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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연하 - 우리 결혼했어요53화 - 뛰는맨(1)

<뛰는맨> 촬영이 아침 일찍부터 있는 날이라 다빈은 새벽부터 단골 미용실에 들러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고 있었다. 

이른 시간이라, 아직 정신도 멍한데 언제 왔는지 <뛰는맨> PD와 VJ이 한 명이 샵으로 들어오더니 조용히 미션 카드 한 장을 내민다.

다빈

 “아직 촬영 시간도 안 됐는데 웬일이세요? ……어, 이건 뭐에요? 읽어 보라구요?”

카메라 뒤에 있는 PD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이건 또 뭐지 하는 표정으로 다빈이 봉투를 열어 적힌 글을 소리 내어 읽었다. 

다빈

 - 오늘 이름표 떼기는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촬영이 시작되는 스튜디오로 오기까지 가장 많이 이름표를 떼인 사람이 오늘 모든 미션 끝난 후, 벌칙을 받게 됩니다.

미션을 다 읽고 나니 PD가 다짜고짜 다빈의 등에 이름표를 붙여주었다. 여전히 룰이 잘 이해가 안 되는지 카메라 뒤에 있는 PD를 보며 물었다. 

다빈

 “지금부터 누가 제 이름표를 뗀다는 거에요? 아직 촬영장에 가지도 않았는데? 그럼, 출연자분들 외에 여기 계신 다른 분들이 뗄 수도 있다는 뜻인가요?”

PD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PD의 대답에 다빈은 등에 붙은 이름표가 떼일까 몸을 내려 의자 등받이 깊숙이 앉았다. 

다빈

 “와아, 시작 전부터 떨려. 내가 제일 많이 떼일 거 같애. 어떡해”

혼잣말을 하는 다빈의 모습을 벌써부터 VJ가 열심히 찍고 있었다. 헤어 담당 실장의 드라이가 시작되자, 다빈은 들고 있던 핸드폰을 터치해 한결에게 문자를 보냈다. 

다빈

 - 나 샵에서 메이크업 받고 있는데, 뛰는맨 지금부터 이름표 떼기 들어간대. 오늘 이름표 제일 많이 떼인 사람 벌칙 있다는데 어떡해 내가 될 거 같애

문자 전송버튼을 누르는데, 실장이 몸을 너무 의자 깊숙이 앉아서 뒤쪽 머리 드라이하기 힘들다며 조금만 올려 앉으라기에 그 소리에 몸을 당겨 앉는데 “찌직” 이름표 떼이는 소리! 

실장이 얼굴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채 

실장

 “하하, 미안.”

다빈의 만면에 당혹스러움이 번졌다.

다빈

 “세상에. 실장님!! 실장님이 어쩜 이래… 날 도와줘야지. 어쩜 제작진 말을 들어?!”

이름표가 붙여지고 10분 채 지나지 않아, 출연자에게도 아니고 샵 직원에게 이름표를 뜯긴 다빈은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다빈

 “어머, 그럼 지금 여기 계신 분들 누구든 뗄 수 있는 거야?”

다빈의 질문에 샵 직원들이 키득키득 웃으며 다빈을 쳐다봤다. 

다빈

 “세상에.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더니…. 실장님 나한테 그러지 마…. 이잉”

애교를 부려보지만, 실장의 얼굴에선 이미 제작진의 충실한 하수인의 피가 흘러 보였다. 

***

언제나처럼 헬스장을 찾아 아침 운동을 하고 있던 한결이 다빈의 문자를 받고 허허 웃음을 보였다. 

한결 역시도 이미 이름표가 붙여지고, VJ가 옆에서 계속 찍고 있는 가운데 다른 날과 달리 트레이너와 매니저, 코디의 눈빛이 승부욕으로 이글거리는 게 범상치 않음을 느끼고 이름표를 사수하느라 운동에 몰입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한결

 - 나도 마찬가지 상황. 아무쪼록 이름표 사수하고 있다가 촬영장에서 보자구

벌써부터 이름표 떼기가 시작된 걸 보면 오늘 촬영도 녹녹치 않을 거 같은데,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많지 않은 다빈이 걱정이다. 

등을 조심하며 헬스 기구에 오르는 찰라, 다빈에게서 또다시 문자가 들어왔다. 

다빈

 - 어떡해. 나 벌써 이름표 한 번 뜯겼어. 꼴찌 해서 벌칙 받아야 되면 어쩌지. 미치겠다 정말.

이름표를 뜯기고 놀란 표정이 상상이 돼서, 한결의 얼굴에 웃음이 스며들었다. 

한결

 - 걱정 마. 내가 최대한 도와줄게.

문자를 보내면서도 한결은 주위의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데뷔 이후 줄곧 다니던 미용실에서조차 이름표를 뜯겼다는 다빈의 증언이, 자신도 절대 안전하지 않음을 알려주는 것 같아서.

좋았어. 오늘 실력 발휘 함 해 주지. 딱 기다려 <뛰는맨>!

***

오전 9시가 되자 드디어 출연자들과 게스트들이 촬영 장소에 모두 도착해 촬영이 시작되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종일 찍는다더니, 정말 일찍도 불렀다.

덕분에 아침 운동도 제대로 못 하고 달려와야 했다. 

촬영장에 도착해보니 카메라만도 16대. 거기다 한 명 한 명 전담해서 찍는 VJ까지 있다. 도대체 카메라에 찍히지 않는 각도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여러 대의 카메라가 촬영에 동원되고 있었다.

다빈은 연기할 때 한 대의 카메라 앞에서만 하면 되는 것하고는 너무나 달라 바짝 긴장이 되었다. 

MC의 오프닝과 게스트 소개가 끝나고, 본격적인 게임에 들어가기에 앞서 오늘의 미션에 대한 설명이 시작됐다. 

세 팀으로 나뉘어서 단계별로 레벨업 되는 3단계의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게임을 지게 하려는 X맨이 숨어있는데 게임을 하면서 그 X맨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마지막 단계까지 이름표를 가장 많이 붙이고 있는 팀이 이기는데, 이기는 팀의 멤버는 마지막에 수행되는 벌칙에서 예외 되었다.

첫 번째 게임은 상대편에 NO란 대답을 유도하는 질문을 하는 것으로, YES의 대답이 나왔을 때 앉아있던 의자가 뒤로 젖혀져 그대로 수영장에 빠지는 게임이었다. 

고정 멤버들의 순서가 끝나고 한결의 차례. 질문자는 노련한 유지석이었다. 

유지석

 “나는 지금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

공개연인선언을 한화연을 두고 질문을 한 것일 테지만, 그 대상이 다르긴 했지만 사실이었다. 제게는 다빈이있었으니까. 

질문을 받은 한결이 잠시 다빈에게 시선을 주더니 이내 “YES!”를 외쳤다. 한결이 앉아 있던 의자가 대답과 동시에 곧바로 뒤로 젖혀져 한결은 그대로 첨벙 풀에 빠졌다. 

후드득. 아직은 봄. 갑작스레 빠진 물이 얼마나 차가운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보다, 물에 얼굴 담그는 걸 두려워하는 다빈이 걱정이었다. 스태프가 주는 큰 타올을 받아 몸에 묻은 물기를 대충 닦고 출연자들 틈에 섰다. 

다음은 다빈의 차례. 다빈은 제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부터 얼굴빛이 파리하게 변했다. 가슴까지 정도의 깊이였지만, 물을 유난히 두려워하는 다빈에게 거꾸로 돌려져 물에 던져질 거라는 상상은 그야말로 공포수준의 다가왔다. 

같은 팀이 됐어야 하는 건데. 그러면 흑기사를 자처해 나서기라도 하련만. 

유지석

 “자, 질문은 누가 할래요?”

한결은 누가 자신보다 먼저 나서기라도 할까, 얼른 손을 들어 앞으로 나갔다. 

유지석

 “그래, 한결이가 할래?” 

지석의 말에, 한결이 의자에 마주 앉은 다빈의 앞에 마주 섰다. 

잠시 망설이던 한결이, 씨익 한 번 장난스런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한결

 “나는 지금 저 물에 빠지고 싶다?”

라는 다분히 다빈을 물에 빠트리지 않을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의자에 앉아 물에 빠질 두려움에 떨고 있던 다빈은 한결의 질문에 얼굴 가득 미소를 드리우며 “NO!”를 외쳤다. 

당연히 의자는 뒤로 넘어가지 않았고, “야, 너!” 멤버들의 비난과 아우성이 쏟아졌다. 

‘사랑하는 여자를 어떻게 물에 빠트립니까’

말이라도 해 주고픈 심정이었지만, 한결은 그저 웃어 보이며

한결

 “여배우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여배우를 빠트리기는 그렇죠. 하하핫”

실없는 웃음으로 이유를 댔다. 

김하민

 “야, 쟤. 쟤 수상해. 쟤가 혹시 X맨 아냐?!”

멤버들의 의심과 눈총이 쏟아지자 한결은 자신은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첫 번째 게임이 끝나고 얼마간의 휴식이 주어졌다. 

야외촬영이라 따로 대기실이 없어 한 켠에 마련된 간이 천막이나, 차 안에서 각자 휴식을 취했다. 언제 사 왔는지 미라가 건네준 카페라떼를 마시며 쉬고 있는 다빈의 곁에 한결이 다가왔다. 

한결

 “아까 물에 빠지는 줄 알고 엄청 떨었지?”

다빈

 “어! 고마워. 진짜 얼마나 겁먹었나 몰라.”

알아. 제대로 겁먹은 게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더라. 

한결

 “후훗. 그럴 거 같더라. 근데 대충 하면, 알아서 편집해서 내보낼 줄 알았더니 형님들 진짜 열심히들 하시네. 이번 게임은 이렇게 넘겼는데, 다음에도 도와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빈

 “어우, 그러게”

다빈은 앓는 소리를 하며, 휴. 걱정이 가득한 한숨을 내쉬었다. 아, 오늘이 빨리 지나갔으면. 

이내 촬영이 재개되었다. 두 번째 게임은 담력 게임. 

삼면이 가려져 멤버들은 안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위로 구멍이 난 상자에 손을 넣어 구슬을 꺼내는 게임이었는데. 보이지 않는 상자 안에 손을 넣어 구슬을 꺼내야 한다는 두려움을 이겨야 하는 게임이었다. 

능력자로 불리며 넘치는 힘과 담대함을 보여주고 있는 김하민이 첫 주자로 나와 7개의 상자에 담긴 모든 구슬을 꺼내 들었다. 역시 능력자! 

다음 순서는 팀 내 최고의 겁쟁이 유지석. 첫 번째 상자에는 가발 더미, 두 번째 상자에는 물에 젖은 파스타, 세 번째 상자에는 욕실 타올… 실제 눈으로 확인하며 만지라고 하면 전혀 거리낌 없이 만질 수 있는 물건들이 주였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상자 안에 손을 뻗어 물건을 찾아야 한다는 건 만만찮은 공포였다. 

지석은 결국 7개의 상자 중 단 2개의 상자 안에 손을 넣어 구슬을 꺼낸 후 타임 오버가 됐다. 

다음은 팀 내 유일한 홍일점. 송지희. 지희는 여배우임에도 불구하고 내숭 없이 남자 멤버 못지않은 게임 능력을 발휘하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이 담력 테스트에서만은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김하민

 “으악! 으악!”

손을 넣기가 무섭게 꺼내며, 연거푸 비명만 악악 질러댔다.

결국, 그녀는 단 하나의 구슬도 꺼내지 못했다. 

앞사람이 악악 질러대는 비명은 순서를 기다리는 다음 사람에게는 점점 더 큰 공포를 안겨줬다. 

하지만 게임을 끝내고 앞쪽으로 와 상자 내부를 확인한 멤버들은 그 어처구니없는 물건들을 보며 웃음을 참을 수 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멤버들이 상자 하나하나에 손을 넣을 때마다 연신 배꼽을 쥐며 웃음을 터트렸다. 

다음 순서는 드디어 다빈의 차례. 

두려움에 계속해서 순서를 미루다 결국, 제일 마지막 순서가 된 다빈의 얼굴이 이미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설마 벌레를 넣지는 않았겠지. 아니면 물컹한 생선들? 아니면 작은 애완동물?

평소 동물을 무서워해 아주 작은 애완동물 조차도 만지지도 못하는 다빈이었기에 이런 게임이야말로 정말 피하고 싶은 게임이었다. 

