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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줄리엣, 발레리나 강수진
발가락 마디마디가 기이하게 변형된 발레리나 강수진(41)의 맨발. 그의 맨발을 찍은 사진이 공개됐을 때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1985년 스위스 로잔 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로 1위, 1999년 동양인 최초로 무용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성무용수로 선정, 2007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50년 역사상 단 4명에게만 주어진 ‘캄머 탠처린(궁중 무용가)’선정...발레리나 강수진이 20여년 동안 이룬 일들이다.
현재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는 강수진이 17일과 1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전막 공연을 한다.
강수진에게 있어 <로미오와 줄리엣>의 의미는 특별하다. 강수진은 1993년 존 크랑코 안무의 <로미오와 줄리엣> 초연 30주년 기념무대에 주역 무용수로 발탁됐다. 그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동양인 최초, 최연소로 입단한지 7년 된 해였다. 이날 강수진은 당당히 주역 무용수로 성공적인 데뷔 공연을 치렀고, 극장을 가득 메운 1천 500여명 관객의 박수갈채는 20여 차례의 커튼콜로 이어졌다.
30년 전 <로미오와 줄리엣> 초연 당시 줄리엣을 연기한 전 슈투트가르트 예술감독 마르시아 하이데는 강수진에게 줄리엣 의상과 세계적인 안무가 존 크랑코로부터 받은 반지를 물려줬다. 이는 강수진을 후계자로 인정한다는 특별한 의미다.
1994년 강수진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은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첫 내한 공연을 가졌다. 이날 공연은 강수진씨의 두 자매 강여진, 강혜진이 하피스트로 오케스트라에 참여, 강수진의 세 자매가 같은 무대에 선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14년 만에 국내 무대에 다시 올려지는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위해 14일 입국한 강수진과의 귀중한 인터뷰 시간이 마련됐다.
첫 주역 데뷔작인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1994년에 첫 내한 공연을 가진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14년 만에 줄리엣으로 한국 무대에 다시 오르게 된 소감을 듣고 싶다.
한국에서의 공연은 다른 나라에서 공연하는 것보다 뜻 깊다. 처음 1993년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으로 주역을 맡으면서 다음해 전막을 서울 세종문화공연에서 공연했기 때문이다. 14년 만에 한국 관객들 앞에서 이 공연을 다시 한다니 솔직히 너무 떨린다. <로미오와 줄리엣> 전막으로 한국 관객들한테 공연하는 것은 이번 공연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그래서 더 좋은 공연을 보여드리고 싶다.
왜 마지막이라는 말을 하는가? 그럼 한국에서 강수진의 줄리엣은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전막공연으로 한국에서 보여드리는 마지막 공연이라고 생각하니 슬프다. 아직은 무덤덤하지만 공연이 끝나고 독일로 돌아가면 실감이 날 것 같다. 이번 공연으로 관객들이 공연되는 세 시간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어드릴 수 있게 해주고 싶은 바람이다.
이번 공연이 마지막인 특별한 이유가 무엇인가?
내 나이가 나이인 만큼 은퇴 전에 한국에서 꼭 다시 한번 이 작품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싶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춘희> <오네긴> <말괄량이 길들이기> 등의 작품을 한 번씩은 보여드렸는데 은퇴 전에 모든 공연을 전막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꼭 보여드리고 싶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아직까지 계속 이 작품에 내가 출연하고는 있지만, 한국에서는 전막으로는 마지막이다. 사실 발레단 전체가 움직여야 되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전막공연은 이루어지기가 힘들다.
40대의 나이로 10대의 줄리엣으로 오르니 어떤가.
줄리엣이 보통 14~15세로 알려져 있다. 예술이라는 게 참 재미있는 게 나이를 불문하고 그 역에 몰두를 하면 15세가 될 수도 있고, 70세가 될 수도 있다.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오히려 40세가 넘어서 줄리엣을 연기한다는 게 처음 줄리엣을 맡았을 때보다 더 신선하게 느껴지니 신기하다.
함께 내한한 리드 앤더슨 예술감독은 ‘강수진이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소중한 발레리나’라며 강수진에 대해 높은 신뢰를 보였다. 리드 앤더슨 감독은 “강수진이 한국에서도 유명하지만 발레단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발레리나”라며 “발레의 예술성을 전 세계에 전파하고 있는 데는 강수진의 역할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세계 많은 줄리엣들을 지도해왔지만 성숙한 발레리나일수록 더 풍부한 감성을 표현해준다. 그런 의미해서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40대 나이가 체력을 감안할 때 춤을 추는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시작했을 당시 30대에는 춤을 추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30대 때는 40세에 춤을 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40대가 된 지금 더욱 즐겁게 춤을 추고 있다. 나이 50을 바라보며 춤을 출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두 차례 공연에서 혼자 두 명의 로미오를 상대한다는 것이 벅차지 않는가? (슈튜트가르트 발레단의 대표 무용수 필리프 바란키비츠와 마레인 라데마케르가 각각 한번씩 로미오 역으로 공연) 체력적인 부담이 느껴질 것 같다.
