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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녁 불빛을 사랑하였다 / 허영숙 (낭송 허무항이) 마음에 없는 이별을 하는 사람처럼 노을의 눈자위가 붉어진다 쪼그려 앉는 꽃들 한 쪽 어깨가 기울고 있는 나무 이 서글픈 틈새를 저녁이라 불러놓고 어둠이 불빛을 조금씩 모으고 있다 악수도 없이 헤어진 사람에 대해서 어딘가에 이마를 기대지 않고는 말 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창가에 불빛을 내건다 그러면 하늘은 늦도록 꺼지지 않는 불빛을 하나 둘 거두어간다 별이 뜬다 저것은 먼데서 오는 불빛 풀씨 한 점 보이지 않을 만큼 다 저물고 난 뒤에도 또 저무는 마음을 견딜 수 없어 누가 하늘에 이마를 기대고 있다 나도 한 때 그 저녁의 불빛을 사랑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