다빈

 “아아… 저 정말 손 못 넣겠어요…”

다빈은 상자 구멍을 향해 손을 뻗으려다, 거의 울상이 다 됐다. 


연상연하 - 우리 결혼했어요54화 - 뛰는맨(2)

그런 다빈을 놀리려, 게임을 끝내고 지켜보고 있던 멤버들이 몰려와 바람을 잡았다. 

김하민

 “어휴… 저런 걸 여배우가 어떻게 만져” 

유지석

 “저거 물지는 않나?”

멤버들이 겁주려고 하는 소리임을 알겠음에도 두려움은 배가 되었다. 

다빈

 “저, 기권. 그냥 기권하면 안 돼요? 이 게임 그냥 질게요” 

다빈이 결국 포기를 언급하자, 한 팀인 동준이 난리가 났다. 

동준

 “누나, 포기하면 어떡해요! 안 그래도 우리 팀 지금 꼴찌인데. 포기 안 돼요!”

흐아. 정말이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런 프로에 나와서 내숭 떠는 모습만큼 보기 싫은 게 없는데, 저 정체를 모르는 상자 속에 손은 정말이지 못 넣겠다. 

다빈은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 돼버렸다. 그럼에도 어쨌든 출연을 했으니 하긴 해야 한다. 

다빈이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덜덜덜 떨리는 손을 상자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때, 물컹하고 미끄러운 그 무언가가 꿈틀 제 손을 핥았다. 

다빈

 “으악! 으악!”

기겁하며 손을 빼내고는 스튜디오 한쪽 구석으로 도망가 주저앉아 버렸다. 너무나 놀란 나머지 다빈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다빈

 “아아, 대체 뭐야. 흐엉. 흐엉”

멤버들은 웃겨 죽겠다는 듯 난리가 났고, 한결은 그런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 카메라만 없다면 그대로 그녀를 꼬옥 안아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빈

 “흐엉. 흐엉. 밑에서 뭐가 내 손을 핥았어. 흐엉. 흐엉. 나 못하겠어.”

결국 다빈의 곁으로 간 한결이 다빈의 어깨를 잡고 등 뒤를 토닥여 주었다. 이미 정신없이 게임에 몰두하는 동안 사방에서 찍고 있는 카메라는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한결

 “괜찮아. 괜찮아. 보면 별거 아냐. 징그러운 거 아냐.”

한결이 다빈의 등을 쓰다듬어 내리자, 다빈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는 모습이었다. 

한결

 “정 못하겠으면 그만하자”

한결의 말에 다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촬영장에서 제 편은 오로지 한결뿐이었다. 한결이 함께 출연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다빈은 다시는 이런 프로그램에는 출연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이제 촬영은 마지막 하이라이트. 이름표 떼기만 남았다. X맨이 마지막까지 남으면 X맨의 승. 멤버가 마지막까지 남으면 X맨의 패. 

X맨이 승리할 경우, 오늘 했던 각 게임의 승점으로 최종 벌칙 수행자가 결정된다. 꼴찌가 되어 벌칙을 수행해야 되는 멤버는 함께 벌칙을 수행할 멤버 한 명을 선택할 수 있었다. 

벌칙은 멤버들이 가장 싫어한다는 공포체험 벌칙. 폐 분교에 들어가 주어진 미션을 수행해 오는 거였다. 

하루 종일 정말, 만만한 게임이 하나가 없다. 이번만은 어떻게든 잘 피해 다녀 끝까지 살아남아 이름표를 떼어보리라 다빈은 단단히 결심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게임에서 가장 승점이 낫은 자신이 벌칙을 수행하리란 게 뻔했으므로. 

드디어, 이름표 떼기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촬영장 내에 울렸다. 

<뛰는맨> 이름답게 멤버들은 서둘러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서로의 이름표 떼기에 열중했다. 

***

달빛밖에 없는 깜깜한 밤. 폐교 안에는 곳곳에 자외선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을 뿐, 벌칙을 수행자를 찍는 VJ까지도 없었다. 

오늘 미션의 최종 결과는 X맨의 승이었고 X맨은 한결이었다. 그리고 모든 게임에서 승점을 취합해 가장 낮은 점수를 얻은 다빈이 벌칙수행자가 되었고. 다빈은 함께 동반할 파트너로 한결을 지목했다. 

촬영이 끝나고 다른 멤버들이 모두 퇴근한 후, 두 사람은 촬영장 인근의 폐교에 내려졌다. 

아무리 벌칙이라고 해도 카메라와 조명은 있겠지 했던 생각과는 달리 폐교에는 벌칙을 수행하는 한결과 다빈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벌칙은 그야말로 적막만이 흐르는 폐교의 2학년 1반을 찾아가 교실 내 낡은 피아노를 치며 ‘학교 종이 땡땡땡’을 완창한 후 돌아오기였다. 

교정을 지나 건물 안으로 발을 떼어놓는데 어둠 속에 길게 뻗은 복도는 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공포스러웠다. 

저 긴 복도를 돌아다니며 2학년 1반을 찾아야 한다. 심장이 쫄깃해지는 공포에 다빈은 한결의 팔을 꼭 잡았고, 한결은 그런 다빈을 안심시키려 다빈의 손을 꼭 쥐었다. 

이미 다빈의 손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한결

 “괜찮아. 내가 있잖아. 우리 빨리 교실에 들어가서 노래 부르고 나가자”

한결의 부드러운 중저음에 다빈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손을 꼭 잡은 채 두 사람이 복도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조명도 없는 터라 어둡기만 한 복도에서 2학년 1반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고학년 교실만 있는 건물을 나와 뒷 건물로 들어갔다. 

1층은 모두 1학년 교실. 그렇다면 2학년 교실은 2층에 있을 확률이 높다.

어둠을 뚫고 조심조심 계단을 올라 2층 첫 번째 교실 앞. 핸드폰으로 문 위를 비춰보니 2학년 1반이다. 

휴우. 드디어 찾았다.

안으로 들어가려고 문을 여는데… 오래된 탓인지…. 문이 잘 열리지 않는다. 한결이 힘을 주어 밀자

삐거덕! 턱!

다빈

 “으악!!!”

다빈이 비명을 질러대며, 한결의 품을 파고들었다. 

한결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문이 오래돼서 고장 났나 봐.”

제아무리 남자라 해도 이런 어둠 속에 있는 게 아무렇지 않을 리 없었지만, 한결은 공포로 손에 땀이 흥건할 정도로 젖은 다빈을 안정시키려 안정된 모습을 유지하려 애썼다. 

다빈의 어깨를 감싸 안고 거의 안다시피 교실로 들어가니, 

텅 빈 교실 한가운데 낡은 피아노 한 대가 놓여있다. 

드디어 피아노 발견. 

조심스런 걸음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 피아노를 치기 위해 덮개에 손을 댔다.

다빈

 “이거 여는데 뭐가 툭 튀어나오는 건 아니겠지?”

잔뜩 겁먹은 다빈이 한결을 보며 물었다. 

한결

 “제작진들이 아무도 없으니 뭐가 나오게 할 순 없을 거야”

한결이 말이 안심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피아노 덮개를 열 용기는 없었다. 

다빈

 “그럼 빨리 피아노 열어서 노래하고 여기 나가자. 너무 무서워”

한결

 “후훗. 알았어.”

마지막까지 침착성을 잃지 않은 한결이 다빈의 팔을 두르고 있던 손을 위아래로 움직여 쓰다듬어 주었다. 어둠 속에서 저도 모르게 나오는 다빈에 대한 배려가, 카메라에 어떻게 찍힐지 이미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피아노를 덮개를 여는데! 끈적한 무엇이 손과 무릎 위로 후드득 떨어졌다. 

다빈

 “으악! 뭐, 뭐야!”

놀란 다빈이 비명을 지르며 얼른 의자에서 일어났다. 

한결

 “흐아, 이 사람들 진짜 끝까지 그냥 안 보내네.”

덮개 끝에 케첩이 담긴 비닐을 매달아, 덮개가 열리면서 케첩이 쏟아져 나왔다. 

냄새와 끈적이는 느낌에 물체의 정체를 얼추 알아챈 한결이 대충 제 손에 묻은 케첩을 무릎에 닦고는 다빈의 손과 무릎에 묻은 케첩을 털어주었다.

한결

 “괜찮아? 케첩 같아. 닦을 수도 없으니 대충 털고 노래하고 얼른 나가자”

여전히 두려움으로 잔뜩 움츠린 채 한결의 팔을 꼬옥 붙든 다빈이 대답했다.

다빈

 “응.”

하루 종일 긴장한 탓에 조금만 더 있다가는 정말이지 정신줄을 놓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한결이 한 손으로 대충 건반을 누르며 노래를 시작하자, 그래도 벌칙은 벌칙인지라 안 부를 수 없었던 다빈이 울먹이는 소리로 ‘학교 종이 땡땡땡’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

방송이 나가자 <뛰는맨>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오랜만에 예능 나들이에 나선 한결과 드라마 이후 핫한 스타가 된 다빈이 <연우결>에 이어 영화까지 함께 출연한 후, 동반으로 첫 출연한 예능이라는 점이 기대를 모았다. 

주말이 지나고 나자 두 사람 방송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고, 방송된 화면을 캡쳐해 줄거리를 소개한 포스팅이 수없이 개시됐다. 

유튜브에는 두 사람이 잘 어울린다며 둘이 함께 화면에 잡힌 장면 중 서로를 향해 웃거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 게임 중간중간 계속해서 다빈을 챙기는 모습, 담력 테스트 게임에서 결국 눈물까지 흘리는 다빈을 달래는 모습, 벌칙으로 폐교에서 손을 꼭 잡고 다니다가 다빈이 놀랄 때마다 어깨를 감싸 안는 모습 등을 편집에 올린 영상들이 높은 조회 수를 올리며 이슈 몰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게시물 중에 유달리 댓글이 많은 게시물이 있었다. 

게시물에는 언젠가 한 연예정보프로그램에서 한창 촬영 중인 <모태솔로 탈출기> 촬영 현장을 찾아 촬영 중인 두 사람의 모습과 비하인드 촬영 현장 컷, <연우결>에서 한결이 다빈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는 화면과 반지의 확대 컷, 그리고 이번에 출연한 <뛰는맨>의 방송 중 화면에서 손 부분만 확대해 두 사람의 손에 끼어있는 반지가 <연우결>에서 나눠 낀 반지임을 증명해 내고 있었다. 

<연우결> 때야 방송이라 그 반지를 계속 끼고 있다고 해도 방송이 끝난 지가 언젠데. 그 사이 화연과의 열애까지 인정한 마당에 새삼 그 커플링을 같이 끼고 영화촬영은 물론 예능 프로그램에까지 끼고 온 걸 보면 둘의 사이가 심상찮다는 댓글이 수백 개가 달렸다. 

댓글에는 내용에는 둘의 관계를 의심하는 글들이 있는 반면 무조건 오빠를 믿는다며 반대 의견의 글을 올린 네티즌을 비난하는 댓글도 많았다. 

확연히 다른 의견의 댓글이 거의 반반씩이라 해당 게시물을 두고 거의 싸움의 양상까지 띠기 시작했다. 

홍보팀 직원의 보고를 받고, 해당 게시물과 댓글을 확인한 은표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이번에도 사실이 아님을 주장하자고 한결을 설득할 수 없으리란 걸 은표는 알고 있었다. 이미 한결은 다빈과의 사이를 의심하는 여론이 있기만 해 봐라 하는 속내를 벌써부터 보이고 있었기에. 이번만은 피하지 않고 직진하리란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홍보팀직원

 “어떡할까요?”

머릿속에서 한결과 다빈의 사이를 인정하고 났을 때 벌어질 상황과 금전적인 손실 부분을 열심히 계산해 봤지만, 한결이 아니라고 나서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었다. 

은표는 답답한 심정에 마른세수를 해 보이더니, 결심한 듯 입을 뗐다. 

은표

 “한결이한테 연락해서 알려. 그리고 그 녀석이 하자는 대로 해”

홍보팀직원

 “네?”

한결이 나이는 많지 않지만, 속내까지 없는 놈이 아니다. 제 마음이 온통 향해 있는 여자에게 두 번의 상처를 줄 리 없다는 걸 은표는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도 이미 충분히 생각해 두었겠지. 그러니 누가 옆에서 그 어떤 조언을 하더라도 한결은 제 생각을 밀고 나갈 것이다. 

해서 은표 역시도 이번 일을 어떻게 수습할지, 한결의 의견에 전적으로 따르기로 결심을 굳혔다.


