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697
그 겨울, 남춘천역 /양현근 (낭송 허무항이)
대합실의 나무의자는 먼지를 끌어안고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펄펄 내리는 눈은 길을 지우고
새벽을 껴입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역무원이 느릿느릿 잠을 털며 난로에 불을 지피고
잔기침소리에 타닥,타닥 불길이 일었다
허연 입김을 내뿜는 아저씨를 배경으로
등 굽은 노인이 급하지 않은 이정표를 뒤적거렸다
기차는 오지 않고 눈발은 풍경을 하얗게 지우는데
발목이 젖은 사람들 난로에 둘러앉아 온기를 껴입었다
외진 순대국밥집에서 며칠 눈에 파묻혀
막걸리나 몇 사발 걸쳤으면 싶은 날
대설주의보 소식이 분분하게 날리고
어느 설해목 아래 젖은 상처 부등켜안고
한 사나흘 모진 눈발로 마저 휘날렸으면 싶은데
내내 소식은 오지 않았다
소복하게 기다림이 쌓여갈 때쯤
난로 위의 주전자는 들끓는 입김을 허공에 풀어내고
한 그릇 국밥 같은 소리가 선로 위를 달려오고
부풀어 오르는 발자국들
먼 길 가는 노인의 보따리에 창틈으로 스며든 외풍이 시린 엉덩이를 걸친다
초행길도 같이 기대어 가면 화르르 봄꽃도 될 거라고
몰려오는 졸음이 말없이 그바람을 당겨 덮고 있다
울퉁불퉁한 사연을 견딘 멍자국 가뭇한 유리창에
막 나온 국밥처럼 뜨거운 입김이 공손하게 얹히고 있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