나에게는 이런 일들이 보통이기 때문에 힘들지는 않다. 단지 시차상 잠을 못자서 힘들 뿐이다. 5일 동안 다섯번의 공연이 있다면 다섯명의 각기 다른 로미오와도 출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았다. 감독님은 언제든지 누구와도 춤을 출 수 있도록 지도해주셨다. 작년 공연 때는 세 명의 로미오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발레단에는 주연 무용수가 5명이 있는데 한번씩 다 춰봤기 때문에 파트너를 바꾸는 데는 부담감이 없다. 물론 한명의 상대 무용수와 함께 오랜시간 호흡을 맞추면 도움이 많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상하게 입단한 후 부터 나에게는 그런 기회가 없었다. 파트너가 수도 없이 지나갔지만 거기서 많은 것을 배웠다. 여러 무용수들과 함께 춤추는 것이 즐겁고 재미있다.
상대배우에 따라 공연 호흡이나 느낌도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그렇다. 신기하게 똑같은 스텝과 안무를 해도 상대배우의 느낌이 많이 다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기만의 로미오가 매번 다르다고 할까. 그래서 로미오를 맡는 배우에 따라 줄리엣의 느낌이 많이 다르다. 이번 두 번의 내한 공연 역시 모두 다른 느낌을 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렸을 때부터 내면에서 표현되는 감정을 억지로 끌어내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이라는 게 매 공연마다 똑같을 수가 없다. 그래서 발레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분야다.
은퇴는 언제쯤 생각하고 있는가. 은퇴 후 어떤 일을 할 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은퇴가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40대로 넘어가면서 예전보다 훨씬 좋게 느껴지니 말이다. 은퇴가 내년이 될지 5년이나 10년 후가 될지 답은 못 드리겠다. 지금까지는 발레리나로서 활동을 하기 때문에 정확히 답을 드리기가 쉽지 않다. 40년밖에 안 살아봤지만 한치 앞도 못보는 것이 사람 일이더라. 확실한 점은 내가 후배 무용수들을 위해 산다는 것이다. 내가 언젠가 무용을 그만두는 날이 오면 발레세계에서 내가 100% 줄 수 있는, 진짜 후배들을 사랑하는 쪽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살아오면서 즐거운 이야기보다 고통스럽게 공부한 이야기 등 많은 고민을 털어놓았다. 아직도 공개하지 않은 고민이 더 있는가?
부모님에게 항상 죄송스럽고 미안한 마음이다. 부모님 얘기만 나오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어린 시절 한국을 떠나면서 부모님한테 미안한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오늘도 공항에서 도착한 이후로 못 만났다.(강수진은 부모님 얘기가 나오자 울먹거렸다. 그는 “또 울려고 그런다”고 애써 눈물을 참아냈다.) 어렸을 때는 아프거나 어떤 문제가 생겨도 혹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얘기를 못했다. 부모님도 감기가 들었어도 나에게 얘기를 안 해주신다. 내가 심각하게 생각하고 걱정할까봐. 부모와 자식간의 공통된 고민인 것 같다. <무릎팍도사> MC 강호동씨가 마음에 있는 고민은 얘기로 털어놓는 게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얘기 못했던 것을 며칠 사이에 얘기 해봤더니 조금 마음이 풀어지는 것 같다. 강호동씨의 조언이 도움이 된 것 같다.
물론 이외에도 여러 고민들도 많다. 하지만 운 좋게 좋은 신랑을 만나 내 고민을 다 받아주니 난 행복한 여성이다. 하하하.
지난주에 <무릎팍도사>에 출연(이번주에 속편 출연 예정)한 강수진은 14세에 시작한 모나코왕립발레학교에서의 유학생활을 이야기했다. 언어, 실력,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다른 학생들과 차이가 있었던 강수진은 다른 학생들이 잠든 밤 11시 이후 멀리 왕궁에서 비치는 불빛에 의지해 새벽까지 연습을 했노라고 말했다. 유일한 위안은 휴일마다 국제전화로 부모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었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도 강수진은 하루 10시간 이상 연습하고 한 시즌에 250개의 토슈즈를 닳아 없애는 연습벌레가 됐다. 발가락이 허물어지고 진물이 나면 연한 살코기를 다져 발을 감싸고 연습을 했다.
말 속에 남편에 대한 사랑이 묻어나는 것 같다. 남편도 같은 무용수라서 장점도 있겠지만 단점도 있을 것 같다. 남편은 어떤 분인가?
(강수진은 2002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선배이자 동료인 터키 태생 발레리노 툰치 소크멘(48)과 결혼했다. 남편은 이번 내한 공연에 동행했다.)
오히려 도움이 많이 된다. 같은 무용수라서 내 상황에 대해 더욱 더 잘 이해를 한다. 발레를 나보다 더 오래 했고 더 많이 알기 때문에 모든 점이 나에게는 플러스가 된다. 하지만 집에서 발레에 관한 얘기는 별로 안한다.
결혼 6년째다. 2세 계획은 없는가?
신랑과 처음에는 노력을 많이 했다. 하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안되는 게 있더라. 바로 2세를 가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이제는 마음 편히 생각하려 한다. 우리에게 2세가 주어진다면 언젠가 때가 되면 생기지 않을까 하고. 아무래도 올해는 아닌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강아지와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것이 행복하다. 하하하.
한국에 당신을 사랑하는 팬들이 많다. 한 마디 해 달라.
지금까지 많이 사랑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 항상 보답하는 마음으로 좋은 공연을 보여드리겠다. 그리고 다음번에는 다른 작품의 전막으로 한국에서 공연할 예정이니 <로미오와 줄리엣>이 마지막이라고 너무 서운해 하지 마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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