연상연하 - 우리 결혼했어요55화 - 사랑은 직진

한결

 “네…. 네. 알겠습니다. 이번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전화를 끊은 한결의 표정이 오히려 밝아 보였다.한결은 내심 잘됐다는 생각이었다. 

굳이 이런 여론이 나돌지 않더라도 더는 화연과의 거짓 관계를 유지 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을 알고 괜찮다고, 서운하다는 소리 한 번 한 적 없는 다빈이었지만, 자신의 연인이 다른 여자의 연인으로 오해 받고 있는 상황에 계속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부딪쳐 보리라. 이 일로 금전적으로 큰 타격이 올 수도, 이미지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한결

 “동호야, 홍보사에서 잡아놓은 방송출연 스케줄표 다 가져와 봐”

동호

 “잠시만요.”

동호는 핸드폰에서 스케줄 표를 찾아 한결에게 읊었다. 

동호

 “이번 주에는 연예 특급 인터뷰 있으시구요, 해피투데이 녹화랑 J2BC 뉴스 화제의 인물 생방 인터뷰 있으세요.”

한결

 “J2BC 뉴스?”

동호

 “네. 그건 하고 싶어도 못하고 연예인들은 잘 안 부르는데. 워낙에 형님의 차기작에 대한 관심이 높았으니까요. 그래서 아마 출연 요청이 있었던 것 같아요. 대표님이 이거는 무조건 해야 된다고 하신 거기도 하구요.”

한결

 “그래? 그럼 그쪽에 전화해서 출연 날짜를 최대한 앞당길 수 있는지 한 번 물어봐.”

동호

 “네”

****

앵커

 “네, 다음은 <화제의 인물> 코너인데요. 오늘은 다른 날과 달리 특별히 여러분이 많이들 좋아해 하실 분을 모셨습니다. 영화배우 김한결 씨 자리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우리나라 대표 뉴스 앵커로 뽑히는 J2BC의 김철준 앵커가 인물 초대석 주인공으로 한결을 소개했다. 

배우가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뉴스 코너에 초대되어 인터뷰할 일은 웬만한 톱 배우라도 일생에 한 번 있기 어려운 일이니, 제아무리 한결이라고 해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오늘의 출연에는 다분히 의도가 있었기에 한결의 긴장감은 그야말로 최고치였다.

한결

 “네. 안녕하세요. 김한결입니다.”

앵커

 “저랑은 일전에 방송국 복도에서 한 번 뵌 적이 있죠. 잘 생긴 분이 나오시니까 스튜디오 안이 다 환해지는 것 같네요.”

한결

 “하핫, 네. 감사합니다.”

한결이 방송경력만으로 따져도 대 선배격인 철준 앞에서 깊이 머리를 숙여 보였다. 

앵커

 “최근 영화 개봉을 앞두고 계시다구요?”

한결

 “네. <모태솔로 탈출기>라고 로맨스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앵커

 “전작이 크게 흥행해서 차기작 선정에 고민이 많았을 텐데요. 특별히 로맨스 영화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긴장감으로 침을 한 번 꼴깍. 삼킨 한결이 담담한 표정으로 답변을 시작했다. 

한결

 “일단 시나리오가 재미있었어요. 전작이 액션 영화라 다음 영화는 좀 사랑스러운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기도 했구요. 무엇보다 상대 배우가 좋았습니다.”

앵커

 “상대 배우라면 유다빈 씨를 말씀하시는 거죠? 그분도 얼마 전 드라마를 끝내시고, 최근 가장 핫한 여배우 중 한 분이시라, 영화 선택에 많은 영향을 끼쳤나 봅니다.”

한결

 “네. 그분과 함께 촬영할 수 있어서 정말이지 행복했습니다.”

앵커

 “하하. 솔직하시네요. 지금 공개 연애 중이시잖아요. 연인인 그분이 이런 부분을 혹시 질투하진 않나요?”

한결

 “음….”

잠시 말문에 뜸을 들이던 한결이 천천히,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답변을 시작했다. 

한결

 “말씀하시는 그분이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알겠는데, 그분이 어떤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물어본 적도 없고. 지금은 제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만도 급해서요.”

한결의 답변이 예상되는 답변에서 어찌 많이 빗나간다 싶은 앵커가 콕 집어 물어왔다.

앵커

 “제가 지칭하는 그분과 김한결씨가 말하는 사랑하는 사람이 혹시… 다른 분이신가요…?”

한결

 “….네. 지금 제가 가장 관심 있는 사람은 유다빈 씨 입니다.“

지금 뉴스초대석에 나온 이 핫한 배우가 지금 제 입으로 공개 연인이 아닌 다른 여인을 거론하고 있다. 앵커는 깜짝 발언이 뜻밖이긴 했지만 유연하게 질문을 이어나갔다. 

앵커

 “하하… 그럼 다시 한 가지 묻겠습니다.”

한결

 “네”

앵커

 “관심 있는 분이 유다빈 씨라고 말씀하셨는데요… 혹시 그분과 지금 열애 중이십니까?”

생방송 중, 앵커는 특종이라도 낚듯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물어왔다. 

한결

 “…네. 그렇습니다.”

당신에 대한 사랑을 얻기 위해 돌고 돌아온 길. 더는 숨기지 않으리라. 이제 세상에 당당하게 당신을 사랑한다 말하리라. 한결은 가슴 속에 고이고이 품었던 사랑을 고백하듯 떨리는 심정을 억누르며 제 사랑을 인정했다. 

앵커

 “하아. 열애 중이시라고 하니 어쨌든 축하 드립니다. 자, 이제 열애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영화 얘기로 들어가 보죠.”

앵커는 질문의 방향을 돌려 영화와 연기에 대한 질문을 이어갔고, 한결은 성실하게 답변했다. 주어진 15분간의 인터뷰 시간이 끝이 났다. 

이제야 후련해진 한결과 달리, 한결이 스튜디오에서 나오기도 전에 이미 인터넷에는 한결의 새로운 열애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인터뷰를 마치고 방송국에서 나온 한결은, 곧장 차를 몰라 다빈의 아파트로 향했다. 

****

오늘 한결이 뉴스에 출연한다는 걸 알고 있던 다빈은 8시부터 해당 채널을 틀어놓고, 무심히 잡지를 넘기고 있었다. 

메인 뉴스와 주요 뉴스들이 보도되고, 드디어 화제의 인물 코너가 시작되었다. 깔끔한 블랙 슈트 차림의 한결은 그 어느 날보다 스마트해 보였다. 

다빈

 “그냥 뉴스 진행을 해도 되겠네”

발성과 톤이 워낙에 좋고 안정되어 있는 한결인지라, 이대로 그냥 뉴스 진행을 해도 사람들의 신뢰를 듬뿍 받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인터뷰 방향이 영 이상한 쪽으로 흘러갔다. 대게 저런 질문이 나오면 노련하게 피해가기 마련인데, 한결은 지나치게 솔직하게 답변에 응하고 있었다. 

다빈

 “뭐야, 뒷일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저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거야.”

인터뷰를 지켜보는 다빈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 들어찼다. 

앵커

 “관심 있는 분이 유다빈 씨라고 말씀하셨는데요… 혹시 그분과 지금 열애 중이십니까?”

아… 제 이름이 앵커의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맞다고 인정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 반, 괜찮으니 그저 동료일 뿐이라고 애둘러 말해도 된다는 마음 반.

그렇게 이중적인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한결

 “…네. 그렇습니다.”

인정했다! 지금 나를 사랑한다고! 

이화연과의 열애설이 있는 마당에 밝힌 터트린 사실이라, 삼각관계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사생활이 복잡한 배우로 눈총을 받을 수도 있다. 떨어진 이미지 때문에 광고가 확연히 줄어들 수도 있을 테고. 몇 군데에서는 계약 위반으로 소송을 걸 수도 있을 테다. 

그럼에도… 그 모든 부담을 감수하고 자신과의 사랑을 정정당당히 인정했다. 조금은 회유회도 되는 길을, 피해 가도 되는 길이다.

다빈은 그 모든 걸 감수하고도 자신과의 사랑을 지켜 내려는 저에 대한 사랑의 크기에 감동해, 눈에 그렁 눈물이 맺혔다. 

이제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문자와 전화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 올 게 온 것이다.

띵동.

다빈

 “누구세요?”

한결

 “나야!”

뉴스 인터뷰를 끝낸 한결이 곧장 달려 찾아온 이는 역시, 다빈이었다. 

다빈이 현관문을 열자마자, 한결이 안으로 들어와 힘껏 다빈을 안았다. 

한결의 품에 안긴 다빈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뚝. 시야가 흐려졌다. 

괜찮은 줄 알았었는데, 세상이 김한결의 연인이 유다빈이 아니라, 이화연으로 알고 있어도. 그래도 김한결의 사랑은 나라서. 세상 사람들이 다 몰라도. 그래도 한결의 사랑을 가진 건 저니까, 그것만으로 괜찮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이렇게 세상에 대고 제 사랑이 자신이라도 당당히 밝히고 나니 그 마음이 고맙고, 벅차 다빈은 팔을 뻗어 한결의 허리를 꼬옥 감싸 안았다. 자신보다 5살이나 어리지만, 세상 모든 어려움으로부터 저를 지켜줄 것 같은 한결의 가슴은 한없이 든든했다. 

한결

 “방송 봤어?”

다빈

 “응”

한결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다빈이 대답했다. 

다빈

 “이제 어쩌려고… 골치 아파질 텐데”

한결

 “어쩌긴. 처음부터 잘못된 거. 늦었지만 이제라도 바로 잡는 거지”

다빈

 “그럼, 화연 씨는…?”

한결

 “처음부터 화연이가 걸려서 쉽게 아니라고 못한 거였어. 최대한 화연이 이미지엔 영향 덜 주는 방향으로 방법을 찾아야겠지”

다빈

 “응.”

한결

 “그래도, 나한텐 당신이 최우선이야.”

그 마음이 든든해서. 다빈은 붙잡고 있던 한결의 허리를 더 꽉 끌어안았다. 

우리 같이 손잡고 가보자. 당신이라면… 당신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갈 수 있다면 나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거 같으니까. 

한결은 고개를 숙여 품에 안겨있는 다빈의 입술을 찾아 포개었다. 그 어느 때보다 감미로운 키스가 시작됐다. 

****

포탈의 연예 뉴스란은 한결의 새로운 열애 기사로 온통 도배 되다시피 했다. 

[김한결 새 연인은 유다빈]

[김한결 생방 뉴스에서 연인 유다빈에 대한 사랑 고백]

[김한결 유다빈 열애, 그럼 이화연은?]

[김한결, 당당 고백 지금 연인은 유다빈]

표 엔터 대표실에서 마주 앉은 한결과 은표. 이제야 제 사랑을 당당히 밝힌 한결의 평온한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쏟아지는 기사와 부정적인 댓글로 인해 은표의 얼굴은 심각하기만 했다. 

은표

 “어쩔 셈이야? 어디까지 인정할 건데?”

한결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니, 처음부터 바로 잡아야죠”

은표

 “뭐야? 그럼 처음부터 거짓으로 열애설을 인정했다고 밝히기라도 하겠다는 소리야?”

한결

 “필요하다면요!”

은표

 “야, 한결아! 그럼 네 이미지도 아주 우습게 되지만 화연이는, 걔는 당분간 활동 중단해야 될지도 몰라. 이제 막 주목받으려고 하는데. 두 남녀 사이에 끼어든 여자 이미지는 아주 치명적이지”

은표의 말에도 각오가 단단한 한결은 물러설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한결

 “당장은 소란스럽고 껄끄럽겠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잠잠해지겠죠. 배우 하루 이틀 하다 말 것도 아니고, 이미지가 아니라 결국엔 연기로 승부 봐야죠. 연기 수업이나 좀 더 시켜주세요. 그 나이에 그만한 연기력의 여배우는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되게”

그때 동호가 똑똑 노크를 하고 들어와 스케줄을 위해 이동할 시간임을 알려왔다. 

동호

 “형, 화보촬영 하러 가셔야 하는데요”

동호의 재촉에 한결이 알았다며 일어서는데, 은표가 저도 몰랐던 스케줄이라 물어왔다. 

은표

 “화보 있었어?”

한결

 “네. 다빈 씨랑 같이 커플 화보랑 인터뷰요. 영화 홍보 때문에 원래 잡혀 있었던 건데. 이참에 잘 됐죠. 뭐….”


