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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포항 달빛아래 / 최정신 (낭송 허무항이) 지상의 밤은 모두 감포로 와서 깃을 접는다 어둠을 휘장으로 덮은 동해 기슭 아직 덜 여문 달이 나신을 던져 두렁박 없이 자맥질이다 저 달은 긴밤 무엇을 찾아 물질일까 헛튼 생각 넘어 겹겹 달려드는 해조음에 잠겨 신새벽 향한 시간을 베어먹는데 집채만 한 덩치에 눈매 순한 길개 한 마리, 방파제 너머 어슬렁 해변을 누빈다 여름이 썰물로 떠난 갯가 어둠 속에서 외로움이 우물처럼 깊었을까 낯선 나그네가 건네는 손짓에 성큼 곁으로 다가서다 주춤 빈손인 내게 야속하고 서운한 눈길로 등을 보인다 언젠가 잠시 마음 기댄 옛사랑이나 한순간 스쳐 지난 짐승일지라도 몇백 년, 몇천 년 전, 슬픈 미물로 만나 함께 한 적 있었지 않았을까 혹여, 전생이 공양간 밥보살은 아닐지라도 빈 입으로 보내야 했음이 못내 꺼림직하다 누군가 세간 등짐 색스폰 연주로 내려놓던 감포항 달빛아래 공복의 눈빛이 서늘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