팅!”

다부진 표정으로 파이팅을 외치는 서영의 모습에 송이도 부케를 든 손으로 파이팅을 외쳤다.

박형사

 “자 이제 신랑 하제영 군과 신부 송송이 양의 결혼식이 시작되겠습니다. 양가 어른들의 촛불 점화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양가 어르신들 입장해주세요!”

곧이어 은은한 피아노 반주가 깔리고 송이의 엄마 미선과 제영의 할머니가 손을 마주 잡고 버진로드를 천천히 걸어가 초에 불을 붙였다.

엄마와 할머니가 서로 자리에 돌아가서 앉을 때쯤 송이는 직원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식장 입구에 섰다.

식장에 가득 찬 가족과 친구들을 보니 눈앞이 새하얘지는 것 같은 기분에 부케를 든 손이 눈에 띄게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직원2

 “신부님? 괜찮으세요?”

송이

 “네…. 네.”

속으로 계속 괜찮다며 주문을 외우고 있던 송이는 자신의 옆에 다가선 익숙한 온기에 마음이 조금씩 안정이 되었다.

송이아빠

 “우리 딸 뭘 그렇게 떨어.”

한결같은 자상한 목소리로 자신의 손을 꼭 잡는 아빠를 보며 송이는 조금씩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송이아빠

 “괜찮아 아빠가 옆에 있잖아.”

잠시 후, 신랑 입장! 이라는 소리에 맞춰 제영이 성큼성큼 버진로드를 걸었다.

자신은 이렇게 떨리는 데 전혀 긴장한 기색 없이 얼굴에 미소까지 띠며 유유히 입장하는 제영의 모습에 다시 한 번 반하는 송이다.

‘아 나도 병이다. 병.’

이 순간에도 제영에게 반하는 자신의 모습에 송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박형사

 “자! 다음엔 결혼식장의 꽃이죠! 바로바로 신부 입장을 앞두고 있습니다! 신부도 엄청 떨릴 텐데 이왕 하는 거 빨리해버립시다. 신부 입장!”

박 형사의 우렁찬 입장 소리와 함께 전형적인 행진곡이 흘러나왔다.

송이아빠

 “가자 딸.”

한석의 리드에 맞춰 한 걸음 한 걸음 버진로드로 향하는 송이의 발걸음이 조금은 위태로웠다.

사람들의 박수 소리에 맞춰 천천히 제영이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 그 길이 엄청 길게만 느껴졌다.

송이아빠

 “괜찮아 천천히.”

가뜩이나 긴장한 상태에서 굽 높은 신발에 드레스까지 입어 한 걸음 딛기가 더 힘들었지만 한석이 옆에서 송이의 몸을 지탱해주었기에 천천히 앞으로 걸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한 걸음씩 걷다 보니 어느덧 제영이 자신의 눈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고 있었다.

송이

 “경위님…”

한석은 송이에게 손을 내민 제영을 보자 송이를 잡고 있던 팔을 조심스럽게 풀었다.

송이아빠

 “잘 부탁하네! 우리 딸.”

제영

 “걱정 마십시오. 장인어른.”

송이

 “아빠…”

제영에게 자신의 손을 넘겨 주고 뒤돌아서 가는 한석의 뒷모습에 송이의 마음이 뭉클했다.

제영

 “자 이제 갈까요?”

제영이 손을 내밀자 송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영의 손을 잡았다.

이제 송이의 옆엔 한석이 아닌 제영이 든든하게 옆을 지킬 것이다.

제영의 말대로 아침에 눈 뜨면 제일 먼저 보게 되는 사람이 될 것이고, 자기 전 보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제부터 내 사람이 되는 것이고, 훗날 내 아이의 아빠, 엄마가 될 것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은 서로가 될 것이다.

서로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 이상 평생 함께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도 서로가 될 것이다.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버진로드를 걷는 지금 이 순간부터 송이에게 제영은 내 남편, 나만을 지켜주는 경찰 아저씨가 될 것이다.

박형사

 “신부! 신랑의 직업은 뭡니까?”

박 형사는 송이에게 경찰 모자(정모)를 건네며 묻자 모자를 받아 든 송이는 제영에게 고개를 잠깐 숙이라며 눈짓했다. 제영이 천천히 다리를 구부려 송이에게 키를 맞추자 그제야 송이는 크게 대답했다.

송이

 “제 남편입니다!”

송이는 제영의 머리에 경찰 모를 씌어주며 대답했고, 송이의 행동에 하객들은 박수를 치며 웃었다.

박형사

 “신랑 신부 행진!”

제영과 송이는 나란히 버진로드를 행진했고 폭죽과 꽃가루가 두 사람 사이에 흩날렸다.

흩날리는 꽃가루 속에 손을 뻗어 꽃가루를 잡은 제영이 송이에게 손바닥을 쫙 펼쳐 보이자 연한 핑크빛 꽃가루 한 장이 얌전하게 놓여 있었다.

제영

 “흩날리는 벚꽃 잎 잡아서 소원 빌면 소원 이뤄진다고 했잖아요.”

송이

 “네.”

제영

 “제가 그날 벚꽃 잎 잡고 무슨 소원 빌었게요?”

송이

 “무슨 소원 빌었는데요?”

제영은 송이의 귓가로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

제영

 “앞으로 평생 함께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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