연상연하 - 우리 결혼했어요56화 - 첫 사랑이 유다빈 씨에요

은표

 “하아….” 

한결의 대답에 은표가 골치가 지끈거리는지, 손을 이마에 갖다 댔다. 

은표

 “모르겠다. 꼴 보기 싫으니까 얼른 나가버려!“

한결

 “후훗. 너무 걱정하지 마요. 광고 계약 위반으로 손해배상 청구하면… 제 정산금에서 까세요. 그래도 모자라면 제 통장 털어 털고, 그래도 모자라면 대출…… 받을 수 있겠죠? 후훗. 저 그럼 갈게요”

정산에서 다 까고 한 푼도 주지 말아야지 저걸. 아휴…. 

*** 

어제 생방송 뉴스가 나가고, 인터넷에 둘의 기사가 온통 도배된 상황에서 한결과 다빈의 커플 화보와 인터뷰는 여성지로서는 대단한 특종기사의 선점이 아닐 수 없었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홍보를 위해 한 달 전부터 잡혀 있던 스케줄이라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취소를 해오면 어쩌나 잡지사 측에서도 걱정을 했었다. 

아침에 재차 일정확인을 위해 연락을 했을 때, 두 사람이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답변을 받은 후에야 잡지사 측은 안심했다. 

스타의 열애설은 웬만한 사회문제보다 더 이슈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커플 화보와 인터뷰라니. 

편집장은 원래 할당되어 있던 분량보다 페이지를 늘릴 것을 에디터에게 지시했다.

화보 콘셉트를 두고, 포토그래퍼가 섹시 콘셉트를 제안했을 때, 한결은 대중에게 좀 더 편안하고 로맨틱한 커플의 이미지를 주고 싶어 러블리한 느낌을 원했다. 

그 또한, 나쁠 건 없었다. 

어차피 둘의 관계는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고, 러블리한 콘셉트는 잡지의 구매욕에도 도움이 될 테니.

한결은 미리 대기실에서 나와 포토그래프와 스태프들과 가벼운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남자1

 “5분 뒤 시작하겠습니다.”

스태프의 소리에 콘셉트에 맞게 의상을 갖춘 다빈이 대기실에서 나왔다. 

다빈

 “너무 어려 보이려고 오버 한 것 같지?”

러블리한 디자인에 레이스가 달린 살굿빛 원피스는 여자라면 어렸을 때 한 번씩은 꿈꿨음 직한 동화 속 주인공 같은 느낌이었다.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동그랗고 해사한 외모의 다빈이 입으니 그야말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라푼젤… 그 중간 어디쯤에 있을 법한 느낌이었다. 

한결

 “아니, 예뻐. 아주 잘 어울려. 서른 넘어서 이런 의상 소화하는 건 우리 애인밖에 없을 거다.”

한결의 칭찬에 그게 칭찬인지 놀림인지 모르겠는 다빈이 곱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다빈

 “그거 욕이야, 칭찬이야? 왜 영 이상해?”​ 

다빈

“​이거 화보 나가고 난 후 연하 애인한테 연상으로 안 보이려고 기를 쓰고 애쓰는 느낌으로 보인다고 흉보지 않을까?”

내가 연하인 게 신경 쓰였어? 

한결은 생각지도 못했던 다빈의 말에 호탕하게 웃었다.

한결

 “하하하. 당신 나보다 연상인 게 신경 쓰여? 걱정 마. 내가 나이보다 노안이라 괜찮아. 하핫”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포토그래퍼가 대화를 중지시키며 촬영을 시작을 알려왔다. 

직원2

 “자 두 분 중간으로 가셔서 서 보실게요. 우선 두 분 서로 바라보면서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시작할 테니. 평소 많이 한. 달달한 눈빛. 아시죠?”

그런 것쯤이야. 다빈을 바라보고 있으라면야 하루 종일도 하겠다며 이내 한결은 다빈의 손을 잡고는 여심 강타할 미소를 날렸다. 

아침에 나오면서 정식 연인인정 후, 첫 촬영인 오늘 촬영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걱정스러웠던 것과는 달리 여느 연인처럼 편안한 모습으로 자신을 리드하는 한결을 보며 다빈은 점점 안정을 찾아갔다. 

포즈를 바꾸고, 위치를 바꾸고, 의상을 바꾸고… 

촬영은 계속되었다. 

다른 때 같으면 피곤하기도 했었지만, 연인과 함께하는 촬영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아니, 사람들에 들키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없이,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컨디션을 확인할 수 있어서 한결은 훨씬 더 편안한 작업이었다. 

직원2

 “자 마지막으로, 키스를 할 듯 말 듯한, 새로 시작하는 연인의 설렘이 가득한 키스… 그런 포즈로 한 번 더 가고 오늘 촬영 끝낼게요”

키스? 좋지. 진작에 이런 걸로 하지. 아주 원하는 포즈와 표정으로 제대로 해 줄 수 있는데. 

속으로 쾌재를 외치는 한결과 달리, 사람들 앞에서 실제 연인과 키스 포즈를 취한다는 게 다빈은 쑥스러워 살짝 얼굴을 붉혔다. 

다빈이 그러거나 말거나, 한결이 손을 뻗어 다빈의 양 볼에 가져다 대고는 고개를 살짝 틀어 입술에 가져갔다. 

한결

 “이 정도면 될까요?”

다빈에게 그대로 입술을 붙인 채 한결이 포토그래퍼에게 물어왔다. 

직원2

 “닿지는 말고요. 닿을 듯 말듯. 살짝만 떼어주세요”

한결이 다빈에게서 살짝 입술을 떼어서는 닿을 듯 말 듯, 딱 그만큼의 간격을 두고 다빈을 바라봤다. 살짝 열린 한결의 입술 사이에서 뜨거운 입김이 불어오자, 가슴이 두근거려 다빈은 눈을 감아버렸다. 

찰칵찰칵. 

연이어 셔터가 눌러졌다.

직원2

 “다빈씨, 눈 뜨고 가볼게요.”

차라리 키스를 하고 있는 게 낫지, 상대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코앞에 입술을 마주 대고 있자니 가슴이 얼마나 떨리는지. 

쿵쾅거리는 소리가 제 귀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그 모습이 귀여워 한결이 장난스레 물었다.

한결

 “무슨 생각을 하시길래 이렇게 호흡이 거세져?”

다빈

 “아아… 뭐야… 아니야, 그런 거 ”

한결

 “뭐가 아닌데? 하하핫”

찰칵찰칵. 카메라는 그 모습을 연신 담아냈다. 

촬영 전부터, 서로를 챙기느라 숨김없이 닭살 커플의 면모를 보여주던 이 커플은 촬영 내내 서로를 향한 달디 단 표정을 숨김없이 드러내 어느 각도, 어느 포즈에서 찍어도 ‘우리 사랑하고 있어요’가 철철 넘쳐나 주변 여자 스태프들의 부러움을 자아냈다. 

*** 

사진 촬영을 끝내고, 여전히 화보 의상을 입은 두 사람이 스튜디오 한 켠에 앉아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에디터

 “두 분 열애설 공개되고, 팬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게 이화연씨와의 관계였는데요…”​

에디터

“​두 분 사귀신 지는 얼마나 되셨고 누가 먼저 고백하셨나요?”

형식적인 영화 관련 얘기와 간단한 신변에 대한 얘기를 먼저 물은 후, 에디터는 가장 궁금하지만 가장 조심스럽기도 한 질문을 드디어 꺼냈다. 

당연히 나올 거라 예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당황스러운 질문에 다빈이 어떻게 대답을 해얄지 몰라 한결을 쳐다보자, 여전히 태연한 얼굴로 한결이 말문을 열었다. 

한결

 “이화연 씨와는 아주 친한 친구 사이에요. 아시다시피 소속사도 같고, 데뷔도 비슷한 때 해서 친하게 지냈어요. 그런 모습이 아무래도 남, 여 다 보니까 보시는 분들한테는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구요.”

에디터

 “그렇다면 처음에 왜 열애설이 났을 때 왜 부정하지 않으시고, 인정하셨나요? 그 부분이 팬들의 입장에선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한결

 “그때 제가 솔직하지 못했어요. 그 부분은 지금도 후회가 되는 부분입니다. 여러 상황이 얽혀서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 것보다는 그냥 인정하고 가는 게 낫겠다는 게 주변 분들과 회사의 판단이었구요. 그때 제가 다빈 씨를 좀 오해하기도 해서….”

한결의 얘기에 다빈은 그날 선우와 함께 있던 모습을 떠올리며 그때 선우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러면 일이 이렇게까지 됐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 가슴 한 켠이 시렸다. 

그런 눈빛을 읽었는지 한결이 슬며시 손을 뻗어 다빈의 손을 잡았다.

이제는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쓸 필요 없는 당당한 제 연인이었기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에디터의 눈에 살짝 부러움이 깃들었다.

한결

 “그래서 그런 선택을 하게 됐습니다. 그 부분이 팬들에게 안 좋게 보이지 않을까 싶어 다빈씨에 대한 감정도 쉽게 드러내지 못했는데요… 결국 제 솔직한 감정을 인정하고 팬들께도 얘기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에디터

 “네에.. 그렇군요. 그럼 두 분 사귀신 건 언제부터 이신가요? 다빈씨는 계속 말씀이 없으신데 다빈씨가 좀 말씀해 주세요”

옆에서 한결이 하는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다빈이 입을 열었다. 

다빈

 “글쎄요. 딱 언제부터라고 말하긴 어렵고… <연상연하 우리 결혼했어요> 촬영하면서 좋아지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때 화면에 나간 감정이 거의 실제 제 감정이었어요. 그땐 예능이 처음이라 어디까지가 실제 감정이고, 어디까지가 방송용으로 가는 건지 잘 몰랐었거든요”

에디터

 “네에… 한결 씨도 그럼 그때쯤부터 감정이 생기신 건가요?”

에디터의 질문에 한결의 얼굴에 아련함이 깃들었다. 

사춘기 어느 날, 다빈을 처음 보고 한눈에 반했던 소년. 그런 그녀가 연인과 이별에 금세라도 쓰러질 듯한 표정을 지을 때, 그 길로 달려가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던 그 날이 떠올랐다.

한결

 “아뇨. 전 10년도 넘었네요. 유다빈 씨를 좋아한 게!”

다빈

 “?”

자신도 몰랐던 얘기에 다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옆에 앉은 한결을 쳐다보았다. 

한결

 “이건 다빈 씨한테도 아직 말하지 않았는데요….”

한결이 잡은 다빈의 손에 꼭 잡아 힘을 주며, 그녀를 향해 시선을 둔 채 말을 이어 나갔다. 

한결

 “제 첫사랑이 유다빈 씨에요.”

한결은 10년 전부터 시작된, 오래된 제 첫사랑에 대한 얘기를 처음으로 시작했다…. 

*** 

[김한결의 진짜 사랑은 유다빈, 이화연과는 아무 사이 아냐]

[유다빈과 열애 밝힌 김한결, 광고사에 손해배상 청구 잇달아]

[열애 중인 김한결, 손해배상금만 몇십억]

[스타는 사랑도 제대로 못 하나, 사랑 인정한 김한결 계약위반 배상금액 엄청나]

처음 한결의 폭탄 고백이 있은 후 여론은 부정적이었다. 사랑하는 연인을 당당히 밝히는 모습이 멋있다는 의견이 있기도 했지만, 대체로 이화연과의 열애설이 있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금세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고 하니 그를 비난하는 의견이 우위였다. 

그런데 여성지에 둘의 다정한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커플 화보와 둘의 사랑에 대한 진실한 인터뷰가 나가고 난 후, 팬심이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은표는 분위기가 반전되는 기미가 보이자 이때를 놓치지 않고 기자들에게 광고 계약 위반으로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 금액에 대해 넌지시 운을 떼며 앓는 소리를 했다. 

기자들이 비즈니스맨인 은표의 다분히 의도적인 흘림이란 걸 눈치채지 못할 리 없겠지만, 

기자들에게도 꽤나 흥미로운 기사가 될 수 있었기에 이는 곧장 기사화되어 쏟아졌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것뿐인데, 싱글 유지라는 계약 조항 위반으로 엄청난 손해배상을 떠안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사화되자,

팬들은 한결의 편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은표

 “이건 비즈니스니까. 바람둥이가 아니라, 사랑에 목숨 건 순정남 이미지를 심어주는 거지.” 

은표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홍보팀 팀장에게 말했다. 

홍보팀직원

 “그래서 그런지 지난주에 열애설 때문에 이미지 안 좋아지면 어떡하냐고 연락했던 S그룹도 더 연락 없이 잠잠해진 눈치에요”

은표

 “다행이네.”

홍보팀직원

 “이제 이 상태에서 그냥 지켜보면 될까요?”

은표

 “지켜보긴. 내친김에 더 달려야지!”

은표의 얼굴의 회심의 미소가 드리워졌다. 


연상연하 - 우리 결혼했어요57화 - 이제 빼도 박도 못해

다빈과 한결이 함께 출연한 영화 <모태솔로 탈출기>는 기대 이상으로 좋은 흥행성적을 올렸다. 

영화 개봉 직전에 두 사람이 열애설을 인정하며, 한결의 첫사랑이 다빈이었다는 게 알려지면서 지고지순한 사랑에 여심은 한결의 사랑을 전폭 지지하기 시작했다. 

그런 둘이 동반 출연했으니, 실제 연인 커플을 한 영화에서 볼 수 있다는 호기심까지 보태져서 영화는 승승장구했다. 

영화사에서는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자 출연자와 스태프들에게 특별히 해외여행이라는 포상을 주었다. 

한결과 다빈의 입김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포상휴가는 보라카이. 

출국 당일 날, 인천 공항에는 이 새로 시작하는 비주얼 커플의 출국 모습을 촬영하기 위한 취재진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흰 셔츠에 청바지의 다빈과 단가라 티에 하얀색 면바지를 코디한 한결.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했던가.

특별할 것도 애써 차려입은 것 같지도 않은데 완벽한 비율과 얼굴에서 오는 포스가 영락없이 ‘나 연예인이오’였다.

뜨거운 취재 열기를 벌이는 카메라를 향해 한결과 다빈이 다정한 모습으로 포즈를 취했다.

더는 숨길 필요 없는 사랑.

이제는 당당히 팬들의 응원을 받는 사이였기에.

맘껏 다정함을 과시했다. 

시간을 오래 지체할 수 없어, 한결이 다빈의 어깨를 감싸 안고 공항 안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한결

 “잘 다녀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세계 3대 화이트 해변으로 유명한 보라카이의 해변 바로 앞에 자리한 리조트에 일행들의 숙소가 정해졌다. 

한결과 다빈의 숙소는 3층으로 옆 방으로 나란히 배정되었다.

아마 커플임을 의식해 나란히 배치해준 것이리라. 

공항에 도착해 각기 방을 배정받아 짐을 옮긴 일행들은 장시간 비행으로 인한 피로로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숙소에서 걸어서도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디몰로 나가 시내 관광과 쇼핑을 즐겼다. 

숙소에서 잠시 휴식을 갖은 한결과 다빈이 손을 맞잡고, 

해변가를 걸으며 휴양지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었다. 

한결

 “우리 둘은 빠져서 다른 데로 갈 걸 그랬나 봐. 스태프 전체랑 오니까 복도서도 로비서도 다 우리 일행들이라. 당신이랑 뭘 하기가 영 신경 쓰이잖아.”

다빈

 “왜, 스태프들하고 다 같이 오니까 난 좋은데. 우리 작품이 잘 된 덕에 모두들 여행을 즐길 수 있으니 뿌듯하기도 하고. 다음 작품도 잘 돼서 그때도 포상휴가 왔으면 좋겠다”

한결

 “둘이서 제대로 온 여행은 처음인데, 아쉽잖아. 사람들한테 온통 둘러싸여서”

다빈

 “아쉽긴. 돈 하나도 안 들고 공짜로 와서 좋기만 한데!”

한결

 “다른 건 다 떠나서 방은 왜 따로 잡아주냐고. 커플이 여행 왔으면 당연히 한 방을 잡아줘야지. 경비가 남아도나. 그런 돈 있으면 스태프들 회식 한 번을 더 시켜주던지. 한선우 대표한테 전화 한 번 해야겠어. 사람들이 이렇게 센스가 없어서 말이야.”

다빈

 “아아….. 결국 투덜대는 이유가 그거였어? 한방을 쓰지 못해서? 이런 엉큼한 남자가 있나!”

다빈이 밉지 않게 눈을 흘겼다. 

한결

 “그래서 말인데, 있다가 내 짐 당신 방으로 옮길까? 어차피 우리 커플인 거 다 아는데 굳이 각방 쓸 필요 없잖아. 난 한시도 당신과 떨어져 있고 싶지 않다구. 이번 여행 끝나면 나 일본 드라마 찍으러 한동안 일본이랑 왔다 갔다 해야 하잖아. 그럼 바빠서 지금 만큼 자주 얼굴 보기 힘들 텐데”

하하하. 

이 남자 이거 이렇게 귀여울 수가 있나. 

나하고 그렇게 한 시도 떨어져 있기 싫어? 우쭈쭈….

이렇게 투덜대니 평소 나이에 비해 어른스럽던 느낌은 온데간데없고, 영락없이 삐뚤어질 테다 하는 사춘기 소년의 눈빛이었다. 

그래……. 그럴 때 나를 처음 보고 좋아하기 시작했다고 했지. 

선우 오빠랑 헤어지던 날. 

갑작스런 이별통보에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고, 그렇게 넋을 놓고 있던 나를 보았다고 했었어. 

그때 혼자서 시작한 마음을 이렇게도 오래 간직하다. 결국에는 그 사랑이 이뤄질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다빈

 “저기요…. 김한결씨.”​ 

다빈

“​우리가 커플이기는 해도, 부부는 아니거든요. 근데 무슨 한 방이야, 한 방이! 나중에 우리 둘이 어떻게 될지 알고. 여기 우리 지켜보는 스태프 눈들이 몇 갠대. 나중에 헤어져서 다른 사람과 연애할 때, 그 사람들이 지금 얘기 다 하면. 나 혼사길 막힌다구” 

한결

 “흐아. 이 여자 안 되겠네.”​​ 

한결

“​나중에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늙어서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나랑 살고 있겠지. 왜 나한테 한 발만 담그고, 도망갈 여지를 다 만들어 놓고 싶어서 그래? 안 되겠어. 자꾸 그러면 유다빈이 이미 남몰래 김한결 애 낳고 어디다 숨겨놨다더라. 소문이라도 낼까 보다. 이 바닥 그런 소문일수록 빠르게 퍼지는 거 알지?”

다빈

 “헉! 점점…!!”

한결

 “그러니까 나한테서 움직일 생각하지 말라구. 당신의 마지막 사랑은 나니까. 이제 빼도 박도 못해!”

한결이 다빈의 허리를 힘껏 끌어당겨, 말랑한 다빈의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개었다. 

내리쬐던 뜨거운 태양이 자취를 감추고, 어둠이 시작되는 시간. 어둠은 애심을 더욱 과감하게 만들었다. 금세 밀고 들어온 한결의 달콤한 혀에 다빈은 숨소리까지 달아진다.

키스는 거침없었다. 

큰 움직임 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다빈의 혀를 찾아낸 한결의 혀가 비집고 꼬아, 세차가 빨아들였다. 타액이 엉켜 들고, 숨이 가빠 올랐다. 

고개를 틀어 방향을 돌리자,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타액이 다빈의 혀에서 흘러나왔다. 한결이 혀를 길게 뽑아 핥아 올렸다. 

한결

 “하루 종일 이러고 있었으면 좋겠다.” 

낮은 소리로 입을 뗀 한결의 입술이 다시 다빈의 입술 위에 포개졌다. 윗입술을 집어삼킬 듯 빨아들이더니, 이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어 당겼다. 그 느낌이 아찔하기까지 한 다빈이 감은 두 눈을 더 꼭 감았다. 

다빈의 입안에서 본디부터 제 자리인 양 거침없이 유영하고 있던 한결의 혀가, 치간을 입천장을, 볼 안쪽을 샅샅이 핥고 다녔다. 강렬한 키스의 짜릿함은 다빈의 몸도 달아올랐다.

한결의 키스를 받고만 있던 다빈이 손을 올려 한결의 목덜미를 감싸 안았다. 맞닿은 몸에서 서로의 몸이 그대로 느껴지는 순간. 한결은 참을 수 없는 정염에 휩싸였다. 

한결

 “흐앗.”

한결의 탁한 신음소리에 다빈이 한결에게서 입을 뗐다. 지금 이 남자가 위험수위에 왔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다빈

 “한결씨……”

제게서 입술을 뗀 다빈을 정염에 가득 찬 시선으로 바라보던 한결이 입을 뗐다. 

한결

 “방으로 들어가자”

***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한결과 처음으로 한몸이 된 후, 한결의 품에서 그대로 잠이 든 모양이다. 눈을 떠 보니 한결은 제 방으로 돌아간 건지 침대 옆이 비어있다. 

다빈

 “뭐야, 혼자서 나가버린 거야?”

첫 관계 후, 한결이 자리를 떴다는 게 서운하기 그지없었다. 하여간 남자들이란. 다음에 또 이러면 절대 같이 안 잘 테니 조심하라구 김한결!

한 번은 내가 봐준다. 다빈은 서운함을 뒤로하고, 욕실로 가서 샤워기를 틀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호텔 안 전화벨이 울렸다. 

다빈

 “여보세요?”

한결

 “일어났어?”

한결의 목소리였다. 

한결

 “당신 엄청 피곤했나 봐? 코까지 골고 자던데. 아님, 평상시 잠버릇인가?”

아, 이 인간이 진짜! 거룩한 첫 관계를 하고 난 다음 연인에게 할 첫 대사야 그게!!

다빈

 “왜 전화 한 건데?”

잔뜩 볼멘소리가 나갔다. 

한결

 “배고프지 않아? 호텔 앞 야외 레스토랑으로 나와. 뭐 좀 먹자”

됐네. 너나 많이 드세요. 

아무리 배고파도 오늘은 너랑 마주 앉아 밥 안 먹는다. 

이렇게 여자 맘을 모르는 남자였어?

사귀겠다고 한 거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거 아냐?!

다빈

 “난 생각 없으니까, 한결씨나 스태프들하고 먹어. 난 배고프면 있다가 룸서비스나 시켜서 먹을게”

잔뜩 심술이 난 다빈이 한결의 말에 순순히 따르지 않았다.

한결

 “어, 당신 화났어? 자고 일어났는데 혼자만 남겨두고 말도 없이 사라져서 그런 거야?”

알긴 아네. 

그래 너 그러면 안 돼. 그런 다음일수록 더 잘 해줘야 한단 말이야. 그런 거에 여자들이 얼마나 서운해하는 줄 알아!

다빈

 “아니야, 그런 거! 그냥 좀 피곤해서 그래”

한결

 “음……. 그럼 할 수 없지. 알았어”

더 권유해보지도 않고, 기다렸다는 듯이 한결이 냉큼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서운함이 목까지 차고 올라왔다. 남자들이 여자들만큼 세심하지 않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일행들 속에서 어쩌면 누가 볼 수도 있으련만, 그럼에도 개의치 않고, 제 방으로 들어와 깊은 사랑을 나누었다. 

연예인이 된 후, 연애를 안 한 건 아니지만 깊은 관계까지 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섣부른 불장난에 몸을 맡겼다가, 행여 사랑이 끝난 후 얼굴이 알려진 자신에게 좋지 않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 몰라서 깊은 사랑을 나누는 걸 두려워했었다. 

그래서 언제나 어느 선까지만 남자들을 허락했다. 

그런데 한결과는 달랐다. 

5살이나 어린 그였지만, 설사 나중에 어쩔 수 없이 이별을 하게 된다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 누릴 수 있는 모든 사랑을 다 누리고 싶었다.

그렇게 어려운 결정이었건만,

이 남자에겐 그게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닌가. 

자꾸만 서운함이 밀려와 생각이 많아졌다. 

다빈

 “에휴, 모르겠다 잠이나 자야지. 생각이 많을 땐 잠이 최고지.”

다시 이불을 들쳐 침대에 누우려는데 현관 벨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다빈

 “누구세요?”

문밖의 상대는 조연출이었고. 

무엇 때문인지 조연출의 표정이 다급해 보였다. 

조연출

 “저 다빈씨. 밑에 좀 내려오셔야겠어요. 한결씨가 밑에서 스태프 한 명이랑 시비가 붙었는데. 도저히 말려지지가 않네요. 일 커지기 전에 빨리 말려야 할 것 같은데. 우리 말은 통 안 들어서요. 그래도 다빈씨 얘기는 들을 테니 같이 좀 내려가셔서 말려 주세요”

다빈

 “싸움이요?”

다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연상연하 - 우리 결혼했어요58화 - 나랑 결혼해 줄래

세상에. 기분 좋게 포상휴가를 와서는 스태프랑 싸우기까지 해?! 

저가 봐온 한결이 이렇게 생각 없이 행동하는 사람은 아닌데. 대체 무슨 이유로 싸움까지 났을까. 다빈은 그대로 조연출을 따라 방을 나섰다. 

사람들한테 알려져 구설수에 오르기 전에 빨리 말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조연출을 따라와 1층으로 내려왔다. 

근데 어디 있다는 거야?

조연출

 “저쪽이에요”

조연출이 가리킨 곳에는 아까 한결이 말했던 해변가 바로 앞의 야외 레스토랑이 있는 곳이었다. 식사를 하던 중에 시비가 붙은 모양이다. 

한결이 있다는 테이블까지 가자, 스태프들이 웅성웅성 모두 모여 있는 가운데 여전히 한결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대체 어디서 시비가 났다는 거야?

다빈이 등장하자, 방금까지 심각한 표정의 조연출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깃든다 싶더니 다빈에게 의자를 내어주며 앉을 것을 권했다. 

권한 의자에 다빈이 자리에 앉자,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익숙한 멜로디. 그리고 그보다 더 익숙한 음성이 음악에 실려 나왔다. 

나랑 결혼해줄래

나랑 평생을 함께 살래

우리 둘이 알콩달콩 서로 사랑하며

나 닮은 아이 하나 너 닮은 아이 하나 낳고

천년만년 아프지 말고 난 살고 싶은데

솔직히 말해서 내가 널 더 좋아해

남자와 여자 사이에

그게 좋다고 하던데

내가 더 사랑할게

내가 더 아껴줄게

눈물이 나고 힘이 들 때면 아플 때면

함께 아파할게

평생을 사랑할게

평생을 지켜줄게

너만큼 좋은 사람 만난 걸 감사해

매일 너만 사랑하고 싶어

나랑 결혼해줄래 

한결과 <연우결>을 스캔들로 인해 끝내고 허전한 마음에

한결이 몰래 녹음해 보내준 그 노래를,

혼자서 듣고 또 듣고, 그렇게 수없이 반복해 들었었다.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한결이 드디어 모습을 나타냈다. 

말끔한 턱시도를 갖춰 입고 시상식이라도 참석할 것 같은 차림새로, 주변의 일반인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후광이 비추는 듯한 모습으로 그렇게 멋지게 등장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얼떨떨한 다빈의 표정 위에 한결의 진심이 담긴 노래가 울려 퍼진다.

자리를 가득 메운 스태프들에게게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사람들

 “와아…….”

싸우고 있다더니……. 이런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었던 거야?

깜깜한 어둠 속 밤바다의 일렁임이 눈 앞에 펼쳐지고, 제 앞에는 뜨거운 여름 휴양지의 낭만이 운치 있는 조명 아래 마치 영화처럼 재연되고 있었다. 

스태프 모두가 나와 이 최강 비주얼 커플의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보며, 부러움 가득한 시선을 쏟아내고 있었다. 

나랑 결혼해 줄래

드디어 노래가 끝났다. 

한결이 잡고 있던 마이크를 입에서 내려놓으며, 다빈을 바라보자 그의 눈동자 가득 다빈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싶었던 말을 드디어 입 밖으로 내뱉었다. 

한결

 “나랑 결혼해 줄래?”

생각지 못했던 프러포즈에 다빈의 눈에서 눈물이 글썽이기 시작했다. 감동의 눈물이었다. 

한결

 “결혼해 달라는데 왜 울어. 설마……. 나랑 결혼하기 싫어서 우는 거야?”

다빈의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아주면서, 한결이 우스갯소리로 눈물을 멈추게 만들었다. 

한결

 “나랑 결혼해 줘”

한결이 여전히 시선을 다빈에게 맞춘 채. 다시 말했다. 

다빈

 “아이 뭐야, 너무 멋있잖아.”

한결

 “해 줄 거지?”

다빈

 “잠깐, 나도 할 말이 있는데”

한결

 “뭔데?”

한결이 무슨 말이냐는 듯 궁금증 가득한 눈썹을 위로 찡긋. 올려 보이며 물었다. 

다빈

 “히…… 나랑 결혼해 줄래?”

당신이 프러포즈했으니, 나도 당신에게 프러포즈할래. 

당신이 오랫동안 품어왔던 그 사랑을 나 역시 같은 크기로 품고 살고 싶어졌어. 

그래서…… 나도 이제 당신이 아니면 안 될 것 같거든.

한결

 “하하하. 기꺼이! 그동안 얼마나 참고 기다려왔는데.”

한결이 바지 주머니에서 준비해 온 반지를 꺼내 들어 보였다. 

다빈

 “우와 반지까지? 계속 바빴는데 언제 다 준비했어?”

다빈의 얼굴에 함지막한 웃음이 일렁였다. 

한결

 “지금 끼고 있는 이 반지도 좋지만. 이건 똑같은 걸 다른 누군가도 하고 있어서. 이 반지 볼 때마다 당신이 기분 안 좋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게 내내 마음에 걸렸었어.”

다빈

 “아…… 난 이 반지 끼고 여러 일들을 겪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사랑하게 된 과정이 다 담긴 반지라 좋았어.”

다빈은 제 손에 끼워져 있던 커플링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한결

 “알아. 그래도 프러포즈하면서 멋진 반지를 새로 하나 해 주고 싶었어. 더 예쁜 걸로다가. 세상에 단 2개만 있는. 그래서 우리 둘이 아니면 누구에게도 없는! ……자, 손 내밀어 봐”

다빈이 손가락을 내밀자, 한결이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반지를 끼워주는 남자나 손을 내밀고 있는 여자나 그 화려한 비주얼에, 스태프들은 마치 영화 속 장면을 실제 앞에서 감상이라도 하고 있는 듯 부러움 가득한 미소를 띠며 지켜보고 있었다. 

한결

 “자, 됐다. 어때 마음에 들어?

다빈의 손에서 가운데 다이아몬드가 영롱하게 박힌 반지가 아름답게 빛났다. 다빈은 제 손에 끼워진 반지를 바라보며 행복 가득한 표정이다.

다빈

 “예쁘다. 맘에 들어”

한결

 “당신이 훨씬 더 아름답긴 하지만. 그거 끼고 있으니까 열 배쯤 더 예뻐 보인다. 후훗.”

한결이 쪽 하며 다빈의 볼에 입을 맞추자, 이 최강 커플의 프러포즈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스태프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사람들

 “와아…… 키스해! 키스해! 키스해”

겨우 볼에 하는 입맞춤쯤으로는 너무 약하다는 듯 ‘키스해’를 연호해 댔다. 

멍석이 깔렸다고 마다할 한결이 아니었다. 

한결은 기다렸다는 듯이 다빈의 안고는 뒤로 가득 허리를 꺾어,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한 장면처럼 드러눕듯 안긴 다빈의 입에 진한 키스를 퍼부어 댔다. 

감독

 “휘리릭!!”

조연출

 “와아!!!”

사람들

 “멋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스태프들 사이에서 휘파람 소리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온 스태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프러포즈도 승낙받았겠다, 이제 뭐 더는 거리낄 것도 없었다. 한결은 입술을 뗀 후, 다빈의 허리를 일으켜 세운 후 곧장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는 숙소를 향해 발길을 옮기며, 뒤에 있는 스태프들을 향해 외쳤다.

한결

 “프러포즈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우리 커플은 지금부터 둘이서만 오붓한 시간을 보낼 테니 오늘부터 갈 때까지 제발 우리를 찾지 말아 주세요. 부탁들 드릴게요”

그 말의 의미를 다 알아챈 다빈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한결은 위풍당당하게 다빈의 어깨를 껴안고 숙소를 향했다. 

아, 몰라. 몰라. 이렇게 스윗하면 어쩌란 말야. 너무 좋잖아. 아흑 

***

다빈의 방으로 들어선 두 사람. 다빈은 그대로 한결의 옷깃을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큰 키의 한결의 얼굴에 두 손을 감싸 쥐고는 까치발을 들어 입을 맞추었다. 

다빈

 “오늘 프러포즈 정말 감동이었어. 하여간 김한결 여자 마음 훔치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니까?”

한결

 “당신 좀 전에 나오기 전에 삐쳤었지?”

다빈의 손이 내려와 한결의 허리 뒤를 감싸 안았다. 

다빈

 “사실, 좀 그랬지. 잠깐 잠들었다 깼는데 없어서. 한 번 자고 나더니 마음이 변했나 싶기도 해서”

한결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유다빈을 두고 어찌 그런 맘을! 당신이랑은 아무리 같이 자도 절대 마음 변할 리 없으니까 안심하라구. 후훗”

다빈

 “그으래…?! 이 남자 오늘따라 하는 멘트마다 멋진데?” 

한결

 “그럼, 말로만 말고 행동으로 좀 보여주던가.”

한결이 입술을 쭉 내밀자, 다빈이 웃음 가득한 얼굴로 한결에게 다시 입술을 가져갔다. 

한결

 “사랑해”

여전히 다빈의 입술에 제 입술을 붙이고선, 한결이 사랑을 속삭였다. 

맞붙어 있는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에 다빈이 한결의 아랫입술을 물듯이 빨아들이고는 열린 틈 사이로 제 혀를 밀어 넣었다. 높이 든 까치발이 버거울세라 한결이 다빈의 허리를 꼭 끌어 앉자 키스는 점점 더 농밀해지기 시작했다.

다빈의 혀는 마치 연주라도 하는 듯 부드럽고, 유연하며, 달콤했다. 거침없이 한결의 혀를 찾아 뱀이 똬리를 틀어 말아 쥐는가 싶더니, 놓아주고는 다시 똬리를 틀기를 반복했다. 

이제 다빈은 제 사랑을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지금까지 대체 이 뜨거운 정염을 어떻게 숨기고 있었을까.

거침없는 내뿜는 다빈의 사랑이 어찌나 강렬한지 한결의 숨결이 터질 듯 뜨겁게 달아올랐다.

가슴이 두근두근. 미친 듯이 뛰었다. 

한결

 “흐하…… 당신 키스는 최고야……”

다빈

 “키스만 최고 줄 알아? 그다음은 더 최고일걸”

정염에 젖은 다빈의 음성은 무척이나 섹시했다. 한참을 이어지던 키스에 다빈이 가쁜 숨을 몰아쉬자 한결의 입술이 하얗고 우아한 목선을 따라 내려갔다. 

그 생경한 찌릿함에 다빈이 부르르 몸을 떨었고, 이내 한결의 거칠어진 숨결이 다빈의 온몸에 와 닿기 시작했다. 

다빈의 손가락에 한결의 손가락이 들어와 교차하며 깍지를 꼈다. 이제 서로가 서로에게 모든 것을 허하기로 했다. 

사랑은 극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뜨거워진 열락에 탁한 신음이 내뱉어졌다.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 절대 떨어져 있고 싶지 않은 유일한 사람. 내 사랑. 

거침없이 내달리던 둘의 몸이 하나가 되었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붙어 있기라도 한 듯 한참 동안을 떨어지지 않은 채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뜨거운 쾌감에 몸을 내맡겼다. 

다빈

 “하아…… 좋아. 한결씨 너무 좋아……”

한결

 “후훗……. 뭐가 좋다는 거야. 사랑을 나누는 게 좋다는 거야, 내가 좋다는 거야?”

다빈이 아이처럼 웃었다. 

다빈

 “당연히…… 둘 다!”

몸과 마음이 온전히 하나로 합쳐진 사랑. 

둘은 그 사랑을 오랫동안 곱씹어 확인하며 불같은 밤을 지새웠다. 

한결

 “사랑해. 유다빈….. 내 여자가 되어 줘서 고마워”

다빈

 “사랑해. 한결씨…… 내 남자가 되어 줘서 고마워”


연상연하 - 우리 결혼했어요59화 - 다빈은 인기녀 - 외전(1)

2년 후.

다빈의 미니시리즈 녹화현장.

남자1

 “30분만 쉬었다가 가겠습니다.”

새벽부터 강행군으로 이어지던 촬영이, 극 중 다빈의 연하 상대역으로 나오는 유민이 연거푸 NG를 내자 잠시 촬영을 멈추고 쉬었다 가기로 했다. 

다빈은 그제서야 한숨 돌리며,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는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지난 3일간 집에도 제대로 못 들어가고, 잠잔 시간을 모두 합쳐 10시간이 되지 않을 정도라 몸이 곧 내려앉을 듯 피곤했다. 

대기실 안으로 들어와 앉자, 코디가 달라붙어 메이크업과 옷매무새를 다듬어 주고 있는데, 유민이 열려있는 대기실 문밖에서 “똑똑” 노크 소리를 입으로 내며 들어왔다. 

유민

 “누나 피곤한데 제가 자꾸 NG를 내서 죄송해요. 어제 바뀐 대본이 영입에 붙질 않아서요”

미니시리즈 캐스팅은 인기를 가늠하는 척도긴 했지만, 쪽대본에 매달려 대본을 외우고 생방송이다 싶을 정도의 빡빡한 촬영 일정으로 촬영과 편집, 방송이 진행되고 있어서 주연 배우들로서는 체력적으로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니었다. 

다빈이야 그런 작업현장에서 10년 이상을 일해 왔으니 이제는 만성이 되었지만, 연하남으로 출연한 첫 드라마에서 주연을 능가하는 인기를 얻으며, 국민 연하남이라는 칭호를 얻으며 일약 스타덤으로 오른 유민은 첫 미니시리즈 주연작이니 더 힘들 것이다. 

다빈

 “난 괜찮아. 함께 연기하는 상대역끼리 그 정도는 이해해줘야지. 대본도 어제야 나왔으니…… 충분히 이해하니까 나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연기해”

유민

 “고마워요. 누나”

다빈은 현장에서 인기가 많았다. 

출연한 드라마와 영화가 연거푸 흥행 홈런을 치면서 이제는 톱 여배우 반열에 올랐지만, 오랜 조연 생활을 거치면서 겸손과 배려가 몸에 배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드라마는 여주인공 하나에 메인 남주 하나, 서브 남주가 둘이나 되는 남자 복 많은 드라마였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다빈보다 연하였다. 

여배우 한 명에 남자 배우가 세 명이 되는 상황이 되다 보니, 스태프들까지도 남자끼리 붙는 장면보다는 다빈과 함께 촬영이 걸리는 것을 좋아했으며, 상황이 이쯤 되니 다빈이 있는 장면의 촬영장은 분위기부터 달랐다.

오죽하면 다빈이 없는 장면은 촬영을 나오기 싫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유민과 다빈이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고 있는데, 

다음 장면 촬영을 위해 막 도착한 두 명의 서브 남주 시현과 창재가 다빈의 대기실을 찾았다. 

시현

 “어, 뭐야. 유민이 넌 또 여기 와 있냐”

들어서던 시현이 다빈의 옆에 앉아 있는 유민을 보며, 장난스레 한 마디 던졌다. 

유민

 “그러는 형은 왜 오자마자 여기부터 오는데요?”

시현

 “나야 지금 왔으니까, 누나한테 인사하러 왔지. 누나 저 왔어요”

다빈

 “후훗. 그래, 시현씨. 창재씬 감기 좀 괜찮아? 얼굴은 어제 들어갈 때보단 괜찮아 보이긴 하는데”

창재

 “네. 어제 좀 일찍 들어가서 약 먹고 잤더니 한결 좋아졌어요”

다빈

 “배우는 연기도 중요하지만, 체력 관리도 잘해야 돼. 작품 들어가면 아파서도 안 되거든. 그러니까 평소에 건강 신경 써. 젊다고 자만하지 말고.”

창재

 “하하하. 우리 누님…… 넵!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좀 드세요. 누나 여기 커피 좋아하신 데서 일부러 오는 길에 들러서 사 온 거에요”

창재가 다빈이 좋아하는 커피전문점의 마끼야또를 건네주며 말했다. 

유민

 “어? 형 저희꺼는요?”

유민이 다빈에게만 전해지는 커피를 보며, 저희들 거는 없냐며 물었다. 

창재

 “야야, 나 출연료 너보다도 적어. 그러니까 네건, 네가 사 먹어.”

유민

 “우와, 형 너무해요. 그거 얼마나 한다고 사는 김에 우리 것도 좀 사 오지”

유민이 혀를 차며 섭섭함을 토로하는데, 옆에서 시현이 한술 더 뜨고 나온다. 

시현

 “누나, 출출하진 않으세요. 오늘도 촬영 길어질 것 같아서 제가 누나 드시라고 수제 샌드위치랑 수제 비스킷 사 왔는데….. 이것도 중간중간 좀 드시고 하세요”

역시 다빈의 손에만 안겨주는 간식거리다. 

유민

 “이번에도 다른 사람들 건 없어요? 우와……, 이 형들 진짜 너무하네!”

시현

 “너는 네가 사다 먹어, 임마!”

세 사람이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다빈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인다.  

그때, 생각지도 못했던 한결이 대기실로 들어왔다. 

뭐야, 무슨 분위기가 또 이렇게나 화기애애해?! 그것도 남자 셋한테 둘러싸여서. 

하여간 이 여자는 잠시만 눈을 떼면 남자들에 둘러싸여 있지!

세 명의 남자 후배에 둘러싸여 담소를 나누고 있는 다빈의 모습에 영 심기가 불편한 한결이다. 

한결

 “흠흠”

다빈

 “어머, 한결씨!”

각자 바빠서 며칠간 제대로 얼굴도 못 본 통에 한결을 본, 다빈의 얼굴 만면에 미소가 가득 들어차고, 

선배 연기자 한결의 등장에 남자 셋이 쪼르르 일어서 인사를 한다. 

유민

 “안녕하세요. 선배님!”

시현

 “안녕하세요.”

창재

 “안녕하세요.”

후배들을 보는 한결의 눈빛이 영 못마땅하다. 

한결

 “니들은 니들 대기실 놔두고, 왜 맨날 여기 와서 쉬냐! 우리 다빈씨 쉬지도 못하게! 쉴 때는 좀 각자 대기실에서 쉬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해?!”

다빈

 “한결씨……”

다빈이 한결을 말리고 나섰다. 

다빈

 “커피랑 간식거리 갖다 주러 온 건데, 그렇게 말하면 내가 미안하잖아”

다빈의 말에 한결의 시선이 다빈의 손에 쥐어진 커피와 간식거리로 간다. 

한결

 “니들 또 저런 거 사다 날랐냐? 이런 거 갖다 주면서 우리 다빈씨 환심 사려고 해도 소용없어. 우리 다빈씨는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내 여자라니까!”

한결이 세 남자를 향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유민

 “선배님 진짜 행운아십니다! 제가 2년만 일찍 데뷔해서 <연우결>을 형이 아니고 제가 다빈 누나랑 찍었으면 아, 그럼 지금 선배님 자리에 제가 있었을 텐데 말예요…..”

한결

 “행여나! 우리 다빈씨가 눈이 좀 높은 줄 알아? 너 정도는 어림도 없지. 나나 되니까 우리 다빈씨 낚아챘지”

유민

 “아, 예…….”

마지 못해 수긍하는 유민이다. 

한결

 “야,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니들 대기실로 가. 우리 아내님과 오붓하게 둘 만의 시간을 좀 갖게!”

시현

 “와아, 집에서 매일 보면서, 여기까지 나와서 닭살 행각이에요. 결혼도 하신 분들이”

한결

 “결혼까지 했으니까 더 그렇지.”​

한결

​“​결혼까지 한 내 와이프를 내가 일주일에 보는 날이 며칠밖에 안 되니까 더 그러는 거 아니냐. 그러니까 빨리들 좀 사라져 주라. 촬영 들어가기 전에 며칠간 못한 뽀뽀라도 좀 하게”

다빈

 “어머, 한결씨……”

다빈이 눈을 흘기며 한결의 팔을 톡톡 건드렸다. 

시현

 “아유, 조금 더 있다간 무슨 구박을 더 받을지 모르겠네요. 야야, 우리 그만 비켜드리자. 두 분이서 영화라도 한 편 찍으시려나 보다. 19금으로 다. 그러니까 얼른 나와”

그제서야 시현이 유민과 창재를 데리고 대기실을 나갔다. 

다빈

 “한결씨 왜 그렇게 농담을 해, 민망하게.”

한결

 “농담 아닌데?!”

남들은 결혼하고 나면, 잡은 물고기에 밥 주냐며 느긋해지고 관심도 줄어든다는데,

어떻게 된 게 이 남자는 결혼하고 나서 나날이 애정도가 더 높아지는 것 같다. 

한결

 “그러니까 쟤네랑 놀지 마, 친하게 지내지 마!”

한결

 “어떻게 된 유부녀가 촬영장 와서 볼 때마다 연하남들에 둘러싸여 있어? 어울리려면 신구 선생님이나, 이순재 선생님 이런 선생님들하고 어울려. 그러면 배울 것도 많고 좀 좋아?”

내가 말을 말아야지. 아무래도 저 남자 의처증 검사라도 좀 받아보게 해야 되는 거 아냐?

다빈

 “근데 여긴 웬일이야? 오늘 바쁘다고 했잖아?”

한결

 “장비에 말썽이 생겨서 촬영이 몇 시간 연기됐어. 그래서 우리 아내님 보러 왔지. 이렇게라도 안 하면 통 볼 수가 있어야지”

다빈

 “이제 2회밖에 안 남았으니 조금만 참아. 후훗. 이번 작품 끝나면 우리 몇 달 동안 스케줄 잡지 말고 여행 다니면서 좀 쉬자”

한결이 다빈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한결

 “그 소리 이번 작품 들어가기 전에도 했잖아. 그러다 또 마음에 드는 작품 들어오면 이것만 하고 쉬자고 할 거면서.”

다빈

 “후훗. 그런가”

한결

 “그러니까 지금은 아쉬운 대로 이것부터!”

다빈의 허리를 감싸 손에 힘을 주어, 더 제 쪽으로 잡아당기고는 입술을 맞추었다. 부드럽게. 달콤하게. 

한결

 “촬영 펑크 내고 이대로 집으로 가버릴까? 흐흣”

한결의 장난스런 물음에 다빈이 한결에게서 몸을 떼고는

다빈

 “잠깐만. 나 좀 속이 안 좋아. 졸려서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가…….”

하더니, 토할 듯 인상을 지어 보인다. 

한결

 “구체적으로 말해 봐. 어디가 어떤데?”

어디 크게 아픈 건 아닌가 싶어 물어보는 한결의 표정이 심각하다. 

다빈

 “글쎄……. 소화도 잘 안 되고, 속도 좀 쓰리고, 입맛도 영 없고. 구토도 좀 나고”

한결

 “병원 가봐야 되는 거 아냐?”

다빈

 “글쎄…. 얼마 전부터 그랬는데 점점 더 심해지네”

한결

 “그랬음 촬영 중간에라도 병원을 가 봤어야지. 당장 안 가봐도 괜찮겠어?”

그러고 보니, 다빈의 낯빛도 전 같지 않은 게 한결은 영 신경이 쓰인다. 

다빈

 “그 정도로 심각하진 않아. 다음 주까지 촬영하면 되니까, 그러고 나서 가 보자.”

한결

 “알았어. 그럼 촬영 끝나고 다음 주에 바로 가기다?!”

다빈

 “응.”

그때 대기실 밖에서

남자1

 “유다빈씨 5분 뒤에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촬영 재계를 알려오는 스태프의 소리가 들렸다. 

다빈

 “촬영 시작한다. 나 들어가 볼게. 바로 갈 거지? 이따가 새벽에 볼 수 있으면 봐”

다빈이 한결의 입에 쪽. 입을 맞추고는 서둘러 나갔다. 

다빈이 나간 대기실 문을 바라보는 한결의 눈빛이 걱정스럽기 그지없다. 



연상연하 - 우리 결혼했어요60화 - 외전(2)


다빈과 함께 병원을 찾은 한결의 표정이 심각하다. 

한결

 “선생님 어디가 많이 안 좋은가요? 요즘 안색도 영 안 좋은 게, 제가 보기에도 어디에 단단히 문제가 생긴 거 같은데요”

결과지를 보고 있던 내과의의 얼굴에 옅은 웃음이 지나간다.

의사

 “유다빈씨의 경우는, 과를 옮기셔서 검사를 받아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한결

 “네? 내과가 아니라면 그럼 어느 과를 말씀하시는 건지……?”

의사

 “산부인과요”

한결

 “네, 산부인과요?”

의사

 “네, 자세한 결과는 그쪽에서 들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다시 피검사를 받고, 초음파를 본 후 나란히 산부인과 의사 앞에 앉은 한결과 다빈.  

의사2

 “축하합니다. 임신이시네요” 

한결

 “네? 이, 임……신 이라구요?”

한결과 다빈의 눈이 놀라움으로 동시에 커졌다. 

의사2

 “네. 8주 정도 되셨네요”

다빈

 “세상에!!”

그러고 보니 지난달부터 생리가 없었던 게 생각이 났다. 평소에도 불규칙한 데다가, 바쁜 촬영 스케줄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버텼으니 그것 때문인 줄만 알았다. 

속이 불편하고, 안색이 안 좋고, 몸이 영 무거운 게 다 임신 때문이었다니!

다빈은 기쁘고 감사한 맘에 손을 제 배 아래에 대어 보았다. 

‘안녕, 아기야.’

놀랍고 반갑기는 한결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기? 내가, 아빠가 된다…….? 

결혼하면서 막연하게 ‘언젠가 아기가 생길 테지’하는 생각은 했었지만. 막상 진짜 다빈이 임신을 했다고 하니 실감이 나질 않았다. 

의사2

 “임신 초기는 유산의 위험이 크니 무리한 활동은 하지 마시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편하게 지내세요”

한결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의사에게 몇 가지 유의점을 전달받고, 병원을 나서는 기분이 마치 새로운 세상을 맞는 기분이었다. 

아빠가 된다는 생각에 들뜬 한결이, 아직 티도 안 나는 다빈의 배에 손을 가져다 대고는, 

다빈

 “아기야, 아빠야. 엄마랑 아빠한테 와 줘서 고마워. 건강하게 엄마 뱃속에 있다가 건강하게 우리 만나자”

자신들을 찾아와준 아기에게 첫 인사를 전했다.  

*** 

평소에는 낮잠은 거의 자본 적이 없는 다빈이건만 임신 사실을 안 다음 날부터, 그렇게 졸리기 시작했다. 

아침 먹고 나면, 얼른 쉬라고 밀어 넣는 한결에 못 이겨 방에 들어오면 저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고, 점심을 먹고 한결과 함께 근처 공원을 잠깐 산책하고 나온 후에도 졸음이 쏟아졌다. 

한결

 “임신하면 체질이 변한다더니 당신, 임산부가 맞긴 한가 보다. 그렇게 잠이 쏟아지는 걸 보면”

달라진 건 낮잠뿐이 아니었다. 

평소에 잘 먹던 신김치도, 식사 때마다 빼놓지 않던 피클도, 하루건너 하루는 먹던 생선도 통 먹을 수가 없었다. 그 냄새만 맡아도 속이 울렁거리는 게 구토가 올라올 것 같아서.

그런데 재밌는 건, 그걸 한결도 다빈과 똑같이 한다는 거였다. 아니, 오히려 한결이 더 심했다. 한결은 냄새만이 아니라, 그 모양만 봐도 다빈보다 훨씬 심하게 헛구역질을 해 됐다. 

다빈

 “정말 당신 이럴 거야. 가뜩이나 속이 울렁거려서 미치겠는데 당신까지 옆에서 그러면 어떡해. 그러니까 제발 좀 참아주라”

임신 중이라 평소보다 예민해진 다빈이 보다 못해 한소리 했다. 

한결

 “이게 말이야 내 의지가 아니야. 내가 일부러 그러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이상하게 보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리고 미식 미식 거리면서 속이 다 뒤집어지는 것 같은 걸 난들 어떡해”

다빈

 “참나! 입덧도 하는 김에 애도 그냥 당신이 낳지그래?”

한결

 “그럴까? 아닌 게 아니라 그거 엄청 아프다던데, 할 수만 있으면 내가 진짜 대신 낳아주고 싶다”

다빈

 “아휴, 점점. 하여간 내가 말을 말아야지”

다빈이 힐끗 쏘아보며 소파로 가 앉았다. 

한결

 “자기야 내가 책 읽어 줄게. 옆에 앉아 봐.”​

한결

“​태교로 아빠가 책 읽어주는 게 그렇게 좋다네. 뱃속에 있을 때 아빠가 책이나 노래를 자주 해주면 아기가 아빠 목소리를 기억한대. 그래서 엄마 뱃속에서 막 나왔을 때 울잖아. 그때 아빠 목소리를 들으면 아기가 울음을 뚝 그친다네. 신기하지?”

다빈

 “그래? 진짜 신기하다. 근데 당신은 그걸 어떻게 알았어?”

한결

 “어어, 그거? 임산부 카페에 당신 이름으로 가입했지. 그곳에 좋은 정보가 엄청나게 많아. 당신도 한 번 들어가 봐”

원래 그랬던 걸 다빈이 몰랐던 건지, 결혼과 임신 후 한결은 수다쟁이 아줌마가 된 것 같았다. 

하루 종일 한결은 다빈과 붙어 앉아서 책을 읽고, 얘기를 나누고, 산책을 즐기며 지루해할 틈을 주지 않았다.

덕분에 임신을 하면 그로 인한 우울증이 오기도 한다는데, 다빈은 한결 덕분에 오히려 이전보다 더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편안해졌다.  

*** 

R rrrr. Rrrrr. 

은표의 전화였다. 

한결

 “예. 형님”

은표

 “다빈씨랑 뱃속에 아기는 잘 지내고?”

한결

 “네. 아주 건강하게 잘 크고 있어요”

은표

 “다행이네. 다빈씨야 임신으로 잠깐 쉰다고 해도. 너 이제 슬슬 활동 시작해야 되는 거 아냐?”

그러고 보니 벌써 다빈이 임신을 하면서 같이 활동을 접었던 한결은 다빈이 임신 8개월이 다 되어 가도록 아직 복귀하지 않고 있었다. 

한결

 “하긴 해야죠…..”

은표

 “그렇게 남의 말 하듯이 하지 말고. 남들은 애가 생기면 기저귓값이랑 분윳값 번다고 더 열심히 일한다는데, 넌 어째 그 반대냐?”

한결

 “하하하. 그런가요? 어차피 출산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까 태어나는 거 보고 그다음에 복귀할게요. 저 촬영 갔을 때 진통 올까 봐, 혼자 두기가 영 불안해서요.”

은표

 “하아, 그 녀석 유난은. 아빠는 너 혼자만 되냐. 적당히 하고, 이제 일 좀 하자. 일 좀 해. 너 때문에 우리 회사 수입도 반으로 준 거 너 알지?”

한결

 “알아요, 압니다. 복귀하면 기저귀에 분유 CF까지 왕창 잡아주세요. 아빠 되니까 할 수 있는 CF도 더 늘어서 좋네요. 하하하”

은표

 “아무튼, 괜찮은 시나리오 몇 개 동호 통해서 보낼 테니까 한 번 읽어보기나 해”

한결

 “네, 형님.”

전화가 끊어지자,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다빈이 한결을 바라봤다. 

한결

 “왜 그렇게 봐? 당신도 내가 빨리 복귀했으면 좋겠어?”

다빈

 “배우에겐 결혼이 그간의 이미지에 크게 영향을 주잖아. 여배우만큼은 아니지만 남자 배우 역시. 너무 오래 공백기를 가지면 이미지가 너무 가장, 아빠, 유부남 이쪽으로 가서 캐스팅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고…… 나도 당신 이제 그만 복귀했으면 좋겠어.”​ 

다빈

“​그렇다고 무조건 아무 작품을 하라는 게 아니라, 시나리오는 좀 검토하는 게……”

한결

 “왜? 아기 낳고 복귀 늦어지면 인기 떨어져서 연기 못할까 봐 그래?”

다빈

 “글쎄, 딱히 그렇다기 보다. 앞으로도 평생 연기를 하며 살 텐데 그 일에서 당신의 의지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점점 배제되는 일이 생길까 봐.”​ 

다빈

“​그래서 당신 마음이 다칠까 봐. 그게 걱정이 돼”

다빈의 말에 한결이 다빈을 제 품에 감싸 안았다. 

한결

 “여보! 내 미래까지 걱정해 줘서 고마워. 근데 말야. 나 연기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다라고 생각 안 해. 나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서 연기를 선택할 수 있을 땐 연기에 최선을 다할 테지만. 꼭 그 일이 아니라도 나 자신감 잃지 않아.”​ 

한결

“​그렇잖아도 은표 형한테 회사 운영에 대해서도 배우는 중이야. 전부터도 그쪽에 관심이 있었거든. 나 경영학도 출신이잖아.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다빈

 “그래, 알았어”

혼자서 속으로 그런 준비까지 하고 있는 줄 몰랐다. 든든했다. 저보다 5살이나 어린 남자였지만 가장인 한결은 그 어느 때보다 든든한 울타리 같았다. 

‘아가야, 아빠 참 멋지지?’

다빈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배를 어루만졌다.  

*** 

다시 4년 후. 

딸 유빈을 낳고 3개월 정도가 지나서 한결은 사극으로 복귀했다. 

처음으로 도전하는 사극이라 우려도 논란도 많았지만, 한결은 그 모든 우려와 염려를 연기력으로 잠재웠고, 영화는 대성공을 거둬 역대 흥행순위 5위 안에 드는 기염을 토해냈다. 

뿐만이 아니었다. 

아시아에서는 이미 결혼 전 한류스타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지만, 그 사극이 해외 영화제에도 초청되어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해외에서도 러브콜을 보내, 할리우드에서 촬영한 영화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둬,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스타반열에 올라섰다. 

그 인기와 관심은 다빈과 유빈에게까지 이어져 이들 부부의 움직임이나 공개석상에 동반 참석한 모습과 파파라치 컷은 국내는 물론 해외 잡지에도 단골로 실릴 만큼 높은 인기와 관심을 모으고 있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쉬는 한결이, 딸 유빈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기로 했다. 

유빈

 “아빠, 오늘 유빈이 어린이집 안 가고 싶어”

한결

 “왜?”

얼굴을 통 볼 수 없는 아빠라 모처럼 촬영 없이 쉬는 날 아빠와 실컷 놀고 싶어서였다. 

유빈

 “아빠랑 같이 놀고 싶어서. 아빠 유빈이랑 안 놀아준 지 열 밤도 넘었잖아”

네 살 유빈에게 가장 큰 수는 ‘열’이었다. 그래서, ‘열 밤도 넘었다’고 말하는 건 그만큼 오래되었다는 표현이었다.

한결

 “그러면…… 유빈이 어린이집 갔다 오면, 아빠가 실컷 놀아줄게.”

유빈

 “음…… 아빠 약속한 거다! 있다가 어린이집 갔다 오면 유빈이 하고만 놀아주는 거다”

한결

 “그래 알았어. 아빠랑 약속”

한결은 손가락을 내밀어 유빈과 새끼손가락을 꼭꼭 내걸었다. 

유빈

 “그럼 아빠, 유빈이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유빈이 보고 싶을 텐데 어떡해?”

한결

 “응?”

한결이 미간을 올려 눈을 찡긋해 보이고는

한결

 “유빈이 올 때까지 엄마하고 놀고 있을게. 엄마랑 그동안 같이 못 놀았던 거 하면서.”

유빈

 “그동안 엄마랑 같이 못 놀아서 아빠도 속상했구나”

한결

 “그럼, 엄청 속상했지”

유빈

 “알았어. 그럼 유빈이 올 때까지, 엄마랑 그동안 못 놀았던 거 하면서 놀고 있어. 유빈이가 허락해 줄게”

한결

 “허락해줘서 고마워”

한결이 웃으며 유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빈은 그런 부녀의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유빈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온 한결은, 급하게 다빈을 찾았다. 

다빈

 “왜?”

한결

 “유빈이 오기 전까지, 그동안 못 놀았던 거 하고 놀아야지”

다빈

 “그동안 못 놀았던 거라니?”

한결

 “그동안 못 놀았던 거, 애들은 할 수 없는 어른만 할 수 있는 은밀하고, 짜릿한 그거”

한결의 입가에 음흉스런 미소가 퍼져 나갔다.

다빈

 “어머, 어머 응큼하기는!!”

말뜻을 알아챈 다빈이 눈가를 흘겼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입술을 찾아드는 한결의 입술에 사로잡혀, 그동안 바빠서 못했던 그 은밀하고, 짜릿한 놀이를 유빈이 오기 전까지 몇 차례나 즐겼다. 

한결

 “우리 이참에 유빈이 동생도 만들까? 하하”

다빈

 “그럴까. 하핫” 

그리고 몇 달 후, 한결은 다시 다빈을 대신에 심한 입덧에 시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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